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데스다 구약성경강해

[창세기 32장 짧은 설교] 세일산을 향해(창 32:9-20)

성령의 능력 2020. 10. 18. 2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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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창세기 32장 짧은 설교 중에서 세일산을 향해라는 설교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제 목 : 세일산을 향해

구 절 : 32:9-20

 

오랜 방랑생활에 지치고 지친 야곱이, 고향을 그리워하게 된 것은 모든 인간에게 주어진 공통적인 정감이 이 야곱에게도 있었음을 우리는 엿볼 수 있습니다. 외숙 또는 장인 라반에게서 20여 년간 이젠 처자도 재물도 가축도 하인들도 많이 거느린 큰 족장으로서의 면면을 갖춘 야곱이, 고향을 못내 그리워했습니다.

 

그러나, 야곱 오직 그의 심중엔 형, 에서에 대한 죄책, 그리고 그에게서 받을지도 모르는 보복으로 인한 두려움에 꽉 차있었습니다. 두려움 이것이 우리 인류가 갖는 종교심의 발로가 아닐까 여겨집니다. 공포심, 자기 자신의 연약한 모습, 그리고 죄를 지었다고 하는 자책감에서 오는 도덕적 양심의 가책, 야곱은 마음속에 한편 여호와 하나님을 찾으면서도 불안의식을 가진채 많은 가축을 에서에게 선물함으로써 이 불안의식을 제거해 보려고 했습니다.

예물, 처자 모두 도강시킨 후에도 야곱은 안심이 안되었습니다. 그는 홀로 광야에서 노숙하며 천사와 더불어 밤새도록 씨름을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이스라엘이란 새로운 이름이 대두될 정도로, 아니 환도뼈가 상하도록(25) 천사와 대결하는 억척스러운 야곱, 그의 이름이 뜻한 대로 끝까지 목적 달성을 하기까지는 쥐고 놓지 않는 끈덕진 모습을 우리는 본받아야겠습니다. "축복하지 않으면 아니 놓겠다는 집요한 노!" 그는 드디어 이스라엘이란 축복의 개명을 받고야 말았습니다.

 

우린 위와 같은 내용의 성서적 뜻한 바 참으로 귀한 신앙적 감동을 받게 됩니다. 까맣게 잊었던 동생 야곱의 과거를 깨끗이 잊고 마중 나오는 에서의 관후한 인품에서도 용서! 용서할 줄 아는 에서의 성품, 십 년, 이십 년씩이나 마음속에 원한을 품고 살고 계시는 분은 혹시 아니 계시는지? 우리는 에서에게서 용서하는 신앙을 배워야겠습니다. 에서가 이끌고 오는 400명의 종들과 그리고 야곱이 보내는 종들 일대, 이대 등으로 분류해서 이 두 형제는 아직도 그 상거가 멀어져 있었습니다.

 

우리가 신약성서에서 보는 탕자의 비유(눅15:12) 부자지간에 있었던 때 화해의 무드는 좀 더 극적이고 격정적인 장면으로 묘사되었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이 돌아옴을 멀리에서 내어다보고 달려갔습니다. 목을 끌어안고 입을 맞추며 좋은 옷을 입히고 가락지를 끼우는 너무나도 자애에 넘치는 아버지의 모습에 감격하고 말았습니다. 구약성서의 야곱과 에서의 경우, 그들의 접근, 화해의 시간이 소요되며, 예물을 앞세우는 것이 번거로운 장애물이었으나 신약성서에서의 탕자의 이야기에서 보는 것과는 참으로 종교적 그 정경은 어느 정도 거리 감각이 있음을 엿볼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린 은혜의 시대에 살고 있음을 감사해야 합니다. 돌이켜 아버지 품에 안길 때 즉시, 아무런 조건 없이 우리 모두 문제가 해결됨을 알아야 합니다.

 

구원, 구속이란 대단원의 막이 바로 내리게 되는 것입니다. 오직 믿고 겸손히 아들이란 칭호를 감당치 못하겠다고 회개하는 마음으로 곧 직선으로 달려가기만 하면 되기 때문입니다. 중국어 성경엔 돌아간다는 말이 반회라 하였습니다. 즉 똑바로 그릇된 길을 가던 그 길(돌이킬 반 돌회)에서 완전히 되돌아서 올바른 길을 찾아 되돌아가는 뜻을 의미합니다. 소위 180도의 전환 (U-Turn)를 의미합니다. 야곱이 하란 광야로 망명, 유리 방랑할 때는 죄를 짓고 즉, 형에서의 분깃(장자의 유업 축복)을 가로챈 후 정처 없이 음랑의 나그네가 되었던 긴긴 불안의 시대였습니다.

 

혹시 우리의 인생의 긴긴 불안의 유랑객 시절은 없었습니까? 그 이유는 어쨌든 간에 무엇엔가 쫓기는 불안의식, 누가복음서의 탕자의 경우는 물질이었습니다. 그의 처참한 파산은 돼재 먹이조차 얻어먹을 수 없었다고 하니 참으로 극단의 파산이었습니다. 그러나 위와 같은 두 이야기의 주인공은 그러한 밑바닥 인생의 지하층에서 한숨만 쉬고 있지를 않고 거기서 벌떡 일어나 고향을 찾아가 아버지께 사죄하리라고 결심한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이것은 인생의 가장 큰 역사적 혁명입니다. 인간이 밑바닥에 깔렸다가 광명한 세계에로 뛰쳐나올 때 보다 더 그 빛은 찬란해집니다. 마치 여러 날 매몰되었다가 구출받은 광부의 고난스러움과 새로운 생명의 구원으로 큰 기쁨을 온 가정에 안고 새로운 삶의 뜻을 비로소 만끽하게 되는 것과 같은 놀라운 변화, 생의 의미를 비로소 값지게 하는 그런 계, 매몰에서 구출로, 도주에서 귀환으로, 반항에서 순종으로, 원망에서 축복으로, 슬픔에서 기쁨으로 바뀌는 삶은 하나님 말씀 즉 끊임없이 돌아올 것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구약성서는 점진적으로 계시를 통해서 우릴 권고하고 있습니다. 신약성서는 시대적 요청에 따라 급진적이요 무조건의 초대(Invitation)를 우리에게 시시각각으로 보내주고 있습니다. 오직 R.S.V에 예, 곧 가겠습니다.라고 응답하십시오.

 

신령한 의미에서 하나님이 예비하신 고향땅으로 우리의 마음과 몸을, 그리고 예물을 가지고 방문합시다. 거긴 하나님의 생명과 사시장춘의 에덴동산으로 죄인도 의인도 귀한 이도 천한 이도 모두 가리지 않고 받아주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품, 곧 우리의 영혼의 안식처 신령적 고향으로 돌이켜 발걸음을 옮기십시오. 소돔과 고모라 같은 세상 길로만 가던 우리들 이젠 유턴합시다 180도의 전환으로 하나님의 신령한 우리 고향을 향해서 돌진해 갑시다.

 

우리 아버지께서도 달려 나와 우리를 처참한 우리의 몰골도 불구하고 감싸 안아주실 내 고향, 아버지 품으로 돌아갑시다. 이것이 신앙의 위대한 극적 복귀, 기적, 축복의 순간일 것입니다. 세일산에도 복귀, 에서와 화해하기 위한 복귀, 귀향 Home comong! 세일산은 그리 높지 않습니다. 해발 1,800m 정도의 야산으로 에돔 땅에 자리 잡고 있는 제일 높은 산 즉, 신령적 의미로는 신앙적 장벽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야곱은 이 장벽 (원수 된 형제지간)을 두려워 광야에서 경야(밤 싸움)을하게 됩니다. 드디어 천사의 힘을 입어 그는 에서와의 숙원을 풀고 눈물로 형제가 서로 용서하는 마음, 용서함 받는 아름다운 신앙 복귀, 에덴에로의 귀향을 상징해주는 이야기입니다. 이 세일산으로 향한 마음이 바로 신앙의 출발입니다. 복 받는 구원의 첫걸음인 것입니다. 리 모두 세일산과 같은 인간적 장벽을 향해 이를 믿음으로 극복하는 용기를 갖고 매진합시다.

 

여호와 동행하심을 믿고 나아갑시다. 우리 주님 십자가 의지하고 세일산 같은 어려운 인생의 죄스런 장벽을 넘고 넘어 주님과 동행합시. 승리할 것을 분명히 믿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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