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데스다 신약성경강해

[사도행전 13장 좋은 성경 말씀] 최초의 선교사(행 13:1-52)

성령의 능력 2022. 6. 20. 0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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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13장에서는 안디옥 교회가 바울과 바나바를 선교사로 파송하고 있습니다. 성령에 이끌려 실루기아에 내려가 배 타고 구브로에 가서 복음을 전파했습니다. 그리고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사역을 하셨습니다.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가서 복음을 전파했습니다.

 

최초의 선교사(행 13:1-52)

 

1-12, 성령께서 선교사를 파송케 하심

[1] 안디옥 교회에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으니 곧 바나바와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과 구레네 사람 루기오와 분봉왕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과 및 사울이라.

안디옥 교회의 다섯 명의 선지자들과 교사들은 가르치는 일을 행하였다. 교회에는 가르치는 자들이 필요하다. 하나님께서는 교회에 가르치는 자들을 주신다. 성도들은 그들을 통해 하나님의 모든 진리들을 배운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 4:11-12에서, “그가[주께서]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고 말했다.

[2]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가라사대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본문이 그 다섯 명의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무엇을 위해 금식했는지 말하지 않으나, 그들은 아마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복음을 땅끝까지 전하는 일을 이룰 수 있을지에 대해 간절히 기도했을 것이다. 그때 성령께서는 바나바와 사울을 그 일을 위해 구별할 것을 지시하셨다. 그는 한 선지자의 예언을 통해 지시하셨을 것이다. 옛 시대에 예언은 하나님의 뜻을 전달하는 방식이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일은 간절한 기도로 준비되고 시작되었다.

[3] 이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내니라.

그들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였다. 그들은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내었다. 그들은 기도 중에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였고 지교회의 유익만 생각하고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을 것이다. 누군가가 주의 일을 위해 헌신해야 했다. 그들은 성령의 지시대로 바나바와 사울을 선교사로 보내기 위해 그들에게 안수함으로써 하나님의 일을 부탁하였다. 안수는 직무를 위탁하는 뜻이 있었던 것 같다. 이렇게 하여 안디옥 교회는 최초로 세계 선교의 대업(大業)을 시작한 교회가 되었다. 그 교회는 최초로 바나바와 사울을 아시아와 유럽에 선교사로 파송한 교회가 된 것이다.

[4-5] 두 사람이 성령의 보내심을 받아 실루기아에 내려가 거기서 배 타고 구브로에 가서 살라미에 이르러 하나님의 말씀을 유대인의 여러 회당에서 전할새 요한을 수종자로 두었더라.

구브로는 바나바의 출생지이었다(4:36). 사도 바울의 1차 전도여행이 시작된 것이다. 안디옥 교회의 교사들이 그들을 파송하였지만, 본문은 그들이 성령의 보내심을 받았다고 표현한다.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께서 하신다. 하나님께서 전도자들을 부르시고 그들을 준비시키시고 그들을 보내신다. 바나바와 사울은 구브로의 살라미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였다. 전도는 나의 말을 전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가 전하는 말을 부끄러워하지 말고 또 우리의 부족과 무능만 생각하지 말고 하나님의 진리와 성령의 능력에 의지하여 담대히 전해야 한다.

바나바와 사울이 수종자로 둔 요한은 마가라 하는 요한으로서(12:25) 바나바의 사촌이다(4:10). 전도 사역은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거기에는 동역자와 수종자가 필요하다. 주께서도 친히 제자들을 불러 전도의 일에 참여케 하셨다. 오늘날에도 복음 사역을 위해 신실한 동역자와 수종자들이 많이 필요하다.

[6-7] 온 섬 가운데로 지나서 바보에 이르러 바예수라 하는 유대인 거짓 선지자 박수[마술사]를 만나니 그가 총독 서기오 바울과 함께 있으니 서기오 바울은 지혜 있는 사람이라. 바나바와 사울을 불러 하나님 말씀을 듣고자 하더라.

바예수라는 사람은 유대인이라는 하나님의 백성의 형식적 명칭을 가진 자이었으나 거짓 선지자이었다. 그는 분명히 마귀의 종이었다. 사탄은 항상 사람들에게 거짓된 것들을 믿게 하며 하나님의 구원의 일을 방해하는 자이다. 위선적인 교인은 때때로 마귀의 종이 되어 불신자보다 더 악하게 행동하며 하나님의 일을 대적한다. 바예수는 총독 서기오 바울과 함께 있었다. 서기오 바울은 구브로 섬을 다스리는 로마 총독이었다. 그는 지혜 있는 사람이었으며 바나바와 사울을 불러 하나님 말씀을 듣고자 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자들을 준비시키셔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믿어 구원을 받게 하신다. 서기오 바울에게는 마음으로 기다리던 좋은 기회이었을 것이다.

[8] 이 박수 엘루마는(이 이름을 번역하면 박수라) 저희를 대적하여 총독으로 믿지 못하게 힘쓰니.

이 박수 엘루마는 바나바와 사울을 대적하여 총독으로 믿지 못하게 힘썼다. 하나님의 바른 종들을 대적하는 것은 큰 죄가 된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들 중에 가장 작은 자 하나를 영접하는 것은 곧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것이지만(10:40-42), 가장 작은 자 하나를 영접하지 않는 것이 곧 그를 영접하지 않는 것이다. 또 다른 사람을 믿지 못하게 하는 것이거나 다른 사람을 바른 믿음에서 떨어지게 하는 것도 큰 죄악이다. 하나님의 일에는 언제나 이렇게 방해하는 일이 있다. 선교 활동에는 때때로 난관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살아계시니 염려할 것은 없다.

[9-11] 바울이라고 하는 사울이 성령이 충만하여 그를 주목하고 가로되 모든 궤계와 악행이 가득한 자요 마귀의 자식이요 모든 의()의 원수여, 주의 바른 길을 굽게 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겠느냐? 보라, 이제 주의 손이 네 위에 있으니 네가 소경이 되어 얼마 동안 해를 보지 못하리라 하니 즉시 안개와 어두움이 그를 덮어 인도할 사람을 두루 구하는지라.

사울은 자신의 이름을 바울로 바꾸었다. 그는 성령의 충만함으로 지혜와 능력과 큰 담력을 얻었다. 그가 바예수에게 선포한 하나님의 진노와 징벌은 그대로 이루어졌다. 즉시 안개와 어두움이 그를 덮었고 그는 인도할 사람을 두루 구하였다.

[12] 이에 총독이 그렇게 된 것을 보고 믿으며 주의 가르치심을 기이히 여기니라.

전도에는 난관이 있었으나, 하나님께서는 그 가운데서 큰 능력으로 일하셨다. 마술사를 벌하신 일도 그러하지만, 그보다 로마 제국의 한 총독을 믿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은혜이었다.

본문은 몇 가지 교훈을 준다. 첫째로, 온 세계에 복음을 전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다. 그것은 주 예수께서 승천하시기 전에 그의 제자들에게 명하신 바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전도자를 부르시며 훈련시키시고 그를 세우시고 교회로 하여금 그를 파송게 하시고 또 후원케 하신다. 교회는 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전도자를 파송해야 한다.

둘째로, 우리는 전도 활동에 때때로 어려움이 있을 것도 각오하자. 바울과 바나바의 전도 활동은 거짓 선지자 바예수의 방해와 대적이 있었다. 사탄과 악령들은 항상 하나님의 일을 미워하고 방해하며 혼란스럽게 한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일을 당연하게 여기며 잘 대처하자.

셋째로, 그러나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께서 이루실 것이다. 구약의 성전은 사람의 힘으로가 아니고 성령으로 건립되었다(4:6). 주께서는 내가 내 교회를 세우리라고 말씀하셨다(16:18). 영혼의 구원과 교회의 건립은 하나님께서 이루신다. 그는 사탄보다 더 강하시다.

13-23, 비시디아 안디옥에서의 전도

[13] 바울과 및 동행하는 사람들이 바보에서 배 타고 밤빌리아에 있는 버가에 이르니 요한은 저희에게서 떠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고.

마가라는 요한은 전도자로서 어떤 부족과 연약이 있었다. 전도자는 자기를 부정하고 고난을 각오하며 주를 따라야 한다(9:57-62). 하나님의 명하신 전도의 일은 세상의 그 무엇보다, 우리의 생명보다, 더 중요한 일이다. 마가 요한에게는 그런 사명감과 인내심이 부족했다. 그러나 바울과 바나바는 그렇지 않았다.

[14] 저희는 버가로부터 지나 비시디아 안디옥에 이르러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앉으니라.

비시디아 안디옥은 수리아 안디옥과 구별되는 도시이다. 다른 곳들처럼, 그곳에도 유대인들의 회당이 있었다. 회당은 오늘날 예배당과 같이 유대인들이 하나님을 섬기는 장소이었다. 바울 일행은 그 회당 예배에 참석하였다. 그것은 전도의 기회를 가지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유대인들이 온 세계에 흩어져서 살면서 곳곳에 회당들을 세우고 하나님을 섬기게 하셨고 그것들은 복음을 전하는 발판이 되었다. 하나님께서는 유대인 회당들을 사용하셔서 먼저 유대인들의 마음 속에 구원을 준비시키셨다.

[15] 율법과 선지자의 글을 읽은 후에 회당장들이 사람을 보내어 물어 가로되 형제들아, 만일 백성을 권할 말이 있거든 말하라 하니.

당시 유대인들의 회당 예배의 순서에는 성경을 읽는 시간이 있었다. 매주 얼마큼씩 읽어 일년에 일회씩 구약 전체를 읽게 하는 관습이었다. 성경을 읽는 일은 하나님을 믿고 섬기는 데 대단히 중요한 일이다. 그 날에도 회당 예배는 성경을 읽는 순서를 가졌고, 그 후 회당장들은 바울 일행에게 백성을 권할 말이 있거든 말하라고 요청하였던 것이다. 회당장은 회당 예배를 주관하는 사람이다. 바울에게는 기다리던 좋은 기회가 왔다. 그는 그 기회를 잘 사용하였다.

[16] 바울이 일어나 손짓하며 말하되 이스라엘 사람들과 및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아, 들으라.

손짓하는 것은 사람들에게 인사하며 시선을 모으거나 사람들을 조용하게 하는 동작이라고 본다. 회당에 모인 자들은 이스라엘 사람들과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이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이라는 말은 이방인들 중에서 유대교로 개종하였거나 하나님에 대해 알기 원하는 자들을 통틀어 말할 것이다. 그런 자들의 마음은 구원의 복음을 받을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는 자들이었을 것이다.

[17] 이 이스라엘 백성의 하나님이 우리 조상들을 택하시고 애굽 땅에서 나그네된 그 백성을 높여 큰 권능으로 인도하여 내사.

바울은 이스라엘의 중요한 역사를 언급한다. 그것은 구약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구약시대의 이스라엘의 역사는 그리스도의 복음의 배경이며 기초이다. 이스라엘 백성의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조상들인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택하셨다. 야곱의 아들 요셉은 종으로 팔려 애굽에 내려갔으나 거기서 애굽 총리가 되었고, 기근을 피하기 위해 애굽으로 내려간 야곱의 가족들은 아들 요셉과 애굽 왕 바로의 호의로 애굽의 고센 땅에서 거주하며 살게 되었다.

그런데 세월이 좀 흐른 후 야곱의 자손들은 애굽에서 핍박과 학대를 받게 되었고 그 고통은 점점 더 심해졌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셨던 예언의 성취이기도 하였다(15:13). 그들이 애굽에 거주한 지 430년이 되었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큰 권능으로 애굽에서 인도해내셨다. 그것은 애굽에 내려진 10가지 재앙들과 홍해가 육지처럼 갈라진 기적에서 잘 나타났다. 하나님께서는 능력의 하나님이시고 그 능력으로 자기 백성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건져내셔서 한 나라가 되게 하셨다. 이스라엘 백성은 이렇게 국가의 설립 초기부터 하나님의 큰 권능을 경험한 민족이었다.

[18] 광야에서 약 40년간 저희 소행을 참으시고.

애굽에서 나온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에서 약 40년 동안 반복하여 하나님께 범죄하고 하나님을 믿지 않고 원망하고 불평하며 불순종하였다. 그것은 인간의 전적 부패성을 잘 증거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광야 40년간 그들의 행위를 오래 참으셨고, 비록 범죄한 자들을 징벌하여 광야에서 다 죽게 하셨지만, 40년 후에는 그 후손들을 처음 세대와 거의 같은 수로 남기셨다. 광야 40년간은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과 긍휼하심의 시간이었다.

[19] 가나안 땅 일곱 족속을 멸하사 그 땅을 기업으로 주시고(약 사백 오십 년간).

하나님께서 가나안 일곱 족속을 멸망시키신 까닭은 성경이 증거하는 대로 그들의 심한 우상숭배와 음란 때문이었다. 가나안 족속들은 우상들을 섬겼고 매우 음란하였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그들을 남김 없이 다 멸하라고 명하셨던 것이다. 그것은 일종의 심판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심판의 도구로 사용하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의 죄를 미워하시고 그 죄에 대해서 공의로 엄격하게 심판하신다. 본절 끝의 450년간이라는 말은 전통사본에는 20절의 그 후에라는 말 다음에 나온다.

[20] 그 후에 선지자 사무엘 때까지 사사를 주셨더니.

그 후에, 하나님께서는 약 450년간 선지자 사무엘 때까지 사사를 주셨다. 450년은 사사 시대에 이방 나라들로 인해 당한 고통의 기간과 사사들을 통한 구원과 평안의 기간을 마지막 사사 엘리의 40년 사역 기간까지 합산한 것 같다. 그러나 사사 시대의 실제 기간은 약 340년 정도밖에 안 된다. 사사 시대의 역사는 반복된 실패의 역사이었다. 그들이 범죄할 때마다 하나님께서는 이방 나라들을 사용해 이스라엘을 징벌하셨다. 그의 징벌은 짧을 때는 7, 8, 길 때는 20년 혹은 40년이나 되었다. 그러나 고통 중에 그들이 회개하였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돌아보셨고 사사를 일으키셔서 구원하셨고 그들이 누린 평안의 기간은 고난 당한 기간보다 몇 갑절이나 길었다. 하나님의 본심은 고통을 주는 것이 아니고 평안을 주시는 것이 확실하였다. 고통은 많은 경우 단지 사람들의 많은 죄 때문에 온다.

[21-22] 그 후에 저희가 왕을 구하거늘 하나님이 베냐민 지파 사람 기스의 아들 사울을 사십 년간 주셨다가 폐하시고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증거하여 가라사대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게 하리라 하시더니.

하나님께서 사울을 버리신 것은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다윗에게는 참된 믿음과 순종심이 있었다.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라는 증거를 받았다. 물론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외모를 보지 않으시고 그의 중심을 보신다. 하나님께서는 그 마음이 하나님과 합한 자를 찾으시고 그를 사용하셔서 그의 뜻을 다 이루신다. 우리는 그것을 사모하고 우리의 마음을 점검하고 지켜야 한다.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하나님을 향한 참된 두려움과 믿음, 하나님을 아는 지식,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를 위하여 살고자 하는 중심이다.

[23] 하나님이 약속하신 대로 이 사람의 씨에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구주를 세우셨으니[구원을 주셨다](전통본문) 곧 예수라.

하나님의 메시아 약속은 사무엘하 7:12-16에 기록된 대로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주신 말씀에 들어 있는 약속이었다.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내가 네 몸에서 날 자식을 네 뒤에 세워 그 나라를 견고케 하리라. . . . 나는 그 나라 위()를 영원히 견고케 하리라,” “네 집과 네 나라가 내 앞에서[네 앞에서](원문, KJV) 영원히 보전되고 네 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를 통해서도 말씀하셨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때가 이르리니 내가 다윗에게 한 의로운 가지를 일으킬 것이라. 그가 왕이 되어 지혜롭게 행사하며 세상에서 공평과 정의를 행할 것이며”(23:5), “그 날 그때에 내가 다윗에게 한 의로운 가지가 나게 하리니 그가 이 땅에 공평과 정의를 실행할 것이라”(33:15). 그 약속된 이가 오셨다. 그가 곧 예수이시다. 그러므로 신약성경은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世系)[족보]는 말로 시작된다(1:1).

사도 바울이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한 전도 설교의 내용 중 13절로 23절까지의 본문에 증거된 이스라엘의 역사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사람은 죄를 지으면 망한다. 하나님께서는 심히 우상숭배적이고 음란했던 가나안 일곱 족속을 다 멸하게 하셨고 이스라엘의 초대 왕인 사울도 범죄할 때에 폐하셨다. 우리도 죄 지으면 망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하나님의 두려운 공의를 깨닫고 모든 죄악된 일을 버리자.

둘째로, 우리는 오직 믿음과 순종으로 살아야 한다. 하나님의 원하시는 바가 바로 그것이다. 다윗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가 된 것은 바로 그의 믿음과 순종 때문이다. 비록 다윗에게도 연약성과 실수가 있었지만, 그는 참으로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의지했고 그의 뜻에 절대 순종하려 하였다. 우리에게 참으로 요구되는 것은 믿음과 순종이다.

셋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대로 다윗의 자손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확신하며 오직 그를 의지하고 사랑하며 따르자. 세상 만민 중에서 우리를 죄와 사망과 지옥 형벌에서 구원하실 자는 구주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다. 우리는 예수님만 믿고 사랑하며 순종하자.

24-31, 죽으셨으나 다시 사심

[24-25] 그 오시는 앞에 요한이 먼저 회개의 세례를 이스라엘 모든 백성에게 전파하니라. 요한이 그 달려 갈 길을 마칠 때에 말하되 너희가 나를 누구로 생각하느냐?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내 뒤에 오시는 이가 있으니 나는 그 발의 신 풀기도 감당치 못하리라 하였으니.

하나님의 약속하신 메시아께서 오시기 전에 요한이라는 인물이 나타나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길을 준비하였다. 그것은 사람들에게 회개를 외치고 회개한 자들에게 세례를 베푼 것이다. 회개는 믿음을 위한 준비 단계이다. 사람이 구주 예수를 믿으려면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고 회개해야 한다. 세례 요한은 자신이 그리스도가 아니며 그리스도 앞에서 종이 될 자격도 없다고 증거했다. 그는 자기 뒤에 오실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알고 있었다.

[26-27] 형제들 아브라함의 후예와 너희 중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아, 이 구원의 말씀을 우리에게[너희에게](전통본문) 보내셨거늘 [이는](원문, KJV, NASB) 예루살렘에 사는 자들과 저희 관원들이 예수와 및 안식일마다 외우는 바 선지자들의 말을 알지 못하므로 예수를 정죄하여 선지자들의 말을 응하게 하였도다[하였음이라].

원문의 이는이라는 말은 예루살렘에 사는 자들이 예수님을 정죄하였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이 구원의 말씀을 너희에게 먼저 보내셨다는 뜻이든지, 예루살렘에 사는 자들이 예수를 정죄했고 십자가에 죽게 한 후 무덤에 두었으나 하나님께서 다시 살리셨으므로 이제 이 구원의 말씀을 너희에게 보내셨다는 뜻일 것이다. 유대인들은 예수께서 전하신 말씀들과 행하신 기적들을 깨닫지 못했고 그들이 안식일마다 외우는 선지자들의 말씀들도 알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메시아를 십자가에 죽게 하였다.

[28-29] 죽일 죄를 하나도 찾지 못하였으나 빌라도에게 죽여 달라 하였으니 성경에 저를 가리켜 기록한 말씀을 다 응하게 한 것이라. 후에 나무에서 내려다가 무덤에 두었으나.

예수님의 죽음은 인간의 죄악의 극치이었다. 악인을 정죄하는 것은 옳은 일이지만, 의인을, 그것도 하나님의 아들을 정죄하는 것은 지극히 큰 죄악이다. 예수께서는 사람들에게, 그것도 자기 백성인 자들에게 버림을 당하셨고 정죄를 당하셨고 죽임을 당하셨다. 그는 인간으로서 감당키 어려운 고통스런 일을 경험하셨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은 성경의 예언을 이룬 것이었다. 이사야는 장차 오실 메시아의 죽음을 예언하였고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었음을 증거하였다. 이사야 53:3-6, “그는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 버린 바 되었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에게 얼굴을 가리우고 보지 않음을 받는 자 같아서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 . .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죄 때문에 죽임을 당하셨다.

[30] [그러나]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저를 살리신지라.

사람들은 다 죽고 죽은 후에는 다시 살지 못하지만, 예수께서는 그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사셨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다시 살리셨다. 그것은 그가 죽을죄가 없었다는 것을 증거하였다. 그는 의인으로서 우리의 죄를 담당하셨다. 또 그것은 그가 우리의 죄를 대속(代贖)하신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증거하였다. 또한 그는 장차 우리가 경험할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다. 우리는 그의 부활을 통해 장차 우리도 부활할 것을 믿을 수 있게 되었다.

[31] 갈릴리로부터 예루살렘에 함께 올라간 사람들에게 여러 날 보이셨으니 저희가 이제 백성 앞에 그의 증인이라.

부활하신 주께서는 갈릴리로부터 예루살렘에 함께 올라간 사람들 즉 열두 제자들과 여인들에게 여러 날 곧 40일간 보이셨다(1:3). 그들은 이제 백성 앞에 그의 증인들이다. 그들은 보지도 않은 것을 보았다고 증거하는 거짓 증인들이 아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증거한 내용을 순교의 피로 확증했던 진실한 증인들이었다. 그들의 증언들은 신약성경에 기록되었다. 역사적 예수에 대한 사실들은 그 진실한 증인들의 증언을 통해 지금까지 전달되어 내려온다. 2천년의 간격을 이어주는 줄은 바로 신약성경에 기록된 그 증인들의 진실한 증언들이며 거기에 더하여 성령께서도 함께 증거하신다.

24절로 31절까지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사람은 구원을 받으려면 회개해야 한다. 회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예비적 단계이다. 예수께서는 의인을 구원하러 오신 것이 아니고 죄인을 구원하러 오셨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자신이 죄인인 것을 깨닫고 회개할 때에 구주 예수 그리스도께로 나아와 그를 믿고 구원을 얻을 수 있다.

둘째로, 사람들은 심히 죄악되어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죄악됨과 죄성이 얼마나 심각한지 깨달아야 한다. 사람은 하나님의 긍휼이 아니고서는 구원받을 수 없는 심히 부패된 죄인이다. 사람은 자신의 이 심각한 죄성과 죄인의 신분을 알아야 구주 예수께서 주시는 구원을 받을 수 있다.

셋째로,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심으로 그를 증거하셨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부활을 통해 증거된 구주이시다. 누구든지 성경을 통해 이 사실을 확인하고 그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을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사람들이 그를 믿을 만한 증거이다. 성경에 증거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사람이 믿을 만한 구주이시다.

32-43, 죄사함과 의롭다 하심

[32-33] 우리도 조상들에게 주신 약속을 너희에게 전파하노니 곧 하나님이 예수를 일으키사 우리 자녀들에게[그들의 자녀들인 우리에게](전통본문)(KJV, NIV) 이 약속을 이루게 하셨다 함이라. 시편 둘째 편에 기록한 바와 같이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너를 낳았다 하셨고.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신 것은 이스라엘 조상들에게 약속하신 바이었다. 사도 바울은 여기에서 시편 2:7을 인용한다. 그것은 메시아 약속의 구절이다. 우리의 구약성경 본문은, “내가 영을 전하노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도다라고 되어 있다. 하나님께서는 구원받을 영혼들을 위해 하나님의 아들이신 구주를 이 세상에 보내주신 것이다.

[34] 또 하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저를 일으키사 다시 썩음을 당하지 않게 하실 것을 가르쳐 가라사대 내가 다윗의 거룩하고 미쁜 은사[확실한 자비](KJV)를 너희에게 주리라 하셨으니.

하나님께서는 장차 하나님의 아들을 구주로 보내실 뿐 아니라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시키실 것도 암시하셨다. 사도 바울은 이 점에 대하여 구약의 두 구절을 인용한다. 하나는 이사야 55:3이다. 한글개역성경에 보면, “내가 너희에게 영원한 언약을 세우리니 곧 다윗에게 허락한 확실한 은혜니라고 되어 있다. 바울은 이 구절의 끝부분을 헬라어 70인역에서 그대로 인용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 주신 확실한 자비를 그 자손들에게 주실 것이며 그 결과,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약속대로 신적 구주를 받을 것이다.

[35-37] 그러므로 또 다른 편에 일렀으되 주의 거룩한 자로 썩음을 당하지 않게 하시리라 하셨느니라. 다윗은 당시에 하나님의 뜻을 좇아 섬기다가 잠들어 그 조상들과 함께 묻혀 썩음을 당하였으되 하나님의 살리신 이는 썩음을 당하지 아니하였나니.

바울이 인용한 두 번째의 성경구절은 시편 16:10이다. 한글성경은, “이는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지 않게 하실 것임이니이다라고 되어 있다. 이 구절의 후반부는 분명히 메시아의 부활을 암시하고 있다. 다윗은 죽어 무덤에 묻혔고 그 몸은 썩었으나,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죽은 지 삼일 만에 부활하셨고 그 몸이 썩음을 당치 않으셨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메시아 약속은 성경에 예언된 대로 이루어졌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 주신 확실한 자비를 따라 자기 독생자를 구주로 세상에 사람으로 보내셨고 그가 성경대로 죽으셨고 성경대로 부활하셨던 것이다.

[38-39] 그러므로 형제들아, 너희가 알 것은 이 사람을 힘입어 죄사함을 너희에게 전하는 이것이며 또 모세의 율법으로 너희가 의롭다 하심을 얻지 못하던 모든 일에도 이 사람을 힘입어 믿는 자마다 의롭다 하심을 얻는 이것이라.

사도 바울은 이제 복음의 요점을 전한다. 기독교 복음의 요점은 무엇인가? 기독교 복음의 요점은 죄인인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죄사함과 의롭다 하심을 받는 것이다. 사람의 근본 문제는 죄 문제이며 하나님의 구원의 핵심은 바로 죄 문제의 해결에 있는 것이다. 죄가 죽음과 불행의 원인이었므로 죄사함과 의롭다 하심이 영생과 영원한 행복의 길이 된다. 사람이 자신의 죄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없고 또 율법을 다 지킴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지 못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하나님의 아들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죄사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는 길을 열어 주신 것이다. 그것이 기독교 복음의 요점이다. 이 복음은 로마서와 갈라디아서에서 밝히 증거되었다. 그 대표적 구절들은 다음과 같다.

로마서 3:20-24,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救贖)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로마서 3:28,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

갈라디아서 2:16,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아는 고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에서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40-41] 그런즉 너희는 선지자들로 말씀하신 것이 너희에게 미칠까 삼가라. 일렀으되 보라, 멸시하는 사람들아, 너희는 놀라고 망하라. 내가 너희 때를 당하여 한 일을 행할 것이니 사람이 너희에게 이를지라도 도무지 믿지 못할 일이라 하였느니라 하니라.

사도 바울은 그들 속에 있을지도 모를 불신앙에 대해서도 경고하였다. 복음은 값싼 구원이 아니다. 그것은 그것을 멸시하는 자에게는 멸망의 소식이 될 것이다. 예수께서도 이 구원의 소식이 어떤 이에게는 멸망이 됨을 증거하셨다(3:17-21).

[42-43] 저희가 [유대인의 회당에서](전통본문) 나갈새 사람들이[이방인들이](전통본문) 청하되 다음 안식일에도 이 말씀을 하라 하더라. 폐회한 후에 유대인과 유대교에 입교한 경건한 사람들이 많이 바울과 바나바를 좇으니 두 사도가[그들이](원문) 더불어 말하고 항상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있으라 권하니라.

사도 바울의 전도 설교는 상당한 호응을 얻었다. 사람들은 다음 안식일에도 말씀을 더 듣기를 원하였다. 바울은 그를 따르는 자들에게 항상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있으라고 권면하였다. ‘항상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있으라는 권면은 구원받은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권면이다. 그것은 항상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代贖)의 의() 안에서, 즉 그를 믿는 믿음 안에서 살라는 권면이다. 우리의 의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없으시면 우리는 아무것도 없는 것이며 예수님을 믿는 믿음이 없으면 우리는 아무것도 아니다.

본문의 진리와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하나님께서는 구약성경에 메시아에 대해 예언하셨고 그 예언을 이루셨다. 하나님께서는 성경을 이루셨다. 성경은 하나님의 율법과 그의 증거와 그의 약속과 교훈의 책이다. 기독교는 책의 종교이다. 신앙생활은 성경책을 읽고 그 책을 배우고 그 책의 교훈을 받아 온전한 성화(聖化)를 이루는 것이다.

둘째로, 하나님의 복음의 요점은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죄사함을 얻고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이다. 이것이 복음이며 이것만이 복음이다. 우리는 여기에서 무엇을 빼거나 여기에 무엇을 더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믿는 자들에게 주신 죄사함과 의는 완전한 죄사함이요 완전한 의이다. 거기에 무엇을 더할 것이 아무것도 없다. 예수님은 우리의 거룩과 의가 되셨다.

셋째로, 우리는 오직 하나님의 은혜 안에 거해야 한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과 그의 의() 안에 항상 거해야 한다. 우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 믿어야 하고 우리의 유일하고 충족한 의()는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 사역밖에 없음을 깨닫고 그 의를 굳게 붙들어야 하는 것이다. 물론 우리는 죄를 멀리하고 계명에 순종해야 한다.

44-52, 유대인들과 이방인들

[44-45] 그 다음 안식일에는 온 성이 거의 다 하나님 말씀을 듣고자 하여 모이니 유대인들이 그 무리를 보고 시기가 가득하여 바울의 말한 것을 변박하고 비방하거늘.

바울과 바나바는 유대인들과 유대교에 입교한 경건한 이방인들이 회당에 모이는 안식일을 전도의 기회로 삼았다. 두 번째 안식일에는 거의 온 성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하여 모였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그 성의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준비시키셔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관심과 갈급함을 갖게 하셨다. 종교적 부흥은 하나님께서 그 일을 위해 준비하신 때 일어날 것이다. 역사를 보면, 부흥은 전쟁과 경제 공황 같은 대재난이 있은 후 일어나곤 하였다.

그러나 바울의 설교에 대해 유대인들은 나쁜 반응을 보였다. 그들은 많은 무리가 모인 것을 보고 시기가 가득했다. 시기심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게 했던 자들의 죄악이었다. 사람이 시기심을 가지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보다 자신들의 명예와 이익을 우선적으로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는 자에게는 시기심이 있을 곳이 없다. 유대인들은 시기가 가득하여 바울의 말한 것을 변박하고 비방하였다. 그것은 큰 죄이다. 바울이 전한 말은 바울의 말이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이었다. 그러므로 바울의 말한 것을 변박하고 비방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변박하고 비방한 큰 죄악이었다.

[46-47] 바울과 바나바가 담대히 말하여 가로되 하나님의 말씀을 마땅히 먼저 너희에게 전할 것이로되 너희가 버리고 영생 얻음에 합당치 않은 자로 자처하기로 우리가 이방인에게로 향하노라. 주께서 이같이 우리를 명하시되 내가 너를 이방의 빛을 삼아 너로 땅끝까지 구원하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하니.

유대인들의 나쁜 반응에 대하여, 전도자 바울과 바나바는 담대한 태도를 가졌다. 그들은 낙심하지 않았다. 그들은 담대히 말하기를, 하나님의 말씀을 그들에게 먼저 전하는 것이 마땅하지만, 그들이 그 말씀을 버리고 영생 얻음에 합당치 않은 자로 자처하기 때문에 이방인들에게로 향한다고 했다. 복음은 모든 사람을 믿게 하지는 않는다.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믿지 않는 자들 때문에 너무 상심할 것은 없다. 또 믿지 않는 자들과 너무 시간을 소비하며 변론할 것도 없다. 우리가 복음을 충분히 증거했다고 생각하면 그것으로 되었다. 이제 믿지 않고 순종치 않는 자들은 버려두고 새로운 전도 대상을 찾아 나서야 할 것이다. 하나님께서 구원하시는 자들은 믿고 순종할 것이다. 우리는 그들을 찾아 나서야 할 것이다.

바울은 또 주께서 그들에게 이방의 빛을 삼아 땅끝까지 구원하게 하리라고 명하셨다고 말했다.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주께서 명하신 바이었다. 이사야는 메시아에 대해 예언하기를, “네가 나의 종이 되어 야곱의 지파들을 일으키며 이스라엘 중에 보전된 자를 돌아오게 할 것은 오히려 경한 일이라. 내가 또 너로 이방의 빛을 삼아 나의 구원을 베풀어서 땅끝까지 이르게 하리라고 하였다(49:6).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제자들에게 땅끝까지 이르러 그의 증인이 되리라고 말씀하셨다(1:8). 복음 전도자들은 이방 세계에 비치는 빛이다. 그 빛을 통해 온 세상 끝의 이방인들도 하나님께로 돌아올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이 하나님의 뜻이 거의 성취된 것을 본다.

[48-49] 이방인들이 듣고 기뻐하여 하나님의 말씀[주의 말씀]을 찬송하며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작정된 자들](테타그메노이)(완료시제)는 다 믿더라. 주의 말씀이 그 지방에 두루 퍼지니라.

이방인들이 믿었다.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는 말은 영생의 구원이 하나님의 작정(예정)에 근거한다는 것과, 그 작정은 확정적이고 불변적이라는 것과, 하나님의 작정의 증거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라는 것을 잘 증거한다. 믿음은 예정의 결과요 증거이다. 예정된 자는 자동적으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고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 그러므로 여기에 전도의 필요성이 있다(10:14). 이미 믿은 그들에게 뿐만 아니라, 또한 이방인들을 위한 그 복음의 소식이 그 지방에 널리 전파되었다. 교회의 사명은 오직 복음을 널리 전파하는 것이다. 주의 말씀이 그 지방에 두루 퍼졌다.

[50-52] 이에 유대인들이 경건한 귀부인들과 그 성내 유력자들을 선동하여 바울과 바나바를 핍박케 하여 그 지경에서 쫓아내니 두 사람이 저희를 향하여 발에 티끌을 떨어버리고 이고니온으로 가거늘 제자들은 기쁨과 성령이 [계속] 충만하니라(에플레룬토)(미완료 과거시제).

악한 자들은 혼자서는 용감하게 행치 못하는 것 같다. 그들은 당을 지어서 악을 행한다. 그들은 하나님이 주신 복을 스스로 차버렸다. 그들은 자신들의 영혼을 해롭게 하는 참으로 어리석은 자들이었다. 복음을 전할 때 어려움이 있었으나 전도자들은 낙심하거나 위축되지 않았다. 그들은 거절하는 자들을 향해 발의 티끌을 떨어버림으로 교제의 선을 분명히 했다. 그들은 그곳에 머무를 이유가 없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게 된 제자들은 기쁨과 성령이 계속 충만했다.

본문은 몇 가지 교훈을 준다. 첫째로, 우리는 무지한 유대인들처럼 되지 말자. 무지한 그들은 시기가 충만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변박하고 비방하며 사람들을 선동하여 전도자들을 배척하고 핍박하였다.

둘째로, 영생을 위해 작정된 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할 것이다. 우리가 믿고 순종한다면, 우리는 영생을 위해 작정된 자들일 것이다. 또 그렇다면, 처음 제자들 속에 기쁨과 성령이 계속 충만하였듯이, 오늘날 우리들 속에도 기쁨과 성령이 계속 충만할 것이다.

셋째로, 복음의 일꾼들은 믿지 않는 자들 때문에 낙심치 말자. 우리는 복음을 거절하고 믿지 않는 자들과 너무 오랫동안 변론할 것은 없다. 우리는 그들을 버려두고 택한 자들을 찾아 나서야 할 것이다.

[열왕기하 11장 하나님 말씀] 요아스가 왕이 됨(왕하 1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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