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데스다 원문 성경강해

[마가복음 12장 헬라어 강해] 가난한 과부의 두 렙돈과 교훈(막 12:41-44)

성령의 능력 2021. 5. 20.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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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마가복음 12장 헬라어 강해 중에서 가난한 과부의 두 렙돈과 교훈이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예수님께서 헌금함을 대하여 앉으시고 무리가 어떻게 헌금함에 돈 넣는가를 보고 계셨습니다. 많은 사람이 돈을 넣었는데 여러 부자들이 많은 돈을 넣었습니다. 그런데 한 가난한 과부가 두 렙돈을 헌금함에 넣었습니다. 예수님은 가난한 과부가 헌금함에 돈을 넣는 것을 보시고 제자들에게 말합니다. 다른 사람들보다 이 과부가 가장 많이 넣었다고 했습니다. 다른 사람은 풍족한 중에 넣었지만 이 과부는 가난한 중에서 자기의 모든 것을 넣었다고 했습니다. 이것을 볼 때 하나님은 액수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도 하나님께 마음을 다해서 드리면 하나님은 기쁨으로 받으십니다. 

가난한 과부의 두 렙돈과 교훈(막 12:41-44)

 

41절 카이 카디사스 호 이에수스 카테난티 투 가조퓔라키우 에데오레이 포스 호 오클로스 발레이 칼콘 에이스 토 가조퓔라키온 카이 폴로이 플루시오이 에발론 폴라

막 12:41 예수께서 헌금함을 대하여 앉으사 무리가 어떻게 헌금함에 돈 넣는가를 보실새 여러 부자는 많이 넣는데

42절 카이 엘두사 미아 케라 프토케 에발렌 레프타 뒤오 호 에스틴 코드란테스

막 12:42 한 가난한 과부는 와서 두 렙돈 곧 한 고드란트를 넣는지라

======12:41-42

 

예수께서 그의 공적인 가르침을 행하시던 이방인의 뜰로부터 여인의 뜰로 들어가셨다. 이 뜰 벽 맞은편 벽에는 예배 자들의 자발적인 제물과 헌금을 거두기 위하여 나팔 모양을 새겨 놓은 13개의 연보궤들이 있었다. 맞은편 유리한 위치에 자리하시고 예수께서는 무리들이 어떻게 성전 금고에 그들의 돈을 넣는가를 살피고 계셨다.

한 불쌍한 과부는 두 렙돈을 헌금궤에 넣었다. 한 렙돈은 팔레스틴에서 통용되던 가장 작은 유대인의 청동 동전이었다. 두 렙돈은 노동자들의 하루 임금이었던 로마 데나리온의 64분의 1일 가치였다. 마가는 자기 로마인 독자들을 위하여 다시 로마 화폐 단위로 그 가치를 말했다.

이 성경 구절은 마태복음에는 나와 있지 않고 여기와 누가복음에만 나와 있다. 이 성경 구절은 두 렙돈을 연보 궤에 넣는 가난한 과부에 대하여 그리스도께서 칭찬하신 말씀이다. 복음 전하시기에 분주하신 우리 주님께서는 여가가 있을 때에 연보 궤 맞은편에 앉으셔서 헌금하는 것을 보고 계시었다.

자선을 위한 모금이 있었고 이 모금함에 헌금들을 하였다. 그리고 이 모금된 기금은 전부 분배하여 주었던 것이다. 이 구호금 함은 성전 안에도 있었다. 자선 사업이나 구호 사업은 대단히 알맞게 병행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예배에 의해서 영광을 받으시는 곳에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을 구원해 주심으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시는 일은 합당한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자주 기도와 구호는 사도행전 10장 2-4절과 같이 연결되어 있음을 본다.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은밀한 구제를 권장하고 알선하기 위해 자선 모금함을 설치해 놓은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그들 자신의 힘으로 돈을 모을 수 있는 자들은 하나님이 이를 얻게 하는 대로 저축하여 자선을 베풀 목적으로 준비해 두는 것도 좋은 것이다(고전 16:12).

예수 그리스도께서 연보 궤를 주시하고 계셨다. "예수께서 연보 궤를 대하여 앉으사 무리의 연보 궤에 돈 넣는 것을 보실쌔"(41절). 예수께서 돈 넣을 것이 없어서 그런 것이 아니고 사람들이 돈 넣는 것을 보시기 위해서였다. 우리 주 예수께서는 우리가 경건과 자선을 위해 사용할 수 있도록 무엇을 드리나를 보고 계시는 것이다. 우리가 가벼운 마음으로 드리나 인색한 마음으로 드리나를 보시는 것이다. 그렇다 주께서는 마음을 보시는 것이다. 주께서는 우리가 구제할 때에 어떤 원칙에서 행동하며 우리의 견해가 어떠한가를 보시며, 우리가 이것을 주께 드리듯 하는지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하는지 살펴보고 계신다.

예수께서 "여러 부자는 많이 넣는"것을 보시었다. 부자들이 자선을 베푸는 것을 보는 것은 좋은 장면이었을 것이다. 그것도 많은 부자들이 그렇게 하는 것을 보는 것은 더 하였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돈을 넣되 많이 넣는 것을 보는 것은 더욱 훌륭한 장관이었을 것이다. 부자들이 많이 바치는 것은 당연한 일임을 유의하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풍성이 주시었다면 우리가 가난한 자들에게 풍성이 구제하는 일을 하나님이 우리에게 기대하시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리고 부자들이 말하기를 자기들도 다른 사람들만큼 바치었다고 하는 것은 합당하지 않은 것이다. 그들은 아마 그들이 소유한 것의 극소수밖에 드리지 않은 것이다. 그들은 자기들의 재산에 알맞게 바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그리고 만일 자선의 대상이 자기 자신들을 드리는 것이 아니면 그것은 많은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그들은 마땅히 무엇을 구제해야 할 가를 알아내야 할 것이며 후한 일들을 생각해야 할 것이다.

43절 카이 프로스칼레사메노스 투스 마데타스 아우투 레게이 아우토이스 아멘 레고 휘민 호티 헤 케라 아후테 헤 프토케 플레이온 판톤 베블레켄 톤 발론톤 에이스 토 가조퓔라키온

막 12:43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가난한 과부는 헌금함에 넣는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44절 판테스 가르 에크 투 페릿슈온토스 아우토이스 에발론 아후테 데 에크 테스 휘스테레세오스 아우테스 판타 호사 에이켄 에발렌 홀론 톤 비온 아우테스

막 12:44 그들은 다 그 풍족한 중에서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가난한 중에서 자기의 모든 소유 곧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하시니라

===========12:43-44

 

엄숙한 서론적인 말씀으로 예수께서는 다른 모든 사람들보다 이 여인이 더 많이 넣었다고 말씀하셨다. 그 이유는 과부는 어려운 중에서 모든 것을 넣었기 때문이다. 비례로 따지면 그 여인이 가장 많이 바쳤던 것이다. 그 여인은 희생적으로 하나님께 드리면서, 하나님께서 그녀에게 필요한 것을 채워 주시리라고 신뢰하였던 것이다.

그녀는 자신을 위하여 동전 하나를 간직해 둘 수도 있었다. 예수께서는 전적인 헌신에 대한 하나님의 평가를 제자들에게 가르치기 위하여 그녀의 예를 사용하셨다. 예수에 대한 제자들의 헌신은 곧 시험당할 것이다. 이 사건은 또한 예수께서 자신을 전적으로 죽음에 내어 주심을 예증하여 주는 것이다.

"한 가난한 과부는 와서 두 렙돈 곧 한 달란트를 넣는지라"(42절). 우리 주 예수께서는 그 여인을 크게 칭찬하시었다. 예수께서 제자들을 부르시어 그 일을 기억하라고 당부하였다(43절).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그 여인은 어려운 생활 가운데서 절약하여 모은 많지 않은 돈이지만, 그것은 그 여인의 생활비 전부이며, 그 여인은 하루하루 일하여 살아가는 가난한 여인이다. 그러므로 주께서 보실 때에는 그 여인이 참다운 구제를 하였고, 다른 모든 사람들보다 이 여인이 많이 하였다고 하시었다. "저희는 다 그 풍족한 중에서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구차한 중에서 넣었느니라(44절)."

많은 사람들이 이 가난한 과부를 비난하면서 그 여인이 잘못 행하였다고 생각해 왔다. 그 여인 자신도 그토록 어려운데 남에게 구제할 필요가 있었겠는가? 가정에서부터 구제를 시작할 일이라고 한다. 또한 만일 그 여인이 구제하고 싶었다면 그 여인이 아는 가난한 사람에게 구제하지 않았는가? 여하튼 이 과부를 비난하는 말을 많이 듣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과부를 모방하는 사람은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 주께서 그 여인을 칭찬하시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여인이 잘하고 현명하게 행하였음은 확실하다고 본다. 만일 그리스도께서 "잘하였다"라고 하신다면 누가 무어라고 해도 상관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여기에서 다음의 사실을 배우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구제는 대단히 좋은 일이고 주 예수를 크게 기쁘시게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만일 우리가 구제를 하면서 겸손하고 신실하다면 주께서 기쁨으로 그것을 받으시는 것이다.

적은 소유를 가진 가난한 자도 그 적은 가운데서 구제를 해야만 한다. 노동을 하여 하루하루 살아가는 자들도 구제를 필요로 하는 자에게 구제를 해야 한다(엡 4:28).



우리 자신을 괴롭히고 부인하면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더 많이 구제하려고 함은 좋은 일이다. 구제하기 위해서 여분뿐만 아니라 필요한 것도 절약해야 한다. 우리는 많은 경우에 있어서 우리 자신을 절제하여 다른 사람들의 필요를 공급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것이 내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는 것이다.

대중을 위한 자선을 마땅히 칭찬을 받아야 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국가의 공익을 초래하기 때문이다. 그런 구호금의 처리 과정에서 잘못이 있다손 치더라도 그것이 우리의 몫을 내지 말아야 된다는 정당한 이유는 못 되는 것이다.

비록 우리가 적은 것을 구제금으로 내놓을 수밖에 없다 하더라도, 그것이 우리의 능력 것 내는 것이라면, 그리고 올바른 마음에서 내는 것이라면, 그리스도께서 기쁘게 받으시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가 가진 것을 요구하시지 가지지 못한 것을 요구하시지 않으시는 것이다." 두 렙돈을 내더라도 올바른 마음에서 내면 두 파운드 내는 것이나 다름이 없는 것이다.

우리가 우리의 "능력 것" 드릴뿐 아니라, 우리의 능력에 지나치게 드리는 것도 찬사를 받을 수 있는 것이다. 마게도니야 교회는 "극한 가난이 저희로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하게 하였던" 것이다(고후 8:2). 사렙다 과부가 엘리야에게 한 것처럼, 그리스도께서 오천 명에게 행하신 것처럼 우리가 우리의 필요한 것 중에서 다른 사람들을 위해 기쁘게 공급할 때에 하나님께서 다른 어떤 길을 통해서 우리를 공급해 주실 것을 믿자. 이 일이야말로 감사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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