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데스다 원문 성경강해

[이사야 32장 히브리어 강해] 한 의로운 왕의 통치 예언(사 32:1-8)

성령의 능력 2021. 5. 16.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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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이사야 32장 히브리어 강해 중에서 한 의로운 왕의 통치 예언이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한 의로운 왕이 나타나서 공의로 통치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 사람은 바로 신약에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합니다. 인간은 자신의 유익대로 판단하지만 하나님이신 예수님은 공의롭게 판단하시고 통치하십니다. 주님이 십자가에서 죽음으로 완전한 속죄를 이루어 주셨습니다. 한 의로운 왕인 예수님은 죄인들을 위해서 자신이 몸소 고통을 당하셨고 죽었습니다. 이것이 겸손입니다. 자신은 죄가 없기 때문에 죽지 않아도 되는데 죄인들을 살리기 위해서 자신이 낮아져서 죽는 것 이것이 히브리적인 겸손입니다. 이렇게 주님은 의로운 왕으로서 이 세상을 통치하시러 이 땅에 재림하십니다. 주님이 다시 오셔서 이 세상을 통치하시고 악한 자는 심판하시고 예수님을 믿는 의인은 구원하셔서 영원한 하나님 나라로 인도하십니다. 오늘도 만왕의 왕이신 예수님을 믿고 순종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한 의로운 왕의 통치 예언(사 32:1-8)

 

1절 헨 레체데크 이멜라크 멜렉크 우레사림 레미쉐파트 야쇼루

사 32:1 보라 장차 한 왕이 공의로 통치할 것이요 방백들이 정의로 다스릴 것이며 

=====32:1

보라 장차 한 왕이...정사할 것이며 - 예루살렘을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권능으로 말미암아 그 도성을 공격하려던 대적들(앗수르)은 몰살되는 반면 그 도성은 영속성을 보장받게 되는데(31:4-9), 선지자는 계속해서 장차 그 도성에서 시행될 참되고 의로운 통치에 대해서 서술한다. 그 통치는 새로운 왕과 방백들, 즉 새로운 정부의 출현과 더불어 시작된다.

이제 동참할 '한 왕과 방백들'은 눌려 도망가는 '앗수르의 왕(반석)과 그 방백들'과 대비된다(31:9). 저들은 역사의 무대에 잠깐 나왔다가 사라지는 엑스트라에들에 불과한 것이다. 여기 언급된 ''은 아마도 종교 개혁을 통해서 여호와 신앙을 부흥시킨 히스가야 왕을 가리킬 것이다. 그러나 그는 동시에 장차 오실 메시아의 모형이다. 선지자의 시선은 당대를 넘어 먼 미래에 미치며 그의 예언은 메시아 시대에 이르러 궁극적으로 성취되어진다.

의로...공평으로 정사할 것이며 - ''(체데크)와 '공평'(미쉬파트)은 여호와께서 기뻐하시는 하나님 나라의 중요한 통치 규범이다(1:21,27). ''가 하나님의 뜻에 따라 통제된 올바른 행동의 원리라면, '공평'은 그 원리의 구현이라 할 수 있다. 이 시점에서 선지자는 전자를 왕의 덕목에, 후자를 방백들의 덕목에 각각 적용시킨다.

2절 베하야 이쉬 케마하베 루아흐 베세테르 자렘 케팔게 마임 베차욘 케첼 셀라 카베드 베에레츠 아예파

사 32:2 또 그 사람은 광풍을 피하는 곳, 폭우를 가리는 곳 같을 것이며 마른 땅에 냇물 같을 것이며 곤비한 땅에 큰 바위 그늘 같으리니

=====32:2

광풍을 피하는 곳...같으니 - 악한 정부의 통치가 백성을 괴롭히는 '광풍''' 그리고 '마른 땅'과 '곤비한 땅'과 같다면, 선한 정부의 통치는 그것들로부터의 백성을 보호해주는 '가리는 것'(마하베), '덮는 것'(세테르), '냇물'(펠레그), '무거운 바위의 그늘'(첼 셀라-카베그)과 같을 것이다.

'광풍-폭우'와 '마른 땅-곤비한 땅'은 팔레스틴 땅의 여행객들을 위협하는 대표적인 자연재해들로서, 전자는 큰 비를 동반한 폭풍을, 후자는 뜨거운 햇볕으로 사람의 목을 타게 만드는 무서움을 가리킨다. 이와 유사한 표현으로 4:6;25:4을 보라.

3절 베로 티쉐에이나 에네 로임 베오즈네 쇼메임 티크샤브나

사 32:3 보는 자의 눈이 감기지 아니할 것이요 듣는 자가 귀를 기울일 것이며

=====32:3

보는 자의 눈이...기울어질 것이니 - 공의로운 통치가 가져오는 유익은 비단 외적인 측면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백성들의 내면적인 변화까지도 유발된다. 선지자는 이것을 육체적인 질병의 치유에 비유하여 설명한다. 이전에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지 못하여 소경 같고 귀머거리 같았던 자들이 다시 시력과 청력을 회복하게 된다(29:18,19).

이 약속은 전에 선지자가 들었던 것(6:9,10)이고 백성들에게 주어졌던 경고(29:10)와 대조된 것이다. '듣는자의 귀가 기울어진다'는 말은 '주의 깊게 경청한'(카솨브)는 뜻이다.

4절 우레바브 니므하림 야빈 라다아트 우레숀 일르김 테마헤르 레다베르 차호트

사 32:4 조급한 자의 마음이 지식을 깨닫고 어눌한 자의 혀가 민첩하여 말을 분명히 할 것이라

=====32:4

조급한 자의 마음이... 말을 분명히 할것이라 - 급하게 서두르며 초조하고 분주하여 헛된 일에 집착하던 '조급한 자'(님하람)의 마음이 사물의 본성을 파악하는 참된 지식과 통찰력을 갖게 된다. 또 하나님의 진리에 대하여는 '어눌한 자'(일김)가 되어 혀를 잘 놀릴지 못하던 자들이 이제는 세련되고 적절한 언어를 구사할 수 있게 된다.

'일김'은 어떤 사람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종교를 경멸하는 '를 빗된 말(28:11 참조, Knobel, Drechsler)이라기보다는 영적인 세계에 대하여 무지한 자들을 가리킨다.(Delitzsch, Alexander).

5절 로 이카레 오드 레나발 나디브 우레킬라이 로 예아메르 쇼아

사 32:5 어리석은 자를 다시 존귀하다 부르지 아니하겠고 우둔한 자를 다시 존귀한 자라 말하지 아니하리니

=====32:5

어리석은 자를...정대하다 말하지 아니하리니 - 이와 같은 영적인 명징(明澄)함의 결과로, 가치가 전도되어 참과 거짓이 뒤바뀌고 악덕과 미덕이 혼동되던 시대에 상습적으로 자행되어졌던 잘못된 일들이 바로잡아질 것이며 모든 일이 올바른 질서 위에서 시행되어짐을 의미한다.

'어리석은 자'(나발)'사악한 자'로도 번역 가능하다. '궤휼한 자'라 번역된 '킬라''간교하다'는 뜻을 가진 '네킬라'의 단축형 (Gesenius) 혹은 '낭비하다'는 뜻을 가진 '칼라'에서 파생된 말(Hitzig)로 설명되기도 하니 확실하지는 않다.

6절 키 나발 네발라 예다베르 베리보 야아세 아벤 라아쇼트 호네프 우레다베르 엘 아도나이 토아 레하리크 네페쉬 라에브 우마쉐케 차메 야헤시르

7절 베켈라이 켈라이브 라임 후 지모트 야아츠 레하벨 아나빔 베이므레 쎄케르 우베다베르 에브욘 미쉬파트

사 32:7 악한 자는 그 그릇이 악하여 악한 계획을 세워 거짓말로 가련한 자를 멸하며 가난한 자가 말을 바르게 할지라도 그리함이거니와

=====32:6,7

본문은 '왜냐하면'()이라는 말로 시작된다. 선지자는 '어리석은 자'와 '궤휼한 자'가 전에 그들에게 부여되었던 명예로운 칭호(관직)을 상실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그들의 본성과 관련하여 설명한다.

어리석은 자는...없어지게 함이며 - 성경에서 '어리석음'은 머리의 둔함에 관련된 말이 아니라 마음의 완악함에 관계되는 말이다(32:6; 14:1 ; 74:22). 어리석은 자는 먼저 하나님을 거스려 죄악을 범하고 다음에는 동료 인간들에 대하여 악행을 저지른다. 이는 하나님께 대한 잘못된 관계에서 옳지 못한 인간관계가 배태(胚胎)됨을 보여주는 것이다.

"주린 자의 '심령(네페쉬)을 비게 한다"는 말은, 굶주린 자를 먹이지는 못할 망정 오히려 그의 양식을 빼앗아 생존할 수조차 없게 한다는 말이. 하나님을 부정하고 죄악을 밥먹듯 하는 어리석은 자들이 어느 정도까지 악해질 수 있는가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말이 아닐 수 없다.

궤휼한 자는...그리함이어니와 - '궤휼한 자'는 재물과 이권을 획득하는 일에 혈안이 되어 있어서 온갖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하여 불법을 저지르는 사람들이다. 그들의 주된 먹이는 스스로를 보호할 줄 모르는 '가련한 자'(아니윔)'빈핍한 자'(에브욘)이다.

8절 베나디브 네디보트 야아츠 베후 알 네디보트 야쿰

사 32:8 존귀한 자는 존귀한 일을 계획하나니 그는 항상 존귀한 일에 서리라

=====32:8

고명(高明)한 자는...서리라 - '고명한 자'(나디브)는 외부적인 요인에서가 아니라 그 내면에서 우러나는 자발적인 동기에서 어려운 이웃을 돌보고 힘쓰는, 천성적으로 성품이 너그럽고 관대한 사람이다. 그는 궤휼한 자가 끊임없이 악한 계책을 도모하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항상 고귀하고 덕스러운 일을 생각하고, 또한 생각한 그것을 반드시 실천으로 옮기려고 애쓴다. 이러한 그의 덕행은 시간이 지난다 하여도 변하지 않으며 어떤 장애가 가로막을지라도 중단되지 않는다. '서리라'()말은 '자라나다', '견고히 서다'는 뜻이다(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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