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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세아 3장 주석 성경말씀] 이스라엘의 우상 숭배(호 3:1-5)

성령의 능력 2022. 12. 19.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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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세아 3장에서는 고멜의 음행과 호세아의 용서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다. 고멜은 이스라엘 백성을 상징하고 호세아는 하나님을 상징한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 말씀을 버리고 우상을 숭배하여 영적인 음행을 저지르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향하여 회개하고 돌아오라고 말씀한다. 회개하고 돌아오면 하나님이 용서하신다고 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말씀을 외면한다. 하나님 말씀을 버리고 자기들 멋대로 살다가 하나님으로부터 멸망받았다.

 

이스라엘의 우상 숭배(호 3:1-5)

 

혹자는 선지자와 결혼한 음녀(1:3)가 열 지파를 나타내기 때문에 본장은 두 지파의 나라 유다를 언급 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이 여인의 열 지파처럼 이혼되지 않고 오랫동안 홀로 있다가 두 지파처럼 다시 돌아오기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은 이스라엘 자손이라고 호칭되는데 이것은 열 지파를 가리키는 명칭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앞 장에서처럼 이스라엘에 대한 비유로 이해되어야 할 것 같다. 하나님께서는 선지자에게 "가서 그 말을 되풀이하라" 고 하신다. "너는 또 가라." 죄인의 각성과 복귀를 위해서는 교훈에 교훈을, 훈계에 훈계를 거듭하는 일이 필요하다는 데 주목하자. 그들이 한 가지 표적을 믿으려 하지 않거든 또 다른 표적을 시도해 보라(출 4:8, 9).

Ⅰ. 이 비유에서 우리는 다음 사실을 관찰할 수 있다.

1. 하나님의 선하심과 이스라엘의 악함이 이상하게도 서로의 특성을 더 돋보이게 하는 데 이용되고 있다(1절). 이스라엘은 그 친구(혹은 타인)의 연애를 받는 여인과 같다. 그 친구는 여인과 결혼한 자이거나 아니면 단지 그녀에게 구혼만 하는 자일 것이다. 그럼에도 그녀는 음부가 되었다. 하나님과 이스라엘 간의 경우도 그렇다. 흔히 애정은 상호 간에 이루어지는 상대적인 것이어서 서로 간에 소실되는 사랑은 없다고들 한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의 사랑조차 아주 많이 소실되며 무가치하고 배은망덕한 백성에게 허비됨을 보게 된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이스라엘 자손에게 대해 아주 큰 사랑을 품고 계시지만 그렇게도 그들은 악하고 음란한 세대이다. 하늘이여 놀라고, 땅이여 기이히 여길지어다.

(1) 하나님의 선하심은 그들의 악함을 종식시키지 않았다. 여호와께서는 그들을 사랑하시며 그들에게 대해 친절심을 품고 계시며 끊임없이 그들에게 친절을 베푸신다. 그들은 그 점을 알고 있다. 그들은 하나님이 줄곧 자기들에게 아버지 같고 친구 같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도 그들은 다른 신들을 쳐다본다(곧 섬긴다). 그들은 자기들이 볼 수 있는 다른 신들을 쳐다보고 눈으로 이끌려 그들을 사랑하게 된다. 그들은 경탄과 찬미의 눈으로 쳐다본다(온갖 위로를 기대한다). 그들은 우상 경배를 제지당하면 그들에게 추파를 던졌고 그들의 눈에는 영적 간음이 가득했다. 그리고 "그들은 포도주 병을 사랑했다" (한글 개역 성서:" 건포도 떡을 즐겼다"). 그들은 우상 숭배자들에게 가담하여 즐겁게 살며 술을 마셨다. 그들은 이따금씩 우상의 신전에서 푸짐하게 대접받은 좋은 포도주를 인하여 다른 신들에게 호의를 품었다. 우상 숭배와 육욕은 흔히 함께 따라다닌다. 주정뱅이들처럼 자기 배로 하나님을 삼는 자들은 그 외 무엇이든지 쉽사리 자기 신으로 삼게 된다. 하나님의 제사장들이 성전에 시무하러 들어갈 때에는 포도주를 못 마시도록 되어 있었고 더욱이 나실인들은 전혀 술을 입에 대지 못했다. 그러나 다른 신들의 숭배자들은 대접으로 술을 마셨다. 아니, "포도주병" 이라야 그들을 만족시켰다.

(2) 그들의 악함이 하나님의 선하심을 종식시키지 못했고 그들에게 대한 은총의 흐름을 막지 못했다. 그녀가 음녀임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그 친구(한글 개역:타인)에게서 사랑을 받는다는 것은 참으로 자비의 이적이다. 이스라엘 자손을 향한 여호와의 사랑이 그렇다. 하나님께서는 "가라, 가서 이런 여인을 사랑하라. 네 마음으로 그런 여인을 사랑할 수 있는지 시도해 보라. 아니, 너는 그럴 수 없을 것이다. 어떤 사나이도 그런 여인을 용납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런 것이 이스라엘 자손에게 대한 나의 사랑이다. 그것은 사랑 없는 자에게 대한 사랑이요, 사랑할 수 없는 자에게 대한 사랑이며 그 사랑을 수천 번도 더 몰수당한 자에게 대한 사랑이다." 불쌍한 죄인에게 대해 하나님은 선의를 품고 계신다. 이런 면에 있어서도 그의 생각과 길은 우리의 생각과 길보다 무한히 높으시고 그의 사랑은 우리의 사랑보다 한층 겸비하여 자비롭다. 딴 어느 일에 못지않게 이 점에서도 그는 하나님이시며 사람이 아니시다(호 11:9).

2. 그토록 선하신 하나님과 그토록 악한 백성을 다시 결합시킬 방법이 안출 되고 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목적하신 일이며 하나님께서는 자기가 의도하시는 것을 반드시 이루실 것이다. 놀랍게도 우리는 바다처럼 넓은 틈바구니가 효과적으로 치유되는 것을 볼 수 있다. 하나님의 자비가 그치지 않는 한 기적도 그치지 않는다. 여기서 다음 사실을 관찰하자.

(1) 하나님께서 그들을 낮추시고 그들로 스스로를 알도록 하시기 위해 취하시는 방편(2절). "내가 은 열다섯 개와 보리 한 호멜 반으로 나를 위하여 저를 샀다. 즉 내가 저에게 화해하기를 청하며 악한 행실을 버리고 본 남편에게 돌아오도록 구하였다. 이는 내가 저를 개유하여 말로 위로한 것과 같다(2:14)." 이것은 남편을 떠나 행음한 첩을 좇아가 다정히 말한 레위인과 같다(삿 19:3). 그러나 선지자가 여기서 여인의 호의를 사기 위해 갖고 온 선물은 아주 약소한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여인의 별거 생계를 위한 전부였다. 그녀는 수당이 삭감되었다. 이런 부족한 지참금으로써 선지자는 여인의 교만을 벌하고 여인을 몹시 비천하게 보이도록 한다. 삼손은 자기를 노엽게 한 아내와 화해하러 갈 때 염소 새끼 한 마리를 가지고 갔다(삿 15:1). 이것은 점잖은 대접이었다. 선지자는 은 열다섯 개라는 적은 금액을 가지고 여인을 찾아갔다. 그렇지만 여인은 이 금액을 가지고 한참 동안 만족하며 지내야 했다. 그 기간은 남편이 그녀를 처음 상태로 회복시키기에 적당하다고 생각할 때까지였다. 이 여인은 또 보리 한 호멜 반을 식용으로 받게 되었다. 이것은 이 여인이 누가 봐도 충분히 겸손해졌다고 할 수 있을 때까지, 또 적절한 시련의 시기가 지난 뒤 참으로 개과천선했다는 만족할 만한 증거가 엿보일 때까지 기대해야 할 전부였다. 이 여인은 선지자가 이렇게 구혼하는 것이 그 자신의 장점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아야 했다. 이 여인에게 대한 그의 평가는 반값에 불과했다. 종의 가격도 삼십 세겔이었다(출 21:32). 이것은 그 절반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도 이 여인은 그것이 자기의 값어치보다 더 많다는 것을 알아야 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위해 보석금을 치르셨었다. 그때에는 그들이 하나님 보시기에 그토록 값지고 존귀했던 것이다(사 43:3, 4). 그러나 이제 그들은 하나님을 떠나 행음하였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위해 은 열다섯 개만 지불하실 것이다. 그들은 이와 같이 죄악으로 자기들의 가치를 상실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자기가 명예와 위로를 주시려고 하는 자들에게는 먼저 그들 자신의 무가치성을 깨닫게 하시고 탕자처럼 "지금부터는 내가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눅 15:19)라고 고백하게 만드신다는데 주목하자. 시대는 이스라엘이 밀의 아름다운 것을 먹을 때(시 81:16)였다. 그러나 그들은 방탕해서 포도주 병(건포도 떡:한글 개역)을 즐겼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들을 포로의 땅에 데리고 가셔서 보리떡을 먹게 만드셨다. 이는 그들을 낮추고 끌어내리시기 위함이었다. 그들은 그나마 보리떡이라도 얻어먹을 수 있는 것을 감사해야 했다. 이전에는 그들이 하나님께 인색한 대접을 받지 않았지만 이제는 저울과 말로 달고 되어서 먹게 되었다. 빈궁과 수치는 큰 죄인을 진정한 회개자로 만드는 복된 수단이라는 데 주목하자.

(2) 하나님께서 그들과 동행하실 조건(3절). "너는 많은 날 동안 나를 위하여 지내고 다른 남자를 좇지 말라. 나도 네게 그리하리라" (흠정역). 그는 그들에게 이혼장을 써 주고 다시는 관계하지 않겠다고 결심하셔야 마땅했다. 그러나 그는 그들에게 기꺼이 친절을 베푸시겠다고 하시다. 그리고 문제를 타협으로 풀려고 하신다. 그는 엄격한 율법을 따라 엄한 공의로 그들을 다루지 않으시고 많은 자비를 따라 그들과 거래하신다. 그리고 이것은 행음하여 하나님을 떠난 타락한 인류에게 대한 하나님의 은혜로운 관계를 나타낸다. 그는 참으로 평가할 수 없는 값을 주고 그들을 사셨다. 이것은 그들 인간의 명예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명예로운 공의를 위해서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하시는 제안과 그들과 맺으시고 싶어 하시는 은혜의 언약은 곧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그는 그들의 하나님이 된다는 것이다. 그것은 여기서 이스라엘에게 제안되는 것과 꼭 같다.

[1] 그들은 하나님을 배반한 수치를 스스로 져야 했고 그 죄에 대한 형벌을 감수하며 거기 복종해야 했다. "너는 많은 날 동안 나를 위해(한글 개역 성서:나와 함께) 지내야 할 것이다. 너는 홀로 되어 슬픔 중에 있는 과부처럼 고독과 침묵 속에서 여러 날 동안 나를 위해 지내야 할 것이다." 그들은 장식품을 제해 버리고 끈기와 복종심으로 기다리며 하나님이 자기들에게 어떻게 대하실지를 알아야 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자기들처럼 무가치한 폐물들을 다시 은총 속으로 받아들이기를 기뻐하실지 않으실지를 알아야 했다(출 33:3, 5). 그들의 아비, 그들의 남편은 그들의 얼굴에 침을 뱉었고(미리암에 대해 하나님이 말씀하셨듯이) 노여움의 표적 아래 그들을 두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미리암처럼 칠 일을 부끄러워해야 하며(민 12:14), 그 할례 받지 않은 마음이 낮아질 때까지 진 밖에 갇혀야 했다(레 26:41). 그들은 홀로 앉아 잠잠하며 여호와의 구원을 기다려야 했다. 그러는 동안 그들은 멍에를 메어야 했다(애 3:26-28). 그들은 하나님께서 자기 가운데서 신속히 돌아오시기를 기대해서는 안 되었다. 물론 그런 때도 가끔 있긴 했다. 그들은 위로가 값싸고 손쉽게 올 줄로 기대해서도 안 되었다. 아니, 그들은 그것을 바라서는 안 되었다. 그들은 여러 날 동안 즉 포로 기간 내내 기다려야 했다. 그들은 그것을 자비의 기적으로 간주해야 했다. 마침내 그 구원이 오면 그들은 참으로 기다린 보람이 있을 터였다. 하나님께서 자비를 주시기로 계획하시는 자들은 먼저 낮춤을 당하고 하나님의 은총을 높이 평가하게 된다.

[2] 그들은 결코 다시는 어리석음으로 돌아가서는 안 되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과 성도에게 화평을 말씀하실 조건이다(시 85:8). "너는 행음하지 말며 네 음란으로 말미암아 별거당한 그 포로 된 땅에서 우상을 숭배하지 말지니라." 우리가 지은 죄에 대해 스스로 부끄러워하고 우리를 징계하시는 하나님께 의로우시다고 찬미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못하다는 데 유의하자.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의 힘으로 더 이상 범죄 하지 않으며 다시는 세상과 육을 따라 행음하지 않으며 하나님을 떠나지 않겠다고 결심해야 한다. 하나님을 송축하리로다. 우리가 어떤 일로도 오히려 범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언약의 율법이긴 하나 그것이 그 언약의 조건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너는 행음하지 말며 다른 신들을 섬기지 말고 다른 남자를 좇지 말라." 그들은 포로의 땅에서 그 나라의 우상을 경배하도록 유혹을 받을 터였다. 그것은 그들에게 시험이 될 것이며 오랜 시련, 많은 날 동안 시험이 될 터였다. "그러나 네가 네 근본을 지키고 네 순전을 고수하며 이 일이 네게 임할 때 네 손을 이방신에게 펼치지 아니하면 너는 하나님의 은총의 귀환에 유자격자가 되리라."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고난시의 유혹에 정복당하지 않도록 보호될 때에는 그 고난이 우리에게 대한 많은 선의 수단과 보다 많은 선의 보증을 확실히 표시한다는 데 주목하자.

[3] 이런 조건으로 그들의 조물주는 다시 그들의 남편이 되실 것이다. "나도 네게 그리하겠노라." 이것은 하나님과 돌아오는 죄인 간의 언약이다. 그들이 만일 하나님을 위하고 섬긴다면 하나님도 그들을 위하시고 구원하실 것이다. 그들이 하나님의 모든 경쟁자들을 부인하고 포기하여 마음속의 보좌를 하나님께 내어드리고 오직 하나님께만 전적으로 헌신한다면 하나님도 그들에게 모든 경우에 모든 것을 충족시켜 주시는 하나님이 될 것이다. 우리가 만일 의무의 길로 하나님께 신실하고 불변하며 그를 떠나거나 버리지 않는다면 그도 자비의 길로 우리에게 그러하실 것이며 결코 우리를 버리거나 떠나지 않으실 것이다. 그리고 이보다 공정한 제안은 없다.

Ⅱ. 마지막 두 절에서 우리는 이 비유의 해석과 이스라엘에 대한 적용을 볼 수 있다.

1. 그들은 모든 기쁨과 명예를 박탈당한 채 과부처럼 오래 앉아 있지 않으면 안 된다(애 1:1, 2). "그들은 많은 날 동안 왕도 없고 궁도 없이 지내리라." 이런 형편의 나라는 과부라고 불려 마땅하다.

(1) 그들에게는 일반 정부가 결여되어 있다. 그들은 왕도 없이 지낼 것이며 그들 자신의 군주도 없이 지낼 것이다. 그들에게는 압제하고 가혹히 다스리는 왕이나 군주는 있었지만 그들을 보호하거나 그들을 위해 전투를 하거나 그들에게 공의를 행사하거나 그들의 공동 안전과 복리를 돌보아 주는 왕도 방백도 없었다. 행정은 국민에게 대단히 큰 축복이며 올바른 행정이 결여되어 있다는 것은 매우 슬프고 쓰라린 심판이라는 것을 유의하자.

(2) 그들에게는 공중 예배가 결여되어 있었다. "그들은 제사도 없고 주상도 없고(이것은 상이나 기둥을 말하는데 그 단어는 야곱이 세운 기둥에 대해 사용되고 있다. 창 28:18; 31:45; 35:20), 에봇도 없고 드라빔도 없이 지낼 것이다. 여기서 드라빔이 에봇과 긴밀히 연결되고 있으므로 혹자는 그것이 대제사장의 흉패에 있는 우림과 둠밈을 의미한다고 생각한다. 이 구절의 의미는 그들이 포로 기간 중에 국가의 면목도 갖추지 못할 뿐만 아니라 교회의 모습도 갖추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참된 것이든 거짓된 것이든 자기들의 선택대로 공적인 예배를 드릴 자유도 갖지 못할 것이다. 그들은 제물이나 제단도 갖지 못할 것이며(70인 역은 그렇게 번역한다) 제단이 없기 때문에 제사도 드리지 못할 것이다. 그들은 에봇도 드라빔도 없을 것이다. 즉 합법적 제사직도 없으며 하나님의 의사를 알 수단도 소유하지 못하며 의문 나는 경우에 문의할 신탁도 없을 것이다. 그들은 모두가 암흑 중에서 지내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 공적으로 예배드릴 모든 기회가 박탈된 자들의 처지는 매우 참혹하다는 데 주목하자. 포로 중에 있던 유대인의 처지가 바로 그러했다. 그리고 오늘날 흩어져 있는 유대인의 경우는 그보다 훨씬 더하다. 그들은 비록 회당은 가지고 있으나 성전 예배는 없이 지낸다. 하나님과의 교제로부터 폐쇄당한 자들의 형편은 참으로 쓸쓸하고 황량하다. 그들은 제사와 제단을 통해 하나님께 호소할 기회도 갖지 못한다.

2. 그들은 결국 다시 아내로서 용납받게 될 것이다(5절). "그 후에 즉 시간이 경과하여 저희가 이런 훈련을 거치고 난 뒤 돌아올 것이다." 그들은 자기들의 우상 숭배를 뉘우치고 우상을 버릴 것이며 하나님께 전심하며 집착할 것이다. 이로써 그들은 하나님께 용납받을 것이다. 그들이 돌아오는 사례로써 두 가지 일이 약속되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님께 돌아오는 가운데 그를 기뻐 받아들이며 그에게로 나아갈 것이다.

(1) 그들은 하나님께 대해 물을 것이다. "저희가 그 하나님 여호와와 그 왕 다윗을 구하리라." 하나님을 발견하려고 하며 그의 은총을 얻으려는 자는 그를 구해야 하며 찾아야 하고 그와의 면식을 탐내야 하며 그와 화해하기를 원해야 하고 그를 사랑해야 한다. 그들은 하나님께 용납받기 위하여 이런 일로 수고하고 힘써야 한다. 그들이 그를 찾는다는 것은 그들이 그를 상실한다는 것을 전제로 하며 자기들의 손실을 애통해하고 자기들이 상실한 것을 간절히 회복하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암시한다. 그들은 그를 자기들의 하나님으로서 구하게 될 것이다. "백성이 자기 하나님께 구할 것이 아니냐?" (사 8:19) 그리고 그들은 다윗을 자기들의 왕으로 구하게 될 것이다. 이것은 다름 아닌 메시아 곧 다윗의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말한다. 그리스도는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시며 다윗 자신도 주라 부른 분이다(시 110:1).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그 조상 다윗의 보좌를 주셨다(눅 1:32). 갈대아 주석은 "저희가 그 하나님 여호와의 예배를 구할 것이며 그 왕 다윗의 아들 메시아에게 복종하리라" 고 읽는다. 이것을 예레미야 30장 9절, 에스겔 34장 23절, 37장 25절과 비교해 보라. 여호와를 위해 그를 구하려고 하는 자들은 예수 그리스도께 문의해야 하며 그를 자기들의 왕으로서 찾아야 하고 기꺼이 그의 백성이 되어야 하며 그에게 충성과 절개를 맹세해야 한다.

(2) 그들은 하나님을 경외할 것이다. "저희가 여호와와 그의 선하심을 경외하리라" (흠정역). 혹자는 여기에 나오는 그의 선하심을 성전으로 이해한다. 그들은 하나님을 예배하면서 성전 쪽을 바라보게 될 것이다. 유대인들은 르호보암 시대에 이스라엘이 차 내던진 것이 세 가지였다고 말한다. 즉 첫째는 천국이요, 둘째는 다윗가며, 셋째는 성전이었다. 그들이 돌아와 여기에 약속된 세 가지를 찾기까지는 결코 형통하지 못할 것이다. 그들은 그 하나님 여호와에게서 천국을 찾고 그 왕 다윗에게서 왕가를 찾으며 여호와의 선하심 속에서 성전을 찾게 될 것이다. 또 다른 이들은 "그 선하심" 이란 것을 그리스도 즉 그 왕 다윗과 동일한 그리스도의 속성으로 이해한다. 그러나 이것은 오히려 하나님의 속성으로 해석해야 할 것이다. 하나님은 선하심을 자기 영광으로 나타내셨고 자기 이름을 그 속성으로 선포하신 때문이다. 여호와와 그의 선하심도 우리가 경외해야 할 대상이다. 그의 엄위로우심 뿐만 아니라 그의 자비도 경외의 대상이다. 그들은 두려움으로 여호와와 그의 선하심으로 도망할 것이며(혹자는 그렇게 읽는다), 도피성으로서 그와 그의 선하심으로 도망할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선하심을 경외해야 하며 상찬해야 하며 놀라야 하며 찬미해야 하며 모세가 이 이름을 선포하던 때처럼 경배해야 한다(출 34:6). 우리는 그의 선하심을 거스르게 할까 봐 두려워해야 하며 그의 선하심에 배은망덕한 보답을 하다가 그것을 상실할까 봐 두려워해야 한다. 사유케 하심이 주께 있음은 주를 경외케 하심이니이다(시 130:4). 우리는 하나님의 선하심에 떨면서 기뻐해야 하며 자고 해서는 안 되고 그를 두려워해야 한다. 이제 이 약속은 복음 시대에는 유대인이나 이방인의 큰 무리가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로 돌아오며 신약 교회에 가맹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을 섬기되 신적 은혜에 대한 사랑과 경외로써 하며 하나님께 그의 이스라엘로 받아들여졌던 때문이다. 그리고 어떤 이는 이것이 장차 성취될 것으로 해석한다. 그때에는 불신앙 가운데 남아있는 유대인들이 회심하여 그리스도께 대한 신앙으로 돌아올 것이며 메시아를 그 왕 다윗으로서 구할 것이고 그를 통해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얻을 것이며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게 될 것이다(롬 11:25). 그때에는 그들이 "가이사 외에는 우리에게 왕이 없다" 고 말하면서 그리스도를 사형시키려고 찾았다. 그러나 그들이 그를 자기들의 두목으로 세우고 그의 멍에를 멜 날이 오고 있다. 그들이 그렇게 할 것이라고 여기에서 약속하신 분이 메시아의 때 곧 마지막 때의 그들로 하여금 그렇게 하도록 만드실 것이며 그 자신의 방법과 시기에 이 큰 일을 이루실 것이다. 그러나 슬프다. 하나님께서 이 일을 하실 때 살아있을 자가 누구인가? 유대 민족의 전체적 회심을 기대하다니 이 얼마나 먼 훗날 얘기인가! 그러나 나는 유대인이 개심할 수 있도록 우리가 기도해야 한다고 확신한다.

[잠언 3장 강해 설교말씀] 지혜를 통한 하나님과의 교제(잠 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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