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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나서 3장 하나님 말씀] 요나의 니느웨 사역(욘 3:4-10)

성령의 능력 2020. 11. 17. 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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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요나서 3장 하나님 말씀 중에서 요나의 니느웨 사역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요나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했지만 물고기 뱃속에서 회개하고 다시 하나님의 소명을 받고 니느웨로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게 됩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야 할 것을 말씀합니다. 이제 우리도 세상을 향하여 죽어있는 영혼들에게 복음음 선포해야 하겠습니다.

요나의 니느웨 사역(욘 3:4-10)

 

욘3:4 요나가 그 성읍에 들어가서 하루 동안 다니며 외쳐 이르되 사십 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 하였더니 

욘3:5 니느웨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고 금식을 선포하고 높고 낮은 자를 막론하고 굵은 베 옷을 입은 지라 

욘3:6 그 일이 니느웨 왕에게 들리매 왕이 보좌에서 일어나 왕복을 벗고 굵은 베 옷을 입고 재  위에 앉으니라 

욘3:7 왕과 그의 대신들이 조서를 내려 니느웨에 선포하여 이르되 사람이나 짐승이나 소 떼나 양 떼나 아무것도 입에 대니 말지니 곧 먹지도 말 것이요 물도 마시지 말 것이며

 

욘3:8 사람이든지 짐승이든지 다 굵은 베 옷을 입을 것이요 힘써 하나님께 부르짖을 것이며 각기 악한 길과 손으로 행한 강포에서 떠날 것이라 

욘3:9 하나님이 뜻을 돌이키시고 그 진노를 그치사 우리가 멸망하지 않게 하시리라 그렇지 않을 줄을 누가 알겠느냐 한지라 

욘3:10 하나님이 그들이 행한 것 곧 그 악한 길에서 돌이켜 떠난 것을 보시고 하나님이 뜻을 돌이키사 그들에게 내리리라고 말씀하신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니라

 

요나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니느웨에서 사역을 시작한다. 니느웨는 앗수르의 수도다. 삼일 동안 걸어야 니느웨를 다 볼 수 있을 정도로 큰 성읍이다. 하나님은 요나에게 첫 번째 하나님께서 주셨던 사명을 두 번째에도 똑같이 주셨고 환경도 똑같은 상황이 연출되었다. 이제 요나는 니느웨에 도착하게 되었다. 앗수르 백성에게 복음을 전파하기 싫어서 여호와의 얼굴을 피하여 도망쳤지만 다시 원점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한 번의 불순종이 많은 시간을 허비했다. 요나처럼 사명을 받고 회피하다가 시간만 낭비하고 돌아오는 사람들이 있다. 하나님은 계획을 세우면 그대로 실행에 옮기는 분이기 때문에 빨리 순종하고 돌아온다면 아까운 시간을 낭비하지 않게 된다.

 

요나가 성읍에 들어가 하루 동안 니느웨 성을 돌아다니면서 하나님의 계획을 전하고 있다. 들어가서는 חלל(할랄) 수치를 당하다, 구멍을 내다, 꿰뚫다, 더럽히다, 더럽힘을 받다, 라는 뜻이다. 요나가 니느웨 성에 들어가는데 하나님께서 복음을 주셨다.

 

죄인들을 위해 수치를 당하시고 십자가에서 못으로 꿰뚫려 구멍이 나시며 아무 죄도 없으신 분이 더럽힘을 당해 고난당하여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가지고 요나는 니느웨 백성들에게 갔다. 세상의 죄인들이 회개할 수 있는 방법은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의 복음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바울도 십자가 복음 외에는 전할 것이 없다고 말했다. 복음을 알기 전에 알았던 모든 학문들은 배설물처럼 여기고 오직 주님의 고난과 부활을 전하기로 작정했다. 요나도 이런 비장한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이 주신 복음의 말씀으로 장착하여 세상으로 들어가고 있다. 우리도 십자가 복음 외에는 어떠한 무기도 필요하지 않다. 세상의 모든 죄인들에게 전해 주어야 할 것은 주님이 죄인들을 위해 죽었다는 소식을 전파해야 한다.

 

요나는 이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부름을 받았고 하루 동안 열심히 주님의 말씀을 선포하고 있다. 요나가 외쳐는 קרא(카라) 선포하다, 외치다, 부르짖다, 전파하다, 소리 지르다, 불러내다, 라는 뜻이다. 요나는 하루 동안 니느웨 성읍을 하루 종일 돌아다니면서 혼신의 힘을 다해 외치고 다녔다. 하나님께서 니느웨 성읍의 악독을 보았으니 빨리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라고 부르짖었다. 보는 사람마다 십자가 복음을 전파했다. 온 마음을 다해 성읍에 있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여 선포했다. 요나가 전하기 싫은 것을 억지로 선포한 것이 아니다.

 

비록 원수의 나라이기는 하지만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이기 때문에 최선을 다해 목이 터져라 외쳤는데 사십 일이 지나면 니느웨 성읍이 무너진다는 것을 가르쳐 주었다. 무너지리라는 חפך(하파크) 멸하다, 함락시키다, 엎드러지다, 라는 뜻이다. 니느웨 성읍이 무너지는데 하나님에 의해서 완전하게 멸망당해 함락되고 백성들은 하나님에 의해서 엎드려질 것을 말한다.

 

니느웨 성은 사람의 힘으로는 절대 함락시키기가 힘든 성읍이다. 티그리스 강에 휩싸여 있는 성읍이기 때문에 적군이 들어오기가 만만치 않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 성읍을 멸망시켜 버리겠다고 말씀하고 있다. 사람의 힘으로 무너트리기 힘든 성읍을 하나님은 하실 수 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니느웨 성읍을 무너트리겠다고 요나가 선포를 하니 백성들이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믿기 시작했다. 하나님을 믿고는 אמן(아만 539) 확실하다, 진실하다, 충성된 자, 라는 뜻이다. 니느웨 백성들이 믿었던 믿음은 무엇일까? 하나님께서 주신 믿음을 믿었을까? 아니면 자신들이 만들어낸 신념으로 믿었을까? 결론은 자신들의 신념으로 여호와 하나님을 믿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악독이 차서 하나님께 상달되어 성을 무너트려 버리겠다고 하니 두려운 마음에 회개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여 믿었다.

 

이들은 확고하게 믿은 것이 아니라 잠시 여호와께 충성하는 척하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육체의 고통이 찾아올 것을 걱정하여 믿는 믿음이다. 육체의 유익을 위해 하나님을 믿는 척하는 것이지 진정 구원을 얻을 만한 믿음을 가지고 있지 못했다. 하나님께서 선택된 백성들에게 주시는 구원받을 믿음을 니느웨 백성들은 받지 못했다. 하지만 요나의 복음을 잠시 받아들여 회개하고 금식을 선포하고 굵은 베옷으로 갈아입었다. 입은지라는 לבש(라바쉬) 감동시키다, 꾸미다, 라는 뜻이다. 니느웨 백성들은 요나의 말씀을 듣고 감동하여 자신이 입고 있던 옷들을 자발적으로 벗어버리고 회개할 때 입는 굵은 베옷으로 갈아입었다. 자신을 하나님이 보시기에 감동할 수 있도록 베옷으로 꾸미고 회개의 마음을 잠시 가지게 되었다. 성읍의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모두 금식하며 베옷으로 갈아입었다는 소식이 왕에게까지 전달되었다.

 

요나의 복음이 온 성읍을 발칵 뒤집어 놓았다. 복음에는 능력이 있다. 변하지 않을 사람인 것 같아도 십자가 복음이 그들의 마음을 무너트린다. 니느웨 왕은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요나에게 들었다. 현재 자신이 다스리고 있는 나라가 부강하고 강력한 강대국인데 갑자기 사십 일이 지나면 망한다고 하니 얼마나 놀라겠는가? 왕에게도 요나가 전파한 소식이 전해졌다.

왕에게 들리매는 נגע(나가) 닿다, 이르다, 라는 뜻이다. 백성들이 금식하고 베옷을 입었다는 소식이 즉시 왕에게 전달되었다. 왕은 이 소식을 접하고 마음에 동요가 일어났다. 한 나라의 왕이지만 백성들이 손수 회개의 모습을 보이자 왕도 자신의 보좌에서 즉시 일어나 자신이 입었던 왕복을 벗어 놓고 굵은 베옷으로 갈이 입었다. 입고는 כסה(카사) 덮다, 가리다, 위장하다, 숨기다, 속이다, 라는 뜻이다. 왕은 자신의 옷을 하나도 빠짐없이 모두 벗어 놓고 베옷으로 갈아입었는데 이런 행위는 믿음이 있어서가 아니라 잠시 위장하고 숨겨서 사십일 후에 있다고 하는 심판을 면하기 위해 여호와 하나님을 속이는 행위이다. 잠시 자신의 죄를 덮어 가리기 위해서 왕복을 벗고 굵은 베옷으로 갈아입었다. 구원받지 못한 백성들의 믿음이다.

 

하나님께 선택된 백성들의 믿음은 잠시 하나님을 속이기 위해 회개하는 척하지 않는다. 주님의 십자가 보혈을 의지하고 끝까지 주님을 따라간다. 신앙생활을 할 때에 이렇게 잠시 환란을 피하기 위해 믿음을 가진 척하는 자들은 결국 영원한 불 못을 피하지 못한다. 니느웨 백성들이 진정한 십자가 복음의 믿음이 있었다면 절대 멸망당하지 않는다. 나훔서는 니느웨가 멸망될 것이 예언되어 있다. 믿음을 세우지 못했기 때문에 영원히 망하게 된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 선택된 백성이기 때문에 죄를 지었어도 하나님께서 징계를 주셔서 깨닫게 하시고 끝까지 망하지 않게 이끌어 주신다. 선택된 백성과 버림받은 백성의 차이다.

 

왕은 자신이 굵은 베옷으로 갈아입고 난 후에 니느웨 백성들에게 조서를 내린다. 선포하여는 זעק(자아크) 부르짖다, 애곡 하다, 통곡하다, 슬피 울다, 라는 뜻이다. 왕은 백성들에게 조서를 내려 선포하는데 사십일 후에 있을 하나님의 심판에 대해 금식하고 미리 애곡 하면서 부르짖어 슬피 울라고 명령을 내렸다. 왕이 선포하고 있는 것은 즉시 명령을 내렸는데 자신의 마음에서 나온 신념으로 선포했다.

 

하나님께서 주신 믿음이 아닌 자신의 마음에 나온 선포였다. 왕의 명령은 사람이나 짐승이나 어떤 것도 입에 먹지도 말고 물도 마시지도 말라는 명령이다. 바로 왕이 선포한 지금 당장부터 시행하라고 니느웨 백성들에게 선포했다. 이것은 왕이 백성들에게 기대하는 마음이다. 사람인지라 왕의 명령을 거역하고 물과 먹을 것을 입에 넣을 수도 있기 때문에 왕은 강력하게 선포하면서 마음에 소원과 기대를 가지고 있었다.

 

또한 왕이 내린 조서는 백성들이 하나도 빠짐없이 굵은 베옷으로 입으라고 했다. 입을 것이요는 כסה(카사) 감추다, 덮이다, 가려지다, 라는 뜻이다. 백성들은 왕의 명령을 받고 자신들의 부끄러움을 베옷으로 가려 감추고 덮었다. 굵은 베옷을 입으므로 혹시 하나님께서 사십일 후에 심판을 면제해 주시지 않을까 해서 베옷을 입으라고 왕이 명령을 내렸다. 자신들이 입고 있었던 옷을 벗고 하나님의 심판이 면제될 때까지 입으라고 명령했다. 백성들은 왕의 조서에 쓰인 대로 힘써서 굵은 베옷으로 갈아입었다.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께 힘써 부르짖으라고 했다.

 

하나님의 응답이 있을 때까지 힘써 부를 것을 명령했다. 힘써는 חזקה(호즈카) 억지로, 격렬함, 강포함, 이라는 뜻이다. 앗수르 민족은 포악하기가 정평이 난 사람들이다. 이런 포악한 근성을 가지고 하나님께 힘써서 억지로 구하라고 한다. 격렬하게 부르짖어 혹시 하나님의 마음이 바뀌지 않을까 전투적인 마음을 가지고 여호와 하나님께 구하라고 왕은 말한다. 이렇게 하나님께 구한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 없으면 절대 응답하지 않는다.

 

왕은 자신의 백성들이 얼마나 포악한 민족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강포와 악한 길에서 떠나라고 말한다. 강포는 חמס(하마스) 학대, 모욕, 폭력, 폭행, 이라는 뜻이다. 앗수르 민족은 폭행과 폭력이 난무했으며 피지배국을 괴롭히고 죽이고 학대하던 사람들이다. 이런 일에서 왕은 떠나라고 회개를 촉구하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금방 회개를 한다고 해서 멸망이 안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잠시 심판이 보류되어 기다릴 뿐이다. 하나님께 선택되지 않은 백성들은 회개를 했을 때 잠시 하나님께서 심판을 미루셨을 뿐 완전히 사라진 것이 아니다.

 

이렇게 니느웨 백성들이 굵은 베옷을 입고 회개했을 때 잠시 심판이 늦춰졌다. 그러나 시간이 흐른 후에 나훔 선지자가 니느웨 성읍이 멸망될 것을 예언하고 있다. 한 번 하나님께서 작정하신 일은 반드시 그대로 된다.

 

하나님께서 선택한 백성이나 끝까지 인도하셔서 죄를 뉘우치게 하시고 구원의 자리에 앉게 해 주신다. 이것이 하나님의 한량없는 큰 은혜다. 요나 이야기를 통해 구원받은 백성과 구원받지 못한 백성들의 이야기를 알게 해 준다. 내가 진정 선택된 백성이라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끝까지 인도하실 것이다. 하지만 선택된 백성이 아니라면 하나님은 심판에 이르게 하신다. 그렇기 때문에 십자가 복음을 반드시 의지하고 주님의 공로를 믿어야 한다. 이 길 외에는 영원한 속죄는 없고 심판을 피할 수 있는 길도 없다.

 

왕은 백성들에게 죄에서 떠나면 혹시 하나님께서 진노를 피하시고 멸망에 이르지 않게 하실 줄을 누가 알겠는가?라고 말한다. 왕은 하나님이 주신 믿음이 있어서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런 행동을 하면 심판을 행하시는 하나님이 생명을 살려 주실 것을 확신하지 못하고 급하게 믿고 있다. 그렇지 않을 줄을은 נחם(나함) 뜻을 돌이키다, 긍휼히 여기다, 라는 뜻이다. 왕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혹시 자신들을 긍휼히 여기셔서 뜻을 돌이켜 심판을 면제해 주시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하나님이 뜻을 돌이킬 수 있는 것은 니느웨 백성들이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있다. 진정 마음을 다해 회개를 하면 잠시 심판이 유보되어 지나가게 된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 죄들을 계속 짓게 되면 결국 하나님은 사십일 후에 니느웨 성을 멸망시켜 버릴 것이다.

 

왕은 말하기를 자신들의 회개의 모습을 하나님이 보시고 영원히 멸망시키지 않겠다고 말하며 확신 없는 말을 하고 있다. 구원에 확신이 없는 자들은 마지막 날에 심판을 받게 된다. 니느웨 백성들은 하나님이 주신 확실한 구원의 믿음이 없었다. 왕부터 백성에 이르기까지 선택받았다는 믿음이 없었기 때문에 열심히 회개하고 자신들 스스로 믿으면 혹시 하나님이 심판을 면해 주시지 않을까 생각했다.

 

교회 안에서도 이렇게 신앙생활을 하는 자들이 너무나 많다. 자신의 행위로 열심히 믿으면 하나님의 심판이 면제될 것 같은 착각에 빠져 있는 사람들이다. 이런 자들은 신앙이 오래가지 못한다. 중간에 포기하거나 힘들어서 금방 지치게 된다. 자신의 능력으로 하려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절대 주권 속에서 하나님이 주신 능력으로 하는 자들은 절대 지치지 않고 환란이 와도 넘어지지 않는다. 내가 믿어서 하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믿음은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주셔야 한다. 하나님이 주시지 않는 믿음은 끝까지 갈 수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니느웨 백성들의 행동들을 유심히 관찰하고 계셨다. 하나님이 보시고는 ראה(라아) 보다, 감찰하다, 발견하다, 주목하다, 정탐하다, 라는 뜻이다. 하나님은 니느웨 백성들의 생활을 유심히 관찰하셨다. 사십일 동안 계속 바라보면서 주목하여 죄에서 떠났는지 감찰하고 있다. 죄 하나라도 발견되면 하나님은 심판을 감행하시려고 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니느웨 성을 구석구석 정탐하시면서 돌아다녔지만 아직 백성들의 죄를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에 잠시 내리시려고 했던 재앙을 유보시키셨다. 심판이 유보된 이유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들을 기억하고 죄악에서 떠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항상 죄악의 불씨는 남아 있었다. 이 백성들이 죄에 대한 근성은 버리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완전히 뿌리 채 뽑아버리기는 쉽지 않다. 하나님의 심판의 불씨도 여전히 니느웨 백성들에게 남아 있다. 백성들이 계속해서 죄를 짓지 않고 간다면 하나님은 심판을 계속해서 유보하겠지만 다시 옛날로 돌아가 포악한 자들이 되면 하나님은 주저하지 않고 심판을 보내실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니느웨 백성들의 회개는 잠시 재앙을 모면하기 위한 회개라는 것이 밝혀졌다. 시간이 흘러가면서 다음 세대에 포악함이 나오게 되었고 하나님은 바벨론의 나보폴라살을 사용하셔서 앗수르의 니느웨 성을 심판하게 하셨다. 이것이 하나님께 선택받지 못한 백성들의 최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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