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2장에서 동방박사들이 별을 보고 예루살렘에 오게 됩니다. 메시아이신 예수님의 탄생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만왕의 왕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헤롯은 동방박사들의 말을 듣고 당황하게 됩니다. 헤롯은 예수님을 죽이려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하나님은 이것을 알기에 동방박사에게 다른 길로 돌아가라고 지시했습니다. 헤롯이 예수님을 죽이려고 하자 요셉은 마리아와 예수님을 데리고 애굽으로 피신하게 됩니다.
동방박사 경배와 애굽 피신(마 2:9-15)
9절 호이 데 아쿠산테스 투 바실레오스 에포류데산 카이 이두 호 아스테르 혼 에이돈 엔 테 아나톨레 프로에겐 아우투스 헤오스 엘돈 에스테 에파노 후 엔 토 파이디온
성 경: [마2:9]
주제1: [메시야 탄생에 대한 반응과 유년시절]
주제2: [동방 박사들의 경배와 귀국]
박사들이 왕의 말을 듣고 갈새 - 본서의 기자 마태는 분명히 '별'이 박사들을 예루살렘으로 인도했다고 기록하지 않았다. 더욱이 그들이 10절에서 별을 보고 기쁨을 표한 것은 적어도 별이 계속 보이지 않았음을 시사한다. 아마도 그 당시 '별'을 통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던 박사들이 그 '별'이 보이지 않게 되자(Meyer, Bengel) 유대인의 왕이 탄생할 장소는 당연히 예루살렘일 것이라는 스스로의 판단에 따라 예루살렘을 찾았고, 또 그 당시 유대의 유력자 헤롯의 '말'을 들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들은 헤롯의 경건하게 보이는 말에 고무(encouragement)되어 있었을 것이다.
동방에서 보던 그 별 - 자신들의 지혜에 의해 길을 잘못 들었던 박사들에게 바른 길을 제시하는 하나님의 밝 은계시의 별이 다시 나타났다. 실로 혼탁하고 부패한 세상 가운데서 참 생명 되신 예수께로 인도하는 유일한 힘은 하나님의 계시뿐이다(시 119:105). 한편 본문은 박사들이 궁(宮)을 떠날 때 이미 밤이 되었다는 사실을 암시하고 있다. 낮이 무덥고 밤이 서늘한 중근동 지방에서는 먼길을 가기 위해 밤에 별을 보고 여행하는 것이 관습이었다(Meyer).
문득 앞서 인도하여 가다가 - 여기서 '문득'이란 말은 헬라어 원문에는 없는 말로서 갑작스러운 상황을 더욱 분명히 드러내기 위해 의미상 첨가한 말이다. 이제 박사들은 다시 '별'을 통한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바른 길을 갈 수 있게 되었다. 여기서 '앞서 인도하여'라는 헬라어 '프로에겐'은 서술적 미완료 시상으로 동작(인도)의 계속성을 나타낸다. 즉 '손으로 이끌듯 계속해서 인도해 가는 상태'를 나타내는 용어이다(Chryststom). 그런데 문제는 과연 이 말이, 별이 동방으로부터 베들레헴까지 움직였다는 것과 베들레헴 상공에 계속 떠서 움직이고 있는 별을 보고 박사들이 왔다는 것(Bruce) 중 어느 것을 가리키는 말인지 확실하게 밝힐 수는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박사들은 그 별이 '유대인의 왕'(2절)을 가리킨다고 믿었고, 그 별은 그들을 '아기 있는 곳'으로 인도한 것이다.
아기 있는 곳 위에...섰는지라 - 여기서 '있는 곳 위에'(에파노 후 엔)란 '아기가 있었던 베들레헴의 한 특정한 곳 위에'로 볼 수도 있고, 그저 막연히 '베들레헴 동네 위에'로 볼 수도 있다. 만일 전자를 받아들인다면 이 사건의 초자연성을 더욱 강조한 것이 될 것이다. 하지만 후자를 받아들여 일단 베들레헴에 도착한 박사들이 수소문하여 아기가 있는 곳으로 찾아갔다 할지라도 이 사건의 초자연성을 감소시키지는 못할 것이다. 여하튼 별은 아기가 '있는' 곳에 조금도 움직이지 않고 굳게 '머물러' 있었다. 실로 그곳에 바로 인도(leading)와 축복과 그리고 구원이 있었다. 정녕 다윗의 자손 예수께서 '머물러서'(눅 18:40) 있는 곳에 구원이 있는 것이다.
10절 이돈테스 데 톤 아스테라 에카레산 카란 메갈렌 스포드라
성 경: [마2:10]
주제1: [메시야 탄생에 대한 반응과 유년시절]
주제2: [동방 박사들의 경배와 귀국]
저희가 별을 보고...기뻐하고 기뻐하더라 - '별을 보고'라는 말은 그들이 새삼스럽게 별의 나타남(7절)을 보았다기보다, 아기 예수위에 '머물러 서'있는 별이 자신들의 기나긴 여행의 최종적인 목적지로서 하나님의 임재하심과 은혜, 곧 임마누엘이신 예수(1:23) 탄생을 드디어 목격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을 확신하였다는 말이다. 이 확신은 그들로 하여금 세상에서 맛볼 수 없었던 무한한 기쁨의 세계로 들어가게 했다. 그러한 그들의 기쁨을 표현한 본문 중 특별히 '가장'에 해당하는 헬라 '스포드라'는 '충만하여 차고 넘치는 상태'를 나타내는 말이며, '큰'(메가렌) 역시 크고 놀랍고 장엄함을 뜻하는 단어이다. 이 두 단어의 만남은 결국 그 기쁨의 실체가 최상에 이르렀음을 암시한다. 그리고 '기뻐하고 기뻐하더라'(에카레산 카란)는 기쁨을 뜻하는 헬라어 '카라'라는 동일 어근의 중첩(重疊)으로서 이를 문자적으로 해석하면 '기쁨을 기뻐했다'(they rejoiced with joy)가 된다. 이는 어떤 의미를 특별히 강조하기 위해 동일한 의미의 단어를 중첩해 사용했던 셈어의 영향을 받은 중언법적(重言法的) 표현이라 할 수 있다(Moule). 따라서 본문은 박사들의 기쁨이 절정에 이르렀음을 보여준다. 이것은 하나님의 뜻에 무관심한 택한 백성들의 소동(3절)에 비하여 얼마나 값진 일인가. 그들은 샛별(벧후 1:19)의 인도를 따라왔기 때문에 의(義)의 태양이신 그리스도를 뵐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즉 그들의 기쁨은 자신들에게 닥친 크나큰 행운(메시아를 만나 보는 일)을 볼 수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11절 카이 엘돈테스 에이스 텐 오이키안 에이돈 토 파이디온 메타 마리아스 테스 메트로스 아우투 카이 페손테스 프로세퀴네산 아우토 카이 아노익산테스 투스 데사우루스 아우톤 프로세넹칸 아우토 도라 크뤼손 카이 리바논 카이 스뮈르난
성 경: [마2:11]
주제1: [메시야 탄생에 대한 반응과 유년시절]
주제2: [동방 박사들의 경배와 귀국]
집에 들어가 - 누가복음에는 '아기가 나신 곳'이 마구간으로 되어 있다(눅 2:7). 그에 비해 본문에는 '아기가 있는 곳'이 집으로 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동방 박사들이 방문한 시기는 로마 황제 가이사 아구스도(Caesar Augustus, B.C. 27-A.D. 14)의 명(命)에 의한 호적, 곧 인구 조사(눅 2:1)가 끝난 얼마 후(아마 수개월 경과 후, Wycliffe) 요셉이 거처를 마련한 다음이었을 것이다(Theophylact, Lenski, Alford 등).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 여기서 상대방에게 무릎을 꿇고 '엎드려 경배'하는 것은 헬라나 로마의 예법이 아니라 동방의 예법이다(2절). 동방 박사들이 경배했던 대상은 마리아와 '함께'가 아니고 오직 아기 예수뿐이었다. 즉 그들은 헤롯에게나 아기의 부친과 모친에게도 경배하지 아니했다. 경배의 대상은 오로지 만왕의 왕으로 이 땅에 오신 예수 한 분 밖에 없는 것이다(4:10).
보배합 - 이 단어는 번역이 애매하게 된 것으로 '귀중품 상자'나 '보물 상자'를 의미한다. 그들의 '보배합'은 그들의 아름답고 고귀한 마음(예물)의 저장소였다(6:20).
황금과...예물로 드리니라 - 이 내용은 이방의 왕들이 메시아 앞에 예물을 드리고 복종하게 될 것이라는 구약 예언(시 72:10;사 60:6)의 분명한 성취이다. 한편 고대 동양 풍습에서는 왕을 알현(audience)할 때 예물을 가지고 가는 것이 상례(常禮)였다(창 43:1;삼상 9:7, 8;왕상 10:2;Derett, Clarke). 박사들이 헌상(offering to a superior) 한 세 가지 예물 중 황금은 동서고금을 통해 매우 값지고 불변하는 성질의 귀중품으로 여겨져 왔다. 그리고 유향은 값비싼 향료로서 반질반질하고 향내 나는 흰색의 액체이며 아라비아 지방의 관목 껍질에 자국을 내어 얻는다. 또한 몰약은 역시 주로 아라비아 지방에서 자라는 나무에서 추출되는 것으로서 상당히 고가(高價)의 향기를 지닌 액체이다(시 45:8;아 3:6). 이는 시체를 썩지 않게 하는 방부제 내지는 마취제로 사용되었다(막 15:23). 그런데 고금의 많은 주석가들(Origen, Hendriksen 등)에 의하면 이 예물 가운데 황금은 메시아 왕권을, 유향은 예수의 신성(神性)을, 그리고 몰약은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을 상징하는 것으로 여겨져 왔다. 이에 대하여 칼빈(Calvin)은 왕과 제사장과 그분의 장사(葬事)되심을 각각 상징한다고 본다. 어쨌든 동방 박사들의 종교적 동기를 이해한다면 예물들에 상징적인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 여기서 예물이 세 가지라는 사실에서 동방 박사들을 세 사람이라는 교회 전승이 형성되게 되었다. 어떤 전설(legend)에 따르면 완전 수에 해당하는 '12'명의 박사라고도 전한다. 한편 이 세 예물들은 모두가 값비싼 것들로서, 예수의 가족이 애굽으로 피신하였을 때(14절) 요긴하게 사용되었을 것이다.
12절 카이 크레마티스덴테스 카트 오나르 메 아나캄프사이 프로스 헤로덴 디 알레스 호두 아네코레산 에이스 텐 코란 아우톤
성 경: [마2:12]
주제1: [메시야 탄생에 대한 반응과 유년시절]
주제2: [동방 박사들의 경배와 귀국]
꿈에...지시하심을 받아 - 여기서 '지시를 받아'(크레마티스덴테스)란 신탁(神託)으로 의문시했던 사실에 확실한 해답을 얻는 행위, 또는 공무(公務) 수행을 위해 조언을 받거나 주는 행위를 가리킨다. 따라서 이 말은 앞으로의 자신들의 행동을 결정치 못 하고 주저했던 동방 박사들의 계시 요청에 따라 하나님의 응답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Vincent). 그런데 여기 언급된 '꿈'은 본서의 초두에서 두 번째로 나오는데, 첫 번째(1:20)와는 달리 주의 사자가 등장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이 꿈은 아기 예수를 지키시기 위하여 헤롯의 악한 계획을 무산시키시는 하나님의 직접 계시로 볼 수 있다(P. Gaechjter).
다른 길로 고국에 돌아가니라 - 하나님께서 박사들에게 헤롯의 눈길을 벗어나서 고국으로 돌아갈 수 있는 길을 가르쳐 주셨을 것이다. 그런데 그들이 정확히 어느 길로 갔는지는 분명하지 않고 다만 예루살렘을 피하여 사해의 남단으로 돌아갔든지 요단강을 건너 돌아갔을 것이라고 추측할 뿐이다. 이처럼 예수를 참으로 만난 자는 지금까지 걸어왔던 길을 버리고 다른 길, 즉 생명과 진리의 길(요 14:6)로 가게 될 것이다.
13절 아나코레산톤 데 아우톤 이두 앙겔로스 퀴리우 파이네타이 카트 오나르 토 이오세프 레곤 에게르데이스 파랄라베 토 파이디온 카이 텐 메테라 아우투 카이 퓨게 에이스 아이귀프톤 카이 이스디 에케이 헤오스 안 에이포 소이 멜레이 가르 헤로데스 제테인 토 파이디온 투 아폴레사이 아우토
성 경: [마2:13]
주제1: [메시야 탄생에 대한 반응과 유년시절]
주제2: [애굽으로 피난한 예수 가족]
저희가 떠난 후에 - 본절의 '떠나다'는 동사는 12절의 '돌아가다'는 동사와 같은 의미로서 본절 이하의 사건과 긴밀한 연관성을 갖고 있음을 암시한다. 따라서 주의 사자를 통한 애굽 피난 지시가 박사들이 떠난 얼마 후에 내려졌는지는 구체적으로 알 수 없으나 어쩌면 박사들에게 지시가 임했던 시기에 같이 내려졌을 수도 있고 아니면 박사들이 떠난 그날 밤에 있었을 수도 있는 만큼 매우 근접한 시간이었을 것이다.
주의 사자가...현몽하여 - 요셉은 제2차로 주의 사자의 계시(revolution)를 접하고 있다(1:20). 그런데 이번 계시의 요지는 당신의 아들인 메시아를 보호하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를 나타내는 데 있었다.
헤롯이...죽이려 하니 - 메시아에 대한 헤롯의 살해 음모가 이방인의 경배와 예물 바로 뒤에 다가왔다. 실로 이것은 예수의 생애 가운데 계속되는 배척과 수모(受侮)의 전조(前兆)가 되는 셈이다.
일어나...애굽으로 피히여 - 여기서 '일어나'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겔데이스'는 조금도 여유를 두지 말고 곧바로 행하라는 촉급한 의미가 담겨져 있다. 실로 유대인의 왕이요, 구원자로 오신 예수께서 유대 땅의 환영을 받지 못하시고(요 1:11), 마치 도망자의 모습으로 이방 땅에 급히 피하실 수밖에 없었다. 여기서 애굽은 당시 로마의 식민지로서 헤롯의 통치권밖에 있는 지역이며, 그 당시 약 100만 명 정도의 유대인 집단이 군집을 이루며 살고 있었다고 한다(Philo, A.D. 40). 애굽 특히 알렉산드리아 지역의 헬라화 된 거주민들을 위해 헬라어로 된 구약인 70인 역(LXX)이 만들어진 것은 적어도 애굽에서의 유대인 지위가 상당히 인정받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한 예(例)이다. 한편 유대인의 애굽 피난 역사는 오래전부터 행해진 것이었다. 그곳은 일찍이 흉년으로 인해 아브라함(창 12:10)과 야곱(창 46:6)이 내려간 바 있으며, 솔로몬 사후(死後) 많은 유대인들이 그곳으로 피난하였고(왕상 11:40), 포로 시대에는 예레미야를 비롯한 많은 유대인이 그곳으로 갔으며(렘 26:21-23;43:7) 특히 신구약 중간기 때는 시리아의 학정에 의해 그곳으로 많은 유대인이 내려가는 등 애굽은 유대인이 피난하기에 적지(適地)가 되어 있었다. 따라서 예수의 식구들은 쉽게 애굽에 이주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비 팔레스틴 계열의 외경 중 하나인 '예수 유년기의 복음'(Gospel of the Infancy)은 당시 애굽으로 내려간 예수의 각종 이적들을 소개하고 있다.
내가...거기 있으라 - 아기 예수를 안은 요셉과 마리아는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 애굽으로 간 것처럼 돌아와 때도 하나님의 명령을 기다려야만 했다. 즉 그들은 헤롯이 죽을 때까지만이 아니라 다시 돌아오라는 하나님의 명령이 있을 때까지(19, 20절) 애굽에서 인내하며 기다려야만 했던 것이다. 한편 이 지시는 요셉으로 하여금 하나님께서는 피난길 뿐만 아니라 피난 기간과 그 이후까지도 보호해 주실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게 했을 것이다.
14절 호 데 에게르데이스 파렐라벤 토 파이디온 카이 텐 메테라 아우투 뉘크토스 카이 아네코레센 에이스 아이귀프톤
성 경: [마2:14]
주제1: [메시야 탄생에 대한 반응과 유년시절]
주제2: [애굽으로 피난한 예수 가족]
요셉이 일어나서...애굽으로 떠나가 - 여기서 '일어나서'에 해당하는 '에게르데이스'는 수동태 제1 과거 시상으로서 주저함 없이,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곧바로 행동을 취한 것임을 나타낸다. 마치 1:24처럼 요셉의 절대적이고 즉각적인 순종이 부각되어 있다. 실로 요셉은 그 밤에 출발하여 애굽의 변경까지 약 120km나 되는 먼 여행을 시작해야만 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완전한 믿음이다(히 11:1, 6). '아기와 그의 모친'이란 구절은 본장에서 계속 나오는 표현으로서 하나님의 섭리와 보호하심이 추호(秋毫)도 실수가 없음을 은연중에 드러내고 있다.
15절 카이 엔 에케이 헤오스 테스 텔류테스 헤로두 히나 플레로데 토 레덴 휘포 투 퀴리우 디아 투 프로페투 레곤토스 엑스 아이귀프투 에칼레사 톤 휘온 무
성 경: [마2:15]
주제1: [메시야 탄생에 대한 반응과 유년시절]
주제2: [애굽으로 피난한 예수 가족]
헤롯이 죽기까지 거기 있었으니 - 헤롯은 추하고 심각한 질병으로 고생하다가 비참히 죽어 갔다고 전한다(Josephus). 이러한 헤롯의 죽음(B.C.4년)은 많은 사람들에게 해방을 가져다주었다. 그중에서도 특별히 하나님의 지시를 고대하던 마리아와 요셉은 아기와 함께 '나사렛'(23절)으로 돌아올 수 있게 되었다. 그 외에도 초금욕주의자들인 에센파의 쿰란 종파 사람들은 B.C. 31년에 파괴되었던 그들의 본부에 돌아와 재건할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요셉은 마리아와 아기를 데리고 애굽에서 체류(stay)하는 동안에 그곳에 살고 있던 동족들의 도옴으로 생계를 유지할 수 있었을 것이다. 사실 유대인 탈무드(Talmud)에 따르면 애굽에는 알렉산드리아를 중심으로 유대 회당이 있었고 그곳을 통해 유대인들의 접촉이 많았으며, 더불어 직업을 구하는 일이나 각종 생활 정보도 나눌 수 있었다고 한다. 특히 같은 부류의 직업인들끼리는 쉽게 동화(同和)될 수 있었다고 한다. 따라서 목수 출신의 요셉은 애굽 생활 중에 쉽게 일자리를 얻어 생계를 꾸려갈 수 있었을 것이다.
이는 주께서 선지자로 말씀하신 바 - 구약에 능통한 유대인들을 향해 글을 쓰고 있던 마태의 독특한 문장 표현이다(1:22). 즉 마태는 구약의 예언과 계시가 예수 그리스도의 때에 완성되고 있음을 구체적으로 제시하여 설명하고 있다. 여기서는 호세아 선지자의 예언적 메시지(호 11:1) 예수의 생애와 접목(grafting)시키고 있는 것이다.
애굽에서 내 아들을 불렀다 - 마태는 예수의 애굽 피난 사실을 11:1의 말씀과 일치시키고 있다. 사실 11:1에서 인용한 이 구절은 본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불러내신 사건을 언급한 말이다. 그러나 마태는 성령의 영감(靈感)으로 그 사건을 예수께 적용시켰다. 즉 마태는 이스라엘(하나님의 자녀)의 역사가 예수(하나님의 독생자)의 생애 속에서 재현(reappearance)되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이처럼 구속사 전개의 정점인 예수의 개인적 생애에 신. 구약을 포함한 하나님의 자녀들의 역사가 다 포함되어 있음을 암시한 것은 예수의 사역이 단순한 민족적 해방에 그친 모세의 사역을 넘어서 전 인류의 영원한 구원을 위한 것임을 의미하고 있다. 이와 더불어 예수는 신약에서 이스라엘의 원형(原形)으로 종종 나타난다. 몇 가지를 예시해 보면 (1) 이스라엘의 40년 광야 시험(신 8:2, 3)-예수의 40일 금식 기도(4:2), (2) 이스라엘은 열매 맺지 못한 포도나무(사 5장)-예수는 참 포도나무(요 15장), (3) 이스라엘은 여호와의 장자(출 4:22)-예수는 하나님의 맏아들(롬 8:29;히 1:6), (4) 이스라엘은 다윗의 골육(삼하 5:1)-예수는 다윗의 자손(1:1) 등이다. 또한 신약에서는 어디에서나 구약의 역사와 율법을 예언적 의미를 지닌 것으로 간주(看做)하고 있다. 즉 '예언의 성취'라는 말은 그것이 구약과 연결되어 구약의 예표의 실체(원형)라는 관점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따라서, 호 11:1은 단순히 출애굽만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아선 안 된다는 것이다. 이 구절은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그리고 있고, 그 사랑은 참 이스라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완전히 이루어질 것으로 보아야만 한다. 호세아는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역사(役事)가 진행되는 동안에 펼쳐진 계시, 즉 하나님의 구속의 사랑이 그려진 그림과 같은 전형적(典型的)인 계시의 일부분을 제공했고, 마태는 그 계시의 '완전한 의미'이신 그리스도 예수의 생애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메시아 대망 시대에 하나님의 백성이 차지하는 위치는 민족적, 혈통적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예수를 메시아로 인정하는 데서 결정된다.
[욥기 7장 히브리어 원문 강해] 하나님을 향해서 호소하고 있는 욥(욥 7: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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