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하박국 3장 히브리어 강해 중에서 하박국 선지자의 신앙고백이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포옹이라는 이름을 가진 선지자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끌어안는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고 있는 인물입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죄를 짓고 있는 악인들을 심판하지 않는 하나님이 이상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바벨론을 통해서 유다 백성을 심판하신다고 했습니다. 그것 때문에 하박국 선지자는 놀랐습니다. 어떻게 악인보다 더 악인인 바벨론을 들어서 심판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바벨론을 사용하고 바벨론도 심판받게 될 것이라는 것을 하박국 선지자에게 말씀하시고 하박국 선지자가 수긍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하박국은 여호와의 이름으로 기뻐할 수 있다는 신앙고백을 하게 됩니다. 이 세상의 육체적인 기쁨과 즐거움으로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구원받은 것으로 기뻐한다는 것을 고백합니다.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기뻐하고 즐거워해야 하겠습니다. 오직 주님만이 나의 구원자이며 주님의 이름을 높여야 하겠습니다. 이 시간 세상적인 것으로 기뻐할 것이 아니라 구원받은 것으로 기뻐하는 자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박국 선지자의 신앙고백(합 3:16-19)
16절 솨마에티 바티르가즈 비트니 레콜 찰랄루 시파타이 야보 라카브 바아차마이 베타흐타이 에르가즈 아쎄르 아누아흐 레욤 차라 라알로트 레암 예구데누
합 3:16 내가 들었으므로 내 창자가 흔들렸고 그 목소리로 말미암아 내 입술이 떨렸도다 무리가 우리를 치러 올라오는 환난 날을 내가 기다리므로 썩이는 것이 내 뼈에 들어왔으며 내 몸은 내 처소에서 떨리는도다
=========3:16
내가 들었으므로...내 몸은 내 처소에서 떨리는도다 - 본절은 하박국이 몹시 두려워 떠는 모습을 묘사한다. 이는 하박국이 갈대아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심판에 앞서 닥치게 될 환난이 얼마나 엄청난 것인지를 체험적으로 알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홀로 이스라엘 백성을 압제와 고통으로부터 효과적으로 구원하실 수 있다는 사실을 함축한다.
더욱이 하박국은 '무리가 치러 올라오는' 모습을 목도하면서 큰 고통이 되었을 것이 분명하다(1:5). 여기서 주목되는 사실은 하박국 선지자가 극도의 아픔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견디며 기다리는 인내심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18,19절; 1:12; 2:2-4). 이는 그러한 일들을 정하신 하나님을 위해 조용히 참고 관망하는 믿음의 위대성을 근거한다.
이 예언자는 교회의 원수가 편만할 것과 교회의 환난이 길게 계속될 것을 예견했다. 그래서 그 예견이 그를 떨리게 했다(16절). 그는 2절에서 했던 말을 계속한다. "내가 주께 대한 소문을 듣고 놀랐나이다." 내가, 애통의 시대가 교회에 임하고 있다는 소문을 들었을 때, 창자가 흔들렸고 그 목소리로 인하여 내 입술이 떨렸나이다. 그 소식은 나로 하여금 발작하게까지 하는 인상을 주었나이다. 심장이 꺼지려 했기에 피가 심장으로 되돌아 갔고, 사지는 정신을 잃게 되었나이다. 그래서 "그의 입술은 떨렸다." 아니, 그는 너무 약하고, 스스로를 부추길 힘이 없어서, 마치 "뼈에 썩는 것이 들어온" 것 같았다. 그의 안에 아무 힘도 남아 있지 않았고, 설 수도, 갈 수도 없었다.
그는 "그의 처소에서 떨렸으니," 그의 전체가 떨렸고, 그의 내심이 떨렸다. 그는 그의 떨림에 굴복되어 우리의 구세주가 그러셨듯이, "고민했다." 그의 "육체가 주를 두려워하여 떨었고, 그는 주의 판단을 두려워했다" (시 119:120). 그는 교회의 재난에 대한 애틋한 염려로 마음을 졸이며 교회가 마침내 파멸로 끝날까 하고 두려워 떨며, "이스라엘의 이름이 멸절될까" 하여 걱정했다. 그는 그렇게 하는 것이 자기에 대한 멸시라고 생각지 않았고, 그의 용기에 대한 비방거리로도 생각지 않았다. 오히려 자기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떠는" 자들 중에 하나임을 공개했고, 그들에게 호의를 보일 것임을 발표한 것이다. "내가 환난날에 안식하려고, 스스로 떨었도다" (한글 개역과 다름).
환난 날이 다가옴을 알아차릴 때, 우리는 그에 따라 준비하고 무엇인가를 비축하여, 그 도움으로 환난 날에 안식할 수 있도록 조처해야 한다. 그리고 환난의 날에 가장 확실히 안식할 수 있는 길은, 하나님의 말씀과 그 말씀의 경고에 접하여 속으로 떠는 것이다. "눈물로 씨를 뿌리는" 자를 위해 기쁨으로 저장하는 분은 자기 앞에서 떠는 자들을 위해 안식을 저장했다. "은혜를 통한 선한 희망" 은 "거룩한 두려움" 속에서 발견된다. "두려움으로 마음이 움직여서," 다가오는 대홍수에 대한 경고를 듣고 떨었던 노아는 그 환난의 날에 안식처를 위한 방주를 예비했다.
예언자는 그가 떨림 속에서 한 말을 우리에게 전하고 있다. 그의 두려움은, "그가 백성에게 올라오며," "갈대아인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올라오며," "갈대아인이 그들을 침노할 것이며," 그들을 포위하고, 엄습할 것이라는 점이었다. 아니(난외에 있듯이), "갈대아인이 군대를 몰고 그들을 쳐서 파할" 것이라는 점이다. 그는 "우리가 모두 망했다" 고 외쳤다. 유대인의 전 국토가 빼앗겼고 사라졌다. 사태가 나쁘게 보이면, 우리는 너무나 쉽게 그것을 과대평가하며, 그것을 최악의 사태로 몰아가기가 쉽다는 점을 명심하자.
17절 키 테에나 로 티프라 베에인 예불 바게파님 키헤쉬 마아세 자이트 우쉐데모트 로 아사 오켈 가자르 미미켈라 촌 베에인 바카르 보르파팀
합 3:17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3:17
본절은 앞에서 암시된 하박국의 위대한 신앙이 시적으로 잘 표현되어 있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 이런 표현은 이스라엘의 농경 생활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으로 하박국은 생존권에 관한 전반적인 문제를 열거한다. 이스라엘에게 황폐한 경제 현실에 직면한 모습을 묘사하여 하박국이 가지고 있는 신앙의 숭고함과 가치를 묘사하고자 하였다.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한다고 했는데 미완료 시제를 사용했다. 이것은 계속해서 열매가 없이 무성하지 못하는 것을 말한다.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는데 아인이라는 부정 부사를 사용했다. 이것은 현재 열매가 없음을 말한다.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다고 했는데 카하쉬라는 단어를 사용했는데 피엘 강조능동을 사용했다. 이것은 감람나무 소출이 전혀 생기지 않았다는 의미다. 육적인 것에 대한 소망이 없어도 하박국 선지는 구원받은 것으로 기뻐하겠다고 고백한다.
그는 피조물에게서 오는 온갖 즐거움의 파멸을 생각한다. 이생의 환락뿐만 아니라 생명을 부지하는 데 필요한 것이 주는 모든 안락과 기쁨이 사라지리라고 생각한다(17절). 기근은 전쟁의 의례적 결과의 하나이며, 잠잠히 앉아 묵묵히 있는 자들은 대개 그것이 제일 큰 결과라고 생각한다. 이 예언자와 그의 경건한 친구들도, 갈대아 군대가 임하면, 온갖 소유를 늑탈당하고 빼앗기리라.
혹은 그는 자기가 광풍과 불순한 기후, 또는 하나님의 직접적인 다른 어떤 손길에 의해서 모든 것을 빼앗기리라고 생각한다.
그는 과일나무가 시들고 열매를 맺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무화과나무" (이는 그들의 양식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던 것이다)는 "무성치" 못하며, 마실 것을 줌으로써 그들을 기쁘게 해 주었던 "포도나무에도 열매가 없을 것이다." 그는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음"을 본다. 그 기름은 버터와 같은 역할을 했다. "감람나무의 소출은 거짓을 말하리라" (난외를 읽으면 그렇다). 그들이 그것에서 기대했던 바가 좌절되어 실망하게 될 것이라는 뜻이다.
그는 밀이 소산을 내지 못하리라고 생각한다. "밭에 식물이 없으리라." 그리고 "왕 자신도 밭의 소산으로 살기" 때문에, 만일 그 소산이 감소하면 모든 사람들이 궁핍을 감지할 것이다.
밭은 산출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병이 나서, 혹은 원수가 멸절시키고 가져갔기 때문에 산출하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양식이 핍절되고 가축이 멸절되리라고 생각한다.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도다." 우리가 스스로 만든 위로감에 완전히 빠져 즐기고 있을 때, 언젠가 그것들 모두를 빼앗길 때가 올 것을 생각해야 하며, 따라서 그것들을 선용하되, 남용하지 말아야 한다는 점을 명심하자(고전 7:29, 30).
18절 바아니 바아도나이 에엘로자 아질라 베로헤 이쉐이
합 3:18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3:18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 앞절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하박국이 소유한 신앙의 진수를 풍성하게 나타낸다. '즐거워하며'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에엘로자'와 '기뻐하리로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아길라'은 시편에서 자주 대구로 사용되어 신뢰와 소망하는 대상에 대해 확신을 나타내는 데에 사용되곤 하였다(시 13:5; 16:8-10; 21:1,6,7; 31:6,7; 32:10,11).
하박국이 생존권이 박탈될 정도의 현실적인 위기에 빠져서라도 하나님을 향한 확고한 신앙을 나타낼 수 있었던 것은 이미 계시된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한 것이었음이 분명하다. 즐거워한다고 했는데 미완료 시제를 사용했다. 기뻐하는 것도 미완료 시제를 사용하여 하박국은 육적인 소망이 끊어져도 영적인 구원자이신 여호와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계속해서 기뻐하고 즐거워할 것을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하나님을 즐거워하고 찬양하기로 결심한다. 모든 것이 사라져도 그의 하나님은 사라지지 않는다(18절). "그러나 내가 여호와를 즐거워하리라. 나는 그로 하여금 여호와로 인하여 즐겁게 하리라."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를 파괴하라." 그리하여 육적인 마음의 온갖 열락이 정지되게 하라(호 2:11, 12). 그러나 배부른 때에도 오직 하나님을 즐거워하던 자들은, 빈손이 되고 망하게 되었을 때에도 "하나님 안에서 모든 것을 즐기며," 모든 피조적 즐거움이 패망한 우울한 무더기 위에 앉아서도 하나님을 찬양하는 노래를 부를 수 있으니, 하나님이 저들의 구원이시기 때문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기본적 이유가 있으니, 그가 우리 구원의 하나님이시고, 우리의 영원한 구원, 우리 영혼의 구원이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아무리 큰 곤경 속에서라도 그분 때문에 즐거워할 수 있다. 그것은 그 같은 곤경들이 우리의 구원의 장애물이 아니라 도움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으로 인한 즐거움에는 특별한 때가 있는 것이 아니다. 아니 우리가 세상에서 큰 손실을 당했을 때가 가장 적시다. 그때에야 우리의 마음은 이 세상 것들에 매여 있지 않다는 것이 잘 드러날 것이다.
이 예언자가 얼마나 하나님을 찬미하고 있는가를 보라. "즉 여호와는 나의 힘이로다." (19절). 저 세상에서 "우리 구원의 하나님" 이 되시는 그분은 이 세상에서 우리의 힘이 되시며, 그리로 우리를 인도해가시며, 가는 길에서 만나는 온갖 역경을 타개하도록 우리를 도우신다. 식량이 떨어진 때에도,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성령이 주시는 은총과 위안이 우리의 빵 결핍을 보충해 줄 것이다.
19절 아도나이 아도나이 헬리 바야셈 라겔라이 카아얄로트 베알 바모타이 야드리케니 라메나체아흐 비네기노타이
합 3:19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로 나의 높은 곳에 다니게 하시리로다 이 노래는 지휘하는 사람을 위하여 내 수금에 맞춘 것이니라
=======3:19
본절은 하나님의 힘이 강조되는 것으로 보아 시편 18편과 밀접한 연관성이 있으며, 내용상으로도 평행을 이룬다. 여기서 보여주는 메시지는 바로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이 환경에 개의치 않고 하나님을 섬기며 그를 기뻐하는 것이라는 점이다.
이 노래는 영장을 위하여 내 수금에 맞춘 것이니라 - 본절은 시편적인 용어로 결론 부분에 나오는 표현으로 '영장'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메나체아흐'는 성전 예배에서 음악을 담당하는 레위인과 관련되어 사용되었다(대상 15:21; 23:5). 이러한 전통은 이스라엘의 성전에서 오랫동안 전해진 것으로 성령에 감동된 왕도 성전에서 수금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곤 했다(사 38:20). 특별히 '수금'이란 용어는 하박국의 시가 음악에 맞추어 공적으로 불려지던 것임을 잘 보여준다(G.A.Smith).
우리는 신령한 복지와 사업을 위해서 강건케 될 것이다. "여호와는 나의 힘, 내 마음의 힘이시다." 신령한 경기를 빨리 달리게 되리라. "그는 나의 발을 사슴 발 같게 하신다. 나는 용기 충천하여 그의 명령을 열심히 수행하며, 모든 곤경을 이길 것이다."
신령한 사업에 성공을 거두리라. "그가 나로 높은 곳에 다니게 하시리라." 즉 내가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리니, "적을 쳐부수리라" (신 32:13, 29).
따라서 공포와 전율로 기도를 시작하던 그 예언자는 기도를 통해서 마음에 평안을 얻었다. 한나도 기도를 마쳤을 때, "집으로 돌아가, 음식을 먹었고, 그의 안색이 다시는 슬퍼지지 아니했다." 또한 이 같은 체험을 한 예언자는 그 경험을 글로 써서, 교회, 특히 포로기의 교회를 위해서 "악장" (성가대장)에게 넘겨주었다. 포도기 중에는 수금이 버드나무 위에 걸려 있었으나, 그 모든 권리가 회복되리라는 희망을 가지고-모든 사람들이 있고 있었지만-예언자는 "시기오놋" (1절) 곧 경이로운 곡조에 맞추어, "여러 노래에 따라서," 그리고 "느기놋" (19절) 곧 "현악기"에 맞추어서 이 노래를 불렀다. 환난을 당했을 때 정직히 기도한 자는 아주 평안해지고, 즐거워져서, 시편을 노래할 만큼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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