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데스다 원문 성경강해

[창세기 5장 히브리어 강해] 셋, 에노스, 게난, 마할랄렐, 야렛(창 5:6-20)

성령의 능력 2021. 4. 19. 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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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창세기 5장 히브리어 강해 중에서 셋, 에노스, 게난, 마할랄렐, 야렛이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창세기 4장은 가인의 족보가 나옵니다. 가인은 구원받지 못한 자의 표상입니다. 그의 후손들도 구원받지 못한 것을 의미합니다. 창세기 5장은 아담의 족보에 대해서 나오면서 구속사 관점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탄생할 족보라는 것을 말합니다. 이 족보에 올라간 사람들은 구원받은 백성을 상징합니다. 가인도 아담의 자녀지만 족보에는 올라가지 못했습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주권이며 선택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히브리 사람의 이름에는 그 사람의 정체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름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족장들의 이름을 통해서 하나님의 의도를 깨달아 보겠습니다. 구원받은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 들어가야 합니다. 생명 책에 이름이 기록된 사람이 구원받은 사람입니다. 이 시간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생명 책에 기록되었다는 것을 잊지 않기를 바랍니다.

셋, 에노스, 게난, 마할랄렐, 야렛(창 5:6-20)

 

6절 바예히 셰트 솨님 우메아트 솨나 바욜레드 에트 에노쉬

창 5:6 셋은 백오 세에 에노스를 낳았고

===================================5:6

에노스 - 에노쉬(명남)는 '사람, 인간'을 의미한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7회 나온다.

에노스는 셋의 아들이요, 아담의 손자이며, 90세에 게난의 아버지가 되었다. 게난 외에 다른 아들들과 딸들을 두었으며 905세에 죽었다(창 5:6-11). 그의 출생 시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라고 기록되어 있다(창 4:26).

몇몇 성경 주석가들은 이 구절이 성경에서 기도가 처음으로 언급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때에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이 불렀더라." 그러나 우리는 인간이 타락한 이래 하나님을 예배하고 그에게 기도한 것이 세상이 창조된 지 235년째인 에노스의 시대라고 하는 점에 동의할 수 없다. 우리의 첫 조상들은 자연스럽고도 본능적으로 하나님께 기도를 올렸다고 생각한다.

낳았고 - 직역하면 ‘그리고 그는 낳았다’이다. ‘죽었다’는 말이 8번이나 반복되어 인간이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임을 명확히 밝힌 본장은 개별적인 사랍의 죽음에도 불구하고 인류 역사가 단절되지 않고 계속되는 이유가 바로 출산에 있음을 밝히기 위하여 ‘낳다’란 단어를 무려 20회나 사용하고 있다.

한편 본문에서 ‘낳았다(바욜레드)’는 사람이 자식을 낳은 것은 물론 동물이 새끼를 낳은 것을 묘사할 때도 사용되는 낱말이다. 이 단어가 일반적으로 어미가 새끼를 낳는 데 사용되는 경우가 많으나 (4: 1. 22; 16 :1. 15; 렘 17:1 1) 본문에서와 같이 사역형 (히필형)으로 사용될 때에는 하나님께서 자식을 낳게 하시는 경우나(사 55:10; 66:9 ; 대상 2: 18) 본문의 경우처럼 아버지의 입장에서 자식을 가지게 되는 경우를 묘사할 때도 사용된다(11:11).

본문은 자식이 아버지의 씨를 받아 아버지의 가계를 잇게 되므로 아버지 입장에서 자식을 가지게 되었다는 의미를 반영하고 있으나 그 배후에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있었음을 보여 주는 표현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출산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너무나 큰 축복이 아닐 수 없다. “자식은 여호와의 주신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시 127:3).

7절 바예히 셰트 아하레 홀리도 에트 에노쉬 쎄바 솨님 우쉐모네 메오트 솨나 바욜레드 바님 우바노트

창 5:7 에노스를 낳은 후 팔백칠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5:7

여기서는 성령께서 대홍수 이전의 5명의 족장, 즉 셋, 에노스, 게난, 마할랄렐 및 야렛에 관한 기록을 남기는 것을 합당하게 생각하셨음을 볼 수가 있다. 그러나 그들은 당시 경건하고 신중한 면에서는 유명했지만, 이들에 대한 것은 특별히 살펴볼 만한 것이 별로 없다. 대체로 다음과 같은 것을 살펴볼 수 있다.

그들의 세대가 얼마나 광범하고도 명백하게 기록되어 있는가이다. 어떤 이는 이 일은 보다 간략히 언급하는 것이 더 좋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책에는, 모든 인간의 책이 그러하듯 부질없고 쓸데없는 말이 전혀 없는 것이다. 이처럼 평이하게 기록된 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의 이름 속에서 취하는 즐거움을 보이시기 위함이었다. 가인의 계보에 대해서는 간결히 계수한 것을 볼 수 있었다(4:18). 그러나 이 거룩한 “씨”에 관한 기사는 숫자로만이 아니라 자세하고 충분한 말로 기록되어 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가운데서 산 자들이 언제 죽었는가를 알 수 있다. 그러나 나머지 사람들에 대해서는 전혀 무관심하신 것이다. “의인을 기념할 때는 칭찬하거니와 악인의 이름은 썩으리라”(잠 10:7).

8절 바이헤이우 콜 예메 셰트 쉐템 에세레 솨나 우테샤 메오트 솨나 바야모트

창 5:8 그는 구백십이 세를 살고 죽었더라

===================================5:8

셋의 생애는 수명(날수)으로 계수되어 있다. 셋의 수명(“모든 날”)도 그러했고 다른 사람들도 그렇듯이, 인간의 수명이 아무리 길다고 해도 역시 그것은 짧고 이 세상에 사는 인간들의 세월은 빨리 회전함을 암시하는 것이다. 그들의 수명이 날수로 계수된 것이었다면, 우리는 분명코 시간으로 계수됨이 마땅하다. 아니, 오히려 우리는 “우리에게 우리의 날을 계수함을 가르치소서”(시 90:12)라는 기도를 반복해야 하리라.

9절 바예히 에노쉬 티쉐임 솨나 바욜레드 에트 케난

10절 바예히 에노쉬 아하레 홀리도 에트 케난 하메쉬 에세레 솨나 우쉐모네 메오트 솨나 바욜레드 바님 우바노트

창 5:10 게난을 낳은 후 팔백십오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11절 바이헤이우 콜 예메 에노쉬 하메쉬 솨님 우테샤 메오트 솨나 바야모트

창 5:11 그는 구백오 세를 살고 죽었더라

===================================5:9-11

게난 - 한때 사람들이 거의 사용하지 않은 사어(死語)였던 히브리어의 모든 어원 추적에는 한계가 있다. 따라서 한 단어나 한 사랍의 이름을 두고도 여러 가지의 다른 어원 분석들이 나온다. 본문의 게난의 경우도 ‘소유’ (Gesenius), ‘태어난 한 아이’ (Fürst), ‘대장장이’ 혹은 ‘창 쓰는 사랍’ (Davis), ‘소유자’ 혹은 ‘창 쓰는 사람’ (Murphy) 퉁 다른 여 러 견해들이 있다.

케난(명남)은 '창 제조자, 또는 소유자, 소유'를 의미한다. 구약성경에서 게난이란 이름을 가진 자가 2명 나오며, 둘 다 신약성경에 나타난다.



게난은 아버지 에노스가 90세에 출생했으며, 70세에 마할랄렐을 낳았으며, 그 후 840년을 더 살았다(창 5:9-14). 대상 1:2에는 영어식 발음인 '게난'(Kenan)으로 표기되었다. 신약성경에서 누가복음의 예수님의 족보에서 그의 조상 중 한 사람으로 나타난다: "그 이상은 므두셀라요 그 이상은 에녹이요 그 이상은 야렛이요 그 이상은 마할랄렐이요 그 이상은 가이난이요"(눅 3:37).

12절 바예히 케난 쉬브임 솨나 바욜레드 에트 마할랄렐

창 5:12 게난은 칠십 세에 마할랄렐을 낳았고

13절 바예히 케난 아하레 홀리도 에트 마할랄렐 아르바임 솨나 우쉐모네 메오트 솨나 바욜레드 바님 우바노트

창 5:13 마할랄렐을 낳은 후 팔백사십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14절 바이헤이우 콜 예메 케난 에세르 솨님 우테샤 메오트 솨나 바야모트

창 5:14 그는 구백십 세를 살고 죽었더라

===================================5:12-14

마할랄렐 - 이는 ‘찬양’, ‘감사’라는 뜻이 있는(잠 27:21) ‘마할랄’과 ‘하나님’을 가리키는 ‘엘’이 결합하여 ‘하나님께 찬양’이란 의미를 지닌다. 앞선 제4장에 나오는 가인의 후손의 족보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이름이 (4: 15-24) 자신의 능력을 뽐내는 인간적 교만에 근거한 이름이었던 반면에 본문에 나오는 이 이름은 셋 후손의 경건한 신앙 상태를 확인할 수 있는 이름이라 하겠다. 

이처럼 ‘하나님’이란 뜻을 갖는 ‘엘’을 사용하여 이름을 짓는 것은 경건한 가문의 하나의 전통이 되었다. 따라서 성경 가운데서는 이러한 이름이 매우 자주 등장한다. 엘리야(여호와는 하나님이시다 왕상 17:1), 엘리에셀(나의 도움이 되시는 하나님 창 15:2), 엘리아삽(하나님이 더하셨다 민 1:14), 사무엘(하나님이 들으심 삼상 1:5), 다니엘(하나님의 재판관 단 1:1) 성경 가운데 이러한 이름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다.

15절 바예히 마할랄렐 하메쉬 솨님 베쉬쉼 솨나 바욜레드 에트 야레드

창 5:15 마할랄렐은 육십오 세에 야렛을 낳았고

16절 바예히 마할랄렐 아하레 홀리도 에트 예레드 쉘로쉼 솨나 우쉐모네 메오트 솨나 바욜레드 바님 우바노트

창 5:16 야렛을 낳은 후 팔백삼십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17절 바이헤이우 콜 예메 마할랄렐 하메쉬 베티쉐임 솨나 우쉐모네 메오트 솨나 바야모트

창 5:17 그는 팔백구십오 세를 살고 죽었더라

===================================5:15-17

야렛 - ‘내려가다’(44:26 ; 삼상 10:8) 란 뜻이 있는 ‘야라드’에서 유래한 단어로서 ‘강하’(Gesenius) ‘낮은 땅’ 혹은 ‘밑으로 행진함’등의 의미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 이름은 당시에 진행되었던 사람들의 거주지 이동을 반영하는 것이라 생각할 수도 있다. 인류 역사 초기 사람들 가운데는 유목 생활을 하는 자들이 많았을 것이며 이들은 보다 좋은 목초지를 찾아 자주 이동하였을 것이다. 야렛은 구속사 관점에서 재림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인물이다. 에녹은 아버지인 야렛으로부터 주님이 재림하실 것에 대해서 신앙교육을 받았다. 

유 1:14 아담의 칠대 손 에녹이 이 사람들에 대하여도 예언하여 이르되 보라 주께서 그 수만의 거룩한 자와 함께 임하셨나니

아담의 칠대 손 에녹이 예언하였는데 수만의 거룩한 자와 함께 임하셨다고 했다. 주님의 재림을 말한다. 에녹은 아버지로부터 주님의 재림을 기대하면서 살았다. 이렇게 살다가 죽음을 보지 않고 하늘로 올라갔다. 우리도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면서 살아야 한다.

18절 바예히 예레드 쉐타임 베쉬쉼 솨나 우메아트 솨나 바욜레드 에트 하노크

창 5:18 야렛은 백육십이 세에 에녹을 낳았고

19절 바예히 예레드 아하레 홀리도 에트 하노크 쉐모네 메오트 솨나 바욜레드 바님 우바노트

창 5:19 에녹을 낳은 후 팔백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20절 바이헤이우 콜 예메 예레드 쉐타임 베쉬쉼 솨나 우테샤 메오트 솨나 바야모트

창 5:20 그는 구백육십이 세를 살고 죽었더라

===================================5:18-20

에녹 - ‘에녹’ 이란 이름은 ‘감화시키다’, ‘가르치다’(22:6)란 뜻이 있는 ‘하나크’에서 유래하여 ‘전수자’ 혹은 ‘선생’이란 의미가 있다. 그는 신실한 신앙의 소유자로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모범적 삶을 살았다 (21-24절). 아마 그의 이름은 그가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가르치고 스스로의 생활 가운데서 하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여 사람들에게 깊은 감명을 주었음을 반영하는 듯하다.

한편 히브리어로 볼 때 성경 가운데는 본절에 나오는 야렛의 아들 에녹 외에도 3명의 에녹이 더 있다. 가인의 아들 ‘에녹’ (4:17)과 르우벤의 장자 ‘하녹’(46: 9), 미디안의 아들 ‘하녹’(25:4) 이 그들이다. 그러나 본절에 나오는 에녹 외에는 별로 관심을 기울일 만한 인물은 아니다.

에녹을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에 대해서는 “…… 하고 죽었더라”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들의 날수를 계산하는 것은 저들의 수명이 다하여 끝났다는 것을 암시한다. 또 계속해서 죽었더라고 반복되어 있는 것은, 죽음이란 만인에게 예외 없이 주어진 것임을 보이기 위함이다. 특히 우리가 우리 자신의 수양을 위하며 타인의 죽음을 관찰하고 스스로 단련하는 것이 좋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함이기도 하다. 건장한 자들도 죽었다. 훌륭하고 부유한 자들도 죽었다. 현명하고 지각 있는 사람들도 죽고 말았다. 선한 사람들이요 매우 유익한 사람들이라 해도 역시 죽고 마는 것이다.

특히 주목할 것은 이들 모두가 매우 장수했다는 사실이다. 그중 어느 누구도 거의 800년의 주기(週期)를 보지 아니하고 죽은 자 없으며, 어떤 사람들은 그보다 더 오래 살았다. 불멸하는 영혼으로서는 대단히 오랜 세월 동안 진흙 집에 유폐되었던 것이다. 흔히 그렇듯 이 생이 그들에게 있어서 하나의 짐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랬다면 그들은 염증을 일으키고 말았을 것이며, 복음 속에 밝히 나타나 있듯이 저 생이 그렇게 분명히 보이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랬더라면 조급하고 안달이 나서 저 생으로 빨리 가고자 했을 것이다. 경건하고 믿음 깊은 조상에게 있어서, 장수는 하나의 축복이었으며 그들을 복되게 했던 것이다.



이 세상의 첫 시대에 살았던 자들의 장수에 대해서는 어떤 자연적 원인이 있었을 것이다. 후세의 상황에 비해 당시의 땅은 보다 더 풍성하게 열매 맺었고 그 소산은 보다 더 건강에 좋았고 공기도 보다 더 위생적이었으며 천체의 감응력도 홍수 전에는 보다 더 후박했을 것이라는 것은 있음 직한 일이다. 비록 인간이 낙원에서 쫓겨났으나, 땅 그 자체는 황폐화된 지금과 비교하면 그때는 낙원과 같은 동산이었을 것이다. 어떤 이는 피조물에 대한 그들의 많은 지식과 그 피조물을 음식과 약품으로 이용할 수 있는 지식, 그리고 그들 자신의 절제와 극기심이 장수에 크게 기여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많은 사람들이 무절제하여(눅 17:27) 오늘날 흔히 무절제한 자들처럼 단명했으나 그들은 그렇지 않았다.

그것은 주로 하나님의 권능과 섭리로 말미암은 것임에 틀림없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지상에 사람을 보다 더 신속히 채우시고 하나님과 신앙에 대한 지식을 보다 더 효과적으로 보존할 수 있게 하기 위해 그들의 수명을 늘리신 것이다. 그때는 성문화 된 글이 없어서 전승이 지식을 전달하는 수단이었기 때문이다. 노아를 제외하면 여기에 있는 다른 족장들은 모두 아담이 죽기 전에 출생했다.

그러므로 그들은 아담에게서 창조와 낙원, 타락과 약속, 그리고 경건한 예배와 신앙생활에 관한 하나님의 계율들을 충분하고도 만족스럽게 이어받았을 것이다. 어떤 실수가 있을 때에는 그것을 교정하기 위해 아담이 살아 있는 동안에는 그를 의지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을 것이며 아담이 죽은 후에는 므두셀라와 그 이외에 그와 교제하던 사람들을 의지했을 것이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돌보심으로 하나님의 교회 안에 그의 뜻에 관한 지식과 그를 예배하는 순수성이 보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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