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예레미야 33장 히브리어 강해 말씀 중에서 예레미야에게 보여주신 여호와의 비전이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예레미야는 눈물의 선지자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고 자신이 직접 예루살렘이 멸망당하는 것을 눈으로 체험했습니다. 복음을 전파하면서 많은 고초도 겪었습니다. 바벨론에 항복하라고 했다가 수모를 겪었고 지금은 시위대 뜰에 갇혀 있습니다. 예레미야가 갇혔을 때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이 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앞으로의 비전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고통과 환난 중에 임하여 말씀을 주심으로 비전을 보여주십니다. 예루살렘이 바벨론에 의해서 멸망은 당하지만 다시 소생시켜 주실 것을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을 영원히 버리지 않습니다. 죄를 지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지 못하고 거룩하게 살지 못했지만 징계하시고 다시 회복시켜 주십니다. 구원받은 성도가 죄를 지으면 하나님은 징계하십니다. 영원히 구원을 취소하지 않습니다. 이제 우리도 여호와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비전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 나라에 소망을 갖기를 바랍니다.
예레미야에게 보여주신 여호와의 비전(렘 33:1-9)
1절 바예히 데바르 아도나이 엘 이르므야후 셰니트 베후 오데누 아추르 바하차르 하마타라 레모르
렘 33:1 예레미야가 아직 시위대 뜰에 갇혀 있을 때에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두 번째로 임하니라 이르시되
=====33:1
예레미야가...시위대 뜰에 갇혔을 때 - 본장의 사건 역시 32장과 같은 해에 일어났던 것으로 짐작된다. 예레미야는 시위대 뜰에 갇혀 있는 것으로 언급되고 있는데, 아마 이곳은 장로들이나 왕의 관리들이 예레미야에게 조언을 쉽게 들을 수 있는 곳이었을 것이다. 한편 본장은 일려의 '회복과 위로의 메시지'(30-33장)의 결론부에 해당하며, 최대의 민족적 위기를 맞은 유다 백성에게 다시 한번 소망의 빛을 확신시키고자 하는 내용이다.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위탁한 위로의 예언이 선포된 시기. 정확한 시기를 말하기는 어렵다. 단지 말할 수 있다면 전 장의 사건의 연속으로 사태가 더욱 악화되어 가고 있을 때였다. 이것은 하나님의 두 번째 말씀이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을 격려하시기 위하여 한 번뿐 아니라 두 번씩 말씀하신다. 우리는 불복종하므로 우리의 의무를 실행케 하려면 "경계에 경계"가 요구된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믿지 못하므로 우리로 위로를 받게 하기 위해서는 약속에 약속이 필요하다.
이 말씀은 전과 같이 그가 "시위대 뜰에 갇혔을 때에 예레미야에게 임한 것이었다." 하나님의 백성을 그 어떤 곳에 유폐시킨다고 하여도 그들이 하나님을 만나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 어떠한 자물통과 빗장도 하나님의 은총의 방문을 막지 못한다. 오히려 "고통이 더할수록 위로가 더욱 넘치는 경우가 있다." 세상이 그들을 못마땅하게 여길 때 그들은 가장 고무적인 그의 사랑의 속삭임을 듣게 된다. 바울의 주옥과 같은 서신들도 실상 감옥 속에서 이루어진 것들이었다.
2절 코 아마르 아도나이 오사흐 아도나이 요체르 오타흐 라하키나흐 아도나이 쉐모
렘 33:2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 그것을 만들며 성취하시는 여호와, 그의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이가 이와 같이 이르시도다
=====33:2
여기서는 여호와를 가리켜 '일을 행하는 자'(오사흐), '그것을 짓는 자' (요체르)로 지칭하고 있는데, 이는 창 1장의 내용으로 소급되어 올라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거기서는 '아사'(만들다), '야차르'(짓다), '바라'(창조하다) 등의 동사가 쓰이고 있다. 이런 동사들은 모두 하나님의 창조 활동을 묘사하는 데 쓰였다(Thompson).
이 위를 그들에게 보장하신 분은 누구인가?(2절) 그는 "여호와 그것을 지어 성취하는 여호와" 이시다. 그는 천지의 창조자시다. 그러므로 모든 권력이 그의 수중에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레미야는 기도할 때(32:17) 이 사실을 언급하고 있다. 그는 예루살렘 곧 시온의 창조자시며 제일 먼저 그 성을 세운 분이다. 그러므로 그가 다시 성을 재건할 수 있는 것이다. 지으시되 그의 자신의 찬양을 위해서 뜻하신 바대로 하실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그것을 지어 성취하셨다"라고 하였다.
흔들리지 않고 영원히 있을 그리스도 교회가 출현할 때까지 이 성은 견고히 서 있을 것이라 한다. 그는 이 약속을 말씀하신 분이다. 그는 예루살렘 회복의 계획을 세우셨고 그 계획을 세우셨으니 또한 그대로 성취시키신다. 약속을 하신 분이 약속을 아름답게 이루신다. 왜냐하면 약속하신 분의 이름이 여호와이기 때문이다. 그는 약속을 하실 뿐 아니라 수행하신다. 그가 약속을 이루실 때 그는 그 이름으로 알려지신다. 그는 곧 온전하신 하나님이시다(출 6:3). 천지가 창조되었을 때는 그의 이름이 여호와라 불리지 않았던 것이다(창 2:4).
3절 케라 엘라이 베에에네카 베아기다 레카 게돌로트 우베추로트 로 예다에탐
렘 33:3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33:3
내게 부르짖으라...응답하겠고 - 이는 미래의 모든 일을 주관하며 계시하시는 이는 오직 여호와뿐이므로, 그분께 간절히 매어달려야 함을 상기시킨다. 특히 '부르짖으라'의 히브리어 '카라'는 '절규하다'는 의미로서, 심한 갈증 속에서 물을 달라고 하나님께 부르짖던 삼손의 모습이나 자식의 잉태를 위해 간구하던 한나의 모습을 연상시킨다(삿 15:18; 삼상 1:10-16). 명령법을 사용하여 반드시 너는 여호와께 부르짖어야 함을 말한다. 우리도 문제가 있을 때 여호와 하나님께 열심히 부르짖어야 한다.
이 예언이 성취되는 길은 기도에 의해서일 뿐이다(3절). 그러므로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응답하겠다" 고 말씀하신다. 예언자는 이 같은 응답을 받았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비로운 뜻을 알려고 그는 더욱 하나님 앞에서 겸손히 귀를 기울인다. 그는 기도하였다(32:16). 그러나 이제 그는 다시 기도해야만 하였다. 하나님으로부터 위로를 받으려는 사람들은 절실하게 계속 기도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자.
우리가 그를 부르면 그는 우리에게 응답하신다. 그리스도께서도 구하셨으므로 그것이 그에게 이루어졌다(시 2:8). 예레미야도 간구했으므로 그에게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는 응답이 주어진다. 보이시겠다는 말은 예레미야에게 앞으로 이루어질 일의 확실한 전망을 알리시겠다는 말이다. 알지 못하는 일이란 예레미야가 이해할 수 없었던 말씀이요 비밀한 일은 부분적으로 밖에는 나타나지 않은 일을 이제 확실히 드러내 보여 주신다는 말이다.
이 말씀은 예레미야로 즐거움을 얻게 하려는 의도가 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들도 이 예언에 힘을 얻어 이 말씀의 성취를 위하여 간구하도록 하시려는 데서 주어진 말씀이다. 약속이 주어졌다고 기도하지 말라는 말이 아니라, 더욱 기도를 힘쓰도록 격려하기 위하여 약속은 주어진다(겔 36:37 참조).
4절 키 코 아마르 아도나이 엘로헤 이스라엘 알 바테 하이르 하조트 베알 바테 말케 예후다 하네투침 엘 하솔로트 베에트 헤하레브
렘 33:4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니라 무리가 이 성읍의 가옥과 유다 왕궁을 헐어서 갈대아인의 참호와 칼을 대항하여
5절 바임 레힐라헴 에트 하카세딤 우레말암 에트 피게레 하아담 아쎄르 히케티 베아피 우바하마티 바아쎄르 히세타르티 파나이 메하이르 하조트 알 콜 라아탐
렘 33:5 싸우려 하였으나 내가 나의 노여움과 분함으로 그들을 죽이고 그들의 시체로 이 성을 채우게 하였나니 이는 그들의 모든 악행으로 말미암아 나의 얼굴을 가리어 이 성을 돌아보지 아니 하였음이라
=====33:4,5
여기서는 예루살렘을 구하려는 모든 인위적 노력들이 무용함을 밝히고 있다. 성읍의 가옥과 왕궁은 폐허화될 것인데, 그것은 대적의 파괴로 말미암아서가 아니라 포위당한 예루살렘 백성들 자신에 의해서 그렇게 될 것으로 묘사된다(4절). 즉, 백성들은 자기 집과 왕궁을 헐어서라도 포위 공격하는 갈대아 군대를 막아 보고자 애쓰지만, 이러한 자구책도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이 패망할 수밖에 없는 것은 여호와의 도우시는 손길이 끊어졌기 때문이다(5절).
예루살렘의 참혹상. 이것 때문에 위로가 그들에게 있어야 했다. 그러므로 이러한 참혹에도 불구하고 때가 이르면 이스라엘의 회복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약속된다(4,5절). 갈대아인들은 토성을 쌓고 성을 부수는 병기를 이용하여 그들을 친다. 또한 칼과 도끼와 망치로 성을 친다. 이 공격에 유다의 궁전도 예외가 되지 못하고 훼파된다. 에스겔 26장 9절에도 이러한 말씀이 있다. 거기 이르기를 "도끼로 망대를 찍는다" 고 하였다. 최상의 장비를 갖춘 가장 강한 요새일지라도 남김없이 부서져 지면과 같이 된다.
5절은 예루살렘의 현재의 참혹상을 더욱 열거하려는 뜻에서 넣은 삽입구이다. 저희들이 "갈대아인의 흉벽과 칼을 막아 싸우려 하였고" 포위망을 뚫으려 하였으나 오히려 사태를 악화시키고 말았다. 이 때문에 적들은 더욱 기세를 부려 공격을 하였고 미친 듯이 학살하였다. 그리하여 예루살렘의 가옥마다 포위망을 뚫으려고 출전했다가 받은 상처로 인하여 죽은 "남자들의 시체로" 가득 찼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노함과 분함으로 그들을 죽였다" 고 말씀하신다.
원수들의 검은 바로 하나님의 검을 대행하는 것이요, 원수들의 분노는 바로 하나님의 진노를 대행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여기 살해를 당한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두드러지게 악했던 사람들처럼 보여진다. 바로 이 사람들은 "그들의 악을 인하여 하나님이 얼굴을 가리시고 이 성을 돌아보지 못하도록 하시게 한" 장본인들이다. 그러므로 그가 그들에게 이 모든 징벌을 내리신 것은 정당한 일이었다.
6절 힌네니 마알레 라흐 아루카 우마르페 우레파팀 베길레티 라헴 아테레트 솰롬 베에메트
렘 33:6 그러나 보라 내가 이 성읍을 치료하며 고쳐 낫게 하고 평안과 진실이 풍성함을 그들에게 나타낼 것이며
=====33:6
내가 이 성을 치료하며 고쳐 낫게 하고 - '치료'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아루카'는 원래 상처 부위에 돋아나는 새 살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스라엘은 범죄로 인해 심한 상처를 입게 되지만, 그들을 연단시켜 새로이 회복시키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마치 피부에 새 살이 돋듯이 치유함을 받게 된다는 의미이다.
그들이 중병을 앓고 있는가? 이 성이 상처를 입었는가?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병을 고치실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계신다. 비록 그 병이 치명적이고 난치의 병인 것 같지만 그는 하실 수 있다(8:22).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온 머리가 병들었고 온 마음은 피곤하였으나" (사 1:5) 그러나 "내가 이 성을 치료하며 고쳐 낫게 하겠다" 고 하신다(33:6). 그가 죽음을 사전에 예방하며 질병을 퇴치하시고 모든 것을 정상이 되게 하시겠다고 한다(30:17). 아무리 절망적인 경우라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치료하고자 하시면 그는 하실 수 있다. 예루살렘의 병의 원인은 그의 죄였다(사 1:6). 그러므로 회개하면 치료는 이루어진다.
이 치료가 어떻게 임할 것을 본문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평강과 성실함에 풍성함을 그들에게 나타낼 것이라. 내가 이것을 그들에 적절한 시기에 베풀리니 때가 이르면 희망적인 미래의 전망을 보여 주겠노라" 고 하신다. 본문의 평강은 모든 축복된 것을 상징한다. "평강은 약속에 의거해 주어진 평강이요, 성실함은 그 약속을 실행하시는 성실이다. 또는 "평강과 성실함" 이 평화와 참 신앙을 뜻할 수도 있고 평강과 하나님에 대한 참된 예배를 뜻할 수도 있다. 즉 이 말씀은 그들을 하나님에게서 멀리하게 하려는 모든 거짓과 속임수에 대한 상반 개념이다. 우리는 평강과 성실함이란 말씀을 더 일반적으로 적용할 수도 있다.
① 하나님의 계시의 참모습이 바로 평강과 진리이다. 그러므로 본문의 약속들은 우리를 그리스도의 복음에로 인도한다. 복음 속에서 하나님은 평강과 진리를 나타내셨다. 거기 참된 평강의 길이 있다. 진리(성실이라 한글판에는 번역되었으나 여기서는 진리가 오히려 타당하다고 보여진다:역자 주)가 우리에게 길을 가리켜 주며 평강은 우리를 쉬게 하여 준다. 그리고 은혜와 진리의 풍성함은 예수 그리스도에 의하여 온다. 평강과 진리는 영혼의 생명이며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생명을 얻게 하며 더욱 풍성히 얻게 하시려 오신 것이다. 그리스도는 진리의 능력(요 18:37)으로 통치하시며 그 능력으로 "풍성한 평강을 주신다" (시 72:7; 85:10).
② 평강과 진리의 하나님의 계시는 믿음으로 이 사실을 받아들이는 모든 자들에게 치료와 건강의 근원이 된다. 평강과 진리는 성화의 방편이 되므로 그것이 접촉되는 영혼마다 질병의 치료를 얻는다(요 17:17). 그러므로 "저가 말씀을 보내어 저희를 고치셨다" (시 107:20)고 하였다. 평강과 진리는 인간의 영혼에 질서를 주며 영적이며 신령한 생활을 하기에 좋은 상태로 보존해 주신다.
7절 바하쉬보티 에트 쉐부트 예후다 베에트 쉐부트 이스라엘 우베니팀 케바리쇼나
렘 33:7 내가 유다의 포로와 이스라엘의 포로를 돌아오게 하여 그들을 처음과 같이 세울 것이며
=====33:7
본절에는 유다와 이스라엘이 갇혀 언급되고 있는데, 이로 보아서 이곳의 회복의 약속은 하나님의 모든 백성에게 해당될 것임을 알 수 있다. 즉 이것은 이전에 멸망한 북이스라엘 왕국과 앞으로 멸망할 남유다 왕국 모두에 대한 미래의 희망의 메시지인 것이다(Nicholson).
그들이 흩어져버리고 사로잡혔으며 국토는 폐허가 되었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은 약속하신다. "내가 유다의 포로와 이스라엘의 포로를 돌아오게 하리라" 하신다(7절)(스룹바벨의 지휘 아래 돌아온 자들은 주로 유다와 베냐민과 레위 자손들이었다. 그러나 그 후에 다른 모든 지파들 가운데서도 많은 사람들이 돌아왔다). 또한 "그 성들을 처음과 같이 세울 것이라" 하신다. 그들이 먼저 할 일인 회개를 하면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회복시키는 일을 착수하신다.
8절 베티하르팀 미콜 아보남 아쎄르 하트우 리 베살라흐티 레콜 오노테헴 아쎄르 하트우 리 바아쎄르 파쉐우 비
렘 33:8 내가 그들을 내게 범한 그 모든 죄악에서 정하게 하며 그들이 내게 범하며 행한 모든 죄악을 사할 것이라
=====33:8
그 모든 죄악에서 정하게 하며...사할 것이라 - 여기에는 회복의 날에 있을 가장 중요한 양상이 언급되고 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이 범하였던 죄를 용서하고 악한 죄에서 정하게 할 것이란 사실이다(겔 36:25, 26 참조). 이는 결국 이스라엘이 당한 파멸과 시련의 근본 원인이 바로 그들의 죄악 때문이었으며 따라서 사죄의 은총은 이스라엘을 회복시키기 위한 근원적 처방임을 시사한다. 아울러 이는 복음 시대의 새 언약을 향한 암시적 언급으로도 이해될 수 있겠다(31:34; 50:20 참조).
죄가 그들의 모든 고통의 원인이란 말인가? 그렇다면 그 죄가 용서될 것이고 정복될 것이며 따라서 심판의 원인이 근절될 것이라 하신다(8절).
① 죄로 인하여 그들은 더러워졌고 하나님의 거룩함을 거들떠보지도 않게 되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깨끗게 하시며 그들을 불법에서 순결케 하신다. 저들이 우상을 섬기므로 더럽혀지면 성전에 용납될 수 없었다. 그러나 저들이 "정하게 하는 물로 뿌리움을 받으면" 다시 성소에 들어가도록 허용이 되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모든 죄악에서 정하게 하시면" 그들의 조국에 들어갈 특권이 허용된다. 물을 뿌려 정결케 되는 예식을 생각하고서 다윗은 "우슬초로 나를 정하게 하소서"라고 기도하였다.
② 죄로 인하여 그들은 정죄함을 받았고 따라서 그의 공의의 처벌을 받아야 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들의 모든 죄악을 사하신다." 그리고 그들이 얽매여 있는 죄의 속박으로 말미암아 받을 수밖에 없는 형벌을 제거하신다. 거룩케 하시는 은혜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들은 더러운 죄에서 깨끗함을 받고 또 용서하시는 자비로 말미암아 정죄함으로부터 자유케 된다.
9절 베하예타 리 레솀 사숀 리트힐라 우레티프에레트 레콜 고예 하아레츠 아쎄르 이쉐므우 에트 콜 하토바 아쎄르 아노키 오세 오탐 우파하두 베라게주 알 콜 하토바 베알 콜 하솰롬 아쎄르 아노키 오세 라흐
렘 33:9 이 성읍이 세계 열방 앞에서 나의 기쁜 이름이 될 것이며 찬송과 영광이 될 것이요 그들은 내가 이 백성에게 베푼 모든 복을 들을 것이요 내가 이 성읍에 베푼 모든 복과 모든 평안으로 말미암아 두려워하며 떨리라
=====33:9
이 성읍이...내게 기쁜 이름이 될 것이며 - 그때가 되면 예루살렘은 열방들 앞에서 기쁨과 찬양의 원천이 될 것이고 여호와께 영광을 돌리는 곳이 될 것이다. 이스라엘이 이처럼 여호와 앞에 바르게 서는 것은 전 세계적인 의미를 띠는 것이다. 즉, 지상 모든 민족들은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위해 행하신 그 모든 선한 일들을 듣고는, 그들의 엄청난 축복을 부러워하고 두려워할 것이다. 또한 여기에는 모든 열방들 위에서 다스리시는 여호와의 우주적 통치에 대한 의미도 포함되어 있다(Thompson).
그들의 죄와 고통이 하나님의 명예를 손상시켰는가? 그러나 이제 그들이 회개하고 돌아옴으로 그를 찬양하게 될 것이라고 하신다(9절). 이제 예루살렘은 재건되며 유다에는 사람들이 거하게 되며 하나님에게 그들은 "기쁜 이름이 된다." 그들이 하나님의 노를 격발 시킨 만큼 이제 그들의 찬양은 하나님에게는 기쁨이 된다. 또한 하나님은 "열방 앞에서 찬송과 영광이 되신다." 그들은 돌아와서 하나님께 복종함으로 그에게 영광을 돌릴 것이며 또한 하나님은 그들에게 은혜를 베푸심으로 스스로 영광을 취하신다.
이 민족이 과거에는 신앙에 먹칠을 하였지만 새롭게 형성된 국가는 신앙을 만방에 떨치게 한다. 열방들이 하나님께서 은혜로 "이 백성에게 베푼 모든 복을 들으며" 그의 섭리에 의하여 그들에게 베푸신 복을 듣게 될 것이다. 그들이 애굽에서 해방될 때에 세상이 놀람으로 소란스러웠듯이 바벨론에서의 그들의 귀환도 놀라운 소식이 된다. 이제 열방이 "이 모든 복을 인하여 두려워하며 떨게 된다."
① 하나님의 백성들까지 두려워 떨게 된다. 그들은 이 사실을 인하여 깜짝 놀랄 것이다. 또한 이렇게 선하신 하나님께 범죄하고 그의 은혜를 배신한 것을 두려워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이 여호와와 그의 선하심을 두려워하리로다" (호 3:5)라 하였다.
② 인접 국가들이 예루살렘의 번영으로 인하여 두려워하게 된다. 그들은 유대 민족이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강성하여짐을 바라보며 유다의 적국이 될까 두려워할 것이다. "주님의 교회가 달처럼 아름답고 태양처럼 맑을 때 교회는 기치를 든 군대처럼 두려움의 대상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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