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데스다 신약성경강해

[야고보서 3장 강해 설교말씀] 말에 온전한 자(약 3:1-18)

성령의 능력 2022. 6. 9.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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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보서 3장에서는 성도가 바른말을 사용해야 함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말을 잘못하여 인생을 망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혀를 조심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혀는 작은 지체지만 인생을 망가지게 합니다. 반면에 말을 잘하여 인생이 달라지는 사람도 있습니다. 우리는 입술에서 나오는 말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찬송의 소리가 있어야 합니다. 악담이나 저주를 해서는 안 됩니다. 항상 축복의 말이 우리의 입술에서 나와야 합니다.

 

말에 온전한 자(약 3:1-18)

 

1-12, 말에 온전한 자

[1] 내 형제들아, 너희는 선생 된 우리가 더 큰 심판받을 . . . .

야고보는 또 말한다. “내 형제들아, 너희는 선생 된 우리가 더 큰 심판받을 줄을 알고 많이 선생이 되지 말라.” 성경을 가르치는 일은 귀하다. 그것은 하나님의 일이며 예수님의 일이고 사도들의 사역이다.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의 뜻을 사람들에게 가르쳐 그들의 영혼을 구원하고 그들을 바른 길로 인도하는 일은 세상의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이 귀한 사역이다. 그러나 선생은 책임이 따르며 더 큰 심판을 받을 것이므로, 아무나 선생이 되려 해서는 안 된다. 성경 지식과 신앙 인격이 잘 갖추어진 자만이 선생이 되어야 하며, 그래야 말과 행실에 실수가 없이 그 직분을 잘 감당할 수 있을 것이다.

[2]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면 곧 . . . .

야고보는 또 말한다. “[이는]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많음이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능히 온 몸도 굴레 씌우리라.” 우리가 많이 선생이 되지 말아야 할 이유는 우리가 다 실수가 많고 특히 말에 실수가 많기 때문이다. 이것은 우리가 경험한 바이다. 세상에 완전한 자는 없다. 성경 역사에도 그렇다. 심지어 모범적이었던 노아도, 아브라함도, 다윗도 흠과 실수와 부족이 있었다. 우리가 말에 실수가 없다면 우리는 온전한 자로 여김을 받을 것이다. 사람의 인격의 온전함은 말에서 증거된다. 우리가 남에 대한 오해나 잘못된 비난의 말을 하지 않고 거짓말을 하지 않고 바른 말, 덕스러운 말만 한다면, 우리는 성숙한 인격자일 것이다.

온전한 말을 하는 혀는 그의 온 몸을 통제할 수 있다. 말은 사람의 인격을 나타낸다. 온전한 말은 온전한 인격의 표현이다. 예수께서는,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는 악하니 어떻게 선한 말을 할 수 있느냐?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 선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그 쌓은 악에서 악한 것을 내느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네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고 말씀하셨다(12:34-37).

[3-5] 우리가 말()을 순종케 하려고 그 입에 재갈 먹여 . . . .

야고보는 말한다. “우리가 말()을 순종케 하려고 그 입에 재갈 먹여 온 몸을 어거(馭車)하며 또 배를 보라. 그렇게 크고 광풍에 밀려가는 것들을 지극히 작은 키로 사공의 뜻대로 운전하나니 이와 같이 혀도 작은 지체로되 큰 것을 자랑하도다. 보라 어떻게 작은 불이 어떻게 많은 나무를 태우는가?” 야고보는 혀의 중요성을 말의 재갈이나 배의 키에 비교한다. 말은 힘이 센 동물이지만, 사람은 말의 입에 재갈 즉 쇠토막을 물려 자기 뜻대로 그것을 이끌고 사용한다. 큰 배도 배 밑에 달려 있는 작은 키로 사공의 뜻대로 운전된다. 또 야고보는 혀를 불에 비교한다. 작은 불이 많은 나무를 태우듯이, 작은 혀가 큰 것을 자랑하며 큰 일을 행한다. 잠언 10:20, “의인의 혀는 천은(天銀)과 같거니와.” 잠언 12:18, “지혜로운 자의 혀는 양약(良藥) 같으니라.” 잠언 21:28, “확실한 증인의 말은 힘이 있느니라.”

[6] 혀는 곧 불이요 불의(不義)의 세계라. 혀는 우리 지체 . . . .

야고보는 또 말한다. “혀는 곧 불이요 불의(不義)의 세계라. 혀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 몸을 더럽히고 생의 바퀴를 불사르나니 그 사르는 것이 지옥불에서 나느니라.” 혀는 불과 같다. 그것은 좋은 용도의 불보다 산불이나 건물의 화재처럼 나쁜 결과를 주는 불과 같다. 혀는 또 불의(不義)의 세계라고 표현된다. 그것은 우리 몸을 더럽히고 생의 바퀴 즉 우리의 삶의 과정을 허물어뜨린다. 사람은 자기가 쌓은 선을 잘못된 말 한마디로 다 허물어뜨릴 수 있다. “그 사르는 것이 지옥불에서 나느니라는 말은 그것[]은 지옥불에 사루어지리로다”라고 번역되어야 할 것이다(KJV, NASB, NIV).

[7-8] 여러 종류의 짐승과 새며 벌레와 해물은 다 길들므로 . . . .

야고보는 말한다. “[이는] 여러 종류의 짐승과 새며 벌레와 해물은 다 길들므로 사람에게 길들었거니와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나니 쉬지 아니하는[다루기 힘든, 길들이기 어려운]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이라[것임이니라].” 본문은 혀가 불의의 세계인 이유를 말한다. 그 이유는 혀가 길들여지지 않고 남을 죽이는 독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여러 종류의 짐승들과 새들과 벌레들 혹은 기는 것들과 해물들은 다 길들이면 길이 든다. 우리는 개나 소나 말이나 비둘기나 뱀이나 물개 등이 어떻게 길들여지는지 알고 있다. 그러나 혀는 사람이 길들일 수가 없다. 그것은 다루기 힘든악이다. 혀는 또 죽이는 독이 가득하다. 사람의 혀는 심히 악하다.

[9-10] 이것으로 우리가 주 아버지를 찬송하고 또 이것으로 . . . .

야고보는 말한다. “이것으로 우리가 주[하나님] 아버지를 찬송하고 또 이것으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사람을 저주하나니 한 입으로 찬송과 저주가 나는도다. 내 형제들아, 이것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혀의 악함은 성도에게서도 종종 보인다. 그것은 이중적인 언어생활에서 나타난다. 성도는 자신의 혀로 하나님 아버지를 찬송하지만, 그 동일한 혀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사람을 저주한다. 한 입에서 찬송과 저주가 나오는 것이다. 이것은 이중적이고 모순되다. 이것은 성도에게 합당치 않은 일이다.

[11-12] 샘이 한 구멍으로 어찌 단물과 쓴 물을 내겠느뇨? . . . .

야고보는 또 말한다. “샘이 한 구멍으로 어찌 단물과 쓴 물을 내겠느뇨? 내 형제들아, 어찌 무화과나무가 감람열매를, 포도나무가 무화과를 맺겠느뇨? 이와 같이 짠물이 단물을 내지 못하느니라[어떤 샘도 짠물과 단물을 함께 내지 못하느니라](전통사본).” 성경은 말에 대해 많이 말하지만, 특히 바울은 에베소서에서 다음과 같이 교훈했다.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 “너희는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훼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라”(4:29, 31).

본문은 두 가지 교훈을 준다. 첫째로, 우리는 선생이 많이 되지 말아야 한다. 성경을 가르치는 일은 귀한 것이지만 거기에는 책임과 위험성이 따른다. 잘못 가르치거나 잘못 본을 보인다면, 하나님께 큰 책망과 벌을 받을 것이다. 말의 실수가 사람의 실수 중 가장 두드러진 것인데, 가르치는 일은 이런 실수를 할 위험성을 많이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선생이 많이 되지 말고, 성경 지식과 선한 인격에 있어서 상당히 준비된 자들만 이 직분을 두려움으로 받아야 할 것이다.

둘째로, 우리는 말에 온전한 자가 되어야 한다. 작은 불이 많은 나무를 태우듯이, 작은 혀가 온 몸을 더럽히고 우리의 삶의 과정을 허물어뜨릴 수 있다. 우리의 혀는 얼마나 악한지! 그것은 얼마나 길들지 않고 이중적이고 모순된 일을 행하는지! 그러므로 말에 온전한 자가 온전한 자이다. 우리의 신앙생활의 목표는 무엇보다 말의 온전함에 있어야 한다. 우리의 성화의 목표는 일차적으로 말의 온전함에 있어야 한다. 말의 실수는 우리의 인격의 부족을 나타낸다. 우리가 온전한 인격자가 된다면, 우리의 말도 의롭고 깨끗하고 선하고 덕스럽고 진실하게 될 것이다. 우리 모두는 이런 자가 되기 위해 기도하고 힘써야 하겠다.

13-18, 두 종류의 지혜

[13] 너희 중에 지혜와 총명이 있는 자가 누구뇨? 그는 . . . .

야고보는 말한다. “너희 중에 지혜와 총명이 있는 자가 누구뇨? 그는 선행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온유함으로 그 행함을 보일지니라.” 참 지혜는 단순히 이론이 아니고 행위로 표현되되 선함과 온유함으로 표현된다. 참 지혜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요 성령의 열매로 맺혀지는 지혜이다.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선함]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이다(5:22, 23). 전도서 8:1사람의 지혜는 그 사람의 얼굴에 광채가 나게 하나니 그 얼굴의 사나운 것이 변하느니라”고 말하였다. 참된 지혜는 선함과 온유함으로 표현되며 그 얼굴에 기쁨과 평안으로 나타난다.

[14-16] 그러나 너희 마음 속에 독한 시기와 다툼이 있으면 . . . .

야고보는 또 말한다. “그러나 너희 마음 속에 독한 시기와 다툼이 있으면 자랑하지 말라. 진리를 거스려[거슬러] 거짓하지[속이지] 말라. 이러한 지혜는 위로부터 내려온 것이 아니요 세상적이요 정욕적이요 마귀적이니 [이는] 시기와 다툼이 있는 곳에는 요란과 모든 악한 일이 있음이니라.”

마음에 온유함 대신에 독한 시기와 다툼이 있는 자는 참된 지혜가 없는 자이다. 그러므로 그는 자신이 지혜자인 것처럼 자랑하지 말아야 한다. 그는 진리를 거슬러 속이지 말아야 한다. 그가 가지고 있는 지혜는 위로부터 내려온 것 곧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 아니고 세상적이요 정욕적이요 마귀적이다. ‘세상적이라는 표현은 세상 사람들에게서 나온 것이라는 뜻이다. 요한일서 2:16,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 세상적 지혜는 어떤 점에서는 성도의 지혜보다 더 나아 보인다. 예수께서는 이 세대의 아들들이 자기 시대에 있어서는 빛의 아들들보다 더 지혜롭다”고 말씀하셨다(눅 16:8). ‘정욕적이라는 원어(프쉬키코스)육욕적이라는 말로서 육신의 죄악된 생각과 감정과 욕망을 따르는 것이라는 뜻이다. 마귀적이라는 말은 귀신들에게서 나오는것이라는 뜻이다. 또 마음 속에 시기와 다툼이 있는 곳에는 혼란과 모든 악한 일이 있다. ‘요란이라는 원어(아카타스타시아)는 ‘혼란, 무질서를 가리킨다. 시기와 다툼이라는 마음의 악이 혼란과 무질서와 모든 악한 일들이라는 현실로 나타난다. 이것은 분명히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가 아니고 세상적이요 정욕적이요 마귀적이다.

[17-18]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 . . .

야고보는 말한다.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벽과 거짓이 없나니 화평케 하는 자들은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느니라[의의 열매는 화평케 하는 자들에 의해 화평 중에 심어진 것이니라].” 세상적 지혜와 대조적으로, 위로부터 난 지혜, 곧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는, 첫째로, 성결하다. 그것은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하나님의 법을 지키며 죄악된 일을 버린 것이다. 그것이 거룩이요 의()이다. 둘째로, 그것은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다. 그것은 한마디로 사랑으로 표현된다. 바울은 갈라디아서에서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투기 등을 육신적 죄성에서 나오는 것들로 열거하였고, 이와 대조하여 사랑과 화평과 자비와 양선과 온유 등을 성령의 열매들로 열거했다(5:19-23). 셋째로, 그것은 편벽과 거짓이 없다. 그것은 공정하고 진실하다. 출애굽기 23:3, “가난한 자의 송사라고 편벽되이 두호하지 말지니라.” 레위기 19:35-36, “너희는 재판에든지 도량형에든지 불의를 행치 말고 공평한 저울과 공평한 추와 공평한 에바와 공평한 힌을 사용하라.” 다시 말해, 신적 지혜의 특징은 거룩함과 의로움과 선함과 진실함이다.

잠언은 지혜를 가르치는 책이다(1:2-6). 거기에서 말하는 지혜도 하나님을 경외하고 악을 떠나는 것이며 하나님의 율법대로 거룩하고 의롭고 선하고 진실하게 사는 것이다. 잠언 1:7,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어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고 말한다. 잠언 2:16, “지혜가 또 너를 음녀에게서, 말로 호리는 이방 계집에게서 구원하리라”고 말한다. 잠언 2:20, “지혜가 너로 선한 자의 길로 행하게 하며 또 의인의 길을 지키게 하리라”고 말한다. 잠언 3:7,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지 말지어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악을 떠날지어다라고 말했고, 잠언 8:13,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악을 미워하는 것이라”고 했다. 잠언의 모든 말씀은 결국 야고보서 본문이 가르치는 위로부터 난 지혜와 동일하다.

본문은 두 종류의 지혜를 가르친다. 마음 속에 시기와 다툼이 있고 혼란과 무질서와 온갖 악으로 표현되는 것은 세상적, 정욕적, 마귀적 지혜이다. 그러나 그와 대조되는 위로부터 난 지혜는 성결하고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고 긍휼과 선함이 가득하며 편벽과 거짓이 없다. 참된 지혜의 내용은 성결과 의와 선과 진실이다. 우리는 세상적 지혜를 버리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참된 지혜를 구하여 가져야 하겠다.

또 지혜는 참으로 복되다. 잠언 3:13-18, “지혜를 얻은 자와 명철을 얻은 자는 복이 있나니 이는 지혜를 얻는 것이 은을 얻는 것보다 낫고 그 이익이 정금보다 나음이니라. 지혜는 진주보다 귀하니 너의 사모하는 모든 것으로 이에 비교할 수 없도다. 그 우편 손에는 장수가 있고 그 좌편 손에는 부귀가 있나니 그 길은 즐거운 길이요 그 첩경은 다 평강이니라. 지혜는 그 얻은 자에게 생명 나무라. 지혜를 가진 자는 복되도다.” 우리는 참으로 지혜롭고 복된 성도가 되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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