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 주간 설교 말씀은 예수님의 찔림과 멸시받음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사야 53장은 메시아가 고난 받는 장으로서 예수님이 오시기 500년 전에 고난 받을 예수님에 대해서 예언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선택받은 백성을 위하여 고통당했습니다. 우리의 죄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었습니다.
예수님의 찔림과 멸시받음(사 53:1-12)
그리스도는 모양과 풍채가 없으시므로 사람들이 멸시하게 됨 (1-3)
• 53:1 우리의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뇨 여호와의 팔이 뉘게 나타났느뇨
전한 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가리킨다(롬 10:16-17). 그러므로 이것은 많은 종들이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나 사람들이 믿지 않고 배척할 것을 가리킨다. 여호와께서 그리스도를 보내어 암탉 이 병아리를 날개아래 모으려는 것같이 모으려고 했지만 그들이 원치 아니하고 구속의 복음을 믿지 아니하였다. 여호와의 팔이 뉘게 나타났느뇨 하나님께서 능력의 팔로 자기 백성을 구원하려고 했으나 거역하고 물러갔다.
• 53:2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그는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순”은 새롭게 나오는 싹이라는 뜻이다. 싹이 새롭게 나오고 가지가 새롭게 자나날 때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고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다. 그리스도의 생명 운동은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고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도 없다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가식이나 꾸밈이 없고 있는 그대로 순수하게 나타나셨다. 그리스도는 보통 사람이 입는 옷을 입으시고 보통사람이 먹는 데로 잡수시면서 다투지 아니하시고 들레지도 아니하시며 조용히 생명의 역사를 해나가셨다(마 12:19).
사람의 영을 살리는 생명의 역사는 모양과 풍채가 없다. 생명이 살아나고 자라나는 것은 모양이나 풍채가 없는 법이다. 곡식 종자도 순수한 모양 그대로 심는다. 그 종자에서 아무소리 없이 새싹이 나온다. 그 새싹은 모양이나 풍채가 없다. 종자는 모양이 없어도 그대로 심어야 하고, 조는 조 그대로 심어야 거기서 싹이 나고 줄기가 자라고 열매를 맺게 된다.
오늘날 진리에 대해서 진리 그대로 순순하게 증거 해야 되고 진리 그대로 세워 나가야 생명이 있다. 참된 생명의 역사는 꾸미는 것이 아니다. 꾸미면 외식이고 모양과 풍채를 내면 생명은 없어진다. 그것은 곡식종자가 모양이 없다고 가루를 만들어 보기 좋은 형태로 만들어 심는 것과 같다. 모양과 풍채와 흠모할 만한 것이 없어야 하나님의 말씀만 듣고 생명 길을 걷게 된다.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어도 순수하게 진리 그대로 나타나야 하나님 앞에 아름다운 것이고 생명의 역사가 있다.
또한 순과 새싹은 뻣뻣하지 않고 부드럽다. 예수님은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다고 하셨다(마 11:29). 온유해야 생명의 역사가 나타난다.
• 53:3 그는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버린 바 되었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에게 얼굴을 가리우고 보지 않음을 받는 자 같아서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그리스도와 그 생명 운동은 아무 볼 것이 없으므로 사람들이 멸시하고 싫어버린 바 된다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먼저 유다 백성들에게 멸시를 당하시고(요 1:11, 46; 8:49), 버림을 당하셨다. 예수님은 문벌도 없고, 학벌도 없고, 제자들은 갈릴리 바다에서 고기잡이하던 어부들이었으므로 사람들이 명시했다. 예수님의 12제자 중에 학자도 제사장도 레위인도 없었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들이 멸시하였다. 또 예수님이 죄를 책망하고 십자가에서 죽이셨으므로 모든 사람들이 싫어버렸다.
모양과 풍채와 아름다운 말은 생명 운동을 하는데 큰 방해가 된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2:2-5에 “내가 너희 중에 예수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약하며 두려워하며 심히 떨었노라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지혜의 권하는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하여 너의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 있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라고 하였다. 순순하게 하나님의 말씀만 전해주고 하나님의 능력에 의해서만 역사하는 그것이 중요하다. 오늘날 교역자들도 외부적으로 꾸미고 아름다운 말을 하려고 하면 하나님의 능력이 떠나게 되고 생명의 역사가 중단된다.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그리스도께서 세상에서 슬픔 일을 많이 겪게 되실 것을 가리킨다. 질고를 아는 자라 그리스도는 질병과 고통과 인생의 오든 괴로움을 친히 담당해 주실 것을 가리킨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모든 슬픔과 고통을 체휼 하시고 담당하시기 위해서 많은 고난을 당하셨다(마 8:17; 히 4:15).
사람들에게 얼굴을 가리고 보지 않음을 받는 자 같아서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께 대하여 얼굴을 가리고 멸시를 하였다.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배척과 모욕을 당하시고 버림을 당하셨다.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을 가리키는 동시에 신약시대에 성도들을 가리킨다. 오늘날 우리 구원받은 신자들도 주님을 잘 영접지 않고 배반하는 때가 많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와 고난과 징벌을 담당하심(4-6)
• 53:4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실지로 예수님은 택한 백성의 죄를 대신하여 질고(疾苦)를 져주시고 슬픔을 당하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들도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생각하기를 그가 자기 죗값으로 하나님께 징벌을 받아 그 같은 고난을 당한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 53: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그리스도께서 고난 받으신 것은 모든 택한 백성을 대신하여 받으신 것이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예수님은 우리의 허물과 죄로 인하여 머리에 가시면류관을 쓰시고 손과 발에 못 박히시고 허리에 창으로 찔리셨다. 그 찔린 것과 못 박혀 예수께서 가시 면류관을 쓰시고 찔리심을 당했고 십자가에 못 박혀 상하시고 창에 찔리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것을 늘 생각하며 그 은혜에 감사해야 한다. 우리가 죄를 지으면 예수께서 다시 십자가에 못 박히는 고통을 당하게 하는 것인 줄 알고 죄에서 멀리 떠나야 한다.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우리가 받을 징계를 예수님이 대신 받아 주셨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과 더불어 평화를 누리게 되었고(엡 2:15-17), 우리 심령에 평화를 누리게 되었다.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예수님이 우리 대신에 채찍에 맞는 고난을 당하셨기 때문에 우리의 심령의 상처가 나음을 입었다. 베드로전서 2:24에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위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라고 했다.
• 53:6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우리는 각기 자기의 길, 즉 죄악의 길로 걸어갔다. 시편 14:3에 “다 치우쳤으며 함께 더러운 자가 되고 선을 행하는 자가 없으니 하나도 없도다”라고 했다. 모든 사람이 다 그릇된 길로 걸어가서 망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우리의 죄악을 담당하시고 속죄 재물이 되셨다. 고린도후서 5:21에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라고 했다.
그리스도께서 죽을 곳으로 끌려갈 때에 잠잠하심(7-9)
• 53:7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운 때에고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예수님은 고난을 잘 참으시고 침묵하셨다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양 예수님이 우리 죄를 지시고 십자가에서 죽어 주셨다. 예수그리스도는 우리를 대속하는 속죄양이신다. 요한복음 1:29에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가로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라고 했다.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예수님은 유월 바쳐진 어린양으로서(고전 5:7) 우리 죄를 대신 지시고 잠잠히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베드로서 2:23에 “욕을 받으시되 대신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받으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자에게 부탁하시며”라고 했다. 예수님은 아무 죄가 없이 세상에서 곤욕을 당하셨으나 변명하지 않으시고 위협하지도 않으셨다. 바리새인들과 제사장들이 죄 없는 주님을 정죄하고, 누명을 씌우고, 거짓 증거를 하고 능욕을 하고, 핍박을 했다. 그렇지만 예수님은 대신 욕하지 않고 공의로 심판하기는 하나님께 맡기고 잠잠히 구속을 이루어 나가신 것이다.
• 53:8 그가 곤욕과 심문을 당하고 끌려갔으니 그 세대 중에 누가 생각하기를 그가 산 자의 땅에서 끊어짐은 마땅히 형벌받을 내 백성의 허물을 인함이라 하였으리요
그리스도는 택한 백성의 죄와 허물을 지시고 곤욕과 심문을 당하고 죽을 곳으로 끌리어 가서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그러나 그 세대 사람들(불신자들) 중에는 그것을 깨닫는 자가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택한 백성도 믿기 전에는 그것을 깨닫지 못한다. 그러나 그 구속으로 인하여 많은 택한 백성이 구원받게 될 것이다. 다른 사람이 몰라주는 것이 문제가 아니고 실지로 구원 역사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면 그 일로 인하여 구원받는 사람이 일어나게 되고 많은 사람에게 그 빛이 비취게 될 것이다.
• 53:9 그는 강포를 행치 아니하였고 그 입에 궤사가 없었으나 그 무덤이 악인과 함께 되었으며 그 묘실이 부자와 함께 되었도다
예수님은 구속을 이룰 때에 아무 죄가 없으시자만 여러 가지 곤욕과 핍박과 형벌을 받으셨다. 그래도 예수님이 대신 강포를 행하지 않았고 그 입에 궤사가 없었다. “궤사(詭詐)”는 속인다는 뜻인데 예수님이 궤사가 없다는 것은 죄와 허물이 없다는 것이다. 또 대신 욕하지 않고 위협하지도 않고 묵묵히 희생의 제물이 되셨다(벧전 2:22-24).
무덤이 악인과 함께 되었으며 예수님은 죄가 없으시지만 악인과 함께 십자가에 죽으시고 죽은 다음에 무덤에 장사되었는데, 이것은 그리스도의 낮아지심을 말한다.
그 묘실이 부자와 함께 되었도다 예수께서 악인과 같이 취급받아 죽어 장사되었으나, 하나님은 예수님의 죽음을 존귀하게 여기셨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악인으로 취급하여 죽였지만 하나님은 내버리지 않고 존귀케 해 주셨다(마 27:57-60). 성도들도 예수님을 믿고 주를 위해 살며 진리를 지키다 죽으면 하나님이 알아주시고 존귀하게 해 주시고 천국에서 면류관을 주신다.
그리스도가 대속의 재물이 되심(10-12)
• 53:10 여호와께서 그로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 질고를 당케 하셨은즉 그 영혼을 속건제물로 드리기에 이르면 그가 그 씨를 보게 되며 그날은 길 것이요 또 그의 손으로 여호와의 뜻을 성취하리로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와 허물을 인해서 자기 영혼을 속건재물로 바치셨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신 것은 육신의 고생만 아니고 겸하여 영혼이 수고하셨던 것이다. 속건제(贖愆祭)는 속죄제(贖罪祭)의 한 유형이며, 배상(賠償)의 문제가 제기된다(fp 5:6, 15-19).
그가 그 씨를 보게 되며 그날은 길 것이요 그리스도께서 영혼을 속건 제로 드린 결과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이 생겨나고 영적 후손이 끊기지 않으므로 그의 날이 길게 된다는 것이다. 여호와의 뜻을 성취하리로다 예수께서 자신을 희생하여 제물로 드리므로 인간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셨다는 것이다.
• 53:11 가라사대 그가 자기 영혼의 수고한 것을 보고 만족히 여길 것이라 나의 의로운 종이 자기 지식으로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하며 또 그들의 죄악을 친히 담당하리라
그가 자기 영혼의 수고한 것을 보고 만족히 여길 것이라 예수님은 육신만 수고하고 고난당하신 것이 아니고 영혼도 고난당하셨다. 우리도 영혼이 죄로 인해서 죽었기 때문에 예수님의 영혼이 우리 죄를 담당하시고 고난을 당하시고 약속대로 구속을 완성하신 것이다. 그것을 예수님은 만족히 여기시고 기뻐하신 것이다.
나의 의로운 종 그리스도는 성경 말씀과 하나님의 뜻을 완전히 순종하여 하나님의 의를 완성시켰으므로 의로운 종이라고 한 것이다.
자기 지식은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을 가리키는데 이것은 이지적 지식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아는 영적 지식을 가리킨다. 요한복음 17:3에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나는 것이니이다”라고 했다. 예수님의 죽으심은 죄를 대속하는 동시에 의를 완성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십자가 구속을 믿음으로 많은 사람이 죄 사함을 받고 의롭게 되어 구원을 얻게 된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첫째는 우리 죄를 담당하여 형벌을 대신 받으신 것이고(代刑), 둘째는 죽기까지 말씀을 완전히 복종하여 하나님의 의를 완성하신 것이다(代行). 그러므로 예수님의 십자가의 구속을 믿는 사람은 죄 사함을 받고 의롭다(稱義)함을 받게 된다.
• 53:12 이러므로 내가 그로 존귀한 자오 함께 분깃을 얻게 하며 강한 자와 함께 탈취한 것을 나누게 하리니 이는 그가 자기 영혼을 버려 사망에 이르게 하며 범죄자 중 한로 헤아림을 입었음이라 그러나 실상은 그가 많은 사람의 죄를 지며 범죄자를 위하여 기도하였느니라 하시니라
존귀한 자와 함께 분깃을 얻게 하며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존귀한 자들 중에서 높여 주셨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에게 천상천하(天上天下)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셨다(빌 2:9).
강한 자와 함께 탈취한 것을 나누게 하리니 승리자의 소득을 예수님에게 주실 것을 가리킨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의 승리로 모든 것을 정복하셨다. 바리새인들의 권세와 로마 국권과 죄와 마귀와 사망과 세상을 승리하고 정복하셨다. 이 영적 승리로 인하여 예수께서 많은 소득을 받게 되었다. 그리스도께서 승리하는 하늘의 권세와 땅의 모든 권세를 다 받으신 것이다(마 28:18). 이 모든 소득을 그리스도를 믿고 순종하는 성도들과 함께 나누게 될 것이다.
그가 자기 영혼을 버려 사망에 이르게 하며 예수님은 신성과 인성이 결합되었으므로 신성과 인성이 분리될 수가 없다. 그리스도의 신성은 안 죽는데 인성만 죽었다고 할 수 있겠는가 가 문제이고, 또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은 우리 죄를 대신 형벌받는 동시에, 한편은 죽기까지 복종하시므로 하나님의 의를 완성시키는 것인데 하나님께서 의를 끊어버릴 수 있겠는가 가 문제이다. 공의의 하나님은 의를 죽일 수 없다. 영혼이 죽는다는 것은 하나님과 단절(斷絶)되는 것을 가리킨다.
하나님의 고의는 죄인은 끊어버리고 의인은 영접하신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십자가에 달린 예수그리스도에게 모든 사람의 죄가 전가(轉嫁)된 것을 보시고 그를 하나님과 끊어버리시는 동시에, 그리스도가 십자가상에서 이루시는 완전무결한 의(성경 말씀을 다 순종하고 죽기까지 복종한 의)로 인하여 하나님과 연결시킨 것이다. 죄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끊어버리는 동시에,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에서 성취하는 완전한 하나님의 의와 신성으로 하나님과 연결시킨 것이다.
그러나 실상은 그가 많은 사람의 죄를 지며 범죄자를 위하여 기도하였느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상에서 제사장으로서 우리를 위하여 기도해 주셨고, 부활 승천 후에는 하나님 우편에서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고 계시는 것을 가리킨다(롬 8:34)
[고난주간 설교말씀]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마 27:5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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