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데스다 신약성경강해

[요한계시록 6장 설교말씀] "일곱 봉인에 담긴 심판”(계 6:1-17)

성령의 능력 2021. 5. 1.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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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요한계시록 6장 설교말씀 중에서 일곱 봉인에 담김 심판이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요한계시록은 일곱 교회를 시작으로 일곱 인 일곱 나팔 일곱 대접으로 흘러가게 됩니다. 오늘은 일곱 인을 주님께서 떼실 때 일들이 일어나게 됩니다. 지금도 우리가 말세를 살고 있습니다. 말세지말에 우리가 어떤 신앙생활을 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주님은 이 땅에 반드시 재림하신다고 했습니다. 재림하시는 그날 이 세상은 심판을 받게 됩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받았기 때문에 첫째 부활에 참여하게 되고 천년왕국에 들어가게 됩니다. 

제목: "일곱 봉인에 담긴 심판”(계 6장)

 

설교자: 윤사무엘 목사

 

본문: 계 6:1-17

 

요절: “내가 보매 어린 양이 일곱 인 중에 하나를 떼시는 그 때에 내가 들으니 네 생물 중에 하나가 우렛소리 같이 말하되 오라 하기로” (계 6:1)

 

주제: 일곱 인의 심판을 미리 보면서 결코 죄를 짓지 말고 회개의 삶을 살아 심판을 면하자

 

계 4-5장에서 하늘의 예배를 보이시더니 하늘 교회에 참여하지 못할 사람들의 심판에 대해 일곱 인, 일곱 나팔, 일곱 대접 심판을 사도 요한에게 미리 보여 주십니다. 오늘은 일곱 인의 심판에 대해 계시록 6장을 살펴보며 묵상하겠습니다. 요한계시록 6장에서는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의 손에 인봉 된 심판의 책을 어린양 되시는 예수님께서 하나씩 인(도장 seal)을 떼실 때 심판이 선언되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은 교회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는 특별한 책으로 6장부터 시작되는 하늘의 심판을 일곱 인 사건으로 시작하며 특별히 복음 전파의 역사를 다루고 있습니다.

 

제6장에서는 일곱 인의 심판에 대하여 보여주고 있습니다. 제4장에서 사도 요한은 열린 문을 통하여 들어가서 하늘 보좌의 영광과 천사들의 찬송을 친히 바라보고 들을 수 있었습니다. 제5장에서 요한은 하나님의 보좌 앞에 서 있는 어린양을 보며 장로들과 천사들과 만물들이 부르는 대 찬양의 합창을 들으며 하늘의 예배에 참여했습니다. 제6장에서 어린양 이신 그리스도께서는 두루마리 책을 취하여 봉해진 인들을 떼기 시작했는데 요한은 각 봉인이 떼어질 때마다 그 눈앞에 전개되는 놀라운 장면을 보며 기록하여 소아시아 일곱 교회(전 세계 교회)에 전파하고 있습니다. 인을 떼시는 분은 십자가에서 보혈을 흘리신 어린양(the Lamb) 되시는 예수님이십니다. 구원의 유일하신 주님이십니다. 오직 예수님!

 

첫째 인부터 넷째 인까지를 뗄 때마다 각각 흰 말(a white horse), 붉은말(a red horse), 검은 말(a black horse), 청황색 말(a pale horse)이 나옵니다. 색깔로 보아서 무엇인가 점점 나빠지고 있는 불길한 징조입니다. 순결과 승리를 나타내는 흰색이 유혈을 상징하는 붉은색으로, 죽음과 재앙을 상징하는 검은색으로, 그리고 완전한 부패를 나타내는 청황색으로 변해가고 있습니다. 이 네 말들은 복음의 전파와 관계가 있습니다. ‘검(sword)과 배고픔(hunger)과 사망(death)과 땅의 짐승(the beasts of the earth)’(계 6:8)은 복음을 거절하는 사람들에게 내리는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그리고 점점 상황은 나빠지고 있습니다. 일곱 인을 일곱 교회와 같이 교회사적인 사건으로 본다면 교회사는 이런 타락의 슬픈 역사였습니다. 1~7절을 다 같이 읽습니다.

“요계 6:1 내가 보매 어린 양이 일곱 인 중에 하나를 떼시는 그 때에 내가 들으니 네 생물 중에 하나가 우렛소리 같이 말하되 오라 하기로 2 내가 이에 보니 흰 말이 있는데 그 탄자가 활을 가졌고 면류관을 받고 나가서 이기고 또 이기려고 하더라.

 

3 둘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들으니 둘째 생물이 말하되 ‘오라’ 하더니 4 이에 붉은 다른 말이 나오더라. 그 탄자가 허락을 받아 땅에서 화평을 제하여 버리며 서로 죽이게 하고 또 큰 칼을 받았더라.

 

5 셋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들으니 셋째 생물이 말하되 오라 하기로 내가 보니 검은 말이 나오는데 그 탄자가 손에 저울을 가졌더라. 6 내가 네 생물 사이로서 나는 듯하는 음성을 들으니 말하기를 ‘한 데나리온에 밀 한 되요, 한 데나리온에 보리 석 되로다. 또 감람유와 포도주는 해치 말라’ 하더라.

 

7 넷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넷째 생물의 음성을 들으니 말하기를 ‘오라’ 하기로 8 내가 보매 청황색 말이 나오는데 그 탄자의 이름은 사망이니 음부가 그 뒤를 따르더라. 저희가 땅 사분 일의 권세를 얻어 검과 배고픔과 사망과 땅의 짐승으로써 죽이더라.”

 

승리의 면류관을 쓰고 순결한 흰 말을 타고 나가서 이기고 또 이기고 하던 복음의 전성시대인 초대 교회를 지나자, 교회는 유혈의 핍박과 분쟁에 휩싸였습니다. 핍박이 끝난 후 교회는 교황권이 일어나고 세속적인 권력을 잡은 후에는 영적으로 죽어가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시체는 중세의 암흑시대(AD 538~1517)에 완전히 썩어 부패하기 시작하였습니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백성들은 무수히 죽임을 당하였다.

 

다섯째 인을 떼실 때에 이제는 빨리 세상을 심판해 달라고 호소하는 순교자들에게 잠시 동안만 기다리라고 말씀하신 어린양은 말씀하십니다(계 6:9~11). “9 다섯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보니 하나님의 말씀과 저희의 가진 증거를 인하여 죽임을 당한 영혼들이 제단 아래 있어 10 큰 소리로 불러 말하기를 ‘거룩하고 참되신 대주재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심판하여 우리 피를 신원하여 주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려나이까?’ 하니 11 각각 저희에게 흰 두루마기를 주시며 말씀하시기를 ‘아직 잠시 동안 쉬되 저희 동무 종들과 형제들도 자기처럼 죽임을 받아 그 수가 차기까지 하라’ 하시더라.”

 

여섯째 인을 떼신 후에 드디어 이 땅에 재림하십니다(계 6:12~17). “12 내가 보니 여섯째 인을 택하실 떼에 큰 지진이 나며 해가 총담같이 검어지고 온 달이 피같이 되며 13 하늘의 별들이 무화과나무가 대풍에 흔들려 선 과실이 떨어지는 것 같이 땅에 떨어지며 14 하늘은 종이 축이 말리는 것같이 떠나가고 각 산과 섬이 제 자리에서 옮기우매 15 땅의 임금들과 왕족들과 장군들과 부자들과 강한 자들과 각 종과 자주자가 굴과 산 바위 틈에 숨어 16 산과 바위에게 이르되 우리 위에 떨어져 보좌에 앉으신 이의 낯에서와 어린양의 진노에서 우리를 가리우라. 17 그들의 진노의 큰 날이 이르렀으니 누가 능히 서리요 하더라.”

 

소아시아 일곱 교회가 사도 요한 당시부터 종말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의 백성들이 당할 경험과 처지, 그리고 하나님의 권면을 기록한 것이라면, 일곱 인(seal 도장)도 역시 일곱 교회와 같이 세계의 종말 때까지 전개되는 각 시대의 사건들을 계시로 보여주신 것일 것입니다. 인치는 일이 시대적 사건이라는 하나의 강력한 증거는 본문에 나타납니다. 즉 하나씩 인을 뗄 때마다 상황이 나빠지다가 마침내 여섯째 인을 뗄 때에 “하늘은 종이 축이 말리는 것같이 떠나가 And the heaven departed as a scroll when it is rolled toghether”(계 6:12~14)는 마지막 종말적 사건이 벌어지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일곱 인은 시대별로 종교적 사건들을 기록한 것으로, 사도 시대로부터 그리스도의 재림 시까지의 모든 교회 역사를 포함하는 것으로 볼수 있습니다. 일곱 인(도장)도 시대별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1. 요한은 계시 중에 하늘에서 무엇을 보고 들었나요? (계 6:1~2).

 

사도 요한은 어린양이신 예수님께서 드디어 첫째 인을 떼시는 것을 봅니다. 그리고 흰 말을 탄 기사가 나오면서 역사는 전개됩니다. 그렇지만 그 모든 것은 인봉을 떼시는 그리스도에게 달려 있다는 것을 이 계시는 인상 깊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첫째 인의 시대는 일곱 교회의 에베소교회 시대(A.D. 31~100)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사도시대 교회의 순결함과 승리가 흰색으로 표현됩니다. 그렇다면 활을 가지고 면류관을 쓰고 연전연승하는 이 백마의 기사는 과연 누구이며 무엇을 상징하고 있나요? 이 백마의 기사의 신원을 밝히면 다른 말들의 정체도 밝혀질 수 있습니다.

 

요한계시록에서는 흰색이 항상 그리스도를, 또는 그리스도와 관련된 무엇을, 또는 구원받은 성도들이나 어떤 영적 승리를 상징하고 있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습니다. 높임을 받으신 그리스도의 머리와 털은 희기가 흰 양털 같으며(계 1:14), 진실한 신앙인들은 새 이름을 기록한 흰 돌을 받으며(계 2:17), 또 그들은 흰 옷을 입습니다(계 3:4, 5, 18). 이십사 장로들도 흰 옷을 입으며(계 4:4), 순교자들과 셀 수 없는 큰 무리들도 모두 흰 옷을 입습니다(계 6:11, 7:9, 13). 인자가 흰 구름 위에 앉아 계시며(계 14:14), 다시 오실 때도 그는 흰 말을 타고 있으며 그를 수행하는 하늘의 군대도 흰 옷을 입고 백마를 타고 있습니다(계 19:11, 14). 면류관도 성경에서 승리의 표징이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생명의 면류관을 받습니다(계 2:10, 3:11). 이십사 장로들이 금 면류관을 쓰고 앉아 있습니다(계 4:4, 10). 하나님의 교회는 열 두 별의 면류관을 쓴 여자로 묘사되어 있습니다(계 12:1). 그리고 마침내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도 금 면류관을 쓰고 오실 것입니다(계 14:14). 그러므로 요한계시록 6장 2절에 나타나는 흰 말을 타고 면류관을 받은 백마의 기사는 그리스도나 그리스도이십니다. 즉 흰 말을 타고 면류관을 받은 기사의 이미지는 신구약, 그중에서도 특히 요한계시록을 통해 볼 때 그리스도의 승리와 재림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둘째 인, 셋째 인, 넷째 인의 기사들이 모두 어떤 인물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전쟁, 기근, 죽음 같은 추상적 개념을 나타내는 것으로 봐서 첫째 인의 백마의 기사도 그리스도 자신이기보다는 그리스도에 관한 어떤 사건이나 기별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와 같은 순결한 성격을 가지고 온 땅에 두루 다니며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이기고 또 이기는 것은 무엇일까요? 바로 복음입니다. 일 세기에 복음은 짧은 세월 동안에 전 로마 세계로 퍼져나갔습니다. 복음은 모든 핍박과 방해를 이기고 또 이겼던 것입니다.

 

2. 둘째 인을 떼시자 무슨 일이 생겼나요? (계 6:3~4)

 

어린양이 둘째 인을 떼자 보좌를 받들고 있는 둘째 생물이 나오라는 명령을 내리고 이번에는 붉은말이 등장합니다. 흰색이 승리와 순결을 나타낸다면 붉은색은 타락과 전쟁과 피를 암시하고 있습니다. 첫째 인을 그리스도의 능력, 즉 복음이라면 붉은말을 탄 기사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성경과 기독교의 역사는 복음이 들어가는 곳에는 선과 악이 갈라지며 필연적인 핍박이 따르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줍니다. 복음이 승리에 승리를 거듭하자 악의 세력들은 크게 위협을 느끼고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둘째 인의 시대는 일곱 교회의 서머나 교회에 해당하는 것으로서 A.D. 100년경부터 콘스탄틴 황제가 기독교를 공인하는 밀라노 칙령을 내리는 A.D. 313년까지의 기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 기간은 교회가 이단설과 세상과의 타협 때문에 고통을 받던 때요,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많은 핍박이 있었던 때로서 땅에는 화평이 없었습니다. 예수께서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마 10:21)고 말씀하신 것처럼 도처에서 순교자의 피가 흘려졌습니다. 붉은말은 큰 칼을 받았습니다. 그것은 성도들을 죽이기 위한 큰 권세를 의미합니다. 순교자의 붉은 피가 곳곳에서 흘렀던 시대였습니다. 그러나 위로를 받는 것은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의 허락 안에 있다는 사실입니다. 허락을 받는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런 고통을 주신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이 당하는 모든 핍박과 고통을 다 아신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순교의 피를 흘리며 지금까지 그 역사를 이어내려오고 있습니다. 초대교회 지도자였던 터툴리안(신학자, Tertullian, AD 160-220)는 말하기를 “교회라는 나무는 세 가지 액체를 먹고 자란다. 수고의 땀, 기도의 눈물, 순교의 피”라고 했습니다. 교회는 언제나 순교자들의 헌신과 희생 위에 세워져 왔습니다.

 

3. 셋째 인을 떼실 때에 무슨 일이 일어났나요? (계 6:5-6)

 

셋째 인을 떼자 검은 말이 나왔습니다. 검은색은 죽음과 재앙을 의미하는 것으로 흰 빛과는 정반대의 색입니다. 첫째 인의 흰 빛이 순결과 승리를 의미하는 것이라면 셋째 인의 색깔은 그 반대로 타락과 어두움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검은 말을 탄자가 손에 저울을 가졌고 “한 데나리온에 밀 한 되요 한 데나리온에 보리 석 되”라는 것은 한 데나리온이 하루의 품삯(마 20:2)이기 때문에 밀과 보리의 가격으로는 아주 비싼 것으로써 극심한 기근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당시 말씀에 대한 영적 기근이 아주 심했던 것을 나타낸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복음을 거절할 때 겪는 영적 기근을 아모스는 다음과 같이 잘 묘사하고 있습니다. “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사람이 이 바다에서 저 바다까지 북에서 동까지 비틀거리며 여호와의 말씀을 구하려고 달려 왕래하되 얻지 못하리니 그 날에 아름다운 처녀와 젊은 남자가 다 갈하여 피곤하리라”(암 8:11~13).

셋째 인의 시대는 일곱 교회 시대로 보면 버가모 교회 시대에 해당됩니다. 즉 콘스탄틴 황제가 기독교를 승인한 때부터 로마 법왕권이 성립된 AD 6세기(AD 538)까지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 시대에 교회는 자유를 얻었고 권력의 비호와 특혜를 누리게 되었지만 교회는 그 순결을 잃게 되는 비싼 대가를 치렀습니다. 콘스탄틴 황제는 야심만만한 사람이어서 기독교로 전 로마의 통일과 안정을 꾀하였지만 다른 이교들의 여러 제일(祭日)과 관습들을 기독교 안에 혼합시켰습니다. 그래야 이교의 습관에 익숙한 사람들이 기독교로 개종한다 해도 큰 반발이 없을 것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콘스탄틴 이후의 시대는 죽은 성도나 성물 숭배 같은 미신이 교회 안에 현저히 유행되었으며 거룩하게 지켜졌던 안식일은 일요일로 대체되었고 크리스마스나 부활절 풍습 같은 이교의 의식과 기념일들이 교회의 기념일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순수한 기독교적 신앙은 거의 그 빛을 잃게 되었고, 그 본질은 부패되어갔습니다. 이 시대는 성직자들이 성경 해석과 의식 집행의 전권을 행사하고 일반 사람들은 성경 말씀에 접근하기도 어려웠습니다. 이 시대는 말씀의 기근과 영적 기근이 심했던 시대였습니다. 그러나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감람유와 포도주”는 해치 말라고 하였습니다. “감람유와 포도주”는 성령의 사랑과 선물, 믿음과 사랑과 순결 같은 그리스도인의 미덕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감람유와 포도주“는 해치지 말라고 한 소리는 하늘 보좌로부터 나온 소리입니다. 극심한 고난과 말씀의 기근 속에서도 그리스도인들이 믿음과 사랑을 잃지 않기를 바라시며 신음하고 있는 성도들을 돌보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알 수 있습니다.

 

4. 넷째 인을 떼실 때는 무슨 일이 있었나요? (계 6:7-8)

 

청황색(pale)은 특별한 색깔입니다. 이 색은 죽은 시체의 색이며 죽어가는 병자의 색이며 부패하여 곰팡이가 끼여 있는 색깔입니다. 더군다나 그 탄자의 이름은 사망이었으며 음부(죽음)가 그 뒤를 따르고 있었습니다.

 

둘째와 셋째 인의 상태가 최고로 악화된 것이 넷째 인입니다. 복음을 거절한 사람들의 최악의 상태요 죄의 결과를 여실히 보여주는 것입니다.

 

넷째 인의 장면에는 권력자가 폭력을 사용할 것이며 많은 학살과 희생이 있을 것을 예고하는 무서운 장면이 나옵니다. 그래서 넷째 인은 일곱 교회의 두아디라 교회 시대와 일치합니다. 즉 로마 교황권이 극성하여 참혹한 박해를 하던 시대 즉 A.D. 538년경으로부터 16세기 교회 개혁자들이 일어나 교황 제도의 부패 횡포를 적발하기 시작한 때까지의 긴 암흑시대를 말하는 것입니다. 암흑시대 동안 로마 교황권의 결정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종교 재판에 회부되었으며 화형장의 이슬로 사라졌고 교회는 타락을 거듭하였습니다. 교황권이 저지른 여러 잘못들에 대하여는 이미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공개적으로 참회한 바 있으며 역사가들이 교황권의 전성시대를 ‘암흑시대’라고 부르는 것으로 보아 그 심각성이 어떠하였는가를 짐작하게 해 줍니다. 로마 교황권의 대낮은 세상에 있어서는 깊은 밤이었습니다.

 

저희가 “땅 사분의 일의 권세를 얻었다”라고 했습니다. 사분의 일이나 삼분의 일 같은 수는 크기나 세력에 있어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는 것을 나타낼 때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들의 세력이 크고 무서운 것이기는 하지만 그들 스스로의 힘이 아니라 그 권세는 외부의 존재로부터 얻은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그런 권세를 주실 리가 없으니 그들에게 힘을 실어주는 존재가 누구인가는 자명해집니다. 그러나 그들의 권세도 땅 사분의 일에 제한되는 것으로써 결국은 하나님의 통제 아래 있음을 말해줍니다. 그들이 “검과 흉년과 사망과 땅의 짐승으로써” 사람들을 죽였다고 했습니다. “검과 흉년과 사망과 땅의 짐승”은 구약에서 심판과 재앙의 이미지로 자주 쓰이고 있는 표현으로(렘 15:3) 암흑시대 동안에 수많은 순교자들이 어떻게 죽어갔는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5. 다섯째 인을 떼실 때 무슨 일이 있었나요? (계 6:9-11)

 

다섯째 인을 뗌으로 일어난 사건은 비교적 간단합니다. 제단 아래서 순교자들이 하나님께 어서 속히 심판하여 자기들의 피를 신원해 주기를 호소한 것과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의와 구원의 상징인 흰 두루마기를 주시며 잠시 동안 쉬면서 기다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시대적으로 보면 다섯째 인은 사데 교회 시대로서 개혁 시대(AD 1517~1755)에 해당됩니다. 순교자들의 호소는 신앙개혁이 일어났으나 아직도 핍박은 계속되고 마지막 때가 오지 않는 것에 대한 성도들의 안타까운 마음을 표현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이런 부르짖음은 전 역사를 통하여 하늘로 올라갔습니다.

 

아직도 이 부르짖음은 진행형입니다. 재림이 아직 이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죽임을 당한 영혼들이 실제로 부르짖었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성경에 의하면 사람이 죽으면 흙으로 돌아가고 영혼이란 것이 따로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전 9:5; 겔 18:4; 시 104:29) 이것은 의인법을 사용한 것에 불과합니다. 만일 이 영혼들이 구원받아 상급을 받고 하늘에 살고 있는 영혼들이라면 자기들의 피를 신원하여 달라고 애소할 리가 없습니다. 이미 하늘의 복락을 누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영혼불멸을 믿는 신앙, 즉 사람이 죽으면 그 영혼이 천국과 지옥으로 간다고 하는 사상은 지극히 위험한 생각이며 비성경적입니다. 영혼불멸을 믿으면 부활은 의미가 별로 없습니다. 부활은 절대적인 죽음과 무에서 다시 살아날 때만 의 미가 있는 것이지 이미 하늘에서 복락을 누리며 살고 있는 영혼이 다시 부활한다는 것 자체가 이상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영혼불멸을 믿으면 재림도 그 빛을 잃고, 마지막 심판도 필요 없는 것이 됩니다. 그렇게 되면 성경의 중요한 교리들이 모두 무너지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죄인들이 지옥에서 영원한 형벌을 받는다는 사상은 하나님의 사랑의 속성을 심각하게 해치고 있습니다. 지옥 갈 것이 무서워 하나님을 믿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사람이 죽으면 영혼이라는 것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 전체가 다 흙으로 돌아가며 아무것도 모른다고 말하고 있습니다(전 9:5; 시 6:5,104:29, 115:17; 욥 14:10~12; 겔 18:4). “주께서 저희 호흡(ruach)을 취하신즉 저희가 죽어 본 흙으로 돌아가나이다”라고 한 시편 104편 29절의 말씀이 그것입니다. 그랜드 종합 주석은 “전형적인 성경의 가르침에 따르면 영과 육은 분리되어 구원받지 않는다. 즉 인간은 영과 육이 하나로 되어 있는 전인적 존재이기 때문에 구원에 있어서도 영과 육이 함께 구원을 받는다”라고 해석을 하고 있습니다(그랜드 종합 주석, 15:99).

 

그렇다면 제단 아래서 울부짖는 이 혼들은 도대체 누구입니까? 여기서 제단이란 말은 순교자들을 하나님께 바쳐진 제물로 여기기 때문에 사용되었을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의 많은 부분들은 상징이나 표상으로 되어있습니다. 실제로 하늘에 백마의 기사나 청황색 말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제단 밑에서 울부짖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실제로 그런 일이 있다는 것이 아니라 의를 위하여 살다가 억울하게 죽어간 많은 사람들을 하나님께서 결코 잊지 않으시고 구원하실 것이라는 보증을 상징적으로 말한 것입니다. “대주재(大主宰)”라는 칭호는 하나님께만 사용되었습니다(눅 2:29).

 

순교자들의 피는 마지막 심판의 날을 고대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그들의 피가 올바르게 흘려졌다는 것을 심판의 날에 알고 싶어합니다. 그러나 악의 세력은 여전히 세상을 압도하고 하나님의 개입은 너무나 미미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순교자들의 피들이 어서 속히 심판의 날이 오기를 기다린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은 다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잠시 동안’ 기다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아무리 혹독한 시험이나 핍박이라 하더라도 ‘잠시’ 일뿐입니다. 잠시는 언제까지인가요? 그들의 형제들도 그들처럼 “죽임을 받아 그 수가 차기까지”입니다. 이 말씀은 순교자들의 수가 정해 있어서 앞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죽을 때까지 기다린다는 말이 아닙니다. 사단의 사악한 계획이 충분히 드러나고 하나님의 의로우심이 입증되는 그때까지를 말하는 것입니다.

 

6. 여섯째 인을 떼실 때 땅과 하늘에는 무슨 일이 일어났나요? (계 6:12-13)

 

여섯째 인의 시대는 일곱 교회의 빌라델비아와 라오디게아 교회시대에 해당됩니다. 여섯째 인을 떼자 무서운 사건들이 연속하여 일어납니다. 지상에서는 큰 지진과 아울러 하늘에서는 놀라운 천체의 징조들이 나타납니다.

 

그리고 마침내 하늘이 종이 축이 말리는 것같이 떠나가고 산과 섬들이 이동하는 일대 격변이 일어납니다. 구약 성경에 보면 하나님께서 강림하실 때는 땅이 흔들리고 천체들이 빛을 잃는다고 예언하고 있습니다. “그때에 달이 무색하고 해가 부끄러워하리니 이는 만군의 여호와께서 시온산과 예루살렘에서 왕이 되시고 그 장로들 앞에서 영광을 나타내실 것임이니라”(사 24:23). 감람산 강화(講話)라고 부르는 마태복음 24장에서도 예수께서는 재림의 장면을 묘사하면서 여섯째 인의 언어와 똑같은 어휘를 쓰고 있습니다. 그 날 환난 후에 즉시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마 24:29) 릴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하나님의 임재 때 일어나는 징조를 묘사하는 구약 성경의 언어를 그대로 사용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섯째 인의 사건들이 상징인가 아니면 실제로 일어날 사건인가요? 예수님께서 임하시는 것이 상징이 아닌 것처럼 그 징조들도 상징이 아닌 것이 확실합니다. 그러면 언제 이런 일이 일어날 것인가요?

 

여섯째 인의 시대를 역사적 사건으로 보는 학자들은 여섯째 인을 빌라델비아 교회시대와 일치시키고 큰 지진을 1755년 11월 1일(토)에 스페인의 리스본에서 발생하여 60,000명의 사망자를 낸 리스본 대지진으로 보기도 합니다. 해가 어두워지는 사건은 1780년 5월 19일 미국 동북부에서 해가 어두워진 ‘암흑일’ 사건으로, 별이 떨어진 것은 1833년 사자좌에서 유성 소나기가 발생했던 사건으로 해석합니다.

 

그러나 큰 지진과 암흑과 별이 떨어지는 사건들은 “하늘은 종이 축이 말리는 것같이 떠나”가는 것과 동시에 일어나는 것으로 성경에 기록되어있기 때문에 이 모든 것들은 재림 시에 거의 동시에 일어나는 징조들로 볼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섯째 인의 “큰 지진”도 재림 직전 일곱째 재앙이 내릴 때의 “큰 지진”으로 볼 수 있습니다(계 16:18). 이 구절들이 우리의 특별한 관심을 끄는 것은 이 놀랍고 두려운 사건들이 일어나는 여섯째 인 시대에 우리들이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7. 마지막 재림의 때 무슨 두려운 일들이 있을 것일까요? (계 6:14~17)

 

해가 어두워지고 별이 떨어지는 징조는 역사상 몇 번 일어나 그 시대에 종말적인 경고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것들은 지역적이었으며 동시에 일어나지도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마지막 재림의 때에는 이 모든 천체의 징조들이 전 세계적으로 동시에 일어날 것입니다.

그때에 하늘은 마치 종이 축이 말리는 것같이 될 것이며, 그 장엄하고도 두려운 광경은 많은 사람들을 떨게 할 것입니다. 현재 우리들은 여섯째 인이 성취되는 시대에 생존하고 있으며 하늘이 종이 축이 말리는 것같이 떠나갈 때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시대야말로 중대한 때임을 알아야 합니다. 여섯째 인을 떼실 때 일어나는 이 모든 사건들은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다시 오시기 직전에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이사야는 “땅이 깨어지고 깨어지며 땅이 갈라지고 땅이 흔들리고 흔들리며 땅이 취한 자같이 비틀비틀하며 침망같이 흔들리며 그 위의 죄악이 중함으로 떨어지고 다시 일지 못하리라”(사 24:19, 20)고 말하였고 또 예레미야는 “내가 땅을 본즉 혼돈하고 공허하며 하늘들을 우러른즉 거기 빛이 없으며 내가 산들을 본즉 다 진동하며 작은 산들도 요동하며 내가 본즉 사람이 없으며 공중의 새가 다 날아갔으며 내가 본즉 좋은 땅이 황무지가 되었으며 그 모든 성읍이 여호와의 앞 그 맹렬한 진노 앞에 무너졌으니 이는 여호와의 말씀에 이 온 땅이 황폐할 것이나 내가 진멸하지는 아니할 것이며”(렘 4:23~27).고 대언하고 있습니다.

 

그때에 복음을 거절하고 준비되지 못한 사람들의 운명은 처참할 것입니다. 그들은 굴과 산 바위틈에 숨어 어린양 이신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모습으로부터 도망치려 합니다. 자신의 권세와 부를 이 땅에서 자랑하고 복음을 끝까지 거절하던 사람들이 재림의 광경 앞에서 비로소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이신 그리스도의 영광을 인정하게 되고 복음을 거절했던 자신의 과오를 가슴을 쥐어뜯으며 후회하게 될 것입니다. 임금이나 왕족이나 장군이나 용사나 부자들도 자신의 재물이나 권세나 위력이 아무 소용이 없음을 깨닫고 통곡할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영화를 누렸던 모든 사람들이 경악과 낭패, 절망의 도가니에 빠지게 될 것입니다. 그들은 산과 바위를 향하여 비탄의 소리를 높여 “우리들을 가리워 보좌에 앉으신 이의 얼굴과 어린양의 진노에서 피하게 하라”라고 애원하며 어떻게 해서든지 그 무서운 심판의 광경에서 피하려고 하지만 어떤 산도 바위도 그들의 죄를 은폐할 수 없을 것이며 형벌도 면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마음에도 없는 말, 즉 “진노의 큰 날이 이르렀으니, 누가 능히 서리요”라는 처절한 소리를 지르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이러한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신중히 생각하고 우리 삶을 되돌아봐야 합니다. 언젠가 곧 만인이 다 심판대 앞에 설 때가 올 것입니다. 지금 돌이켜 회개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심판의 날에 바위와 산을 향하여 절망 속에서 부르짖게 될 것입니다. 종말을 준비하는 교회는 하늘의 예배에 참석할 수 있도록 회개해야 합니다.

 

[오늘의 기도]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 회개하라고 주신 요한계시록을 읽으면서 더욱 영적인 거울이 되어 저희 교회와 제 자신의 모습을 반성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손에 들려진 심판 책 인이 하나씩 떼어질 때마다 더욱 회개하게 됩니다. 하늘나라의 예배에 참여할 수 있도록 겸손, 정결, 정직, 경건의 삶을 살게 하옵소서. 다시 오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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