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에스겔 47장 새벽 예배 설교 중에서 더 깊은 신앙이라는 설교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제목: 더 깊은 신앙
성경: 겔 47:1-5
물과 인간과의 관계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그러기에 현대의 큰 도시는 반드시 강을 끼고 형성되었음을 볼 수 있습니다. 런던의 테임즈강, 파리의 세느강, 뉴욕의 허드슨강, 서울의 한강이 그 좋은 예입니다. 오전에도 말씀을 드렸습니다만 인간의 육체는 거의 80%가 물로 되어 있습니다. 물은 인간의 생명과 직결되기 때문에 오염되고 있는 강들을 다시 살리기 위하여 사람들은 온갖 노력을 다 기울이고 있습니다. 강이 더러워지면 그 물은 생명력을 잃어버리게 되고 인간을 병들어 죽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오늘 성경말씀 중에도 신앙생활을 강물과 연결 지어서 그 역적인 교훈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일찍이 선지자 에스겔은 기원전 590 - 615년경에 바벨론의 포로가 되어 여러 가지 환상과 계시를 받고 예언의 내용을 기록했습니다. 본문 가운데 보면 장차 있을 하나님의 교회를 통하여 전개될 내용과 성도들의 신앙 상태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에스겔에게 성전문에서 되어지는 환상을 보여 주셨는데, 물이 성전의 문지방 밑에서 흘러나오기 시작하면서 그 물이 점점 많아지는 것이었습니다. 처음에 발목에 겨우 찼고, 다음엔 무릎에 올라왔으며,, 세 번째는 허리까지, 마지막에는 헤엄칠 정도로 가득 차게 넘쳤다는 것입니다. 그 후로는 그 물이 흘러서 동서남북의 온 지면을 적시고, 그곳에서 생명이 소생하며 실과가 맺히며 약재료가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이러한 환상의 영적 의미는 무엇을 뜻하는 것입니까?
성전은 오늘의 교회를 말하는 것이며 흘러나오는 물은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으로 풍성한 은혜를 뜻합니다. 하나님의 교회에서는 생명의 강물이 흘러넘쳐야 합니다. 교회는 생명의 말씀으로 죽은 영혼이 죄사함 받고, 살아나고, 그 말씀으로 풍성한 삶을 얻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예수께서 이 땅에 나셔서 하신 일은 말씀과 능력으로 인간을 살리시는 역사였습니다.
요 4:14"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라고 했고, 요 7:38"나를 믿는 자는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승천하신 후 그의 몸 된 교회에서 계속하여 생수의 강물이 흘러나오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오늘의 교회는 생명의 말씀이 흘러내려야 하며 모든 성도는 어떤 신앙의 형태로 발전하여야 하겠습니까? 지금 내가 서있는 신앙의 깊이는 얼마나 깊은가를 점검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점점 더 깊어져야 하겠습니다. 더 깊은 신앙인이 되기 위하여 신앙의 양태를 살펴봅시다.
1. 발목에 잠기는 신앙입니다.
이것은 신앙생활의 초보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직접 혹은 간접으로 교회에 들어와서 신앙생활을 하면서부터 우리는 벌써 생명의 물에 잠기기 시작합니다. 나도 모르게 신앙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고, 또는 "내가 벌써 종교인이 되었구나"하고 그 감각을 느낍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시원하게 느껴지게 됩니다. 말씀을 들을 때 눈물이 나든지 기뻐지든지, 희망을 느끼든지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음이 가벼워지고 염려나 근심이 물러가고 죄 씻음 받았다는 믿음이 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발목의 신앙은 또한 자기 마음대로 뛰어다니다가 땅 위로 올라와서 뛰기도 합니다. 발목의 신앙은 어느 때는 교회 안에서 기쁨도 느끼고 은혜도 맛보지만 때로는 세상에 나가서 "내가 언제 크리스천이었나"라는 듯이 마음대로 세상 재미도 보고 죄도 짓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와 세상을 자기 마음대로 왔다 갔다 하게 됩니다. 우리는 초보적인 발목 신앙에 머물러서는 안 되겠습니다.
2. 무릎에 잠기는 신앙입니다.
발목의 신앙이 수양적이고 취미에 불과한 종교생활이었다면, 두 번째는 경험의 신앙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제까지는 교회에 나와도 하나님의 존재가 희미하고 그의 능력도 경험하지 못한 상태였으나, 얼마를 지나가 보면 인간의 한계 능력을 깨닫게 되고 하나님 앞에서 자복의 무릎을 꿇게 됩니다. 건강의 한계, 사회생활의 한계, 가정문제의 한계, 그리고 사업의 한계를 느끼게 됩니다.
어떤 형태로든지 인간의 무능을 느끼기 시작할 때 인간은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항복의 무릎을 꿇게 될 때는 또한 기도의 무릎도 꿇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무릎의 신앙은 하나님의 위대한 능력을 경험하게 합니다. 일찍이 사도 바울은 배운 학식으로 자기를 과시했던 사람이었고 가문으로 자기를 믿었던 사람이었고, 벼슬로써 자기를 신뢰했던 사람이었고, 돈으로 자기를 키웠던 사람이었으나 다메섹 도상에서 그리스도를 만남으로써 항복의 무릎을 꿇었고 계속해서 기도의 무릎을 꿇었던 것입니다. 이런 사람이야말로 하나님을 정확하게 볼 줄 아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이야말로 하나님의 신비한 능력을 경험하게 된 사람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세상에서는 버티고 하나님 앞에서는 항복의 무릎을 꿇어야 되겠습니다. 우리의 환경 가운데서는 일어서고 하나님 앞에서는 기도의 무릎을 꿇어야 하겠습니다. 시 95:9"그때에 너희 열조가 나를 시험하며 나를 탐지하고 나의 행사를 모았도다" 빌 2:10"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라고 했습니다.
3. 허리에 잠기는 신앙입니다.
이제는 점점 깊어져서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허리에 힘을 주어야 합니다. 이제까지는 자기 개인에게만 국한된 신앙이었다면 허리의 신앙은 대타적인 능력을 얻는 신앙입니다. 허리는 인체에서 가장 힘을 많이 받는 곳입니다. 허리를 다치면 힘을 쓸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짐을 질 수 있는 신앙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시 66:11"하나님께서는 어려운 짐을 우리의 허리에 두셨다"라고 하셨으며, 마 8:34"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쫓을 것이니라"라고 하셨습니다. 신앙이 점점 깊어지면 십자가를 지고 싶은 마음도 생깁니다. 옛날에는 귀찮고 어렵고 힘들던 일도 쉽게 하게 되며, 또 감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성도들이 신앙생활을 할 때 십자가가 없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이런저런 형태의 십자가, 혹은 남이 알든지 모르든지 져야 되는 십자가가 있습니다. 어떤 것은 견디기 힘든 십자가도 있으며, 어떤 것은 예상외로 가벼운 십자가도 있습니다. 또 가정적인 십자가, 사회적인 십자가, 교회적인 십자가와 같은 것도 우리가 감당해야 되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주님을 믿는 것은 편안하고 안일한 일이 아닙니다. 십자가를 지고 싸우며 나가는 것입니다. 아직도 골라서 살아가며 쉬운 것만 택해서 믿고, 편리한 쪽으로 교회생활을 한다고 하면 이는 능력이 없는 신앙입니다. 우리는 깊이 들어가야 합니다. 어떤 십자가도 짊어지고 넉넉히 감당하는 능력을 소유하여야 합니다.
4. 온전히 잠기는 신앙입니다.
강물이 더욱 깊어져서 서있는 것이 아니라 헤엄치게 된 상태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잠기는 신앙의 표현입니다. 이제까지는 힘을 썼지만 이제는 물의 힘을 이용하여야 합니다. 부력의 법칙을 이용해야 합니다. 수영의 기초 연습은 부력을 이용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성도 여러분, 내가 발버둥 치기 전에 먼저 맡기게 되면 뜬다는 법칙을 배워야 합니다. 하나님께 맡기면 안 될 것 같아도 될 수가 있습니다. 예수를 잘 믿으면 장사를 못하며 사업이 안될 것 같아도 더 잘 되는 법입니다.
예수를 열심히 믿으면 인생이 고달플 것 같아도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인생살이가 훨씬 쉬워집니다. 내가 뜨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뛰워주시며 내가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은혜의 부력으로 올려 주시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이 점점 깊어질수록 하나님께 전폭적으로 맡겨두리는 신앙이 되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잠길 정고가 되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으로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오른편을 보아도 은혜요, 왼편을 봐도 은혜로 느껴집니다. 안되어도 하나님의 사랑이요 잘되어도 하나님의 은혜로 복이 됨을 느끼게 됩니다.
강물은 어떤 효과가 있습니까?
1) 소생하는 물이라고 했습니다.
2) 열매를 맺게 하는 물입니다.
3) 약재가 되는 물이라고 했습니다.
이제부터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에 흠뻑 젖어 신앙생활하는 자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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