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데스다 구약성경강해

[요나 1장 강해설교] "문제의 원인"(욘 1:7-16)

성령의 능력 2020. 11. 11. 2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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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요나 1장 강해설교 중에서 문제의 원인이라는 설교말씀에 대해서 공부해보겠습니다. 요나는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여 니느웨로 가지 않고 반대 방향인 다시스로 향했습니다. 다시스에 가는 배를 타고 갔을 때는 좋았습니다. 그래서 배 밑에 들어가서 잠을 잤습니다. 그런데 조금 가다 보니 큰 풍랑을 만나게 됩니다. 배에 있었던 많은 사람이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배가 파선할 위기에 처하자 그들은 자신들의 신을 불렀습니다. 그러면서 문제가 누구에게 있는가 제비를 뽑았을 때 요나에게 원인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고 도망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지금 하나님의 사명을 저버리고 도망치고 있지는 않은가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문제의 원인"(욘 1:7-16)

 

욘 1:7-16

그들이 서로 이르되, 자 우리가 제비를 뽑아 이 재앙이 누구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임하였나 알아보자 하고 곧 제비를 뽑으니 제비가 요나에게 뽑힌지라 무리가 그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이 재앙이 누구 때문에 우리에게 임하였는가 말하라 네 생업이 무엇이며 네가 어디서 왔으며 네 나라가 어디며 어느 민족에 속하였느냐 하니 그가 대답하되 나는 히브리 사람이요 바다와 육지를 지으신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로다 하고 자기가 여호와의 얼굴을 피함인 줄을 그들에게 말하였으므로 무리가 알고 심히 두려워하여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그렇게 행하였느냐 하니라 바다가 점점 흉용한지라 무리가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너를 어떻게 하여야 바다가 우리를 위하여 잔잔하겠느냐 하니 그가 대답하되 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라 그리하면 바다가 너희를 위하여 잔잔하리라 너희가 이 큰 폭풍을 만난 것이 나 때문인 줄을 내가 아노라 하니라 그러나 그 사람들이 힘써 노를 저어 배를 육지로 돌리고자 하다가 바다가 그들을 향하여 점점 더 흉용 하므로 능히 못한지라 무리가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여호와여 구하고 구하오니 이 사람의 생명 때문에 우리를 멸망시키지 마옵소서 무죄한 피를 우리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주 여호와께서는 주의 뜻대로 행하심이니이다 하고 요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매 바다가 뛰노는 것이 곧 그친지라 그 사람들이 여호와를 크게 두려워하여 여호와께 제물을 드리고 서원을 하였더라 

항상 사람에게는 문제가 발생한다. 하나의 문제를 해결하고 나면 끝날 줄 아는데 또다시 문제가 생기게 된다. 이것이 사람의 인생이다. 요나와 함께 배를 타고 다시스로 가는 사람들도 문제가 발생했다. 큰 폭풍을 만나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신들의 생각을 모두 동원하고 자신들이 섬기는 신들을 불러보고 물건들을 모두 던져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 그러자 이제는 이 문제가 어디서부터 왔는지 누구로부터 왔는지 제비를 뽑자고 배에 탔던 사람들이 제안을 한다. 요나는 이미 자신으로부터 문제가 발생한 것을 알고 있다.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버리고 다시스로 도망쳤기 때문에 이 태풍이 문제로 나타나게 된 것을 알고 있다.

 

우리가 제비를 뽑아는 נפל(나팔) 굴욕을 당하다, 당첨되다, 제비 뽑다, 라는 뜻이다. 배에 타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문제 해결을 위해 제비를 뽑자고 합의를 보았다. 연장형의 해석은 자기들 스스로 권면하면서 이 문제가 어디서 왔는지를 알고 싶었기 때문에 제비를 뽑자고 말하는 것이다.

 

이 제비가 요나에게 뽑히게 되므로 하나님의 선지자는 많은 이방 사람들 앞에서 굴욕을 당하게 된다. 요나 때문에 문제가 발생되었다는 것을 사람들이 알게 되었는데 그 이유는 요나에게 제비가 뽑혀 당첨되었기 때문에 결국 요나는 많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선지자라는 사실이 밝혀지게 되고 세상의 사람들에게 모욕을 당하게 된다.

 

이 제비를 곧바로 뽑으니 많은 사람들 중에 요나가 뽑히게 되었다. 요나는 많은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존재가 들어나게 되었다. 잠시 전만해도 배 밑에서 태평하게 잠을 자고 있었지만 지금은 문제의 원인으로 드러나게 되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말씀에 불순종하면 세상에서 굴욕을 당하게 된다. 사명을 감당하지 못하면 세상에서 짓밟힐 수밖에 없다.

 

마 5:13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주님께서도 우리에게 말씀하시는데 세상의 소금이라고 하셨다.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할 수 있냐는 것이다. 소금이 짠맛을 잃어버리니 아무 쓸 데가 없어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라고 말씀하셨는데 그럼 소금이 짠맛을 잃어버리는 것이 무엇일까?

 

고대 근동의 유대인들은 소금을 얻기 위해 사해 근처에 있는 소금 산에서 돌을 캐어 자신의 집에 있는 그릇에 물과 함께 담가 두었다. 시간이 흘러가면서 소금 돌에 있는 소금의 짠 성분들이 물에 흘러나오고 돌은 소금의 짠맛을 모두 잃어버렸다. 더 이상 이 돌은 쓸모가 없어졌기 때문에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길가에 버렸다. 주님은 유대인들의 풍습을 놓고 말씀하셨는데 바로 복음을 가지고 있는 자들이 복음을 잃어버리면 세상의 이방 사람들에게 짓밟혀 수치를 당하게 될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요나도 하나님의 사명을 버리고 도망치니 사람들에게 수치를 당하고 하나님의 이름이 땅에 떨어지고 있다. 주님의 사명을 감당하지 않고 자신의 생각대로 행동하는 사람들과 복음을 잃어버린 자들은 예수님의 이름을 땅에 떨어트리게 된다.

 

요나에게 제비가 뽑히자 많은 사람들은 요나에 대해 궁금해지기 시작한다. 곧바로 요나의 모든 인적사항들을 이야기하라고 말한다. 말하라는 נגד(나가드) 선포하다, 대답하다, 전하다, 라는 뜻이다. 배에 타고 있던 사람들이 자신들에게 하나도 빠짐없이 보고하라고 말한다. 당신이 어디에서 왔으며, 직업이 무엇인지, 어떤 민족인지, 섬기고 있는 신은 무엇인지에 대해서 말하라는 것이다. 명령법을 사용하고 있는데 당장 빨리 말할 것을 의미한다. 너의 마음을 다해 우리에게 말하지 않으면 당장 수치를 줄 기세로 말하고 있다.

유대인들은 항상 명예를 중요하게 생각하던 민족이다. 자신들만이 하나님께서 택한 백성이라는 것에 대한 선민의식이 투철하다. 하지만 지금 요나의 모습은 이방인들에게 수치를 당하고 있다. 네가 믿고 있는 신의 이름이 무엇이냐고 묻고 있다. 바로 어느 민족에 속하였느냐!라는 것은 모든 이방인들은 히브리인이며 하나님을 섬기는 민족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요나는 하나님의 사명을 버리고 가면 편할 줄 알았지만 세상에서 수치를 당하고 있다. 또한 하나님의 이름을 세상의 사람들 앞에서 욕보이고 있다. 좋은 일로 하나님의 이름이 거론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사명을 감당하지 못함으로 문제가 생겼고 이 문제의 근원지가 요나라는 것을 알게 되었으며, 결국 문제는 네가 섬기고 있는 하나님이라는 것을 이방인들이 알았기 때문이다.

 

우리도 확실한 신앙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세상의 사람들에게 짓밟히지 않으려면 복음을 가져야 한다. 십자가의 복음을 가지지 않으면 요나처럼 결국 사람들에게 수치를 당하게 된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갖고 세상에 나가 복음을 전해야 한다. 요나도 니느웨로 가서 복음을 전파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고 여호와의 얼굴을 피하여 도망을 가니 문제의 근원자로 이방 사람들에게 낙인찍혔다.

 

요나는 배에 타고 있던 사람들에게 자신은 히브리 사람이며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라고 즉시 말하고 있다. 땅과 바다와 하늘을 지으신 하나님을 섬기는 자라고 세상의 사람들에게 말하고 있다. 이 소리를 들은 사람들은 갑자기 두려워한다. 두려워하여는 ירא(야레) 두려워하다, 놀라다, 지존하다, 라는 뜻이다. 요나의 말을 들은 사람들은 즉시 놀라게 된다.

 

현재 자신들이 알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했던 폭풍이 일어난 이유가 요나가 섬기고 있는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하늘의 지존자 하나님께서 바다에 폭풍을 일게 하셨다. 요나는 자신이 섬기는 여호와의 얼굴을 피하여 다시스로 도망치고 있기 때문에 자신들이 광풍을 만나 죽을 위험에 처한 것을 알게 되었다. 요나는 자세하게 배에 타고 있는 사람들에게 하나도 빠짐없이 말을 하고 있다.

 

이때에 바다는 더 크게 바람이 불어 사람들을 놀라게 한다. 배에 타고 있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닥친 환란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고민하게 되고 곧바로 요나에게 묻기를 어떻게 해야 이 바다가 잔잔하게 되겠냐고 묻고 있다.

 

잔잔하겠느냐는 שתק(샤타크) 조용하다, 잠잠하다, 평온하다, 라는 뜻이다. 배에 타고 있는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흉용한 바람이 잠잠해질 수 있는지를 요나에게 묻고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사람들은 알지 못한다. 이 바람이 멈춰서 평온해져 자신들이 다시스까지 무사히 갈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를 알고 싶었다. 현재 이 파도가 얼마나 크게 치고 있으며 사람의 힘으로 해결해 보려고 하지만 절대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요나는 즉시 사람들에게 말한다.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한 가지가 있다. 하나님께서 나 때문에 큰 바람을 일으키셨기 때문에 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면 이 파도가 잔잔해질 것이라는 것을 요나는 말한다. 요나는 자신 때문에 문제가 생긴 것을 이미 알고 있다. 여호와의 얼굴을 피해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탔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했다. 던지라는 טול(툴) 굴복하다, 항복하다, 던져지다, 라는 뜻이다. 요나는 자신을 바다에 던지면 큰 폭풍이 멈추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이렇게 요나를 바다에 던지게 된다는 것은 하나님 앞에 굴복하여 두 손 들고 항복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호와의 얼굴을 피해 사명을 버리고 도망치는 요나가 바다에 던지라는 것은 이제 하나님께 굴복하겠다는 의미이다.

 

요나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의 모습을 볼 수 있다. 하나님의 사명을 버리고 도망칠 때 얼마나 불안하고 마음이 답답했는가? 하나님께 굴복하고 난 후에는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요나도 하나님께 항복하여 바다에 던져지면 이제부터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실 것을 믿었다.

 

이 말을 들은 많은 선원들은 즉시 자신들이 힘들게 노를 저어 배를 육지로 돌리려고 하고 있다. 얼마나 미련한 행동을 하고 있는가? 요나는 태풍이 멈출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지만 인간들은 자신의 방법대로 노를 젓고 있다. 힘써 노를 저어는 חתר(하타르) 헤치고 나아가다, 뚫다, 노를 젓다, 라는 뜻이다. 사람들은 요나의 말을 들음과 동시에 노를 저어 성난 파도를 헤치고 나가면서 비바람을 뚫고 전진하려 한다.

 

하지만 너무나 파도가 거세기 때문에 앞으로 절대 나가지 못하고 있다. 육지로 배를 돌리려고 해도 파도는 더욱 거세지고 있기 때문에 노를 저어도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고 있다. 시간이 흘러도 전혀 앞으로 전진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것이 인간들의 한계이다. 요나가 이 태풍을 잠잠하게 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지만, 사람들은 먼저 자신들의 방법으로 시도해 보고 있다. 문제의 발단이 무엇인지 정확히 가르쳐 주었지만 믿지 못하고 자신의 생각대로 일을 처리하려 한다.

사람들이 자신들의 모든 방법대로 행한 후에 하나님께 부르짖기 시작한다. 이들이 정말 신앙이 있어서 부르짖고 있을까 그렇지 않다. 지금 현재 생명이 죽을 위기에 처했기 때문에 이 문제를 잠시 피하기 위해 신앙이 있는 척하고 있다. 그 이유는 이미 자신들의 신을 먼저 불렀기 때문이다. 이방의 우상 신들을 섬기는 자들이 자신의 신들의 이름을 불러도 응답이 없자 하나님을 부르고 있다. 무리가 부르짖어는 קרא(카라) 부르짖다, 외치다, 간구하다, 기도하다, 소리 지르다, 라는 뜻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방법들이 통하지 않자 하나님께 즉시 간절한 마음으로 외치기 시작한다. 사람들의 마음은 기도하는 마음을 가지고 여호와 하나님께 소리를 치면서 부르짖고 있다. 이 사람들의 생명이 바다에서 끝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간절한 마음을 가지고 부르짖게 되었다.

 

인간들은 연약한 존재들이다. 힘든 환경 앞에서 무기력하여 신을 찾는 것이 인간이다. 하나님을 섬기지 않는 사람들도 인생의 고통이 찾아오니 하나님을 힘써 부르짖어 찾고 있다. 인간의 간사함이 나타나고 있다. 이 사람들이 정말 믿음이 있어서 하나님께 힘써 부르짖고 있는가? 결론은 아니다. 하나님이 주신 믿음이 아니라 자신들이 스스로 만들어낸 믿음으로 환란을 피해보기 위해 여호와 하나님을 찾고 있다. 교회 안에서도 이런 사람들이 있다. 자신들은 믿음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진정 하나님이 주신 믿음이 아니라 신념을 가지고 어려운 환경이 올 때만 하나님을 부르고 기도하면서 통곡하는 이런 간사한 자들이 있다. 이들은 자신이 만들어낸 믿음을 가지고 믿음이 있다고 말하는 자들이다.

 

배에 타고 있던 사람들은 자신들을 멸망시키지 말라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다. 멸망시키지는 אבד(아바드) 멸망하다, 파멸하다, 잃어버리다, 소멸하다, 라는 뜻이다. 이 사람들은 죽을 위험에 처한 사람들이다. 태풍의 위협에서 고통을 당하고 있기 때문에 자신들의 목숨이 파멸되어 영원히 사라지고 소멸될 것이 걱정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여호와 하나님께 죽을힘을 다해 부르고 있다. 이것이 마지막 방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기도하면서 지금 당장 이 멸망이 사라지게 해달라고 부르짖는다. 바로 요나 때문에 자신들을 지금 죽이지 말아 달라고 간청하고 있다. 또 무죄한 피를 우리에게 돌리지 말라고 말한다. 무죄한은 נקי(나키) 상관없는, 무죄한, 형벌을 면한, 이라는 뜻이다. 이 단어는 נקה(나카) 비우다, 깨끗하다, 무죄로 하다, 라는 뜻에서 유래했다.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 말하기를 자신들의 죄가 하나도 없으니 형벌을 면해 달라고 한다. 죄와 상관없는 사람들이며 이미 깨끗해서 누구에게도 죄로 인정되지 않는데 하나님의 선지자인 요나 때문에 무죄한 피를 죽이신다면 공의롭지 못한 하나님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이들은 지금 당장 무죄한 자들의 피를 돌리지 말라고 하나님께 구하고 있다. 인간들이 얼마나 하나님 앞에 깨끗하다고 이렇게 당당할 수 있는가? 선택되지 못한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서 무죄하다고 말하고 있다. 하나님 앞에서는 모두가 죄인이라고 했는데 자신들은 무죄라고 말한다. 하나님은 무죄를 인정하지 않았다. 사람들이 자신들은 죄가 없는 깨끗한 사람이며 형벌을 면한 존재라는 것을 스스로 판단하고 있다. 모든 것은 하나님이 판단한다. 인간은 하나님의 피조물에 불과한 존재들이다. 어떻게 하나님 앞에 당당하게 죄가 없다고 말할 수 있는가?

 

우리들은 현재 배에 타고 있는 사람들과 같이 하나님 앞에 당당하게 무죄라고 스스로 선언한 적이 없는가? 주님의 보혈을 무시하고 도덕 윤리적으로 판단하여 깨끗하고 죄가 없는 자이며 하나님 앞에 절대 형벌을 받을 필요가 없는 자라고 당당하게 외치지 않았는가? 모든 인간은 하나님 앞에 죄인이다. 주님의 십자가 형벌을 의지하지 않으면 모두가 하나님 앞에 무죄라고 선언할 수 없다. 무죄라는 선언은 오직 하나님만 할 수 있다. 인간에게 판단기준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판단하신다.

 

배에 타고 있던 사람들은 자신들의 방법대로 문제를 해결해 보려고 난 이후에 문제가 해결되지 않자 요나가 말했던 대로 요나를 들어 파도치는 바다로 던지고 있다.

 

요나를 들어는 נשא(나사) 용서하다, 돌아가다, 들어 올리다, 노래하다, 사죄함을 받다, 라는 뜻이다. 사람들이 이제는 망설임도 없이 요나를 들어 올려 바다에 던지려고 한다. 이 행동은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는 것이며 요나는 여호와 하나님의 얼굴을 피해 도망쳤는데 이제는 다시 회개하여 하나님이 주신 사명으로 돌아가게 된다. 사람들은 요나를 들어 올려 바다에 던짐으로 하나님으로부터 사죄함을 받아 폭풍이 잔잔케 되어 자신들의 생명이 살아남으로 노래를 부르게 된다. 요나를 들어 올리는 것이 자신들의 생명을 살리는 방법이다.

 

그래서 그들은 요나를 들어 올리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사람의 생각으로는 생명을 죽이는 행동이다. 폭풍 속으로 사람을 집어넣는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다. 하지만 지금까지 자신들의 모든 방법과 수단을 동원했지만 해결할 방법이 없기 때문에 최후의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 그래서 이들은 요나를 바다에 던지게 된다.

 

바다에 던지매는 טול(툴) 굴복하다, 항복하다, 던져지다, 쫓아내다, 라는 뜻이다. 사람들이 요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는 것은 큰 폭풍을 보내신 하나님 앞에 항복하는 행위이다. 결국 인간은 하나님께 굴복할 수밖에 없다. 하나님이 주신 방법 이외에는 절대 해결할 수 없다. 그래서 요나를 들어 즉시 광풍이 부는 바다에 집어던지게 된다. 문제의 근원을 완전히 쫓아내어 자신들의 생명을 구하려고 한다. 요나는 이미 자신 때문에 문제가 발생했다는 것을 깨닫고 있기 때문에 자신도 하나님께 항복하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사명을 버리고 도망쳐도 하나님은 끝까지 찾아가셔서 사명을 감당케 하신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은혜이다.

 

내가 아무리 발버둥 쳐 하나님의 사명을 피한다고 해도 하나님은 계속 나를 찾아오신다. 나 같은 존재를 버려도 하나님은 전혀 손해가 없다. 하지만 하나님은 끝까지 요나를 포기하지 않는 것처럼 나를 포기하지 않고 찾아오신다. 얼마나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인가? 이렇게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고 계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배에 타고 있던 사람들이 요나를 들어 바다에 던졌더니 큰 폭풍이 잔잔해졌다. 언제 태풍이 불었는지도 모르게 요나가 바다에 들어가자마자 곧바로 멈췄다. 그친지라는 עמד(아마드) 기다리다, 계속하다, 재판하다, 붙들리다, 라는 뜻이다. 요나가 바다에 들어가자 성난 파도는 언제 불었느냐는 듯이 사라졌다. 하나님은 요나가 바다에 들어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요나를 회개시켜 하나님의 사명을 다시 주시기 위해서다. 이렇게 폭풍을 주시고 잠잠케 하시는 것은 이방인들과 요나를 재판하기 위해서다. 이 재판을 통해 하나님은 이방인들의 생명을 취하지 않고 자신들이 가고자 했던 목적지까지 무사히 계속 갈 수 있게 되었다.

 

반면에 요나는 하나님의 손에 붙들려 어디를 가도 하나님의 얼굴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한 사건으로 재판하셨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도망쳐도 이미 하나님의 프로그램 안에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앞으로 요나의 이야기가 전개되어 가지만 하나님은 요나가 어떻게 될 것인지를 모두 프로그램화시켜 놓고 요나를 기다리고 있다. 요나가 하나님의 얼굴을 피하여 도망친다고 해서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순종했을 때와 불순종했을 때의 프로그램을 이미 만들어 놓으시고 요나를 기다리고 있다.

 

파도가 멈추는 사건을 놓고 배에 있던 이방인들은 갑자기 두려워졌다. 마음속에 공포가 깊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 이유는 요나가 섬기는 하나님께서 큰 태풍을 주신 것이 확실해졌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는 확실히 믿지 못했지만 요나를 바다에 던지고 난 직후에 폭풍이 멈추자 알아차렸다.

 

이방인들의 모습은 확연히 달라진다. 그러고 나서 나타나는 행동이 하나님께 제물을 드리고 있다. 드리고는 זבח(자바흐) 희생을 드리다, 제사드리다, 살육하다, 라는 뜻이다. 배에 탔던 사람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무섭게 여겨 제사를 드리는데 즉시 하나님께 드리고 있다. 이 사람들은 믿음이 있어서 희생 제사를 드리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이방 사람들은 바다의 신이 노하여 폭풍을 일으켰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 신을 더 이상 노하게 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어 있다. 요나가 믿었던 여호와 하나님의 개념이 아니라 일반적인 신의 하나로 보았다. 자신들이 믿고 있는 신들 중의 하나로 보고 자신들의 목적지인 다시스에 돌아갈 때까지 더 이상 폭풍을 일으키지 말라는 의도에서 제사를 드리고 있다.

 

이 사람들이 드린 제사는 온 마음을 다해 드리고 있지만 진정한 신앙의 자세로 드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기원의 의미로 드리고 있다. 구원의 은총에 대한 제사가 아니라 자신의 육신적인 생명을 살려준 것에 대한 제사를 드리고 있다. 하나님께 선택된 백성들은 구원의 감사에 대하여 여호와 하나님께 제물을 드려 제사를 한다. 바로 제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이다. 제물에 예수님의 피가 없으면 아무리 맛있게 제물을 잡아 하나님께 드려도 아무 소용이 없다. 주님의 보혈의 제사를 드리는 자가 진정한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는 자이다. 바로 십자가의 은혜를 믿고 예수님의 공로를 의지하여 드리는 자들이 하나님께 구원받은 백성들이다. 이방인들도 잘되면 하나님께 제사를 드린다고 말한다. 아주 잠시 동안 은혜를 기억하면서 드린다. 이런 믿음은 영원한 믿음이 되지 못한다. 자신들의 유익을 위해 드렸기 때문이다.

 

그다음에 이방인들이 나온 행동은 하나님께 서원을 한다. 서원은 נדר(네데르) 서원, 맹세, 서원 제물, 이라는 뜻이다. 서원을 하나님께 하는데 하나만 하는 것이 아니라 많은 말을 하나님께 하고 있다. 서원은 하나님께 대한 약속이다. 제물을 통해 하나님께 드리는 약속인데 많은 약속을 사람들이 한다. 약속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 사람과의 약속도 지켜야 하는데 하물며 하나님과의 약속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

 

네가 하나님께 서원하였거든 갚기를 더디게 하지 말라 하나님은 우매한 자들을 기뻐하지 아니하시나니 서원한 것을 갚으라 서원하고 갚지 아니하는 것보다 서원하지 아니하는 것이 더 나으니

 

하나님께 서원한 것은 갚기를 더디게 하지 말라고 말씀하고 있다. 서원을 갚지 아니하려면 서원하지 않는 것이 더 낫다고 말씀한다. 이방인들은 자신들의 육체적인 생명을 구원받자 하나님께 서원을 한다. 하나의 서원을 하는 것이 아니라 많은 서원 예물을 드리면서 하나님과 약속을 한다. 이때 약속할 때는 온 힘을 다하고 최선을 다하고 마음을 다해서 하나님과 약속한다. 문제는 시간이 흐르면서 하나님과의 약속을 잊어버리게 된다. 이런 서원들은 하나님을 제대로 섬기지 못하는 자들이 하는 서원이다. 당장 문제가 해결되면 약속해놓고 다시 세상으로 돌아가는 자들의 모습이 바로 구원받지 못한 자들을 나타내 주고 있다.

 

이 사람들이 서원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를 말해주고 있는데 하였더라는 נדר(나다르) 서원하다, 맹세하다, 라는 뜻이다. 하나님께 서원을 하는데 자신들 스스로 자발적으로 즉시 서원하여 하나님께 맹세를 드리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서로 증인이 되었고 많은 사람들이 최선을 다해 하나님과 약속했던 많은 것들을 지키겠다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시간이 흐른 후에 하나님께 서원한 많은 일들을 잊어버리고 만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주신 믿음으로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믿음을 하나님께서 주시지 않으면 확신하지 못한다. 믿음은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전적 사역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주셔야 한다. 이방 사람들은 결국 자신들의 신념을 가지고 하나님께 서원을 했지만 지켰다고 성경은 말하지 않는다.

우리의 신앙생활 속에서 갑자기 환란이 닥쳤을 때 육체의 고난 때문에 하나님께 서원할 때가 있다. 모든 문제를 하나님께서 해결해 주시고 육체의 고난을 풀어주시면 마음이 변해 하나님과의 약속을 잊어버리고 살 때가 있다.

 

아주 위험한 줄다리기를 하나님과 하고 있는 것이다. 신앙을 담보로 하나님과의 약속을 버리고 있다. 교회에 나오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처럼 생각을 한다. 지금까지 우리가 하나님께 서원했던 많은 것들이 있다. 이 약속이 생각났다면 하나님께 나와서 약속을 지켜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세상의 이방인들의 서원과 다를 바가 없다. 잠시 육체의 고난을 피하기 위한 방패로서 하나님께 서원을 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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