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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상 7장 하나님 말씀] 사무엘이 다스림(삼상 7:1-17)

성령의 능력 2022. 3. 12.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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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 7장에서는 사무엘이 사사가 되어 이스라엘 백성을 다스리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사 시대는 왕이 없었기 때문에 사사가 다스리던 시대였습니다.

 

사무엘이 다스림(삼상 7:1-17)

 

[1-2] 기럇여아림 사람들이 와서 여호와의 궤를 옮겨 산에 . . . .

블레셋 사람들이 돌려보낸 하나님의 궤는 기럇여아림 거민에게로 보내졌다. 기럇여아림 사람들은 와서 그 궤를 옮겨 산에 사는 아비나답의 집에 들여놓고 그의 아들 엘리아살을 거룩히 구별하여 그 궤를 지키게 하였다. 하나님의 궤는 기럇여아림에 들어간 날로부터 20년 동안 오래 거기에 있었다. 이스라엘 온 족속은 여호와를 사모하였다(나하)[슬퍼하며 여호와를 구하였다](NIV). 20년의 세월이 흐른 후에, 사무엘이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활동한 것이라면, 그의 나이는 아마 40세가 넘었을 것이다.

[3] 사무엘이 이스라엘 온 족속에게 일러 가로되 너희가 . . . .

사무엘은 이스라엘 온 족속에게 말했다. “너희가 전심으로 여호와께 돌아오려거든 이방신들과 아스다롯을 너희 중에서 제하고 너희 마음을 여호와께로 향하여 그만 섬기라. 너희를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건져내시리라.” 그 당시 이스라엘 백성은 이방신들과 아스다롯을 섬기고 있었다.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 큰 진노를 받을 만한 일이었다. 하나님의 사람 사무엘은 그 문제점을 직선적으로 지적했다. 이스라엘의 영적 각성은 참된 회개에서 시작되어야 했다. 그것은 모든 우상들을 버리고 하나님만 섬기는 데서부터 시작되어야 했다.

[4-6] 이에 이스라엘 자손이 바알들과 아스다롯을 제하고 . . . .

이스라엘 백성은 사무엘의 교훈에 순종했다. 그들은 즉시 바알들과 아스다롯을 제하고 여호와만 섬겼다. 사무엘은 또 그들에게 온 이스라엘은 미스바로 모이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여호와께 기도하리라”고 말했다. 미스바 기도회를 제안한 것이다. 온 이스라엘 백성은 미스바에 모였다. 그들은 물을 길어 여호와 앞에 부었다. 물을 부은 것은 자신들의 불결하고 죄악됨을 인정하고 정결케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간구하는 뜻이 있는 것 같다. 그들은 그 날에 금식하고 거기서 우리가 여호와께 범죄하였나이다”라고 고백하였다. 사무엘은 미스바에서 이스라엘 자손을 다스렸다. ‘다스린다는 원어(솨파트)재판한다는 뜻인데, 그것은 그가 사사처럼 백성을 재판하고 하나님의 공의를 시행하면서 그들을 다스린 것을 나타낸다.

[7-9] 이스라엘 자손이 미스바에 모였다 함을 블레셋 사람이 . . . .

블레셋 방백들은 이스라엘 백성이 미스바에 모였다는 소식을 듣고 그들을 치러 올라왔다.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큰 위기이었다. 국가적으로 영적 대각성이 일어나려 한 때에 마귀의 시험이 닥친 것이었다. 개인의 신앙성장과 교회의 부흥의 과정에는 반드시 큰 위기가 있다. 그것은 사탄의 시험과 방해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블레셋 사람들의 침공 소식을 듣고 두려워하여 사무엘에게 말했다. “당신은 우리를 위하여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쉬지 말고 부르짖어 우리를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구원하시게 하소서.” 그렇다. 회개한 이스라엘 백성은 위기에서 바른 대처법을 택했다. 기도는 바른 위기대처법이다. 성도가 기도하면 어떤 위기라도 극복할 수 있다. 사무엘은 백성들의 요청대로 젖 먹는 어린양을 취하여 온전한 번제를 여호와께 드리고 이스라엘을 위해 여호와께 부르짖어 기도했다. 온전한 번제는 하나님의 속죄의 은혜를 의지하고 온전한 순종과 헌신을 각오하는 뜻이 있다. 여호와께서는 사무엘과 그 백성의 기도를 응답하셨다.

[10-11] 사무엘이 번제를 드릴 때에 블레셋 사람이 . . . .

사무엘이 번제를 드릴 때에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과 싸우려고 가까이 왔는데, 그 날에 여호와께서는 블레셋 사람들에게 큰 우뢰를 발하여 그들을 어지럽게 하셨고 그들은 이스라엘 앞에서 패하였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미스바에서 나가 블레셋 사람들을 따라 벧갈 아래에 이르기까지 그들을 쳤다. 이스라엘은 큰 승리를 거두었다. 하나님의 방법은 너무 쉬웠다. 큰 천둥을 조금 동원하신 것뿐인데, 그것으로 그 전쟁의 승패가 갈리었다.

[12-14] 사무엘이 돌을 취하여 미스바와 센 사이에 세워 . . . .

그때 사무엘은 돌을 취하여 미스바와 센 사이에 세우며 말했다. “여호와께서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도다.” 또 그는 그 돌의 이름을 에벤에셀’(에벤 하아제르)이라고 불렀다. 그것은 도움의 돌이라는 뜻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시키는 기념돌이었다. 이 전쟁에서 블레셋 사람들이 굴복한 이후 그들은 다시는 이스라엘 경내에 들어오지 못하였다. 여호와의 손은 사무엘의 사는 날 동안에 블레셋 사람들을 막으셨다. 또 블레셋 사람이 이스라엘에게서 빼앗았던 성읍들은 에그론부터 가드까지 이스라엘에게 회복되었다. 이스라엘은 그 사방 지경을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도로 찾았다. 또 이스라엘과 아모리 사람들 사이에도 평화가 있었다.

[15-17] 사무엘이 사는 날 동안에 이스라엘을 다스렸으되 . . . .

사무엘은 사는 날 동안에 이스라엘을 다스렸다. 15절 이하에 세 번 나오는 다스린다는 원어도 6절의 말과 같이 재판한다는 단어이다. 사무엘은 이스라엘의 사사로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공의를 시행하며 재판하였고 그들을 다스렸다. 그는 해마다 벧엘과 길갈과 미스바로 순회하여 그 모든 곳에서 이스라엘을 다스렸다. 그는 통치자의 직무를 부지런히 수행하였다. 또 그는 세 성을 순회한 후에는 라마로 돌아왔는데, 거기에 그의 집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거기서도 이스라엘을 다스렸다. 또 그는 거기서 여호와를 위해 단을 쌓았다. 사무엘은 참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며 섬기는 사람이었다.

사무엘상 7장에서 우리는 몇 가지 교훈을 얻는다. 첫째로, 하나님의 뜻은 우리의 순수한 경건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순수하게 하나님만 믿고 따르기를 원하신다. 영적 각성은 개인적으로나 국가적으로나 이방신들을 버리고 하나님만 섬기는 순수한 경건과 그 결단으로 일어난다. 모든 성도는 모든 죄를 철저히 회개하고 하나님의 말씀 곧 성경말씀에 온전히 순복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때때로 우리가 그의 은혜의 필요성을 우리가 절실히 느낄 때까지, 우리가 자원적으로 그를 간절히 사모할 때까지, 우리를 버려두신다. 그러나 그의 작정하신 때에 그는 참 회개와 믿음을 동반한 영적 각성을 우리에게 허락하신다.

둘째로, 신앙의 부흥과 성장에는 반드시 마귀의 시험이 있다. 블레셋의 침공이 한 예이었다. 이스라엘 백성이 선지자 사무엘의 교훈을 순종하여 모든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만 섬기기로 결심한 때에 위기가 찾아왔다.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사역도 쉽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는 유대 지도자들에게 미움을 받고 배척을 받고 버림을 받아 십자가에 처형되시고 무덤에 묻히심으로 하나님의 뜻을 다 이루셨고, 3일 만에 부활하심으로 주와 그리스도로 온 세상에 능력으로 전파되셨다. 하나님의 위대한 종 사도 바울은 세계 복음화의 초석을 놓은 그의 전도사역에서 많은 고난을 경험하였었다. 우리는 신앙의 부흥과 성장의 과정에 위기가 있고 마귀의 시험이 있음을 기억하자. 우리는 그때 두려워하거나 당황치 말고 인내하며 그 위기를 바르게 대처하자.

셋째로, 신앙 부흥과 성장에서 직면하는 영적 위기를 극복하는 길은 믿음과 기도밖에 없다. 이스라엘이 직면한 블레셋의 침공을 극복할 수 있는 길은 하나님을 의지하며 그에게 기도하는 길밖에 없었다. 오늘날도 속죄신앙과 온전한 순종의 각오로써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하는 자는 마귀의 온갖 시험을 이길 것이다. 기도는 위기를 대처하는 성도의 바른 방법이다. 성경과 역사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람들은 기도로 위기를 극복한 자들이었다. 그것이 성경과 역사가 증거하는 바이다. 하나님은 에벤에셀의 하나님, 곧 우리를 도우시는 하나님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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