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짧음과 헛됨에 대한 탄식(욥 9:21-35)
21절 탐 아니 로 에다 나피쉬 에미아스 하야이
성 경: [욥9:21]
주제1: [빌닷에 대한 욥의 항변]
주제2: [욥이 말하는 자신의 처지]
내가 나를 돌아보지 아니하고 - 회복의 가능성이 없는 자신의 병세에 회의를 느끼고 체념적으로 한 말이다.
내 생명을 천히 여기는 구나 - 여기서 `생명'은 문자적으로 `목숨', `삶'을 의미하기도 하며, 동시에 현재 처한 욥의 상황을 비유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처럼 욥이 자신의 생명(삶)을 혐오한 것은 (1) 질병의 악화(5절), (2) 정신적(신앙적) 고통의 심화(13-15절), (3) 회복의 가능성 전무(全無)(7,8절) 등이 그 원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렇듯 욥이 강력하게 삶을 저주하고 죽음을 희구한 것은 역설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분의 구원을 간구하는 욥의 고투를 반증한다고 볼 수 있다.
22절 아하트 히 알 켄 아마리티 탐 비라샤 후 미칼레
성 경: [욥9:22]
주제1: [빌닷에 대한 욥의 항변]
주제2: [욥이 말하는 자신의 처지]
일이 다 일반이라(아하트 히이) - 문자적인 의미는 `그게 모두 동일하다'(It is all the same)이다. 이는 선악이 공히 똑같이 대우받는다는 의미이다. 나름대로 경건에 대해 누구보다 자신 있었던 욥 자신이 재난을 받자 이러한 생각을 하였을 것이다.
23절 임 쇼트 야미트 피트옴 리마사트 니키임 일리아그
성 경: [욥9:23]
주제1: [빌닷에 대한 욥의 항변]
주제2: [욥이 말하는 자신의 처지]
홀연히 재앙이 내려 도륙될 때 - 이는 욥이 그의 가축과 자녀를 창졸간에 잃어버린 사건(1:13-19)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이다.
무죄한 자의 고난 - 여기서 욥은 자신의 고난이 그의 범죄에 기인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도리어 그는 그것이 하나님의 주권, 곧 의인과 악인을 동일하게 취급하시는(22절) 하나님의 주권에 기인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로써 그는 자신이 무죄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변호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욥의 이해는 다분히 현상적, 다면적인 경향이 짙다. 왜냐하면 제반 현실사에서 악인의 흥왕과 의인의 고난이 자주 목도되는 것이 사실이기는 하나, 그것이 의인과 악인을 동일한 수준에서 위급하시는 하나님의 섭리에 의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하나님께서는 일시적으로 악인의 흥왕을 묵과, 허용하실 뿐이다. 이는 사단의 활동을 하나님께서 일시적, 제한적으로 허용하시는 것과 마찬가지이다(1:12; 2:6). 그러므로 욥의 친구들과 마찬가지로 욥 역시, 현실에 나타나는 현상에만 집착한 나머지 하나님의 숨겨진 공의를 온전하게 보지는 못했을 것이다.
24절 에레츠 니티나 비야드 라샤 피네 쇼피테하 이카세 임 로 에포 미 후
성 경: [욥9:24]
주제1: [빌닷에 대한 욥의 항변]
주제2: [욥이 말하는 자신의 처지]
그렇게 되게 한 이가 그가 아니시면 누구이뇨 - 22절에서 욥은 이 세상의 공의와 질서가 왜곡된 것으로 보았다. 그리고 23절에서는 의인의 고난을 기뻐하시는 하나님, 곧 냉소적이며 무자비한 분으로서의 하나님을 보았다. 이와 같은 선상에서 욥은 본문에서 더욱더 신랄하게 하나님께 대한 불평을 털어놓고 있다.
25절 비야마이 칼루 미니 라츠 바리후 로 라우 토바
성 경: [욥9:25]
주제1: [빌닷에 대한 욥의 항변]
주제2: [생명이 짧음에 대한 탄식]
체부 - `시종'(侍從)으로도 번역된다(Pope). 이는 중요한 소식을 전달하기 위해 조정에서 고용한 발이 빠른 자를 가리킨다(대하 30:6; 에 3:13; 8:10, 14). 고대 팔레스틴, 특히 애굽 지역에서는 이러한 전령자들을 많이 사용하여 군사적, 행정적 사무를 원활히 처리하였다.
26절 할리푸 임 아니요트 에베 키네세르 야투스 알레 오켈
성 경: [욥9:26]
주제1: [빌닷에 대한 욥의 항변]
주제2: [생명이 짧음에 대한 탄식]
빠른 배 - 원문의 문자적 의미는 `갈대의 배'이다. 고대인들은 큰 갈대를 이용하여 배를 만들었다. 이 배들은 넓이는 좁고 길이가 긴 유선형이었기 때문에 매우 빠른 속도로 항해할 수 있었다.
움킬 것에 날아 내리는 독수리와도 같구나 - 일반적으로 독수리는 창공을 배회하다가 먹이를 발견하면 전속력으로 하강하여 그것을 채어간다. 이러한 독수리의 하강 모습을 통하여 아무런 소망 없이 허무하게 흘러가는 자신의 삶을 한탄하고 있다. 한편 욥은 육지(`체부', 25절). 바다(`빠른 배'), 공중(`독수리')등에서 빠르다고 생각되는 것을 일일이 열거함으로써 보잘것없고 짧은 자신의 삶을 시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한편 본문에서 욥은 단순히 세월의 빠름을 나타내려 하기보다는 자신의 고통이 멈출 날을 기대하면서 병고 가운데 보내는 참혹한 시일들이 빨리 흘러가기를 소망하고 있다(34절).
27절 임 아미리 에쉬키하 시히 에에지바 파나이 비아빌리가
성 경: [욥9:27]
주제1: [빌닷에 대한 욥의 항변]
주제2: [인간 수고의 헛됨에 대한 고백]
본절에는 극심한 고통 중에 종잡을 수 없이 휘청거렸던 심령을 바로잡으려는 욥의 굳은 결심이 엿보인다(Hartley).
내 원통함을 잊고 - 이는 특히 자신의 처지를 동정하기보다는 오히려 정죄하는 태도를 보였던 친구들을 염두에 둔 말이다. 욥이 하나님께 불만을 토로하였던 것도 친구들의 비난과 조롱 탓이 컸다.
28절 야고리티 콜 아치보타이 야다이티 키 로 티나케니
성 경: [욥9:28]
주제1: [빌닷에 대한 욥의 항변]
주제2: [인간 수고의 헛됨에 대한 고백]
전절(27절)에서 보여주었던 욥의 굳은 결의도 극도의 고통 앞에서는 여지없이 해체되고 말았다.
29절 아노키 에리샤 라마 제 헤벨 이가
성 경: [욥9:29]
주제1: [빌닷에 대한 욥의 항변]
주제2: [인간 수고의 헛됨에 대한 고백]
어찌 헛되이 수고하리이까 - 이 말은 다음 두 가지 뜻을 모두 내포한다. (1) `하나님이 내리시기로 작정하신 고통을 피하려고 해 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Hartley) 이는 곧, 고통의 엄연한 현존 앞에서 깊이 절망해하는 탄식이다. (2) `하나님이 유죄로 판결하신 마당에 어찌 자신의 결백을 내세울 수 있겠는가'(Pope). 한편 `수고하리이까'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야가'는 본래 `기진맥진하다'라는 뜻으로서 고된 노역으로 말미암은 쇠약함에 강조점을 두고 말이다.
30절 임 히트라하치티 비모 비메 샬레그 바하지코티 비보르 카파이
성 경: [욥9:30]
주제1: [빌닷에 대한 욥의 항변]
주제2: [인간 수고의 헛됨에 대한 고백]
내가 눈 녹은 물로...깨끗이 할지라도 - 여기서 욥은 자신을 정화(淨化)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생각하고 있다. 시 26:6에서 시인은 성소 제단에서 손을 씻음으로써 자신의 무죄성을 입증하려 했다. 신 21;1-9에는 피살된 시체를 발견할 경우 목을 꺾은 암송아지 위에 손을 씻음으로써 그 살해 사건과 무관함을 나타낸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렘 2:22에서 하나님은 `잿물로 씻으며 수다한 비누를 쓸지라도 '유대 백성의 죄가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하셨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본문에서 욥은 한편으로 자신의 무죄성을 주장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하나님 앞에서 결국 흠 많은 존재로 드러날 수밖에 없는 한계 상황을 말하고 있다 하겠다.
31절 아즈 바샤하트 티티빌레니 비티아부니 살리모타이
성 경: [욥9:31]
주제1: [빌닷에 대한 욥의 항변]
주제2: [인간 수고의 헛됨에 대한 고백]
내 옷이라도 나를 싫어하리이다 - 구약 성경에서 종종 의복은 어떤 사람의 도덕적, 영적 특질과 결부되어 언급된다(8:22; 사 52;1; 61:10). 죄악에 대한 징계로 말미암아 황폐화된 예루살렘도 더러워진 치마를 입은 여인에 비유한 바 있다.
32절 키 로 이쉬 카모니 에에네누 나보 야히다브 바미쉬파트
성 경: [욥9:32]
주제1: [빌닷에 대한 욥의 항변]
주제2: [하나님의 절대성에 대한 인정]
앞의 두 구절에서 욥은 자신의 무죄성을 보이기 위한 최선의 방도를 강구하였거니와, 이제 그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기란 불가능하다는 것을 토로하고 있다.
33절 로 예쉬 베네누 모키아흐 야세트 야도 알 쉬네누
성 경: [욥9:33]
주제1: [빌닷에 대한 욥의 항변]
주제2: [하나님의 절대성에 대한 인정]
판결자 -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모키아흐'는 `야카흐'에서 유래된 말이다(Norman C. Habel). 이 단어는 여러 문맥에서 다양한 뜻으로 사용되었다. 지혜 문학에서는 `바로잡다', `경책하다'는 뜻으로 쓰였고(5:17; 잠 9:8) 법정적인 문맥이나 제삼자의 역할을 언급하는 문맥에서는 `판단하다' 혹은 `변론하다'라는 뜻으로 사용되었다(창 31:37; 사 2:4). 여기서는 양자(兩者) 사이에 가로 놓인 벽이나 문제 등을 해소하는 중재자들을 의미한다. 욥은 지식, 능력, 거룩성 등에 있어서 하나님과 자신 사이에 놓인 엄청난 간격을 통절히 인식하고서 그 간격을 연결시켜줄 대상을 마지막 희망으로 찾고 있는 것이다. 이는 어렴풋하게나마 중보 사상을 보여주는 말이라 하겠다(딤전 2:5). 한편 욥기서 중 신약 성경에 그대로 인용된 부분은 단 한 곳뿐이지만(5:13; 고전 3:19) 그 내용상 신약 성경과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는 절들이 더러 있다.
34절 야세르 메알라이 쉬비토 비에마토 알 티바아타니
35절 아다비라 비로 이라에누 키 로 켄 아노키 임마디
성 경: [욥9:34,35]
주제1: [빌닷에 대한 욥의 항변]
주제2: [하나님의 절대성에 대한 인정]
욥은 현재 자신의 판단력과 삶의 의지마저 흐리게 만드는 지독한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게 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이러한 고통 속에 있는 한 객관적 입장에서 스스로를 볼 수도 없었을 것이다.
막대기(쉬베토) - 이는 양 떼를 인도하고 보호하기 위해 목자들이 들고 다녔던 지팡이와 같은 것을 의미한다. 시편 기자는 하나님의 지팡이가 주는 안위 감에 대해 노래하고 있으나(시 23:4), 이 지팡이가 징벌의 도구로 사용되기도 하였다(21:9;사 10:5; 애 3:1).
[느헤미야 히브리어 성경 강해] 남동쪽 성벽 건축자들의 명단(느 3: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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