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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제사 주일설교말씀] “영적 인도자를 섬기는 제사”(히 13:7-8, 17)

성령의 능력 2021. 1. 20.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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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성경 제사 주일설교말씀 중에서 영적 인도자를 섬기는 제사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주님은 선지자를 대접하면 선지자의 상을 받는다고 했습니다. 교회에서 복음을 가르치는 스승을 섬기면 그에 따른 상을 받게 됩니다. 우리는 영적인 스승을 말을 잘 따라서 나의 영혼이 예수 그리스도의 뜻을 따라 살아가야 합니다.

“영적 인도자를 섬기는 제사”(히 13:7-8, 17)

 

명제: 영적 스승의 교훈을 따라는 것이 섬김의 제사이다.

목적: 교회의 영적인 스승의 말씀을 듣고 따른 것이 섬기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제사를 제정하신 이유는 관계의 회복을 하기 위함입니다. 죄인들이 하나님께 나올 수 있는 방법은 제사 외에는 없었기 때문입니다. 구약의 제사가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의 수단이었다면 신약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예배입니다. 예배를 통하여 죄인이 하나님께 나와 관계가 회복되어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많은 제사를 통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오늘은 영적 인도자들을 섬기는 제사에 대하여 알아보고자 합니다.

교회 안에서 제일먼저는 삼위일체 되시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영적으로 회복되고 죄인이라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 관계가 제일 중요합니다. 그리고 중요한 관계가 있는데 영적 인도자와의 관계입니다. 교회 안에 들어오면 처음에 하나님의 존재가 느껴지지 않습니다. 주님이 누구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면 눈에 보이는 영적 인도자가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게 되는 것입니다. 나를 교회로 인도해 준 사람이 영적 인도자입니다. 그리고 교회에서 말씀으로 양육시켜주시고 믿음을 세워주는 자가 영적 인도자입니다. 이런 영적 인도자와의 관계가 회복된 사람은 믿음도 좋아지고 교회생활에도 문제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생각해 볼 수 있는 인물이 있는데 아브라함과 롯입니다. 롯이 아브라함과 함께 있을 때에는 믿음의 훈련을 받았습니다. 아브라함을 통하여 신령한 은혜를 받았습니다. 영적 인도자와 함께 있는 자체가 하나님의 축복을 받고 은혜를 받은 것입니다. 그러나 롯이 교만하여 아브라함과 함께 있기를 거부하고 소돔 땅으로 내려가고 난 후부터 그의 인생은 심판받을 수밖에 없는 인생으로 전락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소돔과 고모라 땅을 심판하실 때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기억하사 롯을 구원해 주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영적 인도자와 함께 있을 때에 축복입니다. 롯이 영적 인도자와의 관계가 회복되지 못하고 떠나니 결국은 자신의 모든 재산도 사라지고 아내도 죽고 자녀와의 부적절한 관계 속에서 아이가 탄생되는 수치를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시간 우리가 교회 안에서 영적 인도자의 교훈을 따라서 섬김의 제사를 잘 드리시는 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13:7 하나님의 말씀을 너희에게 일러 주고 너희를 인도하던 자들을 생각하며 그들의 행실의 결말을 주의하여 보고 그들의 믿음을 본받으라

 

하나님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영적으로 가르쳐 주고 우리를 인도하던 자들을 생각하며 그 믿음의 선진들의 행실을 보고 잘못된 것이 있다면 교훈을 삼아 고치고 좋은 것이 있다면 배우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믿음을 본받아 하나님의 온전하신 뜻을 위해 살아갈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인도하던’ ηγεομαι(헤게오마이 2233) 지도하다, 인도하다, 확신하다, 라는 뜻입니다. 영적 인도자들은 누구입니까?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서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해주는 사람입니다. 올바른 진리를 가르치고 영혼을 살찌게 하는 자들입니다. 이들은 자신의 뜻대로 지도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통하여 주님의 뜻대로 지도하여 마음에 구원의 확신을 가질 수 있도록 말씀으로 통치하는 사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럼 영적인 스승들은 어떻게 행동을 해야 합니까? 교회 안에서 본을 보이는 행동을 해야 합니다. 자신의 행동은 믿음이 없는 행동인데 인도하는 사람에게 믿음대로 살라고 하면 신뢰를 못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언제 인도하는 것입니까? 지금 현재 말씀으로 인도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또한 현재 교회에서 본을 보이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이렇게 주님의 복음의 말씀으로 가르치고 본을 보이는 자들은 이미 영적인 관계가 회복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은혜를 주시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하는 영적 스승은 많은 사람들이 자신에게 몰리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반대로 본을 보이지 않으면 많은 사람들이 따르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나는 교회 안에서 영적 스승이 있습니까? 말씀을 온전하게 전하고 행실의 본을 보여주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나의 스승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시기를 믿음이 세워지는 것도 자신 스스로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항상 믿음의 사람들을 옆에 붙여주셨습니다. 위대한 바울도 바나바가 없었다면 하나님의 위대한 일을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사울이라는 청년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기독교인을 핍박하고 죽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사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회개하고 아나니아에게 안수를 받고 주님의 사람이 됩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은 진실로 사울이 회개했는지를 믿지 못했습니다. 그때에 바나바가 인정하고 제자들에게 연결시켜 주는 것입니다.

 

9:27 바나바가 데리고 사도들에게 가서 그가 길에서 어떻게 주를 보았는지와 주께서 그에게 말씀하신 일과 다메섹에서 그가 어떻게 예수의 이름으로 담대히 말하였는지를 전하니라

 

많은 제자들은 사울의 회심에 대하여 믿지 못하고 있지만 바나바가 사울을 데리고 사도들에게 가서 증거를 해주고 있습니다. 다메섹 도상에서 일어난 일과 회심하고 안수를 받아 주님의 그릇으로 쓰일 일에 대하여 증명하니 바나바의 말을 듣고 사도들도 믿게 되는 것입니다. 바나바는 사울의 영적 인도자였습니다. 바나바가 없었다면 지금의 바울은 탄생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도 항상 사람을 옆에 붙여주시고 사람을 키우는 것입니다. 우리의 영적인 스승을 이제부터 찾고 그 사람을 통하여 하나님이 나에게 하실 일을 기대하는 것입니다. 이제 교회 안에서는 목사님이 영적 스승입니다. 목사님의 말씀을 듣지 않으면 섬김의 제사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목사님을 통하여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의 교훈을 따라 살아가야 합니다.

‘생각하며’ μνημονευω(므네모뉴오 3421) 마음에 간직하다, 깨닫다, 기억하다, 기억나다, 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마음에 새겨 간직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영적 인도자의 교훈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겨 잊지 않는 것입니다. 영적 인도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여 그들의 심령에 새겨질 수 있도록 메시지를 전해야 합니다. 그러면 이 복음의 메시지가 심령에서 간직되고 이 말씀이 세상의 삶에서 힘들고 어려운 시기를 살아갈 때에 기억나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내가 어떠한 삶을 살아가야 할 것인지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영적 인도자의 교훈을 생각하라고 명령하시고 있습니다. 그것도 매 순간마다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명령법과 현재시제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정신없이 살다 보면 하나님의 말씀을 잊고 살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주신 인도자의 말을 잊지 말라고 하나님은 명령하시고 있습니다. 그것도 지금 내가 생활하는 현재의 삶 속에서 이렇게 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제부터 나도 이와 같은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그들의 행실을’ αναστροφη(아나스트로페 391) 행동양식, 처신, 품행, 선행, 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영적 인도자의 행실을 주의하여 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행동양식을 살펴보라는 것입니다. 영적 인도자의 행동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행동을 하고 있는지 아니면 품행과 처신이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삶을 살고 있는지를 자세히 살펴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만약에 이렇게 살펴보았는데 믿음과 행실이 다르다면 그 사람을 영적 인도자로 섬기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그 사람의 잘못된 신앙을 배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에 품행이 방정하고 믿음도 좋다면 영적 스승으로 삼고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사람은 믿음도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하나님은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제부터 영적 스승들은 올바른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목사님들은 목사님들의 위치에서 성도들의 본이 되어야 하며 올바른 진리의 말씀을 선포해야 하고 가르쳐야 합니다. 또한 성도들은 성도들의 위치에서 본을 보여 서로 섬겨주는 섬김의 제사를 드려야 할 것입니다. 섬김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제사입니다. 관계가 회복되고 서로 존중해 주는 관계가 되기 때문입니다.

 

히13:8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예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교회에서 제일로 섬기는 자는 예수님입니다. 큰 자나 작은 자나 모두가 주님 안에서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목사님이나 집사님이나 장로님이나 성도님이나 누구든지 서로 섬김의 제사를 드리는데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드리는 것입니다. 주님은 변함이 없는 분이고 영원토록 우리와 함께하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서로 섬김의 제사를 드리는데 주님의 마음이 없다면 상처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주님의 사랑을 가지고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히13:17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 그들은 너희 영혼을 위하여 경성 하기를 자신들이 청산할 자인 것 같이 하느니라 그들로 하여금 즐거움으로 이것을 하게 하고 근심으로 하게 하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유익이 없느니라

 

그럼 영적 인도자를 따르는 자의 삶은 어떠해야 합니까? 먼저는 순종하고 복종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교회 안에도 질서가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목사님을 세워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목사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복종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그 이유는 영혼을 위하여 경성 한다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영적 인도자들이 기쁨과 즐거움으로 인도할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먼저 순종하지 않고 복종하지 않는 자세가 되면 영적 인도자는 근심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되면 따르는 자들에게 유익이 없다는 것입니다.

 

‘순종하고’ πειθω(페이도 3982) 납득시키다, 신뢰하다, 화목하다, 인정하다, 라는 뜻입니다. 영적 인도자에게 순종한다는 것은 먼저 신뢰가 있어야 합니다. 믿음의 관계가 형성되지 않으면 순종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려면 영적 인도자의 행실과 품행이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삶을 살아서 상대가 납득이 될 수 있도록 행동을 해야 합니다. 나의 행동은 올바르지 못하고 말로만 모든 것을 처리하면 상대가 납득이 되지 않기 때문에 신뢰가 깨지고 순종하지 못하므로 두 사람의 관계가 화목해지지 않으며 영적 인도자를 절대 자신의 스승으로 인정하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몸을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화목 제물이 되어 주셨습니다. 이런 관계 속에서 우리는 예수님을 신뢰하게 되었고 나의 죽음을 내놓을 수 있는 믿음을 갖게 된 것입니다. 영적 인도자도 헌신의 삶이 있을 때에 상대가 따라오게 되는 것입니다. 순종은 내가 하고 싶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헌신을 통하여 행실을 통하여 마음이 열리고 영적 스승으로 인정하게 되는 것입니다. 수동태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시간 내가 영적 인도자라면 상대를 위해 손해 볼 수 있는 마음이 있을 때에 지도자가 될 수 있습니다.

 

‘경성 하기를’ αγρυπνεω(아그뤼프네오 69) 깨어있다, 정신 차려 살피다, 라는 뜻입니다. 영적 인도자가 해야 할 일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영적 인도자는 영적인 잠에 들지 않도록 말씀으로 깨어나게 해야 합니다. 신앙의 잠을 자고 있으면 재림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지 못합니다. 주님께서는 잠에서 깨어나야 할 것에 대하여 계속해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영적 인도자는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성도들이 잠을 자지 못하도록 말씀의 채찍을 가지고 심령을 때려야 합니다. 영적인 잠에 빠지면 하나님의 말씀을 외면하고 세상으로 눈을 돌리기 때문입니다.

 

그럼 언제 이렇게 해야 합니까? 지금 현재에 이렇게 해야 합니다. 영적 스승을 따르는 자들은 지금 스승에게 순종하고 복종해야 합니다. 그리고 영적 스승은 지금 따르는 자들이 영적 잠에 들지 못하도록 계속해서 복음의 말씀을 선포해야 할 것을 하나님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경성 한다는 의미입니다.

 

‘근심으로’ στεναζω(스테나조 4727) 탄식하다, 신음하다, 한숨 쉬다, 라는 뜻입니다. 영적 스승들에게 복종하지 않는다면 말씀의 가르침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그렇게 되면 영적 스승을 탄식하게 하는 것이며 입에서 한숨만 나오게 하는 것입니다. 소 귀에 경을 읽는 것과 같다면 안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좋은 복음의 말씀으로 가르치려고 하고 본을 보여도 나는 하기 싫다고 복종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결국 심판의 자리로 떨어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뜻을 위해 살지 않을 때에도 주님은 이렇게 나의 행동을 보고 탄식하며 신음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행동은 주님을 십자가에 다시 못 박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이렇게 영적 스승에게 순종하지 않고 복종하지 않는 자들은 영적으로 잠을 자고 있는 자들입니다. 잠을 자는 사람들은 밖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알 수가 없습니다. 목사님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선포하고 영혼을 깨우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데도 무시하고 목사님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있다면 이것이 잠을 자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자들은 자신의 삶에도 유익이 없고 영혼에게도 전혀 유익이 없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가 영적 인도자의 말을 따라 사는 자체가 섬김의 제사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교회 안에서 목사님의 말씀을 잘 듣고 복음 전하는 것을 기쁨과 즐거움으로 하게 하며 기도하기를 기쁘게 하는 것이 섬김의 제사입니다. 복음의 말씀을 전해주면 사사건건 시비를 걸고 태클을 걸어 목사님의 마음에 상처를 주고 뒤에서 흉이나 보고 있으면 섬김의 제사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자신에게 유익이 될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하나님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제부터 영적 스승인 목사님들도 하나님의 올바른 뜻을 전파하고 품행이 좋으며 성도들의 본이 되는 믿음의 생활을 해야 합니다. 반면에 성도들은 목사님의 믿음의 본을 받아 신앙의 잠에서 깨어나야 합니다. 이렇게 될 때에 섬김의 제사가 온전하게 드려지는 것이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이제부터 주님이 기뻐하시는 섬김의 제사를 통하여 목사님들과 성도들의 관계가 회복되는 역사가 일어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성경제사 주일설교말씀] “교제의 제사”(히브리서 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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