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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기 4장 강해 성경말씀] 욥의 탄식에 대해서 엘리바스가 책망(욥 4:1-21)

성령의 능력 2023. 6. 19.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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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기 4장에서는 데만 사람 엘리바스가 욥에 대해서 책망한다. 엘리바스는 고난에 대해서 인과응보적인 해석을 하여 욥이 받는 고난은 자기가 행동한 것에 대한 보응이라고 말한다. 의인은 항상 세상 세력으로부터 환란을 당한다.

 

욥의 탄식에 대해서 엘리바스가 책망(욥 4:1-21)

 

엘리바스가 말을 시작함(1-2)

4:1 데만 사람 엘리바스가 대답하여 가로되 누가 네게 말하면 네가 염증이 나겠느냐 날지라도 누가 참고 말하지 아니하겠느냐

욥의 세 친구 중에 엘리바스가 제일 먼저 말하기 시작했다. 누가 네게 말하면 네가 염증(厭症)이 나겠느냐 날지라도 누가 참고 말하지 아니하겠느냐 이 말은 엘리바스 자신이 충고를 해주면 욥이 염증이 난다고 해도 엘리바스 자신은 그 말을 안 해 줄 수 없다는 것이다. 또한 욥의 하나님께 대한 태도나 말이 합당치 않으므로 엘리바스로서는 욥에게 충고하지 않을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엘리바스가 욥을 책망함(3-6)

4:3-5 전에 네가 여러 사람을 교훈하였고 손이 늘어진 자면 강하게 하였고 넘어져 가는 자를 말로 붙들어 주었고 무릎이 약한 자를 강하게 하였거늘 이제 이 일이 네게 임하매 네가 답답하여 하고 이 일이 네게 당하매 네가 놀라는구나

전에 욥이 건강할 때에는 다른 사람들에게 많은 영적 교훈을 해 주었고, 일할 의욕이 없이 손이 늘어진 사람(실의(失意)에 빠져 있는 사람)을 강하게 하고, 넘어져 가는 자를 말로 붙들어 주고,무릎이 약한 자(걸어갈 힘이 없는 자)를 강하게 해 주었으나 자신을 가르치지 않고 만들지 못했으므로, 정작 자신이 환난과 고통을 당하여 답답해하고 놀라며 먹기 전에 탄식이 나며 앓는 소리를 하며 평강이 없고 안온(安穩)도 없고 안식도 없다는 것이다(3:24-26).

육신을 가진 사람은 환난을 당할 때에 욥과 같은 정형(情形)에 처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그 사람이 전에 믿는 일 한 것과 현재의 믿음을 무시하거나 정죄하면 안 된다. 일시적으로 평안을 잃어버리고 어려운 고통 가운데 빠졌다고 해도 그 사람이 전에 잘한 것을 인정하고 기억해 주어야 한다. 사람이 연약한 가운데 빠졌을 때에 그 약점을 이용하여 그 사람을 아주 매장하려고 전에 행했던 모든 것을 무시하는 것은 악한 일이다.

여기서 우리가 배울 것은 욥이 환난 당하기 전 하나님께서 힘과 물질을 주셨을 때에 선한 일, 다른 사람을 도와주는 일, 또 하나님의 구원 운동에 이용당하는 일에 힘썼던 것처럼 우리도 일할 기회가 있을 때에 하나님의 일을 힘써해야 하겠다. 환난을 당하고 보면 전에 하던 일을 계속할 수 없다. 그러므로 선을 행할 수 있을 때 행해야 되고 또 하나님의 일을 수종들 수 있을 때에 수종들어야 한다. 욥이 이제는 그런 일을 할 수 없게 되었다.

4:6 네 의뢰가 경외함에 있지 아니하냐 네 소망이 네 행위를 완전히 함에 있지 아니하냐

욥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의뢰하며 하나님 앞에 온전한 행위를 하려고 한 이것은 하나님을 바로 섬기고 하나님께 바로 보이려는 소망을 가지고 한 것이 아니고 단지 이기적(利己的)인 동기(動機)였다고 엘리바스가 조롱하며 비방하는 말이다. 왜냐하면 욥이 하나님을 바로 섬겼다고 하면 더욱더 잘되어야겠는데 오히려 고통을 받고, 또 고통 당할 때 놀라고 답답해하는 것을 보면 과거에 잘 믿는다고 하던 것이 외식(外飾)이요, 속에 만들어진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즉 욥이 바로 믿던 생활과 바른 진리를 주장하던 것과 하나님을 의뢰하고 경외하던 모든 것이 참 신앙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바로 믿었으면 그렇게 될 리가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엘리바스를 통해 욥이 신앙의 달음박질하던 것을 포기하게 하려는 마귀의 시험이다. 이때에 만일 욥이 엘리바스의 말을 듣고 내가 바로 믿었다고 하면 결과가 왜 이렇게 되었을까?”하고 엘리바스의 말이 옳다고 받아들였으면 마귀에게 지는 것이다. 그리하면 욥이 지금까지 걸어 나온 참 신앙의 길을 다 포기하고 잘못된 길로 나아가게 된다. 오늘날도 마귀는 바로 믿고, 성경대로 살려고 애쓰던 사람이 어려움을 당하면 친척이나 믿음이 적은 사람을 통해서 보이는 결과만 내세워 초보적인 진리로 신앙의 길을 걷지 못하도록 훼방한다.

죄로 인하여 멸망이 온다고 합(7-11)

4:7 생각하여 보라 죄 없이 망한 자가 누구인가 정직한 자의 끊어짐이 어디 있는가

이것은 욥 자신은 왜 이렇게 망하였는지 생각하여 보라는 것이다. 욥이 망한 것을 보면 죄가 있고 정직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엘리바스의 말은 일반적인 진리이다. 그러나 욥의 고난은 죄 때문에 온 것이 아니므로 욥은 거기에 해당되지 않는다.

4:8-9 내가 보건대 악을 밭갈고 독을 뿌리는 자는 그대로 거두나니 다 하나님의 입기운에 멸망하고 그 콧김에 사라지느니라

내가 보건대 엘리바스는 하나님으로부터 온 진리를 말한 것이고 자신의 체험과 지식에서 깨달은 진리를 말한 것이다. 악을 밭같고 독을 뿌리는 자는 그대로 거두나니 현재 욥이 당하는 환난을 볼 때 그것은 욥이 지금까지 악을 행한 결과라는 것이다. 또 그런 자는 하나님의 입기운에 멸망하고 콧김에 사라지고 만다는 것이다. 즉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악을 심으면 악한 열매를 맺고 선을 심으면 선한 열매를 맺는 것은 일반적인 진리이다(마7:17-18). 그러나 욥의 고난은 죄 때문이 아니라 더 좋은 것을 주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시험이다.

4:10-11 사자의 우는소리와 사나운 사자의 목소리가 그치고 젊은 사자의 이가 부러지며 늙은 사자는 움킨 것이 없어 죽고 암사자의 새끼는 흩어지느니라

사자(獅子) 여기서는 악한 사람을 가리킨다. 사자의 우는소리와 사나운 사자의 목소리가 그치고 악한 자가 위엄과 권위 있는 소리를 발한다고 해도 하나님의 심판 앞에서는 그치게 된다는 뜻이다. 즉 욥이 전에 남에게 좋은 말을 많이 해 주었지만 악하여 외식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다는 것이다.

젊은 사자의 이가 부러지며 욥이 강하게 모든 것을 취했으나 하나님의 심판으로 이가 부러진 젊은 사자처럼 무력하게 되었다는 뜻이다. 늙은 사자는 움킨 것이 없어 죽고 능력이 없어졌을 때는 이미 쌓아 두었던 덕()이 없으므로 비참하게 됨을 가리킨다.

암사자의 새끼는 흩어지느니라 욥이 암사자처럼 재물과 자녀와 종과 명예와 권세를 소유했었으나 하나님의 심판으로 다 잃어버리게 되었다는 것이다.

결국 이 말들은 엘리바스가 욥의 신앙을 인정하지 않으며 욥이 고난당하는 것을 볼 때 욥은 악한 죄인이므로 하나님께 심판을 받는다고 혹독(酷毒)하게 비방한 것이다. 엘리바스는 욥이 심한 고난으로 지금 말할 수 없이 답답해하고 마음이 상해하는데, 그것을 위로해 주기는커녕 도리어 죄값으로 환난을 만났으니 죄를 회개하라고 하며 욥의 마음을 상하게 만들고 낙심하게 만드는 것이다.

책망해 줄 것이 있어도 그 사람의 마음이 상해 있을 때는 책망하지 않는 것이 좋다. 죄값으로 하나님의 징계를 받는다고 해도 가서 위로해 주고 싸매 주고 낫도록 도와주고 살려 나가는 것이 목적이어야 한다. 엘리바스와 같이 혹독하게 책망한다고 해서 잘 되는 것이 아니다. 위로해 주며 온유하게 바른말을 전해 주되 그 사람이 회개하는 여부는 하나님께 맡겨야 된다.

엘리바스가 자기가 본 이상(異像)을 말함(12-21)

4:12-16 무슨 말씀이 내게 가만히 임하고 그 가는 소리가 내 귀에 들렸었나니 곧 사람이 깊이 잠들 때쯤 하여 서니라 내가 그 밤의 이상으로 하여 생각이 번거로울 때에 두려움과 떨림이 내게 이르러서 모든 골절이 흔들렸었느니라 그 때에 영이 내 앞으로 지나매 내 몸에 털이 주뼛하였었느니라 그 영이 서는데 그 형상을 분변치는 못하여도 오직 한 형상이 내 눈앞에 있었느니라 그 때 내가 종용한 중에 목소리를 들으니 이르기를

이르기를 엘리바스는 자신이 하나님의 어떤 세미(細微)한 영감(靈感)을 받은 것을 말하였다. 그것은 사실이요 거짓이 아니다. 엘리바스는 밤중에 이상(異像)을 보고 두려워 떨었다. 다니엘도 이상을 볼 때에 몸에 힘이 바지고 두려워하고 떨었다(10:8, 16-17). 사도 요한도 이상을 볼 때에 주의 발 앞에 엎드러졌다(계1:17). 이것은 죄 많은 인간이 거룩하신 하나님의 이상을 볼 때에 그 영광의 눈앞에 자신이 너무 부족한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내 몸에 털이 주뼛하였었느니라 몸이 오싹해졌다는 뜻이다. 엘리바스가 이상을 보았으나 분변(分辨)치 못하였고 그 목소리만 들었다. 그 내용은 다음절들에 기록되었다.

4:17 인생이 어찌 하나님보다 의롭겠느냐 사람이 어찌 그 창조하신 이보다 성결하겠느냐

인생이 하나님보다 의로울 수 없고 창조하신 하나님보다 성결할 수 없다는 것이다. 엘리바스는 욥의 의()와 성결 생활(聖潔生活)을 무시하기 위해서 이 말을 한 것이다. 그러나 욥은 믿음으로 의롭고 성결하였다.

4:18-19 하나님은 그 종이라도 오히려 믿지 아니하시며 그 사자라도 미련하다 하시나니 하물며 흙집에 살며 티끌로 터를 삼고 하루살이에게라도 눌려 죽을 자이겠느냐

사자(使者)”는 천사들을 가리킨다. 하나님은 그 천사라도 믿지 아니하고 사자라도 미련하다고 한 이유는 천사들은 유한(有限)한 피조물(被造物)이요 하나님은 절대 완전하시고 무한(無限)하신 분이시기 때문이다. 천사도 하나님의 지배(허락)를 받지 않으면 아무 일을 해 나갈 수 없다. 천사라도 간섭하지 않고 내버려 두면 하나님의 일이 잘 되지 않기 때문에 천사에게 완전히 내 맡길 수 없다. 영물(靈物)인 천사라도 완전하지 못한데 하물며 흙집에 살고 티끌로 터를 삼으며 하루살이에게라도 눌려 죽을 수밖에 없는 사람이야 오죽하겠느냐는 것이다.

흙집은 사람의 육신을 가리킨다. 육신은 흙으로 만들었다(2:7). 티끌로 터를 삼고 인간은 흙에서 산다는 뜻이다. 인간은 흙에서 나는 것을 먹고살다가 흙으로 돌아간다. 하루살이에게라도 눌려 죽을 자이겠느냐 하루살이와 같이 미약한 벌레 또는 세균에도 침해(侵害)를 당해 죽는 것이 인간이다.

4:20 조석 사이에 멸한 바 되며 영원히 망하되 생각하는 자가 없으리라

조석(朝夕) 사이에 멸한 바 되며 사람의 일평생은 나그네와 행인 같고, 아침의 안개와 같이 짧다는 뜻이다. 영원히 망하되 생각하는 자가 없으리라 인생의 허무함을 가리킨다.

4:21 장막줄을 그들에게서 뽑지 아니하겠느냐 그들이 죽나니 지혜가 없느니라

장막줄은 육체를 가리키는데(고후5:1), 그것을 뽑는다는 것은 육체의 죽음을 가리킨다. 즉 인간의 죽음이 하나님의 주권에 달려 있으며 하나님이 허락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지 무능(無知無能)한 자이다. 엘리바스가 이 같은 모든 말을 한 것은 의롭고 경건하며 악에서 떠나 하나님을 기쁘게 하고 하나님께 인정받은 욥의 신앙을 부인하려는 목적이었다. 일면의 진리를 가지고 다른 면의 진리를 무시하려고 하였다. 이것은 마치 마귀가 성경(91:11-12)을 가지고 예수님을 시험한 것과 같다(마4:5-6). 엘리바스가 영감 받은 것은 진리이나 그것을 잘못 이용한 것이다.

[사사기 2장 설교말씀] 여호수아 이후에 이스라엘 백성 타락(삿 2: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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