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데스다 신약성경강해

[요한복음 5장 설교말씀] “베데스다의 연못에 찾아오신 예수님”(요5:1-9)

성령의 능력 2020. 10. 3.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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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요한복음 5장 설교말씀 중에서 베데스다의 연못에 찾아오신 예수님이라는 말씀에 대하여 알아보겠습니다.

 

베데스다의 연못에 찾아오신 예수님”(요 5:1-9)

 

명제: 베데스다는 성전에 제물을 바치기 위하여 양을 구분하던 장소이다.

목적: 38년 된 병자는 제물의 가치가 없는 자라는 것을 의미한다.

 

예수님께서는 4장에서 왕의 신하를 만나게 됩니다. 신하가 예수님을 만나서 말하는데 자신의 아들이 병이 들어 죽게 생겼다는 것입니다. 이 소리를 들으시고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나를 믿지 아니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신하에게 말씀하시기를 네 아들이 살았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소리를 듣고 왕의 신하는 믿고 자신의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이때에 자신의 종들이 오는 것을 보고 아이가 살았다는 소식을 듣게 되는 것입니다. 그때를 물으니 예수님께서 살았다고 말씀하신 그 시간이었습니다. 그 일을 통하여 왕의 신하와 그 집안에 복음이 들어가서 예수님을 믿게 된 것입니다.

 

이 사건이 있고 난 후에 명절이 되어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습니다. 이 명절이 정확하게 어떤 명절인지는 요한은 밝히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많은 학자들에 의하면 이 명절은 오순절로 말하고 있습니다. 이 날에 예수님께서 올라가셔서 베데스다에 찾아가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베데스다 연못에 찾아가시는 목적은 38년 동안 병들었던 자를 만나기 위해서입니다. 자신의 힘으로는 절대 병을 치유할 수 없는 이런 자들을 주님은 찾아오시는 것입니다. 성경은 현재 무엇을 밝히려고 하는 것입니까? 왕의 신하의 아들이 병들어 죽을 수밖에 없는 자를 말씀으로만 고쳐주셨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직접 38년 된 병자를 찾아오셔서 고쳐주시고 있습니다. 말씀으로만 하셔도 되는 일을 실제 자신이 몸소 보여주시겠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베데스다의 38년 된 병자를 치유하고 있는 주님의 모습을 보면서 무엇을 깨달아야 합니까? 나도 이와 같이 영원히 고칠 수 없는 원죄의 고통 속에 빠져 있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주님의 은혜가 아니면 절대 살아날 수 없는 인생이었다는 것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그것도 자신이 말씀으로만 하면 되는데 몸소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자신의 목숨을 대속 물로 내어주시고 죽으셔서 살려주시겠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제부터 예수님께서 베데스다에 찾아오신 목적이 무엇인지를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깨닫는 시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첫째, 베데스다에 찾아오신 목적을 깨달아야 합니다.

 

요5:1-2 그 후에 유대인의 명절이 되어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니라 예루살렘에 있는 양문 곁에 히브리 말로 베데스다라 하는 못이 있는데 거기 행각 다섯이 있고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오신 날은 특별한 날입니다. 명절이 되어 예루살렘으로 올라오신 것입니다. 이 명절은 오순절 날이라고 했습니다. 이 날은 성령님이 강림하신 날입니다. 성령의 충만한 은혜의 역사가 일어나는 날입니다. 그렇다면 베데스다에 성령님의 놀라운 역사들이 일어날 것에 관하여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베데스다’ בית חסד(베이트(1004) 헤세드(2617) 자비의 집이라는 뜻입니다. 베데스다가 있는 곳은 양문 곁에 있었습니다. 이곳은 성전에 제사를 드리기 위하여 양의 제물을 구분했던 장소입니다. 이곳에서 제물을 구별하여 부정한 것과 거룩한 것을 정했습니다. 그리고 부정한 것은 성전에 들어가지 못하고 거룩한 것만 성전에 들어가 하나님 앞에 제물로 바쳐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곳이 바로 하나님의 은혜가 있던 곳입니다.

 

그런데 이곳에 하나님의 은혜는 사라졌습니다. 많은 병자들만이 득실거리는 부정한 장소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베데스다는 예수님 당시에 성전에서 나팔을 불었으며 레위 인들은 악기를 연주하면서 찬양하는 소리가 들리는 곳이었습니다. 이 소리를 들으면서 베데스다에 모인 병자들은 가슴을 치면서 애통해하는 것입니다. 자신들도 성전에 들어가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리는 삶을 살고 싶은데 부정하기 때문에 성전에는 들어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베데스다 연못에 모인 병자들을 보면서 우리는 무엇을 깨달아야 합니까? 우리들도 하나님의 성전에 들어가기 위하여 간절히 사모하는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원죄의 부정함 때문에 들어가고 싶어도 들어가지 못하는 상황에 있는 자들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절대적인 은혜가 아니면 절대 천국에 들어갈 수가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베데스다의 양문에서 제물을 사고파는 시장이 열렸던 것처럼 현재도 하나님의 성전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부정해지면 안 됩니다. 거룩한 자만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부터 주님을 간절히 사모하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닌 자신의 행위로 성전에 들어가려고 하면 하나님은 반드시 쫓아내 버리시는 것입니다.

 

둘째, 베데스다 연못에 물의 움직임을 통하여 고침 받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요5:3-4 그 안에 많은 병자, 맹인, 다리 저는 사람, 혈기 마른 사람들이 누워 [물의 움직임을 기다리니 이는 천사가 가끔 못에 내려와 물을 움직이게 하는데 움직인 후에 먼저 들어가는 자는 어떤 병에 걸렸든지 낫게 됨이러라]

 

베데스다에 많은 병자가 있었는데 앞을 보지 못하는 자와 다리를 저는 자와 혈기 마른 사람들이 누워 물의 움직임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천사가 가끔 못에 내려와 물을 움직이게 하여 병을 고쳐주는데 먼저 들어가는 자는 어떤 병에 걸렸든지 고침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절대 주권 속에서 하나님이 고쳐주신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베데스다에 모인 병자들을 통하여 영적인 의미를 깨달아야 합니다.

 

‘병자’ ασθενεω(아스데네오 770) 병들다, 무력하다, 유약하다, 라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사람들은 육체적으로 병이 들어 힘이 없고 모든 일에 의지가 없는 사람을 말합니다. 영적으로는 어떤 사람입니까? 천국에 대한 소망도 없이 신앙생활을 하지만 무기력하여 시간만 보내는 사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의지로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교회에 나와도 소망이 없어서 주님을 바라보지 않는 사람입니다. 몸은 교회에 나왔지만 영혼은 지쳐서 모든 것을 포기한 사람이 이와 같이 병든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들도 베데스다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남으로 고침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맹인’ τυφλος(튀플로스 5185) 눈 먼 자, 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τυφοω(튀포오 5187) 교만하다, 자만하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그럼 맹인이라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고 있습니까? 자신이 영적으로 교만하여 마음과 영혼의 눈이 먼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하지 못하고 말씀을 들어도 율법적인 행위의 신앙에 머물러 있는 자들이며 성경을 보아도 문자에 갇혀 주님을 발견하지 못하는 자들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이런 자들도 베데스다에서 주님의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고후3:14-16 그러나 그들의 마음이 완고하여 오늘까지도 구약을 읽을 때에 그 수건이 벗겨지지 아니하고 있으니 그 수건은 그리스도 안에서 없어질 것이라 오늘까지 모세의 글을 읽을 때에 수건이 그 마음을 덮었도다 그러나 언제든지 주께로 돌아가면 그 수건이 벗겨지리라

 

영으로나 마음으로 교만한 자들은 마음이 완고하여 구약을 읽을 때에 수건이 벗겨지지 않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하지 못하고 자신의 생각으로 율법에 매여 있는 신앙을 하는 자들이 바로 맹인들입니다. 이 수건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벗겨주실 때에 벗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세의 글을 읽을 때에 율법의 수건이 마음을 덮으니 주님이 발견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베데스다의 주님의 십자가 은혜를 받으면 반드시 수건은 벗겨지고 영적인 눈이 떠지게 되는 것입니다.

 

‘다리 저는 사람’ χωλος(콜로스 5560) 영적으로 절뚝 걸이는, 불구의, 못 걷는 사람, 이라는 뜻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어떤 사람입니까? 영적으로 영원히 불구가 되어 하나님 앞에 나오지 못하는 자들을 의미합니다. 이런 자들은 자신의 힘으로는 절대 구원의 은혜를 받을 수 없는 자들입니다. 이런 자들이 누구입니까? 므비보셋과 같은 사람들입니다. 마길의 집에서 노예의 삶을 살면서도 말하지 못하는 고통의 생활을 했던 사람들이 바로 영적으로는 다리를 저는 사람들입니다. 원죄의 죄악 가운데서 고통을 당해도 자신의 의지로는 절대 빠져나올 수 없는 사람입니다. 이런 자들도 베데스다에서 주님의 은혜를 받아 고침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혈기 마른’ ξηρος(크세로스 3584) 쭈그러들다, 바싹 마르게 하다, 시든, 이라는 뜻입니다. 그럼 혈기 마른 자들은 누구입니까? 영적으로 완전하게 시들어 소생 불가능한 존재들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교회에서도 영적인 은혜를 받지 못하여 마음이 시들어 열심이 없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자들은 현재 혈기가 마른 자들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은혜의 말씀을 주어도 영혼이 메말라 받아들이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영혼이 완전히 쭈그러진 모양으로 볼품이 없는 존재가 되어버린 자들입니다. 이런 자들은 교회에서도 시험에 걸려 넘어진 자들입니다. 이런 자들도 베데스다에서 주님을 만남으로 고침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럼 이런 자들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베데스다 연못이 신비스럽게 움직여지는 때를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은혜의 때를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이 사람들은 병자로서 부정한 자들입니다. 이런 부정한 자들이 거룩하게 되어 성전에 들어갈 수 있는 기회는 이때 외에는 없습니다. 그래서 서로 발 벗고 연못이 움직일 때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물을 움직이게 하는데’ ταρασσω(타랏소 5015) 움직이다, 불쌍히 여기다, 근심하다, 라는 뜻입니다. 천사가 베데스다의 연못을 움직이게 하는 것은 현재 부정한 자들이 모여서 고침 받기를 간절히 사모하는 자들을 불쌍히 여기사 고쳐주려고 하는 것입니다. 병자들의 최고의 가치는 가난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정상적인 사람이 되어 다른 사람들처럼 성전에 들어가 하나님을 만나기를 간절하게 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이것을 아시기 때문에 가끔씩 베데스다의 연못을 움직여 치료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베데스다의 연못을 하나님의 지시에 의하여 천사들이 움직이게 한 사실은 역사적인 사실이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 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물을 움직여 고쳐주시는 것입니다. 그것도 천사들을 이용하여 하나님은 병자들의 병을 고쳐주시고 있는 것입니다. 이곳에 들어가는 자들은 어떠한 병이라도 모두 고침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물은 말씀을 상징하고 있으며 은혜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복음의 말씀 안에 들어오는 자들은 영육이 회복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베데스다의 연못이 움직이고 있다는 것은 무엇을 상징하고 있습니까? 붉은 암송아지의 제사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이 제사를 통하여 정결 잿물을 만들었습니다.

 

민19:9 이에 정결한 자가 암송아지의 재를 거두어 진영 밖 정한 곳에 둘지니 이것은 이스라엘 자손 회중을 위하여 간직하였다가 부정을 씻는 물을 위해 간직할지니 그것은 속죄제니라

 

붉은 암송아지의 재를 거두어 진영 밖 정한 곳에 두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하여 간직하였다가 부정한 자들을 위하여 만드는 정결 잿물에 사용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붉은 암송아지의 재로 만든 정결 잿물은 어떠한 죄인이 온다고 할지라도 한 번에 거룩해지는 놀라운 효과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어떠한 영적인 병자가 베데스다에 있다 할지라도 한 번에 정결하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히9:13-14 염소와 황소의 피와 및 암송아지의 재를 부정한 자에게 뿌려 그 육체를 정결하게 하여 거룩하게 하거든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느냐

 

구약의 붉은 암송아지의 정결 잿물로 부정한 자에게 뿌려 육체를 정결하게 하고 거룩하게 하는데 하물며 예수 그리스도의 피는 얼마나 큰 효과가 있겠느냐는 말씀입니다. 베데스다에 물이 움직여 병자들이 고침을 받는 것에 대한 의미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속죄를 통하여 아무리 큰 죄가 있다 할지라도 한 번에 속죄가 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베데스다에 모인 병자들처럼 큰 죄인이었습니다. 절대 성전에 들어가지 못할 존재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단 번에 속죄 제물이 되어 주셔서 우리는 한 번에 거룩해지는 은혜를 받은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서는 안 됩니다.

 

셋째, 38년 된 병자를 예수님께서 고쳐주신 것에 대하여 깨달아야 합니다.

 

요5:5-9 거기 서른여덟 해 된 병자가 있더라 예수께서 그 누운 것을 보시고 병이 벌써 오래된 줄 아시고 이르시되 네가 낫고자 하느냐 병자가 대답하되 주여 물이 움직일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주는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시니 그 사람이 곧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가니라 이 날은 안식일이니

 

그런데 문제는 38년 된 병자는 아무리 베데스다의 물을 움직여도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다 끝난 후에 들어가면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 사람은 자신의 힘으로는 절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입니다. 옆에서 누군가가 도와주어야 합니다. 그런데 아무도 도와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자신의 병을 고치기에 급급했기 때문입니다. 이때에 예수님께서 찾아오시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끝이라고 생각했을 때에 주님이 나타나시는 것입니다. 그럼 성경에서 38년이라고 기록하고 있는 의미를 숫자적인 의미를 통하여 하나님의 의도를 알아보겠습니다. 38은 30 + 8입니다. 30은 알맞은 순간, 그리스도의 피, 헌신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숫자입니다. 8은 새로운 언약, 거듭남, 새로운 출발, 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숫자입니다.

 

그렇다면 성경이 나타내고자 하는 38년 된 병자의 의도는 무엇일까요? 현재 이 병자는 아무것도 자신의 힘으로는 할 수가 없습니다. 성전에도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도와주는 사람도 없습니다. 평생 병에 걸려 움직이지도 못하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이 사람에게 찾아오셨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생각할 수 있습니다. 38년이 너무나 긴 시간이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간은 주님을 만나기에 가장 적당한 시간이면서 알맞은 시간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사람에게는 항상 기회가 있다고 했습니다. 이 기회가 38년째가 된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자신이 직접 십자가에서 피를 흘려 너의 모든 육체의 고통과 영혼의 고통을 깨끗하게 치료해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십자가 헌신이 없이는 절대 이런 역사가 일어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럼 이렇게 예수님을 만난 38년 된 병자의 삶은 어떻게 변하게 됩니까? 율법의 죽음에서 새 언약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남으로 삶이 변하게 됩니다. 평생 걷지 못하고 움직이지 못했던 인생이 걷게 되는 은혜를 받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영원히 심판을 받아 죽어야 할 인생이 하늘로부터 거듭나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가운데 임하게 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38년 동안 이렇게 해 준 사람은 한 명도 없습니다. 모두가 불쌍하다는 눈으로 보지 않았다면 부정하다고 정죄하는 눈빛으로 바라만 보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이 병자에게 찾아오셔서 모든 죄악의 문제와 육체의 질병의 문제를 한 번에 해결해 주시고 있는 것입니다.

 

그럼 우리는 어떻습니까? 현재 내가 베데스다에서 고침을 받기 위해 앉아있는 38년 된 병자는 아닐까요? 아직도 구원의 은혜도 모르고 교회만 나오는 이런 신앙을 가지고 있지는 않습니까? 내가 원죄를 해결하려고 내 생각대로 내 마음대로 하고 있지만 별 볼일 없이 끝나고 있지는 않습니까? 이때에 주님이 찾아오셔서 하늘로부터 거듭날 수 있는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베데스다의 은혜를 잊어서는 안 됩니다. 오직 주님만이 나의 모든 죄를 속죄해 주셨고 영혼에 평안함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럼 이제 우리가 깨달아야 할 것이 하나 더 있습니다.

38년 된 병자가 고침을 받은 날이 언제입니까? 바로 안식일입니다. 그렇다면 38년 된 병자의 삶에는 안식이라는 것이 없었다는 것을 깨달을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지 못하면 내 인생에도 안식은 없습니다.

 

‘안식일’ שבת(샤바트 7676) 안식일, 안식, 이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שבת(샤바트 7673) 쉬다, 마치다, 없어지다, 제하여 버리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주님은 안식일에 베데스다에 찾아오셔서 지금까지 고통당했던 모든 질병들과 영혼의 죄악들을 단 번에 제하여 버리셨습니다. 그래서 더 이상 죄를 찾아볼 수도 없고 육체의 질병도 발견할 수 없을 정도로 완전하게 치유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영원히 안식을 누리면서 살 수 있도록 쉼을 주셨습니다.

 

막2:27-28 또 이르시되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니 이러므로 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니라

 

안식일은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안식일의 주인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현재 주님 안에서 안식하고 있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베데스다는 은혜의 집입니다. 이런 곳에 은혜받을 만한 사람은 없었습니다. 모두가 병자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이곳에 주님이 찾아오셔서 은혜를 베풀어 주신 것입니다. 현재 우리도 베데스다와 같은 이 장소에 모였습니다. 주님의 은혜가 아니면 절대 구원을 얻지 못하는 자들입니다. 이 날은 바로 안식일입니다. 주일날에 주님을 사모하여 모인 것입니다. 아직도 내가 안식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면 빨리 주님의 은혜의 집에 모여야 합니다. 내 안에 안식일의 주인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성전에는 절대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이 말씀은 구원을 받지 못한 백성들은 절대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 시간 베데스다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남으로 나의 모든 죄악들이 사라지고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는 것을 고백하셔야 합니다. 나의 힘으로는 절대 어떠한 질병도 고칠 수가 없습니다. 영혼의 문제는 더더욱 해결할 수가 없습니다. 나의 문제를 해결하실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율법에 매여 있는 자들은 안식을 누릴 수가 없습니다. 율법의 행위를 주장하여 자신의 뜻대로 하는 자들은 아직도 베데스다에 모여 있는 병든 자들입니다. 그러나 38년 된 병자가 예수님을 만나고 난 후에는 영원한 안식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부터 베데스다의 은혜의 집에 주님과 함께 하여 영원한 안식을 누리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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