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데스다 신약성경강해

[마태복음 5장 산상수훈 설교말씀] 그리스도를 본받아(마 5:21-26)

성령의 능력 2021. 4. 18.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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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마태복음 5장 산상수훈 설교말씀 중에서 그리스도를 본받아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구원받은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서 살아야 합니다. 주님은 자신의 십자가를 메고 주님을 따라오라고 했습니다. 구원받은 것으로 끝이 아니라 성화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십계명에 살인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새로운 살인에 관한 법을 주셨습니다. 미련한 놈이라고 말하면 지옥 불에 들어간다고 했습니다. 살인 법이 더 강화되었습니다. 말로 사람을 죽이지 말라는 것입니다. 말 한마디가 사람을 죽고 살릴 수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주님의 말씀을 선포하여 영혼을 살려야 하겠습니다.

제목: 그리스도를 본받아

 

설교자: 윤사무엘 목사

 

본문: 마 5:21-26

 

요절: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 들을만한 일이 있는 줄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마 5:23-24)

 

주제: 형제와 자매를 진심으로 사랑함으로 미움과 시기와 중상모략을 몰아내자

 

마 5:21 옛사람에게 말한 바 살인치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마 5:22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혀가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마 5:23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마 5:24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마 5:25 너를 고발하는 자와 함께 길에 있을 때에 급히 사화하라 그 고발하는 자가 너를 재판관에게 내어주고 재판관이 옥리에게 내어주어 옥에 가둘까 염려하라

마 5:26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한 푼이라도 남김이 없이 다 갚기 전에는 결단코 거기서 나오지 못하리라

 

지난 주간 부활의 증인으로 살아가셨습니까? 예수님께서 사망 권세를 깨뜨리시고 부활의 첫 열매를 맺은 사건이 2000년간 기쁨과 소망의 근원이 되고 있습니다. 부활 신앙은 우리의 삶을 윤택하게 하며 새롭게 하고 있습니다, 초대교회 때도 그러했고 지금도 우리는 부활의 증인으로서 삶을 살고 있습니다. 땅끝까지 주님의 부활하심을 증거 하는 한 사람 한 사람이 되시기를 원합니다.

 

“오직 성신님(Holy Ghost)께서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power)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내 증인이 되리라(ye shall be witnesses unto me)”(행 1:8)는 말씀대로 성신님의 권능이 임해야 우리는 땅끝 선교사가 될 수 있습니다.

 

성신님을 받기 위해서는 교회생활이 필수적입니다. 교회는 문제 있는 사람들이 와서 말씀과 성령으로 치유받고 문제가 해결을 받습니다. 성신님을 체험하지 못했을 때는 120 문도가 허탈감과 절망감에 빠져 있었지만 사도행전 2장의 오순절 성령 강림의 사건 이후로 교회는 생명의 공동체, 성령의 공동체로 거듭나서 활발하게 움직이며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는데 에너지를 받아 핵폭발처럼 전 세계로 나가 복음을 전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 교회도 성신님을 뜨겁게 받아 온 세상에 나가 전해야 되겠습니다.

오늘도 “그리스도를 본받아” 시리즈 말씀으로 산상수훈을 묵상합니다. 본문 말씀 마태복음 5장 21-26절은 6계명의 새로운 해석입니다. ‘옛사람에게 말한 바’ 하시고는 하시는 말씀을 세 가지 일례를 들어 언급하시면서 주님께서는 온전한 율법 즉 사랑의 법을 말씀해 주고 계십니다. 십계명 5-10 계명은 모두 개인에게 지칭되는 말씀을 주님께서는 공동체 즉 교회로 확대하여 해석해 주셨고, 이런 정신으로 세상을 살아갈 것을 말씀하심으로 구체적인 말씀의 적용을 보여주셨습니다. 그 첫 번째인 “살인치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Thou shalt not kill; and whosoever shall kill shall be in danger of the judgment.”(마 5:21)는 말씀입니다.

 

살인은 큰 범죄입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 즉 그분의 모양대로 창조 (창 1:26-27) 되었기 때문이며, 사람의 생명을 온 천하보다 더 존귀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마 16:26).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의 생명을 존귀하게 여기며 사랑하여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생명을 경시하는 자세로부터 일어나는 살인을 금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나서 죽기까지 그 삶을 주관하는 것은 하나님께 받은 선물이요 특권입니다. 살인은 타락한 사람을 하나님께서 구원할 기회를 타락한 인간이 폭력으로 빼앗는 행위입니다. 또한 구원받은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따라 영광된 삶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신앙의 영향을 줄 수 있는 미래의 삶을 파멸하는 행위이기 때문에, 살인은 하나님 앞에 큰 범죄입니다. 그러나 이상과 같은 현상적인 살인만이 살인인 것은 아닙니다. 영적인 면에서 영을 살인하는 것, 또 정신적인 면에서 인격(지, 정, 의)을 살인하는 것, 경제적인 면에서 사업적인 살인, 또한 정치적인 살인이 있습니다. 이상과 같은 살인이 조직적이며 구조적으로 이루어지기도 하며 개인적으로 이루어지기도 합니다.

 

자살도 살인의 일종입니다. 자기 생명을 스스로 끊으면 살인죄에 해당되기 때문입니다.

 

(1) 삼손은 자살이 아니라 헌신을 한 것입니다. 히브리서 11장 32절에 믿음의 선진으로 소개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삼손은 하나님의 뜻을 위하여 헌신한 것입니다. 블레셋 사람들을 죽이기 위해 자신의 몸을 던져 죽음을 당했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은 아닙니다. 삼손은 다곤 신전에서 3000명 블레셋 관료들을 죽이기 위해, 헌신을 원했습니다(삿 16:30 블레셋 사람과 함께 죽기를 원하노라). 

 

(2) 사울은 블레셋 군에 패전하여 활을 맞아 중상을 입었을 때 자기 병기 든 자에게 ‘네 칼을 빼어 나를 찌르라. 할례 없는 자들이 와서 나를 찌르고 모욕할까 두려워하노라’ 하나 병기 든 자가 심히 두려워하여 즐겨 행치 아니했습니다. 이에 사울은 자기 칼을 취하고 그 위에 엎드러져 자살했습니다(삼상 31:4).

 

(3) 가룟 유다는 예수님 계신 곳으로 로마 군병들을 인솔하며 은 30냥 받는 것을 나중에 후회하고 자살했습니다. 예루살렘 성 밖 남쪽에 아겔다마에 자기 몸을 투신했습니다.

 

자살하면 지옥에 간다는 말을 함부로 하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사람이 죽어 지옥 가고 천국 가고 하는 문제는 전적으로 하나님께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분명 십계명 6 계명에서 “살인하지 말라” (Thou shalt not kill.)고 되어 있는데, 여호수아와 다윗은 수많은 전쟁을 통해 많은 사람들을 죽였습니다. 가인은 아벨을 죽였고, 요셉은 형들로부터 살해될 뻔했고, 모세는 40세에 동족 이스라엘인을 괴롭히던 이집트 군인을 살해했고, 겐 족속 야엘은 적장 시스라를 죽였습니다. 이들이 다 지옥에 갔다고 생각하십니까?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정착할 때 요단강을 중심으로 도피성(Miclot) 6개를 만들어 고의가 아닌 살인자들이 들어가서 살면서 제사장과 레위인들로부터 보호를 받았습니다.

 

전쟁 문제는 공동체의 일입니다. 나라와 가정을 지키기 위해 위협하는 적들을 죽이는 것은 자기 방어의 방편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도 사울 왕에서 아말렉족들을 전멸하라고 하셨고, 여호수아 장군도 가나안 정복할 때 원주민들의 어린 생명까지도 전멸했습니다. 지옥에 보내는 문제는 하나님의 권한에 달려 있는 것이지 우리가 운운할 수는 없습니다.

 

자살한 자녀의 부모나 가족들에게 상처를 주는 말은 삼가야 합니다. 오히려 자살한 이를 이해하며, 추모하는데 초점을 맞추어야지 죽은 자녀가 지옥에 간다는 언급은 자제해야 합니다. 유가족들에게 마음의 상처를 주는 것도 죄입니다. 자살 동기가 경제적 빈곤, 신체적 장애, 정신적 우울증, 친구 관계에서 생긴 오해와 억울함, 왕따 당해온 괴로움, 악플로 인한 정신적 고통, 학업에 대한 스트레스, 사회적 분노에 대해 저항 방법, 조국에 대한 사랑 표시로 자신의 몸을 던지는 일 등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가장 좋은 것은 “생명의 전화”나 상담 혹 기도를 통해 이 문제를 해결 받고 어려움을 디디고 고통의 시간을 적극적으로 헤쳐 나가 승리의 길로 가면 제일 좋습니다. 절대 자살은 하지 맙시다. 가장 어리석은 선택입니다.

 

범죄 한 자는 심판을 피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살인자는 어떤 직책을 가졌든지 차별 없는 심판을 받습니다. 구약에서 살인에 관한 가르침은,

 

(1) 사람을 쳐 죽인 자는 반드시 죽일 것이나 만일 사람이 계획함이 아니라 나 하나님이 사람을 그 손에 붙임이면 내가 위하여 한 곳을 정하리니 그 사람이 그리고 도망할 것이며 사람이 그 이웃을 짐짓 모살하였으면 너는 그를 내 단에서라도 잡아내려 죽일찌니라" (출 21:12-14). 하였습니다. 이상의 내용에서 볼 때 하나님이 붙이셔서 하는 살인을 별개의 문제로 하나님께서 살인자를 살리는 제도가 있으나 사람을 죽이는 일에 모살이라는 계획적인 살인자는 어떤 장소에 있더라도 그는 죽이라고 명하셨습니다.

 

(2) 사람을 죽인 자 곧 고살자를 증인들의 말을 따라서 죽일 것이나 한 증인의 증거만 따라서 죽이지 말 것이요 살인죄를 범한 고살자의 생명의 속전을 받지 말고 반드시 죽일 것이며(민 35:30-31)라고 했습니다. 살인자를 죽이되 사형을 처하는 데는 다음과 같은 조건이 있습니다. 첫째는 한 사람 이상의 증인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며, 다음은 살인자의 생명의 속전을 받지 말라고 함으로써 살인자는 구원받을 길이 전혀 없음을 말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는 살인에 대한 개념에 옛사람에게 말한 것과는 달랐습니다.

 

이 말씀을 주님께서는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시기를 “형제에게 이유 없이(without a cause)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Raca=머리가 텅 빈 놈)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히게 되고 미련한 놈(어리석은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라고 가르쳐 주십니다.(마 5:21-22) 예수님께서 말한 상대자는 '형제'입니다. 여기에서 형제라 함은 한 가정의 형제, 또는 이웃의 형제, 온 이스라엘 민족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이들과 관계된 것들은 다음과 같은 내용입니다.

 

1) 형제에 대하여 노하는 자

 

여기서 말하는 ‘노’는 화를 내는 것, 분노 또는 신경과민적인 것을 말합니다. 이 노함은 마음속에서 시작되어 입의 말과 행동이 감정의 격함에 이어져 살인에 이릅니다. 나의 노함이 타인의 감정을 격동시키고 이것이 악화되어 살인을 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노하는 자는 심판을 받게 된다고 했습니다. 바울은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마귀로 틈을 타지 못하게 하라"(엡5:26-27) 했습니다. 분노는 큰 죄악을 발생시키는 근원이 되기 때문입니다.

2) 형제를 대하여 라가(Raca)가 하는 자는 공회에 잡히게 되고 '라가'라고 형제에게 공회에 잡히게 된다는 말입니다. “라가”라는 말은 아람어로 '공허한', '지혜가 없는‘ ’속살 없는' 자라는 뜻이다. ‘머리가 텅 빈 자’라고 형제와 자매에게 경멸적인 태도를 가지는 정신적인 멸시라 하겠습니다. 이러한 태도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형제를 멸시한다면 이러한 사람은 공회에 잡히어서 재판을 받아 벌을 받게 된다는 말입니다. 즉 살인은, 사람의 생명을 물리적인 힘에 의해서 죽이는 것만이 아니라 사람의 인격을 멸시하는 것도 인격적인 살인됨을 말합니다.

 

3)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리라

 

미련한 놈의 뜻은 '죽일 자'라는 말입니다. '죽일 놈'이라 하는 모욕적인 말(라가 라는 말과 거의 비슷한 말이다)을 하는 사람은 지옥불에 들어가게 되리라는 말이다. 신앙인이 또는 예수의 제자 된 자가 언어의 생활을 무법하고 비인격적으로 사용하여 상대 형제의 인격을 무시하는 것은 살인과 같음을 예수께서 강조하시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 말씀은 살인만을 놓고 심판하는 것보다는 죄악의 근원적인 것을 근절시키고 해결함으로써 율법의 불완전한 것을 완전케 하는 것이 곧 예수의 새 계명을 말해 줍니다. 복음, 나타난 결과보다는 내재하고 있는 죄악의 근원을 해결함으로써 율법의 불완전을 완전케 합니다.

 

23절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줄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마 5:23-24) 이 말씀은 22절과 연계된 말로서, 사람인 형제와의 관계에서 죄를 짓는 (살인과 같은) 일을 하면서 하나님께 예물을 가지고 제단에 드리는 제사는 하나님께서 열납 하시는 제사가 될 수 없음을 말합니다. 즉, 땅에서 풀어야 하늘에서 풀리고 땅에서 매이면 하늘에서도 매인다. (마 18:18)는 말입니다. 사람에게는 선을 행하지 않으면서도, 외형적으로 드러나는 제물만을 많이 그리고 자주 드리면 그로써 큰 믿음이란 인정받으라고 기대하는 외식하는 자들에게 하시는 예수의 경고다. 예수께서는 분명하고도 단호하게, 그런 자들은 결단코 하나님으로부터 어떤 응답도 받을 수 없다고 말씀하신다. 사도 요한은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 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가 없으니라" (요 1서 4:20) 고 말함으로 하나님 사랑과 사람 사랑을 균형 있게 해야 함을 강조했습니다.

 

“(제단에서) 거기서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줄 생각나거든”

 

이 말씀은 하나님께 예물을 드릴 때, 하나님께서 은혜와 사랑을 베푸사 형제로부터 원망 들을 만한 잘못된 일을 생각에 떠오르게 할 때를 일컫는 말입니다. "존귀에 처하나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 같도다"(시 49:20)라고 한 것과 같이 아무리 좋은 예물을 하나님께 드리려고 제단에 가있으나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잘못된 과오가 생각나지 않는다면 (죄가 있음에도) 이런 자의 제사와 예물을 드리러 갈 때 형제로부터 원망들을 말이 생각나는 것은 성령의 감동으로 계시되는 은혜라고 믿습니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하게 하시리라"(요 14:26) 이런 성령의 감동을 받은 자들은 회개의 열매를 즉각 맺어야 합니다.

 

24절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성전에서 예물 드릴 때, 형제로부터 원망들을 일이 생각나면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즉 하나님과의 신앙과 예배 관계보다 우선적으로 행할 것이 있는데 그것이 "먼저 형제와 화목" 하는 것입니다. '먼저'라는 말은 신앙과 예배의 질서를 지시하는 말입니다. 하나님께 예물을 드리는 신앙인이 예물을 드리는 일을 중단하고 원망할 형제를 찾아가 그 형제와 화목을 하는 행위는 하나님과의 수직적 신앙의 관계를 이루는 과정에서 깨달은 수평적 신앙의 관계를 실천하는 결단입니다. 형제로부터 원망들을 만한 일을 깨달은 처소가 하나님께 예물을 가지고 간 성전이고, 깨달은 시간은 하나님께 "예물을 제단에 드리" (23절)는 시간입니다. 이는 제사 즉, 예배 도중에 깨달았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수직적 관계를 우선하는 신앙인들에게는 형제와의 관계도 깨우쳐지고 개선되어집니다. "예물을 제단에 두고 형제와 화목하고"라는 말은 범죄를 예배 시에 깨달은 신앙인 우선 행할 것과 해결할 것을 머뭇거리지 말라는 신앙 교훈입니다.

 

“그 후에 예물을 드리라”

 

이 말씀은, 재단에 예물을 드리는 중에 성령으로 깨우침을 (형제로부터 원망들을 일 즉, 22절과 같은 일들을) 받았을 때 형제와 화목한 후에 다시 와서 제단에 예물을 드리라는 말입니다. 갈릴리에서 예루살렘에 일주일간 걸어서 예배하러 왔다가도 형제에게 원망들을 일이 생각나면 고향에 가서 화해하고 다시 성전에 와서 예배를 드려야 주님께서 받아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의 요점은, 제단에 예물을 드리는 제사 즉, 예배의 가치는 깨닫게 하는 은혜를 주시며 (요 14:26) 깨닫는 자는 실천하며(죄에 대한 회개의 열매로 맺은 자는 다시 성전에 예물을 드리고 제사(예배) 드리는 데 있다는 가르침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을 무시하는 것, 사람에게 분노하는 것은 영적인 살인이며 이 살인적인 죄악을 제단에 예물 드리는 예배를 통하여 깨닫고 회개하고 제단에 예물을 드릴 때 신령한 삶을 살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심판을 받지도 않고 공회에 끌려가지도 않고 지옥에 가지도 않는 새로운 피조물이 됩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일을 행하기는 예수는 율법과 선지자를 폐하지 않고 완전케 하는 신령한 역사를 일으키는 분이십니다.

 

25절 "너를 소송하는 자와 함께 길에 있을 때에 급히 화해하라. 그 소송하는 자가 너를 재판관에게 내어주고 재판관이 검찰에 내어주어 감옥에 가둘까 염려하라" 여기서 '너를'이라는 말은 예수님의 제자 또는 예수님을 따르는 자인 '너'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나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에게도 소송하는 자가 있을 만한 잘못이나 실수를 범한 가능성이 있음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소송하는 사람이 있을 정도라고 한다면 길에서 만나게 되었을 때 예수님의 제자 된 자나 예수님을 따르는 신앙인을 변론을 하며 자기의 정당성을 주장하지 말고 정직한 마음과 진실된 심령으로 소송하는 사람에게 급히 화해(회개) 함으로써 소송하는 자의 마음에 분노를 가라앉히며 소송을 중지시키라는 가르침입니다.

 

이렇게 함으로 마음에 분노를 가라앉히며 소송을 중지시키라는 가르침입니다. 이렇게 함으로 예수님의 제자 된 자로서 화해의 길을 행하여 신앙인의 인격과 품위를 나타낼 것을 가르쳐주셨습니다. 이 말씀이 가르쳐주는 또 다른 신령한 의미는 '소송하는 자'는 율법과 선지자(롬 8:33)이며 '길에 있을 때'는 인생의 삶을 사는 동안 즉, 나그네 인생을 의미합니다. '급히 화해하라'하는 것은 율법이 대언자(선지자, 예언자)가 되어 나의 죄를 지적할 때 주저하거나 자기변명을 하지 말고 급히 회개(사화)함으로써 율법의 소송을 무력하게 만들라는 말입니다. 회개는 소송받은 사람을 법정으로 끌어갈 수 없도록 만드는 능력이 됩니다. 사화(회개)는 율법을 완전케 하는(마5:17) 능력이 됨을 가르친 말입니다.

 

또 그 소송하는 자가 너를 재판관에게 내어주고 재판관이 검찰에 송치하여 감옥에 가둘까 염려하라고 했습니다. '소송하는 자'는 신앙인과의 감정과 원한이 있듯 없든 간에 범죄로 인한 피해자입니다. 이러한 소송하는 자에게 화해(회개)가 없을 때 이 소송자는 재판관에게 소송할 것이 분명합니다. 재판관은 법대로 재판하고 또 법무 관리를 통하여 감옥에 가두게 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이 점을 염려해서 화해하게 됨으로써 신앙인의 사회생활이 불행한 일이나 실덕(사화하지 않음으로)되어 스스로의 염려와 불행을 만들어서는 안 됨을 말하였습니다. 또한 이 말씀이 영적으로 의미하는 내용은 (1) 소송하는 자는 율법이며(롬 3:20, 4:15, 6:20, 7:7, 7:13, 갈 3:13) (2) 재판관은 하나님 (롬 3:19) (3) 검찰은 천사(마 13:39) (4) 감옥은 지옥(마 25:41,눅 16:23)을 각각 의미합니다. 우리가 세상의 감옥에 갇히는 것도 염려해야 하겠으나, 궁극적으로 지옥에 들어가지 않도록 거룩한 염려를 해야 합니다. 인생 삶의 길에서 범죄로 인한 나와 원한 관계가 있는 자와, 인간적으로 또는 도덕적으로 용서와 화해가 이루어졌다 해도 (외식과 형식으로) 영원한 재판관이신 하나님 앞에서는 율법의 소송과 하나님의 심판을 면할 수 없기 때문에 그리스도 예수의 이름으로 하나님에게 용서를 받지 않는다면 영원한 감옥에 신세를 면할 수 없습니다.

 

26절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네가 한 푼이라도 남김없이 다 갚기 전에는 결단코 거기서 나오지 못하리라"

 

예수님께서는 이 말씀에서 '진실로'라는 말을 사용했습니다. 즉, 신중한 사건임을 의미합니다. '호리라도'의 말은 라틴어의 콰드린스(quadrans) 즉, 1/4 앗사리온이라는 말입니다. 두 렙돈(마12:42)에 해당되는 화폐의 단위[2,000원 정도]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제자 된 자들과 따르는 신앙인은 금전거래에 있어서 철저한 결산을 (회계로) 보지 않는다면 옥에서 나올 수 없음을 말하며 율법의 소송과 재판을 면할 수 없음을 뜻합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께서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신앙의 정상을 벗어나 하나님의 심판과 화를 받을 유대교의 지도자들이나 바리새인, 서기관처럼 되지 말고 구별되어 철저한 진실과, 깨끗한 금전 생활과, 경건한 신앙인으로 화해와 성결한 삶을 살 것을 가르쳐주셨다.

살인의 범죄를 벗어나기 위해 (1)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마음을 다해 목숨을 다해 힘을 다해 사랑하며 (2)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며 (3) 내 자신의 생명을 주신 주님께 늘 감사하며 찬양해야 합니다. 218장(통 369장) 찬송을 애송합시다.

 

1. 네 맘과 정성을 다하여서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네 몸을 아끼고 사랑하듯 형제와 이웃을 사랑하라

주께서 우리게 명하시니 그 명령 따라서 살아가리

 

2. 널 미워 해치는 원수라도 언제나 너그럽게 사랑하라

널 핍박하는 자 위해서도 신실한 맘으로 복을 빌라

주께서 우리게 명하시니 그 명령 따라서 살아가리

 

3. 나 항상 주님을 멀리하고 형제를 사랑하지 못하였다

이러한 죄인을 사랑하사 주께서 몸 버려 죽으셨다

속죄의 큰 사랑받은 이 몸 내 생명 다 바쳐 충성하리 아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내 속에 있는 미움, 시기, 중상모략, 거짓을 다 엎어 버리고, 깨끗하고 경건한 주님의 사랑, 은혜, 감사, 평화로 채웁시다. 갈릴리 해변의 모닥불에서 주님과의 사랑이 회복되었습니다.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질문 앞에 주님을 사랑하듯이 내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셔서 살인의 동기를 없애버리고 아가페 사랑으로 승리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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