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그리스도의 겸손(빌 2:1-10)
빌2:1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무슨 권면이나 사랑의 무슨 위로나 성령의 무슨 교제나 긍휼이나 자비가 있거든
빌2:2 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마음을 품어
빌2:3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빌2:4 각각 자기 일을 돌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라
빌2: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빌2: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빌2:7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빌2: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빌2:9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빌2:10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본문에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각각 자기 일을 돌아볼 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의 일을 돌아보라!라고 가르치고 있다. 오늘 우리는 교만한 마음으로 남을 무시하고 나를 높이기를 좋아하며, 자기 일, 자기 이익만 챙기기 때문에 남의 일은 무시되고, 남에게 피해를 끼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우리가 내 이익만 생각하게 될 때 남에게 직접 해를 주는 경우가 있고 간접적으로 피해를 주는 경우가 있다.
롬 1:29-31에 보면 이런 두 종류의 악덕들을 말한다. 첫째,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 이렇게 남에게 직접적인 해악을 끼치는 악덕들이 있다. 요즘 이 사회에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는 살인, 폭력, 불화, 사기, 인신매매, 마약밀매, 등 사회의 거머리같은 존재들이 많다.
둘째, 간접적으로 남을 해치는 악덕이 있다. 아직 내집 한 칸 마련하지 못한 사람들이 많은데 돈 많은 사람들이 자기 집을 두채, 셋 채씩 심지어 자녀, 친척의 이름으로 해서 몇 채씩이나 사두게 되면 그만큼 집 없는 사람은 집 마련하기가 더 어려워진다. 돈 꽤나 있다고 별장을 여기저기 사두고 온갖 화려한 음식점과 쾌락 업소를 드나들며 돈을 물쓰듯 쓰게 되면 얼핏 보면 자기 돈을 자기가 알아서 쓰는 것이지만 이 나라 경제발전과 사회복지를 위해 쓰여야 할 돈이 개인의 낭비에 과대 배당되기 때문에 이 나라 온 국민에게 악을 끼치는 것이다. 그게 다 자기만 생각하고 남은 돌아보지 않는데서 발생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우리 성도들은 교회 내에서도 다른 성도의 일, 다른 기관의 일도 돌아보며 함께 협력할 줄 알아야 한다.
본문 "돌아보라."하신 말씀은 주의 깊게 보라, 관심을 가지라는 말이다. 이 단어의 명사 형태는 경비원, 표적 등의 뜻이 있다. 경비원이 자기 담당구역을 잘 살피듯이, 궁수가 표적을 뚫어지게 바라보듯이 우리가 자기 일을 잘 돌아보고, 더 나아가 다른 사람들의 일도 이렇게 돌아보라는 것이다. 한 사람이 집중해서 돌아보는 것이 무엇이냐에 따라 그 사람의 인격 됨됨이를 알 수 있다. 도둑질할 집을 알아두기 위해 골목을 돌아보는 사람이 잇고, 선행할 집을 찾아보기 위해 빈민가의 골목을 돌아보는 사람이 있다. 두 사람 사이엔 하늘과 땅의 차이가 있다. 그러면 우리가 무엇을 돌아볼 것인가? 나를 중심 해서 동심원이 그려지고 있다. 먼저 자기 일을 돌아 보라 했다.
첫째, 자기의 영적 상태, 신앙 상태를 늘 돌아보아야 한다.
눅 11:35에 "네 몸의 등불은 눈이라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만일 네 눈이 나쁘면 네 몸도 어두우리라. 그러므로 네 속에 잇는 빛이 어둡지 아니한가 보라" 하셨는데 여기서 보라 하는 말씀이 곧 돌아보라는 이 단어와 같다. 자기의 영적 상태를 주의 깊게 돌아보아야 한다. 지갑을 잃어버리면 어디서 잃어버렸을까 생각하고 찾으려 하는데 영적 눈이 어두운데 무관심하는 이는 주님께로부터 먼 사람이요, 구원에 먼 사람이다. 우리는 자기 영혼, 자기 신앙, 또 자기 직분, 자기 직업, 자기 건강 등에 신경을 쓰고 모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잘 돌아보는 선한 청지기가 되어야 한다.
둘째, 자기 가족을 돌아보아야 한다.
딤전 5:8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아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 말씀했다. 자기의 배우자의 신앙과 관심사를 돌아보아야 하고 부모의 필요가 무엇인지 돌아보고 자녀들의 건전한 성장을 돌아보아야 한다. 재산을 잃으면 일부분을 잃은 것이고 명예를 잃으면 만금을 잃은 것이고 건강을 잃는 것은 전부를 잃는 것이라 했는데, 가정의 안락과 행복을 잃는 것도 어느 것 못지않게 큰 것을 잃는 것이다.
셋째, 다른 사람들을 돌아보라 했다. 이것이 본문에서 말하고자 하는 교훈이다.
다른 사람의 일을 돌아보기 위해서는 (1) 먼저 겸손한 마음이 바탕을 이루어야 한다. 겸손한 마음으로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이것이 섬김의 기본자세이다. 식당 종업원이 음식을 만들기 앞서 앞치마를 두르듯이 성도는 교회일을 하기 전 겸손의 치마를 둘러야 한다. (2) 다른 사람의 일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한다. 히 10:24절엔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이들의 습관처럼 하지 말고 오직 그날이 가까움을 볼 수록 더욱 그리하자!"라고 했다. 다른 성도들의 신앙생활에 서로서로 관심을 가지고 심방하고 격려하고 기도하는 것이다.
갈 6:10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지니라"했다. 성도들 간에 경조사에 함께 마음을 같이 하고 도와야 하겠다. 금전적 어려움들도 있지만 직업, 인간관계, 건강상의 문제 등 갖가지 어려움들이 많다. 이런 것들에 대하여 함께 기도하고 격려하도록 할 것이다. 눅 10:34에 예수님의 이야기에서 네 종류의 사람이 등장한다.
첫째, 이웃을 해치고 버리고 간 강도가 나오고 둘째, 불행을 당한 사람이 등장하고 셋째 그 불행을 보고 피하여 지나가는 성도가 나오고 넷째, 자기의 스케줄을 잠시 멈추고 버려진 사람에게 다가가서 친절히 돌보아 준 선한 사마리아 인의 모습이 나온다. 이 네 종류의 사람들은 우리 주위에서 흔히들 볼 수 있고 우리들도 그들 가운데 어떤 한 사람이 될 수 있다. 내가 남에게 해를 입고 꼼짝 없이 남의 도움을 받아야 할 처지에 이르기도 한다. 나만의 유익만 추구하다 보면 남에게 해를 주는 자가가 되기도 한다. 남의 불행을 보고 지나쳐 버리는 사람이 될 수도 있다. 주님은 우리에게 남의 불행을 가까이 다가와서 도와주는 사람이 되라고 말씀하신다. 바울 사도는 본문에서 다른 사람들을 돌아보는 아름다움 모습들을 실례로 보여 주고 있다.
(1) 죄인들을 위해 하늘나라의 자기 권세와 영광을 비우시고 인간이 되어 오시어 우리 죄를 대신하여 죽어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이다(5-10). 주님의 모습 속에서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아보는 참 사랑의 영원한 본보기를 보여 준다. 주님은 자기를 희생하심으로써 우리들을 돌보셨다. 늑대의 발톱에 잡혀있는 어린 양처럼 죄악과 사단의 노략물이 된 인생을 구원하시기 위해 자기 몸을 내어 던져 죽으셨다. 남을 돌보는 데는 자기의 희생이 따르게 된다.
(2) 바울---16절에 "나의 달음질","수고"라는 말이 나온다. 바울은 빌립보 성도들을 위해 최선을 다해 수고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 수고란 말은 탈진상태가 되기까지, 기진맥진하기까지 일하였다는 말이다. 여인이 해산을 할 때 거의 탈진 상태가 되기까지 수고를 해서 아기를 낳지요. 바울 사도는 자기의 명예나 정욕을 구하지 않고 모든 에너지와 시간과 물질들을 전부 쏟아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그들의 신앙 성장을 위해 노력하고 그들의 온전한 구원을 위해 투자했다. 또 17, 18절엔 그들의 구원 완성을 위해 자기의 몸이 첫 번째 제물이거나 본 제물이 아니라 보잘것이 없는 마지막의 마무리 제물이 되더라고 기뻐하리라고 했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마음이요, 남을 위하여 드려 지는 삶입니다.
(3) 디모데---19-22절, 그는 자기만 내세우는 자가 아니라, 바울과 뜻을 같이 하여 일을 한 사람이었고, 아버지의 마음을 잘 헤아리는 착한 효자가 아버지의 뜻을 받들어 힘껏 수고하듯이 바울 사도를 위하여 그렇게 했다고 한다(22). 21절 말씀으로 보아 그 당시 예수를 전하기 위해 따른다는 것이 너무 어렵고 고독한 때에 모든 성도들이 자기 일을 구하고 전도하는 일이나 봉사하는 일에 선뜻 나서지 못하고 그리스도 예수의 일을 구하지 않던 때 디모데는 귀한 젊음을 주님께 바쳐 그 어려운 때에 복음을 위해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4) 에바브라 디도(25-30)---- 이 사람은 빌립보 교회의 대표로 멀리 로마 옥에 갇힌 바울 사도에게까지 가서 교회를 대표하여 바울을 위로하고 도운 분이다. 30절을 보니 그가 그리스도의 일을 위하여 죽기에 이르러도 자기 목숨을 돌아보지 아니했다고 한다. 그 역시 주님의 희생의 본을 따른 훌륭한 성도였다.
(5) 빌립보 교회 성도들(25)---- 빌립보교회 성도들은 옥에 갇힌 바울에 대해 무관심하지 않았다. 물질을 모으고 에바브라 디도를 대표로 세워 그를 몰래 바울 사도에게 보냈다. 이것이 첫 번째가 아니라 벌써 그들이 처음 주님을 믿을 때부터 그들은 이렇게 사랑으로 사도의 복음 전파 사역을 도왔다.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아보는 아름다운 모습을 그들에게서 발견하게 된다.
바울은 이런 아름다운 모습,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으로 가각 자기 일을 돌아볼뿐더러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아보았던 분들을 이야기하면서 오늘 저와 여러분에게 도전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부자 되기를 힘쓴다. 그러나 누가 참 부자인가? 천국에서 부자는 많이 소유한 사람이 아니라 많이 주는 자이다. 누구나 아름다운 이름 즉 명예를 얻기를 원한다. 그러나 진정 높은 자는 더 많이 낮아 진자이다. 선거 유세한다고들 하는데 다른 후보들을 깍아내리고 자기를 칭찬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상당히 어려운 일이겠지만, 예수 믿는 이라면 좀 다른 후보들 훌륭한 점 하나씩 들어서 칭찬해주고 자기의 연설을 한다면 얼마나 사람들에게 깊은 감동을 주겠는가? 그 사람이야말로 가장 높은 이라고 존경을 받을 것이다.
누구나 더 위대해지길 원한다. 그러나 위대한 이는 더 많은 권력을 가진 자가 아니라, 더 많이 남을 위해 봉사한 자이다. 우리 주님은 가장 가난하셨지만 가장 많이 주셨기에, 자기 생명을 주시고, 하늘의 자기 지위를 우리에게 주셨기에 자장 큰 부자이시다. 가장 낮아지셨으나 모든 이름들 위에 뛰어난 이름을 얻으셨으며, 가장 천하게 되셨으나 가장 큰 분이 되셨다.
성도 여러분! 더 부자 되려고 애쓰지 말고 더 줄려고 애쓰시기 바란다. 더 높아지려고 하지 말고 남을 높이려고 애씁시다. 더 위대해지려고 애쓰지 말고 남의 필요가 무엇인지 살펴보고 더 많이 봉사하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진정 부자 되고, 높아지며, 위대하게 되는 길입니다. 구약 성경에 에티오피아의 시바 여왕이 솔로몬 왕을 찾아왔다.
"당신의 지혜는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습니다. 당신이 백성들을 재판하는 것을 보게 해 주시오." 그래서 다음날 왕궁 뜰에 두 개의 왕좌가 배설되고 싸움 중인 사람들이 불리어 나왔다. 두 명의 남자는 수염을 붙잡고 발로 차며 서로에게 모욕적인 언사를 퍼부었다. 왕이 무엇 때문에 그렇게 싸우느냐고 물었다. 한 사람이 말했다. "오! 왕이시여! 제가 이 무뢰한에게 밭 한 떼기를 팔았고 이 작자는 그 값을 치렀습니다. 그걸로 이 문제가 다 끝났죠. 그런데 다음날 이 자가 새로 산 그 밭을 파다가 온갖 보석이 가득 담긴 보물단지를 발견했습니다. 제가 이 사람에게 밭을 팔 때는 밭과 그 속에 있는 모든 것을 다 판 셈이니까 그 보화는 마땅히 저 사람 것이죠. 밭을 팔기 전에 그것을 발견하지 못한 것은 완전히 제 실책이었지요.
그러나, 이젠 그 보화는 저 사람 것입니다. 그런데 저 사깃꾼 같은 놈이 내게 와서 "형제여, 내게 그 밭을 잘못 팔았소. 내가 당신께 준 돈을 돌려주고 밭과 보물을 당신이 도로 가져가시오."라고 하지 않겠습니까? 이미 끝난 거래를 가지고 저에게 가져와서 나중에 저에게 불의한 재물을 취했다고 하나님께 벌을 받으라는 겁니다. 그리고 상대방을 향해 고함을 질렀다. "이 사기꾼아! 보물은 네 것이다."
왕은 다음 사람에게 의견을 말해 보라고 했다. "왕이여! 제 영혼을 불쌍히 여겨 주소서. 제가 산 것은 밭떼기 그 이상의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저는 은전 몇 냥을 주고 수 백억 자리 보물을 차지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 일은 부당한 일이고, 저는 정직한 사람으로서 하나님의 눈을 정면으로 쳐다볼 수 있기를 원합니다. 이 사람에게 보물은 자기의 것이니 보물과 밭을 도록 가져가라고 제발 말해주십시오."
그때 솔로몬 왕이 처음 남자에게 물었다. "그대에게 자녀가 있는가? "열여덟 살 된 딸이 하나 있습니다." 그리고 자네는? "제게는 스무 살 난 아들이 있습니다" 왕이 판결을 내렸다. "그대들의 아들과 딸을 결혼시키고 보물은 그들의 지참금으로 주도록 하거라." 두 사람이 서로 껴안자 재판은 끝났다. 여왕이 너무나 놀라운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나는 서로가 상대방의 권리를 주장해 준, 싸움을 본 적이 없습니다. 어찌하여 귀국에서는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까?" 왕 왈, "우리 백성은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인 줄 모르셨습니까? 우리나라는 거룩한 나라인데, 우리나라에서도 큰 싸움이 일어나는데 그 이유는 상대방을 자기보다 더 낫게 여기고 의견의 차이가 있을 때는 상대방의 의견이 옳다고 주장하기 때문입니다."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사회나 정부나 교회나 내 입장만 서로 내세우다 서로 지치고 갈라지고 발전하지 못하는 이기주의 병이 만연하는 요즈음,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인 우리 성도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이렇게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고 다른 사람의 일을 돌아보아 남을 위해 자기를 희생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하겠다. 이것이 소금 됨의 길이요, 빛을 밝히는 길이다.
[히브리어 성경 욥기 주석 강해] 인생의 짧음과 헛됨에 대한 탄식(욥 9:2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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