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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14장 주일설교말씀] 구원의 서정(요 14:1~6)

성령의 능력 2021. 5. 4.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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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요한복음 14장 주일설교말씀 중에서 구원의 서정이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성도는 믿음으로 구원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예정하시고 선택하시고 부르셔서 믿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에게 오지 않게 하시면 올 자가 없습니다. 구원은 오직 하나님께만 주권이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을 믿음으로 구원받고 하나님 나라에서 영원히 살게 됩니다. 

제 목: 구원의 서정

 

설 교 자: 윤사무엘 목사

 

본문 말씀: 요 14:1~6

 

요 절: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

 

주 제: 오직 예수님만이 구원의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시다

 

오늘은 구원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 오직 예수님만이 유일한 구원의 길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딤전 2:4~5)

 

신학에서 구원론(Soteriology)은 곧 성령론(Pneumatology)이라 명명되기도 합니다. 구원론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성취하신 구속 사역을 인간에게 주관적으로 적용함으로써 실질적인 구속의 효과가 이루어지는 과정을 논술하는 교의신학의 한 분과입니다. 구속 사역의 적용은 성령에 의하여 이루어지므로 구원론은 곧 성령론(Pneumatology)과 같습니다. 구속의 적용은 Ordo Salutis(구원의 서정)이라고 부릅니다. 성경에서 구원의 적용과 과정을 정확히 지시하지는 않습니다. 구원이 서정을 전체로 정리해 봅시다.

 

1) 로마서 8장 30절, “미리 정하심-> 부르심(소명) -> 의롭다 하심(칭의) -> 영화롭게 하심(영화)”

 

2) 로마서 10:17, 엡 1:13, “믿음(신앙)은 들음(소명)에서 난다.

 

3) 갈 2:16, 빌 3:9, “칭의는 믿음에서 난다.”

 

4) 엡 4:1~2, “부름에는 합당히 행함(성화)가 따른다.”

 

5) 빌 3:9~11, “칭의에는 부활(영화)이 뒤따른다.”

 

장로교에서는 개혁주의 신앙대로 구원론을 이해하나 타교단도 나름대로 구원론이 있습니다

 

1) 루터파 - 신앙을 지나치게 강조합니다.(인간적인 신앙을 너무 강조하고 있습니다.)

 

2) 이단 로마 가톨릭 - 구원의 서정론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성례론적 구원을 강조하고 있다.) ▶구원의 3단계; 1) 충족한 은혜 2) 협력 은혜 3) 칭의(인간이 쌓은 공로를 말함)

 

3) 알마니안파 - 하나님이 부르셔도 인간이 받지 못하면 구원으로 이르지 못한다고 합니다. 아담 죄책이 인간에게 전달되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4) 웨슬레안파(알마니안 보다 건전함) - 아담 죄책에 후손으로 전가되는 것을 인정합니다. 모든 그리스도 안에서 칭의 되는 것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5)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의 구원의 서정은 신앙고백서 10장 -18항에 걸쳐 칼빈의 순서와도 다르고 개혁파가 일반적으로 인정하는 순서와도 다르게 배치되어 있습니다. 10항은 유효한 소명 11항은 칭의, 12항은 양자, 13항은 성화, 14항은 구원 얻는 믿음 15항은 생명 얻는 회개 16항은 선행, 17항은 성도의 견인 18항은 구원의 확신의 순서로 배치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배치의 원칙은 10-12항은 하나님께서 단독적으로 역사하는 것들이고, 나머지는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역사하실 때 인간의 순종의 요소가 들어가 있는 것들입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의 구원론은 성공회의 39개 신조의 칭의를 개정하는 과정에서 “온전한 순종과 만족”이란 표현이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과 수동적 순종을 나타내는 의미로 제시되었습니다. 많은 찬반 논란을 거친 후에 최종본에는 “온전한”이란 용어가 삭제되었습니다. 그래서 능동적 순종이 빠진 것으로 해석되나, 고백서 8장 5절에 그리스도의 “완전한(perfect) 순종과 희생”을 비롯한 여러 표현들이 능동적 순종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신앙고백서가 반대파들의 의견을 고려하여 간접적으로 표현하였지만, 능동적 순종의 전가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은선,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의 구원론”, 2013]

 

개혁주의의 구원의 서정론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성경적인 틀에서 제시한 성경구절들도 함께 살펴봅니다.

 

1. 하나님의 부르심(소명) - 롬 8:30

2. 중생 - 요 3:3~5

3. 회심 - 요일 3:9

4. 믿음 - 막 1:15, 롬 3:3

5. 칭의 - 롬 3:30, 5:1, 갈 2:16

6. 수양 - 갈 3:26~27, 모 1:12

7. 성화 - 롬 8:14

8. 견인 - 빌 1:6

9. 영화 - 롬 8:31~39

 

성령은 구원론에 있어서 매우 중요하다. 히 10:29, 은혜의 사역을 특징으로 하고 있습니다.

* 성령의 일반 은혜- 욥 3:34, 시 134편 노래(성경 참여)

- 특별 은혜와 긴밀한 관계이다.

(특성): - 온 인류 사람은 인간 죄책을 제거하지 못한다.

-인간의 성품을 변화시킬 수가 없다.

-그리스도 창조사역으로부터 흘러나오는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이 일시에 유지된다.

- 현세에서 작용된다.

- 교회를 풍성하게 하는 요소가 있다.

 

1. 하나님의 부르심=소 명 (롬 8:30)

 

소명은, 롬 8:30에서 구원 서정의 첫머리에 소명(부르심)을 두었습니다. 소명은 외적 소명과 내적 소명으로 구별되며, 내적 소명은 유효적 소명으로 불리며 내적 소명은 성령에 의하여 이루어지며,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택한 자를 영생으로 초대하시는 영원한 부르심입니다.(딤전 6:12) 내적 소명이 없이 외적 소명이 효력을 발생하지 못합니다.

 

일반적으로 부르심이란 하나님께서 죄인들을 그리스도를 통하여 제공된 구원을 받도록 초대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로운 행위라고 정의합니다. 이 소명은 내적인 것과 외적인 것이 있습니다. 외적인 부르심이란 죄의 용서와 영생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그리스도를 영접하도록 하는 일방적인 권고로서 죄인들을 향하여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원을 제시하는 복음의 선포와 회개하고 예수를 믿으라는 초청과 용서와 구원의 약속입니다. 이 외적인 부르심은 택한 자뿐만 아니라 유기된 자까지 복음을 듣는 모든 이에게 미치는 우주적인 것입니다. 반면 내적인 부르심이란 성령의 역사로 외적 부르심을 효과 있게 만드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부르심을 가리켜 유효적 부르심(Effectual Calling)이라고도 부릅니다. 이 내적 부르심은 항상 성령의 역사에 의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죄인들에게 이르며 구원을 유효 있게 만드는 능력 있는 부르심으로, 거기에는 후회나 변경이나 취소가 없습니다(요 6:40,44,45).

 

2. 중 생 (요 3:3~5)

 

중생은 순간적으로 이루어지는 성령의 비밀한 사역으로, 개인의 전 인격에 영향을 미칩니다. 중생한 자란 성령 세례를 받은 자를 가리키며, 중생과 성령의 세례는 따로 떼에서 생각할 수 없습니다. 중생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첫째 요건입니다.(요 3:3,5)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에서는 소명 뒤에 바로 칭의를 다루었습니다. 하지만 칼빈을 위시한 개혁자들은 이 사이에 소명과 관련된 구원의 서정을 언급합니다. 내적 소명 곧 효과적 부르심은 중생과 믿음을 가져옵니다. 중생은 회심과 성화를 포함하는 인간 갱신의 전 과정을 묘사합니다. 진정한 중생은 죄인 된 우리에게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시초가 되며, 성령으로 심령이 새로워지는 재창조를 가리킵니다. 즉 중생은 구원의 완성이 아니라 시작입니다. 따라서 회개와 성화를 통해 하나님의 형상 회복이 완성을 향해 발전해 나가야 합니다. 칼빈은 중생 이후에 나타나는 구원의 서정에 관해 중생은 하나님의 직접적이고도 은밀하게 이루시는 사건으로 과거적인데 반해, 회개와 성화는 평생토록 지속되는 현재적 사건으로 보았습니다. 그러나 알미니안주의는 중생은 하나님과 인간의 협력적 관계를 통해 이루어진다고 말합니다. 한편 로마교회는 중생은 칭의와 사죄를 포함하는 것으로 성례(특히 세례) 시에 효력이 발생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중생을 일으키는 수단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이며, 중생을 효력 있게 하시는 분은 오직 성령이십니다.

 

3. 회 심 (요일 3:9)

 

회심은 믿음과 회개를 통하여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는 하나님의 행위입니다. 회심은 두 요소가 있는데, 회개와 신앙입니다. 회심은 성령 하나님의 활동으로, 회개는 율법을 방편으로 역사하고, 복음을 수단으로 신앙을 일으킵니다.(롬 10:17)

 

4. 믿음 (막 1:15)

 

믿음은 하나님께서 자기의 아들의 구속으로 말미암아 죄인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신다고 하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 곧 믿는 것입니다. 이는 인격적인 신뢰를 가리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의미는 영적인 활동과 육적인 활동을 포함합니다, 믿음은 자아 발생적이 아니요, 성령의 활동에 의한 결과입니다.

 

신앙(믿음)은 중생의 결과입니다. 믿음이 있어야 중생하는 것이 아니라, 중생한 이는 믿음을 갖게 됩니다. 여기서 믿음이란 하나님의 구원의 은총과 사랑을 알고 자신의 죄와 비참을 아는 놀라운 지식이며 그리스도를 알고 영접하는 구원론적 믿음을 가리킵니다. 신앙은 그리스도에 대한 단순한 앎이 아니라 그리스도로 인한 구원이 확실하고 효력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그리스도에 대한 확신과 신뢰입니다. 신앙의 근거 역시 하나님의 영원하신 선택으로 말미암은 성령의 역사에 의한 것입니다. 성령의 조명을 통하여 택한 자의 눈을 열어주십니다. 즉 성령은 선택함을 받은 사람의 마음속에 믿음을 불러일으키실 뿐 아니라 점진적으로 믿음이 성장하도록 도우십니다. 신앙은 우리의 것을 가지고 하나님께 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기꺼이 우리를 위해 무상으로 제공하시는 것입니다. 이 신앙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도 없거니와 하나님이 계신 것과 그를 찾는 자들에게 상을 베푸신다는 사실조차 깨달을 수 없습니다(히 11:6). 신앙(믿음)은 성도를 구원에 이르게 하는 가장 중요한 근거입니다.

 

롬 3:3에 보면 “어떤 이들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어찌하리요? 그 믿지 아니함이 하나님의 믿음(faith of God)을 폐하겠느냐?” 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하나님의 믿음은 하나님의 계획, 뜻(행 20:27), 꿈을 말합니다.

 

5. 칭 의 (롬 3:30) 칭의는 롬3:30, 5:1, 갈 2:16 등에서 믿음에 그 칭의가 뒤따른다는 사실을 말씀합니다. 칭의는 하나님이 의롭다고 일컫는 죄인에 대한 하나님의 법정적인 선언입니다. 칭의로 말미암아 죄인은 그가 마땅히 져야 할 죄책이 제거됩니다. 칭의로 말미암아 양자 되는 권세가 주어집니다. 칭의는 성화와 구별되며, 칭의가 선포적인데 반하여 성화는 점진적이며, 죄의 오염을 제거하고 일생을 통하여 이루어집니다.

 

칭의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한 의를 근거로 하여 죄인을 의롭다고 선언하시는 하나님의 법적 행위입니다. 칭의라는 말속에는 죄의 면제(remission of sins)와 그리스도의 의의 전가(imputation)이라는 개념이 동반됩니다. 피고인은 죄인이 하나님의 법정에서 하나님에 의해서 고소됨을 면하게 된 것은 인간이 실제로 의롭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으로 인해 그리스도 안에서 의롭게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칭의는 회개를 통한 성화를 전제하지 않습니다. 신앙으로 의롭게 되는 것은 인간이 성취한 그 어떤 의를 조건으로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즉 칭의는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단번에 이루어진 일입니다(롬 3:24). 율법의 행위나 인간의 노력으로서 의롭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롬 3:28; 갈 2:16). 우리는 이러한 칭의의 의미를 믿음으로서만 알게 됩니다. 따라서 믿음은 칭의를 효과적으로 알게 하는 도구이며, 칭의는 성령께서 믿음을 통하여 우리를 그리스도에게 효과적으로 연결시키는 띠인 동시에 고리가 됩니다.

 

6. 수양 (갈 3:26~27)

 

수양이란 법적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가 주어지는 것입니다. 수양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후사로 영생복락을 누릴 특권을 부여받는 것입니다. 수양된 자는 성령의 권면과 지도를 합하여 성화의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수양은 그 용어가 말하듯이 외부의 사람을 하나님 자신의 가족으로 옮기는 행위입니다. 의롭다 칭함을 받은 모든 사람들은 이 양자의 은혜에 참여하게 되는데, 이로 인해 상상할 수 없이 놀라운 영적 특권을 누리게 됩니다. 먼저 죄악의 종 된 상태로부터 해방되며,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의 대상이 되며,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게 됩니다. 그뿐 아니라 성령의 내주함으로써 긍휼히 여김과 보호를 받으며, 필요한 것을 공급받으며, 결코 버림받지 않습니다. 나아가 구속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아 영원한 구원의 상속사로서 자격을 누립니다(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12장). 수양됨은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에게 주어진 모든 특전이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것임을 증거 합니다. 하지만 양자는 칭의와 마찬가지로 법정적 행위입니다. 신분과 지위의 수여이지, 우리 내부에서 일어나는 새로운 성향이나 특성이 아닙니다. 또한 중생하지 않은 자는 결코 하나님의 수양가 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중생은 양자 됨의 선행 요건이며, 수양됨은 중생의 결과입니다.

 

7. 성 화 (롬 8:14)

 

성화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중생한 자의 점진적 성취입니다.(살전 5:23) A.A. Hodge는 성화는 "그리스도 안에 완전한 인성에 키가 자라는 데까지 이르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또한 루이스 벌콥프는 "성화는 성령이 이로써 칭의 된 죄인을 죄의 오염에서 구출하시며 그로 하여금 선한 일을 행할 만하게 하시는 은혜로운 성령의 공작이다"라고 말하였습니다. 성화의 방편은 말씀과 성례와 기도입니다. 성령은 성도를 성화케 하시고, 성화의 목표는 온전하고 완전한 그리스도의 형상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의 충족한 거룩을 이루기까지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죽을 때 완전히 성화된 몸으로 천국에 이릅니다.

 

효과적인 부르심을 받고 중생하여 양자로 택정함을 얻은 자들은 하나님의 거룩함에 동참하게 됩니다. 칭의와 양자 됨이 단번에 일어난 법정적 행위라면 성화는 점진적으로 심령과 삶에서 그리스도를 점점 더 닮아가고 하나님께 헌신되어 가는 과정을 가리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의 의의 중재에 의하여 우리를 자신과 화해시키며, 죄를 거저 사해 주심으로써 우리를 의롭다고 인정하십니다. 동시에 하나님의 이 은혜(칭의)는 큰 자비와 연결되는데, 이 자비란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하여 우리 안에 계시며 그 힘으로 우리의 정욕을 날로 더 죽이시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우리로 하여금 성결한 삶을 살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이러한 성화의 과정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과 그 안에서 역사하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실현됩니다. 성화는 칭의와 여러 점에서 비교됩니다. 칭의는 우리의 모든 죄를 법적으로 사면한 것이라면 성화는 도덕적으로 죄적 요소를 없게 하는 것입니다. 칭의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단번에 완성되었지만, 성화는 성령의 계속적 사역에 의하여 평생 동안 진행됩니다. 구속의 날까지 하나님의 형상을 온전히 회복하는 것이야말로 성화의 가장 중요한 목적입니다.

 

8. 견 인 (빌 1:6)

 

성도가 하나님의 은혜 상태에서 타락할 수 없고 떨어지지 아니하며 궁극적인 구원을 이루시는 성령의 계속적인 사역입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의 ‘성도의 궁극적 구원’에 해당되는 내용입니다. “성도의 견인”은 하나님께서 중생시키며 은혜의 신분으로 효과적으로 부르신 자들이 그 신분에서 완전히 혹은 궁극적으로 타락하지 않고 은혜의 신분으로 끝까지 견디어 내어 영원히 구원받게 될 것이라는 교리입니다. 견인 역시 심령 안에서 시작된 하나님의 은혜의 사역이 지속되고 완성에 이르게 하는 성도 안에서의 성령의 지속적인 사역의 열매입니다. 견인 교리는 성도의 구원의 근거와 목적이 누구의 손에 의해 주도되는가를 잘 설명해 줍니다. 펠라기우스주의나 알미니안주의는 오직 성령에 의해 완성되는 견인을 부정하였습니다. 중생한 사람이라도 구원을 상실할 수 있기에 그들은 구원을 끝까지 유지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절대적인 노력이 요청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러나 성경과 개혁주의 신학은 인간의 행위나 의지와는 상관없는 철저한 성도의 견인을 주장합니다. 왜냐하면 견인에 대한 보증이 사람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에 기인한 성령 하나님의 의지와 능력에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9. 영 화 (롬 8:31~39)

 

영화는 구속의 최종국면입니다. 영화는 부르심으로 시작된 과정을 종결시키는 것입니다.

 

a. 육체적 죽음을 맞이할 때, 영혼의 성화가 완성됩니다.

 

그리스도인의 영혼은 사별의 순간에 죄의 흔적으로부터 구원되고, 하나님의 직접적인 임재 앞에 들어가 영원한 교제를 즐깁니다.

 

b. 신체의 부활에서 구속이 최종적으로 완성됩니다. 우리의 신체와 영혼은 그리스도의 신체와 영혼과 유사할 것입니다. 성경적 근거는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케 하시리라”(빌 3:20~21), “그가 나타나심이 되면 우리가 그와 같은 줄을 아는 것은” (요일 3:2~3) 등입니다.

 

구원 서정의 최후 단계로 영원한 영광, 무궁한 세계에 임하는 것이 곧 영화입니다. 영화는 성화처럼 점진적인 과정을 거치지 아니하고 성령의 순간적인 역사로 영화합니다. 성도의 몸의 부활에서 완전한 구속을 이루고 완전한 행복을 경험하게 됩니다. 개인적으로는 각 개인들이 육신의 장막을 벗을 때 임하며, 부활 시에는 동시에 모든 성도가 경험하게 됩니다.

 

한마디로 개혁주의 구원론을 말한다면, 칼빈주의를 제외한 다른 사상에서는 그 공통성이 인간론을 중심으로 제시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오직 유일하게 칼빈주의만의 하나님의 절대적인 권위를 세우려고 하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여기에서 칼빈주의적 구원 개념만이 가진 그 독특한 면이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또한 칼빈주의적 구원의 서정에 있어서 개혁자들의 공통된 소리는 구원의 서정이 단독적으로 분리되어서 언급되어서는 안 되며 전체적으로 함께 언급되고 그 중요성이 인정되어야 그 가치를 상실하지 않게 될 것을 주장하고 있음과 칼빈 자신도 이 부분에 있어서 분명하게 제시하고 있음을 알게 됐습니다. “우리가 십자가에 동참하는 것이 소명, 칭의, 그리고 마침내는 영화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까닭에 그것들을 결코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는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칼빈주의적 독특성의 중요성을 바르게 세워야만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허락해 주신 구원의 참다운 가치를 발견하게 될 것이며, 그렇게 될 때에만이 하나님께 대한 인간의 자세가 바르고 겸손하게 자리 잡게 될 것으로 사려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것들을 자세하게 가르쳐서 모든 성도들로 하여금 하나님만을 온전히 찬양받으시게 하도록 가르쳐야 할 책임이 오늘 우리 모두에게 있다는 사실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는 구원의 풍요로움과 부요함을 우리는 얼마나 알고 그것을 누리고 있는지, 또한 많은 사람들에게 이 온전한 진리를 잘 증거하고 있는지 우리 자신을 돌아보아야 할 것입니다. 오직 예수님 만이 길과 진리와 생명이 되시며 유일한 구원이심을 믿습니다. 한 사람이라도 구원받도록 부지런히 전도하며 선교합시다. 우리나라를 전쟁으로부터 지켜주시고 복음으로 통일되게 하소서!

하박국 3장 히브리어 강해설교 하박국의 신앙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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