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데스다 구약성경강해

[사사기 3장 원어강해 성경말씀] 구산 리사다임과 사사 옷니엘(삿 3:7-14)

성령의 능력 2022. 10. 12.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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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산 리사다임과 사사 옷니엘(삿 3:7-14)

 

성 경: [삿3:7]

주제1: [사사 옷니엘과 에훗의 활약]

주제2: [옷니엘의 활약]

󰃨 여호와를 잊어버리고 - '잊어버리다'에 해당하는 원어 '솨카흐'의 기본 뜻은 '잘못 놓다'이다. 이는 곧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마음 중심에 모시지 않고 마음 바깥에 내다 놓으므로 말미암아 결과적으로 하나님을 망각한 것을 가리킨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우리도 마음 중심에 여호와가 아닌 다른 것을 모시고 살 때에는 하나님과 그분의 교훈을 잊어버릴 수밖에 없다.

󰃨 바알들과 아세라들 - 여기서 '바알''풍요''다산'(多産)을 관장하던 가나안의 고위 신이다. 그리고 '아세라'는 엘(El)의 아내이자 바알을 포함한 70명의 신의 어머니이다. 그런데 이들의 이름이 이처럼 복수형으로 쓰이고 있는 까닭에 대하여서는 다음 두 가지 이유로 추측할 수 있다. 첫째, 이것은 장엄 복수형으로서 신의 이름에 흔히 사용되던 히브리어 어법의 한 형태이다. 즉 신의 존엄성을 표현하기 위해 사용한 복수형으로서 모양은 복수지만 그 뜻은 단수로 쓰인 경우이다. 그 한 예로 '하나님'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엘로힘'을 들 수 있다. 이는 복수형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여러 하나님을 가리키는 말은, 결코 아니다. 1:1 참조. 둘째, 이것은 여러 모양, 그리고 여러 지역에서 섬겨지던 바알과 아세라 우상들을 나타내기 위해 쓰여진 복수형이다. 본문의 문맥상 위의 두 가지 이유 가운데 후자의 것이 더 타당해 보인다. 이스라엘은 당시 지역에 따라 여러 모앙, 여러 이름으로 섬겨지던 바알과 아세라를 자기의 이웃들과 더불어 섬겼던 것이다. 이에 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2:11 주석을 참조하라.

 

성 경: [삿3:8]

주제1: [사사 옷니엘과 에훗의 활약]

주제2: [옷니엘의 활약]

󰃨 메소보다미아 - 메소보다미아는 '두 강 사이'라는' 뜻으로서 유브라데(Euphrates) 강과 티그리스(Tigris) 강 사이의 광대하고도 비옥한 초승달 지역을 가리킨다. 그러나 본문의 메소보다미아를 그처럼 북방에 한정시킨다면, 이곳의 왕인 구산 리사다임이 '팔레스틴' 가장 남쪽 지파인 유다의 지도자 옷니엘과 싸우기에는 그 거리상 지나치게 멀다는 문제점이 발생한다(9,10). 때문에 레온 모리스(Leon Morris)는 이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점을 강조한다. 그것은 곧 이집트와 앗시리아의 문서들이 메소보다미아를 가리킬 때 주로 북방 메소보다미아를 의미했지만 간혹 그것은 오론테스(Orontes) 강이 있는 하맛을 중심으로 한 팔레스틴 북방 지역에까지 확대 적용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본문의 메소보다미아를 오론테스 강 유역으로 보면 구산 리사다임 왕과 옷니엘의 싸움에 별 의문이 제기되지 않을 것이다.

󰃨 구산 리사다임 - 이 왕에 대한 기록을 성경 다른 곳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다만 '리사다임'에 해당하는 원어 '리쉬아타임'은 '두 배나 악하다'는 뜻인데, 아마도 이스라엘이 그에게 붙여 준 칭호인 듯하다. 그리고 '구산'이란 이름은 바벨론왕 '니므롯'의 부친인 '구스'(10:8)란 이름에서 유래된 것으로 추정된다.

󰃨 손에 파셨으므로 - '팔다'에 해당하는 원어는 '마카르'로서 사람을 노예로 파는 것(21:14 ; 28:68)을 가리킨다. 2:14 참조. 그런데 이 말은 간혹 사람이 죄의 노예가 될 때에도 사용되었다(50:1). 그러나 본문에서는 이상과 달리 '항복하게 하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즉 이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구산 리사다임의 지배하에 놓이게 하신 것을 의미한다.

 

성 경: [삿3:9]

주제1: [사사 옷니엘과 에훗의 활약]

주제2: [옷니엘의 활약]

󰃨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 '부르짖다'에 해당하는 원어 '자아크'는 '힘을 다해 외치다'라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즉 이것은 극심한 고통 속에서 부르짖는 것을 의미한다(Lange). 과거에도 이스라엘은 애굽에서 바로의 압제로 인해 힘든 노역을 할 때 그 고통을 참지 못하여 하나님께 부르짖은 적이 있다(2:23). 아무튼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처럼 하나님께 부르짖는 것은 일차적으로 자기들이 당하고 있는 그 고통 중에서 하나님께 구원을 요청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차적으로는 이방 우상 숭배 죄의 잘못을 깊이 회개하는 것을 의미한다.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그러한 회개 기도에 귀를 기울이시고 다시금 구원의 손길을 베푸시는 것이다.

󰃨 한 구원자를 세워 - 여기서 구원자라 함은 사사(Judge)를 의미한다. 그런데 본서에서 사사들에 대해 구원자란 명칭이 사용된 것은 사사들이 문자 그대로 단순히 재판만을 수행하는 재판관(4:5)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대신 그들은 그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어려움에 처한 이스라엘 백성을 주위의 적들로부터 구해 주는 구원자의 직무를 수행했기 때문이다 (15;5:14;8:22). 이에 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2:16 주석을 참조하라.

󰃨 갈렙의 아우 그나스의 아들 옷니엘 - 옷니엘(Othniel)이 정확히 갈렙의 아우인지 아니면 조카인지 하는 학자들 간의 이견에 대해서는 이미 1:13에서 살펴보았었다. 그에 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그곳 주석을 참조하라.

 

성 경: [삿3:10]

주제1: [사사 옷니엘과 에훗의 활약]

주제2: [옷니엘의 활약]

󰃨 여호와의 신이 그에게 임하셨으므로 - 여기서 '여호와의 신'(루아흐 예호와)이란 이미 구약 시대부터 여러 모로 활동하셨던 성령을 가리킨다. 1:2 주석 참조. 그런데 이러한 성령이 옷니엘에게 임하셨다는 것은 곧 하나님의 특별한 소명과 능력이 그에게 주어진 것을 의미한다. 여기서 특별한 소명이란 이스라엘 백성을 구산 리사다임의 압제로부터 구원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의 송사를 맡아 지혜롭게 다스리는 것을 가리킨다. 그리고 능력이란 그러한 소명을 잘 감당할 수 있는 힘을 가리킨다. 한편 옷니엘에게 임한 성령은 구약 시대의 여러 인물들에게도 임했던 적이 있다(6:34;11:29;13:25;삼상 10:9,10;16:13;대상 12:18). 여호와의 신은 가끔 백성들 가운데 몇몇 사람에게도 임했으며(27:18;4:8), 어떤 사람에게는 특정한 봉사를 수행토록 하기 위해서 임하기도 했다(31:3;35:31;11:25). 이는 오순절 이후로(2:1-5) 성령께서 모든 믿는 자들의 심령에 영원히 내주 하시는 것과는 대조적이다(14:17).

󰃨 여호와께서...그 손에 붙이시매 - 옷니엘이 구산 리사다임에게서 거둔 승리는 오직 하나님의 주관적인 능력과 역사로 말미암았음을 강조하는 표현이다. 이는 이스라엘의 배신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회개하자 즉각적으로 구원의 손길을 뻗치신 하나님의 사랑의 한 표현이기도 하다(9절).

 

성 경: [삿3:11]

주제1: [사사 옷니엘과 에훗의 활약]

주제2: [옷니엘의 활약]

󰃨 그 땅이 태평한 지 사십 년에...옷니엘이 죽었더라 - 이와 같은 표현은 다른 사사들의 행적을 마무리할 때에도 사용되었다(30; 5:31 ; 8:28). 아무튼 본절은 옷니엘의 활약으로 인해 이스라엘 백성들이 전쟁을 그치고 정치적, 종교적으로 평안을 얻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백성들은 옷니엘이 죽자 또다시 죄악을 범하는 전철(前轍)을 되 밟는데 그 결과 모압의 지배하에 놓이고 만다(12-14).

 

성 경: [삿3:12]

주제1: [사사 옷니엘과 에훗의 활약]

주제2: [모압의 압제]

󰃨 이스라엘 자손이...악을 행하니라 - 이로 볼 때 이스라엘은 40여 년에 걸친 평화로운 세월을 구가하는 동안(11) 구산 리사다임의 수하에서 8년간이나 노예 생활하던 때의 비참함(8)을 까맣게 잊어버렸음이 분명하다. 이러한 잘못과 죄의 악순환은 사사기 전반에 걸쳐 되풀이되는 바 그들이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 그리고 길이 참으심을 멸시하는 완악한 백성이었음을 보여 준다. 그런데 이러한 잘못은 오늘날 우리들도 범할 수 있다. 즉 평안하고 안락한 여건 가운데서 살다 보면 우리도 자칫 향락과 정욕, 각종 죄악에 빠지기 쉽다. 따라서 그러한 때일수록 더욱더 경성하여 자신의 삶 가운데서 그리스도의 영광을 드러내기에 힘써야 할 것이다(1:20).

󰃨 모압 - '모압 족속'은 아브라함의 조카 롯과 롯의 딸 간의 근친상간(近親相姦)에 의해 태어난 '모압'의 후손이다(19:30-38). 그들의 거주 지역은 사해 동쪽에 위치한 고원 지대로서 해발 약 1,300m에 이른다. 한편 과거 그들은 출애굽 과정에 있던 이스라엘이 그 지경을 통과하고자 요청할 때 이를 거절했었다(11:17). 그리고 발람에게 뇌물을 주어 이스라엘을 저주케 했을 뿐 아니라 이스라엘을 유혹하여 우상 앞에서 음란히 행하도록 만들었다(23:11 ; 24:10 ; 25:1-3).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로 인하여 하나님께서는 암몬과 모압 사람을 영원히 이스라엘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라고 명령하신 적이 있다(23:3-6).

󰃨 에글론 - 이름의 뜻은 '젊은 황소'이다. 이스라엘의 사사 시대 초기 당시 모압의 왕이었던 자로서 여리고 부근의 요단 강서부 지역을 한때 강점(强占)하였었다(13).

󰃨 강성케 하사...대적하게 하시매 - 여기서 '강성케 하다'에 해당하는 원어 '하자크''돕다', '붙잡다'는 뜻이다. 이는 곧 강한 손으로 이스라엘을 붙들어 주셨던 하나님께서 이제 도리어 이스라엘의 죄악을 징계하시려고 잡은 손을 놓으시고 대신 모압을 권능의 손으로 붙드신 것을 의미한다.

성 경: [삿3:13]

주제1: [사사 옷니엘과 에훗의 활약]

주제2: [모압의 압제]

󰃨 암몬 - 롯과 그 둘째 딸 사이에서 난 '암몬'(19:38)을 조상으로 하는 족속이다. 따라서 모압 족속(12)과는 형제국이 된다. 이들은 모압 북방의 랍바를 중심 한 지역에 거주하였는데 곧 요단 동편 지방이다(3:11). 이들은 역사상 이스라엘을 끊임없이 괴롭혔으며(삼상 11:1-3 ; 왕하 24:2) 일찍이 모압 족속과 더불어 이스라엘의 가나안 행군을 저지하려 방해하기도 하였다(23:3-6).

󰃨 아말렉 자손 - 에서의 손자인 '아말렉'을 조상으로 하는 족속이다(36:15,16). 이들의 거주지는 팔레스틴 남방에서 시내 반도에까지 이르는 광야 지대였다. 이들은 사사 시대 동안 미디안과 화합하여 이스라엘을 괴롭히다가 기드온에게 격멸당하고 만 역사도 지니고 있다(6:1-7:25).

󰃨 종려나무 성읍 - 여리고 성을 의미한다(34:3 ; 대하 28:15). 이에 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1:16 주석을 참조하라. 한편 모압과 암몬, 그리고 아말렉 연합군이 여리고 성을 쉽게 점령할 수 있었던 것은 그 성읍이 여호수아 이후 얼마 동안 강력한 요새로 재건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즉 여호수아는 여리고 성을 점령하고선 이후 그곳을 재건치 못하도록 저주를 선언했었다(6:26). 때문에 이후 여리고는 외적의 침입을 방비할 수 있을 정도로 튼튼히 재건되지 못하였고 그 탓에 에글론의 연합군에게 쉽게 점령당하였을 것이다(Keil & Delitzsch Commentary, Vol. II, p.295). 아무튼 이들이 이처럼 여리고 성을 점령했다는 것은 그들이 이미 모압 북쪽에 인접해 있던 르우벤 지파를 쳤다는 의미가 된다. 그렇다면 그 결과 그들은 이스라엘이 거주하던 요단 서편도 점령할 수 있는 발판을 구축한 셈이 된다.

 

성 경: [삿3:14]

주제1: [사사 옷니엘과 에훗의 활약]

주제2: [모압의 압제]

󰃨 이스라엘 자손이...십 팔 년을 섬기니라 - 모압이 점령한 땅은 여리고 성뿐이다. 그런데 본절은 이스라엘 전체가 '모압 왕 에글론'을 섬긴 듯한 인상을 준다. 이는 비록 이스라엘 모든 지파가 에글론을 섬긴 것은 아니지만 이스라엘 공동체적 특성 때문에 그처럼 표현한 듯하다. 즉 이스라엘은 비록 몇몇 개인이나 지파가 범죄 하였어도 연대 책임을 강조, 이스라엘 온 공동체가 하나님께 범죄 한 것으로 곧잘 간주하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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