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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5장 강해설교말씀] 바로에게 간 모세와 아론(출 5:1-2)

성령의 능력 2022. 11. 8.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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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에게 간 모세와 아론(출 5:1-2)

 

하나님은 모세와 아론을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구원하려고 한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선택하셨기 때문에 버리지 않았다. 애굽에서 바로 왕에 의해서 고통당하고 있는 모습을 하나님은 보았다. 지금도 하나님은 바로 왕과 같은 사단에게 고통당하는 백성을 기억하고 있다. 그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하나님은 예수님을 보내주셨다. 복음을 전하여 그들이 구원받을 수 있게 하셨다. 성도는 세상에 복음을 전하여 죄악으로 고통당하는 백성을 구원해야 한다.

 

이스라엘 장로들에게 메시지를 전해 좋은 반응을 얻었던 모세와 아론은 이제 바로와 담판하려고 한다. 그러나 그 일은 생명을 건 위험한 일이었다. 특히 40년 전에 애굽인을 죽인 범법자 모세로서는 만약 늙은 대신들 중 누구 한 사람이라도 그 사실을 알고 문제 삼는 자가 있다면, 모세의 목은 달아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모세와 아론이 전할 메시지 그 자체가 바로를 불쾌하게 하고 성나게 할 것이 분명하니, 그것은 그의 명예와 이익이라는 두 가지 점에 있어서 모두 배치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 신실한 사자들은 바로가 듣든지 안 듣든지 담대하게 그것을 전했다.

 

출5:1 그 후에 모세와 아론이 바로에게 가서 이르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렇게 말씀하시기를 내 백성을 보내라 그러면 그들이 광야에서 내 앞에 절기를 지킬 것이니라 하셨나이다

Ⅰ. 그들은 믿음으로 담대하게 요구했다.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에 내 백성을 보내라 하셨다”(1절). 모세는 이스라엘 장로들과 담론 할 때는 하나님을 “그들의 조상의 하나님”이라 칭하라는 지시를 받았으나, 바로와 담론할 때는 그들의 하나님을 “이스라엘의 하나님”이라 했다. 하나님을 이렇게 칭한 것은 성경에서 여기가 처음이다. 창세기 33장 20절에도 “이스라엘의 하나님”으로 불렸으나, 거기의 이스라엘은 한 개인, 곧 야곱을 가리켰던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이스라엘이란 이스라엘 백성을 지칭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이라고 불려질 그때에 그들은 이미 한 백성으로 형성되기 시작한 것이다. 모세는 아마 하나님을 그렇게 부르라는 지시를 받은 것 같다. 적어도 그것은 “이스라엘은 내 아들”이라 하신 출애굽기 4장 22절의 말씀에서 추론될 것으로 생각된다. 이 위대한 이름으로 모세와 아론은 자신들의 메시지를 전했다. “내 백성을 보내라.”

1.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이었다. 그러므로 바로가 그들을 계속 속박하여 억류시킬 수는 없었다. 하나님은 비록 가난하고 천한 백성이라도 그들의 탄식을 들으려 하신다는 사실을 명심하자.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의 종들이다. 그러나 그들은 나의 백성이다. 나는 그들이 항상 고통당하게 버려두지만은 않을 것이다”라고 하나님은 말씀하신다(사 52:4, 5 참조).

 

2.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의 예배와 제물을 받기를 원하셨다. 그러므로 그들은 애굽인들의 간섭 없이 자유롭게 예배드릴 수 있는 곳으로 떠나야만 했던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을 대적의 손에서 구하여, 그들이 당신을 섬기되 기쁜 마음으로 섬기게 하신다. 또한 그들이 하나님께 향연을 베풀도록 하신다. 이로써 그들은 광야에서나 빈들에서나 하나님의 은총을 받게 되었으니, 이것은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하신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임을 알아 두자.

 

5:2 바로가 이르되 여호와가 누구이기에 내가 그의 목소리를 듣고 이스라엘을 보내겠느냐 나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니 이스라엘을 보내지 아니하리라

Ⅱ. 바로는 불신앙으로 인해 대담하게 답변했다. “여호와가 누구관대 내가 그 말을 듣고 이스라엘을 보내겠느냐”(2절). 하나님의 명령에 복종하라는 명령이 바로에게 떨어지자, 그는 도전의 깃발을 내걸고 모세와 그를 보내신 하나님께 허세를 부렸으며, 거만한 태도로 거절했다.그는 그 말을 염두에 두려고도 하지 않았고 또 중하게 생각지도 않았다. 다음을 관찰해 보자.

 

1. 바로는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얼마나 모욕적인 말을 했던가! “여호와가 누구냐? 나는 그를 알지도 못하고 그에게 관심도 없으니, 존경하지도 않을뿐더러 두려워하지도 않는다”라고 했다. 그 이름은 바로가 전에 들어 보지 못한 이해하기 어려운 이름이었다. 아마 도깨비와 같은 존재 아니면 아무것도 아닐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이스라엘은 천대받고 압박받는 하층 민족으로 보였다. 이런 처지 때문에 그들의 하나님이라고 해 보았자 보잘것없는 존재이며, 아마 다른 나라의 신들보다 더 낫지 않을 것이라고 결론을 내렸던 것이다.

마음이 강퍅한 박해자들은 하나님의 백성보다 하나님께 더 악의를 품는다는 사실을 주목하자(사 37:23 참조). 다시 말하면 하나님에 대해 무지하고 멸시하는 것은 세상의 모든 사악한 것의 바탕이 된다. 인간들은 여호와를 알지 못하거나, 안다고 해도 매우 저급하고 천박한 생각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여호와의 음성에 순종치 않으며 그를 위해서는 어떤 것도 허락하지 않으려 한다.

 

2. 바로는 자신에 대해서는 얼마나 거만하게 말했던가! “내가 그 말을 듣겠느냐? 위대한 민족, 애굽의 왕인 내가 비천한 노예 민족인 이스라엘의 신에게 복종해야 한다는 말이냐?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을 지배하는 내가 이스라엘 백성의 하나님에게 복종해야 한다는 것인가? 안 된다. 그것은 나를 격하하는 일이다. 나는 그의 요구를 비웃으리라”라고 했다. “불순종의 아들들”은 교만의 아들들이라는 것을 기억해 두자(욥 41:34; 엡 5:6). 교만한 자들은 자기들은 너무나 선하기 때문에 하나님께 복종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고 하나님의 지배를 받지 않으려고 한다(렘 43:2). 이것이 논쟁의 핵심이다. 즉 하나님은 인간을 지배하셔야 하지만 인간은 지배받지 않으려고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내가 나의 뜻을 행하리라”고 하시나, 죄인들은 “그러나 나는 내 고집대로 하리이다”라고 말한다.

 

3. 바로는 얼마나 단호하게 그 요구를 거절했던가! “내가 이스라엘을 보내지 아니하리라”라고 했다. 죄인들 중에서도 성도를 박해하는 자들처럼 완악하고 좀처럼 죄에서 떠날 줄 모르는 죄인들도 없다는 사실을 알아 두자. 하나님은 선택한 백성을 버리지 않고 계속해서 구원해 나가는 것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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