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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 3장 성경 주석말씀] 이스라엘의 사악성(렘 3:1-5)

성령의 능력 2022. 12. 14.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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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 3장에서는 유다 백성의 죄악에 대해서 고발하고 있다. 유다 백성이 하나님을 버리고 영적으로 부패한 삶을 살았다.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니 하나님은 유다 백성을 심판한다고 했다. 하나님이 유다 백성을 선택했는데 그들은 신랑이신 예수님을 버렸다. 결국 하나님을 버리게 되므로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 심판받을 수밖에 없다. 우리의 인생은 어떤가? 하나님 말씀을 따라서 살아야 한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비전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 예수님 안에서 올바른 신앙을 가지고 인생을 살아가는 성도가 되어야 한다.

 

이스라엘의 사악성(렘 3:1-5)

 

이 본문은 앞 장의 설교에 속한 어떤 것을 계속하고 있다. 그리고 이 말씀은 우리가 앞 장에서 본 책망을 받는 자에게 새 희망의 문을 열어 주기도 한다. 하나님은 치유하시기 위해 상하게도 하신다. 이제 이 본문의 내용을 살펴보자.

Ⅰ. 이 백성은 얼마나 악하게 하나님을 저버리고 음란하였는가? 그 책임은 대단히 크게 미치고 있다.

1. 그들은 우상의 수를 많게 하고 그들을 섬겼다. 그들에게는 그들에게 낯선 신을 받아들이는 것은 대단히 나쁜 일로 여겨졌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거짓 신들을 따르는 열정 속에서도 만족을 얻지 못했다. "내가 많은 무리와 행음하였다"(1절). 그들이 행음한 그 여인은 우상들의 일반적인 매음부가 되었다. 그 어리석은 신이 모든 이웃 나라에 세워진 것도 아닌데, 오히려 유대인들이 그것을 신속히 받아들인 것이었다. 그들이 행음치 아니한 신당이 어디 있는가?(2절) 회개할 때에, 우리가 범한 구체적인 죄의 행위와 그 죄가 범해진 장소와 동반자들에 대하여 비통한 반응을 나타내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리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고 그 죄를 자백함으로써 우리 자신에게는 부끄러움을 돌리게 되는 것이다.

2. 그들은 우상 숭배할 기회를 찾고 있었다. 그들은 새로운 신들을 찾고자 했다. 너희는 창녀로 변장을 한 다말과 같이(창 38:14)그리고 "자기 길을 바로 가는 행객을 불러들이는 어리석은 여인과 같이" (잠 9:14, 15), 길가에 앉아 새 신들을 찾았다. 또 그들은 광야에 있는 아라비아 사람같이 - 즉 고객을 유인하거나 유리한 거래를 가지고 또 유리한 시장을 점유하기 위해 상인들을 기다리는 아라비아 소 상인들과 같이 - 혹은 미끼를 기다리는 "아라비아의 도적" 같이 그들은 더 좋은 새로운 신들을 찾았고, 더욱 재미있고 유익한 신들과 그 숭배자들을 찾고자 했다. 그들은 단순한 죄인들이었을 뿐 아니라 사탄들이었다. 그들은 배반자들이었을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유혹하는 자들이었다.

3. 그들은 죄에 대해서 대단히 뻔뻔스럽게 되었다. 그들은 자기들을 더럽혔을 뿐 아니라 "음란한 악행으로" (2절) 그들의 땅도 더럽혔다. 왜냐하면 그 죄는 보편적이었으나 처벌받지 않았기 때문에, 민족적인 죄가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3절) "너희는 창녀의 낯 즉 철면피를 가졌다. 너희는 부끄러워할 줄 모르고 있다. 너희는 영원히 스스로를 수치스럽게 하였으나 스스로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얼굴을 붉히는 것은 미덕의 색조이며 적어도 미덕의 일면이다. 그러나 수치를 지나버린 자들은 소망이 지나버린 자들이다. 음란한 마음을 가진 자들이 음란한 일에 탐닉되고 만다면 마침내 창녀의 얼굴을 가지게 되고 모든 염치와 겸양을 상실하게 될 것이다.

4. 그들은 모든 죄 행위의 악습을 많이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음란으로" 땅을 더럽혔을 뿐 아니라(즉 그들의 우상 숭배로) 그들의 행악으로도 땅을 더럽혔다. 하나님께 거짓된 자들이 어찌 이웃에게 진실될 수 있겠는가? "그뿐 아니라 너희는 너희가 할 수 있는 모든 악행을 행하였고 사악한 말을 했고 너희가 방법만 알았다면 그보다 더 악한 말을 했고 너희가 방법만 알았다면 그보다 더 악한 말을 하고 더 악한 행동을 했을 것이다. 너희의 뜻은 오직 기회가 없었을 뿐이었으리라." 힘을 다해 죄를 범하고 그들이 범행을 저지르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범죄할 기회를 갖지 못하여 악행을 저지르지 못하는 사람은 참으로 사악한 자들이다.

Ⅱ. 하나님은 그들의 죄를 얼마나 부드럽게 견책하셨는가. 그들이 죄를 범하였기 때문에 소돔과 같이 불과 유황을 쏟으시는 대신에 다만 그들에게 단비가 그치고 늦은 비가 끊어지게 하셨다. "늦은 비" 란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계속해서 의지하라고 말해 주는 수단이 되었을지 모른다. 그들에게 이른 비가 내렸을 때로 늦은 비가 없이는 안전하지 못하다. 그러므로 그들은 계속해서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하며 그렇지 아니하면 좋은 결실을 맺을 수 없었다.

Ⅲ. 하나님께서 그들이 비록 돌이킨다 해도 철저히 포기하시고 다시 받아들이지 아니하시기로 한 것이 얼마나 타당한 것이었던가? 이것은 오직 이혼의 규례(1절)를 알 때만 이해될 것이다(이것은 판결된 관례, 아니 그들에게는 누구에게나 아주 명백하게 알려져 있고 명문화된 율법이었다. 신 24:4). 그들은 이 법에 대해서 만일 어떤 여자가 일단 간음함으로써 다른 남자와 관계되면 이 여인의 첫 남편은 어떤 구실을 내세워도 다시 자기 아내로 받아들일 수 없으며, 만일 그렇게 된다면 조만간에 결혼 규례는 무섭게 더럽혀질 것이며 크게 그 땅이 더럽혀질 것이라고 말한다.

율법이 이 경우에 말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살펴보자- 즉 그들은 모든 사람을 이 문제에 대한 율법의 공정성을 인정하리라는 것을 말한다. 왜냐하면 누구에게나 다른 사람의 아내를 받아들이는 것이 금지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그들은 하나님도 다른 신과 그들이 야합했을 뿐 아니라 많은 무리와 행음한 그들을 자기 백성으로 다시 받아들이지 아니하시리라는 예상을 가지고 있었다. 만일 우리가 범한 죄와 같은 죄를 어떤 사람이 범했다면 우리는 그를 용서하지 않을 것이며 그와 화해하지 못할 것이다.

Ⅳ. 하나님은 그들을 초대할 뿐 아니라 그에게로 돌이키라고 말씀하시니 얼마나 은혜스러운가?

1. 하나님은 그들이 회개하면 그에게 은총을 받게 될 희망이 있다고 격려하신다. "너희가 악함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돌아 오려느냐" (1절). 이것이 그들을 영접하시리라는 약속을 암시해 주고 있다. 즉 "돌이키라, 그러면 너희는 영접되리라." 하나님은 당신이 우리에게 세우신 율법 자체에 얽매이지 아니하시고 인간과 같이 성급한 분노도 내지 아니하신다. 하나님은 피해받은 어떤 남편이 간음한 아내에게 취하는 태도보다 이스라엘에게 훨씬 더 친절하실 것이다. 그것은 이스라엘과 맺은 언약 때문이요, 참회하는 자들을 받아들임에 있어서도 "그는 사람이 아니요 하나님" 이시므로 어떤 것에서도 더욱 자비하시기 때문이다.

2. 그러므로 그는 그들이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기다리시며 당신께 어떻게 말해야 할지를 그들에게 지시하신다(4절). "네가 이제부터 나에게 외치지 아니하겠는가? 너는 나와 이런 관계를 가지신 이가 누구이며 내가 이러한 의무를 누구에게 지고 있느냐고 나에게 소리치지 아니하겠는가? 비록 네가 나를 떠나 음란하였다 해도 네가 어리석음을 알 때는 언젠가는 나에게로 돌아오고자 할 것이다. 너는 이때에, 아니 이제부터 그리고 이후로 나에게 소리치지 아니하겠는가? 네가 여태까지 무엇을 말하고 무엇을 행했든지 이제부터 나에게로 오고자 하지 아니하는가? 네가 정죄와 견책을 받은 이때부터 즉 너는 네 죄를 알게 되었고(2절) 그 죄 때문에 쓰라림도 가지게 되었으니 나는 본남편에게로 돌아가리니 그때의 내 형편이 지금보다 나았음이라(호 2:7)고 말하면서 죄를 버리고 나에게로 돌아오지 않겠는가?"

혹은 돌아오라고 부르시는 그렇게나 친절한 초대와 네가 영접되리라는 확신을 가지는 "이때부터" 너는 너를 압도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자 하지 않는가? 용서가 이제 선포되었으니 돌아와서 이 은택을 받지 않겠는가? 확실히 너는 그렇게 하고자 할 것이다."

(1) 하나님은 그들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내세워 자비를 구할 것을 기대하신다. 너희는 나에게 아버지여 당신은 나의 소시의 애호자 시었나이다라고 외치지 않겠는가?

① 그들은 확실히 아버지 되시는 하나님께 나아와 자기들의 불충한 행위를 용서받기 원할 것이며(아버지여 나는 죄를 범하였나이다) 돌아온 탕자가 받았던 아버지의 부드러운 자비를 받기를 하나님에게서 희망하게 될 것이다. 그들은 아버지 되신 하나님께 나아와 그에게 불평을 털어놓고 그분 안에서 구원과 회복을 얻으리라는 신념을 걸게 될 것이다. 그들은 이제 하나님을 자기들의 아버지로 고백하고 하나님 없이는 고아와 같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될 것이다. 그럼으로써 하나님으로부터 자비를 얻으리라는 희망을 가지게 될 것이다(호 14:3).

② 그들은 소시의 애호자이신 그에게로 나아올 것이다. 즉 말라기 2장 4절에 기술되어 있는 바와 같이 그들의 남편과 같은 그분에게로 나아올 것이다. "비록 너희가 많은 연인들을 따라갔지만 마침내는 네 약혼의 애정을 기억할 것이며 너희 소식의 남편에게로 돌아올 것이다." 혹은 이것을 더 일반적으로 해석해서 "당신은 나의 아버지와 같이 소시의 애호자입니다"라고 읽을 수도 있을 것이다. 어린 나이 때는 보호자가 필요하다. 우리가 하나님께로 돌아갈 때에 하나님은 평안한 길로 인도하시는 소시의 보호자가 되어 주심을 감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가 의무를 다할 때 하나님이 우리의 안내자가 되신다는 것을 알아야 하며 우리는 그의 이끄심을 따라야 할 것과 어떤 의심스러운 경우가 닥칠지라도 그를 믿는 신앙으로 이기고 나갈 것을 신실하게 서약해야 한다.

(2) 하나님은, 그들이 자비를 호소하며 그 자비의 은택을 갈망하리라고 기대하신다(5절). 그리고 "노를 한없이 계속하시겠습니까? 그의 이름은 은혜와 자비가 충만하심으로 확실히 그렇지 않으실 것이다"라는 신념을 가지고 그에게 돌아올 용기를 가지기를 기대하고

계신다. 회개한 죄인들은 바로 이러한 것을 가지고 용기를 가지게 될 것이다. 하나님은 꾸짖으시나 항상 꾸짖지 아니하시고 분노하시나 끝까지 노하시지 아니하시며 슬프게 하시지만 긍휼도 베푸신다. 그러므로 이와 같이 화해를 호소할 수 있을 것이다. 흑자는 이것을 죄에 대한 그들의 위선과 경솔함을 기술한 것으로 이해한다. "네가 창녀의 낯을 가지고(3절) 아직 네가 할 수 있는 마음대로 행악을 계속하고 있지만(5절) 때때로 나에게 나의 아버지여라고 외치지 않겠는가?" 그렇게 외치는 그때까지도 그들은 하나님께 대한 관심과 예배드린다는 구실을 내세우면서 우상 숭배에 탐닉되어 있고 경건의 모양과 헌신의 형식은 지녔으면서도 우상에 빠져 있었다. 사람이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면서 악한 일을 행하고(요 8:44에서 유대인들과 같이) 또 하나님을 "소시의 애호자"라고 부르면서 육체를 따라 스스로 빠져 있다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이다. 그래서 그들이 계속적으로 진노의 날을 기다리며 진노를 쌓아 가면서도 하나님의 노여움이 멈추기를 기다리며 아첨을 린다는 것은 인간의 가장 큰 수치가 아닐 수 없다.

[고린도전서 3장 주일 설교문] 일한 공력이 헛될까 조심하자(고전 3: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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