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갈라디아서 2장 하나님 말씀 중에서 나를 죽이는 신앙이라는 설교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나를 죽이는 신앙”(갈 2:20)
♣명제: 내 안에 예수 그리스도가 살고 내가 죽어야 한다.
♣목적: 구원받은 자는 율법의 의에서 복음의 의로 바뀐 자이다.
우리가 종려주일을 맞이하여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선택받은 나를 위해서 십자가에 죽으시려고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로서 이 땅에 오셔서 선택받은 자의 모든 죄를 담당하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시기 위하여 고난을 당하시고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십자가의 사역을 감당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사역을 감당하지 않았다면 선택받은 죄인들은 한 명도 살지 못했을 것입니다. 아담 이후로 모든 자들은 원죄에 빠진 죄인이기 때문에 구원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인간의 힘으로는 절대 살 수가 없기 때문에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모든 죄를 담당하게 하시고 구원해 주셨습니다.
구원받은 자들에게는 십자가의 사역이 생명이지만 구원받지 못한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 되어 주님을 깨닫지 못하게 됩니다. 현재 내가 십자가에서 나를 위해 죽으시고 나의 모든 죄를 담당하셨다는 것을 믿고 고백했다면 나는 하나님께 선택받은 사람입니다. 이렇게 구원의 은혜를 받았다면 이제부터는 주님이 내 안에 거주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먼저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거듭나야 합니다. 거듭나지 않으면 성화도 없습니다. 아이가 태어나지 않았는데 성장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영적으로 십자가 복음의 말씀을 통해서 먼저는 하늘로부터 탄생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다음에는 복음의 말씀을 들으면서 영적 성장을 이루어나가게 됩니다. 이 시간 우리가 고난주간을 맞이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고 주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오늘 하나님께서는 나를 죽이는 신앙을 가지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나의 교만과, 자만과, 아집과, 고집을 버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가져야 합니다.
갈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사도바울은 예수님을 믿었던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던 사람입니다. 율법에 능통했던 사람이며 바리새인입니다. 이런 바울이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회심하게 됩니다. 예수님을 만난 이후에 하늘로부터 거듭나는 체험을 하게 됩니다. 구원의 확신이 들어오게 된 것입니다. 사람은 이 세상을 살면서 반드시 한 번 구원의 경험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단회적 회개입니다. 원죄에서 회개하는 역사가 일어나야 만이 구원받은 체험이 일어났다고 볼 수 있습니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진실로 만나고 회개하였습니다. 그러면서 고백하고 있습니다. 자신이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다고 말씀합니다.
주님과 함께 죽었으니 이제 자신은 죽고 바울 안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사셨다고 고백합니다. 바울은 단회적 회개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구원받은 체험을 하고 나서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위해서 살아가는 인생이 됩니다. 바울은 그전까지 율법을 지켜서 구원을 얻는 줄로 생각하고 열심히 율법을 지키면서 살았던 사람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만나고 난 후에는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율법의 행위로는 절대 구원을 얻을 수가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우리들도 오늘 이 말씀을 통해서 십자가에서 고난당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율법을 지켜서는 절대 구원이 없습니다. 죄악 가운데 있는 모든 행위는 하나님 앞에서는 악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보내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의 반열에 들어가게 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된다는 것은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받아들이면 됩니다. 사도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συσταυροω(쉬스타우로오 4957 VIRPS1 동사, 직설법, 완료, 수동태, 단수, 1인칭)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히다, 라는 뜻이며 이 단어는 συν(쉰 4862) ~와 함께, ~와 더불어, 라는 뜻과 σταυροω(스타우로오 4717) 십자가에 매달다, 십자가에 못 박다, 라는 뜻의 합성어입니다. 사도바울은 자신이 예수님과 함께 더불어 고난을 당했다고 고백합니다. 십자가에 예수님이 못 박힌 장면을 바울은 직접 보지 못했지만 예수님을 만난 이후로 십자가의 고난과 같은 괴로움을 당하게 됩니다. 율법주의를 버리고 복음을 전파하는 자로 돌아서니 많은 고통을 당하게 됩니다. 자신은 이렇게 자신의 삶 가운데 실제로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히는 고난을 당한 사실이 있다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직설법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들도 바울과 같은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히는 신앙입니다. 주님의 고난에 동참하는 신앙입니다. 예수님은 나를 위해서 자신의 생명을 아끼지 않고 주셨습니다. 우리가 고난주간을 맞이하여 내가 구원받은 것이 얼마나 값진 것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실제로 내가 주님의 고난에 동참함으로 구원이 값싼 싸구려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도바울은 자신이 십자가에 주님과 함께 못 박혔는데 온전히 하나가 되어 못 박혔다고 고백합니다. 완료 시제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완료라는 것은 행동이 끝난 것을 말합니다. 자신이 힘들고 괴로움이 찾아왔을 때 축복받기 위해서는 주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히고 문제가 해결되고 복을 받으니 주님을 배신하고 세상으로 돌아가는 그런 못 박힘이 아니라고 증언합니다. 어느 곳에 있든지 죽을 때까지 주님과 함께 십자가에서 못 박혔다고 말씀합니다.
우리들도 바울처럼 예수 그리스도와 모든 행동을 함께 해야 합니다. 내가 불리할 때는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시인하다가 어떠한 상황과 환경에 유리해지면 주님을 배신하고 떠나는 신앙은 완료가 아닙니다. 살든지 죽든지 주님과 함께 행동을 같이하는 신앙이야 말로 주님이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신앙입니다. 이제부터 우리가 이러한 신앙을 갖고 주님을 섬기면서 교회생활을 하는 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바울이 주님과 십자가에서 함께 못 박혔는데 자신의 의지로 못 박히지 않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의지가 아니라 하나님의 의지라고 말씀합니다. 그 이유가 수동태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착각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내가 주님을 믿고 싶을 때 믿고 믿기 싫으면 믿지 않는 것처럼 말합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믿음과 구원의 주관자는 하나님입니다. 주님의 고난에 동참하게 하시는 분도 하나님입니다. 수동태를 사용하고 있다는 자체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주권이라는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제부터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의 말씀으로 주님과 함께 십자가에서 죽은 것은 내가 죽고 싶어서 죽은 것이 아니라 창세전에 선택받은 자이기 때문에 주님과 함께 죽을 수밖에 없도록 하나님이 함께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ζαω(자오 2198 동사, 직설법, 현재, 능동태, 단수, 3인칭) 살다, 살리다, 살아계시다, 라는 뜻입니다. 사도바울은 자신이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서 죽고 나서 자신 안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살고 있다고 말씀합니다. 육체는 똑같지만 생각과 믿음과 행동이 바뀐 것입니다. 전에는 율법의 삶에 빠져 모든 것이 하나님 앞에서 죽어있었지만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 들어왔기 때문에 영혼이 새롭게 살아나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사도바울을 살려주신 것입니다. 바울이 살아나니 그 안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살아계시게 되었습니다.
우리들도 주님과 함께 십자가에서 나의 율법의 행위를 죽여야 합니다. 나를 드러내고 정욕에 빠져 살았던 삶은 죽어야 합니다. 이것이 죽지 않으면 내 안에 예수 그리스도가 살아날 수가 없습니다. 원죄 가운데 있는 죄인에게는 예수님이 함께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은 생명의 주님이기 때문에 살아계신 자의 하나님입니다. 살아계신 분이 죽어있는 자와 함께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십자가 복음의 말씀으로 죽고 나니 내 안에는 자연스럽게 복음의 주관자이신 예수님이 살아나게 되는 것입니다.
바울은 실제로 자신의 심령에 예수 그리스도가 살아있다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구원의 확신입니다. 믿음 생활을 하는 자들은 구원받고 나면 실제로 자신이 구원을 받았는지 알게 됩니다. 자신 안에 분명한 확증이 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직설법을 사용하여 실제로 자신 안에 예수 그리스도가 살아계신다고 증명하고 있습니다. 우리들도 바울처럼 확신에 찬 고백이 있어야 합니다. 어느 누군가가 당신은 구원을 받았습니까? 당신 안에는 실제로 예수 그리스도가 살아계십니까?라고 질문했을 때에 주저하지 않고 네, 그렇습니다. 내 안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살아 역사하고 있습니다.라는 고백이 나와야 합니다. 이런 자가 실제로 구원을 받은 자이며 자신의 정욕이 죽은 자입니다.
바울은 언제 예수 그리스도가 자신의 심령에 살아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지금 현재 자신과 함께 살고 있다고 말씀합니다. 그 이유가 현재 시제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들도 지금 주님과 함께 살고 있다고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 현재는 주님이 재림하실 때까지 변함이 없는 고백입니다. 내 안에 예수 그리스도가 살아계시면 재림의 신앙을 가지고 살아가게 됩니다. 주님을 바라보면서 신앙생활을 합니다. 이런 신앙이 나의 정욕을 죽이고 영혼에 투자하는 신앙입니다.
바울은 이제 자신은 육체 가운데 사는데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사랑하사 자신을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버리신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고 고백합니다. 우리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에 이르게 됩니다.
‘자기 자신을 버리신’ παραδιδωμι(파라디도미 3860 동사, 분사, 과거, 능동태, 소유격, 남성, 단수) 전수하다, 전달하다, 전하다, 라는 뜻이며 이 단어는 παρα(파라 3844) ~곁에, 라는 뜻과 διδωμι(디도미 1325) 주다, 라는 뜻의 합성어입니다. 예수님이 자기 자신을 버렸다는 것은 만세전에 선택받은 자들이 아담의 후손으로 와서 원죄 가운데 죽을 수밖에 없었던 인생들을 다시 하나님의 곁에 돌리기 위하여 십자가에서 못 박혀 죽으시고 자신의 생명을 나에게 허락해 주신 것을 의미합니다. 사도바울도 이와 같이 구원의 은혜를 받았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자신의 목숨을 버리신 것은 하나님의 뜻을 전달하여 선택받은 자들이 하나님의 뜻대로 온전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십자가 복음을 전수해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하나님을 향하여 모든 뜻을 이루시고 죽어있던 영혼들을 살리기 위하여 죽으셨습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자신의 생명을 버리신 것은 예수님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의 뜻이면서 계획이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과거 시제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 계획 없이 이루어지는 법은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구원을 베풀어 주시는데 계획 없이 하시지 않는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자신의 목숨을 버리실 때에 무엇을 소유하고 있었을까요? 그 안에는 만세전에 선택받은 자들을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의 모든 자들을 구원하기 위해서는 오시지 않았습니다. 선택받지 못한 자는 십자가 복음의 말씀을 전해주어도 믿지도 않고 청함을 받았지만 오지도 않습니다. 구원받은 자들이 선택을 받아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믿고 고백하게 됩니다.
이 시간 우리는 청함을 받은 자들이 아니라 택함을 받은 자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 때문에 십자가에서 고난을 당하신 것이고 생명을 버리신 것입니다. 고난주간을 통해서 우리는 내 안에 예수 그리스도가 살아계신다는 것을 확고하게 믿고 한 주간을 살아가야 합니다. 내 안에 예수 그리스도가 살아계시기 위해서는 먼저는 내가 죽어야 합니다. 나의 정욕을 죽이고 육체의 정욕대로 살지 말아야 합니다. 영적인 신앙을 하면서 영혼이 살아나야 하고 영에 이끌리는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또한 예수그리스도가 왜 십자가에서 고난을 당하셨는지를 깊이 있게 묵상하는 한 주간이 되어야 합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 아버지의 뜻이며 이 모든 뜻은 바로 나를 위한 일이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을 내가 깨달았다면 앞으로는 주님과 함께 동행하는 삶을 살면서 어느 곳에 있든지 주님께 묻고 해답을 얻고 동거 동락하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이제부터 한 주간 동안 열심히 주님의 고난에 동참하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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