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데스다 구약성경강해

[잠언 14장 주일설교말씀] 본능과 구별되는 사랑(잠 14:29-35)

성령의 능력 2021. 2. 11.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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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잠언 14장 주일설교말씀 중에서 본능과 구별되는 사랑이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많이 받고 있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셔서 구원의 은혜를 주셨습니다. 이것이 가장 큰 사랑입니다. 우리가 이런 사랑을 받았으니 이제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주님의 사랑을 전해 주어야 하겠습니다. 이제 우리는 슬기로운 자들이 되어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해야 하겠습니다. 시기나 질투는 모두 버리고 주님 안에서 주님의 사랑을 베풀면서 살아가는 성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본능과 구별되는 사랑(잠 14:29-35, 고전 13:1-7)

 

잠 14:29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크게 명철하여도 마음이 조급한 자는 어리석음을 나타내느니라 

잠 14:30 평온한 마음은 육신의 생명이나 시기는 뼈를 썩게 하느니라 

잠 14:31 가난한 사람을 학대하는 자는 그를 지으신 이를 멸시하는 자요 궁핍한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자는 주를 공경하는 자니라 

잠 14:32 악인은 그의 환난에 엎드러져도 의인은 그의 죽음에도 소망이 있느니라 

잠 14:33 지혜는 명철한 자의 마음에 머물거니와 미련한 자의 속에 있는 것은 나타나느니라 

잠 14:34 공의는 나라를 영화롭게 하고 죄는 백성을 욕되게 하느니라 

잠 14:35 슬기롭게 행하는 신하는 왕에게 은총을 입고 욕을 끼치는 신하는 그의 진노를 당하느니라 

사도 바울은 사랑을 정의하면서 인간의 여덟 가지 부정적인 본능과 대비시키고 있습니다. 사랑은 투기하지 아니하며,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한다고 하였습니다. 이 여덟 가지 조목들은 모두 희랍어로 현재형인데 이는 그것이 하나의 관습이요 우리의 생활양식임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아가페 사랑은 생활의 관습으로 이런 부정적인 본능들을 억제하며 살아간다는 말입니다.

 

항상 투기하지 아니하고, 항상 자랑하지 아니하고, 항상 성내지 아니한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배우려면 무엇을 버려야 할 것인가를 말씀해 주는 것입니다. 우리 속에 자리 잡고 있는 본능들을 제어(制御) 하지 아니하고서는 참된 사랑을 배울 수가 없습니다. 이런 부정적인 조목들은 아가페 사랑이 얼마나 순수한 것인가를 말해주는 동시에 우리가 거기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가를 말해 줍니다. 아가페 사랑은 저절로 우리 속에서 우러나는 것이 아니라 피나는 노력을 통해서 갈고닦을 때에 비로소 생겨나는 것입니다.

 

성령의 도우심을 통해 우리의 옛사람의 본성들을 하나하나 제어해 나갈 때 비로소 사랑은 우리 속에 자리 잡게 되는 것입니다. 결국 사랑은 새 사람의 본성임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거듭나서 완전히 옛사람을 벗어버리지 아니하고서는 사랑을 알았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면 이제 우리가 버려야 할 본성들을 하나하나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사랑은 투기하지 아니한다.

 

먼저 사랑은 투기하지 아니한다고 하였습니다. 질투와 시기를 합친 말입니다. 시기(猜忌)는 다른 사람이 갖고 있는 것과 똑같은 것을 갖고 싶어 하는 마음이고, 질투(嫉妬)는 다른 사람이 갖고 있는 것을 빼앗으려는 마음을 뜻합니다. 투기(妬忌)는 다른 사람이 나보다 좋은 것을 가졌을 때 그것을 싫어하고 그 사람을 미워하는 마음입니다. 투기는 결국 미움이기 때문에 사랑의 정반대 개념입니다.

 

인류의 최초의 살인이라고 할 수 있는 가인의 살인행위도 바로 동생을 투기하는 데서 비롯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벨의 제사는 받으시고 가인의 제사는 받지 않으시자 가인은 자신의 잘못은 돌아보지 아니하고 동생을 투기하여 돌로 쳐 죽이고 말았습니다. 가인의 살인 이후 많은 사람들이 시기하고 질투하기 때문에 살인을 저지르게 됩니다. 경쟁적인 상대가 자기보다 앞서 나갈 때 질투가 생기고 그래서 상대방을 모함하고 욕하고 헐뜯어 그를 격하시키려 하고 그래도 안될 경우 살인까지도 서슴지 않게 될 경우가 흔한 것입니다.

 

야곱의 열 두 아들 가운데 요셉이 아버지의 사랑을 받자 형들이 이를 투기하여 미워하였습니다. 요셉이 형들에게 꿈 이야기를 하자 더욱 미워하였고 마침내 기회가 오자 그를 애굽에 팔아버렸던 것입니다. 배다른 형제들이긴 했지만 이렇게 투기하여 살인까지도 불사하는 이런 인간의 죄악이야말로 두려운 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런 마음은 어려서부터 벌써 우리 속에 자리 잡고 있는 것입니다. 동생을 본 어린아이가 동생을 시기하여 괴롭히는 모습을 자주 보게 됩니다.

 

부모가 아이들의 옷을 살 때에 어떤 아이 하나만을 위해 사서는 안되고 고루 사주어야 문제가 발생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어렸을 때부터 자라나는 투기는 늙어 죽을 때까지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라는 속담이 말해주는 것처럼 우리는 다른 사람이 잘 되는 것을 좋아하고 축하해 주기보다는 시기하고 배 아파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러나 투기하는 마음은 다른 사람을 해칠 뿐 아니라 자신을 파멸로 몰고 가는 악마의 사자입니다. 잠언 말씀에 "시기는 뼈의 썩음"(14:30)이라고 하였고, 아가서에 "투기는 음부같이 잔혹하며 불 같이 일어나니 그 기세가 여호와의 불과 같으니라"(8:6)고 하였습니다. 불 같이 일어나는 투기는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모두 파멸로 이끌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은 바로 이런 본성을 극복한 곳에 싹이 트는 것입니다. 상대방이 나보다 잘 될 때 진심으로 축하해 주고 함께 기뻐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높아지고자 할수록 낮아지라고 하셨습니다.

 

섬기는 자가 되라고 하셨습니다. 섬기는 자리에 내려갈 수 있을 때 우리는 투기하는 마음을 버릴 수 있을 것입니다. 투기는 우리가 다른 사람보다 높아지고자 하는 마음에서 비롯된다고 볼 때 섬기는 자가 되는 일이야말로 투기를 벗어나는 길이라 하겠습니다. 우리는 구약에서 아름다운 우정을 나눈 두 사람의 이야기를 읽을 수가 있습니다. 사울 왕의 아들인 요나단과 다윗의 우정은 참으로 아름다운 이야기입니다. 사실 이 두 사람의 관계는 서로 적대적인 관계가 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아름다운 우정을 나눌 수 있었던 것은 높아지고자 하는 욕심들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왕자인 요나단은 하나님께서 다윗을 차기의 왕으로 지목하였음을 알고도 조금도 그를 시기하거나 그를 제거하려고 하지 않고 오히려 그렇게 하려는 아버지 사울 왕으로부터 다윗을 보호해 주고 변명해 주는 일에 앞장섰고 다윗을 진정으로 사랑했던 것입니다. 그는 왕권보다는 우정을 더욱 중히 여겼던 것입니다. 세례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를 경쟁 상대로 생각하면서 요한에게 말하기"랍비여 선생님과 함께 요단강 저편에 있던 자 곧 선생님이 증거 하시던 자가 세례를 주매 사람이 다 그에게로 가더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때 요한이 그들에게 말했습니다. "신부를 취하는 자는 신랑이나 서서 신랑의 음성을 듣는 친구가 크게 기뻐하나니 나는 이러한 기쁨이 충만하였노라.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3:26-30). 요한이 자기의 역할을 분명히 몰랐다면 아마도 제자들의 선동에 이끌려 예수님을 시기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분명하게 자기의 자리와 역할을 알고 스스로 뒤로 물러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요나단이나 세례 요한은 다 같이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였다는 점에서 사랑의 사람들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제 우리가 사랑의 공동체를 이룩하려면 무엇보다도 이런 투기하는 마음을 극복하도록 노력하여야 하겠습니다. 질투와 시기는 이 공동체를 파괴하는 악마의 요소임을 알고 우리 속에서 이런 마음을 제거하여 달라고 기도하여야 하겠습니다. 서로 섬기는 자가 되며 서로 낮은 자리로 내려가 다른 사람의 좋은 점은 아낌없이 칭찬하고, 형제가 잘 되었을 때는 함께 기뻐하며 축하해 줄 수 있도록 우리의 마음에 여유를 갖도록 하여야 하겠습니. 그럴 때 우리 교회는 진정 사랑이 넘치는 아름다운 공동체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한다

 

다음으로 사랑은 자랑하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자랑하다"를 다른 말로 바꾸면 "뽐내다"가 됩니다. 뽐 하면 보라는 듯이 우쭐거리는 언행을 말합니다. 뽐낼 일이 있어 뽐을 내면 그 뽐이 반감되고 뽐내지 않으면 그 뽐이 배가 하니 모름지기 뽐내지 말라는 교훈이 있습니다. 누가복음 10장에 보면, 어느 날 예수님을 자기 집에 모신 마르다와 마리아 자매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예수님을 잘 대접하려고 분주하게 일하던 마르다가 예수님 앞에 나와서 자기 수고를 알아 달라는 식의 불평과 은근한 자랑을 늘어놓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녀를 칭찬하는 대신에 진정으로 택하여야 할 일은 말씀을 듣는 것이라면서 말씀을 듣고 있었던 마리아를 오히려 칭찬하셨습니다.

 

마르다는 뽐내려다가 망신만 당한 것입니다. 초대교회 지도자인 클레멘트는 이 말이 겉치장과 쓸데없는 것으로 외모를 꾸미는 것을 의미한다고 하였습니다. 아가페 사랑은 중요하지 않거나 쓸모없는 것을 가지고 자랑하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자랑은, 진정한 가치를 알지 못하고 이 세상의 쓸데없는 것에 가치를 부여하는 데서 나오는 것이며, 자기를 알지 못하고 자기를 나타내려 하는데서 나오는 것입니다. 보석이나 밍크코트나 자동차 같은 것을 자랑하는 사람들은 그런 것들이 값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런 모든 것이 헛된 것으로 결코 자랑할 것이 못 된다고 가르치십니다. 그래서 보물을 땅에 쌓지 말고 하늘에 쌓아두라고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진정으로 자랑할 것은 이 땅에 속한 것이 아니라 하늘의 것들임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많은 재산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만큼 기쁨을 갖지 못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는 어느 날 자신의 옆집에 사는 가족들을 지켜보게 되었습니다. 그 집은 허름하고 윤택하지 못한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었는데, 언제나 웃음 띤 얼굴이었고, 즐거운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루는 그 집 사람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은 자랑할 것도 별로 없는 사람인데 어떻게 그렇게 즐겁게 살아갑니까?""자랑할 것이 없다니요? 모르긴 해도 당신보다 자랑할 것들이 더 많을 것입니다.

 

첫째, 나에게는 영생이 있습니다.

둘째, 크고 아름다운 집이 천국에 있습니다.

셋째, 다른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평화를 갖고 있습니다.

넷째, 영원히 변치 않는 사랑을 받았습니다.

다섯째, 현숙하고 신실한 아내가 있습니다.

여섯째, 건강하고 부모에게 순종하는 자녀들이 있습니다.

일곱째, 진실하고 변함없는 친구들이 있습니다.

여덟째, 캄캄한 밤중에도 찬송을 부를 수 있습니다.

아홉째, 생명의 면류관이 있습니다.

열 번째, 나의 필요한 모든 것을 충족하게 채워주시는 나의 구세주 그리스도를 모시고 살아갑니다."

 

사랑은 자랑하지 않는 것이라고 할 때 이 땅에 속한 것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성취나 성공을 자랑하는 사람에게서 볼 수 있는 슬픈 일은, 그렇게 자랑함으로써 사람들을 자기에게로 끌어당기기보다는 떨어져 나가게 한다는 사실입니다. 자기가 최고라고 우쭐거리는 사람을 친구로 사귀기 좋아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죠오지 버나드 쇼(George Bernard Shaw, 1856-1950)는 영국의 극작가이며 비평가이었으며, 1926년 노벨문학상을 받았습니다. 영국의 어떤 신문이 쇼에게 앙케이트를 보냈습니다. 현존하고 있는 위대한 작가 열두 명의 이름을 적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랬더니 자기 이름을 여러 형태로 열두 번을 쓰고서 "이상 12명은 위대함이 명백하므로 감히 비판을 첨가하지 않음"이라고 써 보냈다는 것입니. 그가 뛰어난 작가였는지는 모르지만 그런 사람을 친구로 사귀고 싶어 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입니다. 자기 자랑에 몰두해 있는 것은 그만큼 다른 사람을 사랑하지 않고 있다는 말이 됩니다.

 

우리 누구에게나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다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이 된 우리는 세상의 것들을 더 이상 자랑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런 것들을 자랑할 때 이웃을 멀리 떨어지게 만들며, 형제간에 차별을 의식하게 만드는 것이며, 결국 공동체를 파괴시키는 악마적인 요소가 되어버리고 맙니다. 사도 바울은 그가 과거에 자랑스럽게 여기던 세상적인 것들을 그리스도를 안 이후에는 배설물처럼 여겨 다 버렸다고 하였습니다. 자기가 자랑할 것이 있다면 자기의 약함만을 자랑하겠다고 하였습니다.

 

아직 우리에게 자랑할 것이 있다는 것은 옛사람에 속한 것들을 다 버리지 못하였다는 증거가 될 것입니다. 자랑할 것 없는 겸손한 그리스도인이 되지 않고서는 진정으로 화합하고 일치하는 사랑의 공동체가 될 수 없습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할 일은 자기를 자랑하는 대신에 다른 사람의 자랑거리를 찾아내어 칭찬을 해 주는 일입니다. 자기 공로는 숨기고 다른 사람의 공로를 내세울 줄 아는 그리스도인이야말로 사랑을 아는 자라고 하겠습니다.

교회 안에서 믿는 사람들이 자랑 대신에 칭찬을 하면 곧 분위기가 달라질 것입니다. 우리는 눈을 크게 뜨고 다른 사람들이 하는 일을 보고 칭찬하기를 힘써야 하겠습니다. 묵묵히 교회학교에서 봉사하는 교사들이나, 성가대원이나 부엌에서 봉사하는 이들을 찾아다니며 칭찬을 해 주십시오. 남의 하는 일을 칭찬하러 다니는 일도 큰 봉사가 될 것입니다. 특히 연세가 많아 몸으로 봉사하지 못하는 권사님들이 할 수 있는 일이야말로 바로 일하는 젊은이들을 찾아다니며 칭찬해 주는 일입니다.

 

칭찬을 일로 생각하고 일부러 찾아다니고 조그마한 일이라도 아끼지 말고 칭찬을 하시기 바랍니다. 칭찬하는데 돈이 들거나 힘이 드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은 자랑하는 대신에 칭찬하는 일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우리 서로가 서로의 좋은 점을 찾아내어 칭찬을 아끼지 않을 때 우리 교회가 진정한 사랑의 공동체가 될 것입니.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랑은 투기하지 아니하며, 자랑하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자기만을 고집하는 옛사람에게 속한 투기와 자랑을 바울처럼 배설물로 여겨 멀리 던져버릴 때 참다운 그리스도인, 사랑을 아는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옛사람이 죽고 새 사람으로 다시 태어남으로 투기하는 대신에 낮은 자리로 내려가 섬기는 자가 되고, 자랑하는 대신에 남을 칭찬하는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제 우리 속에 남아 있는 이런 본능들을 완전히 청소해 내기 위해 성령의 도우심을 간구하여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그가 인도하시는 대로 날마다 힘써 사랑을 배워가는 그리스도인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금년은 우리 교회가 사랑의 공동체를 이루어 가는 해입니다. 날마다 자기를 돌아보고 우리 속에 있는 옛사람의 찌꺼기들을 깨끗이 청소해 내고 위로부터 내려주시는 사랑으로 가득 채워나가므로 이제 우리의 자랑은 하나님의 영광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투기와 자기 자랑을 버리고 사랑으로 하나님과 그의 교회를 섬기는 여러분의 생활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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