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15장에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를 건너와서 모세가 하나님께 감사의 노래를 하고 있습니다. 애굽 군대가 따라왔지만 하나님은 홍해를 가르셔서 이스라엘 백성이 마른 땅을 건널 수 있도록 해 주셨습니다. 이런 기적을 보았지만 잠시입니다. 삼일 길을 가서 마실 물이 없다고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이것을 볼 때 기적 신앙은 오래 가지 못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모세의 노래(출 15:1-27)
1-21절, 모세의 노래
[1절] 이 때에 모세와 이스라엘 자손이 이 노래로 여호와께 . . . .
이스라엘 자손이 바다 가운데 육지로 행하여 홍해를 기적적으로 건넜고 바로의 병거와 그 신하들의 병거들이 홍해에서 다 죽은 그때에, 모세와 이스라엘 자손은 하나님께 노래를 불렀다. “내가 여호와를 찬송하리니”라는 원어는 “내가 여호와께 노래하리니”라는 뜻이다. 그가 하나님께 노래한 이유는 “그가 높고 영화로우시기” 때문이었다. “높고 영화로우시다”(가오 가아)는 원어는 “심히 높으시다”는 뜻이다. 또 하나님께서는 “말과 그 탄 자를 바다에 던지셨다.” ‘말과 그 탄 자’는 단수명사로 애굽 왕 바로를 가리킬 것이다. 물론, 그 외에 그의 장관들의 병거들도 있었고 그들도 다 바다에 던지웠다.
[2절] 여호와는 나의 힘이요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시로다. . . .
“여호와(야흐)는 나의 힘”이라고 말한 것은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애굽 왕 바로와 그 군대를 이길 힘이 없었으나 하나님께서 그들을 이기게 해주셨기 때문이다. “나의 노래”라고 한 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구원을 체험하고 기뻐서 노래했기 때문이다. “나의 구원”이라고 한 것도 그들이 절망과 죽음에서 건짐을 받았기 때문이다.
“나의 하나님이시니”라는 말씀은 하나님을 소유하고 섬기는 친밀한 관계를 나타낸다. 이 세상에는 하나님을 모르는 자가 많다. 그러나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을 아는 자들이며 그를 경외하고 믿고 섬기는 자들이다. 그들은 하나님을 그들의 삶의 의미와 삶의 목적으로 삼고 그들의 삶의 최고의 가치로 삼는다. “내가 그를 찬송할 것이요”라는 원어(안웨후)는 “내가 그를 영화롭게 하리로다”라는 뜻이다. 하나님을 자신의 하나님, 즉 그의 삶의 의미와 목적과 가치로 삼는 자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려 할 것이다.
“내 아비의 하나님”이라는 표현은 자신이 경건한 가정에서 태어나 자랐음을 나타낸다. 모세의 부모는 경건하였음에 틀림없다(히 11:23). 모세는 어릴 때 어머니의 경건한 교훈 속에 자랐음에 틀림없다. 모세의 하나님은 그의 부모의 하나님이시며 그의 조상의 하나님이시다. 모세는 “내가 그를[그 하나님을] 높이리로다”라고 말한다.
[3절] 여호와는 용사시니 여호와는 그의 이름이시로다.
모세는 또 “여호와는 용사”라고 말한다. ‘용사’라는 원어(이쉬 밀카마)는 ‘전쟁의 사람’ 즉 ‘전사(戰士)’라는 뜻이다. 그것은 여호와께서 애굽의 군대를 파하셨기 때문이다. “여호와는 그의 이름이시다.” 모세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고 말씀하셨다(출 3:14). 그것이 여호와라는 말뜻이다. ‘여호와’는 ‘스스로 계신 자’ 즉 영원자존자(永遠自存者)라는 뜻이다. 영원자존하신 참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구원을 계획하셨고 이루셨다.
[4-5절] 그가 바로의 병거와 그 군대를 바다에 던지시니 . . . .
그는 바로의 병거들(원문)과 그 군대를 바다에 던지셨다. 바로의 병거들과 장관들이 바다에 빠져 죽은 것은, 우연이거나 재수가 없어서거나 이스라엘 자손과의 전투에서 패해서가 아니었다. 그것은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었다.
바로의 택한 장관들은 홍해에 잠겼고 큰물이 그들을 덮었고 그들은 돌처럼 깊은 바다 속에 잠기었다. 본문은 이스라엘 자손이 건넜고 애굽 사람들이 빠져 죽은 그 바다를 ‘홍해’라고 부른다. 홍해는, 자유주의자들이 추측하는 대로, 애굽 북동쪽 끝, 지중해의 한 해변이 아니고, 분명히 ‘홍해’라고 불린 애굽 동쪽의 큰 바다의 북단, 즉 수에즈만 북쪽의 어느 지점이었을 것이다.
[6-10절] 여호와여, 주의 오른손이 권능으로 영광을 . . . .
홍해 사건은 하나님의 오른손이 권능으로 영광을 나타내신 일이었다. 그의 오른손이 원수들을 부수셨다. 하나님은 그의 큰 위엄으로 그를 거스르는 자들, 즉 그를 대적하고 거역하는 자들을 엎으셨다. 그는 진노를 발하셨고 그의 진노는 그들을 그루터기나 겨같이 사르셨다. ‘초개’라는 원어(카쉬)는 ‘그루터기, 겨’라는 뜻이다.
하나님의 콧김에 물이 쌓이되 파도가 언덕같이 일어서고 큰물이 바다 가운데 엉기었다. 출애굽기 14:21은, “모세가 바다 위로 손을 내어민대 여호와께서 큰 동풍으로 밤새도록 바닷물을 물러가게 하시니 물이 갈라져 바다가 마른 땅이 된지라”고 말하였다.
대적들은, “내가 쫓아 미쳐 탈취물을 나누리라, 내가 그들로 인하여 내 마음을 채우리라, 내가 내 칼을 빼리니 내 손이 그들을 멸하리라”고 말했으나, 하나님께서는 그의 바람을 일으키셨고 바다는 그들을 덮었고 그들은 흉용한 물에 납같이 잠겼다. 출애굽기 14:27은, “모세가 곧 손을 바다 위로 내어밀매 새벽에 미쳐 바다의 그 세력이 회복된지라. 애굽 사람들이 물을 거스려 도망하나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들을 바다 가운데 엎으시니”라고 말하였다.
[11-12절] 여호와여, 신 중에 주와 같은 자 누구니이까? . . .
모세는 이 놀라운 홍해의 구원 체험으로 인해, “여호와여, 신 중에 주와 같은 자 누구니이까? 주와 같이 거룩함에 영광스러우며 찬송할 만한 위엄이 있으며 기이한 일을 행하는 자 누구니이까?”고 고백한다. ‘기이한 일’이라는 원어(펠레)는 ‘기적’이라는 단어이다. 홍해를 갈라지게 하시고 자기 백성을 무사히 건너게 하시고 대적자들을 다 물에 빠져 죽게 하신 일을 통해, 하나님의 능력과 위엄과 거룩하심과 영광이 밝히 증거되었다. 세상에 여호와와 같은 신은 없다.
모세는 “주께서 오른손(즉 능력의 손)을 드신즉 땅이 그들을 삼켰나이다”라고 말한다. ‘땅이 그들을 삼켰다’는 표현은 특이하다. 실제로는 땅이 아니고 바다가 그들을 삼켰지만, 바다가 땅 위에 물이 고인 곳이며 넓게는 땅에 포함된다는 뜻에서, 즉 하늘과 땅 곧 천지(天地)라는 말 속에 우주만물이 다 포함된다는 뜻에서, 표현된 것 같다.
[13절] 주께서 그 구속하신 백성을 은혜로 인도하시되 . . . .
모세는 하나님께서 “그 구속하신 백성을 은혜로 인도하시되 주의 힘으로 그들을 주의 성결한 처소에 들어가게 하시나이다”라고 말한다. ‘은혜로’라는 원어(베카스데카)는 ‘그의 자비로’라는 뜻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서 구속(救贖)하신, 즉 구원하신, 백성이며 하나님께서 그의 자비로 인도하시는 백성이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인도하시는 곳은 그가 거룩하게 구별하신 처소이다. 가나안 땅은 하나님께서 그들의 선조 아브라함 때부터 약속하시고 거룩하게 구별하신 땅이다. 그들은 그 땅에 들어갈 힘이 없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의 힘으로 그들을 그 거룩한 땅으로 인도하신다.
[14-16절] 열방이 듣고 떨며 블레셋 거민이 두려움에 잡히며 . . . .
홍해 사건의 소문은 애굽 주위의 여러 나라들에 널리 퍼졌다. 이방 나라의 백성들이 듣고 떨었고 블레셋 거민들도 두려움에 잡혔고 에돔 방백들도 놀랐고 모압의 영웅들도 떨림에 잡혔고 가나안 거민들도 다 낙담했다. 하나님께서 홍해에서 행하신 놀라운 일을 듣고 떨고 두려워하지 않을 자가 누구이겠는가. 후에, 여호수아가 여리고 성에 정탐꾼을 보냈을 때, 그 성의 기생 라합은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이 땅을 너희에게 주신 줄을 내가 아노라. 우리가 너희를 심히 두려워하고 이 땅 백성이 다 너희 앞에 간담이 녹나니 이는 너희가 애굽에서 나올 때에 여호와께서 너희 앞에서 홍해 물을 마르게 하신 일과 너희가 요단 저편에 있는 아모리 사람의 두 왕 시혼과 옥에게 행한 일 곧 그들을 전멸시킨 일을 우리가 들었음이라. 우리가 듣자 곧 마음이 녹았고 너희의 연고로 사람이 정신을 잃었나니 너희 하나님 여호와는 상천 하지에 하나님이시니라”고 하였다(수 2:9-11).
모세는 “놀람과 두려움이 그들에게 미치매 주의 팔이 큼을 인하여 그들이 돌같이 고요하였사오되 여호와여, 주의 백성이 통과하기까지 곧 주의 사신 백성이 통과하기까지였나이다”라고 말했다. 그들은 너무 놀라고 두려워 돌같이 잠잠하였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을 ‘주의 백성’ 곧 ‘주의 사신 백성’이라고 부른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값으로 사신 백성이었다. 그것은 신약성경의 ‘구속(救贖)’의 개념과 같다. 구원은 죄의 노예된 자들을 값을 주고 사서 해방시켜 주는 것과 같다. 고린도전서 6:19-20,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17-18절] 주께서 백성을 인도하사 그들을 주의 기업의 산에 . . . .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을 인도하셔서 그의 기업의 산, 그의 예비된 처소, 그의 손으로 세우신 성소, 곧 가나안 땅에 심으실 것이다. 13절에서도 “주께서 그 구속하신 백성을 은혜로 인도하시되 주의 힘으로 그들을 주의 성결한 처소에 들어가게 하시나이다”라고 말했다.
끝으로, 모세는 “여호와의 다스리심이 영원무궁하시도다”라고 말한다. 원문은 “여호와께서 영원토록 다스리시도다”이다. 다스린다는 말은 왕노릇하신다는 뜻이다. 그것이 섭리의 개념이다. 섭리는 통치하심이다. 하나님께서는 인류의 모든 일을 섭리하시며 통치하신다.
[19절] 바로의 말과 병거와 마병이 함께 바다에 들어가매 . . . .
본문은 다시 “바로의 말과 병거들과 마병들이 함께 바다에 들어가매 여호와께서 바닷물로 그들 위에 돌이켜 흐르게 하셨으나 이스라엘 자손은 바다 가운데서 육지로 행한지라”고 말한다. ‘바로의 말’이라는 원어는 단수명사이다. 애굽 왕 바로 자신이 그때에 홍해에 빠져 죽었던 것 같다. 바로의 말과 애굽의 병거들과 마병들이 다 바다에 빠져 죽었지만, 이스라엘 백성은 ‘바다 가운데서 육지로’ 행하였다. ‘바다 가운데서 육지로’라는 표현은 벌써 네 번째 나온 표현이다(출 14:16, 22, 29; 15:19). 이렇게 반복해서 증거된 대로, 홍해 사건은 역사적 사실이며 하나님의 놀랍고 은혜로운 기적의 사건이었다.
[20-21절] 아론의 누이 선지자 미리암이 손에 소고를 잡으매 . . . .
아론의 누이 선지자 미리암이 손에 소고[작은 북]를 잡으니 모든 여인도 그를 따라 나오며 소고를 잡고 춤추었다. 구약시대의 미리암이나 신약시대의 전도자 빌립의 네 딸과 같이 여자가 선지자인 경우는 예외적이다. 구약시대에 제사장이나 선지자, 신약시대에 사도나 장로와 집사는 남자들 중에서 택했다. 성경은, 남녀가 함께 모인 회에서 여자가 가르치는 일과 다스리는 일, 즉 목사나 장로의 직분이 허락되지 않음을 분명히 계시한다(고전 14:34-37; 딤전 2:11-14).
모세의 노래의 첫 부분과 동일하게, 여선지자 미리암은 여인들에게 화답하면서, “너희는 여호와를 찬송하라. 그는 높고 영화로우심이요 말과 그 탄 자를 바다에 던지셨음이로다”라고 말했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홍해 사건의 역사성을 믿자. 모세의 노래의 내용은 홍해 사건의 역사성을 다시 한번 더 확실히 증거한다. 홍해 사건이 기적적 사건이 아니었다면, 모세는 이런 노래를 부르지 않았을 것이다. 이 긴 노래는 홍해 사건의 체험에 근거한 것이다. 더욱이, 본문은 애굽 주위의 나라들이 그 소문을 듣고 두려워하였다고 증거한다. 14-15절, “열방이 듣고 떨며 블레셋 거민이 두려움에 잡히며 에돔 방백이 놀라고 모압 영웅이 떨림에 잡히며 가나안 거민이 다 낙담하나이다.” 우리는 홍해 사건의 역사성, 즉 홍해 사건이 역사적 사건이었음을 믿자. 우리는 성경의 진실한 증거를 다 믿자.
둘째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살아계셔서 지금도 온 세상을 섭리하심을 믿자. 홍해 사건은 하나님께서 친히 하신 일이었다. 모세의 노래는 이 사실을 증거한다. 하나님께서 말과 그 탄 자를 바다에 던지셨다(1절). 그가 바로의 병거들과 그 군대를 바다에 던지셨다(4절). 하나님의 오른손이 원수를 부수셨다(6절). 그가 그의 큰 위엄으로 그를 거스르는 자를 엎으셨다(7절). 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그의 자비로 성결한 처소, 그의 기업의 산, 그의 손으로 세우신 성소로 인도하신다(13, 17절). 하나님께서는 영원히 통치하신다(18절). 본문은 하나님의 구원과 심판, 그의 보호와 인도, 그의 통치를 증거한다. 이것이 하나님의 섭리이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살아계셔서 지금도 세상 만물과 우리 개인과 국가와 세계 전체를 섭리하시고 통치하심을 믿자.
셋째로, 우리는 우리 자신이 하나님의 친 백성이라는 사실을 감사하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홍해의 기적을 주신 까닭은 그들이 하나님의 구속(救贖)하신 백성이며(13절) 그의 사신 백성(16절) 곧 그의 백성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보호하시고 대적자들을 부수시고 그들을 약속의 땅까지 인도하신다(13, 17절). 약속의 땅 가나안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실 영광의 천국을 예표한다.
신약 성도는 이미 하나님의 친 백성이 되었다. 요한복음 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베드로전서 2:9,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 그의 소유된 백성이 되었다. 우리는 이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며 찬송하자. 우리는 믿지 않는 가족이나 친구나 이웃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소식을 전하자.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의 구원을 온 세상에 널리 전하자.
22-27절, 마라의 교훈
[22-23절] 모세가 홍해에서 이스라엘을 인도하매 그들이 . . . .
모세가 홍해에서 이스라엘을 인도했고 그들은 나와서 수르 광야로 들어갔다. 수르 광야는 홍해 건너편 애굽에 근접해 있는 광야이었다. 창세기 25:18은, 아브라함이 남방으로 이사하여 가데스와 술[수르] 사이 그랄에 우거했고(창 20:1) 이스마엘 자손들도 애굽 앞 술[수르]까지 이르러 거하였다고 기록하며, 또 사울이 애굽 앞 술[수르]에 이르기까지 아말렉 사람을 쳤다고 한다(삼상 15:7). 이런 말씀들을 보면, 수르 광야는 시내 반도의 북서쪽의 광야임이 틀림없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은 수르 광야에서 사흘 길을 행하면서 물을 얻지 못했다. 물은 인간의 삶에 필수적인 요소인데, 그 광야에서 물이 없었으니 그들은 매우 불안하고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또 그들은 물이 있는 한 곳에 이르렀지만 그곳 물이 써서 마시지 못하였으므로 그곳 이름을 마라라고 불렀다. 마르라는 말은 ‘쓰다’는 뜻이다.
인간의 삶은 고난의 연속이다. 3일 전 홍해의 기적을 체험했던 그들은 이제 물이 없거나 물이 써서 어려움을 당하였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홍해를 건너는 기쁨도, 물이 없거나 물이 쓴 고통도 주셨다. 그것은 다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주신 일들이었다.
[24-25절] 백성이 모세를 대하여 원망하여 가로되 우리가 . . . .
그때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종 모세를 원망했다. ‘원망하다’는 원어(룬)는 ‘투덜거리다, 웅성대다’는 뜻이다. 이 말은 출애굽기와 민수기에서 13번 사용되었다(출 15:24; 16:2, 7, 8; 17:3; 민 14:2, 27, 27, 29, 36; 16:11, 41; 17:5). 그들은 “우리가 무엇을 마실까?” 염려하면서 투덜거렸고 웅성대었다. 고난 중에 원망하는 것은 그들만의 문제가 아니고 인간의 마음 속에 있는 공통적 연약성이다. 원망과 불평은, 창조자, 섭리자 하나님을 믿지 않고 그의 베푸신 은혜를 잊어버리고 고난의 현실을 참지 못하고 조급한 마음에서 나온다.
그러나 그때 모세는 하나님께 부르짖었다. 그는 기도의 사람이다. 기도는 믿음의 표현이다. 하나님을 믿는 자는 어려울 때 하나님께 기도한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기도를 들으셨고 한 나무를 지시하셨다. 모세가 그것을 물에 던지자 놀랍게도 물의 맛이 달아졌다. 그것은 나무 자체의 효능 때문에 생긴 변화가 아니고 하나님의 능력에 의해 일어난 기적이었다. 본문은 “거기서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법도와 율례를 정하시고 그들을 시험하실새”라고 말한다. 그 법도와 율례는 다음절에 나오는 내용일 것이다.
[26절] 가라사대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 . . .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한 가지 놀라운 약속의 말씀을 주셨다. 그것은,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청종하고 나의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들에게 내린 모든 질병의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니라”는 말씀이다.
‘너희가 청종한다’는 원어(솨모아 티쉬마)는 ‘너희가 진심으로 듣는다’는 뜻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교훈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고 그의 계명들과 율례들을 힘써 지키기를 원하셨다. 또 그런 순종의 삶에 대해 건강과 치료를 약속하셨다. 이것은 잠언 3:7-8의 말씀과 동일하다. 거기에 보면,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지 말지어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악을 떠날지어다. 이것이 네 몸에 양약이 되어 네 골수로 윤택하게 하리라”고 말씀했다. ‘양약’이라는 원어(리프우스)는 ‘치료’라는 뜻이다. 하나님은 ‘치료하시는 여호와’(예호와 로프에카)로 표현되었다. 몸의 건강과 병의 치료는 다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다.
[27절] 그들이 엘림에 이르니 거기 물샘 열 둘과 종려 70주가 . . . .
이스라엘 백성은 엘림에 이르렀다. 거기에는 물샘 열두 개가 있었고 종려나무 70주가 있었다. 그곳은 사막의 오아시스이었다. 거기에는 그들이 기다리던 물이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얼마간 목마름도 주셨지만 시원한 물도 주셨고, 고난도 주셨지만 기쁨과 평안도 주셨다.
본문은 몇 가지 교훈을 준다. 첫째로, 우리는 고난 중에 불평하거나 원망하지 말자. 세상에는 고난이 많이 있다. 그것은 하나님의 높으시고 깊으신 뜻 가운데서 일어난다. 우리의 모든 현실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섭리자이시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려운 일이 있을 때 섭리자 하나님을 잊지 말자. 그의 능력을 잊지 말자.
둘째로, 우리는 고난 중에 하나님께 기도하자. 이스라엘 백성이 수르 광야를 사흘 동안 행할 때 물이 없어 불안과 고통을 당했고 마라에서는 물이 써서 마실 수 없어 백성들이 투덜대며 원망했으나 모세는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했다. 우리는 어려운 일을 당할 때 낙심하거나 불평, 원망치 말고, 오직 전능하신 섭리자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자. 건강 문제이든지, 직장 문제이든지, 결혼 문제이든지, 자녀 문제이든지, 무슨 문제이든지, 특별한 기도 제목을 가진 자마다 힘써 기도하자.
셋째로, 우리는 오직 하나님의 계명과 규례를 지키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계명과 규례를 지키면 그들에게 애굽 사람들에게 내린 질병을 하나도 내리지 않겠다고 약속하셨다. 건강과 치료를 약속하신 것이다. 계명 순종은 건강뿐 아니라, 또한 평안과 행복을 위한 길이다. 거기에는 의식주의 안정도 포함되어 있다. 특히 성경은 안식일 성수(聖守)와 십일조 생활에 대해 영육의 복을 약속하였다(사 58:13-14; 말 3:10-12). 우리는 이러한 교훈이 오늘날도 유효한 하나님의 약속이라고 믿는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자.
[창세기 28장 주석 강해설교] 야곱의 꿈과 서원(창 28: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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