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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제사 하나님 말씀] “소제의 의미”(레 2:1-16)

성령의 능력 2020. 12. 18.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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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성경 제사 하나님 말씀 중에서 소제의 의미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구약 성경에서 말씀하는 소제의 제사도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을 상징해 줍니다. 곡식이 맷돌에 들어가 갈리기 때문에 주님의 고난을 상징합니다. 곡식이 고운 가루가 되지 않으면 양식이 될 수 없습니다. 복음의 양식은 주님이 십자가에서 고난을 당했기 때문에 만들어졌습니다.

“소제의 의미”(레 2:1-16)

 

명제: 곡식을 갈아서 드리는 소제는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 하는 제사이다.

목적: 소제는 주님의 고난에 동참하는 것이다.

 

번제에 이어 하나님은 소제의 제사제도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소제를 드리려면 곡식을 맷돌에 갈아서 드려야 합니다. 맷돌에 들어가 갈리는 곡식은 예수그리스도를 예표 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고난을 상징하기 때문입니다. 소제를 통하여 우리의 신앙과 믿음을 다시 재확인하는 계기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2:1) 누구든지 소제의 예물을 여호와께 드리려거든 고운 가루로 예물을 삼아 그 위에 기름을 붓고 또 그 위에 유향을 놓아

 

소제의 예물을 여호와 하나님께 드릴 때에는 고운 가루로 만들어 드려야 합니다. 곡식을 통째로 가지고 오는 것은 하나님께서 받지를 않으십니다. 그리고 그 위에 유향을 놓아야 합니다.

‘소제의’ מנחה(민하 4503) 선물, 예물, 봉헌물, 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 드려지는 소제는 곡식을 맷돌에 갈아서 고운 가루로 만들어 마음과 정성을 다해 선물로 드려지는 제사입니다. 소제에 곡식을 갈지 않으면 하나님은 받지 않는 것입니다. 곡식을 고운 가루로 갈게 되는 것은 예수그리스도의 고난을 의미합니다. 곡식이 맷돌에 갈려질수록 곡식은 더 고통이 있습니다. 바로 십자가에 달리실 예수그리스도의 고난과 고통에 대해서 상징해 주는 제사라는 것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드리려거든’ קרב(카라브 7126) 가까이 가다, 합하다, 연결되다. 바치다, 라는 뜻입니다. 소제의 제사를 드리는 것은 하나님과 합하여지는 것을 말합니다. 소제의 고운 가루를 통해 하나님과 더 가까워지게 됩니다.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가 가까워지기 위해서는 고난당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있기 때문입니다. 고운 가루의 소제를 통해 하나님과 연결되고 하나가 되어 주님을 높이게 됩니다. 반드시 소제에서는 고운 가루를 하나님께 바칠 때에만 하나님이 소제의 제사를 받게 됩니다.

 

하나님께 감동이 되어 소제의 제사를 드리는 사람은 한 번으로 끝을 낼 수 없습니다. 이것은 앞으로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면서 계속해서 소제의 제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이 소제를 드릴 때에는 고운 가루만 드리는 것이 아니라 유향도 함께 드려야 합니다. 유향을 넣지 않으면 하나님은 소제의 제사를 받지 않았습니다.

 

‘유향을’ לבונה(레보나 3828) 유향, 이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לבן(라반 3835) 희게 만들다, 정결하게 하다, 순결하게 하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소제에 유향을 넣는 이유는 예수그리스도의 보혈을 상징합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로 죄인이 깨끗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유향은 고운가루와 함께 더러운 것을 희게 만드는 능력이 있습니다. 추악한 영혼을 정결하게 만들고 순결하게 하여 하나님과 죄인의 사이를 가깝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우리는 반드시 소제를 드릴 때에 나의 죄를 위해 고난당하신 고운 가루를 가지고 하나님께 나와야 합니다. 그리고 십자가의 보혈을 상징하는 유향이 반드시 내 마음에 있어야 합니다. 또한 유향은 성도들의 기도를 상징합니다. 구원받은 백성들은 하나님께 감사하여 기도하는 것입니다.

 

(2:3) 그 소제물의 남은 것은 아론과 그의 자손에게 돌릴지니 이는 여호와의 화제물 중에 지극히 거룩한 것이니라

 

하나님께 드리고 남은 소제물은 아론과 그의 자손들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제사장은 구원받은 백성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드린 소제물을 먹는다는 것은 십자가 복음을 먹는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남은 것은’ יתר(야타르 3498) 남겨두다, 보존하다, 탁월하다, 라는 뜻입니다. 소제의 제사를 드리고 남은 고운 가루는 제사장들의 몫이 되었습니다. 이 가루는 다른 가루와는 달리 탁월하며 보존하여 남겨 두었다가 제사장들에게 주었습니다. 소제의 고운 가루는 일반 가루와는 전혀 다른 가루입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가루이기 때문입니다.

 

이 고운 가루를 남겨 두었다가 제사장들에게 주었는데 이 가루는 아무나 먹을 수 없는 가루입니다. 무조건 남겨두었다가 제사장들에게 주었습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먹는 자들은 아무나 먹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선택함을 입은 자들이 먹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십자가 복음을 잘 간직하셨다가 택함 받은 백성들에게 나누어 주시는 것입니다.

 

(6:35)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예수님께서도 나는 생명의 떡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의 살을 먹는 자들은 영원히 주리지 않게 됩니다.

‘떡이니’ לחם(레헴 3899) 떡, 양식, 잔치, 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생명의 떡입니다. 이 떡을 먹는 자들은 영원한 양식이 되며 날마다 잔치에 참여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자들은 매일같이 영적인 잔치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주리지’ רעב(라에브 7456) 굶주리다, 주리다, 라는 뜻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의 떡을 먹는 자들은 영원히 주리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천국에 인도될 때까지 주님께서는 자신의 생명을 나에게 주셔서 영혼의 양식을 채워주시는 것입니다. 복음이 사라지는 이때에 하나님은 나와 함께 하셔서 주님의 복음의 양식을 주시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드려지는 소제의 제사는 바로 말씀의 삶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소제의 제사를 드려야 하는 것은 십자가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의 삶을 살아야 할 것을 의미해 주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보혈을 의지하지 않고 사는 삶은 잘못된 것입니다. 십자가 복음을 듣고 주님과 항상 함께 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2:4) 네가 화덕에 구운 것으로 소제의 예물을 드리려거든 고운 가루에 기름을 섞어 만든 무교병이나 기름을 바른 무교 전병을 드릴 것이요

 

소제의 예물을 드리려면 고운 가루에 기름을 섞어 무교병이나 무교 전병을 만들어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화덕에 구운 것으로 드리는 것은 요리를 해서 드리는 것입니다. 무교병은 누룩이 들어가지 않은 상태를 말합니다. 세상의 지식과 비 복음이 들어가지 않도록 조심해서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기름을’ שמן(셰멘 8081) 향기로운 기름, 이라는 뜻입니다. 고운 가루에 기름을 섞으라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요일 2:27) 너희는 주께 받은 바 기름 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 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또 참되고 거짓이 없으니 너희를 가르치신 그대로 주 안에 거하라

 

기름은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기름을 부어주셔서 하나님을 깨닫게 되고 주님이 나의 구원자라는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기름부음이’ משחה(미쉬하 4888) 기름을 바름, 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주셔서 구원의 확신을 주시고 하나님과 연결되게 하셨습니다. 고운 가루에 기름을 섞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을 마음에 믿을 수 있도록 도와주시는 것을 의미합니다. 전적인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이 없이는 절대 우리가 무교병을 먹을 수가 없습니다. 십자가 복음만을 먹을 수 있도록 주님께서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2:13) 네 모든 소제물에 소금을 치라 네 하나님의 언약의 소금을 네 소제에 빼지 못할지니 네 모든 예물에 소금을 드릴지니라

 

하나님께 드리는 소제에는 소금을 쳐야 합니다. 이 소금은 하나님의 언약의 소금이라고 했습니다.

‘소금을’ מלח(멜라흐 4417) 소금, 이라는 뜻입니다. 소제물에 소금을 치라고 했는데 언약의 소금이라고 했습니다.멜라흐의 히브리적 의미는 십자가에 달리신 복음의 말씀을 통해 운명이 전환되어 모든 죄가 깨끗이 씻겨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배움으로 하늘로부터 통제를 받는 삶을 살며 죽었던 인생에서 영원한 생명 되시는 주님의 울타리 안으로 들어온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나를 만세전에 구원하시기로 작정하시고 언약하셨습니다. 이 언약의 말씀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루어주시고 있습니다. 그래서 영적 소제를 드리는 우리는 하나님께서 나를 구원하시기로 작정하신 언약의 말씀을 완전하게 믿고 예배를 드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빼지 못할지니’ שבת(샤바트 7673) 안식하다, 쉬다, 제하여 버리다, 중지하다, 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소제에 소금을 치는 것을 중지하거나 제하여 버리지 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언약의 소금을 소제에서 빼버리는 것은 영원한 안식을 누리지 못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에 구원받고 영원한 안식을 누리며 쉼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영적 예배에 예수 그리스도가 없으면 영혼의 안식을 누릴 수가 없습니다. 만세전에 나를 선택하셨다는 믿음도 없이 예배를 드리는 것은 안식이 없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천국에 대한 소망도 없이 사는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소금을 소제에서 빼지 말라고 하셨는데 내가 빼고 싶다고 해서 빼는 것도 아니고 내가 넣고 싶다고 해서 넣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소금을 넣을 수 있는 믿음을 주셔야 만이 고운 가루와 함께 언약의 소금을 넣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절대 주권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가 있어야 합니다. 이 시간 나에게도 하나님께서 믿음을 주셔서 언약의 소금을 치는 예배를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2:11) 너희가 여호와께 드리는 모든 소제물에는 누룩을 넣지 말지니 너희가 누룩이나 꿀을 여호와께 화제로 드려 사르지 못할지니라

 

여호와 하나님께 소제의 제사를 드릴 때에는 누룩과 꿀을 넣어서는 안 됩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는 제사입니다.

‘넣지 말지니’ עשה(아사 6213) 악하다, 범하다, 악행, 이라는 뜻입니다. 소제에 누룩을 넣지 말라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바로 비 진리를 진리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예배에 넣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누룩을 넣는 행위는 하나님께 악행이 되고 추악한 자가 되어 하나님께 진노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거짓된 복음을 전하는 자들은 저주를 받게 됩니다.

 

(1:7-9)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교란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우리나 혹은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가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예수그리스도의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들은 천사든지 사람이든지 저주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직 십자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만을 전해야 합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내가 누룩을 넣지 않고 싶다고 해서 안 넣는 것이 아닙니다. 비 복음을 따라가지 않고 싶다고 해서 따라가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선택한 하나님의 백성들은 소제의 제사에 누룩을 넣지 않습니다. 그러나 택함 받지 못한 백성들은 소제의 제사에 다른 복음을 넣어 부패하게 만들어 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자들에게 저주를 하시는 것입니다.

 

‘꿀을’ דבש(데바쉬 1706) 덩어리로 만들다, 꿀, 이라는 뜻입니다. 꿀은 달콤한 것입니다. 소제에 달콤한 꿀을 넣지 말라는 것은 세상의 유혹적인 내용을 첨가하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십자가 복음의 말씀을 희석시킬 수 있는 내용을 집어넣어 한 덩어리로 만들어 하나님께 부패한 소제의 제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복음은 반드시 순수한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만 들어가 있어야 합니다. 세상의 추악하고 더러운 것들이 섞여서는 안 됩니다.

 

데바쉬의 히브리적 의미는 순수한 예수 그리스도의 문을 통과하지 않고 몰래 들어와 영혼에게 달콤한 비 복음을 줌으로 허약하고 쇠약하게 만들어 천국에 대한 안식을 빼앗아 버리고 영혼을 파괴하여 하나님과 분리시킨다는 의미입니다.

 

꿀은 먹을 때는 달콤하지만 계속 먹으면 병을 유발할 수 있습니다. 소제의 제사에서 꿀을 섞는 것은 비 복음을 집어넣어 제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비 진리의 제사를 계속해서 드리면 영혼은 망하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잊어버리게 되고 영혼은 시간이 갈수록 쇠약해져 천국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우리의 소제 예배에 세상의 달콤한 정치와, 경제와, 유머와, 상담과, 윤리와, 도덕적인 말씀이 판을 치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의 말씀이 사라진다면 이것은 누룩과 꿀만 먹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먹을 때는 너무나 맛있고 달콤합니다. 꿀단지에 빠진 벌레가 죽어가는 줄도 모르고 정신없이 꿀을 먹다가 결국은 죽었습니다.

우리의 영혼은 오직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양식을 먹어야 합니다. 나를 위해 고난당하신 예수님은 오직 한 분 외에는 없습니다. 그런데 이 세상은 많은 인간을 숭배하고 있습니다. 과학과, 이성을 숭배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복음은 점점 사라져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습니다. 이때에 우리는 영원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하나님께 소제의 제사를 드려야 합니다. 누룩과 꿀이 사라지고 고운 가루와 유향과 소금만이 있는 소제를 하나님께 드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이 시간 말씀을 통해 우리가 드리는 예배는 소제의 예배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성경 제사론을 책으로 원하시는 분은 체데크바이블칼리지체데크서점에 가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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