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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세아 11장 하나님 말씀] 세상 정욕을 버리고 하늘의 신령을 젖을 사모하라(호 11:1-11)

성령의 능력 2020. 11. 2.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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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호세아 11장 하나님 말씀 중에서 세상 정욕을 버리고 하늘의 신령을 젖을 사모하라는 설교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우리는 이 땅에 살면서 이 세상의 정욕을 따라 살아가게 됩니다. 하나님은 이 땅의 정욕을 죽이고 신령한 것을 사모하라고 말씀합니다. 이제부터 우리는 하늘의 신령한 젖을 사모하면서 우리의 영혼이 성령으로 충만해져야 하겠습니다.

 

세상 정욕을 버리고 하늘의 신령을 젖을 사모하라

성경 본문: 11:1-11

 

내가 어떻게 너를 내어버릴 수가 있겠느냐? 내가 어떻게 너를 포기할 수 있겠느냐?(호 11:8)」라고, 하나님을 버리고 멀리 떠난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주님은 너를 돕고 싶은 마음이 불붙듯 타오르고 있다」라고 말씀하시면서, 결코 당신의 백성들을 멸망시킬 수 없음을 밝히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을 사랑하기 때문에 완전히 버리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농부가 자기 소를 아끼듯, 사랑의 밧줄에 매어 끌고 다니면서 돌보고 보살폈습니다. 입에서 망을 벗겨서 편히 쉬고 잘 먹을 수 있게 해 주며 직접 꼴을 먹여 주기도 하면서, 이모저모로 지극한 사랑을 베푸셨습니다.

 

이와 같이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은 누구에게나 일반인 것 같습니다. 우리는, 낳은 자식이라고 해서 그처럼 온갖 애정을 쏟는데, 하물며 당신이 직접 만드신 인간, 그중에서도 특별히 선택을 한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이 오죽했겠습니까? 인간도 자신의 자녀를 사랑하고 있는데 하나님은 더 사랑한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자신의 자녀가 말을 안 듣고 자신의 뜻대로 갈 때 마음이 아파도 징계를 하게 됩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뜻을 버리고 죄악을 저지를 때 징계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에 대하여 보답하기는커녕, 오히려 배신을 하고 하나님 곁을 멀리 떠나고 말았습니다. 몇 번이고 예언자들을 보내어, 주께 다시 돌아오도록 타이르고 애원도 했건만,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부르면 부를수록 멀리 달아나 버렸습니. 하나님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면 그곳의 주민들과 언약을 맺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들의 우상도 숭배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여호와 하나님을 버리고 배신하여 세상으로 돌아갔습니다. 우리의 신앙은 어떠합니까? 이스라엘과 같은 신앙은 하고 있지 않은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성경에서는 나는 이스라엘이 젖먹이 때부터 걸음마를 가르쳐 주고 품에 안아 키워 주었건만, 그는 내가 키워 준 것도, 죽을 고비에서 살려 낸 것도 알지 못한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왜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떠나 살게 되었을까요? 그리고 그 사는 모습은 어떠했을까요? 또한 그렇게 하나님을 떠나 살게 되면 어떻게 될까요? 여호와 신앙을 버리니 하나님의 마음이 너무나 아픕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젖먹이 때부터 키웠는데 다 성장했다고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숭배하는 모습을 보면서 하나님은 마음이 너무나 아픕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 놓고 사업이 잘 된다고 바빠서 교회에 나올 시간이 없다고 예배를 빠지는 신앙인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호세아 116절 말씀을 보니,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떠나 헛된 계획을 세우고 큰소리치며 살았다고 했습니다. 하나님만 없으면 얼마든지 자유스럽게 그리고 즐겁게 살 수 있을 것이라고 호통을 쳤겠지요. 그러나 그 결과는 앗수르의 지배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수많은 사람들이 죽임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무서운 진노 앞에서, 큰소리치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지없이 멸망을 당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떠난 삶은 저주의 삶입니다. 북이스라엘은 앗수르에 의해서 고통을 당하게 됩니다. 노예로 끌려가 고통당하여 죽게 됩니다. 

 

오늘 우리는 어떤 신앙을 하고 있습니까?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아 새 인생을 산다고 해놓고 막상 복을 받으니 세상이 더 커 보이지는 않습니까?

1. 여전히 옛 모습 그대로 수치스러운 욕망을 지닌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알게 된 것은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와 사랑이었습니. 정말 허물 많고 죄 많은 우리가 주안에서 새롭게 되어 새 인생을 살게 된 것은 진실로 큰 행운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알기 전에는 ''라는 존재가 어떤 모습을 지니고 있는지를 잘 몰랐습니다. 거울이 있어야 얼굴 모습을 알 수 있듯이, 리가 말씀을 알기 전에는 우리 자신을 제대로 알 수가 없었습니다. 말씀을 듣고 깨닫게 되니, 그제야 우리가 얼마나 부끄러운 존재인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수치스러운 모습을 생각지 않고, 잘났다고 뽐내며 큰소리치던 옛날이 심히 부끄럽게 된 것입니다.

 

다행히도 주님의 은혜로 그 수치를 벗겨 낼 수 있었고 새 삶을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믿음 안에서 산다는 게 그리 쉬운 일이 아니지만, 로운 세상을 알게 된 기쁨 속에서 그 어려움을 이겨 나갈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차츰, 처음 신앙을 갖게 된 자의 겸손함이 사라지고 교만한 마음이 싹트면서, 옛 생활의 습성이 되살아나게 된 것입니다. 신앙은 겸손한 자에게서나 효과적이지, 교만한 마음을 품게 되면 신앙이 없는 사람보다 더 악독해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우리의 자녀들도 어릴 때는 부모의 말을 듣지만 성장하고 나면 부모의 말을 듣지 않습니다. 자신의 생각과 뜻대로 살게 됩니다. 우리 인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건방지게 하나님 앞에서 다 컸다고 하면서 제 맘대로 하겠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간섭을 받지 않고 살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품을 떠나 세상으로 빠져 들어가는 것입니다. 11:5에서는 이러한 현상을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습니다. 품에 안아 키워 놓았더니, 하나님의 은공을 잊어버리고 애굽으로 돌아가려 한다」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밧줄을 끊어 버린 후 멀리 떠나 살고 있습니다.

자식을 낳을 경우, 보이는 탯줄은 비록 낳자마자 칼로 끊어 버리지만, 부모와 자식 간의 인연의 줄은 언제까지나 결코 그 무엇으로도 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과 인간의 사랑의 밧줄은 끊으래야 끊을 수 없는 줄입니다. 만일 그 줄을 끊고 달아나 버리게 되면, 멸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 멸망이란 어떤 멸망일까요? 그것은 믿음에서 벗어난 우상 숭배의 길을 걷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바울 선생은 골 3: 5에서 세상의 금전과 쾌락을 흠모하지 말라. 그것이 곧 우상 숭배이기 때문이다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진리 말씀 따라 진실하게 살기를 포기하고, 돈과 쾌락을 사랑하면서 그것을 중심으로 살게 되면, 사람다운 삶이란 끝장나는 것입니다. 돈과 쾌락을 사랑하면서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거니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이웃 사랑을 실천할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누가복음 12장에는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가 나오고 있습니다. 농사가 잘 되어 수확을 많이 거두게 된 어느 부자가 생각하기를 "간에다 곡식을 쌓아 두고 편안히 쉬면서 먹고 마시며 즐기리라"라고 했습니다. 이때 이것을 아신 하나님께서 어리석은 자야! 오늘 밤에 내가 네 영혼을 찾아가면, 네가 모은 재산이 다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부자는 자기만 배불리 먹고 마시면서 즐기면 되리라고 생각했지, 가난한 이웃이 굶주리고 있는 것은 돌아볼 여가가 없었던 것입니다. 러기에 하나님께서는 그가 이웃을 섬길 줄 모르는 쓸모없는 인간으로 치부하고 그 영혼을 데려가시기로 작정하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골 3:1에서 밝히기를 예수를 믿는 사람은 하늘에 있는 풍부한 보화와 기쁨에 눈을 돌려야 한다」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눅 12:15에서 가르치시기를 욕심을 부리지 말라」라하시면서 참 생명과 참 삶은 우리가 얼마나 재산을 가지고 있느냐 하는 것과는 상관이 없다」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우리 속에 파고드는 세속적인 욕망을 끊어 버리지 못한 채, 그 욕심에 이끌려 거짓된 삶을 사는 경우가 참 많습니다. 그 결과는 뻔한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무서운 진노가 그런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내릴 것이라고 했습니다.

내가 돈을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그 돈이 내 돈이 아니라는 것을 인식할 수 있어야 세상 쾌락이나 허영에 빠지지 않게 되고, 진리의 길을 갈 수가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을 살아 기쁨과 보람을 누리기보다는, 세상 것을 취하거나 쾌락을 즐김으로써 기쁨을 누리려 하게 되는 것입니다. 어리석은 부자에 대해서, 오늘 우리의 관점에서 보면, 아무 잘못이 없습니다. 자기가 열심히 농사를 지어서 많은 곡식을 장만하게 되었고, 래서 그것을 가지고 배불리 먹으며 편안하게 살겠다는데, 누가 뭐라고 하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께서 보실 때에는 잘못되었다는 것입니다. 인간다움이란 자기 혼자 배불리 먹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짐승에 불과합니다. 하나님을 알고 섬기며 이웃을 돌아볼 줄 아는 자가 곧 인간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에서 말하는 옛사람이란 자기만 아는 짐승과 같은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고, 새사람이란 말씀으로 새롭게 거듭나서 하나님의 말씀 따라 인간다운 삶을 사는 사람을 말합니다. 주 예수의 가르침에 따라 인간다운 삶을 사는 자는,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에 그의 영광을 함께 나누며 하늘나라에 들어가게 된다고 골 3:4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하지만, 어리석은 부자처럼 자기만을 위하여 살게 되면, 이 세상에서도 헛된 것에 이끌려 미련한 인생을 살다가 결국은 하나님의 무서운 진노를 받게 된다고, 3: 6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두려워하지는 마십시오. 이미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받은 백성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혹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여전히 세상 중심으로 산다 할지라도 회개할 기회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아셔야 합니다. 회개의 기회를 다음으로 미룰수록 우리 자신에게 손해라는 것을! 그리고 또한 회개하기 전에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회개란 물론 원래의 상태로 돌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성도로서의 의무와 책임을 다하며 사는 생활을 말합니다

2. 우리 가운데 살아 계신 거룩한 하나님이신 것을 믿는 것입니다.

죄 많은 우리지만, 결코 버릴 수 없다고 하시면서 우리를 도우시려는 불붙는 마음을 갖고 계십니다. 내가 어떻게 너를 내어버릴 수가 있겠느냐? 너를 돕고 싶은 마음이 불붙듯 타오르고 있다, 호세아 선지자를 통하여 밝히고 있습니다(11:8-9).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께 진심으로 회개하며 나아가지 않으면, 하나님의 불붙는 마음도 어쩌지 못합니다. 과거에 얼마나 죄를 지었는가가 문제가 아닙니다. 아무리 큰 죄인일지라도 하나님께 돌아오면 그 죄를 다 용서하여 주십니다. 하지만, 아주 작은 죄일지라도 주님께 돌아오지 않으면 용서받지 못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주님께 나와 구원을 받았습니다.

 

3:11에서 인종이나 교육, 신분의 차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리스도를 소유하고 있느냐, 있지 않느냐 하는 것만이 중요하다고 하면, 그리스도를 받아들일 기회는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주어져 있다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께로 돌아오면 누구를 막론하고 그리스도를 받아들일 구원의 기회를 주십니다. 돌아오기 전에 청산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ㄱ. 죄에 가득한 세속적 욕망을 버려야 합니다(3:5) 세상에서 무엇을 소유함으로써 뽐내며 살려는 욕심을 버려야 합니다. 이러한 마음을 갖고 있는 한 주님께 진정으로 돌아오지 못합니다.

ㄴ. 세상의 금전과 쾌락을 흠모하지 말아야 합니다( 골3:5). 돈을 사랑하면서 하나님을 사랑할 수는 없습니다. 돈은 어디까지나 우리 인간 삶의 생활 수단에 불과한 고로, 그것을 인생의 목적으로 삼아서는 안됩니다. 더군다나 쾌락은 믿음의 길에 있어서 아주 큰 적입니다. 편안히 쉬면서 안락하겠다고 하는 것은, 인간이면 누구나 소망하는 것이로되 결코 바람직하지 못한 인간 삶입니다. 이러한 것들보다 더 귀한 것이 하늘에 있음을 믿고 하나님께 돌아오, 우리로 하여금 그리스도를 닮아 갈 수 있도록 은혜 베풀어 주셔서, 말씀을 깨닫게 해 주시고 하늘나라의 신비한 모습들을 바라볼 수 있도록 해 주실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세상 재미 볼 것 다 보면서, 세상에서 누릴 것 다 누리면서, 하늘나라의 진리를 깨닫고자 한다면 그처럼 어리석은 일은 없을 것입니다. 그것은 마치 마스크를 쓴 채 음식을 먹으려는 것과 같은 미련한 생각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세상 욕심은 이 땅에서만 이룰 수 있습니다. 결코 하늘나라에서는 이 세상 욕심을 이룰 수가 없습니다. 그런 고로 바람직한 성도가 이루려는 소망은, 이 땅에서 잘 살자는 것이 아니라 하늘나라에 들어가고자 하는 것입니다. 하늘나라에 들어가려면, 이 땅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살아야 합니다. 그러니까, 하늘나라에 들어가려면 이 세상 즐거움과 쾌락을 버려야 하고, 이 세상 즐거움과 쾌락을 버리기 원치 않는다면 하늘나라 가기를 포기해야 합니다. 좀 더 적극적인 표현을 쓴다면, 진정 하늘나라를 가기 원할 경우에는 성도의 기본적인 의무부터 감당하면서

 

3. 그리스도를 닮으려고 부단히 노력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믿는 남자분들에게는 술과 담배 문제가 큰 걸림돌입니다. 천주교처럼 개신 교회도 이 문제를 자유롭게 풀어 준다면 교회 다닐 사람이 참 많을 것입니다. 아직 신앙의 깊은 단계에 들어가지 못한 사람에게 금주 금연을 강요한다는 것은 무리입니다. 그것을 큰 죄()인 것처럼 문제 삼는다면, 제 삼는 그가 오히려 하나님께로부터 큰 책망을 받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믿음의 길을 방해한 자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언제까지나 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채 믿음 생활을 계속한다는 것도 문제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늘나라에서 맛보는 즐거움이나 기쁨이란 그런 것들과는 비교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런 것쯤은 극복하려는 노력이 있어야 하늘나라의 진리를 깨달을 수 있거니와 그 기쁨도 맛볼 수 있을 것입니다.

 

글쎄 그런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채, 하늘나라의 진리를 맛볼 수만 있다면 별 문제가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참 어려울 것입니다. 술과 담배가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닌데 그것을 끊을 수 있는 아픔 정도는 겪을 수 있어야 하늘나라 진리를 터득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성경만 하루에 조금씩 보고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갖는다면, 그 문제가 그다지 힘들지 않을 것입니다. 진리는 모든 문제를 이겨낼 수가 있습니다.

다만 아직까지는 만족스러운 믿음 생활을 하지 못해서 불만이고, 리고 그것이 스스로가 안타까워하는 점일 것입니다. 그것은 여러분의 마음에 하나님이 살아 있다는 증거입니다. 우리 가운데 살아 계신 하나님의 마음에 들도록 조금만 더 노력하신다면, 틀림없이 저와 여러분은 지금보다 좀 더 주님께 가까이 갈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그렇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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