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고린도전서 2장 강해설교말씀 중에서 오직 예수님과 십자가만이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바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본인이 율법주의 신앙을 가지고 있다가 예수님을 만난 이후에는 예수님의 복음만을 선포합니다.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고 구원받은 이후에는 십자가를 선포해야 합니다. 복음을 선포하여 아직도 구원받지 못한 자들이 예수님을 깨닫고 돌아올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제목: “오직 예수님과 십자가만” (고전 2장) Only Jesus and Crucifixion
설교자: 윤사무엘 목사
본문: 고전 2:1~16
요절: “나는 너희 가운데서 예수 그리스도 곧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분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결심하였느니라. For I determined not to know any thing among you, save Jesus Christ, and him crucified.” (고전 2:2)
주제: 고린도전서를 통하여 십자가와 부활의 메시지를 회복하자
지금 일본에서는 제32회 하계 올림픽(Summer Olympic Game)이 열리고 있습니다. 본래는 2020년 7월 24일부터 8월 9일까지 계획이었는데 작년 코로나19 팬데믹으로 1년 연기되어 올해(2021년 7월 23일부터 8월 8일) 열리고 있습니다. 비록 세계적 재앙으로 1년 연기가 되었지만 공식적 기록과 로고는 “2020년 도쿄 하계올림픽”으로 표기하고 있습니다. 코로나로 북한이 불참하고 있는 것이 아쉽습니다. 개막식, 폐막식, 시상식, 경기장에 관중이 없이 진행되는 최초의 올림픽이 되었지만, 이나마 경기가 운영되고 있으니 다행입니다. 유엔 가입국은 194개 나라이지만[팔레스타인, 대만, 코소보는 준회원] 이번 올림픽에 입장하는 나라들 보니 206개 나라가 올림픽 위원회에 가입된 나라입니다. 이번 대회는 205개 나라가 입장했습니다. 러시아는 선수들의 약물중독 위반으로 2년간 나라명과 국가를 사용하지 못하는 관계로 ROC(Russia Olympic Committee)라는 이름으로 참석합니다. 과거 유고슬라비아가 새로운 이름인 North Macedonia으로 입장했습니다. 대한민국은 양궁에서 좋은 성적을 내어 “활의 나라”임을 다시 입증했습니다. 무궁(無窮), 동이(東夷), 천궁(天弓=무지개 rainbow), 신궁(神弓)에 활(弓)이 들어 있습니다. 올림픽이 끝까지 잘 진행되도록 선수들을 위해 응원합니다.
오늘은 지난주에 이어 고린도전서 2장을 강해합니다. 사도바울 일행이 빌립보에 있을 때 고린도 교회가 질문한 일곱 가지 질문에 대한 변증적 답변을 고린도전서에서 하고 있습니다. ① 교회내 분파문제(1-3장) ② 권징(4장) ③ 음행과 결혼(5-7장) ④ 우상제물(8-10장) ⑤ 머리의 수건과 성찬식(11장) ⑥ 성령의 은사(12-14장) ⑦ 부활(15장)를 다루고 있습니다. 이런 질문들에 대해 사도 바울은 복음적 변증법으로 명쾌하게 답변하고 있는 것이 바로 고린도전서입니다. 그래서 바울의 수사학(rhetoric)과 변증법(apologia)를 연구하는데 고린도전서는 교과서입니다. 오늘날에도 우리의 신앙생활, 교회생활에 지침이 되고 있습니다.
고린도(뜻은 “뿔”임, 아크로고린도 때문)는 그리스(헬라) 남부지역인 아가야 지방의 수도로서, 페르폰네소스 섬의 항구입니다. “화려함”이 특징입니다. 고린도에는 “아프로디테(Aphrodite = Venus)”라는 여사제가 있어, 600피트(약 183미터)나 되는 아크로고린도(Acrocorinth)라 부르는 산위에 신전을 지어 놓고는 무려 1,000명이나 되는 창녀(여사제 priestess)들을 거느리며 고린도를 찾아온 뱃사람들을, 또 신들을 숭배한다는 미명 하에 사람들을 불러 드려 온갖 음탕한 짓들을 다 자행하였기에 고린도에 사는 사람들은 아무 거리낌 없이 음탕한 풍습에 젖게 되어 “고린도 사람”은 “음탕한 사람”의 대명사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고린도는 문화도 그렇고 수사학, 종교, 예술이 화려합니다. 건축양식에서도 도리아식, 이오니아식, 고린도식이 있습니다. ① 도리아식 건축(Doric)은 기둥은 기반부가 없고 수직방향의 흠은 매우 얕고 모서리는 각을 이루고 있는 것이 특징인데, 특징적인 무늬가 없고 목조건축양식을 석조건축에 응용한 것인데, 아폴로, 파르테논, 헤라신전이 대표적인 도리아식 건축물입니다. ② 이오니아식 건축(Ionic)은 BC 500년경 이오니아족의 반란 후, 양면에 무궁 양식의 무늬가 새겨져 있는데 에베소의 아르테미스 신전, 사모스의 헤라 신전입니다. ③ 고린도식 건축(Corinthian) BC 5세기 중엽부터 4세기 중엽에 걸쳐서 생겨났는데 이오니아 양식의 발달로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는데 바사이의 아폴론 신전 유적(遺跡), 델포이의 내부기둥, 아테네의 올림피에이온(제우스 올림픽 신전)입니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 전. 후서”를 써서 고린도 교회로 보내던 로마 시대에는, 인구 60만명이 살았던 매우 큰 도시며, 심한 빈부의 차이와 부유층의 퇴폐적인 생활로 악명이 높은 곳인데 사도 바울은 십자가의 복음으로 영적 대혁명을 일으켰던 것입니다. 견유철학자(Cynic philosopher) 디오게네스(Diogenes, Διογένης, BC 약 412~323년)는 종종 고린도 시내에 나가서 대낮에도 등불을 들고 이리저리 돌아다녔답니다. 사람들이 몰려들어 비웃자, 그는 그 등불이 정직한 사람을 찾기 위한 것이라고 대답했습니다. 고린도의 타락과 사치와 정반대로 대조적으로 살았던 디오게네스는 쓸데없는 욕심을 버리고 자연에 적합한 것만 취하면, 인간은 얼마든지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믿었답니다. 그에게 있어 '행복'이란, 인간의 자연스러운 욕구를 가장 쉬운 방법으로 만족시키는 것입니다. 무소유로 평생 살았던 그는 가난과 배고픔을 수치스럽게 여기지 아니했습니다. 어느 날 일광욕(sunbath)을 하던 디오게네스에게 그를 평소 존경하던 알렉산더 대왕(Αλέξανδρος, BC 356-323년)은 세계를 정복한 후 먼길을 마다하고 찾아와서, 선생님이 원하는 것이 뭐냐고 물었다고 합니다. 그러자 그는 그저 햇볕이나 가리지 않게 옆으로 조금 비켜 달라고 대답합니다. 알렉산더 대왕은 이에 크게 놀라 만일 자신이 알렉산더 대왕이 아니었으면 디오게네스가 되고 싶다는 말까지 했답니다.
또한 아크로고린도에 관련한 시지푸스(Sisyphus) 신화가 전해 내려져 옵니다. 그리스(헬라)에서는 "신이 신과 결혼을 하면 신을 낳고, 신이 인간과 결혼을 하면 영웅을 낳고, 신이 동물과 결혼을 하면 괴물을 낳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래서 헤라클레스 같은 영웅도 많았고, 켄타우로스 (Kentauros)처럼 반은 사람이고 반은 말인 괴물도 많이 등장을 합니다. 영원한 죄수의 화신으로, 현대에까지 잘 알려져 있는 시지푸스(Sisyphus)가 바위를 굴려 아크로고린도 산위로 올려야만 했습니다. 고대 고린도 왕국에서 전설적인 시조로 받들었었던 시지푸스는 바람의 신인 아이올로스와 그리스 사람의 시조인 헬렌 사이에서 태어난 영웅입니다. 호머가 전하는 바에 따르면 시지푸스는 “인간 중에서 가장 현명하고 신중한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신들의 편에서 보면, 엿듣기 좋아하고, 입이 싸고, 교활할 뿐 아니라, 특히나 신들을 우습게 여긴다는 점에일찍이 신들의 눈에 가시 같은 존재이기도 하였습니다. 아폴론(Apollon, 태양, 의술, 음악, 시의 신)이 자신의 소가 없어진 것을 알고 이리저리 찾아다니자 시지푸스가 범인은 바로 헤르메스(Hermes, 웅변, 상업, 도둑의 신)라고 일러바쳤습니다. 이 일로 시지푸스는 범행의 당사자인 헤르메스뿐만 아니라 제우스의 눈총까지 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시지푸스는 제우스가 독수리로 둔갑해 요정 아이기나를 납치해 가는 현장을 목격하게 되었습니다. 아이기나의 아버지인 강의 신 아소포스는 딸을 찾아 사방을 헤매다가 고린도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 시지푸스가 다스리던 고린도에는 물이 귀해 백성들이 몹시 고생을 하고 있었답니다. 그래서 아크로고린도(Acrocorinth)에 마르지 않는 샘을 만들어 주면 딸이 있는 곳을 알려주겠다고 하자, 딸을 찾는 게 급했던 아소포스는 시지푸스의 청을 들어주었고, 시지푸스는 그에게 제우스가 아이기나를 납치해 간 섬의 위치를 가르쳐 주었습니다. 아소포스는 곧 그곳으로 달려가 딸을 제우스의 손아귀에서 구해내려던 순간, 제우스가 던진 벼락에 맞아 새까맣게 타 죽었답니다. 자신의 떳떳지 않은 비행을 엿보고 그것을 일러바친 자가 다름 아닌 시지푸스임을 알아낸 제우스는 지옥의 신 하데스(Hades, 지하세계의 신)에게 당장 그놈을 잡아오라고 명령했습니다. 그러나 영웅이자 현명한 시지푸스는 하데스가 도착하자 오히려 그를 쇠사슬로 꽁꽁 묶어 돌로 만든 감옥에다 가두어 버렸습니다. 생명이 다한 사람을 저승으로 데려가는 저승사자가 묶여 있으니 당연히 죽는 사람이 없어지게 되었습니다. 하데스가 이 어처구니없는 사태를 제우스에게 고했고, 제우스는 전쟁 신 아레스(Ares)를 보내 하데스를 구출하게 하였습니다. 호전적이고 잔인하기 이를 데 없는 아레스에게 섣불리 맞싸우다가는 온 고린도가 피바다가 될 것임을 알고 시지푸스는 순순히 항복했습니다. 체포되어 끌려가면서 시지푸스는 아내에게 자신의 시신을 화장도, 매장도 하지 말고 광장에 내다 버리고, 장례식도 치르지 말라고 은밀히 부탁한 후, 지하세계에 도착한 시지푸스는 하데스를 만나는 자리에서 눈물로 호소하는 척했습니다. "아내가 저의 시신을 광장에 내다 버리고 장례식도 치르지 않은 것은, 죽은 자를 수습하여 무사히 저승에 이르게 하는 이제까지의 관습을 조롱한 것인즉 이는 곧 명계의 지배자이신 대왕에 대한 능멸에 다름 아니니 제가 다시 이승으로 가 아내의 죄를 단단히 물은 후 다시 오겠습니다. 하니 저에게 사흘간만 말미를 주소서." 시지푸스의 꾀에 넘어간 하데스는 그를 다시 이승으로 보내 주었습니다.
그 후 왕노릇하며 오래 동안 잘 살았는데···. 그러나 아무리 영웅이라 한들 어찌 죽음을 이길 수 있었겠습니까? 마침내 시지푸스는 죽어 다시 하데스의 손에 끌려 지옥으로 갔습니다. 죽음의 세계에선 가혹한 형벌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하데스는 높은 바위산을 가리키며 그 기슭에 있는 큰 바위를 산꼭대기까지 밀어 올리라고 했습니다. 시시포스는 온 힘을 다해 바위를 꼭대기까지 밀어 올리면 바로 그 순간에 바위는 아래로 굴러 떨어져 버렸습니다. 시지푸스는 다시 바위를 밀어 올려야만 했습니다. 왜냐하면 하데스가 "바위가 늘 그 꼭대기에 있게 하라"라고 명령했기 때문입니다. 올리면 떨어지고, 또다시 올리면 또 떨어지고…. 그리하여 시지푸스는 영원히 바위를 밀어 올려야만 하는 영원한 죄수의 화신으로 현대에 이르기까지 알려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죄의 악순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무거운 짐을 평생 지고 가는 죄인의 모습이 오늘날 시지푸스입니다. 그러나 희소식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보혈을 믿기만 하면 우리의 죄문제가 해결되고 모든 죄짐이 굴려 떨어지고 우리는 부활로 구원을 받게 됩니다. 고린도전서에서는 바로 이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1. 오직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만 전하리라(고전 2:1-5)
1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가서 하나님의 증언을 너희에게 밝히 말할 때에 말이나 지혜의 뛰어난 것을 가지고 나아가지 아니하였나니 2 나는 너희 가운데서 예수 그리스도 곧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분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결심하였느니라. 3 내가 약하고 두려워하고 몹시 떨면서 너희와 함께 있었으며 4 또 나의 말과 나의 복음 선포를 사람의 지혜의 유혹하는 말들로 하지 아니하고 성령과 권능을 실증함으로 하였으니 5 이것은 너희의 믿음이 사람들의 지혜 안에 서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의 권능 안에 서게 하려 함이라.
1-2절. 아테네에서 십자가를 전하지 못한 아쉬움을 안고 회개하며 사도 바울은 십자가의 복음을 강조합니다. 복음은 죄사함과 무궁한 생명(the everlasting life)에 관하여 하나님께서 친히 증거하신 진리입니다. 바울은 복음을 전할 때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하지 않았습니다. 복음의 진리성은 하나님께서 증거하셨다는 사실에 있지 인간의 지혜에 있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복음은 전달 방법보다 그 내용이 더 중요합니다. 복음의 핵심적 내용은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십자가에 못박히신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전도할 때 이 복음만을 전하겠다고 작정하고 결심하였습니다. 사람이 복음을 아름다운 말로 단장한다고 복음이 더 효력을 가지는 것이 아닙니다. 복음의 효력은 인간의 아름다운 말에 있지 않고 그 내용 자체에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인들을 위해 십자가에 죽으셨다는 사실이 죄인들을 구원하는 능력이 됩니다.
사순절에 미국교회에서 즐겨 부르는 찬송 151장을 부릅시다.
1) 만왕의 왕 내 주께서 왜 고초당했나 이 벌레같은 날 위해 그 보혈 흘렸네
십자가 십자가 내가 처음 볼때에 나의 맘에 큰 고통 사라져
오늘 믿고서 내 눈 밝았네 참 내 기쁨 영원하도다
A-las! and did my Sav-ior bleed, And did my Sov-'reign die?
Would He de-vote that sa-cred head For such a worm as I?
At the Cross, at the Cross, where I first saw the light,
And the bur-den of my heart rolled a-way,
It was there by faith I re-ceived my sight,
And now I an hap-py all the day!
2) 주 십자가 못 박힘은 속죄함 아닌가 그 긍휼함과 큰 은혜 말할 수 없도다
십자가 십자가 내가 처음 볼 때에 나의 맘에 큰 고통 사라져
오늘 믿고서 내 눈 밝았네 참 내 기쁨 영원하도다
3) 늘 울어도 그 큰 은혜 다 갚을 수 없네 나 주님께 몸 바쳐서 주의 일 힘쓰리 십자가 십자가 내가 처음 볼 때에 나의 맘에 큰 고통 사라져
오늘 믿고서 내 눈 밝았네 참 내 기쁨 영원하도다
3-5절. 복음의 내용이 능력이기 때문에 바울은 복음을 전하기 위해 고린도에 머물었을 때 인간적으로는 약하며 두려워하며 심히 떨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바울이 전하는 복음을 구원의 능력으로 사용하셨으나 복음을 전하는 당사자인 바울 자신은 약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런 사실은 오히려 복음의 능력이 사람에게 있지 않고 그 내용되신 예수 그리스도께 있음을 잘 드러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도 복음을 전하는 우리가 스스로 약하다고 느낄 때 낙망하지 말고 하나님만 의지하고 성실히 예수 그리스도의 사실들을 전해야 합니다. 바울은 전도하며 설교할 때 인간적 지혜의 권하는 말로 아니하고 성령과 능력의 나타남으로 합니다. 복음을 믿음으로 전해야 합니다. 그 단순한 복음 전파에 성령의 능력이 함께 하십니다. 복음의 능력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으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능력, 성신님의 능력입니다. 전도는 사람의 아름다운 말로 하는 것이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代贖)의 사실을 단순히 전하는 것입니다. 핵심은 십자가며 예수님의 보혈입니다. 거기에 하나님의 영의 역사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통해 오늘날도 죄인들을 구원하십니다. 벧전 1:18-19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이 물려 준 헛된 행실에서 대속함을 받은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된 것이니라”
2. 세상에는 감추인 하나님의 지혜(고전 2:6-9)
6 그러나 우리가 완전한 자들 가운데서 지혜를 말하거니와 그것은 이 세상의 지혜가 아니요 또 아무 쓸모없게 될 이 세상 통치자들의 지혜도 아니라. 7 다만 우리는 신비 속에 있는 하나님의 지혜 곧 감추어진 지혜를 말하노니 이 지혜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영광을 위하여 세상이 생기기 전에 정하신 것이라. 8 이 지혜는 이 세상 통치자들 중에서 아무도 알지 못하였으니 만일 그들이 그것을 알았더라면 영광의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지 아니하였으리라. 9 그러나 이것은 기록된바, 하나님께서 자신을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것들은 눈이 보지 못하였고 귀가 듣지 못하였으며 사람의 마음속에 들어가지도 못하였도다, 함과 같으니라.
6-7절. “우리가 완전한 자들 가운데서 지혜를 말하거니와.” 여기에 ‘완전한 자들’이란 복음에 대한 완전한 지식과 믿음을 가진 자들, 곧 영적으로 성장한 자들을 말합니다. 이미 복음 신앙에 굳게 선 이들 가운데서는 우리가 지혜에 대해 말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 지혜는 이 세상의 지혜나 이 세상의 없어질 정치가들의 지혜가 아닙니다. 디오게네스나 소크라테스의 지혜도 아닙니다. 7절에서 말하는 지혜는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그것은 ‘비밀한 가운데 있었던 하나님의 지혜,’ 곧 만세 전에 우리의 영광을 위하여 예정되었으나 오랫동안 감취었던 내용입니다. ‘우리의 영광을 위하여’라는 말은 우리의 구원의 목표를 보인다. 우리의 구원은 영광스런 상태로의 회복입니다. 사람은 본래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영광스러운 존재로 창조되었었습니다. 사람의 본래의 형상은 하나님을 따라 거룩하고 의로운 형상이었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범죄함으로 그 영광스러운 형상, 즉 그 거룩하고 의로운 형상을 잃어버렸습니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본래의 영광스런 상태의 회복을 위해 우리를 구원하시는 것입니다.
이 구원의 계획은 세상이 생기기 전에 생긴 것입니다. 하나님은 완전한 설계자요 계획자이십니다. 세상의 모든 일들이 하나님께서 만세 전에 계획하시고 작정하신 대로 이루어집니다.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인 인류 구원의 일도 그러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통한 구원은 만세 전에 하나님께서 죄인을 구원하기 위해 작정하신 방법입니다.
8-9절. 이 세상의 지성인들이나 지도자들도 하나님의 이 비밀한 지혜, 감취었던 지혜를 알지 못합니다. 만일 로마 총독 빌라도가 그것을 알았더라면 ‘영광의 주님’을 십자가에 못박지 않았을 것입니다. 바울이 예수님을 ‘영광의 주님’라고 부른 것은 그분의 신성(神性)을 증거합니다. 하나님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 곧 성도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세상 사람들의 눈이나 귀나 마음에 알려지지 않았습니다(사 6:9-10: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가서 이 백성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하여 이 백성의 마음을 둔하게 하며 그들의 귀가 막히고 그들의 눈이 감기게 하라 염려하건대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 다시 돌아와 고침을 받을까 하노라). 그것은 오직 택함을 입은 성도에게만 알려지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두 부류의 사람이 섞여 살고 있는데, 하나는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 곧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이고, 다른 하나는 하나님께서 버려두신 자들 곧 세상을 사랑하는 자들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말씀과 천국과 영생을 사랑하지만, 세상을 사랑하는 자들은 돈과 쾌락과 덧없이 지나가는 세상의 헛된 것들을 사랑합니다.
3. 성신님의 계시와 교훈(고전 1:10-13)
10 그러나 하나님께서 자신의 영으로 우리에게 그것들을 계시하셨으니 그분의 영께서는 참으로 모든 것 즉 하나님의 깊은 것들을 살피시느니라. 11 사람의 것들을 사람의 속에 있]는 사람의 영 외에 어느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것들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 12 이제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으로부터 난 영을 받았으니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값없이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함이라. 13 또한 우리가 그것들을 말하되 사람의 지혜가 가르치는 말로 하지 아니하고 성신님(Holy Ghost)께서 가르치시는 말로 하나니 곧 영적인 것들은 영적인 것으로 비교하느니라.
10-11절. 하나님의 삼위일신(혹 삼위일체)는 신비에 있습니다. 성경에서 계시해 주시는 것만 잘 이해하면 됩니다. 그 이상을 알려고 해서도 안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영이시므로(요 4:24) 하나님의 신성(神性)에 영광과 존귀와 찬송을 드리면 됩니다. 하나님의 영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신다”라고 말합니다. 전지(全知)의 속성은 하나님만의 속성입니다. 하나님의 영(the Spirit)은 단순히 하나님의 기운이나 세력이 아니고 인격적 존재이십니다. 성신님께서는 베드로에게 무엇을 지시하기도 하셨고(행 10:19 베드로가 그 환상에 대하여 생각할 때에 하나님의 영 the Spirit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보라, 세 사람이 너를 찾으니). 바울이 비두니아로 가고자 애썼으나 그것을 허락지 않기도 하셨습니다(행 16:7 그들이 무시아에 이른 뒤에 비두니아로 들어가려고 애쓰되 하나님의 영 the Spirit께서 그들을 허락하지 아니하시므로). 또 하나님의 영은 우리 속에 계시며 우리가 기도할 말을 알지 못할 때 우리 속에서 우리를 위해 탄식하며 기도하기도 하시고(롬 8:26 이와 같이 하나님의 영 the Spirit께서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하나님의 영께서 말로 할 수 없는 신음으로 친히 우리를 위해 중보하시느니라.) 우리가 범죄할 때에 근심하기도 하십니다(엡 4:30 하나님의 거룩한 영 the holy Spirit을 슬프게 하지 말라. 그분으로 말미암아 너희가 구속의 날까지 봉인되었느니라.).
12-13절. 하나님의 깊은 것도 아시는 하나님의 영께서 하나님의 감취었던 지혜, 곧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죄인을 구원하시는 복음 진리를 사도들에게 계시해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성신님께서 오시면 제자들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그가 그들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셨고(요 14:26) 또 그분이 오시면 그들을 모든 진리 가운데 인도하시고 장래 일도 알려주실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 16:13). 사도들은 ‘하나님께로 온 영’을 받았고 성신님께서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사도들이 전한 복음은 성신님께서 주신 진리 곧 영적인 진리입니다. 성신님께서는 우리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십니다. 그분은 사도들을 통해 주신 신약성경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진리를 깨닫게 하셨고 믿고 구원을 받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진리는 이 세상의 지혜로 분별할 수 없고 오직 성신님의 깨닫게 하심으로 분별할 수 있습니다.
5. 육신의 사람과 영적인 사람(고전 2:14-16)
14 그러나 본성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영의 것들을 받아들이지 아니하나니 그것들이 그에게는 어리석은 것이니라. 또 그가 그것들을 알 수도 없나니 이는 그것들이 영적으로 분별되기 때문이니라. 15 오직 영에 속한 사람은 모든 것을 판단하나 그 자신은 아무에게도 판단을 받지 아니하느니라. 16 누가 주의 생각을 알아서 그를 가르치겠느냐?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의 생각을 가졌느니라.
14절. 두 종류의 사람에 대해 말합니다. ① 첫 번째 종류의 사람은 ‘육에 속한 사람’(프쉬키코스 안드로포스 ψυχικὸς ἄνθρωπος) 즉 ‘육적인 사람’입니다. ‘육적’이라는 말은 ‘영적’이라는 말(프뉴마티코스 Πνεύματος)과 대조되는 단어로 감각적 성질 즉 욕구와 격정의 지배를 받는다는 뜻입니다. 육적인 사람은 구원받지 못한 일반 사람, 즉 믿지 않는 자를 말합니다. 그는 하나님의 영을 받지 못한 자입니다. 이단자들도 육적인 자들(프쉬키코이 ψυχικὸι)입니다(유 1:19). 육적인 사람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고전 1:21) 깨닫지 못하고(롬 3:11) 하나님을 경외함과 섬김이 없고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고(롬 1:21; 3:18) 우상숭배에 빠져 있습니다(롬 1:23). 그는 하나님의 계명을 순종치 않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 곧 사탄과 악령들을 따라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온갖 죄와 부도덕에 빠져 있습니다(마 15:19; 롬 3:12-15; 엡 2:2-3; 4:17-19). 그런 사람은 하나님의 복음을 미련한 것으로 여기며 하나님의 영의 일을 깨닫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이런 일은 영적으로라야 분별되고 판단되기 때문입니다.
15-16절. ② 두 번째 종류의 사람은 ‘신령한 자’(호 프뉴마티코스 ὁ πνευματικὸς)입니다. 즉 ‘영적인 사람’입니다. ‘영적인 사람’은 하나님의 영을 받아 성신님의 지배를 받는 사람을 말합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은 자입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영으로 거듭납니다. 사람이 중생하고 구원을 받을 때 성신님께서 그 속에 들어오시며 그 안에 영원히 거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께 구하여 성신님을 보내어주실 것이며 성신님께서 제자들 속에 영원토록 함께 계실 것을 말씀하십니다. 요 14:16-17,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분께서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그분은 진리의 영이시라. 세상은 능히 그분을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분을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분을 아나니 그분은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우리가 구원의 복음을 듣고 믿었을 때 약속의 성신님으로 인치심을 받습니다(엡 1:13). 성신님께서는 우리 속에 오십니다. 바울은 또 갈 3:2에서 우리가 율법의 행위로가 아니고 믿음으로 성신님을 받았다고 말합니다. 롬 8:9에서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라고 합니다. 롬 8:15에서 우리는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養子)의 영 곧 우리를 양자로 삼으시는 영을 받았으므로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합니다(롬 8:15).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육신의 사람을 극복하고 성신님의 도우심으로 영의 사람이 됩시다. 오직 십자가에서 흘리신 주님의 보혈로 죄사함 받고 성신님을 선물로 받아 의와 평화와 기쁨으로 하나님 나라 생활을 하시기 바랍니다(롬 14:17). 아멘.
[오늘의 기도]
항상 사랑해 주시는 거룩하신 하나님 아버지, 저희들로 십자가와 부활의 신앙으로 무장하게 하시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거룩성을 회복하게 하옵소서. 험한 십자가를 사랑하게 하시고, 십자가를 질 수 있나 물어보실 때 적극적으로 지겠다고 대답하게 하시며, 십자가만 자랑하게 하옵소서. 다시 오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아가서 히브리어 성경말씀] 술람미 신부의 결혼을 축하(아 3: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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