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립보서 3장에서는 율법주의자들을 경계하라고 했습니다. 개들을 삼가고 행악하는 자들을 삼가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형제들아 주 안에서 기뻐하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기뻐할 수 있는 것은 예수님 안에 있을 때입니다. 세상을 바라보면 기뻐할 일이 없습니다.
성도의 기쁨의 샘(빌 3:1)
사도 바울은 칠흑같이 어두운 로마감옥에서 발목을 쇠사슬에 묶인 채 이렇게 빌립보 성도들에게 편지를 했습니다. "종말로 나의 형제들아 주 안에서 기뻐하라 너희에게 같은 말을 쓰는 것이 내게는 수고로움이 없고 너희에게는 안전하니라"(빌 3:1)
사도 바울이 이처럼 절망할 수밖에 없는 환경 가운데서도 절망하지 않고 빌립보 성도들에게 권고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마음속에 분수처럼 솟는 기쁨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기쁨은 우리들의 삶의 활력소입니다. 기쁨을 잃은 사람은 삶의 가치를 소유할 수 없습니다. 그 때문에 사람들의 삶의 환희를 체험하려고 육체적인 쾌락을 추구하거나 권력을 얻으려고 하거나 금전을 모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행위는 모두 '허무한 행위'입니다. 권력이나 금전이나 향락추구에서 얻는 기쁨은 일시적인 기쁨에 불과합니다.
1. 기쁨의 원천되신 하나님
하나님께서는 기쁨의 원천이 되십니다. 성경은 "주께서 생명의 길로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기쁨이 충만하고 주의 우편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 (시편 16:11)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러므로 하나님과 교통하는 사람은 말할 수 없는 기쁨을 소유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교제를 잃은 사람은 진정한 기쁨을 상실합니다. 아담과하와가 하나님을 반역하고 에덴에서 쫓겨났을 때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는 죄악의 담이 생겼습니다. 이때부터 인간은 기쁨을 잃고 슬픔과 절망 가운데 고통을 당해야 했습니다. 기쁨을 잃은 아담의 첫아들 가인은 자기의 동생을 돌로 쳐 죽였습니다.
여러분, 오늘날 사람들이 서로 상실하고 이혼하는 이유가 어디 있는 줄 아십니까? 그것은 사람들이 마음속에 기쁨을 잃고 미움과 원한 사로잡혀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진정한 행복을 느끼며 살아가기 위해서는 기쁨의 근원 되신 하나님을 모시고 하나님과 교통해야 합니다. 이것이 인간에게 있어서 근본적인 문제 해결입니다.
기쁨이 있는 주부는 어떠한 생활의 역경도 이겨나갑니다. 기쁨이 있는 남편은 신념을 가지고 경쟁사회를 이겨나갑니다. 기쁨이 있는 사람은 만난을 무릅쓰고 삶을 승리로 이끌어 갑니다. 이 때문에 인간은 하나님께 기쁨을 공급받으려면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가로놓인 죄악의 담을 청산해야 하는데 인간의 힘으로는 청산할 수가 없습니다. 성경은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롬 3:23)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위해서 죄악을 청산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으셨습니다. 성경은 말씀하셨습니다."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 3:16).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동정녀 마리아의 몸에 죄 없이 태어나시고 죄 없이 33년을 사신 후 모든 인류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매달리셔서 하나님 앞에서 몸 찢기시고 피 흘리셨습니다. 이를 통해 예수님께서는 인간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죄를 다 청산하셨습니다. 그 때문에 죄를 지었음에도 불구하고 못났음에도 불구하고 죄지은 그대로 못난 그대로 빈손 든 그대로 남녀노유, 빈부귀천할 것 없이 예수님 앞에 나아가는 사람은 모든 죄를 용서받고 하나님 앞에서 떳떳하게 설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통하지 않고는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며 따라서 진정한 기쁨을 얻을 사람도 없습니다. '사람이 한번 나서 죽는 것은 정한 이치요 죽고 난 다음에는 심판이 있습니다'(히 9:27)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죄악을 청산받고 영원한 삶을 살 것이냐 그렇지 않으면 영원한 버림을 받을 것이냐는 바로 여러분의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여러분은 하나님과 확고할 수 있는 은총을 입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 결과로 넘치는 기쁨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이 기쁨을 체험한 바울은 "주 안에서 기뻐하라 너희에게 같은 말을 쓰는 것이 내게는 수고로움이 없고 너희에게는 같은 말을 쓰는 것이 내게는 수고로움이 없고 너희에게는 안전하니라"라고 말한 것입니다.
기쁨은 우리 영혼을 안전하게 해 줍니다. 우리는 하나의 종교를 믿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과의 절실한 만남을 통해 구원을 받고 영혼 속에 넘치는 기쁨을 체험하기 위해, 그 기쁨을 체험함으로 이 땅에서 승리의 삶을 살기 위해 교회에 나와 하나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2. 성령충만과 기쁨
나는 하나님을 믿는다고는 하지만 넘치는 기쁨을 가지고 있지 못한 크리스천을 많이 보아왔습니다. 그 반면 얼굴에 언제나 걱정이 어두운 그림자가 깃들었던 사람이 성령을 충만히 받고 기쁨의 생활을 하면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경우도 수없이 많이 보아왔습니다.
제가 신학교에 다닐 때, 무척 내성적이어서 대중 앞에서는 고개를 들지도 못하였던 여학생이 성령을 받고 나서는 기쁜 얼굴로 사람들 앞에서 담대히 복음을 증거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지금도 그 여학생의 환한 얼굴이 눈에 선합니다. 그 여학생은 주위의 조소도 아랑곳하지 않고 기쁜 얼굴로 사람들에게 복음을 증거 했습니다.
성령께서는 우리에게 넘치는 기쁨을 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요 7:37)고 말씀하셨습니다. 생수의 강은 곧 성령이요, 기쁨입니다. 사도행전 2장 46절로 47절에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성령이 충만한 초대교회 성도들은 기쁨이 넘쳐 하나님을 찬양하고 이웃을 사랑하며 지냈다고 성경은 기쁨을 잃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다고 하면서 기쁨을 잃고 어두운 삶을 사는 분이 있다면 이 시간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쁨이 있어야 우리가 인생을 힘 있게 가치 있게 살아갑니다.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로 마르게 하느니라"(잠 17:22)라고 성경은 말씀하셨습니다. 기쁨은 질병을 극복하고 절망을 극복합니다. 염려와 근심은 심령을 병들게 하고 육체를 마르게 합니다. 이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성령충만하여 넘치는 기쁨을 가지고 이 세상을 맑고 밝고 환하게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성령충만을 통해 얻는 기쁨이 영원한 기쁨임을 우리는 결코 잊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3. 말씀의 연구와 기쁨
또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할 때 우리 마음에 기쁨이 넘쳐 납니다. 예레미야는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시여 나는 주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자라 내가 주의 말씀을 얻어먹었사오니 주의 말씀은 내게 기쁨과 내 마음의 즐거움이오나"(렘 15:16)라고 고백했습니다.
우리가 진리를 깨달을 때 형언할 수 없는 기쁨을 얻습니다. 옛 성현도 '아침에 도를 깨달으면 저녁에 죽어도 후회함이 없다'라고 말했습니다. 하물며 하나님의 진리를 깨달을 때 우리에게 어찌 기쁨이 넘쳐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 심령에서 염려와 근심의 어둠을 몰아내고 기쁨의 환한 빛으로 나타납니다.
이 때문에 성도는 반드시 교회에 나와 말씀을 듣고 집에서도 계속 말씀을 읽고 묵상해야 합니다. 말씀을 마음판에 새기는 성도가 넘치는 기쁨을 체험합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체험하는 기쁨은 환경의 자극에 의한 것입니다. 그 때문에 자극이 끝나면 기쁨도 끝나고 맙니다. 더구나 이 세상의 자극은 점점 큰 자극을 요구합니다. 그 때문에 이 세상에서 쾌락을 추구하며 기쁨을 얻으려고 하는 사람은 반드시 파탄에이르고 맙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영원하고도 가치 있는 기쁨을 얻어야 합니다. 이 기쁨을 얻는 사람이 가정의 화목을 이루고 이웃과 사회에 평화를 줍니다. 이 기쁨이 인류를 살립니다. 이 기쁨이 창조적인 기쁨이요 위대한 기쁨입니다.
4. 기도 생활과 기쁨
또한 기도하는 사람에게는 기쁨이 넘쳐납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죄와 불안과 미움과 공포가 가득 찬 세상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 세상에서 시시때때로 염려와 근심에 묶이게 됩니다. 이럴 때 우리는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죄를 회개하며 염려와 근심을 다 맡길 때 마귀의 억압에서 벗어나 샘솟는 기쁨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것은 의와 희락과 평강입니다. 그러나 마귀는 우리에게 정죄의식과 불안과 근심을 줍니다. 나는 이따금 내 마음이 답답하고 용기와 희망과 평안이 사라지는 것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그때마다 나는 즉시로 마귀의 역사라는 것을 깨닫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를 드립니다. 그리고 나면 억압의 고통이 물러나고 기쁨이 넘쳐나는 것을 체험하곤 합니다. 여러분이 기쁨이 유지하는 삶을 살기를 원한다면 적어도 하루에 한 시간 이상 하나님께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여러분이 한 시간 이상의 기도를 통해 죄를 회개하고 염려와 근심을 하나님께 맡길 때 여러분은 물질로는 살 수 없는 기쁨을 체험합니다.
5. 성도와의 교제와 기쁨
혹자는 말하기를 "무엇 때문에 교회에 나가고 무엇 때문에 성도들과 교제를 나누느냐, 혼자 기도하고 성경 읽으면 되지"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는 잘못된 생각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분명히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도들이 주의 이름으로 함께 모여 기도하고 교제를 나눌 때 흑암의 세력이 물러나고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납니다.
이 때문에 말세인 오늘날 성도가 함께 모여 기도하고 찬송하고 서로신앙에 관해 이야기를 하면서 교제한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성도의 교제 없이 혼자 신앙의 성장과 성숙을 이루겠다고 하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이 아닐 수없습니다. 저는 많은 성도에게서 "교회에 오기 전에는 마음에 기쁨이 없고 염려와 근심으로 짓눌려 있었는데 교회에 와서 성도들과 함께 기도하고 찬송하다 보니 걱정과 근심이 사라지고 기쁨이 넘쳐나는 것을 체험할 수 있었다"는 말을 듣습니다. 성도의 교제는 마귀의 역사를 몰아내고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냅니다.
이 때문에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주일예배, 수요예배, 금요철야예배에 참석할 뿐만 아니라 구역예배에도 참석하고 이웃에 있는 성도들과 자꾸 만나 서로 교제합시오. 기쁨은 나누면 나눌수록 커지고 슬픔은 나눌수록 적어진다는 말이 있습니다. 장작불이 하나 타는 것과 두세 개가 모여 타는 것과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성도들이 모여 교제할 때신앙의 불꽃이 활활 타오릅니다.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치실 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라고 하시지 않고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마 6:9)라고 하셨습니다. 신앙생활은 혼자 할 수 없습니다. 인간이 서로 대인관계를 유지하며 살듯 신앙생활도 성도들과 교제를 통해 성장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도들이 서로 교제하며 그리스도의 사랑을 주고받을 때 기쁨이 넘쳐나는 것입니다.
6. 주님의 사업과 기쁨
성도가 주의 사업을 하지 않으면 기쁨을 상실하고 맙니다. 주님의 사업을 하지도 않고 그냥 교회에 와서 하나님의 은혜를 통한 기쁨을 얻겠다고 하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열심히 하면 피손을 잊고 넘쳐는 기쁨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나는 추운 겨울 주일 아침에 손을 비벼가며 교통정리하면서도 기쁨에 넘쳐 환한 얼굴로 봉사하는 집사님들을 봅니다. 또한 엿새 동안 생활에 전념해 피곤할 텐데도 주일에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피곤한 줄 모르고 기쁜 얼굴을 하고 있는 교회학교 교사들도 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늘나라의 확장을 위해 힘쓰고 애쓰는 성도를 결코 방관하시지 않고 하늘나라의 기쁨을 넘치도록 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종의 비유'를 들어 우리에게 이 사실을 교훈하셨습니다. 주인의 말을 듣고 열심히 충성하여 두 배를 남긴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받은 종은 주인이 돌아왔을 때 주인에게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내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하라"는 칭찬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충성하지 않아 한 달란트를 그대로 가지고 있던 종은 주인으로부터 "악하고 게으른 종아..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어 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는 책망을 받아야 했습니다.
하늘나라를 향해 가는 성도는 이 땅에서 하나님께 받은 직분을 그대로 두지 말고 최선을 다해 활용해야 합니다. 주님의 일을 열심히 하는 착하고 충성된 종이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사업을 충실하게 감당해서 이 땅에서 즐거움을 얻고 후에 하늘나라에 올라가 하나님께 상급 받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을 축원합니다.
기쁨을 잃은 사람의 '사람의 삶은 가뭄으로 메마른 산하처럼 삭막합니다. 그러나 기쁨을 잃지 않고 있는 사람의 삶은 단비를 맞아 빛나는 산천초목처럼 윤택합니다. 성경은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느 8:10)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리면 우리 심령에 기쁨이 넘쳐나고 힘이 생깁니다. 이 기쁨이 진정한 기쁨입니다.
부귀는 누구나 다 가질 수는 없고 권력도 다 가질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 기쁨은 누구나 가질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리려면 기쁨의 근원 되신 하나님을 의지하고 항상 성령충만하고 말씀을 연구하고 열심히 기도하고 성도들과 교제를 나누고 주님의 사업에 충성해야 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해서 기쁨을 얻으면 어떠한 난관도 극복하며 힘차게 전진할 수 있습니다. 이 기쁨을 얻은 사도 바울은 캄캄한 감옥 속에서도 빌립보 성도들에게 기뻐하라고 권고할 수 있었습니다.
아무리 기화요초가 둘러싸인 정원을 만들고 살아간다고 하더라도 이기쁨을 얻지 못한 사람은 삶의 가치와 보람을 느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 기쁨을 소유한 사람은 초가삼간에서 산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의 영광을 체험하며 웃으면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께로부터 이 기쁨을 얻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창세기 32장 주일설교말씀] 환도뼈의 큰 힘줄을 먹지 말라(창 3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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