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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 2장 설교말씀] "새벽별의 은총" -두아디라 교회(계 2:17-29)

성령의 능력 2021. 4. 22.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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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요한계시록 2장 설교말씀 중에서 새벽별의 은총을 받으라는 두아디라 교회의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주님은 두아디라 교회에 말씀하셨습니다. 네 사업과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인내를 안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네 나중 행위가 처음 것보다 많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교회가 복음을 전하는 일보다 세상의 일에 더 바빠지면 안 됩니다. 성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의 정욕적인 일 때문에 하나님의 예배에 소홀해지면 안 됩니다. 사업이 잘 되어서 주일예배를 참석하지 못한다면 그것도 폐단입니다. 우리는 두아디라 교회처럼 되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 칭찬받는 교회와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제목: "새벽별의 은총" (두아디라 교회)

 

설교자: 윤사무엘 목사

 

본문: 계 2:17-29

 

요절: “이기는 자와 끝까지 내 일을 지키는 그에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리니 그가 철장을 가지고 그들을 다스려 질그릇 깨뜨리는 것과 같이 하리라. 나도 내 아버지께 받은 것이 그러하니라. 내가 또 그에게 새벽 별을 주리라.”(계 2:26-28)

 

주제: 두아디라 교회처럼 사랑, 믿음, 섬김, 인내와 영적 승리로 새벽별의 은총 받자

 

소아시아 일곱 교회(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 계 1:11) 가운데 두 번째 교회인 두아디라 교회에 주신 편지를 읽겠습니다. 계 2:18-29 합독합시다.

 

계 2:18 두아디라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그 눈이 불꽃같고 그 발이 빛난 주석과 같은 하나님의 아들이 이르시되

계 2:19 내가 네 사업과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인내를 아노니 네 나중 행위가 처음 것보다 많도다

계 2:20 그러나 네게 책망할 일이 있노라 자칭 선지자라 하는 여자 이세벨을 네가 용납함이니 그가 내 종들을 가르쳐 꾀어 행음하게 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는도다

계 2:21 또 내가 그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었으되 자기의 음행을 회개하고자 하지 아니하는도다

계 2:22 볼지어다 내가 그를 침상에 던질 터이요 또 그와 더불어 간음하는 자들도 만일 그의 행위를 회개하지 아니하면 큰 환난 가운데에 던지고

계 2:23 또 내가 사망으로 그의 자녀를 죽이리니 모든 교회가 나는 사람의 뜻과 마음을 살피는 자인 줄 알지라 내가 너희 각 사람의 행위대로 갚아 주리라

계 2:24 두아디라에 남아 있어 이 교훈을 받지 아니하고 소위 사탄의 깊은 것을 알지 못하는 너희에게 말하노니 다른 짐으로 너희에게 지울 것은 없노라

계 2:25 다만 너희에게 있는 것을 내가 올 때까지 굳게 잡으라

계 2:26 이기는 자와 끝까지 내 일을 지키는 그에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리니

계 2:27 그가 철장을 가지고 그들을 다스려 질그릇 깨뜨리는 것과 같이 하리라 나도 내 아버지께 받은 것이 그러하니라

계 2:28 내가 또 그에게 새벽 별을 주리라

계 2:29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두아디라(Thyatira)는 버가모에서 남동쪽으로 약 32km 떨어진 위치에 있으며 그 뜻은 “성읍”입니다. 현지명은 아킷사(Akhissar)라 부릅니다. 서머나(현재 이즈미르)에서 북동쪽으로 105km에 있는 아킷사 호수 남쪽에 있는 교회터에는 석축 기둥과 담장만 남아 있습니다. ‘두아디라’는 바울이 유럽 선교에서 첫 교회를 세운 빌립보 강가에서 만난 자주장사(a seller of purple, 당시 로마 왕실에 납품한 옷감) 루디아(Lydia)의 고향으로 소아시아 루디아 도에 있는 도시입니다(행 16:14). 두아디라는 상공업도시로 모직, 직조, 염색, 제혁, 도기 등 생산지였으며, 동업조합이 많이 있었고 특히 자주색 염색천을 많이 수출했답니다. 각 동업조합마다 섬기는 우상들이 있었고, 각종 우상을 섬기는 제사들이 많았습니다. 제사 후에는 음란한 축제가 이어졌는데, 당시 주민들이 예수님을 믿기 위해 동업조합을 탈퇴하면 직장과 사회적 직위를 박탈당하고 빈곤, 배고픔, 핍박을 받아야 하기에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루디아가 고향땅에 교회를 세웠다고 합니다. 이런 영적 전쟁을 매일 치루어야 했답니다.

 

버가모와 사데를 잇는 교통의 요지에 위치하고 있는 두아디라는, BC 7세기 경 리디아(Lydia)인들이 거주하며 "펠로피아(Pelppia)"라 불렀습니다. BC 3세기경 알렉산더의 후계자 셀류커스(Seleucus 1세)는 이곳에 도시를 세우고 상업과 산업의 중심지로 발전시켰으며, 그의 딸 이름이 두아디라의 이름으로 이 도시명을 개명했답니다. 한때 로마와 동맹 관계에 있던 버가모 왕국의 지배하에 있다가 로마의 속령이 되었답니다. 비잔틴 제국(AD 330-1425년) 시에는 아시아 일곱 교회 중의 하나가 위치하여 크게 번성하였으며 1425년 오토만 제국의 지배를 받게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두아디라의 역사적 중요성은 지형상 훌륭한 요새라고는 할 수 없으나 지리적으로 길고 넓은 골짜기 지대에 위치해 있어서 중요한 군사적 요충이 될 수밖에 없었고, 많은 유대인들을 이주시켰기 때문에 유대인들의 전통적인 상술과 지리적 특성은 자연히 상업도시로 번성케 했으며, 그 당시 상인조합(길드Guild) 조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현재 두아디라에 가보면 과거의 어떤 유적의 흔적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단지 도시의 한 귀퉁이에 아마도 아폴로 신전으로 보이는 신전 하나와 회랑이 있는 길, 그리고 하나의 커다란 비잔틴 교회 기둥들만이 부서진 상태로 그냥 방치 되어 있습니다. 격세지감을 느낍니다.

 

소아시아에 보내는 일곱 교회 서신들의 일곱 가지 내용을 차례로 살펴보겠습니다.

 

(1) 두아디라 교회의 사자는 알려지지 않지만 사도 요한의 제자일 것입니다.

 

(2) 두아디라 교회에 나타나신 예수님의 모습:

 

그 눈이 불꽃(a flame of fire)같고 그 발이 빛난 주석(fine brass)과 같은 하나님의 아들(계 2:18)입니다. 계시록 1:14-15에 나오는 주님의 모습입니다.

 

오늘 두아디라 교회에 찾아오신 주님의 모습이 큰 도전이 됩니다. “불꽃같은 눈으로” 지켜보시는 주님이 두려워 우리는 죄를 지을 수 없습니다. 저가 1960년대 주일학교에서 가장 많이 들은 메시지가 ‘죄를 지으면 무서운 지옥에 간다’는 내용인데 지옥에 가기 싫어서라도 감히 죄를 지을 생각을 못했습니다. 주님의 눈이 불꽃같고 그 발이 빛난 주석 같으시다는 표현이 심판의 주님을 떠오르게 됩니다. 러시아의 소설가 도스토예프스키(Fyodor Mikhailovich Dostoevsky, 1821~ 1881)는 말하기를 “만약 하나님이 참으로 존재하지 않는다고 확신만 한다면 사람들은 못할 짓이 없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상황이 달라졌기 때문에 태도가 바뀌는 것이 아니라, 어떤 상황도 바꾸실 수 있는 하나님을 믿으며 우리의 태도를 지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불꽃같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켜보시고 있기 때문입니다. 계 2:23을 합독합시다. “또 내가 사망으로 그의 자녀를 죽이리니 모든 교회가 나는 사람의 뜻과 마음을 살피는 자인 줄 알지라. 내가 너희 각 사람의 행위대로 갚아 주리라.”

 

전 12:14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 간에 심판하시리라”

히 9:27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주님의 불꽃같은 눈동자로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을 보십니다. 우리의 생각과 마음까지 다 보고 계십니다. 늘 심판을 염두에 두시고 언행에 경건한 생활을 합시다.

 

주님의 발이 주석(fine brass) 같다고 하십니다. 옛날 거울을 빛난 주석(동, 놋 bronze)으로 만들었답니다(고전 13:12). 마음과 행동과 생각까지 다 비추는 거울입니다. 심판의 도구입니다. 바로 이분이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단 3:25, 시 2:7, 마 3:17, 4:3-6, 16:16, 27:54, 눅 1:35, 요 1:14, 1:49, 3:16-18, 3:35-36, 5:25, 10:36, 행 8:37, 롬 1:4, 8:32).

 

(3) 칭찬의 말씀:

 

주님께서 두아디라 교회에 대해 칭찬하시는 말씀은 “내가 네 사업과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인내를 아노니 네 나중 행위가 처음 것보다 많도다.” (계 2:19)

 

주님께서 두아디라 교회의 실천적 믿음을 칭찬하셨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처럼 "너희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우리 하나님 앞에서 쉬지 않고 기억함이니." (살전 1:3) 모범적인 교회였습니다.

 

첫째는, “내가 네 사업을 안다”고 하셨습니다. 아마도 이 교회에는 하나님의 사업을 열심히 했던 것 같습니다. 복음 전하고 봉사하고 가르치고 주님의 말씀대로 살려는 모습입니다. 사업은 주님을 위하여, 주님 때문에 하는 일을 말합니다. 계 2:2에 '네 행위와 수고를 알고'라는 말씀은 주님 때문에 힘쓰는 일을 말하고 있습니다.

둘째는, ‘사랑’이 있었습니다. 성도들끼리 서로 발을 씻어주고, 어쩌면 믿지 않는 자들에 대하여도 관용하고 사랑하는 그런 교회였을 것입니다.

셋째는, ‘믿음’도 있었습니다. 이들의 영적 상황이 결코 평탄치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우상숭배와 미신이 성행하는 이런 도시에서 자신의 믿음을 지키는 일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넷째, ‘섬김’이 있는 교회였습니다. 서로 우애하고 봉사하고 손대접하기를 힘썼습니다.

다섯째, ‘인내’를 칭찬하셨습니다. 환난과 핍박 가운데서 진리를 지키며 참아냈습니다.

여섯째, "네 나중 행위가 처음 것보다 많도다." 에베소 교회는 처음 사랑을 버렸다고 책망을 받았는데 두아디라 교회는 처음 행위보다 언행일치가 점점 더 나아졌다고 칭찬하십니다. 두아디라 교회는 끝이 더 좋은 교회였습니다. 가면 갈수록 처음보다 더 좋은 교회였습니다. 가면 갈수록 처음보다 더 잘한 교회였습니다. 환난과 고난과 핍박이 몰아치는 형편에서도, 모범적으로 신앙생활을 했으며 우상숭배와 미신이 성행하는 도시에 살면서도 시간이 가면 갈수록 주님을 더 잘 믿었습니다.

 

(4) 책망의 말씀:

 

이런 칭찬만 있으면 얼마나 좋습니까? 두아디라 교회가 책망 받은 말씀이 뒤따릅니다.

 

음행, 간음, 사탄의 깊은 것이라 하여 심하게 책망하셨습니다(계2:20-24).

 

“자칭 대언자라 하는 여자 이세벨을 네가 용납함이니 그가 내 종들을 가르쳐 꾀어 행음하게 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는도다. 또 내가 그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었으되 자기의 음행을 회개하고자 하지 아니하는도다. 볼지어다. 내가 그를 침상에 던질 터이요 또 그와 더불어 간음하는 자들도 만일 그의 행위를 회개하지 아니하면 큰 환난 가운데에 던지고 또 내가 사망으로 그의 자녀를 죽이리니 모든 교회가 나는 사람의 뜻과 마음을 살피는 자인 줄 알지라. 내가 너희 각 사람의 행위대로 갚아 주리라(계 2:20-23).

 

이세벨은 북왕국 이스라엘의 7대 왕 아합의 아내로 바알 종교를 퍼뜨린 시돈 왕국 출신으로 음행과 우상숭배의 유혹의 대명사입니다(왕상 16:31, 18:4, 13, 19, 19:1-2). 정략적으로 정책적으로 음란 종교인 바알 우상을 섬기도록 하고 있습니다. 이세벨은 우상숭배뿐 아니라 그것을 지적하고 반대하는 엘리야 선지자를 잡아 죽이려고 합니다. 그 죄의 모양은 이세벨이라는 이름 속에도 나타납니다. 이 여자는 돈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왕권을 이용해서 백성의 재산을 약탈합니다. 나봇의 포도원을 강탈하기도 했습니다(왕상 21:1-26). 그래서 남편 아합의 왕조는 이 여자로 인해 완전히 몰락하게 됩니다. 두아디라 교회에 자칭 이세벨이라는 사이비 이단이 들어와 영적 혼음을 강요했는데 주님께서는 이런 배교 행위를 회개하라고 기회를 주십니다. 앞에서 하셨던 칭찬이 무색하게 긴 책망이 나오고 있습니다.

거룩함을 상실한 그 어떤 덕목도 하나님 앞에서 책망의 대상이었던 것 같습니다. 성적으로 타락한 그 도시에서 영향을 받은 두아디라 교회를 하나님께서 무섭게 질책하십니다. 아무리 좋은 장점을 가지고 있어도 거룩함을 상실하면 하나님이 쓰실 수 없습니다. 책망을 받은 이유는 거룩함이 훼손되었기 때문입니다. 사단의 가장 강력한 무기는 우리의 거룩함을 훼손하는 것입니다. 팀 라헤이(Tim LaHaye, 1926~2016, 가정생활 세미나)가 쓴 글이 있습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달라스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였습니다. 어느 부인 곁에 턱수염을 기른 젊은 청년이 앉아 있었습니다. 기내 식사가 나왔는데 이 청년은 음식 먹기를 거절하였습니다. 그러자 옆자리의 부인은 청년에게 몸이 불편하냐고 물었습니다. 청년은 몸이 불편한 것이 아니고 ‘금식 기도하는 날’이기에 음식을 먹을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이 부인은 그가 기독교인인 줄 알고 자신도 예수님을 믿노라고 밝히면서 청년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것에 대하여 물어보았습니다. 그런데 그녀는 그의 대답을 듣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아니오, 나는 사탄 숭배자입니다. 미국 전역에 있는 목회자들과 크리스천의 가정과 결혼생활을 파괴하기 위해 사탄 교회 지도자들이 매주 화요일을 금식기도의 날로 정하고 기도하고 있습니다”라고 설명하면서, 덧붙여 "우리 가운데 몇 명은 지금 달라스에 살고 있는 목회자와 크리스천들을 위하여 집중적으로 기도하고 있는 중입니다."

 

사도행전 16장 14절에 나오는 빌립보교회의 첫 번째 성도였던 루디아가 바로 두아디라 출신 비단 장사였습니다. 두아디라 시의 가장 큰 특징은 산업이 발달되어 있었기 때문에 오늘날의 노동조합과 비슷한 ‘길드’라는 동업조합이 아주 성행해서 조합원이 되어야 취직도 되고, 은행거래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동업조합은 이 도시의 정치, 경제, 사회, 더 나아가 종교에 까지도 상당한 영향을 끼칠 정도로 그 힘이 막강했습니다. 그리고 이 노동조합은 자체적으로 섬기는 수호신이 있었는데, 조합원들은 사업의 번창을 위해서 정기적으로 자기들이 섬기는 수호신에게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제사가 끝나면 제사 음식을 나누어 먹으면서 진탕 놀았는데, 이때 여인들을 불러들여 음행을 저지르기도 했습니다. 이런 풍습이 교회 안까지 들어왔고 두아디라 교회는 이세벨 당 즉 사이비 이단을 허용했다는 것이 큰 책망을 듣는 이유였습니다. 즉 "거룩함의 훼손"입니다. 두아디라 교회에 사랑의 수고와 인내와 믿음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왜 그들이 이세벨의 행위를 용납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자신들은 열심히 신앙생활을 했지만,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하여 무감각했던 모양입니다.

 

당시 도시의 상황을 조금 더 살펴보겠습니다. 조금 전에 언급한 대로 두아디라에는 상업이 발달되어 있었기 때문에 '길드' 즉 조합이 잘 발달되어 있었고, 거기에 소속되지 않으면 불이익을 당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곳에 소속이 된다는 것은 그들과 함께 제사를 지내고 부도덕한 행위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마도 많은 크리스천들이 그러한 사회적 환경 가운데서 고민했을 것입니다. 그때 이세벨이라는 여인이, 아니면 은유적으로 생각할 수도 있지만 "괜찮다!"라고 "용납하라고" 제안했을 것입니다. 어쩌면 마음을 편하게 하므로 양심을 무디게 하는 거짓 대언자의 무리였을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이 그것을 책망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런데 그곳 두아디라에는 걸출한 믿음의 여인이 있었지요. 자주장사 루디아로 알려진 여인, 그래서 사도바울을 돕고 자신의 집을 내주어 빌립보 교회가 설 수 있도록 했던 한 여인입니다.

 

당시 사회적은 상황을 생각한다면 여인이 그런 사업을 하고, 그런 역할을 한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집을 내어놓는 단순한 희생의 차원에서가 아니라, 그녀의 능력이 대단합니다. 어쩌면 단순한 자주장사가 아니라 당시 패션을 주도하는 사업가였을지도 모릅니다. 중요한 것은 당시 한 걸출한 여인을 통해 하나님의 교회가 거룩하게 세워졌다는 것입니다. 루디아는 고향에 돌아와 두아디라 교회를 개척했을 것입니다. 이런 교회에 이세벨당과 같은 이단이 들어와 교회의 영적 흐름에 흙탕질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날 한국교회도 두아디라 교회의 책망받은 내용이 없는지 살펴봅시다. 사랑이 없어서, 믿음과 각종 집회와 모임, 예배 및 섬김이 없어서, 말씀이 부족해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언제부터인가 거룩함이 상실되어 가면 그 모든 것이 의미를 잃기 시작합니다. 거룩함이 훼손된 어떤 수고와 활동도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살전 4:3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곧 음란을 버리고."

엡 1:4 "곧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교회의 본질인 거룩함이 회복되어야 합니다. 이 거룩성을 넘어뜨리고 좀 먹는 이세벨 당을 과감하게 청소하고 진리로 거룩함을 회복해야 합니다(요 17:17).

 

죄의 뿌리가 되는 것을 진단하고 청소하여 쓴 뿌리는 치유하고 누룩은 청소하고 위선은 과감하게 버려야 합니다. 이것이 구체적인 회개입니다. “내가 그를 침상에 던질 터이요 또 그와 더불어 간음하는 자들도 만일 그의 행위를 회개하지 아니하면 큰 환난 가운데에 던지고 또 내가 사망으로 그의 자녀를 죽이리니 모든 교회가 나는 사람의 뜻과 마음을 살피는 자인 줄 알지라. 내가 너희 각 사람의 행위대로 갚아 주리라”(계 2:22-23)

 

본문은 이세벨을 용납할 때 세 가지의 심판이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① 침상에 던지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심판인 질병을 통해서 징계를 받는다는 것입니다. 이세벨은 원수에 의해 창밖에 던져져 처참한 심판을 당하고 죽음을 당하는 불행한 여자입니다(왕하 9:30-33). ② 큰 환난 가운데 던져진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죄악을 회개치 않으면 환난이 기다린다는 경고입니다. 고통, 재난, 슬픔입니다. ③ 사망으로 그의 자녀들을 죽인다는 엄청난 심판입니다. 여기 그의 자녀라는 말은 이세벨 주의를 따르는 영적 자녀를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범죄 한 후 회개하지 않는 자들에게 병을 주고, 환난을 주고, 자녀들을 치겠다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5) 훈계의 말씀 (계 2:24-25)

 

“두아디라에 남아 있어 이 교훈을 받지 아니하고 소위 사탄의 깊은 것을 알지 못하는 너희에게 말하노니 다른 짐으로 너희에게 지울 것은 없노라. 다만 너희에게 있는 것을 내가 올 때까지 굳게 잡으라.”

 

예수님의 눈이 불꽃같습니다.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을 바라보시며 그들의 완악함으로 근심하사 노하심으로 저희를 둘러보셨습니다(막 3:5). 우리들이 아무리 감추려 해도 불꽃같은 주님의 눈빛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가야바 법정 마당에서 주님을 세 번씩이나 부인하던 베드로를 바라보시던 예수님의 눈길이 있습니다. 법정에서 닭이 울기 전 예수님을 부인했던 베드로를 바라보시던 예수님의 눈빛은 질책이 아닌 사랑과 연민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눈빛이 얼마나 강렬했는지 베드로는 밖으로 나가 통곡하고 울었습니다. 아마도 베드로에게 그 예수님의 눈빛은 평생 가슴속에 남아 있었을 것입니다(눅 22:60-61)

 

악인들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절대로 드러나지 않으면 들키지 않으면 죄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입니다. "보지 않으면 심판하지 않는다!" 죄를 짓는 자들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늘 들키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들키지 않으리라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지으신 것이 하나라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오직 만물이 우리를 상관하시는 자의 눈앞에 벌거벗은 것같이 드러나느니라." (히 4:13) 우리가 하나님의 사람이라면, 우리 교회가 하나님의 교회라면, "그 눈이 불꽃같고 또 사람의 뜻과 마음을 살피는" 그리스도의 임재 가운데 사는 것을 배워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당시 사이비 이단 이세벨 당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었은데 회개하지 않고 계속해서 음행을 했다는 것입니다.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요? 우리 주님께서 오늘 무서운 심판의 말씀 역시 협박이 아니라, 돌아오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에 이르기를 원하십니다." (벧후 3:9)

 

"모든 사람이 구원받기를 원하십니다." (딤전 2:4)

 

바로 그분이 "그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었으되"(21절), 그들이 음행을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오늘 말씀의 초점은 징계의 내용에 있는 것이 아니라 회개의 기회가 열려 있음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간절히 원하시는 말씀은 회개와 진리 사수입니다. ‘사탄의 깊은 것’에 빠지지 말고 그들이 받은 복음의 진리를 주님 오실 때까지 굳게 잡으라는 것입니다. 너희에게 있는 것 사업, 사랑, 믿음, 섬김, 인내, 하나님이 주신 이 모든 선물을 굳게 잡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은혜를 받아야 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받은 은혜를 유지하고 변함없이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생활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고후 6:1)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잘 간직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6) 약속의 말씀(계 2:26-28)

 

26 이기는 자와 끝까지 내 일을 지키는 그에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리니

27 그가 철장을 가지고 그들을 다스려 질그릇 깨뜨리는 것과 같이 하리라 나도 내 아버지께 받은 것이 그러하니라 28 내가 또 그에게 새벽 별을 주리라

 

그러나 이세벨의 교훈을 받지 아니하고 말씀대로 끝까지 거룩함을 지키는 자들에게 두 가지의 약속을 하십니다.

 

첫째는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십니다. 먼저 26절을 보면 "이기는 자와 끝까지 내 일을 지키는 그에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리니"라고 말씀하셨는데, 여기서 권세란 헬라어로 "엑수시아"라고 합니다. 이 말은 지배권, 통치권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지키며 악에게 승리하는 사람은 만국을 다스릴 통치권을 주신다고 합니다. 27절에 “그가 철장을 가지고 그들을 다스려 질그릇 깨뜨리는 것과 같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시 2:9에도 “네가 철장으로 그들을 깨뜨림이여 질그릇 같이 부수리라 하시도다”는 말이 나옵니다. 전쟁에 출전하는 장군들 앞에 왕이 철장으로 도자기를 부수면서 사기를 충전시켰다고 합니다. 모든 사이비 이단과 허위와 말씀에 역행하는 것들은 주님의 철장으로 도자기가 부서지듯 무너지게 되어 있습니다.

 

둘째는 새벽 별을 주십니다. 28절을 보면 "내가 또 그에게 새벽 별을 주리라"라고 약속하셨는데, 여기 ‘새벽별’이란 무엇을 의미할까요? 요계 22:16절에서 "나 예수는 교회들을 위하여 내 사자를 보내어 이것들을 너희에게 증거 하게 하였노라. 나는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니, 곧 광명한 새벽 별(the bright and morning star)이라 하시더라."라고 말씀하고 있듯이, 새벽별이란 바로 우리 예수님을 의미합니다. 주님의 말씀을 붙들고 신앙의 순수성을 지킨 사람에게는 주님 자신을 주시겠다고 합니다. 새벽별의 은총입니다. 그러니까 주님의 말씀을 붙들고 악에게 승리하는 사람에게, 음란에 빠지지 아니하고 신앙의 순수성을 지키는 사람에게, 비록 음란한 행동을 했다 할지라도 그것을 회개하고 주님께서 원하시는 거룩한 삶을 회복하는 사람에게는 만국을 다스릴 통치권과, 주님과 같이 동행할 수 있는 축복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여호수아서를 보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요단강을 건너는데 전술을 배우거나 무술을 연마하게 하거나 체력을 단련시키지 않고, 성결 의식을 치르라고 명령하십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이스라엘 백성을 하나님의 백성답게 가나안 사람들과 구별시키기 위해서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만나는 가나안은 극히 세속적이고 타락한 문화의 중심지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그 문화에 오염되는 것을 막기 위해 '성결'의 옷으로 갈아입히셨습니다. 사실 이 시대의 문화는 가나안 문화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세속적이고 반(反) 기독교적입니다. 하나님에 대해 정면으로 도전장을 내고 있습니다. 이런 세상에서 거룩하게 살기 위해서는 특별한 삶의 자세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주님과 함께 동행하는 자에게 만국을 다스릴 수 있는 특권과 권세를 주십니다. 오늘 두아디라 교회에 주시는 경고가 심판이 아니라 축복이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 한국교회를 향해 바라보시는 불꽃같은 주님의 눈앞에서 심판이 아닌 권세를 누리는 거룩함이 회복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7) 들을 귀가 있는 자는 성령님께서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계 2:29)

 

성령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변함없는 신앙생활을 할 수 있습니까?

 

첫째로 예수님을 바라볼 때 변함없는 은혜와 진리와 성령으로 충만케 하십니다. 우리는 변하기 쉬운 인간입니다. 히 12:2절에서는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라고 말씀하십니다.

 

둘째로, 사탄의 유혹, 사망 권세를 다 이기시고 부활하신 주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예수 믿고 세례 받은 것은 예수님과 하나(合一)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산다는 것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주시는 능력과 부활의 생명이 우리에게 있게 되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셋째로, 변함없는 신앙생활로 고백하면서 달려가야 합니다. 두아디라 교회가 칭찬을 받았던 믿음, 사랑, 소망의 인내, 하나님의 사업을 열심히 하면서 사이비 이단 이세벨을 철저하게 회개하고 변함없이 순수하게 믿음의 생활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버가모 시대에 로마 황제가 기독교로 개종한 이후부터 기독교회는 정치권력과 밀착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AD 538년에는 가톨릭은 로마 황제로부터 종교, 정치, 군사력에 관한 막강한 권세를 받게 되었습니다. 이때부터 가톨릭이 가르치는 교리를 거절하는 성도들에 대한 핍박의 시대가 시작되었습니다(J. L. Von Mosheim, Ecclesiastical History, I, 369). 이 기간 동안 8천만 명 이상의 그리스도인들이 순교당했습니다. 두아디라 교회 시대는 AD 538년부터 시작해서 1517년 마틴 루터의 교회 개혁 운동이 일어나기까지 약 천 년 동안의 긴 기간인데 세계 역사는 이 기간을 “신앙의 암흑시대”라고 부릅니다. 이 시대 동안 가톨릭의 권세는 유럽의 국왕들을 지배하고 장악할 만큼 강력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제시하는 교리와 명령을 거절하고, 성경이 말하는 진리를 고수하는 그리스도인들을 잔혹하게 핍박하였습니다. 교회 역사를 살펴보면, 이 시기 동안 가장 많은 진리가 왜곡되고 변질되었습니다.

거짓 교리와 거짓 복음을 거절한 하나님의 백성들은 광야와 깊은 산으로 피신하여 진리를 간직하고 살았으며, 그곳에 교회를 세우고 하나님께 예배드렸습니다. 그러나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유럽의 대도시에 있던 교회가 큰 건물과 장엄하고 화려한 예식 그리고 거대한 조직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그것이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교회인 줄 알고 거짓 교리들을 받아들였습니다. 두아디라 교회 안으로 밀려들어온 배도로 인하여 믿음의 단순성이 외적인 행함과 고행으로 대치되고 희생되었습니다. 두아디라 교회 시대에 와서, 교회는 그리스도께서 주신 단순한 복음을 외적 행함과 화려하고 엄숙한 예식과 고행으로 만들었습니다. 이 시기는 기독교회가 참으로 깊은 상처를 받은 시기였습니다. 교회는 마음의 중심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사랑과 회개의 신앙을 저버리고 죽은 행위와 의식을 신앙의 기초로 만들어 나갔습니다. 그러나 두아디라 교회는 진리의 말씀을 지켜 16세기 유럽의 교회 개혁을 준비했다고 합니다. 새벽별의 은총을 받은 교회의 모습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시대는 두아디라 교회처럼 음행과 음란이 교회 안으로 밀려옵니다. 세속의 물결이 교회 안으로 들어오면 교회는 침몰하고 맙니다. 노아의 방주에 역청을 칠해서 물이 스며들지 못하도록 철저하게 했기에 방주는 1년 이상 물에 떠있어도 가라앉지 아니했습니다. 교회를 좀먹고 침몰하는 사이비 이단 세력을 과감하게 청소합시다. 그리하면 새벽 별의 은총을 받게 되어 교회 개혁의 초석을 마련한 두아디라 교회를 본받읍시다.

 

[오늘의 기도]

 

사랑의 하나님, 오늘날 우리 교회에 거룩성이 회복되게 하옵소서. 말씀과 기도와 찬양으로 예배가 회복되게 하시며, 주님으로부터 칭찬을 듣는 신실하고 모범적인 교회가 되게 하옵소서. 내 속에 있는 음란과 거짓의 영을 몰아내게 하시고 주님의 진리로 거룩하게 해 주옵소서. 자신을 늘 반성하여 주님께로부터 책망들을 것이 없도록 관리하게 하옵소서. 오늘 청년주일을 맞이하여 “청년이 무엇으로 그의 행실을 깨끗하게 하리이까? 주의 말씀만 지킬 따름이니이다” (시 119:9)대로 청년의 삶이 거룩하게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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