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데스다 구약성경강해

[아가서 2장 설교말씀] 신랑의 초청(아 2:1-17)

성령의 능력 2022. 4. 22. 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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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서 2장에서는 솔로몬과 술람미 여인이 혼인을 약속하는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솔로몬 왕과 술람미 여인이 서로 사랑하여 노래하고 있습니다. 술람미 여인이 신랑을 초청하고 있습니다. 아가서를 보면서 우리도 예수님을 초청하는 신부의 삶이 있어야 합니다. 거룩한 삶을 살면서 예수님을 모시고 살아야 합니다.

 

신랑의 초청(아 2:1-17)

 

[1-2] 나는 사론의 수선화요 골짜기의 백합화로구나. 여자들 중에 내 사랑은 가시나무 가운데 백합화 같구나.

1절은 신부의 말의 계속인 것 같다(NASB, NIV). 신부는 자신을 사론의 수선화’요 ‘골짜기의 백합화라고 표현한다. ‘수선화’(카바첼레트)는 크로커스(crocus)나 사프론(meadow-saffron) 꽃나무, 혹은 수선화 종류의 아스포델(asphodel) 꽃나무라고 한다. 사프론 꽃은 오렌지색 점이 있는 자주색 혹은 흰색 꽃이라고 한다. 사론은 갈멜산 남쪽의 비옥한 목초지역이며 사론의 수선화는 들판에 핀 예쁜 꽃이다. 성도는 들판에 핀 꽃과 같다. 또 골짜기는 보통 눈물과 고난의 세상을 상징한다. 과연 성도는 눈물과 고난이 많은 세상에서 피어난 백합화와 같다. 그것은 다 하나님의 은혜로 되어졌다.

2절은 신랑의 말인데, 신랑도 신부를 가시나무 가운데 백합화라고 표현한다. 가시나무는 세상에서 교회와 성도들을 핍박하는 악의 세력을 가리킬 것이다. 교회와 성도들은 가시나무 가운데 백합화와 같다. 그러나 가시나무에 찔릴수록 꽃향기는 더욱 주위에 퍼진다.

성도는 들판 같은 세상에 피어난 수선화와 같고 눈물과 고난의 골짜기 같은 세상에 피어난 백합화와 같다. 우리 자신은 죄성을 가진 부족한 자이지만, 주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셔서 아름다운 꽃으로 만드셨다. 이것은 하나님의 하신 일이다. 이제 우리는 세상의 핍박과 고난을 겁내지 말고 오히려 그 고난과 핍박을, 향기를 발할 기회로 삼자. 또 선한 마음가짐과 말과 행위로써 아름다운 꽃 같은 모습을 항상 나타내자.

[3] 남자들 중에 나의 사랑하는 자는 수풀 가운데 사과나무 같구나. 내가 그 그늘에 앉아서 심히 기뻐하였고 그 실과는 내 입에 달았구나.

신부는 신랑이 남자들 중에 사과나무같이 독특한 존재라고 고백한다. 우리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는 독특하시다. 우리 하나님은 신의 신이시며 주의 주시요”(10:17), “만왕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이시다(딤전 6:15). 또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는 만주의 주시오 만왕의 왕이시다(17:14).

또 신부는 사과나무 같은 신랑의 그늘에 앉아서 심히 기뻐하였다고 말한다. 나무 그늘에 앉는다는 것은 거기에서 뜨거운 햇볕을 피하고 쉰다는 것을 말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성도가 세상의 환난과 핍박을 피할 수 있는 곳이며 참 평안과 안식을 누릴 수 있는 곳이다. 주께서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말씀하셨고(11:28),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고 말씀하셨다(14:27).

또 신부는 그 사과 열매가 입에 달았다고 말한다. 사과는 과일들 중 대표적 과일이며 몸에 대단히 좋은 과일이다. 그것은 주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이루신 대속 사역과 그 은택들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피로 구속(救贖) 곧 죄사함을 받았고 (1:7),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다(3:24). 주께서 십자가에서 찢으신 살과 흘리신 피는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이 된다(6:53-55). 또 이러한 주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 사역의 은택들, 즉 사죄와 칭의와 새 생명은 성도들에게 큰 기쁨과 유익을 준다. 그것은 맛있는 사과보다 더 달고 유익하다.

우리는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그를 믿으며 오직 그 그늘 안에, 그 품 안에 거하자. 또 구주 예수께서 이루신 대속 사역과 그 은택들, 즉 사죄와 칭의와 새 생명을 맛보며, 참 평안과 기쁨과 유익을 누리자.

[4] 그가 나를 인도하여 잔칫집에 들어갔으니 그 사랑이 내 위에 기로구나.

신부는 신랑이 자기를 인도하여 잔칫집에 들어가게 한다고 말한다. 잔칫집은 맛있는 음식이 풍성하고 기쁨의 교제가 있는 곳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풍성한 교회 모임을 가리킬 것이다. 물론 하나님의 말씀이 있는 곳에서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로 가난한 마음, 사모하는 마음, 열린 마음, 깨닫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주린 자에게는 쓴 것도 달다(27:7). 하나님의 말씀은 금 곧 많은 정금보다 더 사모할 것이며 꿀과 송이꿀보다 더 달다’(19:10). 초기의 예루살렘 교회는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으며 서로 교제하기를 힘썼다(2:42). 오늘날 우리는 서로 권면하며 더욱 모이기를 힘써야 한다(10:24-25).

또 신부는 사랑이 그의 깃발이라고 말한다. 깃발은 무리의 특징을 나타내거나 한 무리를 다른 무리와 구별하는 표식이다. 교회의 깃발은 사랑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사랑의 선물이었다. 요한복음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또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그 사랑의 확증이었다. 로마서 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요한일서 4:10,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또 주의 제자들의 표는 서로 사랑함에 있었다(13:34-35).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이 있는 잔칫집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이기를 힘쓰며 성경 말씀으로 서로 권면하자. 교회의 모임들이 영적 유익을 주고 기쁨과 즐거움의 교제가 있는 모임이 되게 하자. 또 하나님의 사랑을 본받아 거룩함과 진실함으로 서로 사랑하는 주의 참된 제자가 되자.

[5] 너희는 건포도로 내 힘을 돕고 사과로 나를 시원케 하라. 내가 사랑하므로 병이 났음이니라.

너희는 잔칫집에 모인 사람들 곧 신랑과 신부의 친구들을 가리키며 그들은 주의 종들과 제자들을 상징할 것이다. ‘건포도라는 원어(아쉬솨)건포도떡이라는 뜻이다. 건포도떡은 큰 행사나 잔치 때 만들어 먹었던 떡이었다. 다윗은 법궤를 다윗성에 들여온 후 제사를 마치고 모든 백성에게 축복하고 그들에게 떡 한 개와 고기 한 조각과 건포도떡 한 덩이씩을 나눠주었다(삼하 6:19; 대상 16:3). 건포도떡은 맛도 있고 건강에도 좋은 떡이다. 또 사과는 대표적 과일이다. 신부는 건포도떡으로 힘을 얻고 사과로 시원함을 얻기를 원한다. 건포도떡과 사과는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救贖) 사역의 은혜를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가 연약할 때 힘을 돕고 우리의 심령을 시원케 한다.

신부는 신랑을 사랑하므로 병이 났기 때문에 건포도떡과 사과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아가 5:8예루살렘 여자들아 너희에게 내가 부탁한다. 너희가 나의 사랑하는 자를 만나거든 내가 사랑하므로 병이 났다고 하려무나라고 말한다. 성도는 고난 중에 주의 응답이 없어 보일 때 주와의 완전한 연합과 교제를 간절히 사모하는 가운데 병이 나기도 한다. 시편 42:1, 3,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 “사람들이 종일 나더러 하는 말이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뇨 하니 내 눈물이 주야로 내 음식이 되었도다.” 시편 119:20, “주의 규례를 항상 사모함으로 내 마음이 상하나이다.”

오늘도 우리는 하나님과의 교제와 주 예수 그리스도와의 교제를 간절히 사모하며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자. 때때로 하나님께서 멀리 계시고 응답이 없으신 듯할 때도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 사역의 은혜로 힘을 얻고 심령에 시원함을 얻자.

[6-7] 그가 왼손으로 내 머리에 베개하고 오른손으로 나를 안는구나. 예루살렘 여자들아 내가 노루와 들 사슴으로 너희에게 부탁한다. 내 사랑이 원하기 전에는 흔들지 말고 깨우지 말지니라.

신부가 신랑에 대해, 즉 교회가 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해 고백한다. ‘은 주의 사랑과 배려와 보호를 가리킬 것이다. 보통 왼손은 약한 손, ‘오른손은 힘있는 손이다. 주께서는 교회를 위해 은밀하게 섭리하기도 하시고 드러나게 섭리하기도 하신다. 신명기 33:27, “영원하신 하나님이 너의 처소가 되시니 그 영원하신 팔이 네 아래 있도다.” 시편 23:4,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마태복음 28:20,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요한복음 10:28,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7절은 신랑의 말로 보인다(NASB). 그것은, “원하기 전에는이라는 원어(아드 쉐테크파츠)그 여자가 기뻐하기 전에는이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본절에서 예루살렘 여자들이 누구인가가 중요하지 않고 사랑하는 자를 흔들지 말고 깨우지 말라는 뜻이 중요하다. ‘노루라는 원어(체비)는 영양(羚羊)이다. ‘노루와 들사슴으로라는 표현은 그 짐승들의 사랑스런 모습을 가리킬 것이다. 신부가 신랑의 팔벼개를 베고 잠든 모습은 사랑스러운 모습이다. 사람이 노루와 들사슴의 그런 모습을 보면 그것들을 놀라게 하지 않고 조용히 관망하는 것이 좋듯이, 신랑은 잠든 신부를 흔들거나 깨우지 말라고 말하는 것이다. 신부의 사랑스러운 모습이 그대로 유지되도록, 그가 혹시 깨어 싫어하거나 짜증을 내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말하는 셈이다.

우리는 하나님과의 교제를 가장 귀히 여기며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그 손으로 우리를 항상 지키시고 품으심을 항상 굳게 믿자.

[8] 나의 사랑하는 자의 목소리로구나. 보라 그가 산에서 달리고 작은 산을 빨리 넘어 오는구나.

신부는 신랑의 목소리를 듣는다. 성도는 성경말씀을 통해 그리고 성령으로 주의 음성을 듣는다. 오늘날 성령께서는 성경말씀 속에서 또는 그것과 더불어 말씀하신다.

신부는 또 신랑이 산과 언덕을 넘어 달려오는 것을 본다. 주께서는 고난받는 성도들을 위로하고 돕기 위해 신속히, 즐거이 오신다. 산과 언덕은 난관과 장애물이다. 그러나 세상의 여러가지 난관과 장애물은 주께서 성도들에게 오시는 일을 방해하지 못한다.

[9] 나의 사랑하는 자는 노루와도 같고 어린 사슴과도 같아서 우리 벽 뒤에 서서 창으로 들여다보며 창살 틈으로 엿보는구나.

신부는 신랑을 노루와 어린 사슴에 비유한다. 노루와 사슴은 민첩한 짐승들이다. 그러나 그것들은 사자나 치타같이 사납지 않고 순하다. 주께서는 여러 장애물을 넘어 민첩하게 성도들을 도우러 오시지만 사납지 않으시고 온유하고 겸손하신 분이시다.

또한 신랑은 신부의 집 벽 뒤에 서서 창으로 들여다보며 창살 틈으로 엿본다고 묘사되었다. 매튜 풀은, 이러한 묘사를 신약시대에 비교된 구약시대의 그리스도의 예표적 활동을 암시하거나 천국에 비교된 현세의 그리스도의 예비적 활동을 암시한다고 보았다. 이러한 노루와 어린 사슴의 모습은 주님의 온유하신 모습을 나타낼 것이다.

오늘도 주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를 도우시기 위해 항상 신속히, 기쁘게 달려오실 것이다. 주는 우리와 늘 함께하시기를 원하신다. 주께서는 야곱에게도, 여호수아에게도 내가 너와 함께하고 너를 떠나지 않겠다고 말씀하셨었다(28:15; 1:5). 주께서는 우리에게도 내가 과연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과연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신다(13:5). 또 우리는 주의 온유하심을 본받아 모든 온유와 겸손으로 단장된 복된 자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11:29; 5:5; 4:2).

[10-13] 나의 사랑하는 자가 내게 말하여 이르기를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 겨울도 지나고 비도 그쳤고 지면에는 꽃이 피고 새의 노래할 때가 이르렀는데 반구의 소리가 우리 땅에 들리는구나. 무화과나무에는 푸른 열매가 익었고 포도나무는 꽃이 피어 향기를 토하는구나.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

사랑하는 신랑은 신부에게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고 말한다. 13절 끝에도 그 말을 다시 반복한다. 그가 함께 가자고 말하는 까닭은 겨울이 지나고 봄이 왔기 때문이다. 유대 땅의 겨울은 비가 많이 오는 때인데 겨울이 지나고 비도 그쳤고 땅에는 꽃이 피고 새의 노래 소리, 비둘기의 소리가 들리며 무화과나무는 푸른 열매의 향취를 내고 포도나무는 꽃이 피어 향기를 토한다고 말한다. 무화과나무에는 푸른 열매가 익었다는 원어는 푸른 열매의 향취가 난다는 뜻이다. 무화과는 1년에 2-3번 열매를 맺는데 초여름에 첫열매를 거둔다. 그러면 봄에 푸른 열매 향취가 날 것이다. 포도나무도 봄에 꽃을 피고 늦여름부터 열매를 딴다.

비가 많고 추운 겨울은 환난 많은 세상에서 죄책과 두려움을 가지고 살았던 시간들을 상징하는 것 같다. 그러나 이제 봄과 같은 날이 왔다. 그것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죄사함과 의롭다 하심의 은혜와 구원을 주시는 신약시대를 가리키는 것 같다. 이제는 죄책과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게 되었다. 비둘기의 소리는 비둘기 같은 성령께서 우리 속에서 감화, 감동하시는 것을 상징했을지도 모른다.

주께서는 성도들에게 일어나서 함께 가자고 말씀하신다. 그것은 세상의 얽매이는 것들을 벗어버리고 일어나서 그와 좀더 깊은 교제 가운데 그와 동행하고 그의 일에 동참하라는 요청일 것이다.

우리는 주의 부르심을 듣고 세상의 얽매이는 것들--죄책과 두려움이든지 세상의 것들에 대한 사랑이든지 간에--그것들을 다 버리고 일어나 주께로 나아가 그와 교제하고 그와 동행하고 그의 일에 동참하자.

[14] 바위 틈 낭떠러지 은밀한 곳에 있는 나의 비둘기야, 나로 네 얼굴을 보게 하라. 네 소리를 듣게 하라. 네 소리는 부드럽고 네 얼굴은 아름답구나.

신랑은 신부를 나의 비둘기라고 표현한다. 비둘기는 순결함, 온유함, 연약함을 상징하는 것 같다. 이것은 참 성도의 모습이다. 성도는 하나님의 성품을 본받아 순결함과 온유함을 간직해야 한다. 주께서는 “너희는 . . . 비둘기같이 순결하라”고 말씀하셨다(10:16). 그러나 성도는 또한 비둘기같이 연약한 존재이다.

성도는, 독수리나 사나운 짐승을 피하여 바위 틈 낭떠러지 은밀한 곳에 살고 있는 외로운 비둘기로 묘사된다. 성도는 세상에서 고난을 당하고 악한 자들을 피하여 불안정된 삶을 살아가는 비둘기와 같다. 그러나 참된 성도들이 피신한 곳은 실상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품이다.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는 성도들의 안전한 피난처이시다.

신랑은 신부의 목소리가 부드럽고 그의 얼굴이 아름답다고 말하며 그의 얼굴을 보기 원하며 그 음성을 듣기 원한다. ‘부드럽다는 원어(아레브)달다, 감미롭다, 기쁘다는 뜻이다. 주께서는 성도들의 목소리를 기쁘게 여기시고 그들의 얼굴을 아름답게 여기시며 성도들의 얼굴을 보기 원하시며 그들의 음성을 듣기 원하신다.

우리는 어떻게 우리의 목소리를 주께 들리게 할 수 있는가? 그것은 찬송과 기도를 통해서이다. 우리가 주께 찬송할 때 주께서는 기뻐하시고 우리가 주께 기도할 때 주께서는 기뻐 들으신다. 우리는 세상의 환난들 때문에 뒤로 물러나 숨지 말고 날마다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가야 하며 찬송과 기도를 쉬지 말아야 한다. 성경은 우리가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미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라고 말했고(13:15),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했다(살전 5:17).

오늘도 주께서는 우리가 세상의 환난을 피해 숨어 있지 말고 주 앞에 나오기를 원하시며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의 목소리 듣기를 원하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의 교훈대로 항상 찬송과 기도로 주께 나아가자.

[15] 우리를 위하여 여우 곧 포도원을 허는 작은 여우를 잡으라. 우리의 포도원에 꽃이 피었음이니라.

본문의 우리는 성도들을, ‘포도원은 교회를 가리킬 것이다. 아가서의 이런 말씀들은 아가서가 단순히 부부의 사랑을 교훈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과 이스라엘, 그리스도와 교회의 사랑의 관계를 상징적으로 묘사한 것임을 잘 나타낸다.

봄이 와서 포도원에 꽃이 피었다. 신약시대가 되어 교회에 하나님의 은혜와 구원의 꽃들이 피기 시작하였다. 사람들은 회개하고 구원을 받으며 인격과 삶의 변화를 나타내기 시작하였다. 하나님의 교회 안에 하나님의 은혜의 구원 역사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런데 그 포도원에 그것을 허는 여우들이 있었다. 원문에는 ‘여우들’(슈알림), ‘작은 여우들’(슈알림 케탄님)이라고 복수로 되어 있다. 여우들은 포도나무의 잔가지들이나 잎사귀를 씹고 꺾고 땅굴을 파서 뿌리를 상하게 하고 포도열매가 맺히면 그것을 따먹는다고 한다. 그것들은 포도원을 망가뜨리는 자들이다.

포도원의 여우는 교회를 어지럽히고 교회를 허무는 자들을 가리킨다. 그들은 사자같이 드러나게 교인들을 핍박하는 독재자들이 아니고 간교한 꾀와 속임수로 교회를 어지럽히는 자들이다. 에스겔 13:4, “너의 선지자들은 황무지에 있는 여우 같으니라.” 그들은 참된 교인이 아니고 사탄의 일꾼이요 사탄이 심은 가라지요 쭉정이요 쓴뿌리이다. ‘작은 여우들은 아직 초보적 단계에 있는 악한 자들을 가리킬 것이다. 그들은 아직 이단적 사상이나 악행이 두드러지지는 않았으나 본질상 여우이다. 교회 역사상 그런 거짓 교사들이 많이 있었다.

오늘도 주께서는 교회를 위해 여우들과 작은 여우들을 잡으라고 말씀하신다. 그들은 교회를 세우지 않고 허무는 자이며 실상 사탄의 일꾼이다. 적은 누룩이 온 덩이에 퍼진다(5:9). 그러므로 교회는 작은 이단 사상이나 오류도 용납하지 말고 잘 살피고 확인하여 제거해야 한다.

[16] 나의 사랑하는 자는 내게 속하였고 나는 그에게 속하였구나. 그가 백합화 가운데서 양떼를 먹이는구나.

신부는 신랑과의 일체감을 고백한다. 사랑은 연합과 일치를 가져온다. 사랑하는 부부는 서로를 소유한다. 그러나 미움은 서로를 배척하고 마침내 분리를 가져온다. 하나님과 이스라엘, 그리스도와 교회는 사랑의 관계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시요 이스라엘은 그의 백성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교회의 머리이시며 교회는 그의 몸이다. 그리스도와 교회는 영적으로 연합되었다.

고린도전서 12:13, 27, “우리가 . . .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 에베소서 4:15-16,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입음으로 연락하고 상합하여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

신부는 또 신랑이 백합화 가운데서 양떼를 먹이고 있다고 말한다. 주께서는 백합화 가운데서 양떼를 먹이고 계신다. 백합화는 아름답고 향기로운 꽃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신실한 백성을 가리키는 것 같다. 아가 2:2에서 신랑은 여자들 중에 내 사랑은 가시나무 가운데 백합화 같구나라고 말했었다. 주께서는 하나님의 신실한 자녀들 가운데 계시며 그들을 교훈하시고 인도하신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 믿고 구원을 받았을 때 예수 그리스도와 영적으로 연합되었음을 깨닫고 그 연합을 잘 유지해야 한다. 주께서는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고 말씀하셨다(15:4-5). 주 안에 거하는 생활이란 믿음과 순종의 생활을 가리킨다. 또 우리는 백합화같이 아름답고 향기로운 신앙인격자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가 성령의 열매를 맺을 때 그러하다.

[17] 나의 사랑하는 자야 날이 기울고 그림자가 갈 때에 돌아와서 베데르 산에서의 노루와 어린 사슴 같아여라.

날이 기운다는 원어(야푸아크 하이욤)는 ‘날이 샌다는 뜻이라고 본다.날이 기울고 그림자가 갈 때에라는 원문은 날이 새고 그림자가 갈 때까지라는 뜻이다. 이 말씀은 지금은 날이 어두우나 날이 새는 시간이 올 것을 말한다. 성경에서 밤은 죄와 슬픈 일들이 많은 세상을 상징하며 낮은 주께서 주시는 영광의 새 세계를 상징한다. 로마서 13:11-12,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음이니라. 밤이 깊고 낮이 가까왔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두움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현실은 어두운 밤 같을지라도 머잖아 아침이 올 것이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작정하신 역사의 시간표이다.

또 신부는 날이 새어 아침이 될 때까지 신랑이 베데르 산으로 노루와 어린 사슴같이 돌아오기를 소원한다. 베데르 산은 고난의 세상을 가리킬 것이다. 그러나 4:6에 보면 그 산은 ‘몰약산, 유향의 산이라고 불리웠고 8:14에는 향기로운 산이라고도 불리웠다. 주께서는 고난의 세상에서도 기쁨과 즐거움을 주신다. 그러나 이제 천국에 계신 주께서는 세상으로 다시 오실 것이다. 우리에게 더 좋은 기쁨과 즐거움을 주시기 위해 그는 노루와 사슴같이 속히 오실 것이다. 그것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암시하는 말씀일 것이다.

우리는 날이 새고 밝은 낮이 올 것을 기대하자. 주께서는 우리를 위해 천국을 예비하셨다. 또 우리는 주께서 속히 재림하실 것을 기대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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