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데스다 구약성경강해

[예레미야 1장 설교말씀] 예레미야 강해(렘 1:11-12)

성령의 능력 2020. 10. 13.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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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예레미야 1장 설교말씀 중에서 예레미야 1장을 강해하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제 목: 예레미야 강해(4)

성 경: 1:11-12

 

봉독해 드리겠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느니라 이르시되 예레미야 야 네가 무엇을 보느냐 대답하되 내가 살구나무를 보나이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가 잘 보았도다 이는 내가 내 말을 지켜 그대로 이루려 함이니라" 아멘.

지난 주일에는 목회자의 사명 가운데 건축자로서 세우는 사명에 대하여 함께 말씀을 상고했습니다. 오늘은 11-12절에 있는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의 깨닫는 생활에 대해서 말씀을 함께 나누려고 합니다. 예레미야가 하나님의 선지자로 부름을 받았을 때 그는 이름도 없던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어떤 경건한 삶을 살았는지에 대하여서는 언급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가 어느 날 갑자기 때가 되매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하나님이 그에게 나타나셔서 음성으로 그에게 사명을 깨닫게 해 주십니다. 그 사건은 우리가 지난번에 상고했던 것처럼 예레미야의 생애에 놀라운 변화를 가져오는 사건이 되고 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다고 하는 것은, 그 말씀을 들을 수 있게 됐다는 것은 예레미야의 일생에 있어서 굉장히 중요한 사건이었고 그 인생 자체를 바꿔놓는 사건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부분들을 통해서 오늘 우리가 예수를 만난다고 하는 것은 인생에 있어서 어떤 사건인가, 예수를 만난다는 것이 우리의 삶에 어떤 변화를 초래하는가에 대해서 이미 상고한 바가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은 이 깨닫는 생활, 더 구체적으로 말씀드리면 성장하는 신앙생활에 대해서 오늘 본문이 우리에게 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할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이런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레미야에게 말씀을 통해서 사명을 주셨던 하나님께서 이제 다시 나타나셨습니다. 그래서 예레미야에게 말씀을 하십니다. "네가 무엇을 보느냐?" 예레미야가 말씀을 드리길 "하나님, 내가 지금 살구나무 가지를 하나 보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네가 잘 보았도." 그렇게 말씀하세요. 예레미야가 보고 있는 것은 자기 집 정원에 있는 살구나무입니까? 아니지요. 지금 예레미야는 환상 가운데 보고 있는 거예요. 한글 성경에는 살구 나무라고 번역이 돼 있지만 원문으로 보면 살구나무가 아니고 아몬드 나무예요.

 

살구나무로 번역한 이유는 이 아몬드가 1월 달에 싹이 돋고 꽃이 펴요. 제일 먼저 꽃이 피는 나무예요. 그걸 우리나라 말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제일 먼저 꽃이 피고 싹이 나는 것이 우리나라에서는 매화, 살구 이런 종류이니, 그렇게 번역을 해놓은 것이에요. 실제로는 아몬드 나무입니다. "내가 그 가지를 보고 있습니다" 그렇게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네가 잘 보았도다" 하고 칭찬을 하고 계셔요.

 

그러면서 12절에 그 뜻을 설명을 해주시면서 하시는 말이, "그것은 내가 내 말을 그대로 지켜 행하겠다고 하는 하나의 상징이요, 약속이다" 그렇게 말씀을 해주고 있습니다. 그러면 오늘 우리는 이 예레미야가 본 환상을 통해서 우리가 깨달아야 될 것이 무엇인가? 한 가지만을 먼저 생각을 해보려고 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네가 무엇을 보고 있느냐라는 질문에 대한 답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들은 무엇을 보고 있습니까? 예레미야는 지금까지는 보는 사람이 아니었습니. 예레미야는 지금까지 듣는 사람도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얼마 전부터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시작한 사람이 되었고 이제는 무엇인가를 보기 시작하는 사람으로 변화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가 먼저 깨달아야 할 것은, 이제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귀가 있는 자,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자가 되어야겠다는 것입니다. 예레미야는 그전까지 물론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본 경험은 없었습니다.

 

오늘 이 시간에 우리가 먼저 말씀을 듣는 신앙의 단계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깊이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가 일생을 살아가면서 여러 소리와 사상과 이론을 듣고 삽니다. 여러 사람들의 말을 듣고 삽니다. 이 모든 소리 가운데에는 우리가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도 있고 또는 우리의 삶에 장애가 되는 악한 것도 있습니다. 람은 어떤 말을 듣고, 어떤 말을 따르느냐에 따라 공산주의자도 될 수 있고, 기꾼도 될 수 있고, 강도도 될 수 있고, 과학자도 될 수 있고, 의사도 될 수 있어요. 내가 어떤 말을 듣고, 어떤 말을 따르느냐에 따라, 내가 어떤 것을 듣고 어떤 것을 배우느냐에 따라서 그 사람의 인생이 달라집니다. 우리가 어떤 말을 들을 때, 그것은 우리의 인생을 결정하는 중요한 변수가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 그러나 오늘 우리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소리는 과연 무엇입니까? 오늘 우리 인생이 들어야 할 가장 소중한 소리는 과연 어떤 소리인가? 철학인가? 문학인가? 사회.인문과학인가? 오늘 많은 사람들은 여러 가지 소리를 듣고 그 소리의 가치를 인정하고 삽니다. 이것이 최고 좋은 소리라고, 이것이 내 인생을 풍요롭게 하는 소리라고 생각들을 하고 그 소리를 추구하고 삽니다. 오늘도 저와 여러분은 무슨 소리를 듣기를 좋아하고, 무슨 소리를 듣고, 어떤 말을 듣고 따르고 있는가를 점검해 보시기를 바래요. 오늘 이 세상에는 많은 소리가 있습니다.

많은 이론이 있고, 많은 사상이 있고, 많은 말들이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지금까지 어떤 말을 듣고 살아왔습니까? 어떤 말을 여러분의 인생에 가치를 주는 것으로 생각하고 인생을 살았습니까? 오늘 본문에 나타난 예레미야의 인생에 있어서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졌다는 사실은 놀라운 사건이었습니다. 그 어떠한 소리보다도 인생의 창조주이신 하나님 말씀을 듣는다는 것은 엄청난 사건이었습니다. 예레미야는 지금까지 여러 가지 사상과 이론을 들어왔습니다. 그러나 그의 인생에 있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사건은 놀라운 사건이었습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도 하나님에 대하여 많이 들어온 사람들입니다. 교회에 대해서도 이미 많이 들어왔습니다. 성경에 대해서도 이미 들어왔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문학을 전공한 문학박사들도 성경은 백독 이상 한다고 합니다. 문학적 가치가 있거든요. 법학을 전공한 사람들도 성경을 연구합니다. 고대법에 대한 연구 자료가 여기 있거든요. 고고학을 연구하는 사람들도 성경을 들여다봅니다. 철학을 연구하는 사람들도 성경을 들여다봅니다. 과학을 연구하는 사람도 성경을 들여다봅니다. 성경은 어떤 분야에 있는 사람이건, 다 가치를 부여하고 들여다봅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성경을 백 번 읽었다고 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은 아니에요.

 

여러분들은 이 시간까지 신앙생활하시면서 과연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셨습니까? 다시 말하면 오늘 여러분을 향해서 말씀하시는 그분의 음성을 들으셨습니까? 독교의 하나님이 아니라, 나의 하나님의 음성을 말입니다. 교회에 오면 으레 목사가 하는 말이 아니라,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 오늘 나에게 하시는 말씀으로 여러분의 심령 속에 들려지고 있습니까? 오늘 여러분의 마음속에 이 말씀이 들려지고 있다면 그것은 엄청난 축복입니다. 엄청난 은혜입니다. 여러분, 우리 모두는 지금까지 여러 가지 소리를 듣고 살아왔습니다. 여러 가지 말들을 듣고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이 시간 간절히 바라는 것은 만군의 여호와, 창조주, 인생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이 여러분의 마음속에 새겨지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여러분의 귀에 들려지기를 바랍니다. 요한계시록에 보니까 일곱 교회를 향하여 주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말씀을 하시고 마지막에 꼭 붙이시는 말씀 한 마디가 있어요.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을지니라" 들을 귀가 있는 자는 듣는다 그랬어. 오늘 하나님의 말씀은 선포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이 말씀을 지나가는 말로 들어버립니다. 하나의 기독교 사상으로 들어버립니다. 예수쟁이의 말로 치부해 버립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도 그들은 말하기를 뭐라고 말합니까? 그것은 하나의 종교적 사상이라고 이야기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도 비웃습니다, 조롱을 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그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 가치를 부여하지를 않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에베소서 212절에 "그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의 언약에 대하여 외인이며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에베소서 22절에 "그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 역사하는 영이라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 예수도 모르고 그의 말씀은 더더욱 모르고 살던 우리였는데 어느 날 그분이 우리를 찾아오셔서 말씀을 듣게 해 주셨어요. 우리는 전에는 하나님을 모르던 사람들이었고 외인이었습니다. 세상에서 세상 풍속을 따르며, 세상의 가치 기준을 따르며 내 마음에 원하는 대로 사는 것이 인생의 모습인 줄 알고 살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 주님께서 찾아와 주셔서 나의 마음속에 그의 음성을 듣게 해 주셨어요. 그래서 오늘 우리는 그의 음성을 듣는 자들이 되어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러나 중요한 것은 오늘 이 시간까지도 이 음성을 듣지 못하는 심령들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이 시간에 여러분들을 찾아오셔서 여러분의 마음의 문 밖에서 마음의 문을 두드리시면서 문을 열고 주님을 영접하기를 원하시는 주님의 말씀과 그 음성과 그 마음을 들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주의 말씀을 듣는다고 하는 것은 엄청난 축복입니다. 우리의 삶의 영역에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졌다는 사실은 참으로 귀한 일입니다.

 

전에 듣지도 못했던 영원한 삶에 대해서 우리 눈 앞에 이제 보이기 시작했습니.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지지 않는 일이 많이 있음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고 그저 말씀을 증거 하는 목사 이야기 저거 누구 들으라고 하는 이야기 오늘도 나는 듣지 못하는 이 안타까운 심령들이 오늘 우리 가운데 있다는 사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이 시간에 하나님의 말씀이 여러분 귀에 들려지는 은혜의 상태가 이 시간 여러분에게 풍성하게 임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여러분 지금까지 무슨 소리를 듣고 사셨습니까? 무슨 말을 듣기를 즐거워했습니까? 여러분의 인생에 어떤 말에 가치를 두셨습니까? 세상의 인문. 사회. 과학. 모든 이야기들은 다 지나가는 것들에 지나지 않습니다.

 

과학 과학 그러는데 과학이 무엇입니까? 과학은 진리가 아닙니다. 과학은 진리가 아니기 때문에 오늘도 변화되고 발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인 이 성경은 발전이 없습니다. 몇천 년의 역사를 흘러 오면서 그대로 간직되고 있습니. 오늘도 이 말씀만은 변하지 않고 있습니다. 다른 사회 인문 과학은 다 시대를 따라 세월을 따라서 변화가 됐어요. 새롭게 제 조명을 했어요. 그러나 오늘 이 하나님의 말씀은 수천 년의 역사를 통해서도 변화되지 않고 그대로 오늘 우리 곁에 있고 오늘도 이 말씀을 통해서 주님께선 여러분을 채아 오고 계신다는 것을 여러분은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다시 한번 기억을 하십시오. 여러분들은 주의 음성을 듣고 계십니까? 예레미야의 삶에서도 마찬 가지였습니다. 그가 하나님을 믿는다 했지만은 직접 그의 음성을 그가 개인적으로 듣기에는 이 소명을 받을 때가 처음이었습니다. 오늘 이 말씀이 여러분의 마음속에 개인적으로 와 부딪칠 때에 여러분의 삶에는 놀라운 변화가 일어날 것입니다.

 

그것이 진정한 말씀을 듣는 자들에게 축복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 와 앉아있으면서도 이 말씀을 듣지 못하는 귀들이 있습니다. 들을귀 있는 자가 복 되다고 하신 주의 음성을 기억하십시오. 오늘 여러분의 마음속에 이 말씀이 들려 지기를 사모하십시오. 말씀이 증거 될 때마다 그 말씀이 여러분의 귀에 들려 지기를 사모하십시오. 그리고 기억하셔야 될 것은 이 말씀이 여러분에게 들려졌다고 하는 이 사실이 여러분의 인생에 얼마나 축복된 일인가를 다시 한번 기억하면서 오늘 이 시간에 다시 한번 여러분의 마음속에 주여 나에게 그 음성이 들려 지기를 원합니다. 오늘까지 내가 세상의 소리는 다 들을 줄 알았지만 하나님의 음성은 들을 줄은 몰랐습니다. 세상에 많은 소리들이 있지만 그 소리들의 가치만을 인정할 줄 알았지만 지금까지 창조주 하나님의 말씀에 가치를 부여하지 못했던 나를 긍휼히 여겨 주시고 주여 그 말을 들을 수 있는 은혜를 주옵소서. 지금까지 1020년 신앙생활을 해 오면서도 아직도 그분의 말씀이 내 심령 속에 들려지질 않았습니다.

내 삶에 변화가 없고, 내 삶에 능력이 없는 심령들이 있다면 오늘 이 시간 여러분들이 기도 하시길 바랍니다. '예레미야에게 하신 하나님의 말씀 오늘 나에게도 들려져서 오늘 내 인생의 비전 내 인생의 소망 내 인생의 삶의 가치가 변하고 내 삶의 모습이 변화되기를 소원합니다'라고 기도 하시는 복된 시간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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