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전도서 7장 주일 설교말씀 중에서 깨닫고 사는 삶이라는 성경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세상의 지혜도 있어야 하지만 하나님을 깨닫는 지혜도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하늘의 지혜를 받아 복음을 깨닫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깨닫고 사는 삶(전 7:19-22)
전 7:19 지혜가 지혜자를 성읍 가운데에 있는 열 명의 권력자들보다 더 능력이 있게 하느니라
전 7:20 선을 행하고 전혀 죄를 범하지 아니하는 의인은 세상에 없기 때문이로다
전 7:21 또한 사람들이 하는 모든 말에 네 마음을 두지 말라 그리하면 네 종이 너를 저주하는 것을 듣지 아니하리라
전 7:22 너도 가끔 사람을 저주하였다는 것을 네 마음도 알고 있느니라
지도자 솔로몬은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그때그때 조심하며 알고 살아가야 할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먼저 지혜는 그 지혜의 소유자에게 어떠한 능력을 제공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1> 지혜로운 자가 열 사람의 유사보다 낫다 <19절>는 것을 알아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지혜로운 사람은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를 가지고 하나님을 섬기고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열 사람의 유사라고 하는 것은 그 성읍을 대표하는 유지를 의미합니다. 즉 그 성의 실권자, 성공한 사람을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이 말씀의 의미는 하나님이 주신 지혜를 가지고 하나님을 잘 믿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한 사람이 돈푼이나 벌고 세상 공부를 많이 한 사람 열 명보다 훨씬 낫다는 말씀입니다.
그 의미를 다시 두 가지로 분류해 봅시다.
첫째, 지혜의 힘이 물리적인 힘보다 우월하고, 믿음의 힘이 무력의 힘보다 강하다는 뜻입니다. 성경을 읽어 보면 믿음으로 승리했던 전쟁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그 한 예로, 아람 나라가 사마리아 성을 쳐들어 왔을 때 기도의 사람이었던 엘리사의 기도로 이 아람 나라 군사들을 유도해서 사마리아 성안으로 데려왔던 기가 막힌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때 사마리아 군인들은 활 한번 쏘지를 않았습니다. 창 한번 던진 일도 없었고 칼 한번 휘두~른 일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엘리사와 하나님과의 직통 기도와 그 능력의 힘을 통해서 아람 나라를 대파시킨 것은 무력의 힘보다 기도의 힘과 지혜의 힘이 더 강함을 입증한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을 섬기는 지혜자의 가치는 힘만 믿고 사는 열 명의 집권자, 혹은 성공한 사람들보다 낫다는 것입니다. 지금도 이스라엘 사람들은 자신들이 6일 전쟁을 통해서 아랍을 대파했던 그 사건을 굉장한 사건으로 이해하고 또 자랑하고 있습니다. 6일 전쟁의 경우 무력과 무력의 싸움인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그것은 지혜와 힘의 싸움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이 그 막강한 아랍 나라를 6일 동안에 이겼던 것은 군인이나 무기가 많아서가 아니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아랍과의 전쟁을 앞두고 각료 회의를 열었습니다. 그리고 아랍과 이스라엘의 군사력을 비교 검토해 보았더니 20:1로 나왔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지혜를 짜내 새로운 전략을 세웠습니다. 하나님이 첫째 날에 빛을 창조하시고 일곱째 날에 쉬셨던 것처럼 첫째 날 제공권을 장악하여 6일 동안에 전쟁을 끝내고 일곱째 날에는 쉬자는 것이 그들의 전략이었습니다. 그들은 창조의 순서를 전쟁의 순서에 적용시켰습니다. 하나님께서 엿새 동안은 일하시고 일곱째 날에는 쉬셨으니 우리도 엿새는 전쟁을 하고 이레째 되는 날에는 쉬자는 작전을 세운 것입니다. 이것이 6일 전쟁입니다. 이것은 힘의 싸움이 아니라 지혜의 싸움이었습니다. 지혜의 힘은 물리적인 힘보다 강합니다. 우리에게도 이 지혜가 필요합니다. 돈을 벌고 사업에 성공하는 것도 하나님이 주신 지혜를 가지고 하는 사람이 잘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소돔과 고모라가 망한 것은 의인이 없어서였지 그 동네에 유명한 정치가나 실업가가 없어서 망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의로운 사람 하나의 힘과 지혜로운 한 사람의 힘은 열 명의 유명 인사보다 더 위대합니다. 교회에도 그런 사람이 필요합니다. 서머나 교회가 그런 교회였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런 힘이 없었습니다. 존재 가치가 없어 보였지만 실상은 강한 교회 실상은 튼튼한 교회였습니다. 왜 그랬습니까? 그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믿음과 지혜를 가진 사람들이 그 교회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혜로운 사람들이 하나님을 의지하고 문제를 기도와 믿음으로 해결하였기 때문입니다. 구약성서 열왕기서를 보면 유다 왕 히스기야가 두 가지 문제를 해결한 방법이 똑같음을 알 수 있습니다.
첫째 문제는, 앗수르라는 강대국이 쳐들어와서 항복하라고 협박했을 때 그는 각료 회의나 군사 작전 회의를 소집하기 전에 앗수르 왕 산헤립이 보낸 협박 편지를 가지고 성전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그 편지를 펴놓고는 하나님의 응답을 구했습니다. 그는 기도로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만일 히스기야가 각료 회의를 갖고 군사 작전 회의를 해서 군사를 동원해 싸움을 벌였더라면 이길 수는 있었을지 몰라도 엄청난 희생을 지불해야 했을 것입니다. 앗수르 군사 18만 명을 죽이려면 이스라엘 백성도 그 수만큼 죽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그가 인간의 지혜를 유보하고 하나님의 방법을 동원해서 18만 명이 넘는 앗수르 군사를 진멸시키셨습니다.
둘째 문제는, 히스기야가 병이 들어 죽게 되었을 때입니다. 그때 그는 낯을 벽으로 향하고 기도했습니다. 그 기도를 통해서 히스기야는 고침 받고 15년을 더 살았습니다. 인간의 지혜를 포기하고 하나님 앞에 무릎 끓고 엎드려서 기도했기 때문에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인간의 지혜를 포기할 때, 하나님의 지혜가 임하며 내 마음의 자리를 비울 때 주께서 내 심령의 공간 속으로 들어오십니다. 우리의 마음의 문을 열지 않으면 주님께서 들어오실 수가 없습니다.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다" <계 3:20> 우리가 우리의 마음의 문을 열지 못하는 까닭이 있다면 그것은 자존심과 교만과 경험을 믿기 때문입니다.
2> 선을 행하고 죄를 범치 아니하는 의인은 세상에 아주 없다 <20절>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여기서 전도자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인간이 제아무리 선을 추구하고 경건의 모습을 갖춘다 하더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결국 죄인일 수밖에 없다는 귀한 신앙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왕상 8:46> 이 일에 대해서 사도 야고보도 말하기를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약 3:2>라고 했고 사도 요한도 '만일 우리가 죄 없다 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요일 1:8>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자신의 전적인 부패를 알고 있는 자는 하나님 앞에서 어리석고 연약한 존재임을 또한 알아 겸손해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사람은 하나님으로부터의 참된 지혜를 얻고자 노력할 것입니다. 그 지혜는 죄인에게 그가 걷고 있는 악한 과정에서 벗어날 길을 제시하며 그로 하여금 유일한 안전이 되시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데로 돌이키게 해 줄 것입니다.
3> 무릇 사람의 말을 들으려고 마음을 두면 저주하는 것을 듣게 된다 <21절>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 말은 자기 자신이나 다른 사람에 관한 나쁜 소식에 심각한 주의를 기울이지 말며 그러한 왜곡된 사실에 의하여 자신의 견해와 행동을 제약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서 자기 자신도 죄와 허물이 많은 사람이기 때문에 남에게서 모욕을 들을 수 있다고 인정하고 자신을 험담하는 소문과 풍문에 의해 상처를 받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삼하 16:11> 사람들은 이웃에게 대한 칭찬보다는 비평하기를 좋아하기 마련이므로 이웃의 험담에 귀를 기울이지 말아야 할 것이다 <고전 4:3> 우리는 이러한 이웃에 대한 부정적 태도는 우리 자신에게도 발견되는 것이므로 남들을 탓하기 전에 먼저 딤후 1:7절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근신하는 마음이니"
롬 12:3절에"너희가 마땅히 생각해야 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지혜롭게 생각하고"라고 말씀합니다. 근신하는 마음을 다른 말로 가장 근사치로 바꾼다면 "지혜로운 생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낱말 자체가 지혜라는 뜻은 아니지만 가장 근사치의 의미가 지혜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우리가 두려움을 극복하고 살아가도록 주신 선물은 "능력과 사랑과 지혜"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이 지혜가 왜 소중합니까? 두려움이 찾아오게 되면, 우리 마음이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되면 우리는 제일 먼저 자제력을 상실하게 됩니다. 어쩔 줄을 모릅니다. 무엇을 해야 할지를 모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 이 고난을 없애 주세요 이 시련과 역경을 없애 주세요"라고 기도합니다. 그러나 이런 기도는 무의미한 것입니다.
대신 우리는 "하나님 이 상황에서 제가 어떻게 해야 옳습니까? 이렇게 구해야 합니다. 이것이 지혜입니다. 이 지혜가 삶에서 내가 가는 출구를 열어주며 내 삶을 발전시키고 내 삶을 변화시킵니다. 그런데 우리는 중요한 기도를 망각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두려움을 극복하도록 주신 놀라운 선물 가운데 하나가 "지혜"라고 말씀합니다. 성경은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이 지혜를 주셨습니다. 왜 이 사실을 모르십니까? 왜 활용하지 않으시나요? 인간의 지혜를 포기할 때 하나님의 지혜가 임하며 내 마음의 자리를 비울 때 주께서 내 심령의 공간 속으로 들어오십니다.
우리의 마음의 문을 열지 않으면 주님께서 들어오실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마음의 문을 열지 못하는 까닭이 있다면 그것은 자존심과 교만과 경험을 믿기 때문입니다. 20절 말씀을 보겠습니다."선을 행하고 죄를 범치 아니하는 의인은 세상에 아주 없느니라"그렇습니다. 선을 행하고 죄를 범치 아니하는 의인은 세상에 아무도 없습니다. 여기서 전도자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인간이 제 아무리 선을 추구하고 경건의 모습을 갖춘다 하더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결국 죄인일 수밖에 없다는 귀한 신앙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왕상 8:46> 이 일에 대해서 사도 야고보도 말하기를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약 3:2>라고 했고 사도 요한도 "만일 우리가 죄 없다 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요일 1:8>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자신의 전적인 부패를 알고 있는 자는 하나님 앞에서 어리석고 연약한 존재임을 또한 알아 겸손해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사람은 하나님으로부터의 참된 지혜를 얻고자 노력할 것입니다. 그 지혜는 죄인에게 그가 걷고 있는 악한 과정에서 벗어날 길을 제시하며 그로 하여금 유일한 안전이 되시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데로 돌이키게 해 줄 것입니다. 21절 말씀을 보겠습니다."무릇 사람의 말을 들으려고 마음을 두지 말라 염려컨대 네 종이 너를 저주하는 것을 들으리라" 무릇 사람의 말을 들으려고 마음을 두면 저주하는 것을 듣게 된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남의 비판에 너무 신경을 쓰지 말고 다른 사람들이 자기에 대해 어떻게 말하는지를 들으려고 애쓰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조만간 차라리 듣지 않았으면 좋았을 말들을 듣게 될 것입니다. 자기 자신도 죄와 허물이 많은 사람이기 때문에 남에게서 모욕을 들을 수 있다고 인정하고 자신을 험담하는 소문과 풍문에 의해 상처를 받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삼하 16:11> 사람들은 이웃에게 대한 칭찬보다는 비평하기를 좋아하기 마련이므로 이웃의 험담에 귀를 기울이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고전 4:3> 우리는 이러한 이웃에 대한 부정적 태도는 우리 자신에게도 발견되는 것이므로 남들을 탓하기 전에 먼저 자신의 모습을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약 3장에 말이 나쁜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것은 꼭 불과 같다고 했습니다. 삶의 바퀴를 사르는 불입니다. 어떤 사람에게 무심코 던진 한마디 말이 박혀서 미움과 악독으로 평생을 증오하며 살아갑니다. 그 한마디 타격이 불씨가 되어 그 생애가 흘러가는 동안 꺼지지 않고 계속 미움의 불이 타오르게 된다는 말입니다. 우리 부모들이 자녀를 향해서 무심코 던진 너는 쓸모없는 놈이라는 한마디의 말이 그 아이의 마음속을 평생 불사릅니다. 나는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내 아들이 타격을 받습니다.
내가 무심코 던진 한마디의 말이 어떤 한 형제의 가슴속에 깊은 고통을 줍니다. 생애의 바퀴를 불사릅니다. 이처럼 무서운 영향력을 갖는 것이 바로 말입니다. 우리가 날마다 하는 말, 마치 생각이 스쳐 지나가는 것처럼 쉽게 할 수 있는 말이 내 생애를 그처럼 마음대로 방향을 전환시킬 뿐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까지 영향력을 주면서 자랄 수 있습니다. 어머니와 아들이 대화를 나눕니다. "엄마 거짓말과 도적질 중에 어느 것이 나쁘지" 하는 아들의 질문에 어머니가 "도적질이 나쁘지!" 그랬습니다. 그러자 아들은 아니에요 엄마 거짓말이에요. "왜 그러니?" 도적질이야 물건 갖다 주면 변상이 되지만 거짓말은 변상이 안되잖아요" 옳은 말입니다.
불행한 것은 우리가 평생에 그렇게 많이 사용하고 늘 우리를 잘 표현할 수 있는 좋은 수단인 말을 가지고 내가 주변에 어떤 영향력을 끼치는지 모르는 채 산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의 비극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님께서는 중요한 말씀을 하십니다. 네가 참으로 자랐는가를 알기 위해서는 네 말의 습관이 어떤가 보아라! 그 말이란 대단한 영향력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말의 영향력이 엄청난 것에 대해서 탈무드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말은 손이 없지만 손이 하는 일을 한다 사람을 죽인다. 그런데 손을 넘어선다 왜냐하면 손은 가까이 있는 사람만 죽이지만 말은 멀리 있는 사람도 죽인다. 화살처럼 그렇지만 화살을 넘어선다. 왜냐하면 화살은 손으로 막을 수 있지만 말의 쏘아대는 무서운 살상력은 피할 세력이 없다" 말의 영향력을 알아야 합니다. 자기를 살펴봐야 합니다. 이럴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1> 주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람 다윗은 "주여 내 입에 파수꾼을 세워 주옵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 오늘 여러분과 제가 기도해야 할 제목입니다. 나갈 말과 안 나갈 말을 구분할 수 있게 해 주시옵소서!" 그렇습니다. 내가 상대방에 대해 안 좋은 것을 마음에 아무리 품고 있어도 참고 있으면 상대방과의 사이에 틈을 내지 않고 저절로 해결되는데 일단 말을 해 놓으면 내 마음이 바뀌어져도 그 말은 돌아다니면서 문제를 일으킵니다. 파수꾼을 세워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2> 주님과 날마다 교제해야 합니다.
누구와 만나서 어떤 말씨를 배우느냐에 따라서 내 말의 습관이 달라집니다. 사 50:4절에 "주 여호와께서 학자의 혀를 내게 주사 나로 곤핍한 자를 말로 어떻게 도와줄 줄을 알게 하시고 아침마다 깨우치시되 나의 귀를 깨우치사 학자같이 알아듣게 하시는도다." 우리 주님께 기도하고 그 주님과 깊이 교제합시다. 침묵할 줄 아는 은혜를 우리 주님에게서 배워야겠습니다. 쓸모없는 이야기는 안 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3> 말의 실수를 자백하십시오
내가 손해를 끼친 사람에게 구체적으로 자백하십시오 그것이 나쁜 것이라고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고쳐지지 않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언어는 "죄송합니다. 감사합니다"입니다. 잘못된 것에 대해서는 죄송하다고 말하는 것이 정답입니다. 사람들이 정답대로 말하지 않는 것이 문제입니다. 언제나 틀렸을 때는 틀렸다고 말하는 것이 참 편합니다. 정답을 무시하면 말이 길어집니다.
4> 성령 충만을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혀가 길들여졌습니다. 언제입니까? 오순절 다락방에 성령이 임하실 때였습니다. 그 입술이 열려서 하나님을 찬미합니다. 그 입술이 열려서 하나님께서 행하신 그 일을 이 땅에 힘차게 전파하는 입술로 바뀌었습니다. 이제까지는 자랑만 하던 입술이었습니다. 뽐내던 입술이었습니다. 다른 사람을 험담했던 입술이었습니다. 그 입술로 하나님을 찬미합니다. 그 입술이 우리의 구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해 행하신 놀라운 역사를 많은 사람에게 힘 있게 전하는 능력의 입술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성령 충만할 때입니다. 내 입술의 방향이 바뀌어졌습니다. 길들일 수 없던 과거는 잃어버리고 새로운 언어를 갖습니다. "사랑합니다"라는 언어를 갖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당신의 구주입니다. 찬송받기에 합당하신 하나님입니다." 이렇게 찬미하는 입술로 바뀝니다.
성령 충만이 우리의 입술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오는 온전한 능력이십니다. 길들여지지 않는 혀가 술에 취하지 않고 오직 성령 충만할 때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들로 화답하며 놀라운 생애로 변화됩니다. 우리에게 주신 한번밖에 못 사는 생애 우리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수단 중 하나인 언어생활 이 부분이 성장하고 있는 가 내속에 바뀌어져야 할 언어 습관이나 입에 쉽게 붙어 있는 거짓말이나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는 언어는 없는가를 살펴보면서 성숙한 언어생활이 되도록 주님의 은혜를 구하십시다. 그런데 만약 거슬리는 비판의 말을 듣게 되었을 때에는 너무 마음에 담아두지 마십시오 당신도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 어떤 생각들을 했었는지를 생각해 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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