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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 예수님말씀] 서머나 교회에 보낸 예수님 편지(계 2:8-11)

성령의 능력 2023. 5. 30.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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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 2장에서는 예수님이 서머나 교회에 편지를 보내고 있다. 서머나 교회는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서도 예수님의 말씀을 지키면서 살았다. 순교자들도 있었다. 죽도록 충성하라고 예수님이 말씀하셨다. 그러면 생명의 면류관을 너에게 주신다고 했다.

 

서머나 교회에 보낸 예수님 편지(계 2:8-11)

 

우리는 아시아에 있는 다른 교회에 보낸 두 번째 편지를 계속해서 살펴보게 되었다.

Ⅰ. 서론이라고 할까 또는 제목이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이 두 곳에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1. 누구에게 이 편지가 직접 전달될 것인가 하는 것을 보여 주는 서두가 있다. 그것은 "서머나 교회의 사자에게" 가는 것이었다. 서머나는 오늘날까지도 우리의 상인들에 의해서, 큰 무역의 중심지요, 부요의 도시였던 것으로 유명한 도시였으며, 아마 일곱 도시 중에서, 유일하게 오늘날까지도 같은 이름으로 일컬어지는 도시이기도 하다. 그러나 지금은 회교에 의해 정복되었기 때문에 그 교회의 존재는 조금도 돋보이지 못하게 되었다.

2. 여기에는 우리 주님의 또 다른 영광스러운 칭호를 보여 주고 있는 설명이 있다. 그것은 "처음이요 나중이요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라는 것인데 이 칭호는 1장 17,18절에서 온 것이다.

(1) 예수 그리스도는 "처음이요 나중"이시다. 이 세상에서의 우리 인간들에게는 아주 극소한 분량의 시간만이 허용되었다. 그러나 우리의 구속주 되시는 그리스도는 처음이요 나중이시다. 그는 처음이시다. 왜냐하면 만물은 그로 말미암아 지음 받았고, 그리고 그는 만물보다도 먼저 하나님과 계셨는데 이는 곧 그 자신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그는 나중이시다. 왜냐하면 만물은 그를 위하여 지음 받았고, 그는 만물을 심판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진실로, 영원히, 하나님께 돌려야 할 칭호이시다. 그리고 그것은 변함없이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중보자가 되시는 분에게 돌릴 칭호이시기도 하다. "예수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히 변함이 없으시다. " 그는 처음이시었다. 왜냐하면 교회가 처음에 그에 의해서 기초가 놓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는 나중이시다. 왜냐하면 시간이 종말을 고할 때, 그에 의해서 그 마지막 마무리가 맺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2) 그는 "죽었다가 살아나신" 분이시다. 그는 죽었었는데, 우리의 죄 때문에 죽었던 것이다. 그는 살아나셨다. 그는 죽으셨다. 그리고 그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구원이 성취되었다. 그는 살아나셨다. 그리고 그가 다시 사심으로 이러한 구원이 우리의 구원이 될 수 있게 되었다. 따라서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화목되었은즉 화목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으심을 인하여 구원을 얻을 것이다"(롬 5:10). 우리는 성찬을 받을 때마다 그의 죽으심을 기억하며, 매 주일마다 그의 부활과 생명을 기억한다.

Ⅱ. 그리스도께서 모든 인간들과 특히 그의 교회들이 행한 바에 대해 완전히 아신다고 하는 그의 전지(全知)하심에 대한 일반적인 선언과 함께 서머나 교회에 보내는 이 편지의 핵심 즉 다음과 같은 점들에 대해 그가 주목하고 계신다는 것을 밝혀주셨다.

1. 그들이 이룩한 영적인 성장에 대해 아노라고 하셨다. 이러한 말씀은 짧은 삽입구 모양으로 표현되었지만, 그러나 매우 힘이 있는 표현이기도 하다.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3절). 물질 면에서는 가난하지만 영적으로는 부요한 자이며--마음은 가난하나 은혜는 부요한 자이다. 그들의 영적인 부요는 그들의 외적인 빈곡 때문에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물질에 있어서 부요한 자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영적으로는 가난하다. 라오디게아 교회가 그런 교회였다. 때로는 외적으로 빈곤한 사람들이 내적으로는 부요하며, 믿음과 선한 행위에 있어서 부요하며, 그 특권과, 은혜의 선물, 소망 그리고 상속할 재산이 부요한 경우가 많다. 영적인 부요는 흔히 부지런히 수고한 보상으로 얻어진다고 "부지런한 손이 부요를 이룩한다. "영적인 부요가 있는 곳에서는 외적인 빈곤을 잘 감내할 수 있다. 하나님의 사람들이 그리스도와 그리고 선한 양식 때문에 물질상의 어려움을 겪게 되면 그들은 영적으로 부요한 자들이 되며, 그러한 영적인 부요가 오히려 그들에게 더욱 만족스러운 것이며, 또 오래 지속되는 것이기도 하다.

2. 그들이 당하고 있는 환난을 아신다고 하셨다. "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아노니," 그들은 재산을 몰수당하기까지의 핍박을 당하고 있다. 그리스도께 충성을 다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여러 가지 환난을 겪어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그들의 모든 환난을 특히 주목하고 계신다. 그들이 당하는 모든 고난 중에 그리스도께서도 고난당하신다. 그리하여 그들을 괴롭히는 자들에게 그러한 고난을 갚아 주시며, 고난을 당한 자들에게는 그의 품 안에서 쉴 수 있는 안식을 주실 것이다.

3. 그는 그들의 대적들의 악독함과 거짓됨도 아시고 계신다.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자들의 훼방도 아노니 실상은 유대인이 아니라." 말하자면 하나님께서 유대인들을 이미 버렸는데도 여전히 그들은 하나님과 특별한 계약 관계를 맺고 있는 백성이라고 자랑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스스로를 잘못 자랑하고 있는 사람들을 말한다. 또는 지금은 낡아버렸을 뿐만 아니라, 폐기된 그러한 유대인의 관습과 의식을 그대로 고집하려는 사람들을 말한다. 그러한 사람들은 그들이 실상은 "사단의 회"인데도, 그들은 이 세상에 있는 유일한 하나님의 교회라고 주장할 것이다.

(1)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영적인 이스라엘로서의 교회를 이 세상에 가지시고 계신 것같이, 사단 역시 그의 회를 이 세상에 두고 있다. 세워진 복음의 진리에 거슬리기 위해 세워진 회합, 그리고 가증스러운 잘못을 조장 또는 선동하는 모임--복음적인 예배의 순수성과 신령함을 모독하기 위해 세워진 회합, 그리고 하나님의 뜻과는 전혀 맞지 않는 인간의 날조된 관습과 의식을 조장 또는 선동하는 모임--하나님께 때한 참다운 예배와 예배자들을 모욕하고 핍박하기 위해서 세워진 모임 등, --이런 모든 회합과 모임이 곧 사단의 회이다. 사단이 그 모임을 주장하며, 그 모임을 통해 사단이 일하고, 그들을 통해 사단은 자기만족을 누리고 있고, 사단은 그들로부터 무시무시한 공경과 영광을 받고 있다.

(2) 사단의 회가 스스로를 하나님의 교회 또는 하나님의 이스라엘이라고 일컫는 것은 신성 모독이다. 사단의 이익을 증진시키기 위해 하나님의 이름이 사용되는 것은 하나님의 이름을 크게 더럽히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러한 신성모독을 분히 여기시사 그런 일을 행하는 자들에게 빠른 보복을 내리실 것이다.

4.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백성들이 당할 앞날의 시련을 미리 아시고, 이에 대해 미리 경고하심으로, 그들에게 미리 대비시키신다.

(1) 그리스도께서는 장래의 시련에 대해 미리 경고하신다. "볼지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라"(10절). 하나님의 백성들은 이 세상에서 사는 동안 여러 고비의 시련이 계속 몰려올 것이며, 그 고난의 도가 점점 더 높아지리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한다. 그들은 전에 있었던 시련으로 이미 약해진 상태에 놓여 있었다. 그런데 이제 그들은 옥에 갇혀야만 하게 되었다. 마귀는 그의 수하인 악인들을 충동하여 하나님의 사람들을 핍박하게 한다. 폭군과 핍박자들은, 그들 스스로는 자기들의 적개심을 만족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은 마귀의 도구 노릇을 하고 있으며, 사단의 악의에 의해 충동받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

(2) 그리스도께서는 이러한 임박한 환난에 대해 미리 대비시켜 주신다.

① 그는 이런 말씀으로 권면하신다. "네가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 말라." 이것은 단지 명령의 말씀뿐만이 아니라 힘을 북돋아 주는 말씀이기도 하며, 아마 노예적인 공포심을 금하게 하는 말씀일 뿐만 아니라, 그의 영혼으로 하여금 힘과 용기를 갖추도록 격려하여 주는 말씀이기도 하다.

②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에게 그들이 당할 고난이 얼마나 한정된 것인가를 보여 주셨다.

첫째, 그것은 전체적인 것이 못된다고 하였다. 그들 가운데서 옥에 갇히는 자는 전부가 아니라 그중의 일부라고 하셨고, 따라서 옥중에 갇힌 자들은 그 남은 사람들의 방문과 위로를 통해 힘을 얻음으로 능히 그 고난을 참아낼 수 있다고 하셨다.

둘째, 그들은 영원히 옥에 갇히는 것이 아니라, 한정된 시간, "열흘"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이라고 하셨다. 그것은 영원한 시련이 아니다. "택하신 자들을 인하여서 그 기한이 짧아질 것이다. "

셋째, 그 시련은 그들을 멸망시킬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믿음, 인내, 그리고 용기가 과연 영광을 받기에 합당한가 아닌가를 시험하기 위한 것임을 알려 주셨다.

③ 그들이 충성하면 영광스러운 보답을 내려 주신다고 제안하시고 약속하셨다.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첫째, 그 보상은 확실한 것이다. "내가 네게 주리라." 주께서는 그가 하실 수 있는 말씀들을 말씀하셨다. 그리고 그가 하시고자 하신 일은 반드시 그대로 실행하셨다. 그들은 주님이 직접 내리시는 보상을 받을 것이며, 그들의 원수는 아무도 그것을 주님의 손에서부터 빼앗을 수 없으며, 그들의 머리로부터도 빼앗아 갈 수 없다.

둘째, 그 보답이 매우 적절한 보답이란 것을 보여 주셨다.

a. 그들의 빈곤, 그들의 충성, 그리고 그들의 분투노력에 대해서 "면류관"이 보답으로써 약속되었다.

b. 죽기까지 충성하는 자, 죽어도 충성을 버리지 않는 자, 그리고 그리스도께 충성을 다하기 위해 자기의 목숨을 버리는 자에게 "생명의 면류관"이 약속된 것은 매우 적절한 보답이다. 그를 섬기거나 또는 그를 위해 목숨을 다 바친 사람에게는 다른 세상에서 그보다 훨씬 더 좋고, 또 영원히 계속되는 귀한 생명을 상급으로 받게 된다.

Ⅲ. 먼저의 편지와 같이 여기에도 결론 부분이 나온다.

1. 온 인류와 온 세상은 그리스도와 그의 교회들 사이에 주고받은 바를 귀 기울여 들으라고 하는 우주적인 부르심이 있다.--다시 말해서 주께서 그들에게 어떤 명령을 내리셨으며, 주께서 그들을 어떻게 위로하셨으며, 주께서 그들의 실수를 어떻게 책망하셨으며, 주께서 그들의 충성에 대해 어떤 상급을 내리시겠다고 말씀하셨는가를 들어보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을 어떻게 다루시는가 하는 문제는 온 세상 모든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야 할 사항이다. 이로써 온 세상은 지식과 지혜를 배울 수 있을 것이다.

2. 승리하고 정복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시고자 하는 은혜로운 약속의 말씀이 있다. "이기는 자는 둘째 사망의 혀를 받지 아니하리라"(11절).

(1) 육체의 죽음이 있은 뒤에도 인간에게는 첫 번째뿐만 아니라 두 번째의 사망도 있다.

(2) 둘째 사망은 첫째 사망보다 극도로 더 처참한 죽음이다. 죽어가는 자의 단말마의 부르짖음이 끊임없이 들려온다(그것은 아무런 도움을 받을 길이 없는 영혼의 처절한 절규이다). 그리고 그 기간도 "영원한 죽음"이다. 언제나 죽어가고 있는 것이며 끊임없이 죽고 있는 것이다. 그러한 죽음을 당하는 자는 정말로 비참하다.

(3) 그리스도께서는 이런 비참한 죽음으로부터 그의 모든 충성된 종들을 지켜 주신다.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자들"에게는 이러한 둘째 사망이 아무런 맥을 추지 못한다. 첫째 사망이 그들을 해하지 못하며, 둘째 사망도 그들을 지배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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