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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말씀] 망대를 세우는 자와 전쟁에 나가는 임금의 예수님 비유

성령의 능력 2022. 10. 30.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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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대를 세우는 자와 전쟁에 나가는 임금의 예수님 비유 말씀

 

눅14:28 너희 중의 누가 망대를 세우고자 할진대 자기의 가진 것이 준공하기까지에 족할는지 먼저 앉아 그 비용을 계산하지 아니하겠느냐

눅14:31 또 어떤 임금이 다른 임금과 싸우러 갈 때에 먼저 앉아 일만 명으로써 저 이만 명을 거느리고 오는 자를 대적할 수 있을까 헤아리지 아니하겠느냐

 

본문에서 망대 건축하는 자가 먼저 비용을 셈해야 하는 것을 말한다. 어떤 일을 계획하고 시작할 때는 반드시 거기에 소요되는 비용을 계산하여야 한다. 우리도 집을 짓는다고 하면 먼저 건축 비용을 생각하게 된다. 참된 신앙은 많은 비용을 요구하는데, 그것은 열심과 땀과 눈물과 주의라는 비용이다. 세상에서 살아갈 때 하나님 백성은 거룩을 하나님이 요구하신다. 거룩하게 살아가려면 많은 대가를 치루어야 한다.

 

그것은 십자가로도 표현되는데, 십자가는 손해를 의미한다. 수치와 비난을 감수해야 함을 말한다. 수치와 십자가는 서로 결합되어 있다.[히 12:2] 고통과 고뇌를 의미한다. 그리고 십자가는 죽음 그 자체를 의미한다. 이것은 그리스도인이라면 지려고 노력해야 한다. 기꺼이 져야 한다. 고난이 없이는 영광도 없다. 십자가 고난을 통해서 우리가 하늘의 영광을 받는다.

 

신앙생활에는 참으로 많은 비용이 소요된다. 천국 문을 두드리는 데는 열심이 있어야 하고, 험난한 길을 가기 위해서는 땀을 흘려야 한다. 편안한 정자에서 쉬다가 자신의 명부를 잃어버렸을 때는, 자신을 되찾기 위한 눈물이라는 비용이 필요하다. 예수님이 이 땅에 재림하시면 심판이 있다. 지금 열심히 신앙을 준비하지 않으면 마지막 종말에 심판받게 된다. 지금 열심히 주님을 섬기면서 믿음을 준비하면 힘들고 어려움도 있지만 마지막 날에는 기쁨이 있다. 지금 편안하게 놀고먹고 살다가 큰 비용을 내야 한다. 그것은 하나님의 심판이다.

 

겸손의 계곡으로 내려가기 위해서는 대단한 주의가 필요하다. 무저갱의 사자 아볼루온과[계 9:11] 싸울 때는, 죽을 힘을 다하는 비용이 든다. 이러한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우리는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은 삶을 살아야 한다. 이 세상의 어떤 다른 것보다 그리스도를 사랑해야 한다. 자신의 독선을 버려야 한다. 겸손함으로 예수님을 따라야 한다. 이렇게 살기에는 내가 버려야 할 것들이 많다. 주님의 뜻대로 살아갈 때는 손해 볼 것이 많다.

죄인된 그는 자신의 영혼이 구원받게 됨이 인간의 공로와 공의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라 무한하신 하나님의 은총으로 된 것임을 알아야 한다. 죄를 버려야 한다. 편협된 자아를 버리고, 주님과의 화합을 방해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라도 버려야 한다. 주님을 슬프게 할 그 무엇도 부인해야 한다. 육체의 애정과 쾌락도 억제해야 한다. 편안함을 좋아하는 마음을 버려야 한다.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을 버려야 한다. 경건치 못한 일에서 관심을 돌리고 주님의 길을 따라야 한다. 모든 것에 복종해야 한다. 주님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세상의 정욕을 따라 살아가고 있다. 마지막 종말에 심판이 있다는 것을 잊어버리고 살아간다.

 

이러한 비용을 지불하지 않는다면 그는 실패할 것이다. 그 실패 뒤에는 조롱과 비웃음이 따른다. 그러므로 참된 신앙을 위해서라면 어떤 비용이라도 지불해야 한다. 우리가 이러한 비용을 계산하지 않으면 결심을 실행할 수가 없다. 이러한 비용을 정확하게 계산하는 것이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가를 생각해 보자. 진실된 그리스도인이 되고자 한다면 손익을 계산하고 비교해 보라.

 

칭찬과 비난을 계산해 보라. 우리는 사람들에 의해서는 비난을 받을 수도 있지만, 그러한 비난으로 인해 하나님과 예수님의 칭찬을 받을 것이다. 친구와 적을 생각해 볼 때 사단과 악한 자들과의 반목이 있으나,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친근 하심이 있다. 의심할 바 없이 현재의 삶이 편안하지 않으나, 도래할 삶을 계산해 보면 잠시 잠깐일 뿐이다. 죄를 짓는 쾌락과 하나님을 섬기는 기쁨을 비교해 보라. 육체의 시간은 잠시 잠깐이다. 천국에서의 삶은 영원한 삶이다. 잠시 잠깐의 삶을 위해서 영적인 것을 포기한다면 나중에 반드시 후회한다.

 

예수님은 이러한 냉철한 계산 없이 무조건 고백하는 자의 어리석음을 지적하고 있다. 많은 사람이 무성의하게 복음을 받아들이고 있다. 그래서 훨씬 더 강력하고 설득력이 있는 그 무엇이 나타나면 그들은 복음을 포기하고 만다. 그들은 계산을 바로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충동 속에서 자극받아 신앙생활하는 이가 있다. 군중심리에 의해 신앙을 갖는 이도 있다. 그들은 무리 속에 있을 때는 신앙을 가진 것을 좋아한다. 그러나 그러한 사람은 격리되었을 때는 신앙을 버린다. 길가 밭에 씨앗이 떨어지면 새들이 와서 먹어버린다. 심령이 길가 밭은 복음의 씨앗이 떨어져도 뿌리를 내리지 못한다.

 

단순한 환경의 신앙이 있다. 사람들은 흔히 자신이 교제하고, 사랑하는 이의 신앙을 따라간다. 전통적인 관습에 젖어 신앙생활하는 이가 있다. 외관상으로는 옷이 있으나 그 내부에는 생명이 없다. 감상의 신앙이라고 불릴 만한 것도 있다. 사색하고 지적인 신앙이 아니라 화가와 시인의 신앙이다. 위선 된 신앙이 있다. 이것은 단순히 형식의 종교이다. 이들은 외면적인 양상만을 주목하고, 내면적인 빛이나, 진리는 주목하지 않는다.

 

지성의 종교가 있다. 그들은 기독교의 의식이나 형식에 대한 찬미를 통하여 기독교를 받아들이는데, 이러한 신앙은 오래가지 못한다. 성경을 지식으로만 얻으려고 한다. 이런 신앙은 머리로 믿으려고 한다. 예수님을 믿으려고 해도 믿어지지 않는다. 성경을 지식으로만 생각하기 때문이다. 자기가 이해를 하면 말씀을 잘 전한 것이고 이해하지 못하면 못 전한 것이다. 양심의 종교라는 신앙이 있다. 양심이 신앙적으로 되는 것은 가능한 것이지만, 경험에 의거하는 기독교 신앙의 기초는 될 수 없다. 때때로 우리는 양심의 괴로움에 의하여 회개하고, 깨닫기도 하지만, 양심이 아름답고 선하다고 해서 예수님에 대한 행복한 신앙을 소유했다고는 말할 수 없다. 그러한 섬김은 맹종이고, 또 양심의 의무란 고된 일이며, 그런 신앙은 끊임없는 고행이며, 성령 안에서의 진정한 공의와 평화가 아니다. 기독교는 양심의 종교가 아니다.

 

그리스도인의 고백은 영적인 것이다. 이 고백을 시작하면 그는 지속적이고, 엄청난 싸움에 참여하는 것이다. 많은 어려움을 극복해야 하고 많은 적들을 이겨내야 하는 열정적인 싸움이 계속되는 것이다. 그러면 이와 같이 비용을 계산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비용을 계산하면 조롱과 수치감을 당하지 않을 것이다. 비용을 지출하게 될 때 그 비용을 소중하게 생각하게 될 것이다. 사단은 승리할 많은 기회를 빼앗기게 될 것이다. 신앙생활을 시작하고 정진한다는 것은 망대를 세우는 일과 비교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이유는 건물을 받쳐주는 초석이 있어야 한다. 수고와 어려움이 따르기 때문이다. 점차적인 작업과 참을성 있는 선행의 연속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눈에 보이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사람들과 천사들이 우리의 신앙을 주시하고 있다. 이것은 지속적인 작업이다. 이 작업은 많은 주의와 신중함을 요한다.

 

그리스도인은 전쟁에 나선 군사이다. 그리스도를 섬기려 하는 이는 우선 감당해야 할 일에 대하여 신중히 생각하고, 용기를 갖고 어떤 적도 두려워 말고, 단호하고 훌륭하게 선한 계획을 추구해야 한다. 군사로 나선 이는 전쟁의 책임을 고려해야 한다. 자기가 좋아하는 세속적인 욕망을 버리지 못한 자는 싸움터에서 패하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의 군사는 전신갑주를 입어야 한다. 혈과 육체의 싸움이 아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악한 영들과의 싸움이다. 사탄은 지금도 우리를 향해 불 화살을 쏘고 있다. 우리는 믿음의 방패로 막아야 한다.

 

전쟁이 지속될 기간을 고려해야 한다. 전쟁을 지속시켜야 하는 책임에 대하여 생각해야 한다. 그리스도의 재산과 보물은 고갈되지 않는다. 그는 자신이 전쟁터로 나가는데 입어야 할 갑옷에 대하여 생각해야 한다.[엡 6:14-17] 그리고 사단의 세력과 정책과 분노와 잔인성을 고려해야 한다. 자신의 나약함을 감지해야 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의 강인함과 힘을 고려해야 한다. 그는 하나님의 약속과 그리스도의 능력이 어떻게 임하는지를 고려해야 한다. 그는 하나님의 영예와 대장의 영예를 그들의 생명보다 좋아해야 한다. 그리고 싸운 후에 얻게 될 면류관의 본질을 알아야 한다.

 

그러면 이 비유가 어떻게 우리에게 적용되는가? 이것은 그리스도인의 사역이 쉬운 것이 아니고, 오히려 매우 힘들고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가르쳐 준다. 넓은 문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은 쉬운 길로 간 것이다. 많은 사람이 이 길을 걷고 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사람은 협착하고 길이 힘든 길이다. 그러나 이 길이 생명의 길이다. 진리의 길이며 예수님을 따라서 천국으로 가는 길이다. 우리는 이 길을 따라가야 한다. 이 길을 걸어갈 때 세상에서 포기해야 할 것들이 많이 생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 길을 묵묵히 따라가야 한다. 뿐만 아니라 평화롭고 자유로울 때는 열정적으로 보이던 많은 이들이 좌절하는 이유를 말해준다. 또한 본문은 우리가 잘 무장해야 할 필요성과 또 항상 경계하며 자신감을 잃지 말아야 할 필요성을 깨닫게 해 준다. 오늘도 영혼의 전신갑주를 입고 사탄과 맞서 싸우는 성도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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