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데스다 구약성경강해

[예레미야 성경말씀]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따른 유다백성(렘 2:1-37)

성령의 능력 2021. 9. 8.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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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예레미야 성경말씀 중에서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따른 유다 백성이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하나님은 우상을 숭배하는 유다 백성을 향하여 징계하실 것을 예언합니다. 여호와께서 유다 백성을 지키시고 보호해 주었으며 먹이시고 입혀주었는데도 배신했습니다.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고 우상을 바라보았으며 타락한 인생을 살았습니다. 우리도 유다 백성처럼 인생을 살면 안 됩니다. 항상 예수님 안에서 주님의 복음 말씀을 듣고 살아야 합니다. 주님께 영광을 돌리며 하나님을 인식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구원받은 은혜에 감사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이 시간 오직 주님만 의지하면서 살아가는 성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따른 유다백성(렘 2:1-37)

 

1-13, 이스라엘의 두 가지 악

[1-3]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가서 . . . .

여호와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셨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종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주신 말씀들과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께서 사도들에게 주신 말씀들이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에 다 기록되어 있다. 오늘날, 신구약 66권의 성경은 하나님의 친 음성의 말씀이며 살아 역사하는 말씀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신구약 성경을 읽고 연구하고 듣고 묵상하고 깨닫고 믿고 그대로 행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에게 말씀하셨다. “가서 예루살렘 거민의 귀에 외쳐 말할지니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네 소년 때의 우의(友誼)와 네 결혼 때의 사랑 곧 씨 뿌리지 못하는 땅, 광야에서 어떻게 나를 좇았음을 내가 너를 위하여 기억하노라. 그때에 이스라엘은 나 여호와의 성물(聖物) 곧 나의 소산 중 처음 열매가 되었나니 그를 삼키는 자면 다 벌을 받아 재앙을 만났으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우의’(友誼)라는 원어(헤세드)는 주로 자비’--죄인들을 향한 하나님의 자비이든지, 다른 사람을 향한 사람의 자비이든지 간에--라는 뜻으로 사용되지만, 간혹 본문에서와 같이 하나님께 대한 사랑경건이라는 뜻으로도 사용된다(BDB).

이스라엘 백성은 애굽에서 나온 후 광야에서 하나님을 경외하고 섬기며 따랐다. 비록 그 백성이 목이 곧고 항상 하나님을 거역하고 속히 하나님을 떠났으나, 적어도 그 지도자 모세와 수종자 여호수아는 하나님 앞에서 경건하고 신실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하나님의 성물(聖物)[구별된 물건]과 같이, 소산물 중의 첫 열매와 같이 여기셨다. 그를 삼키는 자는 벌을 받고 재앙을 받았다.

[4-8] 야곱 집과 이스라엘 집 모든 가족아 나 여호와의 말을 . . . .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신다. “야곱 집과 이스라엘 집 모든 가족아, 나 여호와의 말을 들으라.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너희 열조가 내게서 무슨 불의함을 보았관대 나를 멀리하고 허탄한 것을 따라 헛되이 행하였느냐?[허무하게 되었느냐?](KJV, NASB, NIV).” 이스라엘의 죄는 두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는 하나님을 멀리한 것이며, 둘째는 헛된 것을 따른 것이다. 하나님께 불의한 일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하나님을 멀리하고 헛된 것을 따랐다. 신약시대에도 마찬가지이었다. 예수님 당시에 유대인들은 예수께서 무슨 잘못을 행하지 않으셨으나 그를 배척하고 죽였고 또 사도들이 무슨 악을 행하지 않았으나 그들을 핍박하고 죽이려 하였다.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신다. “그들이 우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광야 곧 사막과 구덩이 땅, 간조하고 사망의 음침한 땅, 사람이 다니지 아니하고 거주하지 아니하는 땅을 통과케 하시던 여호와께서 어디 계시냐 말하지 아니하였도다. 내가 너희를 인도하여 기름진 땅에 들여 그 과실과 그 아름다운 것을 먹게 하였거늘 너희가 이리로 들어와서는 내 땅을 더럽히고 내 기업을 가증히 만들었으며 제사장들은 여호와께서 어디 계시냐 하지 아니하며 법 잡은 자들은 나를 알지 못하며 관리들도 나를 항거하며 선지자들은 바알의 이름으로 예언하고 무익한 것을 좇았느니라.”

이스라엘의 선조들은 그들을 애굽 땅에서 구원하시고 그의 기이한 손으로 그 거친 광야를 통과하도록 지켜주신 하나님을 잊어버렸고 그를 찾지 않았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인도하여 기름진 가나안 땅에 들여 그 아름다운 소산을 먹게 하셨으나, 그들은 이리로 들어와서는 하나님의 땅을 더럽혔고 하나님의 기업을 가증하게 만들었다. 하나님께서는 가나안 땅을 내 땅내 기업이라고 부르셨다. 이스라엘의 지도자들, 곧 제사장들과 법관들과 관리들과 선지자들은 하나님을 찾지 않았고 알지 못했고 대적하였고 헛된 것을 좇았다.

[9-13] 그러므로 내가 여전히 너희와 다투고 너희 후손과도 . . . .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신다. “그러므로 내가 여전히 너희와 다투고 너희 후손과도 다투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너희는 깃딤 섬들에 건너가 보며 게달에도 사람을 보내어 이 같은 일의 유무를 자세히 살펴보라. 어느 나라가 그 신()을 신() 아닌 것과 바꾼 일이 있느냐? 그러나 나의 백성은 그 영광[하나님]을 무익한 것[우상들]과 바꾸었도다.” 깃딤 섬은 지중해 동북쪽 끝에 있는 큰 구브로 섬(사이프러스 섬)을 가리키고, 게달은 이스마엘의 후손인 유목민들(베두인 사람들)을 가리킨다.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신다. “너 하늘아, 이 일을 인하여 놀랄지어다. 심히 떨지어다. 두려워할지어다(코르부 메오드)[매우 황폐할지어다](BDB, NASB). 여호와의 말이니라.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생수의 근원 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물을 저축지 못할 터진 웅덩이니라.”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들을 섬긴 것은 매우 큰 악이기 때문에 하늘도 이 일을 듣고 놀랄 것이며 심히 떨 것이다. 하늘과 땅은 황폐할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의 악은 다시 두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는 생수의 근원 되는 하나님을 버린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생명의 근원이시다. 사람은 하나님을 떠나면 죽는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멀리하는 것이 곧 사람의 죽음이다. 둘째는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이다. 그러나 그 웅덩이는 물을 저축하지 못할 터진 웅덩이이다. 그것은 헛된 우상숭배를 가리킨 말씀이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을 멀리하지 말고 버리지 말고 떠나지 말자. 하나님께 무슨 잘못이 있는가? 무슨 문제가 있는가? 무슨 불의가 있는가? 무슨 부도덕이 있는가? 성경적 기독교 신앙에, 성경적 교훈과 설교에 무슨 잘못, 무슨 문제, 무슨 불의, 무슨 부도덕이 있는가?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멀리하거나 떠나지 말고 성경적 교훈을 떠나지 말자. 신명기 10:20,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그를 섬기며 그에게 친근히 하라[그를 꼭 붙들라].”

둘째로, 우리는 헛된 웅덩이나 터진 웅덩이를 파지 말자. 헛된 웅덩이나 터진 웅덩이는 하나님 아닌 것, 참으로 구원을 줄 수 없고 도움을 줄 수 없는 헛된 우상을 가리킨다. 그것은 오늘날 물질주의, 인본주의, 세속주의, 쾌락주의에 적용되며, 천주교회나 이단종파들이나 자유주의 신학이나 교회연합운동이나 은사운동에도 적용된다. 사람들이 하나님을 버리고 성경적 신앙, 역사적 기독교 신앙, 바른 신앙을 버리고 잘못된 사상을 구하며 따르는 것은 큰 악이다. 그것은 하늘도 놀라고 심히 떨 큰 악이다. 우리는 헛된 우상숭배를 버리자.

셋째로, 우리는 하나님 한 분으로 만족하고 그가 주신 성경의 교훈으로 만족하자. 시편 73:24-26, “주의 교훈으로 나를 인도하시고 후에는 영광으로 나를 영접하시리니 하늘에서는 주 외에 누가 내게 있으리요 땅에서는 주밖에 나의 사모할 자 없나이다. 내 육체와 마음은 쇠잔하나 하나님은 내 마음의 반석이시요 영원한 분깃이시라.” 갈라디아서 6:14,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이것이 옛 길이며 옛 신앙이며 성경적 기독교이다. 이것이 복된 길이며 평강의 길, 형통의 길, 영생의 길이다. 예레미야 6:16,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는 길에 서서 보며 옛적 길 곧 선한 길이 어디인지 알아보고 그리로 행하라. 너희 심령이 평강을 얻으리라 하나 그들의 대답이 우리는 그리로 행치 않겠노라 하였으며.”

14-25, 이스라엘의 황무함의 원인

[14-16] 이스라엘이 종이냐? 씨종이냐? 어찌하여 포로가 . . . .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신다. “이스라엘이 종이냐? 씨종이냐? 어찌하여 포로가 되었느냐? 어린 사자들이 너를 향하여 부르짖으며 소리를 날려 네 땅을 황무케 하였으며 네 성읍들은 불타서 거민이 없게 되었으며 놉과 다바네스의 자손도 네 정수리를 상하였도다.” ‘씨종이라는 원어(옐리드 바이트)집에서 난 ()’이라는 뜻이다. ‘포로라는 원어(바즈)약탈물이라는 뜻이다. ‘상하다는 원어(라아)‘(풀을) 뜯어먹다는 뜻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종처럼, 약탈물처럼 포로가 되었다. 침략자들이 그 땅을 황무하게 만들었고 그 성읍들을 불태워 거민들이 없게 하였다. [멤피스]과 다바네스의 자손들 곧 애굽 사람들은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을 풀을 뜯어먹듯이 해치었다.

[17-20]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를 길로 인도할 때에 네가 . . . .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신다.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를 길로 인도할 때에 네가 나를 떠남으로 이를 자취함이 아니냐? 네가 시홀의 물을 마시려고 애굽 길에 있음은 어찜이며 또 그 하수를 마시려고 앗수르 길에 있음은 어찜이뇨? 네 악이 너를 징계하겠고 네 패역이 너를 책할 것이라. 그런즉 네 하나님 여호와를 버림과 네 속에 나를 경외함이 없는 것이 악이요 고통인 줄 알라. 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시홀은 분명히 나일강을 가리키며(23:3) 아마 나일강의 동쪽 지류를 가리키는 말일 것이라고 한다(BDB). ‘그 하수는 유프라데 강을 가리킨다. ‘패역이라는 원어(메슈바)는 ‘배교라는 뜻이다(BDB).

이스라엘의 죄는 하나님을 떠나고 버린 것 곧 참 경건의 상실이다. 그들은 하나님 대신 남방의 강대국인 애굽이나 북방의 강대국인 앗수르를 의지하였다. 그것은 세상을 의지하고 사람을 의지한 것이다. 선지자는 그것을 배교라고 표현한다. 이스라엘의 멸망은 그들이 하나님을 버렸고 그들 속에 하나님 경외함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신다. “네가 옛적부터 네 멍에를 꺾고 네 결박을 끊으며 말하기를 나는 순복지 아니하리라 하고 모든 높은 산 위와 모든 푸른 나무 아래서 몸을 굽혀 행음하도다.” 본절 상반절의 원문은 이는 내가 옛적에 네 멍에를 꺾고 네 결박을 끊었으나, 네가 말하기를, 나는 순복지 아니하리라”고 번역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본다(KJV, NASB). “내가 옛적에 네 멍에를 꺾고 네 결박을 끊었다는 말씀은 출애굽 사건을 가리킬 것이다. 또 하나님께서는 사사 시대에도 여러 번 이방의 압제에서 이스라엘을 건져주셨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께 순복지 않았고 우상숭배에 떨어졌다.

[21-25] 내가 너를 순전한 참 종자 곧 귀한 포도나무로 . . . .

하나님께서는 또, “내가 너를 순전한 참 종자 곧 귀한 포도나무(쇼레크)로 심었거늘 내게 대하여 이방 포도나무의 악한 가지가 됨은 어찜이뇨?”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택하시고 부르시고 그의 자손 이스라엘 백성을 경건하고 의로운 백성을 삼기를 원하셨다. 그러나 그들은 악을 행하는 이방인들과 다를 바가 없게 변질되었다.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신다. “주 여호와 내가 말하노라. 네가 잿물로 스스로 씻으며 수다한 비누를 쓸지라도 네 죄악이 오히려 내 앞에 그저 있으리니 네가 어찌 말하기를 나는 더럽히지 아니하였다, 바알들을 좇지 아니하였다 하겠느냐? 골짜기 속에 있는 네 길을 보라. 네 행한 바를 알 것이니라.” 이스라엘 백성의 죄악은 잿물이나 많은 비누로도 씻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들의 죄악은 하나님 앞에 분명하게 기억될 것이다. 그들의 우상숭배의 자취들은 골짜기 속에 드러나 있다.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신다. “너는 발이 빠른 젊은 암약대가 그 길에 어지러이 달림 같았으며 너는 광야에 익숙한 들 암나귀가 그 성욕이 동하므로 헐떡거림 같았도다. 그 성욕의 때에[그 발정의 때에] 누가 그것을 막으리요. 그것을 찾는 자들이 수고치 아니하고 그것의 달에 만나리라. 내가 또 말하기를 네 발을 제어하여 벗은 발이 되게 말며 목을 갈하게 말라 하였으나 오직 너는 말하기를 아니라, 이는 헛된 말이라. 내가 이방신을 사랑하였은즉 그를 따라 가겠노라 하도다.” 이스라엘 백성은 마치 발정한 들 암나귀같이 우상숭배에 열심이었고 악을 행하기에 열렬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행음치 말고 헛된 갈망을 버리라고 말씀하셨으나 그들은 그 말씀을 헛되이 여기며 이방신을 사랑했고 그것을 따라갔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행음하지 말자.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을 떠났고 배교하였고 영적 행음 즉 우상숭배에 빠졌었다. 우리는 육적 행음은 물론이고 영적 행음 곧 우상숭배를 하지 말자. 우리는 이 세상이나 세상의 것들이나 사람이나 돈을 사랑하지 말자.

둘째로, 우리는 하나님만 믿고 따르자. 하나님께서는 귀한 포도나무, 순전한 참 종자를 심으셨으나 그들은 이방 포도나무의 악한 가지가 되었다(21). 하나님께서는 이사야 5:2에서도 이스라엘을 극상품 포도나무라고 표현하시며 좋은 포도 맺기를 기대하셨으나 들포도를 맺었다고 지적하셨다. 주께서도 자신이 참 포도나무요 우리는 그의 가지들이라고 비유하시며 우리가 주 안에 거하여 좋은 열매를 많이 맺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15:1, 5). 우리는 하나님께서 심으신 좋은 포도나무, 순전한 참 종자임을 깨닫고 하나님만 경외하고 믿고 의지하고 그의 모든 계명을 순종하며 살자. 이것은 죄성을 가진 우리의 힘으로는 할 수 없고 오직 우리 속에 계신 성령의 도우심으로만 가능하다.

26-37, 이스라엘의 죄악됨

본문은 이스라엘의 죄악됨과 그 결과로 받을 일을 증거한다.

[26-28] 도적이 붙들리면 수치를 당함같이 이스라엘 집 . . . .

하나님께서는, “도적이 붙들리면 수치를 당함같이, 이스라엘 집 곧 그 왕들과 족장들[혹은 방백들]과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이 수치를 당하였느니라”고 말씀하신다. 이스라엘 백성은 왕들과 족장들과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이 함께 우상숭배하며 하나님의 계명들을 어김으로 수치를 당할 것이다. 범죄하는 자들은 수치를 당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신다. “그들이 나무를 향하여 너는 나의 아비라 하며 돌을 향하여 너는 나를 낳았다 하고[하였으니, 이는] 그 등을 내게로 향하고 그 얼굴은 내게로 향치 아니하다가 환난을 당할 때에는 이르기를 일어나 우리를 구원하소서 하리라[함이니라]. 네가 만든 네 신들이 어디 있느뇨? 그들이 너의 환난을 당할 때에 구원할 수 있으면 일어날 것이니라. [이는] 유다여, 너의 신들이 너의 성읍 수와 같도다[같음이니라].” 이스라엘 백성은 나무와 돌로 우상들을 만들어 놓고 신으로 숭배하였다. 그들은 그 등을 하나님께로 향하고 그 얼굴은 그에게로 향치 않았다. 그들의 신들의 수는 성읍 수같이 많았다. 그들은 십계명의 제1계명과 제2계명을 어긴 자들이었다. 그것은 근본적 악이었다. 그런데 이제 환난을 당할 때 그들은 왜 여호와 하나님께 구원을 요청하고, 그 우상들에게 하지 않는 것인가?

[29-30]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가 나와 다툼은 . . . .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신다. “너희가 나와 다툼은 어찜이뇨? 너희가 다 내게 범과하였느니라. 내가 너희 자녀를 때림도 무익함은 그들도 징책을 받지 아니함이라. 너희 칼이 사나운 사자같이 너희 선지자들을 삼켰느니라.”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범죄하였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을 징책하여도 소용이 없었다. 왜냐하면 그들이 그 징책을 달게 받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은 도리어 사나운 사자같이 그들의 칼로 선지자들을 죽였다. 그것은 하나님의 교훈권을 부정하는 행위이었다. 그것은 하나님을 부정하고 대적하는 행위이었다.

[31-34] 너희 이 세대여, 여호와의 말을 들어 보라. 내가 . . . .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신다. “너희 이 세대여, 여호와의 말을 들어 보라. 내가 이스라엘에게 광야가 되었었느냐? 흑암한 땅이 되었었느냐? 무슨 연고로 내 백성이 말하기를 우리는 놓였으니 다시 주께로 가지 않겠다 하느냐?” ‘놓였다는 원어(라드누)유랑하였다, 돌아다녔다는 뜻이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거친 들판과 같았었는가? 슬픔과 불행의 땅과 같았었는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풍성한 곡식을 주고 기쁨과 평안을 주지 않으셨던가? 그런데 그들은 왜 방황하였는가? 또 왜 하나님께로 돌아가지 않으려 하는가?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신다. “처녀가 어찌 그 패물을 잊겠느냐? 신부가 어찌 그 고운 옷을 잊겠느냐? 오직 내 백성은 나를 잊었나니 그 날 수는 계수할 수 없거늘, 네가 어찌 사랑을 얻으려고 네 행위를 아름답게 꾸미느냐? 그러므로 네 행위를 악한 여자들에게까지 가르쳤으며 또 네 옷단에 죄 없는 가난한 자를 죽인 피가 묻었나니 그들이 담 구멍을 뚫음을 인함이 아니라 오직 이 모든 일로 너를 책망함을 인함이니라.” 34절 하반절은 아마, “나는 그것을 은밀한 연구로 찾은 것이 아니고 이 모든 것들 때문이니라”고 번역할 수 있을 것이다(KJV).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가장 귀한 보화이신데, 그들은 하나님을 오랫동안 잊어버렸고 우상을 위해 자신을 단장하였고 그 행위를 악한 여자들에게까지 가르쳤다. 또 그들은 죄 없는 가난한 자들을 죽였다. 그들의 우상숭배나 무죄한 자들을 죽인 죄는 은밀하게 이루어진 것이 아니고 공공연하게 드러나 있었다.

[35-37] 그러나 너는 말하기를 나는 무죄하니 그 진노가 . . . .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신다. “그러나 너는 말하기를 나는 무죄하니 그 진노가 참으로 내게서 떠났다 하거니와 보라, 네 말이 나는 죄를 범치 아니하였다 함을 인하여 내가 너를 심판하리라[너와 변론하리라](원문). 네가 어찌하여 네 길을 바꾸어 부지런히 돌아다니느뇨? 네가 앗수르로 인하여 수치를 당함같이 애굽으로 인하여 수치를 당할 것이라. 네가 두 손으로 네 머리를 싸고 거기서도 나가리니 이는 네가 의지하는 자들을 나 여호와가 버렸으므로 네가 그들을 인하여 형통치 못할 것임이니라.” 그들은 우상숭배와 살인의 죄를 범하면서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그들의 양심은 반복된 악행으로 인해 무디어졌고 마비되었다. 그들은 앗수르로, 애굽으로 바삐 다녔었다. 그들은 한 종교와 한 신에 머물지 않았고 여러 종교, 여러 신들을 탐구하며 의지했다. 오늘날 말로 그들은 종교다원주의자이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방 나라들과 그 신들을 징벌하실 것이며 그들을 의지하던 이스라엘은 형통치 못할 것이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모든 우상을 버리자. 이스라엘 백성의 첫 번째 죄악은 우상숭배이었다. 모든 인생의 첫 번째 죄악은 우상숭배이다. 사람이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 아닌 것을 하나님으로 섬기며 거기에 절대가치를 두고 사는 것이 근본적인 죄악이며 문제점이다. 현대인도 이성과 과학, 돈과 쾌락, 명예와 권세 등에 절대가치를 두고 산다면, 그것들은 다 우상이다.

둘째로, 우리는 항상 하나님만 의지하며 섬기며 순종하자.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떠났고 잊어버렸고 방황하였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 모든 명령을 지키는 것은 인생의 본분이다(12:13).

셋째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의만 의지하고 선을 행하자. 우리는 의가 없는 부족한 자들이다. 우리의 의는 오직 예수의 십자가 공로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만 믿고 악을 버리고 선만 행하자.

[시편 6편 강해설교말씀] 다윗의 참회 기도와 죄사함의 확신(시 6: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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