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기 22장에서는 엘리바스가 욥에게 회개를 촉구하고 있습니다. 의로움을 주장하는 욥에게 엘리바스는 정죄하고 있습니다. 악을 버리고 여호와 하나님께 돌아오라고 권면합니다. 하나님은 악한 자를 심판하신다고 했습니다. 엘리바스는 욥에게 회개하고 하나님께 나와서 기도하라고 말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네 서원을 갚으신다고 말합니다.
엘리바스--악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라(욥 22:1-30)
[1-3절] 데만 사람 엘리바스가 대답하여 가로되 사람이 어찌 . . . .
데만 사람 엘리바스는 대답하기를, “사람이 어찌 하나님께 유익하게 하겠느냐? 지혜로운 자도 스스로 유익할 따름이니라. 네가 의로운들 전능자에게 무슨 기쁨이 있겠으며 네 행위가 온전한들 그에게 무슨 이익이 있겠느냐?”고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스스로 완전충족하시다. 그의 생명은 영원한 생명이다. 그는 영원자존(永遠自存)하신다. 그는 영광이 충만하시다. 그는 지혜와 능력도 충만하시다. 그는 전지전능(全知全能)하시다. 사람이 하나님께 무슨 유익을 드릴 것이 없다. 사람의 의나 행위의 온전함은 그에게 무슨 이익이 되는 것이 아니다. 그는 완전충족하시다. 욥기 35:7-8도, “네가 의로운들 하나님께 무엇을 드리겠으며 그가 네 손에서 무엇을 받으시겠느냐? 네 악은 너와 같은 사람이나 해할 따름이요 네 의는 인생이나 유익하게 할 뿐이니라”고 말한다.
물론 사람의 죄는, 비록 하나님께 손해되는 것은 없으나, 하나님을 노엽게 한다. 죄는 하나님의 권위와 속성에 반대되는 것이므로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와 형벌이 따른다. 이와 같이, 사람의 의도 자기에게 유익할 뿐이다. 신명기 10:13은, “내가 오늘날 네 행복을 위하여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 것이 아니냐?” 계명의 순종은 자신에게 행복이 되고 불순종은 자신에게 불행이 된다.
[4-11절] 하나님이 너를 책망하시며 너를 심문하심이 너의 . . . .
엘리바스는 또, “하나님이 너를 책망하시며 너를 심문하심이 너의 경외함을 인함이냐? 네 악이 크지 아니하냐? 네 죄악이 극하니라”고 말한다. 그는 욥의 죄악이 크다고 그릇되게 단정한다. 비록 그가 욥의 악행을 잘못 추측하지만, 그가 말하는 악은 분명히 악이다.
엘리바스는 “[욥이] 까닭 없이 형제의 물건을 볼모 잡으며[담보로 취하며] 헐벗은 자의 의복을 벗기며 갈한 자[피곤한 자]에게 물을 마시우지 아니하며 주린 자에게 식물을 주지 아니하였구나”라고 말한다. 까닭 없이 형제의 물건을 담보로 취하거나 헐벗은 자의 옷을 벗기는 것은 악한 일이다. 성경은 이웃의 옷을 담보물로 취했으면 해 지기 전에 돌려보내라고 가르쳤고(출 22:26) 또 맷돌을 담보물로 취하지 말라고 했다(신 24:6). 그것은 옷 없이 추운 밤을 지내거나 맷돌 없이 식사를 준비하는 어려움을 고려한 것이다. 또 피곤한 자에게 물을 마시우지 않고 주린 자에게 음식을 주지 않는 것도 악한 일이다. 성경은 “네 원수가 배고파하거든 식물을 먹이고 목말라하거든 물을 마시우라”고 말했다(잠 25:21). 구제하지 않는 것은 악한 일이다.
엘리바스는 또 말한다. “권세 있는 자가 토지를 얻고 존귀한 자가 거기서 사는구나. 네가 과부를 공수로[빈손으로] 돌아가게 하며 고아의 팔을 꺾는구나.” 권세자에게 토지를 제공하고 존귀한 자에게 거기에 살게 배려하면서도, 과부는 돕지 않고 빈손으로 돌려보내고 고아의 팔을 붙들어주지 않고 오히려 꺾고 학대하는 것은 악한 일이다.
엘리바스는 또, “이러므로 올무들이 너를 둘러 있고 두려움이 홀연히 너를 침범하며 어두움이 너로 보지 못하게 하고 창수가 너를 덮느니라”고 말한다. 악인은 하나님의 공의의 보응을 받을 것이다.
[12-14절] 하나님이 높은 하늘에 계시지 아니하냐? 보라, 별의 . . . .
엘리바스는 또, “하나님이 높은 하늘에 계시지 아니하냐? 보라, 별의 높음이 얼마나 높은가?”라고 말한다. 하늘이 얼마나 높은가? 그것은 끝없이 높다. 별들이 얼마나 높은 곳에 있는가? 하나님께서는 그 별들보다 더 높이, 더 멀리 계신다. 그러나 전지전능하시고 무한하신 그분은 땅 위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을 다 아시고 공의로 판단하신다.
엘리바스는 또 말한다. “그러나 네 말은 하나님이 무엇을 아시며 흑암 중에서 어찌 심판하실 수 있으랴. 빽빽한 구름이 그를 가리운즉 그가 보지 못하시고 궁창으로 걸어다니실 뿐이라 하는구나.” 엘리바스에 의하면, 욥은, 하나님께서 너무 높이 멀리 계셔서 모든 악인의 행위를 다 알지 못하시며, 빽빽한 구름과 흑암 때문에, 그것을 바르게 판단하지 못하신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추측이었다. 욥은 하나님께 대해 그런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러나 엘리바스가 묘사한 그런 사람은 분명히 악인이다.
하나님께서는 하늘 높이 멀리 떨어져 계셔도 모든 사람의 행동을 다 아시고 빽빽한 구름과 흑암 가운데서도 다 아신다. 오늘날 사람이 만든 인공위성도 고성능, 초정밀 카메라가 있어 하늘에서 지구 위의 일들을 상당히 자세히 알아낸다. 또 적외선 카메라는 밤에도 물체의 움직임을 감지하고 식별할 수 있다. 시편 139:1-4, 12,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감찰하시고 아셨나이다. 주께서 나의 앉고 일어섬을 아시며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통촉하시오며 나의 길과 눕는 것을 감찰하시며 나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시오니 여호와여. 내 혀의 말을 알지 못하시는 것이 하나도 없으시니이다,” “주에게서는 흑암이 숨기지 못하며 밤이 낮과 같이 비취나니 주에게는 흑암과 빛이 일반이니이다.”
[15-20절] 네가 악인의 밟던 옛적 길을 지키려느냐? 그들은 . . . .
엘리바스는 또, “네가 악인의 밟던 옛적 길을 지키려느냐?”고 말한다. 그는 욥이 악인의 밟던 옛적 길을 지키려 한다고 그릇되이 비난한다. 악인이 밟던 옛적 길은 죄악된 길 곧 불경건하고 부도덕한 길인데 욥은 그런 길을 걸으려 하지 않았다. 엘리바스는 또 “그들은 때가 이르기 전에 끊어버리웠고 그 터는 하수로 인하여 함몰되었느니라”고 말한다. ‘그 터는 하수로 인해 함몰되었다’는 원문은 ‘그 터는 강물에 흘러 내려가는도다’는 뜻이다. 악인은 결국 망한다는 뜻이다.
엘리바스는 또, “그들이 하나님께 말하기를 우리를 떠나소서 하며 또 말하기를 전능자가 우리를 위하여 무엇을 하실 수 있으랴 하였으나 하나님이 좋은 것으로 그 집에 채우셨느니라. 악인의 계획은 나와 판이하니라”라고 말한다. 악한 자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떠나시기를 원한다. 아니, 실상은 그들 자신이 하나님을 멀리한다. 또 그들은 그의 능력을 무시하고 부정한다. 그러나 실상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모든 좋은 것들을 주셨다. 그들이 땅에서 누렸던 모든 좋은 것들은 다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었다. 다윗은 말하기를, “모든 것이 주께로 말미암았사오니 우리가 주의 손에서 받은 것으로 주께 드렸을 뿐이니이다”고 하였다(대상 29:14). 야고보서 1:17도,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서 내려온다”고 말했다.
엘리바스는 또, “의인은 보고 기뻐하고 무죄자는 그들을 비웃기를 우리의 대적들이 참으로 끊어졌고(원문) 그 남은 것(이스람)[그들의 풍성함](BDB, NASB)이 불사른 바 되었다 하느니라”고 말한다. 의인들은 악인들의 멸망을 본다는 뜻이다. 악인은 결국 망한다.
[21-22절] 너는 하나님과 화목하고 평안하라. 그리하면 복이 . . . .
엘리바스는 또 “너는 하나님과 화목하고 평안하라[하나님과 친근히 하고 화목하라]. 그리하면 복이 네게 임하리라. 청컨대 너는 그 입에서 교훈을 받고 그 말씀을 네 마음에 두라”고 말한다. 우리는 하나님을 친근히 해야 한다. 그것은 말씀과 기도의 삶이다. 신명기 10:20,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며 . . . 그에게 친근히 하고.” 야고보서 4:8,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 하시리라.”
또 우리는 하나님과 화목해야 한다. 우리는 이미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화목하였다. 로마서 5:10,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되었은즉.” 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과 화목케 된다. 또 성도는 믿음과 회개와 순종으로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를 계속 누린다.
엘리바스는 “그리하면 복이 네게 임하리라”고 말한다. 성경이 말하는 복은 평안의 복이다. 그 평안은 몸의 건강과 경제적 안정과 가정적 행복과 사회적 평안을 다 포함한다. 물론 그 마지막 복은 영생이다. 시편 1편은 악을 멀리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가 복되며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고 그의 하는 일들이 다 형통할 것이라고 말한다. 시편 119:165는 “주의 법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큰 평안이 있으니 저희에게 장애물이 없으리이다”라는 복된 말씀을 증거한다. 디모데전서 4:8은, “육체의 연습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고 말한다. 그 약속은 건강과 경제 안정과 가정적, 사회적 평안, 및 영생을 포함한다.
[23-26절] 네가 만일 전능자에게로 돌아가고 또 네 장막에서 . . . .
엘리바스는 또, “네가 만일 전능자에게로 돌아가고 또 네 장막에서 불의를 멀리 버리면 다시 흥하리라”고 말한다. 원문을 정확히 번역하면, “만일 네가 전능자에게로 돌아간다면, 너는 다시 세워지리라(혹은 회복되리라). 너는 네 장막에서 불의를 멀리할지니라.”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 곧 참된 회개이다. 하나님 없이 살던 사람이 하나님을 알고 그의 교훈을 받으며 그를 사랑하고 의지하고 섬기며 순종하며 사는 것이다. 그것이 믿음이요 경건이다. 그러면 병들었던 인격이 새로워지고 불행했던 환경이라도 회복될 것이다. 또 모든 사람은 자기의 장막 곧 집에서 불의를 멀리해야 한다. 자신이 죄와 불의를 멀리해야 할 뿐 아니라, 자기의 집 곧 자기의 아내와 자녀들도 죄를 멀리하게 해야 한다. 그것이 참된 회개요 회개의 열매를 맺는 일이다.
엘리바스는 또, “네 보배(베체르)[금]를 진토에 버리고 오빌의 금을 강가의 돌에 버리라. 그리하면 전능자가 네 보배가 되시며 네게 귀한 은이 되시리니 이에 네가 전능자를 기뻐하여 하나님께로 얼굴을 들 것이라”고 말한다.
사람이 세상의 보화를 마음에 큰 가치로 품고 살면 하나님을 섬길 수 없다. 주께서는 누가복음 14:33에서 “이와 같이 너희 중에 누구든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고 말씀하셨다. 사람이 세상의 보화를 버려야 하나님을 참 보화로 깨닫고 모실 수 있다. 사도 바울은 자기에게 유익하던 모든 것을 다 해롭게 여기고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그를 얻기 위해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겼다고 고백하였다(빌 3:7-8). “주 예수보다 귀한 것은 없다.”
[27-28절] 너는 그에게 기도하겠고 그는 들으실 것이며 너의 . . . .
엘리바스는 또 “너는 그에게 기도하겠고 그는 들으실 것이며 너의 서원한 것을 네가 갚으리라”고 말한다. 사람이 하나님을 친근히 하고 하나님과 화목하며 하나님께로 돌아오면, 그가 하나님의 교훈을 받고 불의를 버리고 물질 사랑을 끊고 하나님을 보화로 삼으면, 그는 기도의 응답을 얻을 것이다. 또 그러면 감사해서 서원을 갚게 될 것이다. 죄는 기도의 응답을 가로막는다. 시편 66:18, “내가 내 마음에 죄악을 품으면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리라.” 그러나 사람이 의를 행하면 기도의 응답을 얻을 것이다. 주께서는,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고 말씀하셨다(요 15:7). 또 사도 요한은 “만일 우리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것이 없으면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고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라”고 말했다(요일 3:21-22).
엘리바스는 또 “네가 무엇을 경영하면 이루어질 것이요 네 길에 빛이 비취리라”고 말한다. 사람이 하나님을 친근히 하고 하나님과 화목하고 하나님의 입의 교훈을 받고 불의를 멀리하고 하나님을 보화로 삼으면, 그는 무엇을 경영하든지 이루어질 것이다. 하나님의 도우심과 형통케 하심을 경험할 것이다. 하나님을 의지하며 하나님 중심으로 행하는 자는 그 계획하는 일이 이루어질 것이다. 그것은 기도의 응답과도 연관된다. 주께서는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고 말씀하셨다(요 14:14). 하나님과 동행하는 의인들은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일을 소원하고 하나님의 뜻을 이룰 것이다.
[29-30절] 네가 낮춤을 받거든 높아지리라고 말하라. 하나님은 . . . .
엘리바스는 또, “네가 낮춤을 받거든 높아지리라고 말하라. 하나님은 겸손한 자를 구원하시느니라”고 말한다. 성도에게는 낮춤 곧 고난이 있다. 성도에게 때때로 질병, 가난, 원수들, 핍박 등이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성도를 그 고난에서 건지시고 높이신다. 시편 34:19는 “의인은 고난이 많으나 여호와께서 그 모든 고난에서 건지시는도다”라고 말한다. 잠언 24:16도 “대저 의인은 일곱 번 넘어질지라도 다시 일어나려니와 악인은 재앙으로 인하여 엎드러지느니라”고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특히 겸손한 자를 구원하신다. 잠언 3:34, “진실로 그는 거만한 자를 비웃으시며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시나니.”
엘리바스는 또 “무죄한 자가 아니라도 건지시리니 네 손이 깨끗함을 인하여 그런 자가 건지심을 입으리라”고 말한다. 하나님께 돌아온 자, 그 장막에서 불의를 버린 자, 세상 사랑을 버리고 하나님을 보배로 삼은 자는 기도 응답을 받고 무엇을 경영하면 이루어지고 고난 중에서 구원을 받을 뿐 아니라, 그로 인하여 다른 사람도 구원을 얻을 것이다. 의인은 다른 사람이 구원을 얻는 데 중간 역할을 할 수 있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범죄함으로 하나님의 진노를 샀을 때 모세는 그들을 멸하시려는 하나님 앞에 서서 그들의 용서를 간청함으로 하나님의 뜻을 돌이키게 하였고 그의 진노를 막았다(출 32:9-14). 또 야고보서 5:15는,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저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하심을 얻으리라”고 말하였고, 요한일서 5:16은, “누구든지 형제가 사망에 이르지 아니한 죄 범하는 것을 보거든 구하라. 그러면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범죄자들을 위하여 저에게 생명을 주시리라”고 말했다.
엘리바스는 욥이 악을 행했다고 단정한다. 그는 욥이 까닭 없이 형제의 물건을 담보로 취하고 헐벗은 자의 옷을 벗기며 피곤한 자에게 먹을것을 주지 않고 과부를 돕지 않고 고아의 팔을 돕지 않고 하나님이 알지 못한다고 말하며 하나님을 배척했다고 말한다. 또 엘리바스는 악인이 결국 멸망할 것이라고 말한다.
엘리바스는 그러므로 욥에게 하나님과 화목하라고 말한다. 그러면 모든 복, 즉 평안과 건강과 경제적 안정과 가정적, 사회적 평안을 얻을 것이라고 말한다. 또 그는 욥에게 하나님께로 돌아오라고 말한다. 또 그는 욥에 그의 보배를 버리고 하나님을 보배로 삼으라고 말한다. 그러면 그가 기도 응답을 받고 그의 경영하는 일이 이루어지고 그가 높임을 받고 구원을 받고 또 남도 구원할 것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엘리바스의 말 자체는 옳으며 하나님의 율법에 계시된 공의의 원리라고 본다. 엘리바스의 문제는 그 공의의 원리가 욥의 경우에는 해당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욥은 그가 말한 대로 그렇게 악한 자가 아니다. 욥은 이미 하나님과 친근히 지내며 정직하고 의롭게 산 자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엘리바스의 말을 통해서도 교훈을 얻는다. 우리는 모든 악을 버리고 하나님과 화목하고 하나님을 보배로 삼고 그를 사랑하며 오직 의롭고 선하게만 살고 이웃을 구제하기를 힘써야 한다. 그럴 때 우리는 기도의 응답을 받을 것이며 우리의 하는 모든 일이 이루어질 것이며 또 우리 자신뿐 아니라 남도 구원하는 자가 될 것이다.
[사도행전 부활절 설교말씀] 스데반 집사의 설교와 순교(행 7: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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