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열 처녀 비유 설교말씀 중에서 한계를 극복하는 지혜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본 문: 마 25:1-13
제 목: 한계를 극복하는 지혜
중심내용: 주의 재림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한계를 극복해야 한다.
1. 개요
A. 지금 많은 그리스도인의 관심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에 쏠려 있다. 그리스도께서 영광 가운데 재림하실 때 열 처녀 비유에 암시된 대로 또 다른 분리현상이 발생하게 될 것이다. 이 비유에 대하여 다양한 해석이 있는 중, 주님의 영광스러운 재림 직후에 있을 유대인들에게 임할 심판에 관한 내용으로 보는 것이 가장 타당할 듯싶다. 이것은 문맥을 중심으로 할 때 (24:3.14,27,30,39,44,51). 이방인에 대한 심판은 주님의 재림 시에 있을 것이다. 또한 그의 영광스러운 재림 시에 이스라엘 백성도 심판을 받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은 여기서 신랑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열 처녀로 묘사되고 있다. 예수 당시의 결혼 풍습에 따르면, 신랑은 신부의 집으로부터 피로연이 베풀어지게 될 자기 집으로 가두 행렬을 하며 돌아오게 돼 있었다. 예수의 비유에서 왕이신 그는 그의 신부인 교회와 함께 하늘로부터 돌아와 천년 왕국을 시작하실 것이다.
대환란기의 유대인들은 축하연에 참여할 수 있는 특혜를 누리게 되는, 초대받은 손님들 중 일부가 될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준비가 필요하다. 이 비유에서 다섯 처녀는 적절히 준비하여 신랑을 맞는데 필요한 등과 그릇에 여분의 기름을 담아 가지고 있었다(25:4). 나머지 다섯은 등은 가졌으나 여분의 기름을 가지지 않았다. 한 밤중에 신랑이 도착했다. 여분의 기름을 준비하지 않았던 처녀들의 등불이 꺼져가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기름을 찾아 나섰다가 신랑을 맞이하지 못하고 말았다. 그들이 돌아와서 혼인잔치가 열리고 있음을 알고 들어가기를 요청했으나 거절당했다(10-12)
대환란기의 이스라엘은 예수의 재림이 임박했음을 알기는 하되 거기에 대한 영적인 준비를 모두가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의 재림은 예기치 않은 때에 갑자기 이루어질 것이다(24:27,39,50). 본문이 기름의 의미를 구체적으로 명시하고 있지는 않지만, 많은 주해자들이 그것이 성령과 그의 구원사역을 가리킨다고 본다. 구원은 단순한 신앙고백 이상의 것으로 성령에 의한 중생을 포함한다. 구원을 받았노라고 고백만 하고 실제로 성령을 소유하지 않은 자는 혼인잔치, 즉 천국으로부터 제외될 것이다. 왕이 오실 때 예비되지 않은 자들은 그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그의 재림의 날과 시를 알 수 없으므로 환란기의 성도는 깨어 경성 하며 예비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B. 이스라엘 사람들은 결혼을 하게 될 때 결혼 하루 전 날 신랑이 잔치를 마련하고 친구들을 불러 잔치를 시작한다. 그리고 그다음 날, 결혼식날이 되면 신랑은 자기의 친구들과 함께 열을 지어서 신부집으로 행진을 한다. 그러면 신부집에서는 신부의 아버지가 신부의 친구들을 초청해 준다. 초청받은 신부의 친구는 특별한 친구로서, 우리 한국의 경우로 말하면 들러리를 세워 놓을 열 사람을 청했다는 말이 된다. 본문의 열 사람은 잔치에 청함을 받았다는 공통점이 있다.
유대 사람들은 날씨 때문에 대다수의 경우 밤중에 결혼식을 한다. 그리고 이것은 예부터 내려오는 민속이기도 하다. 초대받은 열 처녀는 단순한 손님이 아니라 특별한 임무를 가지고 초대받은 자이다.
2. 중심 내용(주제)
밤중에 찾아오는 신랑을 맞이하기 위해서는 등을 밝힐 기름을 넉넉히 준비해야 한다.(재림하신 주님을 맞이하는 방법)
<서론>
1. 모든 사람에게는 한계가 있다. 과거 이스라엘의 유리겔라라는 사람이 초능력을 행사해 보인적이 있다. 얼마 전 우리나라를 다녀간 유명한 마술사는 자신의 재능이 노력에 의한 것이지 결코 초능력은 아니라고 했다. 초능력이라는 것은 모든 사람이 원하는 희망사항일 것이다.
2. 구원은 분명히 하나님의 선물이다. 그러나 선물은 강제로 주어지지 않는다. 먼저 주는 자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줄 때, 거절하지 말고 받아야 한다. 상대방이 아무리 내게 선물을 주고 싶어도 내가 거절한다면 선물은 전달되지 못한다. 우리의 신앙생활은 선물을 받는 행동일 뿐이다. 그러나 선물을 받는 지극히 단순하고 쉬운 일 조차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먹을 것이 풍부한 더운 나라에서 들은 이야기인데, 자 신이 노력하면 얼마든지 나무에 달린 과일을 따 먹을 수 있음에도 그것이 귀찮아서 굶어 죽거나 영양실조에 걸리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 우리의 신앙생활은 기다렸다가 산타클로스에게 선물 받는 것과 마찬가지로 쉬운 것임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죄악으로 가득 찬 육신은 마음대로 움직여주지 않는다. 그것이 우리의 한계다. 이 한계는 반드시 극복되어야 한다.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본문을 통하여 살펴보자.
모든 인간은 능력의 한계가 있다(1-5)
A. 열 명의 처녀가 모두 졸았다.
1. 이들은 신랑을 기다리는 열 명의 처녀였다. 즉 신부가 아닌 들러리를 위한 사람들이었다는 말이다. 신랑이 너무 늦게 오는 바람에 이들 모두는 기다리다 잠이 들었다.
2. 열 명의 처녀가 기다리다 지쳐 잠이 들었던 것처럼 모든 사람에게는 한계가 있다. 졸리면 잘 수밖에 없고 안 먹으면 배고플 수밖에 없다. 이 땅에 계실 때 예수님도 역시 우리처럼 피곤과 배고픔을 느끼셔야 했다.
B. 모든 사람은 한계가 있다.
1. 교회에 나왔다고 모두가 구원받는 것도 아니고 교회에 왔다고 다 하나님 앞에 청함을 받은 것도 아니다. 지혜로운 자도 잠들고 미련한 자도 잠들게 마련이다. 이것이 인간이다. 다섯 명은 슬기로웠고 다섯 명은 지혜롭다고 했지만 이들이 똑같이 다 잠에 빠졌다. 그러므로 우리도 지혜 있다고 장담하지 말고 미련하다고 흉보지 말자. 다만 하나님 앞에서 나는 약하다고 겸손히 인정하자.
2. 열 처녀들의 공통점은 그들이 모두 청함을 받았다는 사실이다. 우리도 이따금 행사에 초청을 받게 된다. 더군다나 봄에는 잔치가 많다. 그러나 우리가 청함을 받았다고 그 청함에 모두 다 응할 수는 없는 것이다. 가고 싶어도 시간이 없어서 못 갈 수도 있는 것이고 몸이 아파서 못 갈 수도 있다. 문제는 청함을 받았다는 사실이 아니라 청함에 응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3. 오늘 우리들은 모두 청함을 받은 사람들이다. 본문에 나오는 열 처녀들처럼 말이다. 그러나 문제가 있다. 지금 우리들도 열 처녀처럼 기다리다 지쳐서, 피곤해서 잠자는 자가 있다는 사실이다. 잠자면 끝장이다. 그러나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는 비결이 있다.
열 명의 처녀가 귀한 잔치에 초대받아 신랑을 기다리다 졸았던 것처럼 오늘 우리도 연약한 인간이라는 한계에 부딪히며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성도는 한계를 극복해야 한다(6-9 )
A. 이들은 각각 신랑을 맞기 위해서 등불을 하나씩 준비했다.
1. 이들은 등에 기름을 가득 채워서 초저녁부터 불을 피워놓고 있었다(8).
2. 이들에게 차이가 있었다. 슬기로운 처녀들은 등에만 기름을 채운 것이 아니고 여분의 기름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러나 미련한 처녀들은 등에만 기름을 담아 넣고 있었다.
3. 막상 신랑이 왔을 때, 미련한 처녀들의 등은 꺼져가고 있었다. 신랑을 맞으러 나갈 형편이 못됐다. 그러나 지혜로운 처녀들은 남들이 알지 못하는 또 다른 기름통이 준비되어 있었기 때문에 넉넉히 신랑을 맞이할 수 있었다.
B. 우리는 재림의 주님을 맞이하는 성도들이다.
1. 우리는 모두 다 한계를 안고 살아가는 연약한 존재다. 그러나 우리가 준비만 잘하면 우리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다.
*예수를 알고 예수를 믿는 것은 곧 등을 준비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기름이 준비돼어있지 못하면 소용이 없다.
*등은 형식이요, 기름은 내용이다. 형식이 없는 것보다는 좋다. 그러나 형식만으로 만족해서는 안된다. 내용이 있어야 한다.
2. 우리가 종말을 준비하되 준비로 끝날 것이 아니고 충분하게 준비해야 한다.
*입학시험에 1점 차이로 떨어지는 사람이 있다. 0.1초 차이로 금메달을 놓치는 사람도 있다.
3. 기름은 곧 성령을 말하는 것이다. 과연 성령을 어떻게 준비할 것인가?
*매일같이 성경을 읽고 있는가?
*매일같이 기도하고 있는가?
*매일같이 전도의 생활을 하는가?
*매일같이 봉사할 기회를 찾는가?
4. 미련한 다섯 처녀의 문제는 오직 하나뿐이었다. 이들이 예수님을 대적한 것은 아니다. 좋은 일군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성령이 없었다. 기름이 떨어져 버린 것이다. 성령 없이 교회에서 봉사하면 인간의 소리 밖에는 날 것이 없다. 자기 확장이나 하려 들고 인간적인 것들이나 내놓고 만다. 이런 것들은 하나님의 일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일을 이루려는 것이다. 결국은 교회가 어지러워지고 소란이 생겨나고 만다. 빈등을 들었던 사람들에게도 기름은 있었다. 그러나 정작 신랑이 왔을 때는 기름이 떨어졌다는데 문제가 있다. 악한 행동이나 불순종의 문제가 아니라 기름이 충분하지 못한데 문제가 있었다.
5.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이미 성령을 받은 것이다. 성령이 없으면 예수를 믿을 수 없기 때문이다. 지식이나 경험으로 믿는 것도 아니다. 성령께서 우리 마음에 믿을 마음을 주시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성령 충만을 받아야 한다. 단순하게 성령을 받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믿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성령 충만함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충만함을 받지 못할 때에 문제가 발생한다는 사실이다. 기름이 없이 빈등만 들고 있다면 얼마나 불쌍한 일인가? 잔치에 초대도 받았고 좋은 옷으로 단장도 했고 잔치에 참여도 했지만 문제는 기름이 모자랐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교회에서 직분도 받고 하나님 앞에서 예배도 드리고 있다. 천국에 갈 것도 의심 없이 믿고 있다. 그러나 주님이 오시는 날 “나는 너를 모른다”라는 말을 들을 수도 있다. 오늘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충분하게 준비하지 못했다면 그런 말을 들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C. 감추어진 기름통을 준비하자.
1. 슬기로운 다섯 처녀는 보이지 않는 기름통을 준비했다. 만일 보이는 기름통이었다면 다른 처녀들도 준비했거나 신랑이 왔을 때 사러가지 않고 이들의 기름을 빼앗았을 것이다.
2. 우리는 세상의 어떤 형식이나 의식, 이름만으로 안심할 수는 없는 것이다. 사실 등잔을 들고 있는다는 것은 보통 귀찮은 것이 아닐 것이다. 이들은 좋은 옷을 입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니 등잔만 들고 있기도 힘들었을 터인데 여기에 기름통까지 하나 더 들고 다닌다는 것은 보통 귀찮고 신경 쓰이는 것이 아니다. 사실 편하기야 달랑 등불 하나만 들고 있으면 된다. 그래서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되 쉽고 편하게 믿으려 든다. 이것, 저것 귀찮은 일을 안 하려고 든다. 모든 사람들이 적당하게 예수를 믿으려 든다.
3. 미련한 처녀들의 외모는 틀림없이 화려했을 것이다. 그러나 외모만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외모도 중요하지만 내용이 더욱 중요하다. 우리에게는 감추어진 기름통이 필요하다. 다른 사람이 알지 못하는 성령의 역사가 지금 나의 신앙생활에 얼마나 확실하고, 우렁차고, 거대하게 지금 역사하고 있느냐를 물어야 한다. 매일, 매일 자신을 성령의 공급을 받아 불태워야 한다. 갱신시키고, 새로워져야 한다.
4. 만일 우리의 신앙이라는 기름통에 기름이 떨어지면 우리는 습관적이고 형식적인 종교생활밖에는 할 수가 없는 것이다. 마치 열 처녀 가운데 미련한 다섯 처녀는 등잔을 들고 형식적인 모습은 보였으나 기름이 없었던 것처럼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형식적으로는 모든 것을 갖추었으나 정말로 갖추어야 할 기름이 떨어진 성령이 없는 신자가 된다면 비극이다.
5. 기름을 준비하지 못한 자는 능력이 없다. 우리가 예수를 믿고, 기도를 하는 데도 권능이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분명히 겉모양은 있는데, 겉으로는 사랑을 주는 것 같고 능력도 있는 것 같은데 실제는 그렇지 못하다. 알고 보면 거짓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 결국 이런 사람들은 천국 문을 막고 앉아서 자기도 들어가지 못하고 남도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미련한 다섯 처녀의 역할을 하고 만다. 기름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권능을 체험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권능을 소유하지 못한 자는 천국을 소유할 수 없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권능을 체험하는 성도가 되어야 한다.
(우리 모두는 능력의 한계가 있지만 이 한계를 감추어진 기름통이라는 성령의 계속적인 충만으로 극복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깨어 있어야 한다(10-13).
A. 지금이 어느 때인가?
1. 마가복음 1장에 때가 찼다고 하였다. 때가 찼다는 말은 주머니 속에 물건이 가득 차듯 꽉 채워졌다는 말이다.
2. 지금은 겨울옷을 벗어야 할 봄이 되었다. 봄인데도 계속해서 겨울 외투를 입고 다닌다면 그 사람은 때를 구분 못하는 자일 것이다.
3. 허리에 띠를 띠고 하나님 앞에서 등잔을 준비하고, 등잔을 준비할 뿐만 아니라 기름통까지 준비하고 기다려야 하는 때이다.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습관적 신앙이 아니라 계속 공급되는 에너지로 영적으로 깨어있어야 한다.
B. 역사의 때를 구분하자.
1. 기회는 항상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지금 우리에게는 잔치에 들어갈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그러나 본문의 다섯 사람은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10). 이미 문이 닫혀 버렸다.
2. 성경은 지금이 바로 은혜받을 만한 때요 지금이 바로 구속의 날이라고 했다. 바로 이 순간에 은혜받아야 한다. 이 시간을 놓친 다음 내일 은혜받겠다고 내일 구원에 이르겠다는 생각은 착각이다.
결론
1. 지금 우리는 몸은 비록 이 세상에 살고 있지만 하나님 앞에서 영원한 천국에 초점을 맞추고 살아야 한다. 그 나라에 초점을 맞추지 못하고 살아온 어리석은 사람이요 미련한 인생이다.
2. 복음의 핵심은 예수 천당이다. 그런 고로 우리는 천국을 사모해야 한다.
3. 천국을 사모하는 자는 반드시 역사의식을 가져야 한다. 신랑이 왔다는 말을 듣고 그때서야 기름을 준비하겠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신랑이 오기 전에는 미련 한자나 지혜로운 자가 모두 똑같았다. 다 같이 가질 것을 가졌고 청함도 받았다. 그러나 신랑이 왔을 때, 미련 한자는 그의 미련이 드러나고 말았다.
4. 지금 이 시간 내 속에서 기름이 타고 있는가? 내게 준비된 기름이 있는가? 귀찮게 느껴지는 기름통이 있는가? 주님 오시기를 학수고대하는 진정한 신자가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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