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데스다 원문 성경강해

[요한복음 14장 헬라어 강해] 보혜사 성령이 오면 주님의 계명을 준수(요 14:21-26)

성령의 능력 2021. 4. 11.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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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요한복음 14장 헬라어 강해 중에서 보혜사 성령이 오면 주님의 계명을 준수한다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주님이 주시는 계명을 지키라고 했습니다. 이 계명을 지키는 사람이 주님을 사랑하는 자라고 했습니다. 우리도 구원받았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주신 계명을 지키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주님이 원하시는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주님은 말씀합니다. 사람이 주님을 사랑하면 주님의 말을 지킨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 사람을 사랑하신다고 했습니다. 성령이 오시면 주님이 지키라고 하신 주님의 계명을 지키게 됩니다. 성령 하나님이 주님의 말씀대로 살아갈 수 있도록 길을 인도하시기 때문입니다. 구원은 내 안에도 성령은 살아계십니다. 오늘도 성령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데로 살아가시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보혜사 성령이 오면 주님의 계명을 준수(요 14:21-26)

 

21절 호 에콘 타스 엔톨라스 무 카이 테론 아우타스 에케이노스 에스틴 호 아가폰 메 호 데 아가폰 메 아가페데세타이 휘포 투 파트로스 무 카이 에고 아가페소 아우톤 카이 엠파니소 아우토 엠아우톤

요 14:21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14:21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 "나의 계." 이것은, 예수님께서 이미 말씀하신(13:34) "새 계명"을 가리키는데, 신자들이 서로 사랑할 계명이다. 형제를 사랑한다 함은 무엇으로 성립되는가? 그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이 내포한 신약 윤리(예수의 계명)에 순종하는 생활이다. 이 모든 윤리는 사랑을 목적한 것이다. 우리가 명심할 것은, 신약 윤리가 모세의 십계명을 위반하는 것이 아니고 도리어 그 완성이라는 사실이다.

사도 바울도 이런 사고방식으로 관설하였다(13:8-10). 그런데, 기독자가 계명을 실행함에 있어서 구약 시대 성도보다 더욱 사랑의 동기를 가지고 관철하게 된다. 그 이유는, 신약 시대의 성도는 그리스도의 속죄를 그 성취 형태에서 누리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하여 죽어 주신 그 큰 사랑을 받은 것, 언제나 그의 윤리 생활의 동기를 이룬다. 요일 4:19에 말하기를,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라고 하였다. 그리스도의 계명은, 신자들로 하여금 무슨 일을 행할 때든지 사랑의 동기로 행하여 모든 의()를 이루라는 것이다.

그들이 사랑의 동기를 가짐에 있어서 구약 성도들보다 명확하고 철저하고 일관성을 가지게 되어야 한다(22:37-40).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이 말씀은, 그리스도께서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나타나실 것을 가리킨다. 그 나타나심은, 우리의 육신에 나타나심보다 더욱 근거 깊이 우리의 심령에 나타나심이다.

22절 레게이 아우토 이우다스 우크 호 미스카리오테스 퀴리에 티 레고넨 호티 헤민 멜레이스 엠파니제인 세아우톤 카이 우키 토 코스모

요 14:22 가룟인 아닌 유다가 이르되 주여 어찌하여 자기를 우리에게는 나타내시고 세상에는 아니하려 하시나이까

====14:22

가룟인 아닌 유다가 가로되 주여 어찌하여 자기를 우리에게 나타내시고 세상에게는 아니하려 하시니까 - 여기 "유다"는 야고보의 아들 유다이다(눅 6:16). 그의 물어본 말은 세상 영광을 생각한 것이다. , 예수님이 자기를 제자들에게 나타내시리라(21)고 하신 말씀을, 유다는 이름 낸다(명성을 떨친다)는 뜻으로 오해하였다. 그러므로 그는 묻기를, "왜 널리 세상에는 이름을 나타내시지 않으려 하십니까?"라고 하였다.

원문대로 다시 번역하면 ‘당신은 우리에게 당신 자신을 나타내실 작정이면서’가 된다. ‘~ 하려 하시나이까’로 번역된 ‘멜레이스’는 ‘멜로’의 2인칭 단수 현재이며 여기에서처럼 현재 부정사가 뒤따를 때에는 마음먹은 행동을 표시하여 ‘~할 작정이다’ ‘~하기로 계획하다’ 등의 의미들을 나타낸다. 우리는 예수께서 자신을 계시하시려는 것이 그분의 의중에 담긴 생각이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유다는 21절의 예수께서 사용하신 ‘나타내리라’란 단어의 의미를 오해한 것 같다. ‘세상에게는 아니하려’라는 말속에 이러한 사실이 잘 드러난다. 그는 이 단어를 사람이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메시아의 현현(顯現)으로 받아들였던 것이다.

그는 21 절에서 예수께서 말씀하신 것으로 여긴 선택된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제한된 그리스도의 현현에 대해서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 이유는 제한적인 현현이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정치적 의미에서 메시아적인 사역 및 그 메시아가 누려야 할 영광과 일치하지 않는 것으로 여긴 때문이었다.

그는 예수의 거듭되는 수난 예고와 자신이 이 땅을 떠나고 성령이 오실 것을 말씀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리스도의 현현을 정치적 메시아로 이 땅에 자신을 드러내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었던 듯하다. 이러한 사실은 아무리 주님과 오래 동행하였던 사람이라도 진리의 영이 임재하지 않으시면 영적인 일들에 대해서는 무지한 상태일 수밖에 없음을 거듭 확인시켜 준다.

23절 아페크리데 호 이에수스 카이 에이펜 아우토 에안 티스 아가파 메 톤 로곤 무 테레세이 카이 호 파테르 무 아가페세이 아우톤 카이 프로스 아우톤 엘류소메다 카이 모넨 파르 아우토 포이에소멘

요 14:2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 하리라

=====14:23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저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저에게 와서 거처를 저와 함께 하리라 - 주님을 사랑하는 사랑이 그의 말씀을 지킴보다 앞선다. 사랑 없이 계명을 지킬 수 없으며, 지킨다 해도 생명 있는 것은 아니다.

여기 성부(聖父)와 예수님이 함께 신자에게 오셔서 거하신다고 하였으니, 그것은 성령으로 말미암은 내주(內住)를 가리킨다. 성령은, 아버지의 영이신 동시에 아들의 영이시다(고전 6:19; 고후 6:16; 3:17; 살전 4:8). 이와 같은 연합은 내세에 이르러서 더욱 완전히 이룬다(3:20, 21:3). 현세에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오셔서 함께 거하시며, 내세에는 우리가 가서 그와 함께 거한다(Godet).

24절 호 메 아가폰 메 투스 로구스 무 우 테레이 카이 호 로고스 혼 아쿠에테 우크 에스틴 에모스 알라 투 펨프산토스 메 파트로스

요 14:24 나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내 말을 지키지 아니하나니 너희가 듣는 말은 내 말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의 말씀이니라

======14:24

나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내 말을 지키지 아니하나니 너희의 듣는 말은 내 말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의 말씀이니라 - 이 구절은, 사람이 예수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함이 얼마나 중대한 잘못임을 지적한다. 그것은 하나님 아버지의 말씀을 거역하는 죄악이다. 그 이유는, 그의 말씀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이다.

예수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 더 나아가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의 특징이 잘 나타나고 있다. 그들은 예수께서 주신 계명들을 지키지 않는다. ‘지키지 아니하나니’로 번역된 ‘우테레이’는 현재 시제로 그들이 계속해서 예수의 말씀들을 거부하고 업신여길 것임을 암시한다.


예수께서는 본절의 말씀을 통해 두 가지 사실을 강조하셨다. 첫째는 아버지의 말과 아들의 말이 하나라는 것이다. 이는 곧 예수의 말씀이 지닌 절대적인 권위에 대한 선언이다. 예수의 말은 유대인들이 알고 있는 어떤 선지자들의 말과도 구별된다. 선지자들은 일개 인간으로서 단지 하나님의 대변자적인 위치에 있었으나 예수님은 하나님과 동일 본질이시므로 계시의 전달자가 아니라 주체이신 것이다. 

그러므로 그분을 본 자는 곧 절대자이신 하나님을 본 것이며 그분의 말씀을 들은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것이다. 예수 이전에 하나님께서 보내 신 사람들은 모두가 종이요 일꾼이었으나 예수는 바로 하나님 자신이시다 (9절 ; 요 10 :30). 둘째는 바리새인 등 유대인의 지도자들에 대한 경고이다. 그들은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스스로 생각하고 있었을 것이나 예수께서는 아니라고 잘라 말씀하신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그들이 만일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예수를 거부하지도 그 말씀들을 외면하지도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예수 앞에 무릎 꿇지 않는 사람 예수를 가리켜 주라 부르지 않는 이들을 하나님은 기뻐하지도 인정하지도 않으신다 (빌 2:9-11). 사람이 예수를 어떻게 받아들이며 대하는가는 곧 하나님에 대한 사랑의 표출이다.

25절 타우타 렐랄레카 휘민 파르 휘민 메논

요 14:25 내가 아직 너희와 함께 있어서 이 말을 너희에게 하였거니와

======14:25

내가 아직 너희와 함께 있어서 이 말을 너희에게 하였거니와 - 이것은, 그가 이때까지 가르치신 말씀을 염두에 두고 하신 말씀이다. 그가 이 말씀을 하신 목적이, 다음 (26)에 나와 있다. , 그의 별세 후에 보내실 성령님을 통하여하실 말씀은 더욱 자세하고 많다는 것을 말씀하시려는 것이다.

26절 호 데 파라클레토스 토 프뉴마 토 하기온 호 펨프세이 호 파테르 엔 토 오노마티 무 에케이노스 휘마스 디닥세이 판타 카이 휘포므네세이 휘마스 판타 하 에이폰 휘민

요 14:26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14:26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 여기"너희"란 말은 사도들만 가리킨다. 그 이유는, 그들이 예수님에게서 직접들은 말씀을 기억하도록 하여 주시겠다고 하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말씀을 직접 들은 자들은 사도들이다. 성령의 일은, 예수님의 교훈을 되살려 해설하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예수님의 전날 교훈을 사도들의 기억에 되살려 깨닫게 하시는 운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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