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기 6장에서 욥은 죽음을 원하고 있습니다. 엘리바스의 말에 욥이 대답을 하면서 죽음을 원하고 있습니다. 현재의 육체적 고난이 너무나 심하다는 것을 우리가 알 수 있습니다. 차라리 하나님께서 자신의 생명을 가져가시면 더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모든 생명은 여호와 하나님이 주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생명을 주셨기 때문에 하나님이 취하십니다. 우리는 생명이 다하는 날까지 주님만을 섬기면서 나가야 하겠습니다.
죽음을 원하고 있는 욥(욥 6:8-13)
8절 미 이텐 타보 셰엘라티 비티키바티 이텐 엘로아흐
9절 비요엘 엘로아흐 비읻다키에니 야테르 야도 비바치에니
성 경: [욥6:8,9]
주제1: [엘리바스에 대한 욥의 답변(1)]
주제2: [죽음을 원하는 욥]
본문은 3장에 이미 나타난 욥의 간구를 재확인하고 있다. 즉 3장에서 욥은 자신의 죽음을 갈구하였던 바, 여기서 그것을 다시 반복하여 피력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 보아야 할 사항은 다음과 같다. (1) 죽음에 대한 욥의 갈구 : 3장에서 욥은 자신의 죽음을 강하게 나타낸 바 있다. 즉, 그는 (가) 차라리 잉태되지 말았으면(3:3-10), (나) 탄생하지 말았으면(3:3-10), (다) 탄생하였으되 일찍 죽었음다(3:11-19)하고 소망하였다. 그런데 여기서는 이러한 소망의 연장선상에서 (라) 지금이라도 죽었으면 하고 갈구한다. 이처럼 욥은 죽음의 가능성을 여러 가지로 설정하고 그 가능성들이 한 가지씩 실패로 돌아가자 또 다른 가능성을 모색한다. 이렇듯 집요하게 죽음에 집착하는 1차적 이유는 욥이 당한 고난의 심각성에 있다. 그러나 보다 궁극적인 이유는 풀길 없는 하나님의 섭리 속에서 욥이 신앙적 혼란에 빠졌으며, 더 이상 현생(現生)에 대한 소망을 둘 여지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2) 엘리바스의 변론에 대한 정면 거부 :엘리바스는 그의 변론에서 죽음은 악인에게 임하는 하나님의 최종적 형벌이요 심판임을 강하게 설파하였었다(4:9). 그리고 욥에게 고난 중에 하나님께 기도할 것을 권면하였다(5:1,8). 그러나 여기서 욥은 도리어 죽음을 강하게 염원함으로써 이 같은 엘리바스의 권면을 정면으로 거부한다. 향후 전개될 욥과 그의 친구들 간의 변론에서 긴장과 반목이 야기되는바, 이 같은 욥의 태도도 그 원인이 되었을 것이다. (3) 욥의 신앙 :욥은 여전히 죽음을 갈망하는 가운데에서 그 죽음의 주권자가 하나님이심을 명백히 고백하고 있다. 즉, 인간의 생사(生死)를 좌우할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뿐이심을 그는 철저히 인식했다. 이러한 인식이 없었더라면 아마 그는 인내의 한계에 봉착하여 자살을 도모했을는지도 모른다. 피할 수 없는 고난 중에서도 그 고난의 조성자가 하나님이시며(4절), 자신은 그 고난을 회피하기 위해 죽음을 갈구할 수는 있을지언정 그것을 도모할 수는 없다는 것이 욥의 믿음이었다. 바로 이런 점에서 욥은 세속적 염세주의자(pessimisti), 또는 현실의 한계 상황을 회피하기 위해 자살을 정당시 한 후기 스토아주의자(Later Stoic)들과 명백히 대조된다.
10절 우티히 오드 네하마티 바아살리다 비힐라 로 야히몰 키 로 키하디티 이미레 카도쉬
성 경: [욥6:10]
주제1: [엘리바스에 대한 욥의 답변(1)]
주제2: [죽음을 원하는 욥]
내가 거룩하신 이의 말씀을 거역지 아니하였음이니라 - 본문은 한편으로, 하나님 앞에서 끝까지 신앙 절개를 지켜 왔노라고 하는 욥의 신앙 고백이기도 할. 그러나 이 고백 속에는 자신의 허물을 책망하려 들었던 엘리바스에 대한 반발과 변호의 심리가 다분히 내포되어 있다. 욥은 하나님으로부터 두 번씩이나 인정을 받은(1:1, 8; 2:3) 거룩한 자였다. 그러나 엘리바스로부터 직접적이진 않지만 간접적으로 그 자신의 의를 의심받고, 죄를 추궁당했다(4:6-11; 5:2-7). 아마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욥은 자신의 의를 내세우고 있는 듯하며 29절에 가서는 그 강도를 더욱 높이고 있다.
11절 마 코히 키 아야헬 우마 키치 키 아아리크 나피쉬
성 경: [욥6:11]
주제1: [엘리바스에 대한 욥의 답변(1)]
주제2: [죽음을 원하는 욥]
엘리바스는 욥에게 하나님의 징계를 받는 자가 누릴 축복에 대해 약속한 바 있다(5:17-27). 그러나 욥의 현재 상황은 그 같은 약속과 너무나 동떨어져 있었다. 즉, 엘리바스는 소유(5:24)와 자손(5:25)의 축복을 약속했으나 욥에게 있어서 그것은 한낱 공허한 언설(言說)에 불과했다. 더욱이 잃어버린 건강(2:8, 9)을 다시 회복한다는 것(5:18, 19)은 사실상 불가능한 것처럼 보였다. 이러한 욥의 현 상황은 절망의 연속이며, 어떤 측면에서 절망 그 자체였다. 따라서 그는 참고 인내하여 회복될 미래를 소망하기보다는 차라리 현재에서 죽음을 요청했다.
12절 임 코아흐 아바님 코히 임 비사리 나후쉬
성 경: [욥6:12]
주제1: [엘리바스에 대한 욥의 답변(1)]
주제2: [죽음을 원하는 욥]
본문은 신앙의 위인인 욥 자신도 여느 인간과 마찬가지로 유한한 능력을 지닌 존재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토로되어 있다. 즉, 상반절은 정신력(기력)의 한계를 후반절은 육체(살)의 한계를 나타낸다 하겠다. 여기서 정신력이라 함은 고난 중에서도 하나님께 대한 신뢰를 상실하지 않는 신앙 의지를, 그리고 육체라 함은 고난, 특히 전신에 퍼진 피부병(2:8, 9)을 인내하는 육체적 능력을 각각 가리킨다. 요컨대 욥은 그 정신력과 육체에 있어서 한계 상황에 다다랐던 것이다.
13절 하임 엔 에지라티 비 비티쉬야 니디하 미메니
성 경: [욥6:13]
주제1: [엘리바스에 대한 욥의 답변(1)]
주제2: [죽음을 원하는 욥]
나의 지혜가 내게서 쫓겨 나지 아니하였느냐 - 불의의 재난을 당한 욥은 그것을 타개하기 위해 나름대로의 노력을 경주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같은 재난을 주신 하나님의 의도가 어디에 있는지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물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만족할 만한 결과를 가져오지 못했다. 따라서 본절은 욥이 삶의 위기를 해소할 능력(RSV, any resource)이 전혀 없음을 토로한 것이다. 한편, 본문의 `지혜'는 `생명의 실제'(Lange), `구원'(Noyes), `회복'(Conat)등으로도 해석된다. 만약 이 해석법을 따를 경우 본절은 구원과 회복(건강 회복, 자손과 소유의 번성 등)의 가능성이 전무(全無)한 욥의 절망감을 토로한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마가복음 12장 예수님 말씀] 악한 포도원 농부들의 비유(막 12: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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