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데스다 신약성경강해

[요한일서 1장 설교말씀] 신자의 삶은 빛의 삶(요일 1:1-10)

성령의 능력 2022. 6. 20. 07:19
반응형

요한일서 1장에서는 빛이신 예수님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태초부터 계셨던 하나님입니다. 예수님은 빛이기 때문에 어둠이 없습니다. 죄가 없는 분이기 때문에 어둠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원죄 가운데 있었던 죄인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음으로 우리의 죄를 대속해 주셨습니다. 

 

신자의 삶은 빛의 삶(요일 1:1-10)

 

1-4, 사도의 전하는 내용과 목적

[1-2]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 . . .

요한은 말한다.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주목하고 우리 손으로 만진 바라. 이 생명이 나타내신 바 된지라. 이 영원한 생명을 우리가 보았고 증거하여 너희에게 전하노니 이는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내신 바된 자니라.”

요한의 사역은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하는 것이었다. 그가 전파한 예수 그리스도는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이라고 표현된다. ‘있는이라는 원어(엔, 미완료과거)는 ‘있었던이라는 뜻이다. ‘태초는 우주의 시작을 가리킨다. ‘태초부터 있었던 자라는 말씀은 우주가 시작될 때 이미 존재하고 계셨던 자라는 뜻으로 신적인 존재를 가리킨다. ‘태초부터 있었던 생명의 말씀은 영원한 신적인 존재인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사도 요한은 요한복음에서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1:1-4)고 증거했다. 원문에서, 거기서도 계시니라는 말(, 미완료과거)이 본문의 있는이라는 말과 동일하다. 태초부터 계셨던 그 분, ‘말씀’(로고스)이라고 불리는 그는 하나님과 구별되시면서도 동시에 하나님으로 증거되는 분이시다. 우주의 시작 때에 이미 존재하고 계셨던 그는 하나님이시다. 하나님 외에는 아무도 그때 존재하고 계셨을 수 없다. 태초부터 계셨던 말씀은 하나님과 구별되시면서도 그 본질과 본체에 있어서 한 하나님이시다. 여기에 삼위일체의 신비가 드러나 있다.

사도 요한은 2절에서 그를 영원한 생명이라고 표현하였고 또 이 생명이 나타내신 바 되었다,’ ‘이는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내신 바 된 자니라라고 표현하였다. 태초부터 계셨던 그 분, 모든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 특히 죄로 인하여 죽은 모든 인생들에게 참 생명이 되시는 분, 아버지 하나님과 함께 계시다가 육신으로 나타나신 그는 바로 말씀이 육신이 되신’(1:14)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는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이 되신다. 그러므로 그는 친히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말씀하셨고(14:6), 또 창세 전에 아버지와 함께 영화를 누렸다고 말씀하셨다(17:5). 또 요한은 본 서신 끝부분에서 우리가 참된 자 곧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니 그는 참 하나님이시요 영생이시라”고 증거하였다(요일 5:20). 예수 그리스도는 신성(神性)을 가지신 분이시다.

요한이 전파한 내용은 확실하고 믿을 만하였는가? 이 점에 관해 요한은 자신이 이 신적인 인물에 대한 목격자이며 증인임을 고백한다. 그는 1절에서 말하기를,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주목하고 우리 손으로 만진 바라고 하였고, 2절에서 이 영원한 생명을 우리가 보았고 증거하여 너희에게 전하노니라고 하였고, 3절에서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 전함은이라고 말했다. 다시 말해, 요한은 자신이 전파하는 분에 대하여 그의 신적 능력과 영광을 직접 자기 눈으로 보았고 들었다고 반복하여 증거한 것이다. 이런 증인의 증거를 우리가 무시할 것인가? 이러한 목격자적 증인의 증거를 우리가 무시해도 되는가? 여기에 기독교 복음의 확실함이 있다. 기독교 복음은 증인들의 진실한 증언들 위에 근거하고 있다. 그 증언들은 2천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복음 진리의 확실성을 증거한다.

[3-4]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 . . .

요한은 또 말한다.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함이라. 우리가 이것을 씀은 우리의[너희의](전통본문) 기쁨이 충만케 하려 함이로라.” 요한이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한 목적은 전하는 자들과 받는 자들이 서로 교제하기 위함이었다. 성도의 교제가 전도의 목적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교회는 성도의 교제의 회이다. 우리는 성도의 교제가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모든 사람들에게 확장되기를 원한다. 우리의 교제는 과연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자들에게 확장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성도들의 참된 교제는 이 세상에 가장 복된 일이다. 그것은 천국에서도 나눌 교제이다.

그런데 본문은 성도의 교제가 단지 인간적 교제가 아님을 증거한다. 성도의 교제는 하나님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의 교제이다. 이것이 구원이다. 인생이 하나님을 멀리 떠났다가 하나님께로 다시 돌아와 그를 알고 그와 교제하는 것이 구원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하나님과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하는 것이 전도의 일차적 목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9에서 너희를 불러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로 더불어 교제케 하시는 하나님은 미쁘시도다”라고 말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도들의 교제를 나누어야 하겠다. 거기에는 항상 찬송과 감사와 기도와 권면의 말씀이 넘칠 것이다.

사도 요한은 덧붙여 그가 이 편지를 쓰는 목적은 피차간에 기쁨이 충만하게 하기 위함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진리의 말씀으로 교훈을 주고 받음으로써 피차 기쁨이 충만케 된다. 성도의 기쁨의 이유는 그가 받은 죄사함과 의롭다 하심과 하나님의 자녀 됨과 천국 백성 됨의 구원 때문이다. 이것이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고 교훈하신 뜻이다. 우리의 기쁨은 구원의 기쁨이며, 우리가 성경말씀으로 서로 권면하고 권면을 받을 때 우리는 기쁨이 충만하게 되는 것이다.

1절부터 4절까지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神性)의 영광을 보아야 한다. 그는 태초부터 계셨던 생명의 말씀이며 영원한 생명으로서 이 세상에 오셨다. 기독교는 한 훌륭한 사람 예수를 추앙하는 것이 아니고, 사람으로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 우리의 의와 영원한 생명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섬기며 따르는 것이다. 우리는 그의 신적 영광을 보아야 한다.

둘째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증언들의 확실함을 깨닫자. 우리는 비록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의 영광을 우리의 눈으로 보지 못했지만 그것을 본 증인들의 증언들을 가지고 있다. 기독교는 예수 그리스도를 친히 눈으로 보고 그의 목소리를 듣고 그를 주목하고 손으로 만져본 증인들의 진실하고 확실한 증언들 위에 기초하고 있다. 우리가 믿는 바는 사람의 상상력으로 지어낸 이야기들에 근거한 것이 아니고 진실한 증인들이 증거한 역사적 사실들에 근거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실들을 성경에서 확인하고 확신하자.

셋째로, 우리는 성도의 교제의 본질을 알자. 교회는 성도의 교제의 회이다. 성도의 교제는 하나님과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지는 교제이다. 우리의 사랑의 교제는 먹고 마시는 세상적, 육신적, 물질적 교제가 아니고 믿음과 소망 안에서의 경건한 교제이다. 거기에는 찬송이 있고 말씀의 권면이 있고 기도가 있다. 그리고 이 교제 속에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구원의 기쁨과 즐거움의 충만함이 있다.

5-10, 빛 가운데 행하라

[5] 우리가 저에게서 듣고 너희에게 전하는 소식이 이것이니 . . . .

요한은 말한다. “우리가 저에게서 듣고 너희에게 전하는 소식이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두움이 조금도 없으시니라.” 사도들이 예수 그리스도께 듣고 사람들에게 전하는 소식은 하나님께서 빛이시라는 사실이다. 하나님께는 어두움이 조금도 없으시다. 빛은 하나님의 모든 속성과 덕의 완전한 영광을 나타낼 것이지만, 특히 그의 지식과 도덕성을 가리킨다고 본다. 무지와 불의와 악과 거짓은 어두움이지만, 지식과 의와 선과 진실은 빛이다. 하나님께는 지식과 의와 선과 진실이 충만하시다.

[6-7]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 하고 어두운 . . . .

요한은 또 말한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 하고 어두운 가운데 행하면 거짓말을 하고 진리를 행치 아니함이거니와 저가 빛 가운데 계신 것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하나님께서 빛이시라는 사실은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도 빛 가운데서 살아야 함을 보인다. 빛 되신 하나님을 알고 그 하나님과 교제하는 자들은 어두움 가운데 행해서는 안 되고 빛 가운데 살아야 한다. ‘어두움 가운데 행하면이라는 원어(엔 토 스코테이 페리파토멘)는 ‘어두움 가운데 계속, 반복하여 행하면이라는 뜻이다. 하나님과의 교제는 빛의 교제이다. 빛과 어두움은 함께 있을 수 없다. 빛이 오면 어두움이 물러간다. 그러므로 만일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면서 어두움 가운데, 즉 불의와 악과 거짓 가운데 계속 행하고 있다면, 우리는 거짓말을 하는 자요 진리를 믿고 행하는 자가 아닐 것이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하나님께서 빛 가운데 계신 것같이 빛 가운데 행하면, 즉 우리가 의롭고 선하고 진실하게 살고자 애쓰면, 우리는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다. 다윗은 여호와여, 주의 장막에 유할 자 누구오며 주의 성산에 거할 자 누구오니이까? 정직하게 행하며 공의를 일삼으며 그 마음에 진실을 말하며라고 말했다(15:1, 2).

그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의로움과 진실함이 있을 때,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다.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라는 원어는 현재형이다. 주께서는 믿는 이들의 죄를 깨끗하게 하셨고 또 날마다 깨끗하게 하셔서 하나님과의 풍성한 교제를 누리게 하실 것이다. 주 예수께서도, “무릇 내게 있어 과실을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이를 제해 버리시고 무릇 과실을 맺는 가지는 더 과실을 맺게 하려 하여 이를 깨끗케 하시느니라”고 말씀하셨다(15:2).

[8-10] 만일 우리가 죄 없다 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 . . .

요한은 또 말한다. “만일 우리가 죄 없다 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 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는 것이니 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 인간은 다 죄인이며 구원받은 성도 속에도 죄악성이 있기 때문에, 만일 누가 자신이 죄가 없다고 말한다면, 그는 자신을 속이는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있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진리의 세계에 들어온 것은 우리의 죄를 인정하고 뉘우치고 버리기를 결심함으로써이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켜주지 않으시면 우리는 언제든지 죄에 떨어질 수밖에 없고 또 종종 떨어진 존재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신자는 우리의 죄를 인정하고 고백함으로써 빛의 삶을 유지해야 한다. 죄의 인정과 고백은 진실함에서만 가능하며 우리는 죄의 고백과 죄씻음을 통해 의롭고 거룩한 삶을 유지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우리의 죄를 인정하고 그 앞에 고백하는 것을 원하신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고백한다면, 그는 약속에 신실하시고 의로우시기 때문에 우리의 죄를 사하시고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하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구약성경에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되리라”고 말씀하셨다(1:18).

그러나 만일 우리가 범죄한 적이 없다고 한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들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성경에서 모든 사람이 죄인이라고 이미 선언하셨기 때문이다. 또 우리가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든다면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이 그 속에 있겠는가? 그는 하나님의 진리와 상관없는 자가 되고 말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자신이 죄인이었고 또 지금도 종종 넘어지며 또 우리 속에 죄성이 남아 있다는 사실을 하나님 앞에서 항상 겸손히 인정하고 고백하고 버리기를 힘쓰는 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하나님은 빛이시다. 그에게는 지식과 의로우심과 선하심과 진실하심이 있으시다. 하나님은 빛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는 빛 가운데 행해야 한다. 하나님과의 교제는 빛의 교제, 의와 선과 진실이 있는 교제이어야 한다. 우리는 항상 진리의 지식을 사모하고 의롭고 선하고 진실한 삶을 힘써야 한다. 만일 우리가 이런 삶을 힘쓰지 않는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알고 그와 교제하는 자가 아닐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죄를 하나님 앞에서 항상 인정하고 고백하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그때 우리의 모든 죄는 다 씻음을 받게 될 것이다.

[요한계시록 18장 성경 좋은 말씀] 바벨론의 멸망(계 18:1-24)

 

[요한계시록 18장 성경 좋은 말씀] 바벨론의 멸망(계 18:1-24)

요한계시록 18장에서는 큰 음녀와 바벨론이 멸망하는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바벨론은 거짓 교회를 상징합니다. 부정한 것들이 혼합되어 있는 교회입니다. 우상을 숭배하는 곳이며 인간을

bedesd153.tistory.com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