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데스다 구약성경강해

[전도서 3장 주석 성경말씀] 세상만사 모든 일이 때가 있음(전 3:1-22)

성령의 능력 2021. 9. 1. 1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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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전도서 3장 주석 성경말씀 중에서 세상만사 모든 일이 때가 있음이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전도자 솔로몬은 말합니다. 범사에 기한 있고 천하 만사가 다 때가 있다고 했습니다. 날 때가 있으면 죽을 때가 있고 울 때가 있으면 웃을 때가 있고 힘들 때가 있으면 형편이 풀어질 때가 있습니다. 슬퍼할 때가 있으면 춤을 출 때가 있습니다. 지금 살아가는 때가 우울하지만 웃으면서 춤을 출 때가 옵니다. 우리는 그날을 위해서 열심히 주님을 섬기면서 살아야 하겠습니다.

세상만사 모든 일이 때가 있음(전 3:1-22)

 

[1-8] 천하에 범사가 기한이 있고 모든 목적이 이룰 때가 . . . .

전도자는 천하에 범사가 기한이 있고 모든 목적이 이룰 때가 있다”고 말한다. ‘기한이라는 원어(제만)정한 때’(BDB, NASB)라는 뜻이고, ‘목적이라는 원어(케페츠)기쁨, 목적, ’(BDB)이라는 뜻이다. 세상의 모든 일들에는 하나님의 정하신 때가 있다.

사람은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고, 씨를 심을 때가 있고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다. 사람을 죽일 때가 있고 치료시킬 때가 있고, 집을 헐 때가 있고 세울 때가 있다. 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고, 슬퍼할 때가 있고 춤출 때가 있다. 돌을 던져 버릴 때가 있고 돌을 거둘 때가 있고, 안을 때가 있고 안는 일을 멀리할 때가 있다. 찾을 때가 있고 잃을 때가 있고, 지킬 때가 있고 버릴 때가 있다. 옷을 찢을 때가 있고 꿰맬 때가 있고, 잠잠할 때가 있고 말할 때가 있다. 사랑할 때가 있고 미워할 때가 있고, 전쟁할 때가 있고 평화할 때가 있다.

모든 일은 하나님의 정하신 때가 있다. 다니엘 11:35, “이는 작정된 기한이 있음이니라.” 마가복음 1:15,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는 조급하지 말고 하나님의 때를 기다려야 한다. 베드로후서 3:8, “주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은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로마서 8:25,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지니라.” 히브리서 10:36-37,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을 받기 위함이라. 잠시 잠깐 후면 오실 이가 오시리니 지체하지 아니하시리라.” 또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불기둥과 구름기둥의 인도하심을 받았듯이, 오직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가야 한다(9:15-23). 로마서 8:14,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9-11] 일하는 자가 그 수고로 말미암아 무슨 이익이 있으랴. 하나님이 인생들에게 노고를 주사 애쓰게 하신 것을 내가 보았노라. . . .

전도자는 일하는 자가 그 수고로 말미암아 무슨 이익이 있는가라고 말한다. 사람의 일하는 수고는 물질적 유여함이라는 유익이 있지만, 결국 늙고 죽을 것이므로 영속적 가치와 유익은 없다. 전도자는 하나님이 인생들에게 노고를 주사 애쓰게 하신 것을 내가 보았다”고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이 수고로운 삶을 사람들에게 주셨다.

전도자는 또,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다”고 말한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하늘과 땅, 산과 들과 바다는 봄 여름 가을 겨울, 계절을 따라 매우 아름답다. 전도자는 또,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다”(NASB)고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지나가는 세상, 늙고 쇠하고 죽고 마는 인생의 삶 속에서 장수(長壽)를 복으로 여기며 영생을 사모하게 하셨다.

전도자는 또, “그러나 하나님의 하시는 일의 시종(始終)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다”고 말한다. 인간은 세상의 창조나 세상의 종말을 알지 못하고 자기 자신의 출생과 자기 자신의 죽음을 알지 못한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에서 또 우리의 삶에서 많은 일들을 행하시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하시는 일의 시작과 끝을 잘 알지 못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의 가장 지혜롭고 선한 뜻대로 또 자기 백성의 유익을 위해 모든 일들을 행하실 것이다.

그러면 인간의 참 의미와 가치는 어디에 있는 것인가? 인간의 참 즐거움과 행복은 어디에 있는 것인가? 이 근원적 질문에 대한 대답은 창조자와 섭리자이신 하나님 안에 있다. 하나님 안에 곧 그의 말씀인 성경 안에 개인과 세계의 모든 근원적 질문에 대한 대답이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알자. 그의 진리의 말씀 곧 성경을 알자. 우리는 하나님을 가장 큰 복으로 알자. 또 죄로 인해 참된 지혜와 지식을 잃어버렸던 우리가 하나님을 알게 된 것을 하나님께 감사하자.

[12-13] 사람이 사는 동안에 기뻐하며 선을 행하는 것보다 나은 것이 없는 줄을 내가 알았고 사람마다 먹고 마시는 것과 수고함으로 낙을 . . . .

본문은, “사람이 사는 동안에 기뻐하며 선을 행하는 것보다 나은 것이 없는 줄을 내가 알았고 사람마다 먹고 마시는 것과 수고함으로 낙을 누리는 것이 하나님의 선물인 줄을 또한 알았도다라고 말한다. 본문은 수고로운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주신 두 가지 선물과 복에 대해 말한다. 하나는 기쁨과 즐거움이고, 둘째는 선을 행하는 것이다.

사람이 수고로운 삶 속에서도 기뻐하고 먹고 마시며 낙을 누리는 것은 하나님이 주신 복이며 선물이다. 하나님이 주신 기쁨과 즐거움은 물론 첫째로 영적인 기쁨과 즐거움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에 있지 않고, 성령 안에서 누리는 의와 평강과 희락에 있다(14:17). 성령의 열매는 희락을 포함한다(5:22). 빌립보서의 주제는 기쁨이다. 성도는 주 안에서 기뻐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사도 바울은 항상 기뻐하는 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했다(살전 5:16). 그러나 이 기쁨과 즐거움은 주 안에서 누리는, 죄악된 것이 아닌, 육신적 즐거움도 포함한다. 전도서는 이 사실을 여러 번 증거하였다(2:24; 3:22; 5:18; 8:15; 9:9). 기독교는 쾌락주의도 아니지만, 금욕주의도 아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식물을 감사히 먹고 마시며 즐거워할 수 있다(딤전 4:1-5).

또 우리가 선을 행한다는 것도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이며 복이다. 선을 행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며 하나님의 형상의 모습이다. 이것은 죄악 된 세상과 죄인들의 모습과 구별되는 것이다. 우리는 선한 일을 위해 지으심을 받은 자들이며(2:10), 주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구속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셔서 선한 일에 열심하는 친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다(딛 2:14).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구원의 은혜와 내세의 소망과 현세의 복들을 인해 기뻐하고 즐거워하자. 또 하나님의 목적대로 힘써 선을 행하자.

[14-15] 무릇 하나님의 행하시는 것은 영원히 있을 것이라. 더 할 수도 없고 덜 할 수도 없나니 하나님이 이같이 행하심은 사람으로 . . . .

전도자는, “무릇 하나님의 행하시는 것은 영원히 있을 것이라. 더 할 수도 없고 덜 할 수도 없나니 하나님이 이같이 행하심은 사람으로 그 앞에서 경외하게 하려 하심인 줄을 내가 알았도다라고 말한다. 하나님의 행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작정하신 바, 곧 그의 창조와 섭리의 일들을 가리킨다. 그것은 영원할 것이다. 특히 하나님의 창조하신 우주의 운행과 자연법칙은 영원하다. 시편 33:11, “여호와의 도모는 영영히 서고 그 심사는 대대에 이르리로다”고 말한다.

욥기 23:13-15, “그는 뜻이 일정하시니 누가 능히 돌이킬까. 그 마음에 하고자 하시는 것이면 그것을 행하시나니 그런즉 내게 작정하신 것을 이루실 것이라. 이런 일이 그에게 많이 있느니라. 그러므로 내가 그의 앞에서 떨며 이를 생각하고 그를 두려워하는구나.” 이사야 51:6, “나의 구원은 영원히 있고 나의 의는 폐하여지지 아니하리라.”

그러므로 사람은 하나님의 뜻과 섭리하시는 일에 무엇을 가감할 수 없다. 그는 거기에 무엇을 더할 지혜와 힘도, 자격도 없고 뺄 능력도, 자격도 없다. 하나님은 창조자시요 인간은 피조물이며, 하나님은 전능자시요 인간은 보잘것없는 육체이며, 풀과 같은 존재이며, 무지하고 무능한 존재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하나님을 참으로 아는 순간, 그 앞에 두려워 떨 수밖에 없고 하나님의 전지, 전능하신 존재와 그의 전지, 전능하신 섭리 앞에 두려워할 수밖에 없다.

전도자는 또, “이제 있는 것이 옛적에 있었고 장래에 있을 것도 옛적에 있었나니 하나님은 이미 지난 것을 다시 찾으시느니라”고 말한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일들이 다 하나님의 작정과 섭리 속에서 이루어진다. 전도서 1:9의 말씀대로 해 아래는 새 것이 없다.

우리는 모든 일을 주권적으로 작정하고 섭리하시는 하나님을 인정하고 두려워하자. 또 그 하나님의 섭리에 믿음과 순종으로 순응하자.

[16-17] 내가 해 아래서 또 보건대 재판하는 곳에 악이 있고 공의를 행하는 곳에도 악이 있도다. 내가 심중에 이르기를 의인과 악인을 . . . .

본문은, “내가 해 아래서 또 보건대 재판하는 곳에 악이 있고 공의를 행하는 곳에도 악이 있도다라고 말한다. 재판하는 곳인 법정은 법이 바르게 집행되어야 하며 공의가 행해져야 하는 곳이다. ()는 하나님의 법에 맞는 것이다. 그것은 대체로 사회법에도 맞고 또 이성과 사리와 양심에도 맞고 거짓되지 않고 편벽되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하여 법정에 불의와 악이 있는 것이다. 이것이 옛날부터의 현실이다. 왜 그런가? 그것은 사람의 죄악성 때문에 그렇다. 사람들은 각양의 욕심, 이기심, 물질욕, 명예욕, 거짓된 본성, 악한 본성, 시기심, 미움, 남을 해치려는 마음 등의 이유로 법정에서까지 불의와 악을 행하는 것이다.

그러나 본문은 감사하게도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을 말하기를, “내가 심중에 이르기를 의인과 악인을 하나님이 심판하시리니 이는 모든 목적과 모든 일이 이룰 때가 있음이라 하였도다라고 한다. 모든 일이 때가 있고, 하나님께서 의인과 악인을 공의로 심판하시는 때가 있다. 우리는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을 믿는다. 야고보서 4:12, “입법자와 재판자는 오직 하나이시니 능히 구원하기도 하시며 멸하기도 하시느니라.” 전도서 12:14,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 간에 심판하시리라.” 로마서 2:6-8,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시되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하시고 오직 당을 지어 진리를 좇지 아니하고 불의를 좇는 자에게는 노와 분으로 하시리라.” 고린도후서 5:10,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 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우리는 현실의 어둠과 혼란만 보고 낙심치 말자.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을 믿고 위로를 받고 그를 두려워하며 그의 계명을 힘써 지키자.

[18-21] 내가 심중에 이르기를 인생의 일에 대하여 하나님이 저희를 시험하시리니 저희로 자기가 짐승보다 다름이 없는 줄을 깨닫게 하려 . . . .

본문은, “내가 심중에 이르기를 인생의 일에 대하여 하나님이 저희를 시험하시리니 저희로 자기가 짐승보다 다름이 없는 줄을 깨닫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노라”고 말한다. 전도자는 앞의 구절들에서 말한 대로 법정에 악이 있는 것을 보고 하나님의 심판의 필요성을 재확인하였을 뿐 아니라, 그것이 하나님께서 인간을 시험하셔서 그가 짐승보다 다름이 없음을 깨닫게 하시는 뜻이 있다고 말한다. 법정에서의 악과 불의, 억울함과 학대당함을 통해 사람은 자신이 아무것도 아님을 깨닫게 되고 또 다른 사람들도 사람이 아무것도 아니며 짐승보다 더 나은 것이 없음을 깨닫게 된다.

본문은, “[이는] 인생에게 임하는 일이 짐승에게도 임하나니 이 둘에게 임하는 일이 일반이라. 다 동일한 호흡이 있어서 이의 죽음같이 저도 죽으니 사람이 짐승보다 뛰어남이 없음은 모든 것이 헛됨이로다라고 말한다. 이러한 깨달음은 인간과 짐승이 결국 동일하게 호흡하다가 동일한 죽음을 당한다는 사실을 통해 더욱 분명해진다.

전도자는, “다 흙으로 말미암았으므로 다 흙으로 돌아가나니 다 한 곳으로 가거니와 인생의 혼은 위로 올라가고 짐승의 혼은 아래 곧 땅으로 내려가는 줄을 누가 알랴라고 말한다. 인간의 육체는, 짐승의 육체와 똑같이 흙으로 돌아간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사람도, 짐승도 다 흙으로 만드셨기 때문이다(2:7, 19; 104:29).

물론 인간의 혼[루아흐 ’]은 위로 올라가고 짐승의 혼[루아흐 호흡’]은 땅으로 내려간다. 사람의 영혼은 짐승과 달리 불멸적이며(10:28) 하나님께로 나아가 심판을 받아 영생이나 영벌을 받지만, 짐승의 호흡은 불멸적 실체가 아니고 죽으면 없어질 뿐이다.

우리는 인간의 독자적 무가치성을 깨닫고 겸손하자. 또 사람이 죽은 후에 하나님의 심판이 있고 천국과 지옥이 있음을 알고 늘 조심하자.

[22] 그러므로 내 소견에는 사람이 자기 일에 즐거워하는 것보다 나은 것이 없나니 이는 그의 분복이라. 그 신후사를 보게 하려고 . . . .

전도자는, “그러므로 내 소견에는 사람이 자기 일에 즐거워하는 것보다 나은 것이 없다”고 말한다. ‘자기 일이란, 세상의 다양한 직업과 다양한 직장의 일들을 가리킬 것이다. 개인의 일상생활에 행하는 일들도 여러 가지이다. 또 하나님께서 주신 재능들과 은사들과 교회의 직분들도 다양하다. 로마서 12:6-8은 하나님께서 주신 여러 은사들에 대해, 섬기는 일, 가르치는 일, 권위하는[권면하고 위로하는] , 구제하는 일, 다스리는 일, 긍휼을 베푸는 일 등을 언급한다.

모든 사람이 자기의 하는 일들을 즐거워하며 행하는 것이 가장 복된 일이다. 전도서 2:24는 수고하는 중에 심령으로 낙을 누리는 것이 복되다고 말하고, 전도서 3:12-13도 사는 동안에 기뻐하며 수고함으로 낙을 누리는 것이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말한다. 주부들은 즐거운 마음으로 집안일을 해야 한다. 현숙한 여인은 부지런히 손으로 집안일을 하는 자이다(31:12, 13, 15, 27). 디도서 2:5는 젊은 여자들이 그 남편과 자녀를 사랑하며 집안일을 하라고 교훈한다. 또 종들은 단 마음으로 육신의 상전들을 섬겨야 한다(6:5-8; 딛 2:9-10). 목사와 장로들은 즐거운 마음으로 교인들을 돌보아야 하고(벧전 5:2-3) 성도들은 즐거움으로 헌금하며 하나님을 섬겨야 한다(고후 8:1-3; 9:2).

전도자는, “이는 그의 분복이라”고 말한다. 그는 앞에서 그런 삶의 즐거움을 하나님의 손에서 나는 것이며(2:24) ‘하나님의 선물’(3:13)이라고 말했다. 그는 본문에서 또, “그 신후사(身後事)를 보게 하려고 저를 도로 데리고 올 자가 누구이랴라고 말한다. 그가 죽은 후에 될 일을 보게 하려고 그를 다시 살려 데려올 자가 없으며, 그러므로 살아 있는 동안 자기 일에 즐거워하는 것이 가장 좋다는 뜻이다.

우리는 수고롭고 허무한 세상에서 하나님을 섬기며 소망하며,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께서 주신 일로 생각하며 즐거워하며 행하자.

[사도행전 히브리어 성경말씀] 가룟 유다 죽음의 회상 설교(행 1: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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