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데스다 신약성경강해

[마태복음 산상수훈 주일설교말씀] 맹세에 관한 새로운 율법(마5:33-37)

성령의 능력 2021. 4. 18. 1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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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마태복음 산상수훈 주일설교 중에서 맹세에 관한 새로운 율법이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예수님은 함부로 맹세하지 말 것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늘로도 맹세하지 말고 땅으로 맹세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예루살렘으로도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말을 함부로 하지 말고 서원도 함부로 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함부로 맹세하고 지키지 않으면 그것도 하나님 앞에서 죄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올바른 삶을 살면서 하나님이 기뻐하는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주님이 산상수훈을 통해서 가르쳐주신 복음을 잘 지켜나가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드리는 성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제목: 맹세에 관한 새로운 율법

 

설교자: 윤사무엘 목사

 

본문: 마태 5:33-37, 창 35:1-5

 

요절: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도무지 맹세하지 말찌니 하늘로도 말라 이는 하나님의 보좌 임이요" (마 5:34)

 

주제: 언약의 중보자 되시는 예수님만이 참된 맹세의 주인임을 알자

 

마 5:33 또 옛 사람에게 말한 바 헛맹세를 하지 말고 네 맹세한 것을 주께 지키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마 5:34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도무지 맹세하지 말지니 하늘로도 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의 보좌임이요

마 5:35 땅으로도 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의 발등상임이요 예루살렘으로도 하지 말라 이는 큰 임금의 성임이요

마 5:36 네 머리로도 말라 이는 네가 한 터럭도 희고 검게 할 수 없음이라

마 5:37 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으로부터 나느니라

 

오늘은 어린이 주일입니다. 5월의 신록에 대한민국 전체가 꽃동산으로 변한 계절에, 어린이 주일을 맞이합니다. 소파 방정환 선생께서 시작한 어린이날인데 “어린아이들”의 준말로 어린이들을 소중하게 여긴 말이 바로 “어린이”라고 합니다. 어린이들은 가정과 사회 공동체의 꽃들입니다. 그래서 과거에 꽃 주일이라고도 했습니다. 어린이 찬송가 “나는 주의 화원의 어린 백합꽃이니, 은혜 비를 머금고 고이 자라납니다. 주의 은혜에 감사해 나는 무얼 드리리? 사랑하는 예수님 나의 향기 받으소서” 교회와 가정의 꽃이 되는 어린이를 위해 기도하며 사랑하며 교육하는 주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한 번은 제자 중에서 누가 크냐는 변론이 일어났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마음에 변론하는 것을 아시고 어린아이 하나를 데려다가 자기 곁에 세우시고 저희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 어린아이를 영접하면 곧 나 보내신 이를 영접함이라. 너희 모든 사람 중에 가장 작은 그이가 큰 자니라(눅 9:46-48)”고 하셨습니다. 교회 전통에 의하면 이 어린이가 서머나 교회를 목회했던 폴리갑(사도 요한의 제자)였다고 합니다.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러 예루살렘으로 가실 때에도 제자들이 예수님께 나아와 질문을 한 적이 있습니다. “천국에서는 누가 크니이까?” 3년 동안 주님을 따라다니던 제자들의 마음속에는 지속적으로 높은 자리, 큰 자리를 탐내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에 주님께서는 한 어린 아이를 불러 저희 가운데 세우시고 가라사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그이가 천국에서 큰 자니라. (마 18:1-4)”고 가르치셨습니다. 어린 소자를 실족케 하는 자는 연자 맷돌을 매고 차라리 바다에 빠져 죽는 것이 낫다고 가르치셨습니다. 이런 자살적인 언급을 하실 만큼 아이들에게 실망을 주거나 잘못된 길로 인도하거나 상처를 주거나 교회를 떠나게 하는 자는 큰 심판을 받습니다. 차라리 혼자 죽는 것이 낫다는 말씀입니다.

 

성경에 보면 어린양은 온유와 순결의 상징이었습니다. 나단 선지가 다윗왕의 불륜 후 찾아와서 전하는 비유 가운데 부자의 종에게 암양 새끼 하나를 애완동물처럼 “그 암양 새끼는 저와 저의 자식과 함께 있어 저의 먹는 것을 먹으며 저의 잔에서 마시며 저의 품에 누우므로 저에게는 딸처럼 되었거늘”(삼하 12:3)이란 표현이 나옵니다. 그래서 어린양은 가장 중요한 희생제물로 하나님께 드려졌습니다. 매일 아침, 저녁으로 번제로 드려졌고(출 29:38-42), 매월의 월삭 (민 28:11), 유월절 기간에 매일(민 28:16-24), 속죄일(레 16장), 오순절(칠칠절, 민 28:26-30), 또 화목제와 속죄제 때에 드려졌습니다(레 3:7, 4:32, 5:6). 예수님께서 세례 받으러 오시니 세례 요한은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라고 소개했습니다. 이처럼 신약성경에 28번이나 예수님을 어린양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이중 24번이 요한계시록에 나옴). 천국에서 “보좌에 계신 하나님의 어린양”이라 표현하고 있습니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자람과 성숙을 말하나, 어린이의 순수함과 해맑은 마음을 잃어버리는 안타까움도 있습니다. 마태복음 13장의 천국비유에서 특히 천국 백성은 ‘자라남’ (씨 뿌리는 자, 가라지, 누룩, 겨자씨)에 있습니다. 어린아이의 특징은 자란다는 데 있습니다. 어른이 되어 간다고 어린이의 순진함과 순수함을 잃어버려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영국의 낭만파 시인 윌리엄 워즈워드(William Wordsworth)는 “A Rainbow"(무지개)란 시에서 이렇게 노래하고 있습니다.

 

My heart leaps up when I behold 무지개를 바라볼 때면

A rainbow in the sky: 나의 가슴이 뛰노누나

So was it when my life began, 어릴 적에도 그러했고

So is it now I am a man 성인이 된 지금도 그러하고

So be it when I shall grow old. 늙어서도 그러하리

Or let me die! 그렇지 않다면 차라리 죽고 싶어

The Child is father of the Man.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

And I could wish my days to be 바라기는 매일 매일을

Bound each to each by natural piety. 자연의 경건으로 이어가리

 

이 시를 읽을 때마다 제 마음이 동심으로 돌아가 ‘자연의 경건’을 찾아보게 됩니다. 스쳐 지나가는 봄바람, 맑은 하늘, 구름들, 찬란한 별들, 따가운 햇살, 누런 흙, 새롭게 단장하는 연초록색의 나뭇가지들, 땅을 푸르게 만드는 잔디, 풀들, 그리고 아름다운 꽃들... 아름다운 무지개를 보고 마음의 감동이 일어나듯이 이런 하나님의 창조 작품을 보고 감동이 일어나는 매일매일의 삶을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만약 이런 감동이 일어나지 않거나 없다면 차라리 죽고 싶다는 시인의 마음처럼, 어린이처럼 순수하게 자연을 받아들이고 자연의 아름다움을 볼 줄 아는 생을 매일 살아가자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라는 것입니다. 아이들에게 배울 것이 많다는 것입니다.

 

험악한 세상을 살다가 보면 어릴 적 간직했던 순정, 정직, 겸손, 쾌활, 천진난만, 해맑은 웃음, 때 묻지 않는 마음, 등을 상실하며 살아갑니다. 주님의 말씀처럼 어린아이와 같이 되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말씀을 깊이 되새기고 주님 앞에 나아올 때 어린아이처럼 말씀을 사모하고, 기뻐 날뛰며, 예수님의 겸손하고 온유한 마음으로 회복되기를 바랍니다.

 

오늘은 “그리스도를 본받아” 시리즈 속에서 산상수훈의 말씀을 살펴보며 은혜를 받겠습니다. 앞서 살인하지 말라 대신에 형제를 미워하지 말고, 형제에 대해 시기하거나 화내지 말고 내 몸처럼 사랑하라는 첫 번째 말씀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리고 지난 시간에는 간음하지 말라 대신에 배우자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존중하며 돕는 배필로 동역하여 가정을 성실하게 지키라는 두 번째 말씀을 살펴보았습니다. 오늘은 맹세에 대한 말씀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33절 "또 옛사람에게 말한 바 헛맹세를 하지 말고 네 맹세한 것을 주께 지키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이 말씀과 관련된 오경 말씀은 "너희는 내 이름으로 거짓 맹세함으로 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지 말라 나는 여호와이니라"(레위기 19:12). 또 민수기 30:2에서는 “사람이 여호와께 서원하였거나 마음을 제어하기로 서약하였거든 파약하지 말고 그 입에서 나온 대로 다 행할 것이니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 신명기에서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 서원하거든 갚기를 더디 하지 말라. 네 주 하나님께서 반드시 그것을 네게 요구하시리니 더디면 네게 죄라. 네가 서원하지 아니하였으면 무죄하니라 마는 네 입에서 낸 것은 그대로 실행하기를 주의하라. 무릇 자원한 예물은 네 주 하나님께 서원하여 입으로 계약한 대로 행할지니라.” (신 23: 21-23)고 했습니다.

 

말씀의 요지는 맹세나 서원을 함부로 하지 말라는 것이고, 한번 서원을 했으면 꼭 지키라는 것입니다. 자신 없는 맹세를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맹세라는 말의 뜻은 약속인데, 말이나 자기 자기주장이 참되라는 것을 경험적으로 입증하지 못할 경우 그 주장의 신뢰성을 높이는 방법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이 말속에는 지켜질 때 신실성의 입증, 지켜지지 않을 때 저주와 불신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맹세에 사용된 말의 구조의 대하여 성경에 기록된 내용을 살펴보면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창 22:16, 암 6:8, 사 45:23). "내가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라고 말씀하였습니다(겔 17:19). 하나님께서 '큰 이름으로' (렘 44:26) 그의 '거룩함'으로(암4:2) '그 오른손, 그의 능력의 팔로'(사62:8) 로 맹세하셨습니다.

신앙인들이 맹세할 때에 행한 형식과 행위를 살펴보면 (1) 손을 내밀고(겔 17:18) (2) 하늘을 향하여 손을 들며 (신 32:40) (3) 환도뼈 아래 손을 넣는 일(창 24:2, 47:29) (4) 특히 오른손을 드는 일 (단 12:7, 계 10:5,6) 이상의 것들을 살펴볼 때 맹세의 성격은 자기보다 크고 거룩한 자에게 했고 그래야만 효과가 있었습니다. 자기 자신만으로서 능히 맹세할 이는 하나님 한 분뿐입니다.(히 6:13). 그러므로 이스라엘 사람들은 옛적부터 그 성실성을 맹세할 때에 절대자이신 하나님을 의지했고 그 이외의 신의 이름으로 맹세하면 1, 2 계명을 범하는 것으로 알고 이러한 맹세는 도저히 행할 수 없는 일로 알았습니다. 여인들은 잉태를 위하여 맹세하고 또 맹세대로 응답받고 실행했으며 장군들은 전쟁에 나갈 때에 맹세하고 나감으로 개선하였습니다. (삿 11:29)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들의 심령이 약해지고 세속화됨에 따라서 맹세를 반드시 지키려는 의지보다는 하나의 요식 행위가 되었으며 어느 면에서는 맹세를 이용하여 (빙자하여) 자기들의 삶을 위한 처세 방법으로 사용함으로써 여호와 하나님의 신뢰성과 거룩성을 하락시켜 제3계명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한 계명에 저촉이 되어 하나님의 성성을 짓밟는 결과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옛사람에게 말한 바 헛맹세를 하지 말고 네 맹세한 것을 주께 지키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라는 말씀을 함으로써 예수께서는 사람이 사람에 대해 하는 맹세가 아니라 하나님께 대한 맹세로 말하였습니다.

 

34절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도무지 맹세하지 말찌니 하늘로도 말라 이는 하나님의 보좌 임이요"

 

예수님께서는 단호히 맹세를 거절하셨습니다. 맹세는 사람이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35절 "땅으로 말라 이는 하나님의 발등상이요 예루살렘으로도 말라. 이는 큰 임금의 성임이요"

 

사람은 거짓에 치우칠 경우도 있으며 또 감정적일 수도 있다. 그런가 하면 한순간을 모면하기 위한 수단일 수도 있는 맹세이기 때문입니다. 구약 성서에 대하여 명예를 훼손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보좌인 하늘을 맹세의 조건으로 삼지 말라 하였습니다.

 

땅은 하나님의 발등상이기 때문에 맹세한 조건으로 이용하지 말라함입니다. 실천하지 못할 경우 하나님의 명예에 누를 끼치기 때문입니다. 예루살렘은 큰 임금의 도성이기 때문이다. 큰 임금이라 함은 시편 48:2,99:2의 말과 같이 왕 되신 주님이 계신 도성이기 때문입니다. 맹세를 실천하지 못하면 거룩한 성을 욕되게 하기 때문이며, 또 큰 임금을 욕되게 하기 때문입니다.

 

34-35절 두 절의 말씀을 함께 생각하면서 이사야 66:1에 보니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나의 발등상이니 너희가 나를 위하여 무슨 집을 지을꼬? 나의 안식할 처소가 어디랴?”라고 하십니다. 우리는 하늘, 땅 어디든 어느 곳이든 맹세의 증거를 삼을 수 없습니다. 요즘은 맹세할 때 새끼손가락을 걸고 엄지로 도장을 찍고 스캔 흉내까지 하며 엄중하게 약속하더라도 헤어질 때는 언제 그런 약속했는지 완전히 잊어버립니다.

 

36절 " 네 머리로도 말라 이는 네가 한 터럭도 희고 검게 할 수 없음이라."

 

사람은 하나님께서 주신 머리털을 근본적으로 희고 검게 만들 수 없습니다. 그런데 어찌 머리로 맹세할 수 있느냐 하는 말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자기의 뜻대로 좌지우지할 수 없는 것 (하늘, 땅, 예루살렘 성, 사람의 머리 등등)으로 맹세하는 것은 무책임한 맹세이며 미래를 모르는 사람이 맹세한다는 것은 무모한 일이기 때문에 어떤 것으로도 맹세하지 말라 했습니다.

 

37절 "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으로 좇아 나느니라"

 

이 말씀을 기억하며 훗날 야고보 장로는 권면하기를 “내 형제들아 무엇보다도 맹세하지 말찌니 하늘로나 땅으로나 아무 다른 것으로도 맹세하지 말고 오직 너희의 그렇다 하는 것은 그렇다 하고 아니라 하는 것은 아니라 하여 죄 정함을 면하라”(약 5:12)고 했습니다. 이런 면에서 예수님의 가르침은 흑백논리라고 할 것입니다. 옳은 것은 옳다 하고 틀린 것은 틀린 것이지 어중간하여 사람의 눈치를 보지 말라는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 종교지도자들은 사람의 눈치를 보고 많은 행동을 행한 것과는 대조적입니다. 우리도 에스겔 예언자처럼 “저들이 듣든지 아니 듣든지” 말씀을 선포해야 합니다. 이 말은 저 사람에게 걸리고. 저 말은 이 사람에게 걸리고 눈치 보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면 담대히 선포해야 합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입에 두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는 사람이 복 받는 사람이 됩니다(수 1:7-9).

 

야곱은 라반의 집으로 갈 때 루스에서 꿈에 천국의 사다리를 보며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는 베개 한 돌을 세워 새벽 제단을 쌓으면서 약속하기를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사 내가 가는 이 길에서 나를 지키시고 먹을 양식과 입을 옷을 주사 나로 평안히 아비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 오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전이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창 28: 20-22)고 했습니다. 그러나 20년 후에 가나안 땅으로 무사히 돌아와 형 에서와 화해의 만남을 가지고 나서도 벧엘에 올라가 예배드리며 성전을 짓는 일을 잊고 있을 때, 창세기 34장에서 딸 디나가 강간당했으며, 이를 보복하기 위해 세겜 사람들을 할례 받게 하고는 시므온과 레위가 할례 후 3일 뒤 고통하고 있던 저들을 칼날로 손쉽게 죽이고 나서는 매우 위기에 처해 있게 되었습니다. 이때 창세기 35장에서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나타나셔서 속히 벧엘로 올라가서 예배를 드리라고 하셨을 때에야 비로소 그는 생각이 나서 집안을 소집했습니다. 과거 20년 전의 일을 언급하면서 모두 신상을 버리고 자신을 정결케 한 후 의복을 갈아입고 하나님께로 나아가 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그 후 모든 일이 회복되었습니다. 하나님께 맹세한 일은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

이에 비해 한나는 서원한 대로 사무엘에게 젖을 뗀 후 엘리 제사장에게로 데려가서 하나님의 성소에서 봉사하게 했습니다. 사무엘은 어렸을 때에 세마포 에봇을 입고 하나님 앞에 섬기게 되었습니다. 한나는 매년제를 드리러 남편과 함께 올라갈 때마다 작은 겉옷을 지어다가 그에게 주었더니, 엘 리가 엘가나와 한나에게 축복하여 가로되 “여호와께서 이 여인으로 말미암아 네게 후사를 주사 이가 여호와께 간구하여 얻어드린 아들을 대신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였더니 하나님께서 이들 가정에 세 아들과 두 딸을 낳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서원을 지킨 자들이 받는 축복입니다(삼상 2: 18-21)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도무지 맹세는 하지 맙시다. 하나님께 진실하게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이웃에게 진실된 사랑을 실천하면 헛맹세, 거짓 맹세를 하지 않습니다. 한번 약속을 했으면 꼭 지키시기 바랍니다. 선거철에 많은 공약들을 하지만 약속을 다 지키지 못합니다. 실현 가능한 약속은 하지 않는 것이 정직합니다. 하나님을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사랑하면 서원을 반듯이 지키게 됩니다. 사랑으로 승리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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