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데스다 원문 성경강해

[예레미야 1장 히브리어 주석 강해] 예레미야 선지자 소명(렘 1:1-10)

성령의 능력 2021. 5. 11.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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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예레미야 1장 히브리어 주석 강해 중에서 예레미야의 선지자 소명이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하나님은 베냐민 땅 아나돗의 제사장들 중에서 힐기야의 아들 예레미야를 불렀습니다. 하나님께서 시대마다 사용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여호와 신앙을 버리고 애굽을 의지하는 유다 백성들에게 하나님은 예레미야를 통해서 복음을 선포하게 됩니다. 이 시대 우리도 성도로서 소명을 받아 십자가 복음을 선포하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마지막 종말에 우리는 복음을 선포하여 아직도 죄악 가운데서 고통받고 있는 백성들을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해야 하겠습니다.

예레미야 소명(렘 1:1-10)

 

1절 디브레 이르므야후 벤 힐키야후 하코하님 아쎄르 바아나토트 베에레츠 빈야민

렘 1:1 베냐민 땅 아나돗의 제사장들 중 힐기야의 아들 예레미야의 말이라

=====1:1

우리는 이 예언자의 집안에 관하여 알 수 있다. 그는 힐기야의 아들이었다. 그러나 이 힐기야가 바로 요시야 왕 때에 대제사장이었던 힐기야는 아닌 것 같다(그렇다면, 여기에서 말한 것과 같이 "아나돗의 제사장 중" 한 사람으로 불리지는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사람은 동명이인(同名異人)인 듯하다. 예레미야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부름 받은 자로 나타나 있다. 주 하나님께서 "우리 중에서 일으키실" 예언자는 바로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것으로 일컬어지고 있다(신 18:15, 18)

예레미야는 "제사장들" 가운데서 났고, 또한 제사장으로서 권위의 인정을 받았고, 백성을 가르치도록 임명받았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권위와 임명에 예언자의 특별한 사명까지 더 주셨다. 에스겔도 역시 제사장이었다. 이와 같이 하여서 하나님은 제사장직의 권위가 실추되었을 때에도, 제사장직의 영예를 보호하려 하셨다. 예레미야는 예루살렘에서 약 3마일가량 떨어져 있는 제사장들의 도성, 아나돗의 제사장 중 한 사람이었다. 아비아달의 고향도 거기였다(왕상 2:26).

베냐민 땅 아나돗...예레미야의 말이라 - '아나돗'은 예레미야의 고향으로서 예루살렘 북동쪽 약 4마일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었으며, 오늘날은 '아나타'란 지명으로 불려지고 있다. 이곳은 베냐민 지파에 소속되어 있었으나, 기업이 없는 레위 지파 아론 자손 제사장에게 할당되었다(21:13-19).

한편 제사장 엘리 가문의 마지막 대제사장이었던 아비아달은 다윗을 이을 후계자로 아도니야를 왕으로 옹립하려는 음모에 가담했다는 이유로 솔로몬에 의해 이곳 아나돗으로 추방된 바 있다(왕상 2:26). 한편 예레미야는 제사장 사역을 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아나돗의 제사장'이란 말은 그의 부친 힐기야를 수식하는 말인 것으로 보이며, 만약 예레미야가 제사장이었다면 그의 메시지와 예언에는 어느 정도 그의 제사장 직분의 배경이 반영되었을 것이나 그렇지 않다(Nicholson).

2절 아쎄르 하야 데바르 아도나이 엘라이브 비메 요쉬야후 벤 아몬 멜렉크 에후다 비쉘로쉬 에세레 솨나 레몰르코

렘 1:2 아몬의 아들 유다 왕 요시야가 다스린 지 십삼 년에 여호와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였고 

=====1:2

요시야의 다스린지 삽삼 년에 - 이는 B.C.627년을 뜻하며 예레미야가 선지자로 소명을 받은 때를 가리킨다.

여호와의 말씀이...임하였고 - 이는 예레미야의 예언이 신적 기원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는 요시야 통치 13년에 예언을 시작했다(2절). 요시야 왕 12년에 종교 개혁 사업을 시작하여, 유다와 예루살렘을 비로소 정결케 하여, "그 신당과 목상들과 아로새긴 우상들과 부어 만든 우상들을" 제하여 버렸다(대하 34:3). 그래서 아주 때맞게 이 젊은 예언자가 일어나, 선한 사업을 하는 젊음 왕을 격려했다. 그때에 "여호와의 말씀" 이 그에게 임하여 예언의 책임과 분부뿐 아니라 그가 진술해야 할 사건들 자체에 관한 계시 해 주었다. 요시야와 같은 경건한 지도자들을 후원해 준다는 사실은 사역자들에게 격려가 되듯이, 예레미야와 같은 진실한 열심을 가진 사역자들이 치리자들의 선한 사업을 고무해 주고 도와준다는 사실은 또한 치리자 자신들에게 큰 힘이 되는 것이다.

 

이제 사람들은 이러한 두 힘, 즉 젊은 왕과 젊은 예언자가 힘을 합치니(이와 비슷한 경우가 에스라 5:1, 2에 있음), 교회와 국가의 파멸을 막으려는 완전한 개혁 사업은 성공할 수 있으리라고 기대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그 결과는 그렇지 않았다. 요시야 왕 18년에도 완전히 제거되지 못한 많은 우상의 유물들이 있었음을 본다. 아무리 훌륭한 왕들과 예언자들이라도 개혁을 싫어하는 백성의 멸망을 막기 위해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법이다. 그러므로 비록 개혁의 때였지만, 예레미야는 그들에게 다가오고 있는 멸망을 계속 예언했던 것이다. 개혁이 실효를 못 거둘 때보다 더 무서운 징후는 없기 때문이다. 요시야와 예레미야는 그들을 치유코자 했으나, 그들은 고쳐지기를 원치 않았다.

3절 바예히 비메 예호야킴 벤 요쉬야후 멜렉크 예후다 아드 톰 아쉐테 에세레 솨나 레치드키야후 벤 요쉬야후 멜렉크 예후다 아드 겔로트 예루솰람 바호데쉬 하하미쉬

렘 1:3 요시야의 아들 유다의 왕 여호야김 시대부터 요시야의 아들 유다의 왕 시드기야의 십일년 말까지 곧 오월에 예루살렘이 사로잡혀 가기까지 임하니라 

=====1:3

시드기야의 제 십일 년 말까지 - 이는 예루살렘 함락 때인 B.C. 586년까지를 말한. 그러나 40-44장에 지적되고 있는 바와 같이 예루살렘 함락 이후 몇 년 동안에도 예레미야가 사역 활동을 계속했다는 점에서, 이는 본서의 표제어적인 성격을 띠고 있는 구절로 이해된다.

그는 여호야김과 시드기야 시대에도 계속 예언을 했는데, 이들은 각 11년씩 통치했다. 그는 "예루살렘이 사로잡히기까지" 계속 예언을 했다. 이 무서운 사건은 그가 수없이 예언해 오던 일이었다. 그러나 그는 그 후에도 계속 예언을 했다는데(40:1), 여기서는 그 시간으로 끝나는 것으로 나와 있다. 왜냐하면 그것 요시야 13년부터 사로잡히는 시간까지가 꼭 40년으로서, 그의 많은 예언이 성취되었기 때문이다.


라이트푸트 박사(Dr. Lightfoot)는 이것을, 모세가 자기 백성과 함께 광야에서 하나의 지도자로서 그 백성이 그들의 땅에 들어갈 때까지 함께했던 것같이, 예레미야도 그들이 이교도의 광야로 들어가기 전까지 한 지도자로서 자기 땅에서 글들과 함께한 것이라고 관찰하고 있다. 그러므로 그는 이것을 유다의 사악의 마지막 40년을 나타내는 특별한 표지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에스겔은 일 년을 하루로 잡아 40일을 견딘 것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 40년 동안 완고하게 타락했던 그들 가운데서 예레미야는 계속 예언을 했고, 그것이 그들의 사악 성을 더욱 크게 했던 것이다. 이 예언자를 통해서, 하나님은 그들의 악행을 40년간 참으셨던 것이다. 그러나 마침내 하나님의 진노는 와야 했다.

4절 바예히 데바르 아도나이 엘라이 레모르

렘 1:4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1:4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니라 - '말씀'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다바르'는 말뿐만 아니라 '행위'도 포함하는 말이다. 예레미야는 실제로 설교를 통해서 뿐만 아니라 상징적 행위를 통해서도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달하였다(13,18,19; 51:59-64).

5절 베테렘 에초르카 바베텐 예다에티카 우베테렘 테체 메레헴 히크다쉐티카 나비 라고임 네타티카

렘 1:5 내가 너를 모태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배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성별하였고 너를 여러 나라의 선지자로 세웠노라 하시기로 

=====1:5

내가 너를 복중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 이는 예레미야가 이스라엘에게 보내어질 하나님의 사자로 선택받은 것이 걸코 우연하게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원하신 계획 속에 포함되어 있었음을 나타낸다(롬 8:29,30 참조).

너를 구별하였고 - '구별하였고'의 원어 '카다쉬'는 특별한 용도로 사용하기 위해 다른 것들과 구분해서 따로 두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인간, 장소, 간 등이 하나님을 위해 따로 구별되면 오직 하나님만을 위해서 사용되어야 하며, 하나님의 뜻과 반대로 마음대로 그것을 처분하는 것은 참람한 행위이다.

너를 열방의 선지자로 세웠노라 - 이는 예레미야의 특별 임무를 암시하는 내용으로, 그의 예언은 유다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우주적 성격을 띠고 있음을 뜻한다. 실제로 본서의 많은 부분이 열방을 상대로 한 예언이다(46-51).

예레미야는 일찍부터 예언자의 직능에 소명을 받는다. 하나님은 그렇게 일찍 택한 이유를 그에게 알려 주셨다(4,5절).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니라. "어떤 환상이 아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란 것을 그가 만족할 만큼 확신할 수 있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하나님은 "그를 열방," 즉 "열방에 대한 예언자로, "특히 유대 민족에 대한 예언자로 "임명하셨다" 고 말씀하셨다. 유대 민족도 이제는 "열방 중의 하나로" 여겨졌으니, 그들도 이방인들의 우상 숭배를 배우고 그들의 일을 본받았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그런 취급을 받지는 않았을 것이다(민 23:9).

그러나 그는 유대인에게뿐만 아니라 이웃 민족들을 위해서도 예언자로 세움을 받았다. 그는 이웃 민족을 위해서도 멍에를 메어야 했으며 (27:2, 3), 여호와의 진노의 잔을 마시지 않으면 안 되었다(25:17), 그는 아직까지도 그의 책을 통해서 민족적 심판이 무엇이며, 민족적 죄의 결말이 무엇인지를 여러 민족들에게(그중에는 우리 민족도 들어 있음) 말하고 있는 예언자이다. 여러 민족들이 예레미야를 자기네들의 예언자로 받아들이고, 그가 말한 예언에 귀를 기울인다면 좋을 것이다.

6절 바오마르 아하흐 아도나이 아도나이 힌네 로 야다에티 다베르 키 나아르 아노키

렘 1:6 내가 이르되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보소서 나는 아이라 말할 줄을 알지 못하나이다 하니 

=====1:6

나는 아이라 - '아이'(나아르)는 문자 그대로 어린아이를 가리킨다기보다는 경험이 없고 무지한 젊은이라는 정도의 의미로 이해된다. 바벨론, 애굽 등과 같은 대제국들을 상대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한다는 것은 예레미야에게 대단히 두렵고 떨리는 임무였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모압이나 에돔, 다메섹, 블레셋, 암몬과 같은 약소국이라 하더라도 이스라엘과 오랫동안 투쟁해 온 긴 역사를 가진 나라들이었기 때문에, 예레미야에게는 역시 힘겨운 상대로 느껴졌을 것이다.

말할 줄을 알지 못하나이다 - 그의 이런 주저하는 행동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한 모세의 반응과 유사하다. 모세 역시 처음에는 자신의 무능을 고백하며 고사(苦辭)하는 반응을 보였던 것이다(출 3:11; 4:1).

예레미야는 이 영광스러운 부름을 겸손히 거절한다(6절). 하나님은 그를 이미 예정하셨지만, 그에게는 이것이 새로운 것이었고, 자기가 그 민족을 향한 예언자가 된다는 사실을 들었을 때 대단히 놀랐다.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의도가 어떤 것인지 우리는 알지 못하나 하나님은 아신다.


어떤 사람은 예레미야가 그것을 자기의 출세로 생각했을 것이라고 여길 것이다. 사실이 그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자기는 그 일을 받아들일 만한 자격이 없다는 핑계로 거절했다. "오 여호와 하나님이여, 나는 예언자들처럼 위대한 사람들과 군중들 앞에서 말할 수 없나이다. 나는 아름답게나 유창하게 말할 수 없고,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과 같이 그렇게 말을 잘할 수 없습니다.

나는 권위 있게 말할 줄도 모르고, 주목을 끌리라고 기대할 수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아이요. 그러므로 나의 어림이 멸시받을 것입니다. "우리도 하나님께 봉사할 때, 혹 우리가 그 일을 잘못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을 가지는 것이 좋다. 또한 우리 자신을 비천하게 생각하고 자기의 능력을 과신하지 않는 게 좋다. 젊은 사람들은 자신들이 정말로 그러하다는 사실을 고려해야 하며, 엘리후가 그러했듯이 두려워해야 하며, 자기들의 연소함을 무시하고 무모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7절 바요메르 아도나이 엘라이 알 토마르 나아르 아노키 키 알 콜 아쎄르 에쉘라하카 텔레크 베에트 콜 아쎄르 아차베카 테다베르

렘 1:7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아이라 말하지 말고 내가 너를 누구에게 보내든지 너는 가며 내가 네게 무엇을 명령하든지 너는 말할지니라 

=====1:7

내가 네게 무엇을 명하든지 너는 말할지니라 - 사람이 할 수 없는 그 시점이 바로 하나님의 능력의 시작임을 잘 보여주는 장면이다. 예레미야에게는 청중을 선택할 권한이 없었다. 그는 여호와께서 보내는 곳이면 어디나 가서, 누구를 막론하고 전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단순히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을 전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며, 어떤 상황에서도 여호와의 말씀을 변형시키지 말고 그대로 전해야 하는 것이다.

그가 어린아이라는 이의를 제기하지 말라. 아이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예언자가 되어야 한다(7절). 나는 아이라고 더 이상 말하지 말라. 네가 어리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너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았나니, 네가 어리다는 것 때문에 종하는 일을 저버리지 말라. 내가 너를 누구에게 보내든지 너는 가며 내가 네게 무엇을 명하든지 너는 말할지니라."

여기서 우리는 다음의 사실에 유의하자. 비록 우리의 약함과 부족함에 대한 의식이 우리를 겸손하게 해야겠지만, 하나님이 사명을 위해 부르실 때는 물러나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은 모세의 겸손한 변명에 대해서도 노하셨다(출 4:14).

"하나님이 너와 함께 하리리, 너의 나이 어림 때문에 용기를 잃지 마라. 비록 네가 아이라 할지라도, 또한 그들이 아무리 크고 많은 수라고 할지라도 너는 갈 수 있어야 한다. 내가 네게 명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판단하고, 기억하고, 말해야 하며, 또한 마땅히 말해야 할 말을 해야 한다."

사무엘은 그가 어린아이였을 때에 하나님께 받은 말씀을 엘리에게 전했다. 하나님은 당신이 원하실 때는 어린아이들로도 예언자로 세우실 수 있고, 아기나 젖 먹는 갓난아기의 입을 통해서도 능력을 나타낼 수 있다는 것을 유의하자.

8절 알 티라 미프네헴 키 이트카 아니 레하칠레카 네움 아도나이

렘 1:8 너는 그들 때문에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너를 구원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시고 

=====1:8

내가 너와 함께하여 너를 구원하리라 - 여호와께서 함께하시며 보호하시는 이상 두려워할 게 없다는 뜻이다. 예레미야는 출애굽 이야기를 알고 있었을 것이며,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들을 어떻게 애굽에서 구해내셨는지 또한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본문에서 '구원하리라'에 해당하는 원어는 '나찰' 동사의 히필형 부정법인데,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구원하셨다는 말도 이 동사로 기록되었다(18:8).

많은 원수와 많은 반대를 받게 된다고 해서 거절해서는 안된다. 하나님은 그를 보호하는 자가 될 것이다(8절). "그들의 얼굴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이 크게 보이고, 너를 노려보고, 또 너의 면목을 해칠지라도 그들이 가장 싫어하는 것을 말하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너는 왕 중 왕 되시는 이의 이름으로 말하고, 그로부터 오는 권위로 말하며, 그들의 체면을 무시하고 말하라. 그들이 비록 성난 모습을 할지라도 두려워 말며, 그들이 불쾌해해도 두려워 말고, 그 결과에 대한 염려 때문에 당황하지도 말라."

하나님으로부터 온사명을 가진 사람은 "사람의 얼굴을" 무서워해서는 안된다(겔 3:9). "너는 대담하고 안심할 이유가 있다. 그것은 내가 너와 함께하기 때문이다. 내가 너의 역사를 도울 뿐 아니라 너를 박해자들의 손에서 건질 것이기 때문이다. 만일 하나님이 너를 위하신다면, 누가 너를 대적하겠는가."

만일 하나님이 당신의 사역자들을 고통에서 이끌어 내시지 않는다 할지라도 고통 중에 있는 그들을 붙들어 주신다면, 결과는 같은 것이다. 가테이커(Gataker)씨는, 세상의 군왕들은 보통 자기들의 대사와 동행하지 않는 것이 관례이나, 하나님은 당신이 보내신 자들과 동행하시며, 당신의 능력 있는 보호로 함께하시고, 어느 때나 어디서나 그들 곁에 임재해 계신다고 말했다. 그러므로 그들은 마땅히 힘을 잃지 말아야 한다(행 18:10).

9절 바이쉘라흐 아도나이 에트 야도 바야가 알 피 바요메르 아도나이 엘라이 힌네 나타티 데바라이 베피카

렘 1:9 여호와께서 그의 손을 내밀어 내 입에 대시며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내 말을 네 입에 두었노라

=====1:9

보라 내가 내 말을 네 입에 두었노라 - 이 말씀은 신 18:18의 내용을 상기시킨다. 이것을 통해 예레미야는 자신이 모세의 후계자로 약속된 바 있는 선지자임을 자각했을 것이며, 더욱 확고한 믿음을 얻게 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하나님을 아는 자답게 총명하게 말할 수 있게 할 것이다(9절). 그는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환상(vision)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여호와께서는 당신의 손을 펴시어 분명한 표정으로 그에게 필요한 만큼 말씀의 은사를 주실 것이다. 하나님은 그의 입에 손을 대심으로서, 그의 입술을 여셨다. 그러므로 그의 입은 하나님을 찬양하는 말씀을 나타낸다. 그를 어떤 경우에도 대처할 수 있도록 준비하시기 위해 당신의 말씀을 그의 입에 두셨다. 그래서 인간의 입을 만드신 분으로 말미암아 주어진 말씀이 결코 보내심 받은 그에게 부족할 수 없게 하셨다. 

하나님은 그의 머리에 지식을 넣어 주셨을 뿐 아니라, 그의 입에 말씀도 주셨다. 즉 거기에는 성령이 가르치시는 말씀이 있다(고전 2:13). 말씀이 정확하게 전달되기 위해서 하나님의 메시지가 전달자 자신의 입에 있어야 한다는 것은 합당한 이론이다. 에스겔 3장 4절에 "내 말로 그들에게 고하라" 고 했다. 성실하게 그렇게 하는 자들은 때에 맞는 교훈이 부족하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은 말해야 할 시간에 말씀과 지혜를 주실 것이다(마 10:19).

10절 레에 히프카드티카 하욤 하제 알 하고임 베알 하마멜라코트 리네토쉬 베리네토츠 우레하아비드 베라하로스 리브노트 베리네토아

렘 1:10 보라 내가 오늘 너를 여러 나라와 여러 왕국 위에 세워 네가 그것들을 뽑고 파괴하며 파멸하고 넘어뜨리며 건설하고 심게 하였느니라 하시니라

=====1:10

여기서는 예레미야의 특수 임무가 언급되고 있다. 그가 전달할 선포의 내용은 크게 파멸과 회복으로 나누어지고 있다. 그는 사역 초기에는 주로 유다와 예루살렘에 임할 심판을 강도 높게 설교하였고, 후기에 가서는 회복에 대해 말하였다. 또한 본절은 46-51장에 언급된 이방 민족에게 고하는 심판의 예언을 반영하고 있다. 한편 본절에는 모두 여섯 개의 동사가 사용되고 있는데 네 개는 파괴적인 측면을, 두 개는 건설적인 측면을 가진 동사이다.

하나님으로부터 권위를 받은 자답게 능력 있게 말씀할 수 있게 하실 것이다(10절). 여기에서 그에게 맡겨진 것은 이상한 사명이다. 즉 "보라, 내가 오늘날 너를 열방 만국 위에 세우고"라고 되어 있다. 이 말씀은 대단히 위대하게 들리지만, 예레미야는 아직 초라하고 볼품없는 한 제사장에 지나지 않았다. 그는 군왕과 같이 칼로 열국을 다스릴 자로 세워지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의 권능으로 행할 예언자로 세움을 받았다. 국왕들보다 교황의 우위를 주장하고, 국가를 뜻대로 처분할 수 있는 권위를 교황이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교황이 과연 예레미야가 가졌던 것과 같은 예언자의 특별한 영적 권위를 가지고 있는지를 입증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고 서야 어떻게 예레미야가 영으로 말미암아 가졌던 그러한 능력을 교황이 가질 수 있겠는가? 예레미야가 가졌던 능력(그는 이런 능력을 가졌음에도 비천하고 멸시받고 억눌림을 당하면서 살았다)은 교만한 인간들을 만족시키는 능력은 아니다. 예레미야는 "모든 민족들 위에" 세움을 입었다. 즉 그가 예언을 했던 나라들로서 첫째는 유대 민족이요, 그밖에 그 이웃에 있던 여러 강대국들 위에 세움을 받은 것이었다. 그는 그들로부터 칭찬도 요구하지 않고 그들의 뇌물로 자신의 부요도 구하지 않고, 오히려 그들의 "뿌리를 뽑으며, 파괴하며, 파멸하며, 넘어뜨리며 건설하며, 심게 하기 위하여" 그들 위에 세움을 받았다.

그는 그들 중에 있는 우상 숭배와 다른 악독함을 뿌리 뽑고, 파괴하고 파멸하기 위하여, 또 오랫동안 뿌리박고 있던 그들의 사악한 습관이나 관습을 근절하기 위하여, 또 죄의 왕국을 넘어뜨리기 위하여 그리고 그들 중에 종교와 도덕을 심고 건설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그 민족을 개혁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그러므로 선한 것을 소개하고 건설하며 악한 것을 제거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그는 그들의 개심 여하에 따라 그들의 처지가 결정된다는 사실을 그들에게 말해야 한다. 그는 열국과 열방에 대하여 취하시는 하나님의 방법의 선언에 따라, 그들 앞에 "생명과 사망," "선과 악"을 제시해야 한다(18:7-10). 그는 자기들의 악함으로 하나님을 거역하는 자들에게는 "뽑히움과 파멸"이 있음을 확신시켜야 하고, 회개하는 자들은 "심기우고 세워지리라"는 사실을 확신시켜야 한다. 그는 민족의 운명을 읽을 수 있는 권위를 받았고 하나님은 그것을 "비준하시며, " "이루실 것이다" (사 44:26).

따라서 그는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행동한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부분적으로는 예언의 말씀이 얼마나 확실한가를 보여 주기 위하여-즉 그 말씀이 이미 성취된 것처럼 확실히 성취될 것을 나타내며, 또 부분적으로는 예언자의 직책에 영광을 두며 참으로 그 직책을 위대하게 함으로써, 남들이나 예언자 자신들이 그 직능을 무시하는 일이 있도록 하기 위해 그렇게 표현된 것이다. 그러나 복음 선교 사역에는 더 큰 영광을 주셨다. 그리스도는 복음 선포의 능력을 주실 때, 그의 사도들에게 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지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는(요 20:23) 특권과 "매고 푸는" (마 18:18) 특권을 주셨다.

[요한계시록 11장 설교말씀] "일곱째 나팔소리와 천상예배”(계 1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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