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언 10장에서는 사람이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지혜자와 우매자에 대해서 말씀합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자기의 입을 조심합니다. 말을 함부로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매한 자는 자기 입술로 죄를 짓기를 잘합니다. 하나님 앞에서도 원망과 불평을 늘어놓습니다.
지혜, 근면, 사랑, 입술 제어(잠 10:1-32)
1-5절, 효도, 의, 근면
[1절] 솔로몬의 잠언이라 지혜로운 아들은 아비로 기쁘게 하거니와 미련한 아들은 어미의 근심이니라.
지혜로운 아들은 아버지로 기쁘게 한다. 지혜로운 아들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 곧 의와 선을 행하는 자이다. 그는 하나님의 계명대로 부모를 공경하며 그들의 교훈에 순종하는 자이다. 또 아버지를 기쁘게 한다는 말은 어머니도 기쁘게 한다는 것을 포함한다. 자녀들이 바르게 행할 때 부모에게는 기쁨이 된다. 실상 부모를 기쁘게 하는 것이 참된 효도이다.
물론, 진리의 싸움이 있는 경우가 있다. 부모가 불경건과 부도덕한 일을 요구할 때 자녀와 부모의 싸움과 충돌이 불가피할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예수께서는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고 말씀하셨다(마 10:36). 그러한 싸움에서는, 하나님께서 첫 번째이어야 하고, 부모님이 그 다음이어야 한다. 그러나 이런 진리의 싸움 외에는, 자녀들은 골로새서 3:20의 말씀대로 모든 일에서 부모에게 순종해야 한다.
그러나 미련한 아들은 어머니의 근심이다. 미련한 아들은 하나님을 경외치 않고 죄를 짓고 악을 행하는 자이다. 역시, 어머니는 아버지를 포함한다. 자녀가 범죄하면 그 부모에게 슬픔과 근심이 된다. 그것이 불효이다. 자녀가 그 부모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효도요 그 부모님을 근심시키는 것이 불효이다. 자녀가 범죄하면 그 부모에게 슬픔과 근심이 되는 까닭은, 죄악 자체가 나쁜 것이고 또 하나님의 징벌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죄악은 남에게 해를 끼치고 자기 자신과 가정을 망친다. 또 하나님께서 그에게 내리시는 징벌은 큰 불행이 된다.
[2절] 불의의 재물은 무익하여도 의리는 죽음에서 건지느니라.
불의의 재물은 무익하다. 불의의 재물이란 불의하게 번 돈을 가리킨다. 불의의 재물은 불의의 결과이며 돈에만 가치를 두고 의에 가치를 두지 않은 결과이다. 불의의 재물이 무익하다는 말은 그것이 얼마간 기쁨과 유익을 줄지 모르나, 결과적으로 마음의 참 평안과 기쁨이나 자기에게 유익이 되지 못하고 도리어 해가 된다는 뜻이다.
성경에는 그런 예가 많다. 아간은 여리고 성 점령시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시날산 외투 한 벌, 은 200세겔, 50세겔 중 금덩이 한 개를 취하였다가 온 가족과 더불어 죽임을 당하였다. 유다왕 아합은 나봇을 죽이고 그의 포도원을 빼앗았으나 자신도 결국 죽고 말았다. 엘리사의 시종 게핫시는 거짓말로 은 두 달란트와 옷 두 벌을 취하였다가 나병에 걸렸다. 가룟 유다는 은 30개에 주님을 배신하였다가 자살하여 창자가 터져 죽었다. 이와 같이, 불의의 재물은 무익하며 그것을 취한 자는 하나님의 징벌을 받을 것이며 그 마지막이 비참할 것이다.
그러나 의리는 죽음에서 건진다. ‘의리’라는 원어(체다카)는 ‘의’라는 뜻이다. 의(義)는 하나님의 계명대로 행하는 것을 말한다. 의는 거룩하고 선하고 진실한 것이다. 그것은 돈을 많이 벌든지 못 벌든지 간에 양심에 거리낌 없이 버는 것을 말한다. ‘죽음에서 건진다’는 말은, 앞부분의 말씀과 대조해보면 의롭게 돈을 벌어 남을 구제하는 의(義)가 가난하여 굶주리는 자를 살린다는 뜻도 될 수 있겠지만, 더 깊고 완전한 의미에서 의는 구원이 된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얻은 의는 우리를 사망과 지옥 형벌에서 구원하였다. 로마서 1: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3절] 여호와께서 의인의 영혼은 주리지 않게 하시나 악인의 소욕은 물리치시느니라.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을 다스리시는 주권적 섭리자이시며 공의의 판단자이시며 보응자이시다. 그는 의인의 영혼을 주리지 않게 하신다. 그는 의인에게 육신의 양식을 주신다. 다윗은 “내가 어려서부터 늙기까지 의인이 버림을 당하거나 그 자손이 걸식함을 보지 못하였도다”라고 증거했다(시 37:25). 하나님께서는 기근의 때에 엘리야에게 까마귀를 보내어 먹을 것을 공급해주셨다. 예수께서는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께서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자들에게 의식주의 필요를 채워주실 것이라고 말씀하셨다(마 6:33).
여호와께서는 의인의 심령도 주리지 않게 하신다. 세상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는 기근과 기갈의 때가 있을 것이지만(암 8:11), 의인들에게는 그렇지 않을 것이다. 악인에게는 말씀의 기근과 기갈이 올지라도 의인에게는 오지 않을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참된 양식이며 참된 음료이시다(요 6:55). 하나님께서는 우리 속에 영원한 생수의 샘물이 되는 성령을 부어주셨다(요 4:14; 7:38-39).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악인의 소욕은 물리치신다. 악인에게는 물욕, 정욕, 명예욕, 권세욕 등 세상적 욕심이 가득하다. 욕심은 죄의 원인이 된다(약 1:15). 악인들은 여러 가지 욕심을 마음에 품지만, 그것들은 그들에게 복이 되지 못하고 오히려 화가 된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것들을 미워하시고 징벌하시고 물리치시기 때문이다.
[4절] 손을 게으르게 놀리는 자는 가난하게 되고 손이 부지런한 자는 부하게 되느니라.
손을 게으르게 놀리는 자는 가난하게 된다. 사람의 게으름 여부는 그의 손의 움직임 정도에서 나타난다. 게으른 자는 손놀림이 느리다. 잠언 26:15는, “게으른 자는 그 손을 그릇에 넣고도 입으로 올리기를 괴로워하느니라”고 말했다. 손이 게으른 자는 가난하게 된다. 가난은 일차적으로 게으름에서 온다. 그러므로 잠언 24:30-34는, “내가 증왕에[이전에] 게으른 자의 밭과 지혜 없는 자의 포도원을 지나며 본즉 가시덤불이 퍼졌으며 거친 풀이 지면에 덮였고 돌담이 무너졌기로 내가 보고 생각이 깊었고 내가 보고 훈계를 받았었노라. 네가 좀더 자자, 좀더 졸자, 손을 모으고 좀더 눕자 하니 네 빈궁이 강도같이 오며 네 곤핍이 군사같이 이르리라”고 교훈하였다.
그러나 손이 부지런한 자는 부하게 된다. 근면한 자는 손이 부지런하다. 우리는 손이 부지런한 자가 되어야 한다. 할 일이 있으면 뒤로 미루지 말고 빨리 처리하는 습관을 가지자. 잠언 31장에 묘사된 현숙한 여인은 부지런한 여자이다. 13절, “그는 양털과 삼을 구하여 부지런히 손으로 일하며.” 15절, “밤이 새기 전에 일어나서 그 집 사람에게 식물을 나눠주며 여종에게 일을 정하여 맡기며.” 22절, “그는 자기를 위하여 아름다운 방석을 지으며 세마포와 자색 옷을 입으며.” 24절, “그는 베로 옷을 지어 팔며 띠를 만들어 상고에게 맡기며.” 27절, “그 집안 일을 보살피고 게을리 얻은 양식을 먹지 아니하나니.” 손이 부지런한 자는 지혜로운 자이며 부지런함의 열매는 물질적 유여함이다. 잠언 13:4, “게으른 자는 마음으로 원하여도 얻지 못하나 부지런한 자의 마음은 풍족함을 얻느니라.” 잠언 21:5, “부지런한 자의 경영은 풍부함에 이를 것이나 조급한 자는 궁핍함에 이를 따름이니라.”
[5절] 여름에 거두는 자는 지혜로운 아들이나 추수 때에 자는 자는 부끄러움을 끼치는 아들이니라.
유대 땅에서 봄에는 보리 추수가 있다. 그것은 무교절 기간이다. 또 여름이 시작될 때에는 밀 추수를 한다. 그것은 맥추절 때이다. 여름은 곡식 추수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계절이다. 그때는 포도와 올리브 등 ‘여름 실과’(삼하 16:1; 암 8:1; 미 7:1; 렘 40:10)도 수확한다. 물론 산지 지역은 곡식 추수가 늦가을까지 계속된다고 한다.
여름에 거두는 자 즉 추수하는 자는 지혜로운 아들이다. 여름에 일하는 것은 힘든 일이다. 여름은 덥고 땀나는 계절이다. 그러나 여름은 일해야 할 때이다. 그것은 추수할 때이다. 이 말씀은 비유적인 의미도 가질 것이다. 어린 때와 청소년 때가 심는 때라면 청년의 때는 일하는 때이며 장년의 때는 거두는 때이다. 또 사람이 몸이 건강할 때는 부지런히 일할 때이다. 몸이 쇠약해지고 아플 때가 올 것이다. 시력이 떨어지고 청력도 떨어지고 손발의 근력도 떨어지는 때가 올 것이다. 사람이 연로해지고 체력이 쇠해지면 많은 일을 할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여름에, 일할 만한 때에 일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영적으로도, 육적으로도, 문자적으로도, 비유적으로도 그러하다.
여름에 거두는 자는 지혜로운 아들이요 부모를 기쁘게 할 것이지만, 추수 때에 잠이나 자는 자는 어리석은 아들이요 부모의 근심거리이며 수치이다. 여름에 일하며 추수하는 자는 물질적 유여함도 누리고 부모님을 물질적으로 잘 섬길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추수 때에도 일하지 않고 잠이나 자는 아들은 물질적으로 궁핍할 것이며 부모님을 물질적으로 섬길 수도 없을 것이다. 사람이 부지런하게 일하며 사는 것은 미덕이지만, 게으른 것은 수치스러운 악이다.
지혜로운 자녀는 부모님을 기쁘시게 하지만, 미련한 자녀는 부모님에게 근심이 된다. 우리는 지혜로운 자녀가 되어 부모님을 기쁘시게 하자. 그것이 효도이다. 또 우리는 자녀들이 효도하도록 지혜롭게 키우자.
또 우리는 의의 가치를 알자.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이루신 의를 그를 믿음으로 감사히 받고 항상 그를 믿고 의지하자. 또 우리는 성령을 따라 행하여 육체의 소욕을 버리고(갈 5:16)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실제로 바르게, 의롭게 살자.
우리는 게으르지 말고 부지런한 자가 되자. 사도 바울도 “조용하여 자기 일을 하고 너희 손으로 일하기를 힘쓰라”고 말했다(살전 4:11). 또 우리는 일할 만한 때에 힘써 일하자. 우리는 건강이 있을 때, 시력, 청력이 있고 손과 발에 기력이 있을 때, 성경도 부지런히 읽고 기도와 전도와 봉사도 많이 하고 가정의 일에나 자기 직업의 일에도 근면하자.
6-11절, 의인과 악인
[6절] 의인의 머리에는 복이 임하거늘 악인의 입은 독을 머금었느니라.
의인의 머리에는 복이 임한다. 의인은 의로운 생각을 하는 자이며 거기에서 의로운 말과 행위가 나온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머리에 복을 주시고 사람들도 그를 축복할 것이다. 그는 영적인 구원의 복을 받을 것이며 또 육적인 복, 곧 건강과 물질과 자녀들의 복도 받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영적인 복을 우리에게 주셨고 신명기 28장은 하나님의 명령을 지켜 행하는 의인들에게 하나님께서 모든 복을 주실 것을 약속하셨다(1-6절).
그러나 악인의 입은 독을 머금었다. ‘독’이라는 원어(카마스)는 ‘난폭함, 폭력’이라는 뜻이며, ‘머금다’는 원어(카사)는 ‘감추다, 뒤덮다’는 뜻을 가진다. 악인은 항상 거칠고 난폭한 말을 잘 한다는 뜻일 것이다. 사람의 말은 그의 인품을 증거한다. 악인의 악함은 그의 입의 악한 말에서 드러난다. 주께서는 바리새인들에게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는 악하니 어떻게 선한 말을 할 수 있느냐?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 선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그 쌓은 악에서 악한 것을 내느니라”고 말씀하셨다(마 12:34-35). 사도 바울은 “저희[악한 인생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베풀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다”고 말했다(롬 3:13-14).
[7절] 의인을 기념할 때에는 칭찬하거니와 악인의 이름은 썩으리라.
“의인을 기념할 때에는 칭찬한다”는 원어(제케르 찻디크 리베라카)는 “의인에 대한 기억은 복되다”는 뜻이다(KJV, NASB). 의인은 죽은 후에도 그에 대한 기억이 복되다. 하나님과 동행하다가 하늘나라로 올린 에녹, 홍수 심판에서 구원받았던 노아, 하나님의 벗이라고 불린 아브라함, 고난 중에도 하나님과 동행하며 형통했던 요셉, 하나님의 사람 모세, 믿음과 순종의 사람 여호수아와 갈렙, 후대의 모든 왕들의 모범이었던 다윗, 불의 선지자 엘리야, 모범적이었던 유다 왕 히스기야, 죽음의 위험을 무릅썼던 경건한 다니엘과 세 친구들,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 바울, 최초의 순교자 집사 스데반 등, 그들에 대한 기억은 성도들에게 교훈과 본과 위로가 된다.
그러나 악인의 이름은 썩을 것이다. 처음 살인자 가인, 불신앙적인 보고를 했던 열 정탐꾼, 모세를 대적했던 고라와 250명 족장들, 의롭운 다윗을 죽이려 했던 사울, 바알 숭배자 아합 왕, 많은 우상숭배를 했고 또 의인들의 피를 많이 흘렸던 므낫세 왕, 하나님의 아들 예수를 죽인 대제사장들과 장로들, 주님을 배신한 가룟 유다 등, 그들의 이름은 기억하기도 싫은 부끄러운 이름으로 기억될 뿐이다.
[8절] 마음이 지혜로운 자는 명령을 받거니와 입이 미련한 자는 패망하리라.
마음이 지혜로운 자는 명령을 받는다. ‘마음’은 영혼의 활동과 표현이며 지정의 곧 지식과 감정과 의지의 총체이다. ‘마음이 지혜로운 자’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이다. ‘명령들’은 하나님의 계명들과 명령들과 교훈들을 가리킨다. ‘명령들을 받는다’는 말은 그것들을 즐거움으로 듣고 인정하고 순종하는 것을 말한다. 마음이 지혜로운 자는 하나님의 뜻과 계명들을 순종한다. 즉 그들은 경건과 의와 선을 실천하는 것이다. 노아는 방주를 지으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온전히 순종하였다(창 6:22). 아브라함은 독자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였다(창 22:3).
그러나 입이 미련한 자는 패망한다. ‘입이 미련한 자’라는 원어(에윌 세파사임)는 ‘수다스러운 미련한 자’(KJV, NASB)라는 뜻이다. 미련한 자는 말들로 자신의 미련함을 나타낸다. 미련한 자는 말이 많은 편이다. 또 미련한 자는 하나님의 말씀에 묵묵히 순종치 않고 입으로 그것을 부정하고 반대하고 대적하고 비판하고 심지어 조롱한다. 그러나 이렇게 입이 미련한 자는 패망할 것이다.
[9절] 바른 길로 행하는 자는 걸음이 평안하려니와 굽은 길로 행하는 자는 드러나리라.
바른 길로 행하는 자는 걸음이 평안하다. ‘바른 길로 행하는 자’라는 원어(홀레크 밧톰)는 ‘온전하게 행하는 자’라는 뜻이다(NASB). ‘온전하게 행한다’는 말은 하나님의 계명대로 바르고 정직하게 행하는 것을 말한다. 그것이 도덕적 온전함이다. ‘걸음이 평안하다’는 원어(옐레크 베타크)는 ‘안전하게 행한다’는 뜻이다. 세상에는 죄와 재앙과 사탄의 시험이 많고 장차 어떤 어려움을 당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며 온전하게 행하는 자는 이 세상에서 안전함을 얻을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를 세상의 악과 사탄의 시험과 질병과 재난으로부터 건지실 것이다.
그러나 굽은 길로 행하는 자는 드러날 것이다. ‘굽은 길’은 하나님의 말씀의 정로를 이탈하여 인간의 죄악성을 따라가는 길이다. 그러면서도 악인은 그 길을 숨긴다. 그는 소박하거나 솔직하지 못하고 거짓되이 자기 행위를 숨긴다. 그러나 굽은 길로 행하는 자는 드러날 것이다. 우선, 그의 죄가 드러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가 얼마나 죄악된지 그 자신에게 또 다른 사람들에게 알게 하실 것이다. 또 그를 향하신 하나님의 징벌도 드러날 것이다. 굽은 길로 행하는 악인은 패망할 것이다. 그는 각종 질병으로 고통을 당할 것이며 경제적 파탄을 가질 것이다. 굽은 길로 행하는 자는 많은 사람들 앞에서 드러나 수치를 당할 것이며 마침내 불행하게 죽을 것이다.
[10절] 눈짓하는 자는 근심을 끼치고 입이 미련한 자는 패망하느니라.
‘눈짓하는 자’라는 원어(코레츠 아인)는 ‘눈을 찡그리는 자’라는 뜻이다. ‘눈을 찡그리는 것’은 남에 대한 미움과 멸시의 마음을 나타낼 것이다. 사람의 눈은 마음의 거울이다. 사랑과 동정의 마음은 그 눈빛에 반영되며, 교만한 마음과 남을 미워하고 멸시하는 마음도 그 눈에 나타날 것이다. 악한 자는 남을 향해 눈을 찡그린다. 그것은 이웃을 멸시하는 마음을 나타낸다.
그의 눈을 찡그리는 사람은 근심을 끼친다. ‘근심’이라는 원어(앗체벳)는 ‘상함, 고통’이라는 뜻이다(BDB). 이웃을 향해 눈을 찡그리는 것은 그 이웃의 마음에 상함과 고통을 준다. 동물도 주인이나 주인집 손님이 자기를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 안다. 하물며 사람이겠는가. 우리의 눈빛이나 표정은 상대방에게 상함과 고통을 줄 수 있다. 그래서 시편 35:19에 보면, 다윗은 기도하기를, “무리하게 나의 원수된 자로 나를 인하여 기뻐하지 못하게 하시며 무고히 나를 미워하는 자로 눈짓하지[눈을 찡그리지] 못하게 하소서”라고 말하였다.
또 입이 미련한 자는 패망한다. 같은 말씀이 8절에도 있었다. 말은 사람의 인격을 나타낸다. 말에 온전한 사람이 온전한 사람이다(약 3:2). 미련한 자의 미련함은 그의 말로 나타난다. 미련한 자는 대체로 듣기보다 말이 빠르고, 미움의 말, 남에 대한 비난의 말, 조롱과 멸시의 말을 서슴없이 내뱉는다. 그러나 미련한 자는 그의 입의 미련함으로 패망을 당할 것이다. 사람이 남을 향해 눈을 찡그리는 것은 그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정도이지만, 악한 말은 자신을 패망케 한다.
[11절] 의인의 입은 생명의 샘이라도 악인의 입은 독을 머금었느니라.
의인의 입은 생명의 샘이라고 표현된다. 성경에서 ‘의인’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의지하며 그의 계명을 순종하는 자를 가리킨다. 오늘날 예수님을 믿고 그의 교훈대로 행하는 자들도 의인이라 불린다. ‘의인의 입’ 곧 의인들의 말하는 입은 하나님을 증거하고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하고 구원을 증거한다. 그의 입은 회개와 믿음을 전하며 의를 전하고 순종과 선행을 권한다. ‘생명의 샘’이라는 말은 생명수를 내는 샘, 곧 목마른 자에게 생수를 주는 샘이라는 뜻이다. 주 예수께서는,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고 말씀하셨다(요 4:14). 의인의 말은 사람을 살리는 말 곧 죄사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는 구원의 길로 인도하는 말이다.
그러나 악인의 입은 독을 머금었다고 표현된다. 이것은 이미 6절에서도 나온 말씀이다. ‘머금다’는 원어(카사)는 ‘감추다, 뒤덮다’는 뜻을 가진다. ‘독’이라는 원어(카마스)는 ‘난폭함, 폭력’이라는 뜻이다. 악인은 독하고 난폭한 말을 마구 내뱉는다는 뜻일 것이다. 악인의 악함은 그의 입의 말에서 드러난다. 그는 남을 상하게 하고 해치고 죽이는 독한 말, 곧 욕설과 독설과 비방의 말을 마구 내뱉는다. 그는 사람을 살리기는커녕 산 사람을 죽이는 자이다.
의인의 머리에는 복이 임한다. 누가 의인인가? 의인은 마음이 지혜로워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을 다 믿고 받아들이고 지키고 행하려는 자이며 비록 완전하지는 않아도 상당히 바른 길을 걷는 자이다. 또 그의 입은 생명의 샘과 같아서 그는 말을 통해 다른 사람들을 살리기도 한다. 신약시대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서로 사랑하는 자들이 의인이다.
의인은 복되다. 여러 가지 어려운 일들과 각종 재앙들과 마귀의 시험들이 많은 이 불확실한 세상에서 의인의 삶은 안전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의인들이 이 세상 사는 동안 그들에게 필요한 영육의 필요들을 채워주시고 또 그들을 각양의 위험한 일들로부터 보호해주실 것이다. 또 믿음으로 산 의인들은 죽은 후에도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을 것이다.
그러나 본문은 악인에 대해서도 증거한다. 악인의 입은 거칠고 강포한 말로 가득하다. 또 악인은 수다스러운 미련한 자이다. 그는 성경말씀을 묵묵히 순종하는 대신 말만 많다. 또 악인은 이웃을 향해 눈을 찡그리는 자이다. 그것은 남을 미워하고 멸시하는 마음을 나타낸다. 우리는 악인이 되지 말고 의인이 되고, 오직 의인으로 바르고 선하게 살자.
12-16절, 사랑, 지혜, 의
[12절] 미움은 다툼을 일으켜도 사랑은 모든 허물을 가리우느니라.
미움은 다툼을 일으킨다. 미움은 교만과 오해와 시기와 욕심에서 나온다고 본다. 사람은 교만할 때, 오해했을 때, 시기할 때, 욕심 부릴 때 남을 미워하고 또 다툰다. 잠언 13:10, “교만에서는 다툼만 일어날 뿐이라.” 고린도교회의 시기와 분쟁과 다툼은 교인들이 몸의 죄성을 따라 행했기 때문에 생겼다(고전 3:3). 야고보는 당시의 교인들 중에 있었던 싸움과 다툼은 그들 속에 있는 육신적 욕심에서 난 것이라고 지적하였다(약 4:1-2). 사람의 교만과 오해와 시기와 욕심에서 상대에 대한 미움이 나오고 미움이 있는 곳에 다툼이 일어나는 것이다.
그러나 사랑은 모든 허물을 가리운다. 사도 베드로도 “무엇보다도 열심으로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고 말했다(벧전 4:8). 사랑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하나님의 일반 은총 속에서 천성이 비교적 착한 자들도 있는 것 같다. 그러나 대체로 하나님의 구원의 은총 속에서 겸손과 착한 마음과 긍휼의 마음에서 사랑이 나온다고 본다. 사도 바울이 증거한 대로, 사랑은 온유하고 투기하지 않고 교만하지 않고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않는다(고전 13:4-7).
사랑은 하나님의 명령이며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신 새 계명이다(마 22:37-40; 요 13:34). 또 사랑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이신 모범이다(요일 4:10). 하나님께서는 사랑으로 우리의 크고 많은 죄들을 용서하셨다. 그것은 일만 달란트 빚을 탕감받은 것과 같았다(마 18:21-35). 흠과 부족이 없는 사람은 없지만, 사람이 사랑이 있으면 다툴거리가 없고, 미움이 있을 때 싸우며 다투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서로 긍휼히 여기고 용서하고 사랑하며 단합해야 한다(엡 4:32).
[13절] 명철한 자의 입술에는 지혜가 있어도 지혜 없는 자의 등을 위하여는 채찍이 있느니라.
본문은 명철한 자의 입술에 지혜가 있다고 말한다. 지혜는 심령과 인격의 문제이며 그것은 말로 표현된다. 어리석은 자들은 입이 미련하다(잠 10:10). 악인의 입은 독을 머금었다(잠 10:6, 11). 그러나 지혜롭고 명철한 자는 지혜의 말, 곧 경건하고 의롭고 선하고 남에게 유익을 주는 말을 한다. 잠언 10:11, “의인의 입은 생명의 샘이라도.” 잠언 10:21, “의인의 입술은 여러 사람을 교육하나.”
본문은 지혜 없는 자에 대해 말한다. ‘지혜 없는’이라는 원어(카사르 레브)는 ‘마음이 없는’이라는 말로서 ‘생각이 없는, 깨달음이 없는, 양심이 없는, 지혜가 없는’이라는 뜻을 가진다(BDB). 한글개역에서는 주로 ‘지혜 없는’이라고 번역했다. 생각이 없고 깨달음이 없는 자가 지혜 없는 자이다.
본문은 지혜 없는 자의 등을 위하여는 채찍이 있다고 말한다. 채찍은 하나님의 징계와 징벌을 가리킬 것이다. 그것은 질병이나 경제적 손실이나 궁핍, 환경적 어려움 등을 가리킨다. 성경은 어린아이들을 채찍으로 징계함으로 교육하라고 가르친다. 잠언 22:15, “아이의 마음에는 미련한 것이 얽혔으나 징계하는 채찍이 이를 멀리 쫓아내리라.” 어른도 마찬가지이다. 지혜 없는 자는 하나님의 징계를 통해 비로소 깨닫고 고치고 회복된다. 욥기 5:18-20, “하나님은 아프게 하시다가 싸매시며 상하게 하시다가 그 손으로 고치시나니 여섯 가지 환난에서 너를 구원하시며 일곱 가지 환난이라도 그 재앙이 네게 미치지 않게 하시며 기근 때에 죽음에서, 전쟁 때에 칼 권세에서 너를 구속하실 터인즉.” 시편 119:67, “고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
[14절] 지혜로운 자는 지식을 간직하거니와 미련한 자의 입은 멸망에 가까우니라.
본문은 지혜로운 자는 지식을 간직한다고 말한다. 지식은 하나님과 사람과 사물들에 대한 바른 생각을 가리킨다. 지식은 경건과 의와 선의 길을 보이며 사람이 그 길로 가면 영생에 이른다. 지혜와 지식은 거의 동의어로 쓰인다. 그것들은 세상의 금이나 은이나 그 어떤 보석보다도 더 가치가 있다(잠 3:13-18).
‘간직한다’는 원어(차판)는 ‘쌓는다, 저장한다, 축적한다’는 뜻이다. 지혜로운 자는 지식을 마음 속에 저장하였다가 필요한 때 사용한다. 예수께서는 “선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그 쌓은 악에서 악한 것을 내느니라”고 말씀하셨다(마 12:35). 사람들은 세상에서 돈을 저축하는 것을 크게 여기지만, 실상 지혜와 지식을 저장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 잠언 8:10-11, “너희가 은을 받지 말고 나의 훈계를 받으며 정금보다 지식을 얻으라. 대저 지혜는 진주보다 나으므로 무릇 원하는 것을 이에 비교할 수 없음이니라.”
본문은 미련한 자의 입과 말에 대해 말한다. 미련한 자는 무지하고 불경건한 말, 불평하고 원망하는 말, 불순종하는 말, 덕스럽지 않은 말, 파괴적인 말을 잘 한다. 잠언 12:18은, “혹은 칼로 찌름같이 함부로 말하거니와 지혜로운 자의 혀는 양약 같으니라”고 말한다. 미련한 자의 말은 한마디로 죄악된 말이며, 그 자체가 죄이다.
미련한 자의 말은 멸망에 가깝다. 그는 위험한 상태에 있고, 만일 그가 그 죄를 회개치 않으면 멸망할 것이다. 예수께서는,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네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고 말씀하셨다(마 12:36-37).
[15절] 부자의 재물은 그의 견고한 성이요 가난한 자의 궁핍은 그의 패망이니라.
본문은 부자의 재물이 그의 견고한 성이라고 말한다. 견고한 성은 원수들이 공격하기 어렵고 상당히 안전한 곳이다. 부자는 돈이 많기 때문에, 오늘날 말로 하면, 집에 경비장치를 설치하고 경호원과 경비견까지 두므로 상당히 안전한 생활을 할 것이다.
그러나 부자는 자기나 돈을 의지하고 교만하고 방탕하기 쉽다. 주께서는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렵다고 하시면서,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고 말씀하셨다(마 19:24). 사도 바울도,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침륜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라고 말했다(딤전 6:9-10).
본문은 또 가난한 자의 궁핍이 그의 패망이라고 말한다. 원문을 다시 번역하면, “가난한 자들의 멸망은 그들의 궁핍이니라”이다(BDB, KJV, NASB). 사람이 궁핍하면 남에게 구걸하게 되고 남의 종이 되고 심하면 굶어죽고 낭패를 당한다. 가난을 참는 것은 미덕이지만, 가난 자체는 미덕이 아니다. 확실히, 재물은 복이며 궁핍은 화다.
그러나 복과 화는 다 하나님께 달려 있다. 신명기 28장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토지 소산의 복, 짐승 새끼의 복, 광주리와 떡반죽 그릇의 복, 자녀의 복, 건강의 복, 사회적 평안의 복을 주기도 하시고 거두기도 하신다. 오늘날 말로 하면, 하나님께서는 직장과 사업의 복, 은행 잔고의 복, 시장 바구니와 냉장고의 복, 자녀의 사회 진출과 행복의 복, 건강의 복, 사회적 평안의 복을 주기도 하시고 거두기도 하신다.
[16절] 의인의 수고는 생명에 이르고 악인의 소득은 죄에 이르느니라.
본문은 의인의 수고가 생명에 이른다고 말한다. 구약시대에 ‘의인’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제사로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이다. 구약시대의 제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 사역을 상징한다. ‘수고’라는 원어(페울라)는 ‘행위, 수고, 품삯’이라는 뜻이다. 의인의 수고는 믿음으로 행하는 것, 순종으로 행하는 것, 의롭고 선하고 진실하게 행하는 것, 정당하게 수고하여 받은 품삯 등을 말한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서]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보응]하신다”고 말했고(롬 2:7), 또 “이제는 너희가 죄에게서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얻었으니 이 마지막은 영생이라”고 말했다(롬 6:33). 또 그는 고린도 교인들에게,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고 말했다(고전 15:58). 주께서는 서머나 교회의 사자에게 말씀하시기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고 하셨다(계 2:10).
본문은 또 악인의 소득이 죄에 이른다고 말한다. ‘소득’이라는 원어(테부아)는 ‘열매, 소산, 소득’이라는 뜻이다. 악인의 소득이란 불경건하게 번 돈, 불의하게 번 돈, 거짓되게 번 돈을 가리킨다고 본다. ‘죄에 이른다’는 말은, 그렇게 번 돈이 죄악되며 자신에게 복이 되지 않고 도리어 화가 된다는 뜻이다. 잠언 20:17, “속이고 취한 식물은 맛이 좋은 듯하나 후에는 그 입에 모래가 가득하게 되리라.” 잠언 16:8, “적은 소득이 의를 겸하면 많은 소득이 불의를 겸한 것보다 나으니라.” 로마서 6:23, “죄의 삯은 사망이요.”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교만, 오해, 시기, 욕심, 미움 등을 다 버리고, 서로 사랑하며 상대의 흠과 부족을 감추어 주는 자가 되자.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지혜와 지식, 명철과 생각을 가지고 간직하고 쌓아서 지혜롭고 지식 있는 말을 하는 자가 되자.
우리는 궁핍한 가난한 자가 되지 말자. 우리는 물질적 탐심을 가지고 부자 되기를 원해서는 안 되나, 하나님께서 주시는 물질적 여유의 복을 누리며 살자. 하나님께서는 의인들에게 물질을 공급해 주실 것이다.
우리는 의인으로만 살고 일하며 수고하여 생명에 이르는 자가 되자. 우리가 의인으로 산다는 것은 믿음과 계명 순종으로 사는 것을 말한다.
17-21절, 의인의 입
[17절] 훈계를 지키는 자는 생명길로 행하여도 징계를 버리는 자는 그릇 가느니라.
‘훈계’라는 원어(무사르)는 ‘생활 훈련(discipline), 징계, 훈계’라는 뜻이다(BDB). 하나님의 말씀은 믿음의 교리뿐 아니라, 생활의 교훈도 포함한다. ‘훈계를 지킨다’는 말은 생활 훈련과 징계를 달게 받아서 인격과 삶이 거룩하고 선하고 진실하여지는 것을 말한다.
훈계를 지키는 자는 생명길로 행한다. 훈계를 지키는 것은 의(義)이며 의(義)의 결과는 생명이기 때문이다. 의롭다 하심을 얻은 성도들은 의롭게 살다가 영생에 이를 것이다. 로마서 6:13, “너희 지체를 불의의 병기로 죄에게 드리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산 자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로마서 6:22, “이제는 너희가 죄에게서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얻었으니 이 마지막은 영생이라.”
그러나 징계를 버리는 자는 그릇 가는 것이다. ‘징계’라는 원어(토카캇)는 ‘책망, 징계’라는 뜻이다(BDB). 이 단어는 ‘훈계’라는 말(무사르)과 거의 동의어이다. 책망과 징계는 설교 말씀을 통해서나 환경 여건, 곧 질병과 궁핍과 사회적 곤란 등을 통해서 온다. ‘버린다’는 말은 하나님의 징계를 달게 받지 않고 무시하고 싫어하고 거절하는 것을 말한다. 징계를 버리는 자는 어려운 일을 당할 때 하나님과 이웃에 대해 불평하고 원망한다. 그러나 징계를 버리는 자는 그릇 가고 있는 것이다. 그는 인생의 정로(正路)를 벗어나 패역의 길로 가고 있고 마침내 실패와 멸망에 이를 것이다.
[18절] 미워함을 감추는 자는 거짓의 입술을 가진 자요 참소하는 자는 미련한 자니라.
정당한 미움이 있다. 우리는 죄를 미워하고 악을 미워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죄인을 불쌍히 여기고 그의 허물을 용서하고 하나님께 모든 일을 다 맡겨야 한다. 그러나 정당하지 않은 미움이 있다. 가인이 아벨을 미워한 것이나, 요셉의 형들이 요셉을 미워한 것이나,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미워한 것 등은 부당하고 악한 미움이다. 형제에 대한 미움은 하나님 앞에서 큰 죄악이다. 미움은 살인이며 그것은 아직도 그가 어둠과 사망에 있다는 증거이다(요일 2:9; 3:14-15).
미워함을 감추는 자는 거짓의 입술을 가진 자이다. 속으로 미워하면서 겉으로 아첨하거나 사랑하는 척하는 것은 거짓일 뿐이다. 그것은 미움에 거짓의 악을 더하는 것이다. 우리는 진실한 말을 해야 한다. 우리는 진심에 없는 아첨의 말을 해서는 안 된다.
참소하는 자는 미련한 자이다. 참소(讒訴)는 거짓말로 남을 비방하는 것이다. 그것은 이웃의 명예를 훼손시키는 악한 행위이다. 그것은 악하고 미련한 일이다. 왜 그런가? 첫째로, 하나님께서는 이웃에 대한 비방을 금하셨기 때문이다. 레위기 19:16, “너는 네 백성 중으로 돌아다니며 사람을 논단하지 말라.” 우리는 이웃보다 더 큰 결함을 가진 자일 수 있다. 우리는 자신의 눈의 들보를 깨닫지 못하고 남의 눈의 띠를 빼려 해서는 안 된다(마 7:1-5). 건전한 인격자는 남의 말을 하지 않는다. 둘째로, 거짓된 비방은 거짓말하는 죄이기 때문이다. 거짓말은 지옥 갈 큰 죄악이다. 그러므로 참소하는 것은 거짓말로 남을 해치는 이중적인 큰 죄이다. 셋째로, 하나님께서 진노하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뜻에 대항하는 자는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수 없다.
[19절] 말이 많으면 허물을 면키 어려우나 그 입술을 제어하는 자는 지혜가 있느니라.
사람의 마음의 생각은 그 인격을 나타낸다. 잠언 23:7, “그 마음의 생각이 어떠하면 그 위인도 그러한즉.” 사람은 말로 마음을 표현한다. 말은 사람의 인격의 표현이다. 주께서는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악하니 어떻게 선한 말을 할 수 있느냐?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 선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그 쌓은 악에서 악한 것을 내느니라”고 하셨다(마 12:34-35). 말은 사람의 인격적 성숙의 정도를 알 수 있는 척도이다. 야고보는,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고 말했다(약 3:2).
말이 많으면 허물을 면키 어렵고 실수하기 쉽다. 말을 많이 하다 보면, 부정확한 말, 경솔한 말, 감정적인 말, 부덕한 말을 하기 쉽다. 말의 실수는 죄이다. 그러므로 성경은 입술을 크게 벌린 자에게 멸망이 온다고 말하며 또 그런 자를 사귀지 말라고 말한다(잠 13: 3; 20:19). 예수께서는,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네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고 말씀하셨다(마 12:36-37).
그러나 그 입술을 제어하는 자는 지혜가 있다. 생각이 말로 표현되기 때문에 마음을 지키고 입술을 제어하면 말 실수가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잠언 4:23은 “무릇 지킬 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고 말했고, 또 잠언 17:27은 “말을 아끼는 자는 지식이 있고 성품이 안존한 자는 명철하니라”고 말했다. 또 야고보서 1:19는,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가 알거니와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 하라”고 말했다.
[20절] 의인의 혀는 천은(天銀)과 같거니와 악인의 마음은 가치가 적으니라.
의인은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롭고 선하고 진실하게 사는 자를 가리킨다. ‘천은’(天銀)은 품질이 가장 좋은 은을 말한다. 의인의 혀는 천은(天銀)과 같다. 의인은 경건하고 의롭고 선하고 진실한 말을 할 것이다. 그의 말은 가치 있는 말이다.
그러나 악인의 마음은 가치가 적다. 악인은 하나님을 경외함이 없고 부도덕하게 사는 자이다. 그에게서는 악하고 강포한 말, 남을 비방하고 자신을 높이며 자랑하는 말, 또 거짓된 말이 나올 것이다. 그의 마음은 가치가 적다. 인간의 가치는 경건과 도덕성에 있다. 경건하고 의로운 자가 훌륭한 사람이다.
[21절] 의인의 입술은 여러 사람을 교육하나 미련한 자는 지식이 없으므로 죽느니라.
본문은 의인의 입술이 여러 사람을 교육한다고 말한다. ‘교육한다’는 원어(라아)는 ‘먹인다, 인도한다’는 뜻이다. 경건하고 의롭고 선한 사람은 여러 사람들 곧 가족과 친구와 이웃을 가르치고 그들을 진리의 지식으로 먹이고 선한 길로 인도한다. 그가 주일학교 교사가 되면, 아이들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바로 먹이고 인도할 것이다.
그러나 미련한 자는 지식이 없으므로 죽는다. 미련한 자는 불경건하고 부도덕한 자이며 지식이 없다. ‘지식이 없다’는 원어(카사르 레브)는 ‘마음이 없다, 생각이 없다’는 뜻이다. 미련한 자는 세상적 지혜와 지식은 있을지 모르나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이 없는 자들이다. 그러므로 그들에게서는 불경건한 언행(言行)과 부도덕한 언행이 나온다. 그런 언행은 죄악되며 그들은 마침내 죽음과 영원한 지옥 형벌을 피할 수 없다. 미련한 자들은 다른 이들을 살리고 유익케 하기커녕 자기 자신 하나도 살리지 못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훈계를 지키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징계를 무시하지 말자.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가 지켜야 할 바른 말이다.
우리는 남에게 아첨의 말을 하지도 말고 거짓말로 남을 비방하지도 말자. 우리는 바르고 진실한 말만 하고 헛되고 거짓된 말을 하지 말자.
우리는 입술을 제어하고, 말을 많이 하지 말자. 사람은 가급적 말수를 줄이는 것이 말 실수를 줄이는 길이다. 그래야 말 실수가 없을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을 범사에 하나님을 시인하는 말을 하고 남에게 유익을 끼치는 선하고 덕스러운 말을 하는 의인의 입술을 가지기를 소원하자.
22-26절, 의인의 복, 게으름
[22절]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사람으로 부하게 하시고 근심을 겸하여 주지 아니하시느니라.
본문은 여호와께서 복을 주신다고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복을 주시는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의 복은 일차적으로 영적인 복이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과 영생을 주셨다. 에베소서 1:3-4,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시되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구원과 영생은 큰 복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복은 또한 물질적 부요도 포함한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큰 복을 주셔서 창성케 하셨고 우양과 은금과 가축떼를 많이 주셨다(창 24:35). 하나님께서는 이삭에게도 복을 주셔서 창대하고 왕성하고 거부가 되게 하셨고 양과 소가 많은 떼를 이루게 하셨다(창 26:12-14).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해 신명기 28장에 토지소산의 복, 우양의 새끼의 복, 떡반죽 그릇의 복 등을 약속하셨다. 잠언 3장에도, 지혜를 얻는 자가 복되며 그 오른편에 장수(長壽)가, 그 왼편에는 부요와 존귀가 있다고 말했다(16절). 물질적 복도 하나님의 복이다.
또한 하나님의 복은 근심이 없는 복이다. 근심은 죄 때문에 왔다. 그러므로 죄사함받고 의롭게 사는 자에게는 근심이 사라지고 평안이 넘친다. 시편 119:165, “주의 법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큰 평안이 있으니 저희에게 장애물이 없으리이다.” 요한복음 14:27,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23절] 미련한 자는 행악으로 낙을 삼는 것같이 명철한 자는 지혜로 낙을 삼느니라.
미련한 자는 행악으로 낙을 삼는다. ‘낙을 삼는 것’(세코크)이라는 원어는 ‘웃음, 조롱거리, 장난’ 등의 뜻이다(BDB). 미련한 자는 악을 행하는 것을 장난으로 여긴다. 그가 악한 일을 심각하게 여기지 않고 장난하듯이 생각하며 행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그것은 미련한 일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 죄이며 하나님께서 그것을 미워하시고 진노하시고 징벌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명철한 자는 지혜로 기쁨을 삼는다. 지혜자는 자신의 악이나 남의 악까지도 두려워하고 부끄러워하고 슬퍼하고 멀리한다. 하나님께서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해 “무릇 마음이 가난하고 심령에 통회하며 나의 말을 인하여 떠는 자 그 사람은 내가 권고하리라”고 말씀하셨고(사 66:2), 선지자 에스겔을 통해서는 “너는 예루살렘 성읍 중에 순행하여 그 가운데서 행하는 모든 가증한 일로 인하여 탄식하며 우는 자의 이마에 표하라”는 말씀을 주셨다(겔 9:4).
지혜자는 하나님을 즐거워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하고 의와 선을 즐거워하고 내세를 즐거워하고 하나님의 일을 즐거워하고 하나님의 백성을 즐거워한다. 시편 119편 저자는, “주의 증거는 나의 즐거움”이라고 말했다(시 119:24).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에서, “만일 너희 믿음의 제물과 봉사 위에 내가 나를 관제로 드릴지라도 나는 기뻐하고 너희 무리와 함께 기뻐하리라”고 말했다(빌 2:17). 사도 요한은, “형제들이 와서 네게 있는 진리를 증거하되 네가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하니 내가 심히 기뻐하노라. 내가 내 자녀들이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함을 듣는 것보다 더 즐거움이 없도다”라고 말했다(요삼 3-4).
[24절] 악인에게는 그의 두려워하는 것이 임하거니와 의인은 그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느니라.
악인에게는 그의 두려워하는 것이 임한다. 악인은 무엇을 두려워하는가? 그는 하나님의 심판과 징벌을 두려워한다. 그것은 질병과 궁핍과 사고 등으로 나타난다. 왜 두려워하는가? 양심 때문에 그러하다. 에스더서에 나오는 악한 하만은 아내 세레스와 모든 친구의 제안대로 집 뜰에 50규빗(약 25미터) 되는 높은 나무를 세우고 다음날 왕에게 유대인 모르드개를 그 나무에 달기를 구하려 계획하였다. 그러나 그는 왕의 명으로 오히려 모르드개에게 왕복을 입히고 왕관을 씌우고 그를 왕의 말에 태워 성 중 거리로 다니며 왕이 존귀케 하기를 기뻐하시는 자에게 이렇게 할 것이라고 외치게 되었다. 그는 마음이 사하여 집으로 급히 돌아와 친구들에게 그 일을 고했다. 그때 그들 중에 지혜로운 자와 아내 세레스는, “모르드개가 과연 유다 족속이면 당신이 그 앞에서 굴복을 당하기 시작하였으니 능히 저를 이기지 못하고 분명히 그 앞에 엎드러지리이다”고 말했다(에 5:14-6:13). 그런데 그들이 두려워한 그 일이 하만에게 닥쳐왔다.
그러나 의인은 그 원하는 것이 이루어진다. 의인은 하나님의 뜻에 합한 의롭고 선한 것을 원할 것이며 그의 소원은 다 이루어질 것이다. 시편 103:5는, 하나님께서 “좋은 것으로 네 소원을 만족케” 하신다고 말한다. 잠언 16:3은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너의 경영하는 것이 이루리라”고 말했고, 주께서는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라고 말씀하셨다(마 7:7). 빌립보서 2:13은,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라고 말했다.
[25절] 회리바람이 지나가면 악인은 없어져도 의인은 영원한 기초 같으니라.
회리바람이 지나가면 악인은 없어진다. 회리바람은 세상에서 만나는 큰 환난을 가리킨다. 토네이도 같은 회리바람은 한 마을을 황폐케 하는 무서운 바람이다. 세상에는 때때로 전쟁이 있고 지진과 기근이 있고 전염병이 있다. 그것이 회리바람처럼 한 지역을 지나가면 많은 인명피해가 생긴다. 세계적 경제 위기는 회리바람이다. 회리바람은 악인을 징책하시는 하나님의 방법이다. 악인은 그 회리바람으로 멸망한다. 시편 1:5는 악인이 하나님의 심판을 견디지 못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의인은 영원한 기초와 같다. 기초는 튼튼하다. 집을 지을 때 먼저 기초를 튼튼히 만든다. ‘영원한 기초’라는 표현은 ‘흔들리지 않고 없어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시편 125:1은 “여호와를 의뢰하는 자는 시온산이 요동치 아니하고 영원히 있음 같도다”라고 말한다. 의인에게도 고난은 있으나 그는 낙망치 않고 실패치 않고 망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는 의인을 보호하시고 구원하실 것이다. 시편 91:3, 5-7, “이는 저가 너를 새 사냥꾼의 올무에서와 극한 염병에서 건지실 것임이로다,” “너는 밤에 놀램과 낮에 흐르는 살과 흑암 중에 행하는 염병과 백주에 황폐케 하는 파멸을 두려워 아니하리로다. 천인이 네 곁에서, 만인이 네 우편에서 엎드러지나 이 재앙이 네게 가까이 못하리로다.” 하나님께서는 의인에게 피할 길을 주신다(고전 10:13).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극심한 고난 중에도 구원을 체험했고(고후 1:8-10) 낙심치 않는다고 고백했다(고후 4:8-9). 또 고난은 성도에게 유익이 된다. 그것은 거룩하고 믿음 있는 인격으로 단련시키기 때문이다(롬 5:3-4).
[26절] 게으른 자는 그 부리는 사람에게 마치 이에 초 같고 눈에 연기 같으니라.
게으른 자는 그 부리는 사람에게 이에 식초 같고 눈에 연기 같다. 식초가 이에 닿으면 이가 시리고 아플 것이며, 연기가 눈에 들어가면 눈이 따갑고 아파서 견딜 수가 없을 것이다. 게으른 자는 그를 부리는 사람, 즉 그를 보내고 그에게 일을 시키는 사람에게 그러할 것이다. 그를 보낸 사람은 그 게으른 자로 인하여 몹시 불편하고 그 사람을 생각하고 싶지 않고 보기도 싫을 것이다. 그는 그 게으른 자에게 좋은 말을 할 수도 없을 것이다.
성도는 하나님 앞에서 날마다 게으르지 말고 부지런하게 살아야 한다. 남자는 남자로서 자기의 일, 자기의 직장, 자기의 사업에 성실하고 근면해야 한다. 여자는 여자로서 자기 집안의 일, 가족들의 영양을 생각한 식사 준비, 위생적 청결을 위한 청소와 빨래, 자녀 출산과 양육 등의 일에 성실하고 근면해야 한다. 자녀들은 공부할 때 열심히 공부하고 몸의 건강을 위해서 적절히 운동도 해야 한다.
또 성도는 성경 읽기, 기도, 성수 주일과 기타 집회참석, 사랑, 전도, 봉사 등의 일에도 부지런해야 한다. 또 직분자는 각자 맡은 직무를 따라 하나님 앞에 충성해야 하고 또 부지런해야 한다. 로마서 12:11,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
물론, 정서적 존재인 사람에게 어느 정도 휴식과 기분 전환이 필요하며, 음악, 독서, 운동, 원예 등의 취미생활도 가능하다고 본다. 마가복음 6:31, “너희는 따로 한적한 곳에 와서 잠깐 쉬어라.” 그러나 휴식이나 기분 전환 또는 취미생활이 너무 지나치면 게으른 일이 될 것이다. 성경은 게으른 생활을 책망하고 부지런한 생활을 권장한다.
우리는 복의 근원 되신 하나님께서 주신 모든 영적인 복, 육신적인 복, 물질적인 복, 또 환경적인 복을 깨닫고 기억하고 감사하고, 또 영육의 복을 항상 사모하자. 우리는 또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과 평안 가운데 살자.
우리는 악을 행하는 것을 장난으로 여기지 말고, 그것을 두려워하고 멀리하고, 오직 지혜로 즐거움을 삼는 명철한 자가 되자.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말씀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일을 위해 사는 것이 지혜이다.
우리는 악하게 살지 말고, 의인으로만 살자. 그것은 하나님을 범사에 인정하고 믿고 섬기고, 또 그의 계명대로 바르고 선하고 진실하게 사는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선한 소원을 들어주실 것이다.
우리는 악인으로 살지 말고 의인으로만 살고 환난을 두려워하지 말자. 환난은 우리를 멸망케 못하며 우리의 인격을 단련시킬 뿐이다.
우리는 이에 초 같고 눈에 연기 같은 게으른 자가 되지 말고 범사에 부지런한 자가 되자. 에베소서 5:16,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27-32절, 의인의 삶
[27절] 여호와를 경외하면 장수(長壽)하느니라. 그러나 악인의 연세는 짧아지느니라.
여호와를 경외하면 장수한다. 사람들은 젊을 때 죽는 것보다 오래 사는 것을 복이라고 생각한다. 생에 대한 애착은 본능적인 것 같다. 사람들은 장수의 비결로 맑은 공기, 소식(小食), 적당한 노동, 평안한 마음 등을 꼽는다. 그러나 성경이 가르치는 장수의 비결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알고 두려워하고 그를 믿고 의지하며 하나님의 법을 어기지 않고 순종하는 것이다. 성경은 율법을 순종하는 자들에게 장수를 약속한다.
신명기 4:40,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규례와 명령을 지키라. 너와 네 후손이 복을 받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서 한없이 오래 살리라.” 신명기 5:33,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명하신 모든 도를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삶을 얻고 복을 얻어서 너희의 얻은 땅에서 너희의 날이 장구하리라.” 신명기 11:8-9, “그러므로 너희는 내가 오늘날 너희에게 명하는 모든 명령을 지키라. 그리하면 너희가 강성할 것이요 너희가 건너가서 얻을 땅에 들어가서 그것을 얻을 것이며 또 여호와께서 너희의 열조에게 맹세하사 그와 그 후손에게 주리라고 하신 땅 곧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너희의 날이 장구하리라.” 장수는 심령의 평안, 몸의 건강, 경제적 안정, 그리고 환경적 평안을 포함한다. 장수의 복은 결국 영생을 포함한다.
그러나 악인의 수명은 짧아진다. 악인은 병으로 일찍 죽거나 전쟁, 기근, 사고 등의 재앙으로 일찍 죽는다. 에스더서의 하만은 모르드개와 유다 민족을 죽이려 하다가 자기가 죽었다.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은 30에 팔았다가 자살해서 죽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자기의 땅을 팔아 그 값의 일부를 감추고 거짓말했다가 즉시 죽었다.
[28절] 의인의 소망은 즐거움을 이루어도 악인의 소망은 끊어지느니라.
의인의 소망은 즐거움을 이룬다. 의인은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의 계명을 순종하는 자이다. 의인의 소망은 이루어지며 그것은 즐거움이 된다. 잠언 10:24는, “악인에게는 그의 두려워하는 것이 임하거니와 의인은 그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느니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바울은 “소망 중에 즐거워하라”고 말하였다(롬 12:12).
성도의 소망은 주의 재림과 몸의 부활 및 천국과 영생이다. 베드로전서 1:3-4, “찬송하리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이 그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기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성도는 환난 중에서도 소망을 가지고 기뻐한다. 로마서 5:3-4,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그러나 악인의 소망은 끊어진다. 악인은 하나님을 무시하고 그의 계명을 어기며 악하게 사는 자이다. 악인의 소망은 아무리 좋아 보여도 이루어지지 않을 헛된 꿈이다. 그것은 주께서 말씀하신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에서 어리석은 부자의 헛된 소망과 같다. 그 부자는 큰 풍년을 맞아 그의 곡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그의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고 계획했다. 또 그는 스스로 말하기를, “내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고 하였다. 그러나 그때 하나님께서는, “어리석은 자여, 오늘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고 말씀하셨다(눅 12:16-21).
[29절] 여호와의 도가 정직한 자에게는 산성이요 행악하는 자에게는 멸망이니라.
‘여호와의 도’는 하나님께서 교훈하신 생활 방식을 가리킨다. 여호와의 도는 정직한 자에게 산성이다. ‘정직한 자’라는 원어(톰)는 ‘온전한 자’라는 뜻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순종하며 행하는 자를 가리킨다. ‘산성’(마오즈)은 ‘요새, 피난처’라는 뜻이다. 그것은 환난으로부터, 원수 마귀로부터, 죄와 시험으로부터, 죽음으로부터 지키는 요새와 피난처를 가리킨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것을 지키며 순종하는 정직한 자에게는 요새와 피난처 같다. 이 세상 사는 동안,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것은 안전의 비결이다.
주께서는 산상설교의 결론에서도 주의 말씀을 지켜 행하는 자에 대해 말씀하시기를,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초를 반석 위에 놓은 연고요”라고 하셨다(마 7:24-25). 홍수와 같은 환난이 닥쳐와도, 말씀을 행하는 자는 망하지 않는다.
그러나 여호와의 도는 행악하는 자에게는 멸망이다. 악은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는 것이다. 그것은 남을 해치는 것이다. 이웃을 미워하는 마음에서 나오는 모든 행동이 악이다. 하나님께서 주신 생활 교훈은 행악하는 자에게는 멸망이 된다. 왜냐하면 그 말씀은 악을 정죄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것을 지키는 자에게는 안전을 보장하지만, 그 말씀을 어기는 자에게는 멸망의 신호인 것이다. 행악자는 결국 망할 것이다. 그는 세상에서도 질병이나 기근이나 전쟁 같은 재앙으로 인해 망할 것이지만, 죽은 후에 지옥의 고통을 당할 것이며, 마지막 심판 날에 지옥 불못에 던지울 것이다.
[30절] 의인은 영영히 이동되지 아니하여도 악인은 땅에 거하지 못하게 되느니라.
의인은 영영히 이동되지 않는다. 의인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뜻대로 사는 자를 가리킨다. 신약 성도는 주 안에서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이다. ‘이동하다’는 원어(무트)는 ‘요동하다’는 뜻이다. 이 세상에는 여러 가지 시험과 환난이 있지만, 의인은 영영히 요동하지 않는다. 본장 25절도, “회리바람이 지나가면 악인은 없어져도 의인은 영원한 기초 같으니라”고 말하였다.
성경은 여러 곳에서 의인의 요동치 않음을 증거한다. 시편 125편의 저자는 “여호와를 의뢰하는 자는 시온산이 요동치 아니하고 영원히 있음 같도다”라고 고백한다(시 125:1).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주께서 너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날에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끝까지 견고케 하시리라”고 썼다(고전 1:8). 또 그는 빌립보교회에는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고 썼다(빌 1:6). 사도 요한은 그의 첫 번째 편지에서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고 말했다(요일 5:4).
그러나 악인은 땅에 거하지 못하게 된다. 땅은 하나님의 창조 세계이며 원래 의인들의 거주지로 창조되었다. 악인들이 현재 살고 있지만 그들은 땅에 거주할 자격이 없는 자들이며 어느 날 땅에서 제거될 자들이다. 그러므로 다윗은 시편 37편에서 성령의 감동 가운데 “주의 복을 받은 자는 땅을 차지하고 주의 저주를 받은 자는 끊어지리로다”고 말했다(시 37:22). 솔로몬은 잠언 2:21-22에서도 “대저 정직한 자는 땅에 거하며 완전한 자는 땅에 남아 있으리라. 그러나 악인은 땅에서 끊어지겠고 궤휼한 자는 땅에서 뽑히리라”고 말했다.
[31절] 의인의 입은 지혜를 내어도 패역한 혀는 베임을 당할 것이니라.
의인의 입은 지혜를 낸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계명대로 의롭게 사는 자의 입에서는 지혜의 말이 나온다. 그것은 그 영혼이 새로워졌기 때문이다. 특히 신약 성도는 거룩하게 변화된 새 성향을 가진 자이다. 에스겔 36:26에서, 하나님께서는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라”고 약속하셨는데, 과연 하나님의 약속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신 신약시대에 성취되었다. 디도서 3:4-6, “우리 구주 하나님의 자비와 사람 사랑하심을 나타내실 때에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좇아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성령을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풍성히 부어 주사.”
사람은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한다(마 12:34). 샘이 한 구멍으로 단 물과 쓴 물을 낼 수 없다(약 3:11). 성도의 변화된 마음에서 지혜의 말, 곧 하나님을 고백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찬송하는 경건한 말이 나오고 다른 사람에게 복과 유익을 주는 의롭고 선한 말이 나오고 다른 사람을 구원하고 살리는 말이 나온다.
그러나 패역한 혀는 베임을 당할 것이다. 패역한 혀는 창조주 하나님을 거스르는 혀, 하나님의 계명을 대적하고 그의 교훈을 비방하는 혀, 이웃을 욕하고 비방하는 혀이다. 그것은 어리석은 혀이며 사람을 멸망에 이르게 하는 혀이다. 주께서는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히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고 말씀하셨다(마 5:22). 그는 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네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고 말씀하셨다(마 12:36-37). 패역한 혀는 심판을 받을 것이다.
[32절] 의인의 입술은 기쁘게 할 것을 알거늘 악인의 입은 패역을 말하느니라.
의인의 입술은 기쁘게 할 것을 안다. ‘기쁘게 할 것’이라는 원어(라촌)는 ‘선의(善意), 호의, 기쁨’이라는 뜻이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말씀에 순종하며 사는 의인은 다른 사람에 대해서 호의적인 말을 할 줄 안다는 뜻이다. 호의적인 말은, 아첨의 말이 아니고 온유하고 겸손함에서 나오는 선한 말, 너그럽고 관용하는 말, 긍휼히 여기며 용서하는 말, 그리고 위로하고 격려하는 말 등을 포함할 것이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 교인들에게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고 교훈하였다(엡 4:29). 우리는 남에 대해 호의적인 말을 하는 입술을 가지자.
그러나 악인의 입은 패역을 말한다. 악인은 하나님을 무시하고 불순종하고 교만한 자이다. 그는 하나님을 믿지 않고 감사하지 않으며 불평 원망하고 반항적인 말을 한다. 또 그는 다른 사람을 향해서도 거칠고 난폭한 말을 한다. 그는 다른 사람을 미워하며 시기하고 욕하며 비방하고 또 정죄하며 저주하기까지 한다. 로마서 3:13-14, “저희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베풀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하자. 하나님을 믿고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신구약성경을 다 믿고 순종하자. 그것이 장수와 영생의 길이다.
우리는 악인으로 살지 말고 의인으로 살며, 주의 재림과 몸의 부활과 천국과 영생을 간절히 소망하며, 그 소망 중에서 즐거움을 누리자.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정직한 자로만 살고 모든 악을 멀리하자. 그것은 이 세상에서 당하는 여러 가지 환난을 피하는 길이다.
우리는 악인이 되지 말고 의인으로만 살자. 의인은 땅에서 결코 요동치 않고 땅에 거할 것이다. 세상은 의인을 위해 예비된 곳이다.
우리는 어리석고 패역한 혀를 버리고 지혜롭고 의로운 입을 가지자. 우리는 더러운 말은 입 밖에도 내지 말고 덕스럽고 선한 말만 하자.
우리는 남을 욕하고 비방하는 입술을 버리고, 호의적인 말, 선한 말, 너그러운 말, 위로와 격려의 말을 할 줄 아는 의인의 입술을 가지자.
[시편 29편 주일설교말씀] 하나님의 영광과 능력을 찬송함(시 29: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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