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데스다 신약성경강해

[고린도전서 7장 성경 좋은 말씀] 성도의 결혼 생활(고전 7:1-40)

성령의 능력 2022. 6. 8.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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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 7장에서는 결혼생활과 부부 생활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음행을 피하기 위해서 남자마다 자기 아내를 두고 여자마다 남편을 두라고 말씀합니다. 남편은 아내에게 의무를 다하고 아내도 남편에게 의무를 다 해야 합니다. 부부 간에도 책임이 있기 때문에 서로 의무를 다해야 함을 말씀합니다. 성경에서는 이혼을 하지 말아야 함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세상에서 이혼이 흔하기 때문에 별로 이혼에 대해서 크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성경에서는 결혼에 대해서 신중해야 함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혼하는 문제도 생각하여 신중하게 결정해야 합니다. 우리가 주님 안에서 행복한 결혼생활을 해야 합니다.

 

성도의 결혼 생활(고전 7:1-40)

 

1-9, 결혼의 원리들

[1] 너희의 쓴 말에 대하여는 남자가 여자를 가까이 아니함이 좋으나.

‘가까이 하다’는 원어(합토마이)만지다, 붙잡다, 육체적 관계를 가지다, 결혼하다는 뜻을 가진다. 본문은 남자가 결혼하지 않는 것이 좋다는 말처럼 보인다. 그러나 결혼은 사람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좋은 제도이다. 창세기 2:18,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사람의 독처하는[혼자 사는] 것이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잠언 18:22, “아내를 얻는 자는 복을 얻고 여호와께 은총을 받는 자니라.” 결혼은 죄가 아니며(고전 7:28) 결혼을 금하는 것이 악령의 사상이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전서 4:1-3에서, “성령이 밝히 말씀하시기를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케 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좇으리라 하셨으니 자기 양심이 화인 맞아서 외식함으로 거짓말하는 자들이라”고 말하며 혼인을 금하고 식물을 폐하라 할 것이라고 하였다.

사도 바울이 사람이 결혼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말한 까닭은 임박한 환난 때문이었다. 26, “내 생각에는 이것이 좋으니 곧 임박한 환난을 인하여 사람이 그냥 지내는 것이 좋으니라.” 극심한 환난이 닥치면 가족 관계는 즐거움과 행복이 아니라 근심과 짐이 될 수 있다. 또 성도는 결혼하지 않을 때 하나님의 일에 더욱 전념할 수 있다. 32-33, “장가가지 않은 자는 주의 일을 염려하여 어찌하여야 주를 기쁘시게 할꼬 하되 장가간 자는 세상일을 염려하여 어찌하여야 아내를 기쁘게 할꼬 하여.” 오늘날도 주를 사랑하고 하나님의 일에 전념하기를 원하는 자는 독신(獨身)으로 그렇게 할 수 있다.

[2] 음행의 연고로 남자마다 자기 아내를 두고 여자마다 자기 남편을 두라.

독신의 장점이 확실히 있지만, 현실적으로 결혼의 불가피한 목적도 있다. 결혼의 목적은 세 가지다. 첫째는 서로 교제하며 돕기 위함이다. 사람은 처음부터 교제하며 사는 존재로 창조되었다. 여자는 남자를 돕는 자로 창조되었다. 사랑의 교제는 결혼을 제정하신 하나님의 본래의 목적이었다. 결혼의 두 번째 목적은 자녀 출산을 위해서이다. 창세기 1:27-28,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결혼의 세 번째 목적은 음행의 방지를 위해서이다. “음행의 연고로.” 세상은 악하고 음란한세상이며 성도는 세상에서 음행의 시험을 받는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정상적인 결혼 생활을 통해 이런 시험을 물리칠 수 있게 하셨다. 결혼은 음행에 대한 최선의 방지책이다. 잠언 5:18-19, “네가 젊어서 취한 아내를 즐거워하라. 그는 사랑스러운 암사슴 같고 아름다운 암노루 같으니 너는 그 품을 항상 족하게 여기며 그 사랑을 항상 연모하라”고 말한다.

[3-4] 남편은 그 아내에게 대한 의무를 다하고 아내도 그 남편에게 그렇게 할지라. 아내가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오직 그 남편이 하며 남편도 이와 같이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오직 그 아내가 하나니.

결혼한 남녀는 남편과 아내로서의 자기의 의무들을 다해야 한다. 남편은 아내를 사랑하고 다정한 표정과 따뜻한 말로 그 사랑을 표현해야 하며 경제적 책임도 다해야 하며, 아내는 남편과 자녀를 사랑하고 자녀 양육, 식사 준비, 빨래, 집안 청소 등을 감당함으로 남편이 바깥일을 자유로이 할 수 있게 해야 한다. 남편과 아내의 의무들은 부부 생활의 의무도 포함한다. 아내도 남편도 이제는 자기 몸을 자기가 주장해서는 안 된다. 결혼한 자는 이제 한 몸이므로, 자기 몸을 상대방이 주장하도록 해야 할 의무가 있다. 부부의 감정은 서로 다를 수 있기 때문에, 상대방의 원하는 바를 무시하지 말고 존중하고 사랑하고 품어줄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못할 때, 부부 관계에 불만과 문제가 생기고 서로 간의 사랑이 식어질 수 있다.

[5] 서로 분방하지 말라. 다만 [금식과](전통본문) 기도할 틈을 얻기 위하여 합의상 얼마 동안은 하되 다시 합하라. 이는 너희의 절제 못함을 인하여 사단으로 너희를 시험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서로 분방하지 말라는 원어는 ‘서로를[서로의 권리]를 빼앗지 말라는 말로서 상대방이 원할 때 거절하지 말라는 뜻이다. 이것은 부부의 아름다운 사랑의 관계를 위해 필요하다. 그러나 금식과 기도의 시간을 얻기 위해서는 부부가 서로 떨어져 있을 수 있다. 하나님과의 관계는 부부의 관계보다 더 중요하다. 그러나 기도하기 위해 분방할 경우도 부부가 서로 합의해서 할 것이며 기간도 너무 길지 않게 얼마 동안해야 할 것이다.

부부가 분방치 말아야 할 이유는 절제 못함을 인해 사탄으로 시험하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다. 절제심이 많으면 좀더 긴 기간도 가능하겠지만, 그렇지 못하다면 마귀의 시험에 떨어질 수 있다. 마귀는 항상 인간의 약점을 공격한다. 사람마다 약점이 다를 수 있겠지만, 육신적인 감정과 욕망은 인간의 공통적 약점이다. 그러므로 성도는 이 일에 있어서 지혜롭게 처신해야 한다. 그러므로 아내가 부부생활을 멀리하거나 집안일과 자녀 보살피는 일을 소홀히 하고 집밖으로 나다니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 신앙생활과 부부생활은 별개의 것이 아니다. 믿음 좋은 사람은 부부관계도 좋아야 한다. 부부간에 혹시 다투는 일이 있더라도 각방을 쓰지 말고 속히 화합해야 한다.

[6-7] 그러나 내가 이 말을 함은 권도[허용]요 명령은 아니라. 나는 모든 사람이 나와 같기를 원하노라. 그러나 각각 하나님께 받은 자기의 은사가 있으니 하나는 이러하고 하나는 저러하니라.

바울이 결혼의 필요성을 말하는 것은 명령이 아니고 허용하는 것뿐이다. ‘권도라는 원어는 허용이라는 뜻이다. 그는 이미 남자가 여자를 가까이 아니함이 좋다고 말했고 또 나는 모든 사람이 나와 같기를 원한다고 말한다(8). 이 말씀들에서 그는 분명히 독신(獨身)의 유익을 말하고 있다. 물론 결혼이 두렵다거나 귀찮아서가 아니고, 또 자유 분방하게 살기 위해서도 아니다. 독신이 유익한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일들에 전념하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독신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사가 있어야 가능하다(10:10-12).

[8-9] 내가 혼인하지 아니한 자들과 및 과부들에게 이르노니 나와 같이 그냥 지내는 것이 좋으니라. 만일 절제할 수 없거든 혼인하라. 정욕이 불같이 타는 것보다 혼인하는 것이 나으니라.

사도 바울은 결혼한 자들의 의무에 대해 이와 같이 교훈하지만, 그는 독신의 유익에 대해서도 말한다. 그는 결혼하지 않은 자들이나 과부들에게 나와 같이 그냥 지내는 것이 좋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는 즉시 만일 절제할 수 없거든 혼인하라”고 말한다. 사람에게는 정욕이 있고 그것을 절제할 수 없다면, 결혼하는 것이 낫기 때문이다. 사람이 정욕을 절제하지 못하면 범죄할 수 있다. 사람의 연약한 감정은 결혼을 통해 정당하게 해소되는 것이 좋다(딤전 5:14).

결혼의 한 목적은 음행을 방지하는 데 있다. 사람의 연약한 감정은 결혼을 통해 정당하게 해소된다. 그러므로 결혼한 자는 부부의 의무를 다 해야 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절제의 은사를 주신 자라면 독신으로 하나님의 일들에 전념하며 주께 영광을 돌릴 수 있다. 그러나 사람이 절제하지 못하여 정욕의 시험에 떨어지거나 범죄해서는 안 된다.

10-24, 결혼한 자에 대한 추가적 교훈

[10-11] 혼인한 자들에게 내가 명하노니 (명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주시라.) 여자는 남편에게서 갈리지 말고 (만일 갈릴지라도 그냥 지내든지 다시 그 남편과 화합하든지 하라.) 남편도 아내를 버리지 말라.

결혼한 자는 이혼하지 말아야 한다. ‘그냥 지내든지라는 원문은 결혼하지 않고 그냥 지내든지라는 의미이다. 정당한 이혼이 아닌 경우 여자가 부득이 남편을 떠나 별거하게 되면, 재혼하지 않고 그대로 지내든지 그 남편과 다시 합하라는 교훈이다. 그러나 정당한 이혼을 한 경우에는 재혼이 가능하다(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24:5). 남편도 아내를 버려서는 안 된다. 음행의 이유 외에 아내를 버릴 수 있는 정당한 이유는 없다. 성격상 결함이나 무서운 질병이나 또는 자녀를 출산치 못하는 것 등은 이유가 될 수 없다.

[12-13] 그 남은 사람들에게 내가 말하노니 (이는 주의 명령이 아니라.) 만일 어떤 형제에게 믿지 아니하는 아내가 있어 남편과 함께 살기를 좋아하거든 저를 버리지 말며 어떤 여자에게 믿지 아니하는 남편이 있어 아내와 함께 살기를 좋아하거든 그 남편을 버리지 말라.

그 남은 사람들은 부부 중 하나가 믿지 않는 자들을 가리킨다. ‘이는 주의 명령이 아니라는 말은 사도의 교훈이 주의 권위를 가지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다. 그는 40절에 나도 또한 하나님의 영을 받은 줄로 생각하노라”고 증거하였다. ‘주의 명령이 아니라는 말은 예수께서 지상 생애 동안 이런 경우에 대해 직접 말씀하신 적이 없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제 사도를 통하여 이 경우에 대한 하나님의 뜻이 증거된다. 부부 중에 한 쪽만 믿는 경우, 믿지 않는 쪽이 함께 살기를 좋아하면 믿는 이는 그를 버리지 말아야 한다. 이것은 성도가 믿지 않는 자와 결혼할 수 있다는 뜻이 아니고 결혼한 남녀 중 한 쪽이 먼저 믿게 되었을 경우를 말한다. 성도가 믿는 자와만 결혼해야 한다는 것은 성경의 기본적 원리이다(고전 7:39; 7:1-4).

[14] 믿지 아니하는 남편이 아내로 인하여 거룩하게 되고 믿지 아니하는 아내가 남편으로 인하여 거룩하게 되나니 그렇지 아니하면 너희 자녀도 깨끗지 못하니라. 그러나 이제 거룩하니라.

거룩하게 된다는 원어(헤기아스타이)거룩하게 되었다는 뜻이다. 이 말은 거룩하게 구별되었다는 뜻이다. 물론 본인이 예수님을 믿어야 구원을 받지만, 그가 아직 믿지 않을지라도, 그의 가정은 이미 세상 사람들의 가정과 구별되었다. 그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는 이미 나타났다. 또 믿는 가정에 태어난 자녀들도 거룩하다. 부모 중 한 쪽만 믿어도 그러하다. 이것은 언약적인 의미이다. 구약시대에 이스라엘 백성은 난 지 팔일 만에 할례를 받음으로 하나님의 구별된 백성임이 증거되었다. 이와 같이, 신약시대의 그리스도인의 자녀들도 하나님의 거룩한 자녀로 출생한다. 여기에 유아세례의 근거가 있다. 신자의 자녀들이 세례를 통하여 내면적으로 거룩하게 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들은 언약적인 의미에서 거룩한 자녀로 출생하였기 때문에 세례를 받을 수 있다고 본다.

[15-17] 혹 믿지 아니하는 자가 갈리거든 갈리게 하라. 형제나 자매나 이런 일에 구속받을 것이 없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은 화평 중에서 너희를 부르셨느니라. 아내된 자여, 네가 남편을 구원할는지 어찌 알 수 있으며 남편된 자여, 네가 네 아내를 구원할는지 어찌 알 수 있으리요. 오직 주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주신 대로 하나님이 각 사람을 부르신 그대로 행하라. 내가 모든 교회에서 이와 같이 명하노라.

부부 중 한 쪽이 믿지 않는 경우, 믿지 않는 이가 헤어지기를 원하면 헤어질 수 있다. 하나님께 대한 믿음은 부부 관계보다 우선적이기 때문이다. 믿음은 영생과 천국의 길이므로 성도에게 절대적 요소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이 세상의 삶에 속한 부부관계보다 앞서야 한다. 그러나 성도가 진리 문제, 신앙 문제 때문에 싸우고 분리해야 할 때가 있으나 가능한 한 화평을 지켜야 한다. 그러므로 믿지 않는 아내나 남편이 헤어지기를 원할 때 먼저 그것을 피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별거는 부득이한 일이며 이혼은 최악의 조치일 뿐이다.

믿지 않는 자가 정말 헤어지기를 원할 때, 믿는 자는 거기에 구애받을 것이 없다. 믿는 아내나 남편이 믿지 않는 쪽을 구원할 수 있다는 보장은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어느 날 내가 상대방을 구원할 수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 때문에 그때까지 참고 지내겠다는 것은 결코 최선의 생각이나 바른 생각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형편과 처지대로 그대로 행해야 한다.

[18-19] 할례자로 부르심을 받은 자가 있느냐? 무할례자가 되지 말며 무할례자로 부르심을 받은 자가 있느냐? 할례를 받지 말라. 할례받는 것도 아무것도 아니요 할례받지 아니하는 것도 아무것도 아니로되 오직 하나님의 계명을 지킬 따름이니라.

구약의 의식법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폐지되었으므로 성도에게 할례를 받고 안 받고는 중요하지 않다. 심지어 오늘날 세례 의식도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세례는 주 예수께 대한 참된 믿음과 순종의 마음으로 참여할 때에만 효력이 있다. 참 종교는 형식에 있지 않고 믿음과 순종에 있다. 갈라디아서 5:6,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가 효력이 없되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뿐이니라.” 갈라디아서 6:15, “할례나 무할례가 아무것도 아니로되 오직 새로 지으심을 받은 자뿐이니라.”

[20-24] 각 사람이 부르심을 받은 그 부르심 그대로 지내라. 네가 종으로 있을 때에 부르심을 받았느냐? 염려하지 말라. 그러나 자유할 수 있거든 차라리 사용하라. 주 안에서 부르심을 받은 자는 종이라도 주께 속한 자유자요 또 이와 같이 자유자로 있을 때에 부르심을 받은 자는 그리스도의 종이니라. 너희는 값으로 사신 것이니 사람들의 종이 되지 말라. 형제들아, 각각 부르심을 받은 그대로 하나님과 함께 거하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는 성도가 가진 세상적 신분이나 어떤 육신적 조건이 중요하지 않다. 옛 시대에 그가 종의 신분이냐 자유인의 신분이냐 하는 것이 세상에서는 매우 중요하겠지만, 주 안에서는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모든 그리스도인은 주 안에서 다 동등한 특권을 누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은 종이라도 주께 속한 자유자요 자유자라도 그리스도의 종이다. 갈라디아서 3:28,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주자나 남자나 여자 없이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골로새서 3:11, “거기는 헬라인과 유대인이나 할례당과 무할례당이나 야인[야만인]이나 스구디아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 분별이 있을 수 없나니.” 베드로전서 2:9,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로 사신 바 되었고 이제 그의 종이 되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람들의 종이 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오직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뜻에만 순종해야 한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결혼한 부부는 서로 나뉘지 말아야 한다. 혹 부득이하여 나뉘더라도 재혼하지 않고 그냥 지내든지 다시 화해하여 재결합하든지 해야 한다.

둘째로, 부부 중 한 쪽이 믿지 않을 경우 믿지 않는 자가 함께 살기를 원한다면 헤어지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믿지 않는 자가 헤어지기를 원한다면 성도는 이에 구속받을 것이 없이 헤어질 수 있다.

셋째로, 성도는 하나님께서 부르신 형편과 처지대로 살고 세상적인 신분과 육신적인 조건을 중요하게 여기지 말아야 한다. 모든 성도는 주 예수 안에서 다 동등한 영적 특권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넷째로,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핏값으로 사신 바 되었으므로 사람의 종이 되지 말고, 오직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 되어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명령과 뜻에 온전히 순종해야 한다.

25-40, 처녀에 대한 교훈

[25-26] 처녀에 대하여는 내가 주께 받은 계명이 없으되 주의 자비하심을 받아서 충성된 자가 되어 의견을 고하노니 내 생각에는 이것이 좋으니 곧 임박한 환난을 인하여 사람이 그냥 지내는 것이 좋으니라.

의견이라는 원어(그노메)판단이라는 뜻이다. 사도들의 의견과 판단은 신적 권위를 가진다(살후 2:15). 그는 처녀에 대해 주께 직접 받은 말씀은 없으나, 하나님의 은혜로 충성된 마음으로 권하기를, 당면한 환난 때문에 그냥 지내는 것이 좋다고 했다. 환난 중에는 가족들의 의식주 문제로 인한 많은 고통이 따르기 때문이다.

[27-28] 네가 아내에게 매였느냐? 놓이기를 구하지 말며 아내에게서 놓였느냐? 아내를 구하지 말라. 그러나 장가가도 죄 짓는 것이 아니요 처녀가 시집가도 죄 짓는 것이 아니로되 이런 이들은 육신에 고난이 있으리니 나는 너희를 아끼노라.

결혼한 자는 결혼의 의무를 짐스럽게 생각하여 거기로부터 해방되기를 구하지 말아야 한다. 아내는 아내로서 또 남편은 남편으로서 자기 의무를 다해야 한다. 그러나 사람이 아내와 사별(死別)했거나 정당하게 이혼했을 경우 아내를 구할 것이 없는 것은 당면한 환난 때문이다. 결혼한 자들에게는 환난 중에 육신적 고통이 많을 것이다.

[29-31] 형제들아, 내가 이 말을 하노니 때가 단축하여진 고로 이 후부터 아내 있는 자들은 없는 자같이 하며 우는 자들은 울지 않는 자같이 하며 기쁜 자들은 기쁘지 않은 자같이 하며 매매하는 자들은 없는 자같이 하며 세상 물건을 쓰는 자들은 다 쓰지 못하는 자같이 하라. 이 세상의 형적은 지나감이니라.

초대교회는 환난과 핍박을 당한 교회이었다. 한편으로는 유대인들에게서, 다른 한편으로는 로마 정부로부터의 핍박이 있었다. 때가 짧아졌다는 의식은 주의 재림과 마지막 심판을 믿는 모든 성도에게 언제나 필요하다. 이런 시대 의식에서 볼 때, 아내를 소유한 것이나 소유하지 않은 것의 차이는 별로 없다. 또 우는 것과 울지 않는 것, 기뻐하는 것과 기뻐하지 않는 것, 물건을 사서 소유하는 것과 그렇지 못한 것, 세상 물건을 쓰는 것과 다 쓰지 못하는 것의 차이도 큰 것이 아니다. 이 세상의 것들은 지나가기 때문이다(벧전 1:24-25; 요일 2:17). 성도는 세상에서 맡겨진 자기의 의무에 충실해야 하지만 세상의 것들을 의지하거나 자랑해서는 안 된다. 구원받은 성도는 이 세상이 헛된 줄 알고 세상 위주로 살지 않고 오직 하나님과 내세에 소망을 두고 하나님을 기뻐하며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 읽기를 좋아하고 하나님의 뜻 행하기를 힘써야 한다.

[32-35] 너희가 염려 없기를 원하노라. 장가가지 않은 자는 주의 일을 염려하여 어찌하여야 주를 기쁘시게 할꼬 하되 장가간 자는 세상일을 염려하여 어찌하여야 아내를 기쁘게 할꼬 하여 마음이 나누이며 시집가지 않은 자와 처녀는 주의 일을 염려하여 몸과 영을 다 거룩하게 하려 하되 시집간 자는 세상 일을 염려하여 어찌하여야 남편을 기쁘게 할꼬 하느니라. 내가 이것을 말함은 너희의 유익을 위함이요 너희에게 올무를 놓으려 함이 아니니 오직 너희로 하여금 이치에 합하게 하여 분요함이 없이 주를 섬기게 하려 함이라.

결혼한 남녀 성도는 주의 일을 전적으로 생각하거나 염려하지 못하고 오히려 세상일을 염려하고 아내나 남편을 기쁘게 하기 위해 애쓰게 된다. 이것은 결혼한 자로서 정상적인 행위이며 불가피한 일이다. 그러나 결혼하지 않은 성도는 결혼한 성도보다 더 주의 일을 위하는 삶을 살 수 있다. ‘몸과 영을 다 거룩하게 하려고 한다는 말은 몸으로 범하는 죄뿐 아니라 영으로 범하는 죄도 짓지 않으려고 애쓴다는 뜻이다. 독신(獨身)은 유익이 있다. 그러나 바울이 독신의 장점을 가르침은 성도에게 시험의 올무를 놓으려 함이 아니요 오직 마음의 흐트러짐 없이 전심으로 주를 섬길 수 있게 하려 함이었다. 오늘날도 때가 짧다는 사실을 의식하는 진실한 성도마다 주의 일에 전심 전력하기 위하여 독신(獨身)의 은혜를 사모할 수 있다.

[36-38] 누가 자기의 처녀 딸에 대한 일이 이치에 합당치 못한 줄로 생각할 때에 혼기도 지나고 그같이 할 필요가 있거든 마음대로 하라. 이것은 죄 짓는 것이 아니니 혼인하게 하라. 그러나 그 마음을 굳게 하고 또 부득이한 일도 없고 자기 뜻대로 할 권리가 있어서 그 처녀 딸을 머물러 두기로 마음에 작정하여도 잘하는 것이니라. 그러므로 처녀 딸을 시집 보내는 자도 잘하거니와 시집 보내지 아니하는 자가 더 잘하는 것이니라.

부모가 처녀 딸을 결혼시키는 것은 정당한 일이요 죄짓는 것이 아니지만, 결혼시키지 않고 그로 하여금 주의 일에 전적으로 힘쓸 수 있게 하는 것도 잘하는 일이다. 후자가 더 잘하는 것이다. 이 경우 부모는 자녀에게 강요해서는 안 되며 자녀 스스로가 원해야 할 것이다. 무슨 일이든지 억지로 하는 것은 좋지 않다. 믿는 일은 더욱 그렇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자원함으로 그를 섬기기를 원하신다.

[39] 아내가 그 남편이 살 동안에 [법으로] 매여 있다가 남편이 죽으면 자유하여 자기 뜻대로 시집갈 것이나 주 안에서만 할 것이니라.

부부의 관계에서 남편이 살아 있는 동안에는 아내가 법적으로 남편에게 매여 있다. 그러나 그 남편이 죽으면 재혼(再婚)할 수 있다. ‘자유하여 자기 뜻대로 시집간다는 말은 자기가 원하는 자와 결혼할 자유가 있다는 뜻이다. 단지 덕을 위해, 교회법은 부부간 일방이 별세한 후에 재혼하려면 별세한 후 6개월이 지나야 결혼할 수 있다”고 규정하였다. ‘주 안에서만 할 것이라는 말씀은 성도의 결혼의 기본 원리를 증거한다. 성도는 반드시 믿는 자와 결혼해야 한다.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니며(살후 3:2)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이다(2:8). 그러므로 성도는 하나님께서 은혜로 믿게 하신 자와 결혼해야 한다(7:1-4; 13:23-27). 고린도후서 6:14-16,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하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하며 빛과 어두움이 어찌 사귀며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이 말씀은 결혼 관계에 잘 적용된다.

[40] 그러나 내 뜻에는 그냥 지내는 것이 더욱 복이 있으리로다. 나도 또한 하나님의 영을 받은 줄로 생각하노라.

이라는 원어는 의견, 판단이라는 뜻이다. ‘나도 또한 하나님의 영을 받은 줄로 생각하노라는 말은 그의 교훈이 한 개인의 의견이 아니고 하나님의 성령의 감동으로 깨달은 교훈임을 증거한다. 남편을 사별한 자들은 재혼치 않고 그냥 지내는 것이 더욱 복이 있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은 지나간다. 결혼 생활도 그러하다. 그러므로 이 세상 것들로 인하여 너무 기뻐하지도 말고 너무 슬퍼하지도 말아야 한다. 또 이 세상의 것들을 의지하지도 말고 자랑하지도 말아야 한다. 하나님께서 주셔서 즐기는 것은 그저 감사히 즐기되 거기에 너무 빠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둘째로, 독신(獨身)은 유익이 많다. 본문은 전체적으로 성도가 결혼하는 것보다 결혼하지 않고 주를 위하여 사는 것이 더 낫다고 가르친다. 하나님께서 은혜와 힘을 주시면, 확실히 독신(獨身)은 성도가 주를 위해 살 수 있는 더 좋은 길이다. 오늘날에도 남녀 성도들 가운데 이 말씀을 기억하여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교회와 복음 사역을 위해 이런 저런 방면에서 전적으로 헌신하고 전심으로 봉사하며 협력하는 자들이 많이 일어나야 할 것이다.

셋째로, 성도의 결혼은 주 안에서만 이루어져야 한다. 이것은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의 뜻이다. 우리는 이 사실을 어릴 때부터 자녀들에게 바르게 인식시키고, 이를 위해 기도하도록 가르쳐야 한다. 주 안에서의 결혼은 결혼하는 당사자들의 행복에 직접 관계된다.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들에게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과 평안을 누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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